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6:06
인자하심이 영원함에 대한 감사
본문 : 시편 136:1-26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에 있는 이 내용은 다 맞보기로 기록했기 때문에 생각하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 있는 정도의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특수어로 기록하지 안하고 일반어로 기록을 해 주셨습니다.
특수어라 말은 무슨 철학 술어나, 종교 술어나, 과학 술어나, 문학 술어나, 예술 술어, 불교 술어 같은 그런 것이 다 특수어인데 하나님이 그런 걸 몰라 그렇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도리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반어를 가지고서 성경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랬는데 사람들은, 설교하는 사람도 그렇게 설교 듣는 사람도 그렇고 특수어를 쓰면 '아, 유식하다.' 또 특수어를 쓰면서 자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까짓 놈의 특수어야 천하에 가득 차도 그까짓거 가지고서 우리 구원 한 내끼도 안 되는 겁니다. 구원의 도리 구원의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이 설교를 들을 때에 뭐 사투리도 좋고 무식해도 좋고 아주 서민어 어떤 말이라도, 가르쳐 주는 도리를, 믿는 이치를 바로 깨달을라고 애를 써야 되지 엉뚱한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다 깨달을 수 있도록 쉬운 말로 기록해 주셨소.
1절로 4절까지에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어떤 하나님인가 하는 것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다 그 외에 우리가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나라에도 대통령 될라고 하는 사람들 보면 정치야욕에서 백성이야 죽이든지 말든지, 망하든지 흥하든지, 분쟁이 나든지 어짜든지 자기 정권 잡는 고것만 위해서 수단과 방편을 가리지 안하는 잠깐 동안에 몇 달 동안이라도 마구 나라가 수라장이 되고 우리가 참 겁이 나서 살지 못할 만치 됩니다.
제가 양산동 갈 때에, 가니까 사람들이 떡 막아서는데 막 몽둥이 들고 주욱 있는데 그때 '저리 가라' 하니, 저리 삥삥 둘러서 시간을 얼마를 걸려 삥삥 둘러가, 만일 그때 '왜 이 가는 길인데 길을 막고 이라느냐?' 하면은 들장 몽둥이 가지고서 차 다 뚜드려 뿌수고 사람 막 뚜드려 패고 이러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차가 수십 대가 부숴졌다는 소리를 들을 때에 속으로 '햐, 이거 이런 것들이 만일 우리 정권을 잡으면 우리는 그만 공산주의 이상이지 뭐 나올 거 하나도 없다.' 그렇게 여겨져서 제가 가며 그런 말하고 왔습니다.
오전에도 말했지마는 호주 하나 그거 악한 것 만나 놓으면 그 가족들 참 신세 갑니다. 어질고 착하고 옳고 책임성 있고 진실한 좋은 호주 하나 만나면 고만 그 가정은 지상 천국이오. 지방에도 지방장관 하나 잘 오면 고만 평안이요 못된 것 와 놓으면 고통입니다.
이런데, 그까짓 거 그런 것이야 암만 권세를 잡아 봐도 잠깐 갈려지지마는 이 정말로 영원히 계실 하나님이 그런 악한 자, 교만한 자, 무자비한 자, 독한 자, 욕심쟁이, 저만 아는 것, 냉정스러운 것 그런 자가 하나님이 됐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될 겁니까? 이래서 종종, 하나님 계심에 대해서 어떻게 기쁘고 감사한지, 하나님, 이런 분이 하나님 돼 가지고서 주권하고 계시니까. 그걸 말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우리에게 대해서 인자하시니까 우리가 그 은혜를 참 감사해야 합니다.
