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뜻에 명중한- 죄 찾는 법

 

1983. 4. 15. 금야

 

본문 : 누가복음 15장 3절∼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기에 잃어버린 양은 죄 가운데 빠진 자를 비유했고 또 잃은 양을 찾은 것은  죄인이 회개한 것을 비유했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드라크마에  대해서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게 죄인 하나 회개한다는 이 회개를 어떤 것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을 저 지난 수요일인가 언제도 제가 한 시간 사십 분인가  계속해서 그 말씀을 계속 해석을 했고 그 뒤에도 늘 증거 했지마는 사람들이  자기 주관대로 하는 그것이 들어서 성경을 바로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죄인 하나 회개하면" 하는 죄인 하나에 대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기 시작하는 거기 대한 비유요 말씀이라 그렇게 해석을 하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나와 믿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은 해당이 없는 말씀이  되겠고, 여게 한 죄인이라는 이 죄인이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되는 것도  거기에 속한 것이지마는 이 말씀이 주로 교훈 하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교훈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은 7절에 보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 그러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에게 대한 이 회개가 이 말씀이 아닙니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는 이  말씀은 회개할 것 없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은 상관이 없습니다. 회개할 것이  있는 사람에게만 관한 말씀인 것을 척 게서 판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아무나따나 제 맘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그러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에게 대해서는 말씀하신 말씀이 아니고 회개할 것이  있는 죄인에게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확고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에 회개에 대한 말씀이 심히 많습니다. 그 많은  회개를 권하고, 회개를 재촉하고, 회개 아니하는데 대해서 노여워하시고 이렇게  하는 회개는 전부 믿는 자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이지 예수님을 모르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하신 말씀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비유에서 큰 능력을 입고 못 입는 것, 중요한 그 중요한 것을  자기가 잡고 못 잡는 것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 사람을 인한 것보다 기뻐한다' 하는 요 한 죄인 이것을 이렇게 보느냐  저렇게 보느냐 하는 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만큼 성경 해석은 마귀도 성경 가지고 해석해서 말했고 성령도 말했습니다.

이만치 생사가 좌우되는 중요한 것이 성경 말씀을 바로 깨닫고 깨닫지 못한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회개할 것 있는 죄인들에게 한 말씀이라는 것, 회개할 것  없는 의인들에게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 회개할 것이 있는 죄 인들에게 대한  말씀인 것을 확정 지워야 우리가 여게서 복음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 비유에 목자든지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이든지 다 전심 전력 근심  걱정 소원은 어데 집중돼 있느냐? 잃어버린 것 그것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전 소원은 거기 있습니다. 또  찾으니까 모든 기쁨보다 하늘에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유일한 기쁨이 됐습니다.

 우리에게는 택한 자라면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하나님과 성령님과 천군 천사와  모든 선지 사도들의 예언과 기도 그 전부의 총력은 심히  큰 능력인데, 심히 큰 능력인데, 지극히 큰 능력이요 사랑인데 그것은 택자라면  죽기 전 세상에 있을 때에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지극히 큰 이 사랑과 능력과  하나님의 소원과 열심히 그 사람 어느 모퉁이인가, 어느 구석인가, 어덴가  총력은 집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할 것 없는 사람은 땅위에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요 미혹된 인본적인 해석을 버리고 성경을 근거하는 요  해석으로 여게 잃어버린 양을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그 드라크마와 잃어버린  양은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의 양이 되지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이렇게 나뉘어 있는, 성령과 나뉘어 있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그 회개할 것이 우리 택한 자들은 누구에게든지 있다.

그게 있다.

 그것은 하늘에서 제일 소원하시는 것이요, 제일 근심하시는 것이요, 제일  주력하고 있는 그것이 내게 있다. 우리 각자에게는 다 이것이 있다 하나님이  전심 전력을 내게 기울이고 있는 그 점이 있다. 모든 선지 사도들의 그 기도의  전부의 힘이 기울이고 있는 그것이 내게 있다.

