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5:25
주님 사귀는 직책
1984. 4. 22. 주새
본문: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 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시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 가리라 하시니라
평소에도 늘 그러하지마는 특별히 이 주일을 우리가 맞이한 이 주일날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을 특별히 생각해야 할 날이요, 또. 사모도 해야 할 날이요, 평소에 깨닫지 못하던 바를 또 깨달아야 할 날이요, 또 평소보다 사모나 생각이나 또 깨달음이나 느낌이 더 새로워지고 또 성장되어지고 점점 커져야 할 날입니다. 이렇게 주님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받은 내속이나 또 앞으로 받을 구속이나 또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소망된 이 모든 소망에 대해서 더 강하게 크게 깊이 깨달아야 되고 이 깨달은 마음을 가지고 오늘 주일을 맞이해야 되고, 또 이 주일날 이 깨달음을 더 새롭게 해서 과거에 모르던 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감화로써 더 개달아 겨야 되겠고. 더 이 면으로 우리가 성장해야 될 날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신 것을 평일보다도 더 실감으로 느끼고 또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 유일한 그 일을 우리가 다른 날보다도 힘써 해야 될 날입니다.
그저 우리가 짐을 짊어지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을 준다는 것은 그것은 쉽습니다. 쌀 한 말 짊어졌으면 한 말 짊어진 것 만치 힘을 쓰는 것은 저절로 써지게 되고, 또 자기가 힘이 세서 쌀 닷 말을 짊어졌으면 닷 말 짊어진 그 힘을 신는 것은 필연적으로 써 집니다. 고만 지고 일어서면은 그만침 힘을 써야 걸어갈 수 있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에 힘을 써집니다. 그러나 쌀을 짊어지지 안하고 한 말 짊어진 그 힘을 쓴다는 것은 그것은 참 어렵습니다. 쌀은 안 짊어지고 빈 몸인데 쌀 짊어진 것같이 그렇게 힘을 준다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또 자기가 암만 힘을 준다고 해도 쌀 한 말도 안 짊어지고 쌀 닷 말을 짊어진 것 만침 자기는 힘을 쓴다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구속을 실지로 깨닫는 이 일에 힘이 쥐어지고, 또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힘이 쥐어쥐고 주님이 날 사랑하심과 같이 내가 실제로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을 사랑하는 곧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대로의 나도 형제를 사랑하는 이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 일을 할 수 있는 실지의 직책을 우리가 맡아 가지고 일하는 것은 아주 하기 쉬운 일이요, 실상으로서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짐을 안지고 힘쓰는 것보다 짐을 지고 힘쓰는 것이 쉽다는 그 이치와 꼭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그만한 지위에 있지 안하고 그 지위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일을 관심 가지고 힘쓰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아무것이라도 자기가 그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안하고 배후에 있으면서 자기는 책임을 안졌지마는 책임을 진 사람과 같이 그렇게 마음이나 힘이나 기울인다는 것은 말뿐이지 실상은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이 지위를 가지게 되면 그 지위를 감당 하는 일을 하게 되고, 또 일을 실지로 맡아서 하게 되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부족하지마는 자기가 감당 못할 만한 그런 높은 지위나 책임이나 중한 짐을 지면 처음에는 그 사람이 아주 감당 못할 사람이지마는 얼마 안 가서 그 일을 감당할 그런 실력자가 됩니다. 처음에는 대통령 된 사람도 아주 부족하지만 얼마 안가서 대통령을 할 만한 참 그런 실력 가진 자가 되고, 이 조그만한 데서도, 동장 같은 이런 동장도 처음에 동장을 책임질 때는 동장 할만한 실력이 없어서 그걸 바로 하지 못하지마는 얼마 안 가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짐을 지고 힘을 쓰는 것은 힘이 쓰이지마는 짐을 안지고 힘을 쓴다는 것은 말뿐이지. 그거는 논리뿐이지 실상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예비해 놓은 그 나라를 너희들이 유업으로 받아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그 이유는 '너희들이 나룰 대접했다' 이랬습니다. '나를 대접했다.' 왼편에 있는 사람에게 '너희들은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예비된 영영한 불을 받아라. 벌을 받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벌 받을 이유는 '너희들이 나를 대접하지 안했다.' 대접한 것을 여기서 낱낱이 말했고, 또 대접하지 안한 것을 낱낱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 대접하는 것은 양면입니다.
