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9 04:48
재림교회 75년 반상순 장로와의 대화
대담/ 반상순 장로와 곽정환 목사(객원기자)의 진솔한 이야기
2018년 09월 28일 (금) 10:50:01 곽정환 hosanna6408@daum.net
<교회와신앙> 곽정환 객원기자】 재림교회에 75년간 몸 담아온 재림교회의 한 원로, 반상순 장로가 재림교회를 향해 쓴 소리 영상을 4편으로 나누어 유튜브에 올렸다. 각각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재림교 핵심교리인 화잇의 무오성과 조사심판 교리를 다룬 내용이다.
2300주야 공개토론에 대하여 1. 하나님의 심판은?
https://www.youtube.com/watch?v=aevbV1vLt2g&t=10s
2300주야 공개토론에 대하여 2. 화잇의 딜레마
https://www.youtube.com/watch?v=oEe1xq4hQ_s&t=18s
2300주야 공개토론에 대하여 3. 나노 단위의 심판
https://www.youtube.com/watch?v=Sxn8LwdDmJk&t=710s
2300주야 공개토론에 대하여 4. 교회가 사는 길
https://www.youtube.com/watch?v=cDd8LsjQlpk&t=220s
반상순 장로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물구나무 예수>(오강남 교수 책 [예수는 없다]의 반론), <신계훈 목사 유고집 1,2,3,4>, <구원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다> 등이 있다.
반 장로는 일제시대에 교회가 해산되었을 때 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반내현 목사의 아들이다. 반내현 목사는 재림교회에 적목리 신앙 공동체라는 유산을 남겨준 한국 재림교회의 선구자인데 왜 그의 아들이 재림교가 듣기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는 영상을 공개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생각의 경계를 넘기까지는 깊은 신앙적 고민과 계기가 있었을 터인데 장본인을 만나 동영상을 올리게 된 사연을 알아본다. <필자 주>
▲ 반상순 장로. 박진하 목사와 이상구 박사 공대토론에 대한 평론 유튜브 영상
곽: 장로님의 아버님은 일제시대 재림교회가 해산되었을 때 방방곡곡을 다니며 꺼져가는 불을 살려낸 반내현 목사님의 아들이신데, 이번에 재림교회의 중추 교리에 잘못을 지적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그 이유가 있으신지요?
반: 저는 재림 교인으로 태어나 재림교인으로 살아 온지 75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저의 재림교회 사랑은 DNA에 프린트 되어 있습니다. 재림 교인 모두가 뭐라고 말해도 저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남이 잘못된 길로 갈 때는 가만있을 수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 갈 때는 가만있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곽: 잘못된 길이라니요. 재림교회에 무슨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요?
반: 저는 그동안 재림교회가 가장 하나님을 잘 이해하고 가르치는 교회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성경 강해를 쓰면서 재림교회의 가르침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곽: 동영상을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화잇의 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는 말이 나오던데요.
반: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래도 교회에 대한 저의 신임이 두터웠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곽: 고등학교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반: 1961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께서 나주 교회를 담임하시면서 호남대회 순회 목사를 하셨습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기 전, 겨울 방학 때였습니다. 아버님이 순회 전도를 하시기 위해 교회를 자주 비우시니까, 어머니께서 저에게 설교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제게 영문 <시대의 소망>이 있었는데 한 주일 내내 그것을 번역하여 금요일 저녁과 안식일에 말씀을 나누면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방학을 보내고 다음해 신학교에 들어가서 여름 방학 때 설교할 생각을 하고,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시대의 소망>의 말과 다른 내용이 발견된 겁니다. <대쟁투> 23장에 "죄인의 대속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열납되었으나 죄는 그 희생 제물의 피로 없어지지 않았다"(대쟁투 420쪽)는 말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시대의 소망>에서 "그분은 하늘 궁정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람들의 죄에 대한 당신의 속죄는 충분하였고 당신의 피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보증의 말씀을 친히 들으셨다"(시대의 소망 790쪽)고 했거든요.