 내게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아무 가치 없다고 보여지는 내게  전심 전력 근심 걱정 다 기울여서 소원하고 계시는 것이 내게 하나 있다. 그게  뭐이냐? 주의 피로 값주고 산 나에게 그것이 신앙의 암이다. 그것이 내 구원의  암이다. 암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은 지금도 죽으신 그 힘과 같은 그  사랑과 간절과 소원과 열심을 가지고 내게 지금 당신이 착수하셔 가지고 전부를  다 집중시켜 가지고 근심 걱정 소원 노력하고 계시는 그것이 내게 있다 하는  요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 능력이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이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고요히 명상해서 여게서  능력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성경을 가지고 깨달으면서 내게 대한 주님은 이러한 주님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능력이 오고, 평강이 오고, 기쁨이 오고, 담대가 오고, 감사가  오고, 구원의 능력이 역사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이신 주님이신 생각지 않고 성경 말씀만  제가 아무리 생각하고 분해해도 소용없습니다. 또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은  내게 대해서 이런 하나님이라 이 일을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라, 이런 관계를  이런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주님이 시라.'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그때에  우리는 진리의 힘이 우 리에게 오고, 영감의 힘이 우리에게 오고, 하나님은 그  힘을 통해서 역사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밤에도 이 말씀을 다시 증거 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늘에 있는 그 전부가 내 보기에도 천하고 다른 사람 보기에도 천하고  몇닢푼치 안되는 가치 없는 인간이지마는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여 소원하고 계시는 당신의 소원이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이 내게 있고, 수십 억도 홍수로 싹 멸하고도 눈 질끈 감고 도무지  후회 안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죄인 나에게 이 하나님의 전 근심 걱정거리가 내게  있다. 전 소원하시는 소원이 내게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전부를 기울이고 움직여  전심 전력이 내가 몰라 그렇지 내게 와서 지금 역사하고 계신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그렇게 전심 전력 기울이니까 큰 일이요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못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우리 각자는 하나님을 제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제일 반가워하시게 할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근심 걱정이  있는 반면에 그 일이 잘되면 제일 기쁨과 평강이 될 것이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  그 일을 하시려고 애를 쓰는데 그 일이 이루어지면 이루어 놓은 거기에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이고 기울여서 당신이 안보 하시고 보배롭게 간수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하나님이 참 크게 중하게 이렇게  여기시는 이 중대한 것이 내게 있다 하는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그 사실  그것으로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지 그것 아니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심 전력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전 소원과 근심이 이것에게 있는데, 이것에게 있는데 여게 대해서 요걸 깨닫고  같이 근심하고 걱정하고 저도 소원하고 노력하고 '나 같은 이 더러운 죄인에게  주님이 이와 같이하시니' 자기가 하나님의 근심함에 감격해서 자기도 같이  근심하고, 하나님이 원하심에 같이 원하고, 하나님이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전심  전력을 기울이심에 따라서 자기도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이리하여 그 일이 해결됨으로 하나님도 참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비교 없는  기쁨과 만족이 되시고 나도 기쁨과 만족이 되는 이것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시는데 저는 이것을 버려두고 엉뚱한 걸 가지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요것 소원하시지. 주여 이것 어떻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것  때문에 근심하시지. 어떻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근심하시고 계시는  요것을 찾아 잡기 전에는 하나님에게 기쁨도 위로도 소원도 상관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무엘상 l5장에 보면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대해서 근심하시고 또 너무  섭섭해서 사무엘에게 대해서도 말씀하시고 이랬는데 사무엘이 근심되어서 사울을  찾아가니까 갈멜산에 가서 자기 명예 비석을 공로 비석을 해 세우고 내려오면서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우리 하나님에게 큰 축복을 받으시옵소서. 왜? 내가  하나님의 원하시고 명하시는 것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나로 인해서 이제 사무엘  선생님이 큰 칭찬과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에 사무엘이 너무 기막혀서 '그러면 내게 지금 들려오는 이 모든 소리가  무슨 소리냐?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들어라. 하나님은 너에게 진노해서 너를 왕이  되지못하게 하셨고 네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끊겨서 네가 벌써 멸망하는 그런  지경에 떨어져 있는데 네가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 기쁘시게  했으니까 이것 가지고 나까지 복을 받으라고 네가 그렇게 하나님의 뜻과 네 뜻,  하나님의 견해와 네 견해, 하나님의 마음과 네 마음이 이렇게 동과 서가 다른  것처럼 이렇게 판이하게 다르니 네가 어떻게 할 것이냐?' 하시면서 노여워하고  그 것으로써 사울왕은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러하지마는 예수님이 그에게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밤에 너거 집에  유하여야겠다' 하실 때에 삭개오가 하는 말이 '주여,-내가 이제까지 많은 재산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인데 가난한 이웃을 돕는 그런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나만 알고 이렇게 한 요것이 주님에게 근심이 됐구나 해서-이것을 팔아  반을 가난한 자를 위해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겠습니다.' 또 하나 다시 말하는  것이 '내가 세리로 지내니까 누구에게 혹 토색한 게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주님이 삭개오에게 대해서 참 안타깝게 여기지고, 또 섭섭히 여기  시고, 하나님의 노가 되고,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영생이 오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그것을, 주님이 근심하고 걱정하고 원하시는 그것을 딱 들어 가지고  '주여,내가 요것 잘못했습니다. 요것 고치겠습니다.' 하니까 주님이 '오늘 너희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말씀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l9장에 보면 그 부자가 예수님에게 와서 말하기를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어째 선한  것을 나한테 묻느냐?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러니까 '무슨  계명을 지켜야 됩니까?' 예수님이 그 계명을 쭉 말씀하시니까 '이것은 내가 벌써  다 지켰습니다. 또 뭐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이제는 그 부자에게 대한 복음의 말씀을 말합니다. '네가 네대로의 의인되고  네대로의 네가 부족함이 없는 자이지 네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을 네가 살피지를 아니한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은 그것이 천국 열쇠요, 그것이 하늘나라의  바탕이요, 그것이 모든 복음의 역사의 능력인데 네가 하나님의 뜻은 찾지 않고  네맘대로 그와 같이해서 또 부족한 게 있습니까 말을 하나 네가 정말로  온전하기를 원하느냐? 네가 참으로 구원을 원하느냐? 참으로 영생을 원하느냐?  네가 온전하기를 원하느냐?  사데교회에 보면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왜? 네가 온갖 행위 하지마는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은 한 개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너에게 영생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온전하기를 원하느냐?' '예, 원합니다.' 하니까 주님이 그 부자에게 근심하고  걱정하고 그 부자를 망치는 그 무서운 죄악, 하나님과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악,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죄악,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그  가로막고 있는 휘장, 그것을 이제는 주님이 들추어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오는 것은 자랑하려고 왔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왔고 이러기  때문에 제대로 붙여서 '네가 어떤 걸 믿느냐?' 할 때에 중얼중얼하게 말을 하고  '내가 다 지켰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뭣 또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말할 때 주님이 '네가 참으로 온전하기를 원하느냐? 네가 영생을  얻고 하늘나라의 수입을 정말로 보기를 원하느냐? 네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서 네가 피동적으로 회개하는 네가 회개를 하고 싶으냐?' 이렇게 반문하고  난 다음에 '네가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수입도 있을 것이고 하늘에 상도 있을 것이고 너도 영생을 얻으리라.'  말씀하시니까 그만 이 부자가 그 말 한 마디에 근심하고 돌아갔어. 그것입니다.

