그리스도인의 소망과 연성

 

1980. 3. 19. 수새

 

본문: 빌 1: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주님을 존귀케 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하는 이 생활에 부딪히는 어떤 일이라도  주를 기쁘시게 주를 영광스럽게 주의 원하시는 대로하는 이 생활로 인하여 어떤  일을 닥쳐도 주저하지 안하고 꺼리지 안하고 못마땅해 여기지 아니하고 마음에  싫어 여기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고난이라도 억울함이라도 손해라도 가난이라도 천대라도 형벌이라도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오직 전과 같이 지금만이 아니고 과거에도  생활이 이 생활이었다는 그 말입니다. 과거에도 이 생활이었다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주를 기쁘시기 존귀케 하려는 이  마음과 행동이 심히 튼튼한 것을 가르쳐 말합니다.

 심히 튼튼한 거 이 마음과 행동이 강해서 굶어. 굶는 일이나 매 맞는 일이나  위험한 일이나 감옥이나 고문이나 고행이나 죽음이나 명예의 절단이나 가장  파괴나 자기의 어떤 그 활동이나 그런 것들이 흔들리고 그런 것들이 깨지고 그런  일들을 만나고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을 존귀케 하려는 이 심신의 행동을  추호도 요동치 못하는 견고함을 가르쳐서 온전히 담대하여 하는 말입니다.

 마치 비유컨데 여러 아름 되는 둥구나무를 여러 아름이 되는 둥구나무를 사소한  바람이 불어봤자 그것을 아이들이 햇가리를 가지고 때려봤자 아이들이 실낱 끈을  주어 매 가지고 잡아 댕겨 봤자 그 둥구나무가 요동치 않는 그런 일과 같은 그  둥구나무에 튼튼함을 둥구나무에 튼튼함과 같은 주를 존귀케 하려는 그 마음에  튼튼한 것을 세상 어떤 것이라도 다 능가하고 남음이 심히 큰 것을 말해서  "온전히 담대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염려가 주를 존귀케 하려는 이 염려보다 약하고 주를 존귀케 하려는 이  마음이 크고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와서 흔들지 못한다. 어떤 일이라도  싫지 않다. 부끄럽지 않다 싫지 않다. 그런 것들이 와야 추호도 요동치 않는다  하는 그것을 가르쳐서 "온전히 담대하여" 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아, 이렇게 하면 분명히 주님의 복음에는 영광스럽고 또  주님은 기뻐하시지마는 내 위신에 위신이 어찌되나 내 경제가 어찌되나 가정이  어찌 되나 내 출세가 어찌되나 내 무대나 내 업체가 어찌되나 내 건강이  어찌되나 생명이 어찌되나' 하는 그런 염려 때문에 그런 염려 때문에 신앙걸음을  걷다가 주저하는 것입니다.

 이 간절한 기대란 말은 그것을 말합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기대와 소망이  간절한 이 간절이 어떤 것에 부딪쳐도 온전히 담대하고 온전히 튼튼하다 어떤  것을 만나도 주저하거나 꺼리거나 지체하거나 싫지 않다 하는 것을 가르쳐서  부끄럽지 않고 온전히 담대하고 간절한 기대와 소망 이것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참 오묘한 일 있습니다. 말과 마음이 결국은 같이  돼집니다. 마음 없이 고의적으로 이거는 쓸데없는 말로 지내 버립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나중에 가서 오래 지나고 보면 말과 마음이 한테 다 모입니다.

마음이 말을 따라 갑니다. 마음이 말을 따라가요 말이 마음 따라가는 것도  있지마는 말이 마음을 따라가는 것은 정한 이치지마는 이외에도 마음이 말을  따라갑니다. 그 사람이 소양 없는 말을 자기 마음은 따로 두고 그까짓 말이야  그거는 안된 말로 알고도 그런 말을 한 번 두 번 심히 하면 나중에 자기의  마음이 그 말과 같은 그 마음이 돼 버리고 맙니다.