우리 사람은 영으로 된 사람이요, 또 육으로 된 사람입니다. 영으로 된 사람에게는 영으로 대접을 해야 될 것이고, 육으로 된 사람에게는 육으로 대접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영의 대접 육의 대접 그 대접이 둘이 있는데, 우리는 영의 대접으로서만 치우쳐도 안되겠고 또 육의 대접으로 만 치우쳐도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면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것을 영의 대접으로 우리가 치우치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왜? 사람 들이 점점 외식해서 하나님의 교회 전체를 두고 말한다고 하면 육을 대접 하는 육을 대접하는 일에 모두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육을 대접하는 일을 주력하고 있고 영을 대접하는 일을 아주 등한히 하고 있는 것이 현시대의 교회들입니다.
○○교는 영에 대한 대접이라 하는 것은 그들은 별로이 모른다고 할 만침 그렇게 아주 등한히 하고 육을 대접하는 대접으로 아주 치우쳐졌습니다.
그러니까, 또 우리는 영을 대접하는 일로 치우친다고 해도, 교회 전체로 말하면 반이 모두 육을 대접하는 일로 다 치우쳤으면. 영의 대접 안 하면 우리는 영의 대접만을 다 해도 그 반반이 전 교회로 말하면 - 교회는 하나뿐인데 - 교회로 말하면 그것이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영을 대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영을 대접하는 것이냐? 그 사람의 심령 문제를 대접하는 것이 영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심령 문제. 배고픈 것도 심령이 배고픈 것도 있고 육신이 배고픈 것도 있고, 또 심령이 자유 못하고 갇혀 있는 것도 있고 또 몸이 자유 못하고 갇혀 있는 것도 있고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은 몸이 자유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이고, 그 심령이 사죄의 생활을 자유로 하지 못하고, 칭의의 생활을 자유하지 못하고 주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동행의 생활을 자유하지 못하고 이렇게, 원하기는 죄 없이 살라고 의롭게 살라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려고 원하기는 원하지마는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죄를 범하고 불의하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하는 것은 그것은 다 감옥에 갇혀서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심령이 자기 욕심이라는 사욕의 감옥에 갇혀서 그렇고 심령이. 또 자기 주관이라는 그 주관 감옥에 갇혀서 그렇고 또 그것이 감정 감옥에 갇혀서 그렇고, 그런 것이 뭐 물욕이나 정욕이나 온갖 정욕에 갇혀 가지고 그런 것도 있고, 게을하다가 고만 갇힌 것도 있고 뭐 별별게 있다 말이오. 갇힌 것.
또 나그네 된 것. 나그네 된 것은 육신으로 나그네 된. 사람도 있지마는 서도 육신으로서는 뭐 나그네 된 사랑을 별로 못 만날 것입니다. 다 모두 이웃에 살면 부산 사람이 부산에 살지, 대개 보면 부산에 살던 사람이 저 객지에 가서 딴 데 가서 사는 사람들 없는데 그 심령으로 나그네 된 사람, 우리는 전부 심령으로는 다 나그네 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이 우리 본향이 아니고 우리 영주처가 아니고 우리는 모두 다 이 세상에서 무궁세계로 갈 여관에 잠깐 유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관에 잠깐 유숙하고 있는 사람이요 이 세상이 우리 영주처가 아닌데, 이 나그네 된 사람이 나그네 생활을 모르고, 깜박 모르고 지금 하고 있다 말이오. 나그네 생활을 방문할 때에는, '이 나그네 생활이 얼마나 곤고합니까? 나그네 생활에 혹 어려움이나 없습니까? 또 지금 내일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이 모든 이런 계획, 나그네를 돕는 일, 나그네를, 나그네를 돕는 일 그 일을 하는 것은, 육으로 하는 것보다 영으로 할 것은 우리가 날마다 시간마다 할 수 있지마는 육의 나그네 된 사람은 아마 뭐 평생 만나 볼라 해야 몇 못 만나 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육적보다 영적 면이 더 우리에게 강합니다.