 삭개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많은 죄악이 있지 마는 지금  당장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 휘장,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요 휘장, 요 죄악, 하나님이 지금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전신경이  기울어지고 전 소원을 하시고 근심 걱정이 기울어져 있는 요것, 요것을 삭개오는  들어서 말할 때에 '구원이 너에게 이르렀다' 말씀을 했고, 부자는 엉뚱한  소리하다가 그것을 주님이 탁 말하니까 그만 근심하고 가 버렸습니다. 사울왕도  그것을 명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하다가 결국은 멸망 받고 말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게 무엇이냐? 그 죄악이 큰 죄악이라 그런 것 아니오. 큰  죄악이든지 적은 죄악이든지, 예수 믿는 집사가 시골 가면 사랑방에, 사랑방에  놀러가 가지고 저녁 먹으면 사랑방에 한번 가 가지고 그 사랑방에 가서 한 마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이런 농담 저런 농담 한 마디 하고 와야 되지 그리 안하면  잠이 안 오고, 또 아침 먹고 나면 한번 삥 둘러와야 되고, 바쁠 때도 점심  먹고라도 그저 급하게 가서 한번 빙 둘러야 되고, 마슬 가는 것, 이웃 가는 것,  마을 가는 것 말이요,그 뭐 어렵습니까? 그 뭐 큰 죄입니까?  크든지 작든지 네가 하나님과 접선하려고 할 때에 접선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그게 있다. 하나님과 접선하려 할 때에 하나님과 접선되지 못하도록 마귀란  놈이 큰 죄를 가지고 그래 하는 것도 있지마는 사소한 죄를 가지고도 그렇게  하는 것 있다. 큰 재물을 가지고 그래 하는 것도 있지마는 사소한 재물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도 있다. 무슨 큰 운동이나 일거리 가지고 그런 것도 있지마는  조그만한 잽손 그 장난감 그것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가 있다.

 너와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고, 하나님과 접선하려 할 때에 그 습성이, 그  습관이, 그 취미가, 그 욕심이, 그 관념이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과 너와  접선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온갖 축복과 은혜와 너와 접선하지 못하게 해서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고 하나님을 가로막아서 너에게 지극히 큰 능력으로 온  영생의 능력이 되는 그 영생적인 그것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그것이 네게 있다.