 말과 마음이 아무리 자기는 딴것이라고 생각하고 하지마는 말과 마음이  일치되는 이런 힘이 있는 것을 알고 말을 해야 되지 자기가 말은 그리할지라도  마음은 따로 있으니까 하고 지나버리는 하고 내버리는 말 그까짓 거야 아무런  상관없지 생각하면 속았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마음이라는 것은 말을  따라갑니다. 또 마음과 행동은 그것은 일치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마음 없는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 마음이 행동과 같이 됩니다. 또 자기 마음은  따로 두고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마음과 행동이 같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은 결국은 한 군데 가서 둘이 만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고 나쁜 그 마음을 싫거든 그 행동까지 안 해야 되지 그런 마음은  싫어하면서 그 행동을 하면 아무리 그런 행동 싫다 해도 그 마음과 같은 싫은  행동이 됩니다. 또 자기가 그런 행동이 싫다 그 행동이 싫으면 그런 마음을 안  가져야지 마음을 가지면 결국은 행동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동으로 마음이  이루어지고 마음으로 행동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그 속마음으로는 그 사람을 미워서 어짜든지 살해하면  싶습니다. 그 사람이 미워서 어짜든지 저걸 죽여야 되겠다 그런 아주 언젠가  저거는 죽여야 되겠다고 그런 살해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외식의  행동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행동을 해 나가면 결국은 마음까지도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사랑하는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마음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속으로 마음으로는 진정 사랑하면서 행동은 미워하는  행동을 어떤 계획이든지 합니다. 하면 나중에는 행동에 따라서 마음까지도  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기 때문에 마음이  싫거든 행동으로도 싫어야 되고 그 행동이 싫거든 마음으로도 싫어야 되고  마음으로 좋거든 행동도 좋아야 되고 행동이 좋으면 마음도 좋아야 되지 그것을  이중으로 사람들이 알고 이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마는 안됩니다. 결국은  일치가 됩니다.

 그러기에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결국은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능숙해집니다. 아무리 환경에 따라서 마음에 싫은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 행동이 마음을 따라가고 맙니다. 또 마음이 행동을 따라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행동이면 그 마음이요 그 마음이면 그 행동이요 행동과  마음이 일치된다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또 행동과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그 인격은 딴 거 아닙니다. 행동과 인격은 일치됩니다. 행동.

그러하지마는 인격이 어떻고 그런 것 아닙니다. 인격 따라 행동이 이루어지고  행동 따라 인격이 이뤄집니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인격과 행동이 아주 판이하게 딴 것을 다른 것을 하고  있어도 차차 차차 인격과 행동은 가까워져서 하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  다르고 행동 다르게 아주 표리가 다르게 행동과 마음이 멀게 이렇게 먼 마음 먼  행동 마음과 행동이 아주 거리 먼 것을 자기가 하고 있다 할지라도 서서히 그  마음과 행동은 가까워서 하나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계산해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다  스스로 자기가 처세술로, 처세술을 하고 있는 줄로 알지마는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자기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처세술로 하나의 방편으로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하지마는 그것이 결국은 자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운 그 생각이나 행동은 막 바로 그것을 하면은 미워하는 자기  미워하는 마음과 행동과 같은 그 미움에 마음과 행동과 같은 그런 자기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행동과 사람이 마음과 행동이 말과 마음이 말 마음 행동 자기 이 넷이  결국은 한테 뭉쳐서 하나 된다는 것 마지막에 이것이 만난다는 거 이걸 알고  처세를 해야 되지 자기가 아주 하나 처세술로 그래 하지 그런 것 아니다.

어리석게 생각하고 말 따로 하고 마음 따로 가지고 행동 따로 가지고 사람 저는  따로 있는 줄로 알지마는 따로 못 있습니다. 결국은 그것이 그것 됩니다.

 아무리 자기는 이런 사람에서 아주 거리면 자기 아닌 본의 아닌 저런 말을 하고  저런 마음을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말과 마음과 행동과  자기는 하나가 되고 맙니다. 마지막에는 자꾸 서로 가까워지고 가까워져  가지고서 결국은 똘똘 뭉쳐. 뭉쳐서 자기라는 하나가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자는 말을  아끼고 마음을 아끼고 행동을 아껴 위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는 말을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할 수 있는 행동을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는 말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사랑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데에서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거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아주 상관없이 얼마든지 이중 삼중으로 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가져서 변연히 보면은 말과 마음이 하나가 아니고 마음과 행동이 하나가  아닌 이중 삼중 적인 그것을 하면서 그것이 처세에 능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렇게 산 일생은 마지막 그것이 똘똘 뭉쳐서 자기가 되고 마는,  그러니까 그런 흉한 자기가 될 줄 알았으면 그런 것을 가지지 안 하지요 자기는  자기대로 또렷이 있고 그거는 하나의 방편으로 수단으로 상관없는 것인 줄 알고  자기가 그것이 자기 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그것이 자기  됩니다. 떠나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위대하게 만들어 위대한 자가 되고 싶으면 조심해서  위대한 말, 위대한 마음, 위대한 행동 그걸 해야 되지 자기는 위대하게 아주  훌륭한 사람이 귀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 말이야 그게 낸가 말 그게 낸가 해서  말은 귀한 말을 하지 안하고 마음은 귀한 마음을 가지지 안하고 행동은 귀한  행동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만 귀한 사람이 되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결국은 말과 마음과 행동과 자기는 일생동안 살고 보면 그만 하나입니다. 말하고  마음하고 행동하고 그 사람하고 하나가 돼 버렸습니다. 하나입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 이 간절함이 어데 있는고? 씨 뿌리는 비유에 거기에 씨는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하는 것인데 길가 뿌린 씨는 이 진리가 자기를 하나도 못  먹었다 그 말이요. 길가라는 그 땅은 자기를 말합니다. 자기, 좁게 말하면 자기  마음, 진리가 자기를 먹어야 자랍니다. 길가에 뿌린 씨는 진리가, 자기가  딴딴해서 이 진리가 와서 자기를 하나도 파먹지 못하요.