이 두 말씀의 상충이 저를 불편하게 만든 겁니다. "죄가 희생제물의 피로 없어지지 않았다"면 왜 예수님이 죽으셨을까? 사단이 죽어야 죄 문제가 해결된다면, 속죄란 사단과 예수님의 공동사역의 결과인가? 역할 분담의 결과인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당시 성경 교수였던 이창규 목사님을 찾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으로는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요?"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교수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인간이 자기의 품성으로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한 마디에 말 한 마디 못하고 돌아서면서 "그럼 왜 예수께서 돌아가셨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예수께서 돌아가실 필요 없이 네 품성으로 죄 없음을 입증하라"고 하면 될 것을...' 이런 의문이 풀리지 않아 <대쟁투>를 계속 읽지 못하고 다음 해에 신학교를 떠나 서울대학교로 배움의 터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까지 4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요. (시대의 소망, 대쟁투는 엘렌지 화잇의 저서를 말함)
곽: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다니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물구나무 예수>라는 기독교 변증서를 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도 예수를 잘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요?
반: 2000년이 시작되면서 교회 게시판에 오강남 교수가 기독교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예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글을 읽다보면 성경의 하나님은 유대의 부족신에 불과하고 성경 역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교회 게시판에 독소가 퍼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거기에 반대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오강남 교수의 책
그리고 오강남 교수가 그의 글들을 <예수는 없다>는 책으로 출판하자 저도 그 글들을 모아 <물구나무 예수>라는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 저는 착실한 기독교인이어서 기독교를 옹호하는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교회 사랑이 몸에 배어서 글을 쓴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의 교회 사랑이 DNA에 프린트 되어 있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곽: 재림교회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실 수 있나요?
반: 저는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만은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성경 강해 중에서 욥기의 부제는 “오해받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한 오해가 만연한 세상에서 당신에 대한 오해를 푸시기 위해 욥을 투입하셨습니다. 여러 달째(욥 7:3) 욥과 그의 친구들은 그들이 아는 하나님에 대해 논쟁했습니다.
▲ 오강남 교수의 책에 대한 반상순 장로의 반박 도서
드디어 엘리후가 등장하면서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욥 32:19)라며 등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욥과 그의 세 친구들에 대한 하나님의 답답한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오해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오해를 풀기 위해 투입된 당신의 대리자들입니다.
곽: 그럼 재림교회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반: 안식일 교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사심판 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재림 교회 목사들은 아무도 화잇이 정의한 조사심판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즘 목사들은 모두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악인을 심판하고 의인에게 상주시는 것으로 조사심판을 가르칩니다. 만일 화잇이 살아나서 이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화잇 부인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이 세상의 심판장 되신 하나님 앞에서”(대쟁투 483쪽) 심판 받는다고 했고,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렸을지라도’(대쟁투 487쪽) 심판의 증거가 된다고 말했거든요.
곽: 재림교회에서 화잇의 말과 목사들이 다르게 말하는 것을 진리의 역동성으로 말합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반: 화잇 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이해에는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꾸준히 확장할 수 있는 것이며 … 진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아직도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겨우 빛의 몇 줄기만을 보았을 뿐이다”(조지 나잇, 재림교회의 정체성을 찾아서 31쪽). ‘현대 진리의 역동성’이라는 말은 화잇 부인의 이 말에 근거합니다.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역동성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속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탕자의 비유로. 혼인 잔치의 비유로, 빚을 탕감 받은 종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구속의 원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설명은 역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아니라 원리가 변한다면 그것은 역동적이 아니라 변질입니다. 진리를 설명하는 방법은 역동적이어야 하지만 진리 자체가 변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 깨달은 것을 바로 깨닫게 된 것은 역동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라도 점점 밝은 빛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감사할 일이지, 역동적이라며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재림 교회의 조사심판 교리는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그릇되게 합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가 ‘어디 그 동안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해보자’고 하신다는 것이 조사심판 교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탕자의 아버지는 ‘아직 상거가 먼데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눅 15:20) 맞춥니다. 저가 조사심판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재림교회가 말하는 예수가 성경이 말하는 예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 재림교 조사심판 상상도. 최종 구원 결정을 위하여 율법 순종량과품성을 조사하는 장면