'병들었을 때' 물론, 그러니까, ○○교는 병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힘을 써서 모두 병원을 차려 놓으면은 거기에 병원에 와 가지고 아따 그 옷 입고 있는 부인들이 뭐이지? 예? 수녀, 수녀. 그래, 수녀들을 병원마다 파송을 합니다.
수녀들을 병원마다 파송을 해서 수녀들이 일하는 것은 대개는 병원에 가서 일하고 그런 봉사 일합니다. 이거 심령이 병들었으니 이 심령을 치료하는 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야 치료할 수가 있고, 또 성신의 감화라야 치료할 수가 있고, 기도라야 치료할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은, 지금은 기도가 있습니다마는 ○○교는 기도는 없습니다. 기도를 못하게 했었습니다. 주문만 읽지 기도를 못 하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심령의 병든 사람을 방문하는 것은 그 죄 병, 자기 사욕 병. 사욕 병도 병이요, 죄 병도 병이요, 의심 병도 병이요, 낙망 병도 병이요, 원망 병도 병이요 불평 병도 병이요, 불만 병도 병이요, 원통함을 기억하는 그것도 원통병이요 모두 다 병들었는데 이 병든 자를 방문하는 것. 테레비병이 들었고, 동무들의 유명병이 들었고, 장난 병이 들었고, 뭐 모두 다 심령 병이 든게 많다 말이오. 그러면 이 병든 이런 것을 우리가 방문하는 그런 영면이 더 일거리가 뭐 몇 천 배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도록 이런 직책을 주님이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주일날 아침에는 보면 남녀반 새벽 기도 나오는 분들이 적습니다. 작은 것은.
물론 요 부근에 있지 아니한 반사들은 고만 그 자리서 심방을 갈라고 이래 오는 것 좀 덜 온 것도 있지마는, 또 '주일날 새벽에는 반사들이 모여 가지고 심방 갈 준비를 하는 예배이니까 나는 반사가 아니니까 참석 안 해도 된다' 이래 가지고 아마 안 오는 사람들도 다소의 그 숫자에 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벗었을 때에 옷을 입힌다.' 그러면, 벗은 것은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벗은 사람은 뭐 육신의 옷 벗은 사람은, 육신의 옷 벗은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이제 나도 좀 새 옷을 입어야 되겠다' 하고 옷 입던 옷 다 생생한 것인데 뉘를 줄라고 암만 생각해야 '줘서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노?' 이래 그래 고만 다 내던져 버렸소.
이러니까 오층에 일하는 분들이 고만 전부 농 안에 다 재 놓고 있읍디다.
'이래도 또 인제 목사님은 다 내던지고도 또 찾을 때 있다' 이라시면서.
참 이 옷 벗은 사람 없어요. 옷을 못 입고 다니는 사람 없습니다. 보면 외나 참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었다, '저 사람이 가난한 사람인데 좋은 옷 입었다' 보기 좋은 옷 입은 것은 전부 싼 옷이오. 또 이제 '옷을 저런 옷을 입고 다니나?' 하고서 보기 험한 옷은 전부 값 비싼 옷이오. 이러니까 요새는 어짜든지 그 재료나 비싼 것 재료 들여서 보기 어떻든지 돈만 많으면 좋은 옷이라 이렇지 참 좋은 옷, 보기 좋고 질기고 든든한 그런 옷은 모두 천한 옷으로 여겨. 그건 전부 가난한 사람들이 다 입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눈은, 좋은 옷을 보는 우리 눈과 돈 잘 쓰는 부자들 그 사람들이 보는 좋은 옷과 옷이 달라요. 그 사람들이 보는 것은 '아, 저거는 얼마짜리다. 얼마짜리다.' 그 사람들은 값을 가지고서 돈 많으면 좋은 옷으로 이래 따지고, 우리는 고만 그걸 모르니까 보기 좋고, 수수하고, 또 빛깔도 아름답고 이런 것은 좋아요.
그러니까 요새는 뭐 옷 벗은 사람이 없어. 어데 옷 벗고 사는 사람이 없어.