또,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이 제일 큰 신이 아니고 불교 신이든지 마호멧드신이든지 뭐 호렝게교 신이든지 이거 어떤 귀신이 만일 제일 왕이 됐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아예 우리 하나님이 모든 주권을 거머쥐고 모든 신을 뽈끈 눌러놓고 딱 통치하고 조절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일이 얼마나 잘됐는지 모릅니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구원하는 주는 꽉 찼습니다. 너무 세상에 주가 많아서 탈이오. 이게 주라 저게 주라, 이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저것이. 우리를 복되게 해 주신다 하는 그런 것들이 꽉 찼는데 그 중에 제일 크신 분이 있어서 모든 주라는 주를 다 장중에 잡으시고 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 통치하시니까 이 일도 참 감사하고 기뻐서 못 견딜 일이라.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천지를 창조한 것이나 모든 것을 운영하는 것이나 관리하는 것이나, 또 인간들이 수사관이 암만 해도 수사관이 모르는 비밀을 다 드러내는 것, 악인을 역력하게 그대로 심판해서 망치고 의인을 역력하게 심판해서 드러내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은 짧게 보고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망한다' '네 눈이 짧아서 조금 백 년을 두고 보면 정확한 보응이 있다' 그러나 당장에 보면은 그것이 안 보이지, 당장에 보면 안 그런데 왜 그런가? 당장에 그 한 자 나쁘다고 해 버리면 거기에 속한 나쁘지 안한 자들이 전멸되기 때문에 모든 면을 다 생각하셔 가지고서 실수 없이 처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을 짓되 하늘을 지혜로 지어 놓으니까 하늘이 둔한 일을 하나도 안 해. 삐뚤어진 일을 하나도 안 해. 이 하늘이란 궁창 이것도 어떻게 모든 게 공평되고 정확하게 하는지. 뭐 전부 보면 하나님 하시는 일도 전부가 어떻게 해야 좋을 만치 그렇게 감사해요.
또, 6절에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에 자꾸 이렇게 '뭐 주십시오, 주십시오,' 하는 그런 기도는 좋지마는 그런 기도는 옅은 기도요 또 껍데기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주욱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처음에 알면 마귀란 놈이 '그럴 리가 있느냐?' 하고서 우리에게 이상스럽게 '야, 물에 넣어도 붇지 안 할 말이다. 그럴 리가 있느냐?' 이러다가 좀 더 생각하고 정신을 차려서 생각하면 '아, 그 참 이상한 일이다.' 좀 더 생각해서 이 사실을 사실로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이 사실을 사실로 자기가 인정할 때에 그때 어찌 됩니까, 믿을 때에 어찌 됩니까? 인정할 때에 우리에게는 변화가 옵니다. 인정할 때에 두려워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그 다음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담대하고 소망이 넘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께 대해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것에 대해서, 모든 존재, 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에 대해서, 또 하나님이 내 모든 의식주 신변이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관리하시고 담당하신 이 모든 것을 하나씩 깨닫게 되면 깨달은 효력이, 깨달은 효력이 처음에는 뭐입니까? 깨달은 효력이 처음에는 '아이쿠' 놀라게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을 깨달을 때에 감사하게 되고, 그러면 믿고 감사하면 기쁘고 즐겁고 담대하고 능력 있는 자 되어집니다.
왜? 알고 깨닫고 믿지 아니하면 두려움만 옵니다. 이렇게 큰 일이 있는데 자기는 봐야 아무것도 없으니까 두려움만 오게 됩니다.
거기에서 이 사실이 나를 자비히 여겨서 나를 위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첫째로 뭐 나옵니까? 믿을 때에,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 어찌 됩니까? 기쁨과 감사, 기쁨과 감사가 나옵니다. 기쁨과 감사가 나오고 난 다음에는 평안과 즐거움과 담력과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수많은 그 마찰되는 틈바귀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사실에 대해서, 우리를 의식주로 안보하시고 늘 참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관리하듯이 관리하고 계시는 이 사실을 알 때에 우리에게는 뭐이 나오겠습니까? 이 사실을 알고 믿지 안 할 때에는 우리에게는 뭐이 오겠습니까? 믿지 안 할 때에는 우리에게 큰 것만 보기 때문에 두려움이 오든지 그리 아니면 이 참 얼토당토 안 한 말을 많이 해 놨다. 만에 하나도 맞지 안하는 말을 해 놨다 이리 될 겁니다.