 돌짝 밭에 뿌린 씨는 이 진리가 자기를 먹다가 그만 자기라는 것에게 거쳐서 이  진리가 자기의 마음, 자기 생각, 시간, 활동을 먹다가 자기에게 딱 마찰되니까  그만 더 먹지 못합니다. 자기 때문에 못 먹소 그걸 가르쳐서 뭐 돌을 말합니다.

뿌리내릴 때에 돌이 받히는 거 돌 그거는 자기를 말하는 것이요.

 덤불 위에 뿌린 씨라 이 진리가 와 가지고서 자기의 시간도 먹어야 되고 자기  생각도 먹어야 되고 말도 먹어야 되고 마음도 먹어야 되고 행동도 먹어야 되고  자기를 먹어야 이 진리가 자기에게서 결실이 되고 성공을 할 것인데 자기를  먹을려고 하니까 세상 염려 물질 욕심 물욕과 세상 욕심 이것이 자기를 다  뺏들어 먹어 버리고 진리는 먹을게 없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세상 물욕 물욕과 세상 욕심 이놈이 들어서 자기 심신 언행심사 전부  다 먹어 버리고 진리는 와서 먹지 못하니까 그것이 무슨 결실이 있겠소?  옥토에 뿌린 씨는 자기가 받은 바에 이 진리가 자기의 마음도 생각도 말도  행동도 자기를 다 먹어 버립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다 먹는 것을 가르쳐서  옥토에 뿌린 씨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네가 주의 진리를 배워 받아 가지고서 이 진리고 결실을  할려고 하면은 이 진리에 대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야 이 진리에 다 해야 이 진리에 네가 진리가 네게 와져. 와서 진리대로  성과 되는 행동이 돼지고 그 진리대로의 자기가 된다 그 말입니다. 진리대로의  결실함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된다는 그 결실은 진리대로의 자기 된 걸  말합니다.

 진리대로의 자기 된 거 진리대로의 행동된 것, 진리대로의 자기 된 것, 백  배라. 자기가 뭐 백이 되는가 자기가 백이 아니라 천도만도 넘습니다. 자기가  우리 자기라는 것은 영은 단일체이지마는 이 심신이라 하는 것은 그 육체의  세포보다 더 세포가 많습니다. 그것이 하나가 요 진리대로의 한 요소가 되고  마음도 수많은 마음인데 요 마음이라는 요 마음이 진리대로의 마음이 됐고 저  마음이 진리대로 마음이 됐고 고 마음이 진리대로 마음이 됐고 진리대로 그  마음이 여러 수십 개인데 수십 개가 진리대로 됐고, 행동이 수십 갠데 수백 개도  넘지요. 그게 진리대로 된 거 그걸 가르쳐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백 배라 말하는 백을 똑 말하는 것 아니요 그것은 십이라는 것은 인간의 만순데  만수, 만수 인간의 지식이 측량 못할 만치 다수적으로 성화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소원이라는 이거는 중요합니다. 우리의 소원이라는 소원만  해도 소용 있는가? 아니요 소원은 실지가 되고 소원은 자기가 됩니다. 자기가  되요. 그래서 소원을 우리에게 두고 그러면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인데 옳은  소원인데 소원을 우리에게 두고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소원대로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소원대로 이뤄진다 그 말입니다.

 자기 속에 안된 소원이 있으면 별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이 세상에 명철 그것은  아주 그까짓 것은 아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십시오. 말 잘하고 지혜 있고  총명하고 예민하고 날카롭고 훌륭하고 아무 가치 없습니다. 가치가 아주 허무한  것입니다. 그것 암만 좋아도 소원이 틀렸으면 그것이 전부 악용되고 맙니다.