과거에는 참 그놈 손으로 가지고서 전부 만들어 가지고 입을라 하니까 거석했지만 요새는 옷이 안 떨어져. 나이론 옷 같은 그런 거는 사 입어 놓으면 암만 입어야 장 그대로인데. 그래 뭣한 옷은 한 벌만 하면 뭐 평생 입을 수 있겠어요. 젊은 사람들은 안되겠지마는 우리는 옷을 봐야 이거는 죽을 때까지 다 못 떨운다, 못 떨운다 하는 그런 옷이 많아. 이러니까. 육신에 벗은 것은 우리나라는 지금 벌써 시기가 지나가서 부강해져서 육신의 벗은 일은 없는데.
육신의 옷을 잘 입을수록이 심령이 벗어서 참 그런 가련한 사람, 벌거벗고 지금 있는 그런 사람 된다 말이오.
그러면, 벌거벗은 것은,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신 횐 옷은 무슨 옷인가? 횐 옷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말합니다, 대속의 공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을 입은 것이 그것 이 횐 옷입니다.
대속을 입어야 심판에서도 수치를 당하지 안하고, 세상에서도 대속을 입으면 그 사람이 수치 안 당합니다. 사죄를 입어서 '죽어도 죄 짓지 않는다. 죽어도, 내가 굶어 죽어도 어떻게 해도, 내가 사형을 받아도 의를 내놓지 않는다.' 의를 입고, 사죄를 입고, 하나님과 동행을 입으면 그 사람이 수치당할 리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참 존영한 사람이 돼지지요. 이러니까 심령적으로. 심령적으로 벗은 사람들이 많아.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주님이 이 일을 하라고 직책을 맡겼으니까 일하기 좋습니다. 또 우리에게 이런 모든 권세를 직책을 줘서 이런 권세를 허서 주님을 방문하고 주님을 대접할 수 있는, 소자 하나에게 대접하는 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니까 주님을 대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고, 또 그렇게 대접할 수 있도록 그런 권세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우리가 한 형제 한 형제를 방문할 때에 '이 형제에게 나는, 이 굶어 있는. 이 심령에 굶주린 것을 채워 줘야 되겠다. 또 이 형제가 나그네 된 것을 잊어버리고 지금 어리석게, 내일 떠날지 오늘 떠날지 모르는 나그네 된 것을 모르고 있는 이 사람에게 나그네 된 것을 깊이 인식하고 나그네 생활을 위로하고 나그네 생활을 좀 잘 하도록 권유를 해야 되겠다.' 벗은 자에게 입혀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셔 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여 주고, 병든 자에게 지금 내가 치료해 주고 이렇게 대접을 이렇게 하도록 할 그런 일을 실지로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만났고 또 이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지금 주님 앞에 주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지금 마련하는 것이. 이날 아침에 반사 선생님 들이나 권찰님들이 지금 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이런 기회인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이 뭐인데? 그때 정직해라 진실해라 그런 것 다 계명을 다 지켜야 되겠지마는 특별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내 계명 지키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 하시기를 '너희들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사랑하였으니 우리를 사랑하였으니 곧 독생자를 보내 가지고서 죄 가운데서 우리를 구출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계명은 형제 구원하는 것이 그것이 주의 계명 지키는 것이니까 오늘 아침에 이거 전부 형제 구원하는 일에 아주 도매를 했소.'형제를 구원하는 이 일만 전무를 하고 전력을 하도록, 전업을 하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고 우리에게 직책을 맡겼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서 형제에 대해서 하는 그것이 막바로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해 주도록 만드는 요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일해야 될 것입니다. 내가 그 형제에게 지금 등한히 하는 것이 주님이 나에게 등한히 하게 하는 것이고 내가 그 형제에게 간절하게 하는 것이 주님이 나에게 간절케 하는 것이고, 내가 그 형제에게 무심하게 그렇게 예사롭게 무심하게 하는 것이 막바로 주님이 나에게 무심하게 하는 것이오. 내가 그 형제를 책임지는 그것이 주님이 나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라 말이오. 내가 형제에게 대접하는 그것이 주님이 내게 대접하게 하는 그것을 '네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는 고것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그런 줄 알고 오늘 우리는 일해야 되겠습니다.