곽: 화잇이 뭐라고 말했든지, 목사들이 조사심판에 대해서 성경 원리에 맞도록 설명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반: 만일 화잇의 글의 권위가 교리에 들어가 있지 않다면 목사가 성경 원리에 맞게 조사심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림교회는 화잇의 글의 권위를 교리로 못 박았습니다. 교리란 교회의 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잇의 정의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목사들이 화잇이 내린 정의를 모르든지, 아니면 교회의 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교리에 의해 교단의 정체가 결정되므로 목사들이 화잇의 말과 다르게 말하려면 화잇의 글의 권위를 교리에서 삭제해야 하고, 화잇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곽: 정치로 말하자면 당론을 자기 마음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군요. 아무튼 화잇 글의 권위가 재림교에서는 교리화되었다는 말씀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반: 재림교회 <기본 교리> 18장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 중의 하나는 예언하는 것이다. 이 은사는 남은 교회임을 확인하는 표징이며, 그것은 엘렌 G. 화잇의 봉사를 통해 나타났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의 저술들은 지속적이고도 권위 있는 (진리의) 원천으로서 교회에 위로와 인도와 교훈과 교정을 제공한다.” 화잇을 하나님의 사자로 보고 그의 글에 권위를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식일 교회는 하나님의 역할과 성경의 권위를 화잇의 글에 부여했습니다. 이게 바로 안식일 교회를 예수교로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곽: 예수교로 볼 수 없다는 말에 재림교는 화들짝 놀랄 것 같습니다. 화잇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면서도 성경을 큰 빛이라 하고 자신의 글을 작은 빛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반: 바로 그것이 이단의 특징입니다. 몰몬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라고 불리우기를 원하지만, “몰몬경은 증인으로서 성경에 있는 교리를 거듭 확증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통합시킨다”(리아호나 2011년 11월호, 75쪽)고 말하기 때문에 그들을 몰몬교라고 부르듯이, 재림 교회 역시 성경을 큰 빛이라고 하면서도 화잇의 글이 없으면 교단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교로 불리우기를 원하지만 화잇교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재림교 선지자 엘렌지 화잇이 직통계시 받는다는 장면 그림
곽: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화잇경이고 화잇교인데 이 말을 과연 재림교가 용기 있게 접수할 런지 모르겠습니다.
반: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그러나 저는 꿈을 꿉니다. 솔직하게 교회의 잘못을 시인하는 새로운 세대가 나올 수도 있다고요. 그러면 재림교는 매우 활기차게 약진하게 될 것입니다.
곽: 주제를 바꾸어 물어보겠습니다. 2300주야 예언 해석은 재림교의 중추 교리라 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재림교의 해석이 틀렸다는 주장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림 교회의 주장과 장로님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간단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반: 지금으로부터 180여 년 전, 윌리엄 밀러는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단 8:14)는 말씀을 보고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정한 시간에 예수께서 재림하지 않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 중 일부가 예수님이 1844년에 지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조사심판을 하기 위하여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장을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가 다시 나왔다는 말을 합니다.(앙헬 로드리게즈와 로이 아담스, 성소 교리의 성경적 기초 349쪽) 저는 이것을 In and Out 성소 교리, 패스트 푸드 성소 교리 또는 정크 푸드 성소 교리라고 말합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들락날락하는 이 교리는 먹어서 이로울 것이 없는 교리입니다.
재림 교회가 권위를 부여한 화잇 부인 자신도 “더 이상 죄 많고 슬픔에 찬 인간들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나오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구주께서 모든 하늘의 하늘에서 제사장과 대언자로서 직무를 행하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757쪽)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의 글의 권위를 교리로 정하고 있는 화잇이 때로는 맞게도 말하고 때로는 틀리게도 말함으로 혼잡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재림 교인들은 무엇에 취한 사람들처럼 맹목적 사랑을 화잇과 그 교회에 바치고 있습니다. 맹목적 사랑이 교인들의 눈을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곽: 화잇의 글에 좋은 말들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반: 거짓말의 황금 비율을 7:3이라고 말합니다. 화잇의 글에 좋은 말이 많이 있지만 거기에 오류가 섞여 있다면 그 것은 먹을 수 없는 과일입니다.