하나의 그거는 도구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요 그 사람이 그런 것이 없어 둔하고,  둔하고 아주 허무할지라도 옳은 것을 소원했으면 옳은 걸 원하면 그 사람은  결국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옳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목사노릇 하면서도 자기가 헛된 허영을 가지고서 무슨 존영을  가지고서 명예심이나 영광심이나 자기가 무슨 패권을 잡을려고 자기가 정권을  잡을려고 자기가 무슨 왕권을 잡을려고 하는 그런 것이 그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그런 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 게 평생 한번도 그 생각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방에서 천리 만리도 먼데 그것이 어째 들어 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게 안 들어오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안 들어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게 들어오는 그것은 물리치는 사람은 참 위험한 자리에 섰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들어오는 것을 물리치는 사람은 위험한 자리에 섰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쉴새없이 노력하지 안 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성도의 정상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데 그것이 무엇이 나타납니까?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심판자 그 분 앞에  섰는데 그런 허무한 생각이 어떻게 근방에 들어오겠습니까? 주를 아는 자 주안에  소망이 있는 자 그런 자는 이런 것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있는 거 뽑는다 그런 생각 가지지 마시고 없습니다. 그것이  있을 사이가 없습니다. 나올 사이가 없소 그런 또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짓뿌리 그것을 어떻게 제가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것을  행동이라고 원하겠습니까? 그런 것이 자기 마음에 아예 들어오지 않는 것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 평생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는 그것이 정상적인 기독자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혹은 며칠만이나 간혹 우뚝우뚝 들어와서 그런 걸로 더불어 싸워서  물리치는 사람은 그것은 아주 저급의 사람입니다. 아주 그거는 낮은데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그것으로 더불어 싸운다는 것을 발견했으면 평생 거기에  대해서 항상 망대를 지어놓고 항상 그게 대해서 쏘는 화살을 땡겨 놓고 있어야  되지 그렇지 안 하면 헛일입니다. 그것이 들어오는 것을 그놈을 가지고서 '아,  이것이 이래 볼까 저래 볼까 이래해야 성공될까 저리해야 성공이 될까 이래야  이제 이것이 질러가는 길일까 저리해야 질러가는 길일까?' 그 방편을 연구한다면  벌써 그 사람은 돌아서기가 어렵습니다. 예,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나 하나님의  무슨 하나님이 꺾는 담으로나 가시로나 막아서 꺾어지는 그 일이 있어야  돌아오지 그전에는 못 돌아 옵니다. 돌아오기가 벌써 지나간 것입니다.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예수 믿는 신앙 생활하고 난 다음에 징계를 가지고 회개하는  사람 있고 평생 징계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 있습니다. 징계를 가지고  회개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런 것이니까 하나님이 꺾어주는 것이고 뽑아주시는  것이고 가시로 담으로 막아서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하는 그 말은 그것을 네가 한번  당하면 그만치 손해가 많이 갔는데 한번 당하는 거기에 대해서 허비가 많이  됐는데 예사롭게 여기고 자꾸 매 맺으면 가면 병신 되고 말지 그게 별것이  되겠습니까? 아, 독약을 먹어서 한번 치료가 됐는데 '아, 약 먹으니까 치료된다'  하면서 독약을 한번 먹어도 상할 것이 굉장히 상했는데 거기에는 좋지마는 다른  데는 많이 상했는데 또 먹고 또 먹고 제가 병신 되고 나중에 헛일되고 말지 뭣  됩니까? 징계는 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징계는 어느 한 군데만 필요한 것이지  거기에만 필요한 것이지 아무데 다른데 필요한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걸 예사롭게 여기지 말라 그 말이요. 징계가 없으면 그것은  제대로의 것이 사사로운 아들입니다. 조작배기 신자요 옆에 붙들려서 출물군으로  동행해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이지 그것은 "사사로운 아들이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너희들은 징계가 없으면 사사로운 아들이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이랬습니다.

 우리가 마음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이란 거는 중요한 겁니다. 가룟  유다는 요렇게 모든 사람은 나를 팔 자가 여기에 있다 하니까 이거는 팔 자가  있다 이라니까 모두가 떨면서 겁을 내면서 냅니까 냅니까? 이래 떠는데 가룟  유다는 거기에 대해서 담대했습니다.