다른 날도 하지마는 특별히 이 주님의 날은 특수한 날이요, 또 우리가 일반 무슨 사장 노릇하는 것도 다 그런 것을 하는 것이요, 장관 노릇하는 것도 대통령도 그런 일 하는 것이지마는 우리가 주일학교 반사 노릇하는 것은 특별히 그일 하는 것이요, 교역자 목회자 하는 것은 특별히 그 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직책을 특별히 맡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서는 아무리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다른 면으로 잘 해서 교회 안에서 성직을 높은 성직을 맡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주일학교 반사든지, 권찰 일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분교를 자기가 맡아 가지고서 책임자로 하는 일이든지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신앙이 어린 사람으로 그래 보고 자기 구원을 이루는 일에 신속한 효력 있는 그런, 이루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이래 인정하기 때문에, 장로님이라 해도 '장로님이 이제 차차 장성했거든 주일학교 반사에 입학을 하십시오.' 그랍니다. 이래서 장로님들이 지금 반사될라고 애를 쓰고, 또 교통 지도위원들이 거기에서 잘해서 졸업을 맞고.
교통지도위원으로 가책 없이 할 때에 능력을 받아 가지고서 반사 노릇을 해야 되지 '아이구 이거 뭐 지도위원은 이거는 반사만 못하니까' 하고서 그것 못 하는 사람은 그 다음에 위에 것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도 주시지 안하고, 할라면 하라 하지마는 서도 나도 고래요. 아마 주일학교 책임자도 그럴 것입니다.'아이구 그 사람 교통 지도위원 하는 것 보니까 반사 노릇 못 하겠더라.' 그게 판정된다 그거요. 아 그 사람이 동회 동장 노릇을 잘 하면 잘 하는 그것이 앞으로 구청장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아, 그 사람 동장 노릇하는 것 보니까.' 우리 여기 ○○○장로님, 여기 구청장 했는데 구청장에서 시 총무국재으로 그렇게 뛰어 올라가는 일은, 총무과장으로 뛰어 올라가는 그런 일은 별로이 좀 어렵습니다. 이런데, '그 구청장 하던 사람이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 그 사람이 어짜든지 열심히 해서 일을 자기 일을 감당 하니까 한번 시켜 보자. 한번 시켜 보자' 이래 가지고서 그 총무과장을 시켰대요. 뭐 입니까? 총무과장입니까? 국장입니까? 뭡니까? 과장이제? 예? 내무국장이가? 내무국장.
내무국장 자리 올라가기가 어려운데 그래 구청창 노릇을 하면서 흠 없이 잘했기 때문에 '해 보자.' 그런데 고게 된 것이 뭐이 하나 있는데 본인이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 그걸 몰라. 내가 언제 조용히 만나면은 말하지마는 하나 된게 있어. 왜? 어제 주일 지키다가 야단이 났다 말이오. 그날 홍수가 났는데 주일 지키다가서 아, 다른 사람 내두고 주일지킨다고 책임자가 가고 없어지고 이랬다고서 여기서 송사자들이 송사를 해서 그것이 내무부 장관한테 올라 가 가지고서 그게 야단이 났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이거는 뭐 다 사면 시켜야 된다고 야단이 났는데 나중에 보니까 주일을 지키느라고 그랬고, 주일 지키니까 그 모든 일을 다 미리 사전에 다 짜서 해서 그렇게 일을 다 방비를 잘 하고 주일 지키러 갔는데, 이라니까. 아마 위에 사람 그것도 있을 거라. 주님이 그것도 그렇게 해 줬고, 사람들도 생각할 때에 요 사람이 주일을 그렇게 지킬라고 신앙에 대해서 독실하니까 양심 속일 사람은 아니라 그말이오. 위에서 들을 때에 그 신앙으로 치우치니까, '양심 속일 사람은. 아니니까 고 사람을 고 자리에 좀 세울 수 있겠다' 하는 그것이 원인이 됐는지도 몰라. 주를 위해서 한 것이 마지막에 보면 전부 자기 위해서 된 일이 되는 것이 그것인 것입니다.