곽: 재림교는 2300주야 교리에서 ‘성소 정결’에 대한 용어 해석은 잘못되었을 수 있지만, 연대 계산만은 정확하다고 주장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반: 재림교회에선 다니엘 9장에 있는 70이레 예언의 기산점과 2300주야 예언의 기산점(B.C 457)을 동일하게 잡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9장의 70이레 예언은 유대인을 위한 예언입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이 예수님의 초림에 집중되어 있다면 2300주야 예언에서 말하는 성소 정결은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예언이며,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으로 복음이 이방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면 이 두 예언의 마치는 시점이 동일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곽: 재림교는 다니엘 8장 14절의 성소 정결을 레위기 16장의 속죄일과 연관시켜 심판으로 보는데, 불로 정결케 하고(민 31:23), 불이 심판의 도구(눅 17:29)로 사용된다면 정결이 심판이라는 논리도 성립되지 않을까요?
반: 그런 생각에서 유대인들은 성소 정결을 심판으로 보았다고 생각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속죄가 이루어져야 정결케 됩니다(레 12:8; 14:20; 16:30).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의인에게는 심판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잇 부인은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과 심지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 조사심판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 조사심판 상상도. 예수보다 계명을 앞세우는 것이 돋보임
사람들은 제가 조사심판이 없다고 말하는 줄 아는데, 제가 말하는 것은 조사와 심판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조사심판의 내용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성품이 변해야 하고 그것이 조사심판에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 재림교의 중추 교리이기 때문에 재림교는 예수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결을 심판으로 본다면 재림교는 유대교의 형제 교회입니다
곽: 다니엘 8장 14절의 성소 정결은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단 8:13)에 대한 대답이므로 이런 짓을 저지른 셋째 나라, 즉 초림 전 헬라 왕 중에서 성전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훼방한 안티오쿠스의 횡포가 언제까지 있을 것이냐를 묻는 질문같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 다니엘 8장 14절은 다니엘 8장 13절에 대한 대답임에 분명하지만, 천사가 ‘이 예언은 정한 때 끝(at the time of the end, KJV)에 관한 것’(단 8:17)이라 했고, ‘정한 때 끝’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단 8:19)라고 가르쳐주었으므로 진노하시는 때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아는 것이 다니엘 8장 14절을 푸는 열쇠입니다. 바울은 ‘진노하시던 때가 마친 후’에 대하여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람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렸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오신 때에 대하여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고 했고,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 4:4)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했고,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마 11:13)라고 하심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이 당신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과연 ‘정한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예언에 따라 2300주야 끝에 예수께서 오셔서 성소 되시는 자신을 깨끗케 함으로 구속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곽: 성경학자들 중에서 많은 분들은 2300주야 기간을 실제 2300일(6년 4개월 20일)로 봅니다. 즉 단8:9절의 ‘그 중의 한 뿔’을 알렉산더 사후 4분할된 왕조 중에서 셀류쿠스 왕조로, 또 거기서 난 ‘작은 뿔’을 그 왕조를 계승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B.C175~163)로 보고 그가 유대교를 잔인하게 박해하고 돼지 피로 성전을 모독한 기간, 그러자 마침내 마카비 전쟁을 통해 셀류쿠스 왕조를 축출하고 성전을 회복한 때, 역사적으로 환산하여 BC 170년 8월 5일부터 164년 12월 25일까지로 봅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 8장의 성소 정결 예언을 안티오쿠스에 의해 더럽혀진 물리적 성전이 회복된 것으로 봅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BC 164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된 것이 다니엘 8장이 말하는 성소 정결이라면, 그 사건이 구속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중요한 것은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수에 대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마 11:13)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죽음/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예언에 맞출 수 있어도 구속사에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없습니다.
곽: 예수께서 죽으사 피흘리심이 곧 성소 정결이라고 개념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려 할까요?
