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9 21:52
■ 순복의 賞
다음의 관계에서는 일에 대한 상이 아니라 순복에 대한 상입니다. 일에 대한 상은 순복을 해서 일한 상입니다. 순복은 하지 않고 일을 해봐야 결국 쫓겨납니다. 예를 들어 직원이 일은 잘하는데 주인에게 순복하지 않는다고 칩시다. 여러분이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하나 예를 들면 아내가 일은 잘하는데 남편에게 순복하지 않는다고 칩시다. 여러분이 남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혹시나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1. 하나님께 순복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2. 왕에게 순복
(벧전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3. 주인들에게 순복
(벧전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4. 남편에게 순복
(벧전3: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5. 장로들에게 순복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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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숙입니다.
▲ 임정숙 선교사가 선교현장의 간증을 하고 있다.
인도칼빈신학교 선교보고를 위하여 기도하고 준비하던 중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간섭하심을 느꼈습니다.
보통은 먼저 (1)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2)감사인사를 드리고, (3)선교보고인 현지상황과 기도제목을 이어갔는데, 이번에는 추방이라는 상황 때문에 정말 너무 잘 보고하고 싶고 여러 가지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리라 작정하고 이것저것을 정리하던 중에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네가 인도서 무엇을 했는가를 보고 하지 말고 어떤 잘못과 실수들을 했는가를 고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너희 부부를 대신해서 누가 인도에 다시 들어가던지 참고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종하기로 하고보니 회개할 제목이 무려 다섯 가지나 되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참으로 죄인입니다.
1. 첫째, 제가 회개한 저의 실수와 잘못은 두려움이었습니다.
2015년 3월 24일 밤 인도네시아에서 시니어 선교사 하프타임 관리와 돌봄 세미나를 마치고 인도로 재입국 하는 과정에서 공항직원이 저의 여권을 검색하면서 얼굴색이 변하며 곧 바로 공항경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순식간에 사복경찰 서너명이 제 앞에 서더니 “네 남편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인도에 입국할 때 마다 줄을 따로 따로 서서 여러 가지 질문, 예를 들면 너의 비자가 비즈니스인데 어떤 일을 하느냐 혹은 수입에 대한 세금은 잘 내고 있느냐는 등등을 질문하고 거주 장소를 묻는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평소대로라면 우물우물 말귀를 못알아 듣는 할머니흉내를 내며 한국말로 “주의 성령님 도와주세요. 주의 천사를 보내주세요” 기도하면 대부분은 공항직원들이 “당신 말을 내가 못 알아듣는 거나 내가 당신 말을 못 알아듣는 거나 같지”하면서 스탬프를 찍어주는데 이번에는 보통상황이 아님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고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두려웠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내 남편 저기요” 하고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개를 돌리니 마침 남편은 다른 사복경찰들에 둘러싸여서 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남편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도 네 아내가 어디있느냐? 물어서 제 쪽으로 온 것입니까?”
만 19년 동안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이렇게 두렸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인도사역기간동안에 경찰의 추적도 받았고 데모데 군중 속에 갇혀서 겨우 빠져나온 적도 있고 RSS(힌두극단주의)의 협박레터도 받았으며 3일내로 칼빈신학교 문을 닫지 않으면 불태우겠다는 경고도 몇 번 받았으나 두렵지 않았고 담대히 대처함으로 해결되곤 했는데 이번엔 왜 그런지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야말로 내가 두려워하던 그것이 내게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항 안에서 만 24시간 여러 가지 검사과정을 그치고 한국으로 추방이 되었습니다. 마치 중죄인 취급을 받으며 공항직원들의 호송을 받으며 전화기만 저희 손에 두고 모든 짐들과 여권 비행기표는 자기들이 붙혀 준 직원이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 갈아타는 곳까지 사람을 붙이고 모든 복잡한 서류에 사인을 하게하고 여름옷을 입고 이른 봄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체험을 했는데 저희들의 형상은 마치 거지같았는데 한국공항에 도착하니 제 눈엔 모든 글들이 “환영 환영” 으로 보였습니다. 하여간 제가 회개해야할 첫 번째 실수는 두려움이었음을 깨닫습니다.
2. 두 번째 저의 잘못은 숫자입니다.
잘 보고하기 위하여 이것저것을 살피는 중 사람들에게 어떻게 확실하게 알릴 수 있을까에 신경을 쓰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전 세계 25곳에 스토어 오픈, -스토어 방문자 수 1천 5백만 명, -스토어 매출 규모 2천억 원, -주요 매장 평균 월 매출 10억 원, - 전체 제품 수 400여종 5천 가지,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시간은 1년 6개월, 네이브 회사 라인 프랜즈 아무개, 이것을 읽는 순간 그렇다 나도 이렇게 선명하게 보고하자. 1년에 몇 명 결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을 구원하리라 했으나 내가 돌보는 아동들 약 몇 명으로 계산하면 그의 가족이 몇 명들이니 몇 명이 구원받았고, 아동들의 부모님을 위한 교회가 생겨졌으니 사실 아닌가 등, 약 19년 동안 본부나 후원교회들로부터 대충 어느정도 받았고 현재 인도칼빈신학교 자산은 얼마 등, 그리고 약 500명이 넘는 칼빈졸업생들이 목회자로 교사로 군인 장교 등으로 사역하며 살고 있으니 기타 등등 숫자에 민감해 있는 저의 모습이 2번째로 회개해야할 실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 종들은 씨앗을 뿌리고 물만 줄뿐 열매를 맺으시는 분은 오직 우리 주님이신데 저는 이 숫자에 대하여 아무 것도 드러낼 것이 없는 종임을 잠시 잊었던 것입니다.