과거에도 밀양 군수로 있을 때에 그때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래 하는데 고만 신앙 지킨다고 고만 혼이 났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뭐 그때 가서는 뭐 도무지 회복할 길이 없어. 고만 국회의원들이 짜 가지고 막 이래 하기 때문에 이거는 뭐 장관도 소용없고 이거는 도무지 할 길이 없어. 그래 가지고 완전히 면직을 당하기로 딱 됐는데, 그래 놓으니까 그 내외분이 왔소'. 와 가지고서 '어째야 되겠습니까?? ' 내가 네 가지를 딱 말했소. '요 네 가지만 지켜라. 네 가지만 지키면서 거기에서 쫓겨 나오면 쫓겨 나오는 것이 더 좋고, 또 안 쫓기 나오는게 좋으면 요 네 가지만 지키면 안 쫓겨 나올 테니까 네 가지만 지켜.' 네 가지 지키는 것은 그때 그 불을 막는게 아니라 불을 일어나도록 하는 겁니다. 더 신앙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녜, 그래 하겠습니다.' 내가 또 한 이틀 뒤에 '그래 합니까?' 따져 '그거 돼야지, 안 하면 회복 못합니다.' '그래 하고 있습니다.' 이랬디마는 떨어지기는커녕 그때 그 기회를 하나님이 심리를 딱 작용을 하니까 '이 사람은 이 자리는 둬서는 안 되겠다.' 고만 그때 내무부로 올라가 버렸다 말이오. 쑥 올라 갔소. 그랬지요? 예? ○○권사, 안 그랬소 ○○○권사님 안 그랬소? 그랬지? 내무부로 올라가 버렸다 말히오. 쑥 올라가 버렸어. 조금 인제 체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맡은 일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암만 훌륭해도 주일학교 반사 안하면 지금 안돼. 이러기 때문에. ○장로님이 뭐 다른 데 애를 쓰요. 암만 뭐, 내무국장이라 하는데 내무국장이라도 반사 노릇 해야 돼. 반사 노릇. 아 카터 대통령도 하는데 못할게 뭐 있는가? 그것 좀 권하라고요. 반사 노릇 해서 그래도 떡 주일 날 '아, 내가반 사인데 내가 일찍 가 가지고 좀 해야 되겠다.' 이 마음만 가져도 영 다릅니다. '아 사무가 바빠서' 요새는 공무원들이 일이 참 복잡하고 바빠요. 그러니까 열 두시 안에는 못 잔대'요. 바쁘지마는 '오늘 주일이니까, 반사니까 그거 다 쉬어야 되겠다. 오늘 아침에는 가 가지고 반사 노릇 해야지.' 거기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권능을 받고 또 피곤을 확확 풀 수가 있고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가서 돌아다니면서 부산시 내무국장이 지금 저 골목에 돌아다니면서. 거지 모양으로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지금 주일학교 학생 인도한다 하면 그게 하늘에 가서는 나중에 주님 앞에 가 가지고 얼마나 상이 뭐. 그 내무국장하는 거 몇 해 하는 것을 하루아침에 다 그 상급을 장만할 수가 있을 거라 그말이오. 이렇게 영광된 직입니다. 이런데 우리 장로님들 '내가 장로님이 돼 가지고서 주일학교 반사 노릇을 해?' 해서 점잖은 사람들 많아. 눈도 없는 모양이라. 귀도 없고. ○○○ 목사님은 목사님인데, 목사님이요, 교학실장이요.
양성원 교학실장이요 이런데 지금 주일학교 반사입니다. 여기 보조 반사하다가 원반사 됐지. 원반사 한 지가 몇 해나 됐습니까? 이 년 됐습니까? 이 년 됐는데 뭐 몇 등합니까? 삼등합니까? 삼등은 이제 한대요. 삼등. 일등은 어림도 없고 삼등 한대요.