일국에 대통령이 나를 사랑한다 해도 그 일이 쉽지 안한데 대주재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그 말이 안 믿으면 이상하게 거짓말로 들려지고 다 사람을 꼬우는 말로 들려지고 반박이 나오고 이러나 이 사실을 믿을 때에는 믿는 것만치 즉시 그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나오고, 또 자기 속에 평안이 나오고 즐거움이 나오고 담력이 나오고 용기가 나오고 이게 다 주관입니다. 그래 나오고 모든 일이 기쁘고 즐겁고 담대하고 감사하고 용기가 나오는 것은 자기 주관입니다, 자기 주관.
이래 나오는데, 저 객관 역사가 와 가지고서, 객관 역사가 와 가지고 불이 타지 못하게 하고, 사자가 삼키지 못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물 위에 걸어가게 하고, 이스라엘이 애굽에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들어가 가지고서 바로 앞에서 '네가 이렇게 말해라' 하는데 그 말씀 믿고 '이렇게 되리라' 이라니까 바로가 있다가서 그 말을 믿지 안하고 '그래도 안 된다' 만일 그 한번만 안 되면 모세하고 아론하고는 뭐 가루가 돼 버릴 겁니다, 당장.
이럴 건데 나와서 떡 시키신 대로 하니까 선포한 그대로 이루어지니까 애굽에서 석방을 하고 그들은 다 해방돼서 구출 안 됐습니까? 하나님은 다 같은 하나님이시지마는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안 믿으면 용기 안 나오고 하라 하는 대로 안 하면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안하고 이러니까 그러면 이스라엘은 그만 전멸되는 거라. 우리 구원이 오늘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첫째는 알아 깨닫는 것이요 알고 깨닫고 난 다음에 고것으로 끝나 버리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라 하는 인간이 되든지 '이런 일이 있다면 참 이거 번민이고 고민이고 이거 큰 문제다' 두려움의 사람이 되든지 자기를 인자히 여기시는 이 사실인 것을 믿을 때에는 그에게는 모든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과 평강이 그에게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알고 믿을 때에, 알고 믿을 때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또 기쁜 사람이 되고 평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고 담대한 사람이 되고 알고 믿을 때에 이것이 됩니다. 되고, 또, 이것뿐이고, 이것뿐이고 실제로, 이거는 다 자기 주관에서 자기마음에서 생겨진 건데. 마음에서 생겨진 것 이 주관뿐이고 타에서 객관역사가 와 가지고서 큰 무슨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지 안하면 잠시뿐이지 그 다음에는 그대로 이루어지지 안하고, 그 이루어질 줄 알고 그대로 될 줄 알고 주먹을 쑥 냈더니마는 '네가 주먹을 썩 내라. 문제가 없다. 하나님이 네 주먹 낸 대로 그대로 홍해 바다를 떡 갈라 뜨리게 하실 거다.' 이런데 주먹을 턱 냈는데 홍해 바다가 만일 안 갈라졌으면 어찌 됩니까? 그랬으면 팔이 뿌러질 것이고 당장 큰 난리가 나서 다 밟혀서 그만 가루가 돼 버릴 겁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이런데, 예수 믿는 것은 알고, 알아 깨닫고, 아는 거나 깨닫는 거나 한가지인데, 알고 깨닫고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자기 주관으로 기쁨과 감사와 평안과 용기가 넘칩니다.
넘치지마는, 내가 바라본 대로 의지한 대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를 인자히 여기시고 너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신다 하는 것을 믿을 때에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기뻤지마는,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고 큰소리하고 담대히 날뛰었지마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하나도 없고 거짓부리라 하면은 그 사람 그 장담하고 기뻐했던 것으로 인해서 박살 안 납니까? 그렇지 안해요? 박살납니까 안 납니까? 이런데 그렇게 해 보니까, 하나님이 자기가 알고 인정한 그대로, 알고 인정함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한 그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러면 자기가 일어나니까, 알고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난 다음에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 사람의 그 믿음이 차차 줄어집니까 커집니까? 줄어집니까 커집니까? 점점 커집니다. 점점 커지요. 이게 예수 믿는 거라.
