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2 23:28
■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서론)
장로교는 칼빈주의이다.
감리교는 알미니안주의이다.
어떤 신학자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정의하였다.
칼빈주의는 ‘믿는 사람이라면 전부 천국에 간다.’는 신앙사상이다.
알미니안주의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갈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는 신앙사상이다
부족한 종 김반석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정의한다.
구원론에 있어 ‘중생의 씻음’의 도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칼빈주의이다.
구원론에 있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의 도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알미니안주의이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두 요소 즉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말씀한다.
칼빈주의의 ‘믿는 사람이라면 전부 천국에 간다’는 주장은 “중생의 씻음”만 강조한 주장이다. 알미니안주의의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갈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는 주장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만 강조한 주장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두 요소 즉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한 도리를 교리로 정립해야 성경적이 된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이 되는 ‘중생의 씻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되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무엇인가?
(본론)
1장 중생의 씻음
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이 고전3:11-15에서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자기
(고전3:11-15)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은 불타 해를 받더라도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자기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자기 즉 중생의 씻음을 받은 자기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칼반주의가 ‘믿는 사람이라면 전부 천국에 간다.’는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공력은 천국에 상을 받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은 불타 해를 받는 것은 간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자기는 구원을 얻는 이것만 강조하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의 두 요소에서 중생의 씻음만 강조하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간과한 것이다.
2장 성령의 새롭게 하심
1.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것은 고전3:11-15에서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는 공력’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공력
(고전3:11-15)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공력은 천국에 상을 받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은 불타 해를 받는다.
그러므로 알미니안주의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갈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는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자기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자기는 간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공력은 천국에 상을 받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은 불타 해를 받는 이것만 강조하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의 두 요소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만 강조하고, 중생의 씻음은 간과한 것이다.
1)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공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①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②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③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과 왕 직분을 세우시고) ①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②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③눌린 자를 자유케(눅4:18) 하신다. 이것이 ①금이나 ②은이나 ③보석으로 세운 공력이다.
2)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벧전2:11)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이다. 즉 ①육신의 연약한 자(롬5:8), ②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롬5:8), ③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가 ①나무나 ②풀이나 ③짚으로 세우는 공력이다.
(결론)
서론에서 언급한대로 칼빈주의는 ‘믿는 사람이라면 전부 천국에 간다.’는 주장의 신앙사상이다. 그리고 알미니안주의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갈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는 주장의 신앙사상이다. 그러므로 구원론에 있어 ‘중생의 씻음’만을 강조하는 주장이 칼빈주의이며, 구원론에 있어 ‘성령의 새롭게 하심’만을 강조하는 주장이 알미니안주의이다.
그러나 성경 딛3:6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말씀한다. 그렇기에 믿는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두 요소의 교리로서 정립해야 한다. 즉 ‘중생의 씻음’에 대한 교리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한 교리로 정립하여야 성경적이 된다.
- ‘중생의 씻음’은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음(엡1:7)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중생의 씻음을 받은 자기는 자신의 공력에 상관없이 천국의 구원을 받는다. 그렇기에 칼빈주의가 ‘믿는 사람이라면 전부 천국에 간다.’는 주장만 강조하는 것은 중생의 씻음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으로써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해서는 간과한 오류가 된다.
-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음(엡1:13)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요14:16-17, 요14:26, 요15:26)과 주의 성령의 임하심(눅4:18)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공력으로서 천국에 상을 받는다. 그렇기에 알미니안주의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갈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는 주장만 강조하는 것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으로써 ‘중생의 씻음’에 대해서는 간과한 오류가 된다.
- ‘육체의 정욕’은 곧 육신의 연약한 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력으로서 불타 해를 받는다. 그렇기에 알미니안주의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갈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는 주장만 강조하는 것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으로써 ‘중생의 씻음’에 대해서는 간과한 오류가 된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우리의 구원에서 ‘중생의 씻음’만을 강조하는 주장을 수정하여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대한 도리의 교리를 더하여 정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알미니안주의는 우리의 구원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만을 강조하는 주장을 수정하여 ‘중생의 씻음’에 대한 도리의 교리를 더하여 정립하여야 한다. 그런 것은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서 두 요소로 말씀하기 때문이다.
- 2019. 7. 22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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