이러니까 우리가 가치를 어데 두느냐? 가치를 어데다 두느냐? 가치를 주님과 나와에 어찌 되느냐 거기에 가치를 둬야 됩니다. 주님과 나와에 가치를. 뭐 이 대통령과 나와의 관계가 어찌 되느냐? 그 가치도 가치 있지마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창조주시요 주권자신데 그분과 나와의 관계가 어찌 되느냐? 그분과 나와의 관계가 차차 올라가면 좋게 되는 것이고 밀접하면 좋게 되는 것이고, 그분이 점점 나를 더 신임하게 되면 좋게 되는 것이고 그분이 나를 대우하게 되면 더 좋게 되는 것 이지요. 그 외에는 좋아 봤자 또 그것은 참 꿈같이 지나가는 것이지 별로이 없어요. 이러니까 가치를 거기에 둬야 되니까, 거기에 두면 오늘 아침에 반사들이 제일일 거라. 누가 주님이 원하고 원하시는 그 일을 일어나서 아침에 오늘 아침에 뛰어 돌아다닐 사람이 누가 있어? 이런 걸음이나 이런 심정이나 이런 마음을 일생 동안 한 번도 못 가져본 목사도 있고 장로 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사는 설교나 하지 그렇게 뛰어 돌아다니는 그런 심정을 가지지 못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또 안 가고 가만히 있어도 그 심정을 가질 수가 또 있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복된 기회도 만났고, 복된 위치에도 있고, 또 복된 전공 전업을 주님에게서 맡기워 주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요 깨닫고 집집마다 가면서 요것이 주님 대접하는 건 줄 알고, 주님이 나와 동행 하니까, '요 말 하면 주님이 기뻐하실까?'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람을 만나서 권면할 때도 주님 없이 그 사람 단 둘이 만나는게 아니고, 주님 앞에서 만나기 때문에 요 말을 하면은, 주님이 기뻐하실 말만 그 사람에게 합니다. '요 말을 하면 주님이 참 기뻐하실 것이다.' '요럴 때에 요럴 때에 내가 분개하지마는 요럴 때 내가 요것을 주님이 날 사랑하신 것을 생각하고 내가 참으면서 요것 이해하고 관용을 하고 요럴 때에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주님의 안면을 보면서 주님이 기뻐하실 말을 하려고 애를 쓰고, 주님이 기뻐하실 마음을 가질라고 애를 쓰고, 주 넘이 기뻐하실 태도를 가질라고 애를 쓰고 이렇게 주님을 보면서, 주님이 기뻐해서 바로 그 사람에게 대하면서 주님을 보면서 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요, 오늘 아침에 그런 일이 되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주님을 모 시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 대접하는 것이 바로 그 아이 대접하는 것이요 아이 대접하는 것이 주님 대접하는 것인 것을 성경에 말씀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알고 우리가 일을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열 시까지 기도하러 온 장로님들은 여섯 분입니다. 이렇게, 이제 하나님이 높은 지위를 만드는 장로님을 만드는 것은 '네가 장로가 돼 가지고 너 하나 움직이면 너를 본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게 된다.' 등 되라고 했는데. 등 되라고. 뭐이든지 지위일수록이 '아이구, 그이가 그라는 것 보니까.'이것 좀 볼라고 주님이 이렇게 높이 올려놓으니까 높이 올려놓은 그것의 종만 되지 도무지 빛의 노릇을, 등대 노릇을 하지 못하니 기가 차다 그말이오. 거지를 부자를 사장을 만들어서 ○○○ 사장 같은 그렇게 재벌가 사장을 만들어 놓으니까 '아이구야 사장 그 사람 새벽 기도 꼭 나오더라.' 그거 하나 나오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서 따라오도록 이라기 위해서 이거 올려놓으니까 이게 되니까 사장이 되니까 그걸 엉뚱한 짓 하고 있다 그말이오 얼마나 미련합니까? 영감이 없어 그래, 영감이 없어요! 우리 장로님들 주일학교 반사 노릇 못 하는 것 다 영감이 없어서 그래.
영감이 있으면 안 그래요, 영감이 있으면. '아, 장로님들이 반사 노릇 하더라.' 반사 노릇 해서 천해지면 천해지면 누구 위해서 천해진 것입니까? 저 한번 대답해 봐요. 누구 위해서 천해진 것입니까? ○○○ 장로님, 주님 위해 천해지면 무슨 교제가 되지? 주님 위해서 천해지면 무슨 교제가 되지? 주님 나 위해서 천해진 그 주님과 사랑의 교제가 되지 사랑의 교제가. 그게 얼마나, 돈 주고 사겠소? 만유의 주재하고 이와 같이, 돼지는 이 관계가 돈 주고 못 사. 이런 귀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사람들 이 영감이 없어서 깨닫지 못해서 그래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