그러면, 오전에 말씀한 데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모든 것을 몇 가지로 분류해 가지고 말했습니까, 몇 가지로 분류해 가지고? 자,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몇 가지로 분류해서? 이 네 가지로 분류해서 말씀했어.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이 천상 천하에 창조하신 모든 존재에 대해서, 또 하나님이 멀고 가까운 모든 면으로 원수 앞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에 대해서, 또 넷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주 안보 이 영육의 모든 것에 대해서 있어야 필요한 모든 필요한 것들, 양식, 기업, 우리의 모든 소유, 온갖 것을 풍성하게 해 주신 이 네 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우리가 감사할 때에 그 인자하신 모든 은혜를 베푸십니까 감사 안 하고 패역을 부려도 그 인자하심을 여전히 베풀고 계십니까? 우리가 감사할 때에 인자하심을 베푸십니까 우리가 패역해도 인자하심을 베푸십니까? 패역하면 인자하심을 베풀지 않습니까? 우리의 감사함에 따라서 그분의 인자하심과 긍휼히 여기시는 모든 사랑의 은혜가 우리 감사함으로 있게 되는 것입니까 감사하든지 말든지 꼭 같이 있습니까? 감사함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까 또 불평에 대해서 차이가 있습니까 불평하든지 감사하든지 당신의 그 사랑과 은혜의 차이는 없고 일반입니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하라'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했으니까 감사함으로 인자하심이 생겨져서 감사를 쪼그매 하면 인자하심이 쪼그매 있고 감사함을 많이 하면 인자하심이 많이 있고, 감사함이 충만하면 인자하심이 충만하고, 감사함이 하나도 없으면 인자하심이 없고, 또 감사하지 안하고 패역과 반역을 부려서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고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시키시는 멸망이 이제 생겨지고 커지고, 이래서, 우리가 감사하고 불평하고 하는 우리의 언행 심사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의 인자와 진노와 긍휼과 멸망이 맺어집니까, 우리야 이라든지 저라든지 우리 하는 데에 하나님은 피동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당신의 본질과 본성 그대로 인자하심이 영원합니까, 어떻습니까? 자, 우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변합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은혜와 사랑은 우리의 어떠함에 따라서 변치 않고 그대로 영원합니까? 자, 처음에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두 번째 말한 것이 맞다고 믿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인제 이거 알기는 참 잘 알아. 지금 뭐 아무데 신학대학이 아니라 미국신학대학에 가서 물어도 모르는 전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잘 판명이 안 나와 있어.
그분은, 사랑과 안자하심은 변치 않습니다. 변치 않습니다. 하나 그거 예가 잘 될는지 몰라도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가 돌아다니면서 나쁜 동무한테 돌려 가지고서 요새 뭐 오락실에나 돌아다녀 가지고서 멸망의 길을 걸으니까 그 사랑하는 아들을 오늘은 아무데도 못 가구로 나가지 마라. 학교도 가지 말고 집안에 있거라. 가둬 놓습니다. 그거는 부모의 사랑입니까 부모의 미움입니까? 미움입니까 사랑입니까? 그 아이에게는 그래 사랑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요 미움이 아니오.
또, 그래도, 자꾸 뽈뽈 기어나가니까 그 날은 뽈끈 당글어 매 놨습니다. 뽈끈 당글어 매 놨어. 당글어 매는 그게 사랑입니까 미움입니까? 저게도, 사랑입니까 미움입니까? 그 아이에게는 그렇게 사랑을 베풀어야 되지 달리 베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하는 데 따라서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가 그 방편이 우리 변하는 데 따라서 우리에게 적합한 방편으로 그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인자의 본질과 본성이 우리에게 변해져서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라'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네 가지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인자, 하나님 자존하신 자체가 우리에게 인자하심이 되고 창조한 모든 존재가 다 우리에게 인자하심이 되고 또 모든 원수에게서 우리를 구원하심이 인자하심이 되고 또 우리의 영육의 의식주, 소유, 관리 이렇게 해 주심이 다 인자하심이 되는데 이 인자는 영원합니다. 이것이 변치 않습니다.