3. 세 번째 인도칼빈신학교는 기도가 응답되는 장소라고 나름대로 자부심의 교만으로 남편의 선교사역에 온전히 순종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방금 예를 든 네이브 라인 프렌즈 보고를 한 사람의 아내가 그녀의 어린 아들과 함께 인도칼빈으로 와서 남편의 사업어려움을 인하여 3개월이나 5시 30분 새벽기도부터 밤10시 30분까지 신학생들과 시간표를 함께 하며 기도하다 드디어 응답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오늘날 이런 보고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에스더 김도 노처녀였는데 인도에 와서 1년간 아동개발사역을 잘 돕더니 한국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교사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며, 저희 집에서 돕던 소냐는 인도현지인인데 한국신학생과 결혼해서 지금 한국 대구에서 영어학원을 경영하며 살고 있고, 또 칼빈신학생들도 처음엔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혹은 배가 고파서 밥을 먹기 위해서 인도칼빈신학교에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마침내 모든 훈련과정을 마치고 사역자로 인도, 미얀마, 네팔, 방글라데시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주님의 도우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의 기도는 안 들어주었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신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렇게 추방당하기 직전까지 너는 인도칼빈신학교에 종교음악과를 개설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악기들을 준비하고 미국과 한국에 계신 교수진 섭외를 마쳤고 학생들 모집을 위하여 임시 음악학교를 열어 현지인을 가르치고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윤지원 선교사는 평소에 말하기를 신학교는 신학교로 있어야지 여러잡다한 과를 증설하면 좌경하기 쉽고 변질되기 쉬워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귀 넘어로 듣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선교사역에서 남편을 거역한 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4. 네 번째는 남편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함이었습니다.
신학생중의 한명인 코을라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새벽 1시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라고 기도해야하는데 저는 악- 소리를 지르며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남편 윤선교사가 온힘을 다해 "울지 마!" 라며 저를 윽박질렀습니다. 우리의 19년 인도생활에서 남편 윤선교사는 감정을 잘 드러내는 저를 절제시키며 행동을 통제했습니다. 인도칼빈신학교가 현지동네 바로 곁이며 무엇을 해도 금방 소문이 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장소에서 일단 죽어나가는 일이 생겼으니 이 일로 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이었습니다. 어쩌튼 조용히 선교해야하는 현지사정을 감안하여 그리하는 것인 줄은 알지만 여러모로 억장이 무너지는 몇 가지 일을 만나면서 저는 저의 감정들을 남편에게 숨기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담을 쌓고 살았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 고집이 너무 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일단 직접 사역이 없으므로 남편과 여러 가지 부담 없는 이야기를 속 깊게 나누다 보니 부부사이가 너무 좋아졌습니다. 하여간 현장에서의 긴장이 풀린 남편은 한국에서 마음은 억지로라도 편한데 육신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이빨이 흔들리고 임플란트를 하는 등 고장 난 부분들을 돌보면서 행복하게 지내며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이제사 남편의 속깊은 마음을 헤아리며....
5. 마지막 다섯 번째로 하나님이 품는 저들을 저는 품지 못함이었습니다.
인도칼빈신학교를 중심으로 힌두탬플들이 너무 많습니다. 템플마다 다른 종류의 신들을 경배하기 때문인데 선거철이 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을 신경 쓴다는 핑개로 허접한 템플을 하나씩 지어주고 표를 모으기 때문입니다. 인도는 우기철이 되면 천둥번개가 억수로 심한데 그 때 마다 저는 하나님께 습관처럼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부지 번개같은 거 락쉬미템플에 한방, 스텍템플에 한방 라자템플에 한방씩 우찌 안되겠습니까?" 했는데 주님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인도칼빈신학교 지붕을 한 번씩 날리기도 하시고 차고 담벼락을 무너뜨리기도 하시며 저의 맘을 아프게 하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생각해보니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 앞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야하고 캐어해야 하는 선교사가 엉뚱한 기도나 하며 신중하지 못한 것을 주님은 나무라셨습니다. 정리해보면 이렇게 부족하고 흠이 많은 저를 하나님께서는 정말 오래 기다리셨고 그리고 불구하고의 은총으로 함께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와 부족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크게 감사드리며 불구하고의 은총으로 인도선교 19년의 사역을 마감케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후원해주신 교회와 성도님들께 함께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