반: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니엘 8장 14정의 성소 정결은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단 8:19)입니다. 바울은 그 일을 ‘진노하심에서 구원’(롬 5:9)받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재미 있는 것은 다니엘 9장 24절의 ‘거룩하신 자’를 NAS, ESV 성경은 ‘the most holy place’ 로 번역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9장 25절에 의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메시야인데 이것을 성경 번역자들이 지성소로 번역해다는 것은 건물 성소를 그리스도로 본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곽: 아무리 예수님이 성소라 하더라도 자신이 자신을 정결케 했다는 것은 차짓하면 예수님이 죄를 지은 죄인인가? 하는 기독론 오류에 휘말릴 소지도 있어서 쉽게 이해되는 개념은 아닌 듯한데요?
반: 예수님이 침례 받으신 것이 죄 때문이 아니듯 그가 정결케 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떠 안으셔서 죄가 되셨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고후 5: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실 때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듯이(히 6:13) 예수님도 인간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더러워진 자신을 깨끗하게 하실 피로서 자신의 피보다 더 깨끗한 피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담당하신 인간의 죄를 자신의 피로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사실에 대하여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 하셨도다’(히 10:5)고 말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으로는 여기의 ‘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영어성경을 살펴보면 a body hast Thou prepared for Me.(KJ21) a body You have prepared for Me.(NKJ, NAS, MEV,TLV,Voice) You have made My body ready to give as a gift.(NLV)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돌아가실 한 몸이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것이 마땅’(히 5:3)하기 때문입니다.
곽: 동영상에서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단 8:25b)가 연상시키는 성경절이 창 3:15절이라고 하셨지요?
반: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는 말씀의 순서에 따라 어순을 바꾸면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나 여자의 후손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니엘 8장 25절을 원복음의 해석으로 본다면 다니엘 8장 14절에서 말하는 성소 정결이 이루어질 ‘정한 때’는 예수님의 초림을 가리킨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곽: 재림교는 7, 8장의 작은 뿔을 동일하게 모두 교황으로 보는데, 장로님께서 단 8:25b과 창 3:15절을 연계 시킨다면 단 8장의 작은 뿔을 교황도 아니고 안티오쿠스도 아니라는 말인데...
반: 작은 뿔이 이 땅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활약하든지 그 배후 세력은 사단입니다.
곽: 전술한대로 재림교는 다니엘 8장의 2300주야의 기산점을 9장에서 찾습니다. 즉 9장의 70이레의 예언의 기산점과 동일하게 보는데,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 재림교회에서는 다니엘 8장의 70이레 예언은 2300주예 예언의 시작점으로 봅니다. 그러나 2300주예 끝에 성소 정결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2300야 끝에 있을 성소 정결을 조사심판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성서적이 아닙니다. 성소 정결은 속죄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레 12:8; 14:19,20; 16:30) 심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을 위한 70이레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의 때를 예언하는 2300주야 예언이 마치는 때에 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이루어짐으로 복음이 이방으로 확산되니까요.
곽: 그렇다면 2300주야 예언의 시작점은 언제인가요?
반: 예수께서 십자가서 돌아가신 때로부터 2300년을 거슬러 가면 대강 노아의 때가 됩니다.
곽: 다니엘 8장의 2300주야를 2300년으로 보고 그 마치는 때를 예수께서 돌아가신 해로 설정하고 거슬러 올라가 기산점을 찾는 방식의 해석은 재림교 뿐 아니라 일반 신학계에서도 생소합니다. 이것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반: 과거에 어떤 신학자가 주장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구속사적 안목으로 본다면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종결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다니엘 8장 14절 해석의 실마리를 13절에서 찾으려 하는데 천사는 분명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단 8:17) 말하고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단 8:19)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바울은 ‘진노하시던 때가 마친 후’에 대하여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롬 5:9)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2300주야 예언은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년대를 계산할 것이 아니라 분명히 가르쳐주신 끝에서 시작해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곽: 예수께서 돌아가신 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기산점이 대략 BC 2270년경으로 노아 때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 기산점 주장은 억측과 비약이 심하다고 비판을 받을 만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 지금까지 다니엘과 창세기를 연관시켜 해석한 학자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성경은 마치 날줄과 씨줄이 엮여 짜여진 옷감처럼 66권의 책이 이리 저리 엮여 한 필의 옷감을 만드는데 옷감이 다 만들어진 뒤에 보이는 것은 구속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러니 모든 성경에 숨어 있는 구속이라는 그림의 조각들을 찾는 것이 성경 연구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 사건 외에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2300주야 예언이 마치는 때는 정한 때 끝에 있은 십자가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곽: 노아 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대예언이 시작되었다는 암시 즉, 2300주야의 기산점으로 삼을 만한 어떤 실마리가 있다고 보십니까?