 뭐 그게 무슨 돈벌이 돼 못하는 것 아니오. 손해 가서 못하는 것도 있지만 손해  가서 못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은 아무런 손해도 가지도 안하고 큰 일도  아니고 중한 일도 아닌데도 그런 게 있습니다. 요 사람에게는 요것 조  사람에게는 조것 있으니 그것을 찾아라. 거기에 하나님의 전심 전력 근심 걱정  소원이 거게 있다. 그것을 찾아라.

 그것을 찾아서 네가 하나님이 힘쓰는 그것을 깨닫고 너도 힘쓰고, 하나님이  소원하는 그것을 깨닫고 너도 소원하고, 하나님이 근심하는 걸 깨달아서 너도  근심하고, 하나님이 그게 이루어지면 기뻐할 것 생각해서 너도 그것 이루어  기쁨을 가지도록 거기에 네가 전심 전력 소원 근심 걱정 욕망이 있으면 하나님과  너와의 한 군데 집결돼 가지고 요것이 하나님과 동행이다. 요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요것이 하나님과 동행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로 딴것을 가지고 나타내면서 주님에게 대하는 것  주님이 섭섭해하시고 노여워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를 회개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뭐이냐? 이 시간 네 마음을 지금 하나님과 결합해서  하나님과 연결해서 하나님 사모하게, 하나님 생각하게, 하나님 소원의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마음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뜻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소원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것을 하지 못하게 그것이 무엇인가 지금 딴데 가 가지고서  하고 있는 것 있다.

 네가 아무리 이 자리에서 예배를 봐도, 예배를 봐도 네 마음은 지금 얼마든지  딴데 가서 끌려가고 있을 수 있다. 네가 일은 손으로 하면서도 마음은 딴데 가  있을 수 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것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지만 사람은 작기 때문에 이까짓 거야 뭐  예사롭게, 이것이야 무슨 죄축에 가겠느냐? 이것이야 해 가지고 상관 있겠느냐  하지마는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이상하게 미혹시켜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접하려 할 때에 그 마음을 그리 끌어버립니다. 뜻을 그리 끌어버립니다. 취미를  그리 끌어버립니다. 재미를 그리 끌어버리요. 그래 가지고 실패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무슨 가치가 크고 어려운 일이고 큰 자이라 그런 것 아니오.

사소한 일에도 그런 것 있고 큰 일에도 그런 것 있습니다. 각자가 다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크나 작으나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데 여기  있어도, 참 비둘기가 나무 위에 앉았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하는 것  모양으로 저는 이래 이렇지마는 지금 생각은 딴것 있다 말이오. '누구하고 어데  놀러가고 뭐 만나고 어쩌고 뭐 하고 뭐 사업이 어떻고,' 하나님하고 교제할라  하면 그놈이 들어서 끌고 가 가지고 하나님과 이 친교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시편 73편에는 "음녀같이 주를 떠나는 자라" 그것이 막바로 주님을  버리고 떠나는 그 음녀 창기적인 그런 인격 부패성인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찾으려면 상식적으로 못 찾습니다. 그것은 찾으려면 상식으로도 못 찾고  자기 가진 많은 지식으로도 못 찾습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을 기울이면 됩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뭐 성경 육십육 권 지식을 다 들어대도 소용이 없어. 자기의  온갖 지식이나 모든 걸 다 들이대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마음을 '이 시간 내가 주님을 향하는 마음을 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수롭지 않은 것이요, 사소한 것입니다. 사소한 그것이 마음을 끌어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는 마음을 기울여야 되고 하나님을 생각해야 되고 소원의  뜻이 무엇인가 알려고 해야 되고 그러면 압니다. 알면 그 사소한 것이오.그  사소한 것인데 사소한 그것을, '요게 들어서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구나.' 그것을 버려 회개하려 하면 사소한 것인데 그게 쉽지 않소. 사소한  것인데, '그까짓 거야 뭐 안하면 안하지. 생각 안하면 안하지. 안 가면 안 가지.