 나와 떡 그릇에 손을 같이 지금 넣고 있는 자다. 가룟 유다가 그때 손을  넣었으니까 가룟 유다란 것을 자타가 다 압니다. 자타가 다 알았습니다. 자타가  다 알았는데 옆에 사람들은 자기 아니라 해도 아니란 것이 밝혀져도 두려워  떨었는데 가룟 유다는 거기에 대해서 떨리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거나  말거나 팔 자라 하든지 말든지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두려움이나 자극이 없이  자기 마음은 딱 따로 돌아서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게 가룟 유답니다. 이제  자기가 허영과 허욕이 있는 그것이 안 나오는 사람 있는데 나오는 사람을 그걸  뽑기를 계속 노력해야 된다 그것만 주시하는 망대를 하나 지어놓아야 되고  거기에다 대포를 걸어 놓아야 된다.

 이럴 때에 곧 떨리지 아니하고 그 방편을 연구하는 사람은 스스로는 돌아서기  어렵다 이래도 떨리지 안하고 방편을 연구하는 그만큼 벌써 타락한 사람은  완패해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어서 도와서 그것을 꺾어줘야 되고 그것을  한번 뽑아서 도와줘야 된다  "가시와 담으로 막는다" 그것은 징계를 말한다 어떤 징계에 한번에 돌아서지  그렇지 안 하면 그 허영의 꿈을 돌이키지 않는다 이래도 두려워하지 안 하면 그  허영의 꿈을 돌이키지 않는다. 이래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그렇게 해도 징계가  없는 자는 사사로운 아들이요 참 아들이 아니라.

 이럴 때에 '아, 나에게는 분명히 내가 그와 같은 지금 허영과 허욕을  가졌는데도 징계가 없다 징계 없는 사사로운 아들이란다' 하는 여기에도 두렵지  안하고 사사로운 아들이거나 말거나 생각 없는 그 사람은 불택자라고는 할 수가  없지마는 하나님이 부를 때가 돼서 나온 사람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중생이  속에 아직 없는 사람이요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 착수시키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교회 나오기는 나오지마는 그래도 떨리지 안하고 아직까지는 가룟 유다에 속한  사람이라 그 말이요.

 그러므로 우리가 간절한 기대와 소망 나의 간절함이 어데 기울어져 있는지 목회  해보면 기술만 가지고 목회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기술만 가지고 목회 하는  사람들 설교 잘하는 것 가지고 그 사람 목회 성공하는 것 아닙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그 설교에 성령의 나타나심과 권능이 역사 하는 그것이 없으면 그  설교들은 그 사람들 중에 그 믿음이 인간의 꾀에 있지 인간의 꾀에 있지 권능에  없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 것이 문뜩문뜩 있어. 왜정말년에  신사 참배를 이긴 것이라든지 6.25 동란에 그 원수 속에 서 있으면서도 죄짓지  아니하고 승리한다든지 그런 것은 그것이 다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인간결심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지금과 그때는 다릅니다. '그때 생명 내놓지' 해도 그때에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를 내놓지 않기 위해서 뭐 있는 소유 그까짓 거야 쉽지마는 마지막에  목숨 내놓는다는 거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목숨을 내놓기 전에는 물질  그러지마는 마지막에 목숨 내놓는 게 제일 어렵소 그때 가면 다 변질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마음 단속이라는 것이 말 단속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을 말에서 만들어야 됩니다. 마음을 말에서 만들어야 돼요 마음을  말에서 만들기가 쉽지 마음을 마음에서 만든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마음을  말에서 만들고 거룩한 행위를 마음에서 만들고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깨끗한  자기를 행동에서 만들어야 되지 다른데서 거기에서 직접 그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방편입니다. 그거는 불가능의 방편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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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6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연성/ 빌립보서 1장 20절/ 800321금새 선지자 2015.10.26
4885 그리스도인의 소원과 연성/ 빌립보서 1장 20절/ 1980년 12 공과 선지자 2015.10.26
4884 그리스도인의 위치/ 요한복음 15장 1절-11절/ 1979년 26공과 27공과 선지자 2015.10.26
4883 그리스도인의 준비/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09주후 선지자 2015.10.26
4882 그리스도인의 준비/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1983. 10. 12.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0.26
4881 그리스도인의 준비/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12수야 선지자 2015.10.26
4880 그리스도인의 준비/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1983년 42 공과 선지자 2015.10.26
4879 그리스도인의 행복/ 요한복음 5장 5절-10절/ 1976년 29공과 선지자 2015.10.26
4878 그리스도인의 현실/ 베드로전서 1장 21절-25절/ 1977년 18 공과 선지자 2015.10.26
4877 그리스도인이 되는 3가지 방편/ 골로새서 3장 12절-17절/ 880501주전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