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를 정하신 하나님께서 그 시작점에 대해 왜 말씀을 안 하셨겠습니까?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창 9:15 개정개역)고 하셨습니다. 물이 땅을 멸할 홍수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에서 영감을 얻은 베드로는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벧전 3:20-21)라고 했습니다. 물이 땅을 멸할 홍수는 되지 않지만 ‘물과 피’(요일 5:6)로 임하신 예수님이 인류의 구주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탄생에 대한 원대한 언약이 선포된 것입니다. 정확한 년대는 알 수 없지만, 노아에게 주신 언약이 2300주예 예언의 기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곽: 밀러주의 지도부가 성소 정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연구했으면 알 수 있는 것을 성소 정결이 심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잘못 가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반: 맞습니다. 대 실망을 경험한 무리들은 정결을 심판으로 보는 유대인의 생각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정결은 심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속죄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안다면 성소가 정결케 될 때가 예수께서 구속을 이루신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곽: 앞의 말을 다시 정리하자면, 다니엘 8장의 성소 정결 예언 2300주야 예언의 끝과 다니엘 9장의 유대인을 위한 70 이레 기간이 마치는 끝을 동일하게 AD31 년으로 맞춘 것은 재림교가 이 두 예언의 시작점을 동일하게 457년으로 맞춘 것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시작점이 아니라 끝을 같게 맞추어야 하는 이유가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을 예언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반: 정확하게 말하자면 끝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2300주야 예언의 성소 정결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취되고, 유대인을 위한 70이레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성취되기 때문에 두 예언의 끝이 자연스럽게 같다는 것입니다.
곽: 다니엘 9장의 70이레는 분명히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고 적혀있지만, 8장의 2300주야 예언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없는데 이 두 예언의 끝을 동일하게 설정하여 해석하는 근거가 무엇인지요?
반: 다니엘 8장 14절은 다니엘 8장 13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지만, 천사가 이 예언은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단 8:19)이라고 했으므로, 다니엘 8장 14절의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을’ 때는 진노하심을 마친 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심으로 구속을 이룬 때입니다.
곽: 재림 교회에선 ‘하늘 성소의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교리를 다른 교회와 공유하지 않는 특수 교리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반: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봉사를 말하는 것이 조사심판 교리인데, 조사심판에 대한 재림 교회의 목사들의 설명이 화잇의 설명과 다르다는 것이 그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교회가 재림 교의 성소 교리를 공유하지 않는 것은 연구를 안 하거나 몰라서가 아니라 성경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곽: 왜 같은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이 그렇게 다르게 보일까요?
반: 저는 인류가 타락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초기정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네들만 구원 얻을 선민으로 생각했고, 사람들도 그 생각에 동의하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은 구원의 선민이 아니라 초기정보를 잃어버린 모든 인류의 대표로 택함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곽: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초기 정보를 잃어버린 민족으로 선택하신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들은 초기 정보 즉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어버림으로 하나님과 저들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처럼 살아가는 민족이라는 의미입니까?
반: 맞습니다. 성품의 선악이 구원과 관계 있으리라는 생각은 인류 전체가 가진 공통된 생각인데 복음의 전달자로 선택받은 유대인들이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초기정보를 잃어버린 모든 인류의 대표로 택함을 입은 셈이라는 말입니다.
곽: 장로님께서는 ‘재림교의 딜레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말씀이신지요?
반: 네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화잇의 딜레마입니다.
1870년 7월 18일, 제1차 바티칸 공회에서 교황무류성을 교리로 선포한 후, 1895년 10월 서신에서 화잇 부인은 “무오설에 관하여 나는 결코 그것을 주장한 일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 절대로 오류가 없으시다”(가려뽑은 기별 1권 37쪽)고 공표했습니다. 그런데 1904년 10월 2일 베틀크릭 강연 중에 화잇 부인은 “다른 이들이 나를 여 선지자라고 불러왔으나 나는 결코 그 칭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내 사업은 이 이름이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 나는 내 자신을 주님의 백성들을 위한 기별을 그분께로부터 위탁받은 사자로 간주한다”(가려뽑은 기별 3권 74쪽)고 했습니다.