놀러 안 가면 안 가지. 그것이야 생각 안하면 안하지,그 일이야 안하면 안하지.'  이리돼도 그것을 예사롭게 여긴 그것이 아주 고치기가 힘이 듭니다. 큰 일  같으면 그것은 한번 고치기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시작해 놓으면 그것은  고쳐지지마는 사소한 그것이 고쳐지지 못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의 인격을 기울여야 그것이 발견되지 인격을  기울이기 전에는 그것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참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떤 점을  지금 이렇게 근심하고 있는가? 소원하고 있는가? 주님과 나와의 이렇게 신령한  교제를 가지려고 할 때에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가?' 자기의 마음을 '이  시간에는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 기도할 때는 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가느냐?  내 생각이 어디로 가느냐? 내가 지금 아무리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내  취미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는 그것을 살피면 알 수 있지마는 그것은  인격을 기울여 살펴야 되지 그것은 인격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기 울이지  않고는 살펴지는 것 아닙니다. 상식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찾아서 우리가 회개를 해야 주님과 이 밀접한 관계를 맺지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것을 발견해서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으면 다른 것은  쉽습니다. 다른 것은 쉽소. 아무리 큰 것이라도 고치기 쉽소. 아무리 큰 걸  고쳐봤자 자기에게 생명 능력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딱 발견하고 '요놈이 들어서 주님과 나 사이를 친밀하지 못하게 끌고  가고 마음을 간교하게 끌고, 내 마음을 끌고 가고, 내 취미를 끌고 가고, 내  생각을 끌고 가고, 내 성질을 끌고 가고, 내 모든 행위를 끌고 간다.'  예사로운 사소한 것인데 그것이나를 끌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나는  가다 보면 그 사람 돼 버리고 그것하고 한 덩어리 되는 그것을 우리가 발견해  가지고 그것이 주님이 소원하시는 내가 회개할 죄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암만 해 봤자 하나님에게는 더  근심이 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반드시 그게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제일 근심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제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그것 제하면 하나님을 차지하게 됩니다. 차지하게 되면,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 또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으려 하는 그 다음  것이 또 나옵니다.

 그 하나씩 둘씩 그래 나가면, 이제 우리가 하는 것은 휘장을 틔우는 것뿐이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그것만 자꾸 제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열린  문을 두었다" "문들을 열고 들어가라"  그러기에 우리 신앙은 깨어야 신앙 생활 할 수 있고, 계속적이라야 신앙 생활  할 수 있고, 마음에 간절한 열심이라야 신앙 생활 할 수 있지 아무리 힘센  자라도 게을한 자는 신앙 생활 못합니다. 또 간절히 없으면 못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전히 기도 삼십 분 하고 아래층에서 또 철야할 분들은 철야하면 됩니다.

 우리는 뭐 큰 죄악이나 작은 죄악이나 무엇인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이렇게  가로막는 것 요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 발견하기 전에 다른 죄를 가지고 아무리 말해 봤자  소용이 없어. 당신의 소원과 근심은 한 군데 있는데 그것은 내버려두고 엉뚱하게  다른 걸 가지고 암만 말해야 소용이 없어. 그걸 찾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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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276 주권 개별 섭리/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840510목후집회 선지자 2015.12.19
1275 주권 섭리의 목적/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800720주전 선지자 2015.12.19
1274 주권을 믿고 회개하라/ 마태복음 10장 27절-33절/ 811015목새 선지자 2015.12.19
1273 주권자시며 나를 돕는 자 / 이사야 31장 1절-3절/ 850214목새 선지자 2015.12.19
1272 주권 하나님/ 출애굽기 19장 3절-6절/ 890806주후 선지자 2015.12.19
1271 주께 맡긴 자의 할 일/ 디모데후서 1장 12절/ 821017주후 선지자 2015.12.19
1270 주님 기쁘시게 하는 법/ 고린도후서 5장 9절/ 84030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9
» 주님 뜻에 명중한- 죄 찾는 법/ 누가복음 15장 3절-7절/ 830415금야 선지자 2015.12.19
1268 주님 만날 수 있는 신앙형태/ 아가 4장 6절-10절/ 881104금야 선지자 2015.12.19
1267 주님 만날 수 있는 신앙형태/ 아가 4장 6절-16절/ 881102수야 선지자 2015.12.19
1266 주님 맞을 자세/ 마태복음 24장 35절-43절/ 840717화새 선지자 2015.12.19
1265 주님 맞이할 준비/ 베드로후서 3장 1절-13절/ 1982년 17공과 선지자 2015.12.19
1264 주님 모시고 말씀 생각하고 살자/ 요한계시록 1장 9절-20절/ 890119목새 선지자 2015.12.19
1263 주님 사귀는 직책/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840422주새 선지자 2015.12.19
1262 주님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마태복음 18장 5절-10절/ 851030수야 선지자 2015.12.19
1261 주님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51008화새 선지자 2015.12.19
1260 주님 사모/ 아가 4장 6절-10절/ 821009토새 선지자 2015.12.19
1259 주님 사모/ 시편 73장 13절/ 830306주후 선지자 2015.12.19
1258 주님 사모/ 시편 73편 25절-28절/ 840618월새 선지자 2015.12.19
1257 주님 사모 동행/ 시편 73편 12절-28절/ 841211화새 선지자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