변치 않는데 뭣 때문에 감사하라 합니까? 감사하나 안 하나 변치 않는데 뭐할라고 감사하라 합니까? 꼭 감사를 해야 됩니까? 감사하나 안 하나 변치 않는 사랑 변치 않는 인자 변치 않는 은혜는 그대로 영원히 계속되는데 뭣 때문에 우리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잘못하면 네가 감사하면 그 영원히 인자하심이 계속 되고 감사 안 하면 인자하심이 절단 난다. 끊어진다 이런 말로 듣기가 쉽다 그거요.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러면 감사할 이유가 뭐입니까? 감사하는 그 순서가 어데서 나옵니까? 감사하는 것은 첫째 이 네 가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요, 아는 것.
알고 내가 믿지 안하면 그 자기 아는 것이 자기 혼자 구성거린 일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가진 것인가, 이 거짓말을 내가 들었는가? 고라면 그에게 의문이나 생기지 평강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알고 믿을 때에, 그 사실을 내가 사실임을 믿을때에 그때 우리에게 감사가 생겨집니다.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나를 인자하신 하나님으로, 나를 인자하심으로, 나를 사랑히 여기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때에 얼마나 우리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충만해서 흐뭇해지겠습니까? 또, 믿을 때 우리에게 기쁨이 오겠습니까? 안 오겠습니까? 믿을 때 기쁨이 옵니까 안 옵니까? 오지 안 올 수가 없거든. 믿을 때 기쁨이 오지. 또 담력이 오겠소 안 오겠소? 근심 걱정이 커지겠소 없어지겠소? 소망이 넘치겠소 절망 낙망이 되겠소? 소망이 넘치지.
그러면, 이렇게 우리 주관으로서 기쁘고 즐거운 평강을 누립니다. 이렇다 할지라도 정말로 그대로 타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가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은 이거는 뭐입니까? 공연히 헛 좋았지. 헛 좋았지. 헛되이 기뻤지. 헛되이 만족했지. 헛되이 담대했지. 그라면 그것이 뒤에 가서 담대가 뭐이 되겠습니까? 담대가 변해서 뭣 되겠습니까? 담대가 변해서 뭣 되겠어? 네, 담대가 변해서 두려움이 돼지지요.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담대가 두려움이 돼지고, 하나님 날 이렇게 인자히 여기시고 자비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이라니까 제딴에는 좋아서 담대해 가지고 껑충거렸는데 아무 그런 효력이 없으면은 그때 기가 막히고 참 행동한 것이 전부 지금 후회되고서 지금 기가 막힌 비참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이렇게 알고 믿고 난 다음에 자기 주관의 행복을 누리고, 주관 행복을 누리고 객관 역사가 없었다면은 기독교가 박멸됐겠습니까 세계에 이래 점점 퍼져 나가겠습니까? 박멸됐어. 퍼져 나가지 않소. 이렇게 믿는 데 따라서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대로 객관역사가 있으니까 믿는 사람 더 믿고 자꾸 더 믿고 주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고 믿을 때에 첫째로 무슨 행복이 옵니까? 알고 믿을 터에 무슨 행복이 옵니까? ○○○집사님 큰 딸, 대답 한번 해 봐. 우리가 알고 믿을 매에 무슨 행복이 옵니까? 무슨 행복이 와요? 여기에는 무슨 행복이 와요? 무슨 행복이 와요? 한말로 해 봐요. 주관 행복이 와요, 주관 행복. 그렇지 안해요? 그거는 내 마음으로 그런거라, 주관 행복이 와요. 알고 믿을 때에 주관 모든 행복이 옵니다. 주관 행복이 와요.