딜레마: 하나님의 사자는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화잇 부인이 사자라면 그는 '나의 말은 결코 오류가 없다'고 말해야 합나다' 그러나 화잇 부인은 자신은 무오설을 주장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자신의 말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아닙니다. 오류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요 오류가 없다고 하면 법왕과 같은 존재가 되는 이것이 화잇의 딜레마입니다.
2. 성화의 딜레마입니다.
<기본교리 28> 10장 설명판에서 “칭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일인 반면에 성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하시는 일이다. ... 그분은 우리의 성화와 구속을 단번에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화잇 부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과 일치한 품성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화이다."(대쟁투 469쪽)라고 했습니다.
딜레마: 기본 교리에서와 같이 성화를 하나님이 이루신다면 조사할 필요가 없고, 화잇 부인의 말과 같이 성품의 변화를 내가 이루어야 하면 행위가 됩니다. 인간이 그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이 성화의 딜레마입니다.
▲ 여전히 십계명이 구속력이 있다는 의미의 재림교 교리 그림. 구원 받고도 어기면 상실된다는 의미로서 십계명은 구원의 유지조건이다
3. 속죄의 딜레마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완전히 없이 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종적 속죄(final atonement)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 ... 사단은 죄의 창시자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의 원인이 된 모든 죄의 선동자였으므로 공의는 사단이 최종적 벌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사람의 구속과 우주를 죄에서 정결하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업은 하늘 성소에서 죄를 제거하고 마지막 형벌을 받게 될 사단에게 이 모든 죄를 돌리므로 끝나게 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357, 358쪽)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계 20:4)합니다. 그리고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계 20:7)납니다.
딜레마: 성경에 의하면 성도들이 구원받은 후에 사단이 죽습니다. 만일 사단이 죽어야 최종적 속죄가 이루어진다면 속죄가 이루어지기 전에 성도들이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속전을 치루기 전에 종이 놓임을 받는다는 뜻이니 이것이 안식일교회가 풀어야 할 속죄의 딜레마입니다.
4. 남은 자손 딜레마입니다.
유대인에게 선민 사상이 있듯이 안식일 교인들에게는 남은 자손 사상이 있습니다. 남은 자손의 근거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 12:17)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계 19:10)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하여 예언의신이 없으면 남은 자손이 아니라고 합니다. 남은 자손은 구원얻을 백성이니(롬 9:27) 성경만 인정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이것 역시 안식일 교회가 풀어야 할 딜레마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안식일이라고 생각하여 안식일 지키는 것을 남은 자의 표로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안식일 준수자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남은 자손의 표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나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자들이 하나님이 쉬셨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쉬는 날입니다. 안식일 교회가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 얻을 남은 자손이라고 믿는다면 안식일 준수는 율법 행위가 됩니다.
곽: 생각 있는 재림성도라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반: 2015년도 6월 30일자 재림 마을의 올라온 기사에 의하면 재림 교회는 빠르게 확장되는 교회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들어왔던 사람들 중에서 60%의 사람들이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들어왔던 사람이 나갈까요? 재림교회가 교세를 확장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예언 해석입니다. 특히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2300주야 예언에 할 말을 잃고 입교 하지만 들어와서 보면 결국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는 집단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전하시고 제자들이 전한 복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들어왔던 사람이 복음을 찾아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재림교회가 떳떳한 복음의 기관이 되려면 중추교리로 생각하는, 조사심판과 화잇의 권위를 교리에서 삭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재림교회는 기독교의 일원으로서 복음 전파의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 외에 인간의 글의 권위가 교리에 들어갔다는 것은 성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증명이 됩니다. 인간의 글에 권위를 주는 이 일은 기독교 어디에서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오직 가톨릭에서만 있는 일이지요.
곽: 감사합니다. 누가 참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하는 마지막 말씀에 감동이 있습니다. 하실 말씀이 많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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