주관 행복이 올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또 객관 역사의 행복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이루어져요. 이루어지는 것은 내가 믿음으로 주관 행복을 누릴 터에 하나님께서 주관 행복을 누리는 데 따라서 하나님의 객관 역사가 따라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객관 역사는 다 이루어져 가지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영원히 다 베풀어 가지고 있는데 내가 그것을 몰라서 믿지 않기 때문에 내것이 되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주실 수가 없고 믿지 않기 때문에 누리지를 못하는 것을 본인이 믿을 때에 실지로 누리게 되고 그 은혜는 내게 와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에 걸어갈 때에 그 걸어가는 것은 어떻게 시작됐느냐? 자가가 주님이 오시니까 평강을 누렸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을 깨닫고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인 것을 알고 이제 그 사실을 믿고 주님에게 소망을 두고 '나도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할 때에 '걸어오라' 하니까 '걸어오라 하십시오' 하는 그것이 베드로의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하는 소망과 요구를 했습니다. 소망과 요구를 할 때에 '걸어오라' 이라니까 그때에 걸어오라 할 때에 베드로가 푹 뛰어내린 것은 그것은 베드로의 주관 역사입니까 객관역사입니까? 주관 역사입니까 객관 역사입니까? 주관! 푹 뛰어 내릴때에 하나님은 물에 빠지지 않게 하시는 것이 객관 역사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다가 풍랑을 보고, 바람을 보고서, 주님 보던 그가 주님보지 안하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니까 빠져들어 갔습니다. 주님이 빠져들어 가게 했습니까 제가 믿지 안하니까 이제 주님의 능력을 제가 거부하고 박찼기 때문에 능력이 역사할 수 없어서 빠져들어 갑니까? 주님이 왜 나만 안 보고 그런 거 보느냐고 주님이 능력을 뺏들었습니까 제가 거부했습니까? 제가 거부했습니까 주님이 그 능력을 손을 땠습니까? 제가 거부했어. 제가 거부했어.
이러니까, 주님이 왜 네가 날 거부했느냐 이렇게 말하지 안하고 왜 네가 믿음이 적으냐? 왜 믿다가 그만 중단해 버렸느냐? 인정하다가 왜 중단했느냐? 왜 의심했느냐? 네가 나를 믿지 안하고 네 주관으로 돌아가 버렸느냐? 이랬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네 가지로 여기에 나타냈는데, 네 가지로 우리에게 사랑과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믿을 때에 우리 주관에 행복이 오고 주관에 행복이 오고 주관에 행복이 온 그 행복이 그대로 실상이 되어서 존재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믿음의 비밀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땅 위에서 할 일은 무슨 할 일이냐? 땅 위에서 할 일은 우리가 항상 기쁜 사람으로 살아야 되는데 우리의 기쁨은 우리가 이런 저런 욕심을 달성함으로, 목적을 달성함으로, 모든 일에 성공이 됨으로, 모든 것을 많이 소유함으로 기쁜 그 기쁨 그런 것을 많이 점령하고 성공하고 소원 성취하고 많이 소유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기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럼으로 우리가 기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로 말해요. 기쁠 수 있어요 없어요? 기쁠 수 있지.
그런데, 그 기쁠 수 있는 그 기쁨은 수명이 얼마나 갈까요, 세상이 빼앗을 수 있는 기쁨일까요 빼앗지 못하는 기쁨일까요? 세상이 빼앗을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성경이 말하는 기쁨이 아니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평강을 주노니 내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같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도 빼앗아 가지도 못하고 없애지도 못하는 평강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평강, 그 기쁨, 그 즐거움, 그 기쁨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기쁨, 변하지 안할 기쁨, 그 완전한 기쁨, 세상이 해하지 못할 기쁨 그 기쁨이 나오는 구멍은 어데서 나옵니까? 저 뒤에, 어데서 나옵니까? 그 기쁨이 참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기쁨, 우리가 항상 밤이나 낮이나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할 그런 기쁨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행복 중에 최고의 행복입니다.
행복인데, 그 기쁨은 어느 구멍에서만 나옵니까? 그 기쁨은 어느 구멍에서 나옵니까? 또 몰라? 만날 가르쳐야 모르면 어찌 됩니까? 그 기쁨은 어느 구멍에서 나옵니까? 그 기쁨은 어느 구멍에서 나오요? 알 만한 사람 사람한테 한번 물어 봐야 되겠다. ○○○권찰님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그 기쁨은 어느 구멍에서 나옵니까? ○○○ 권사님, 알고? 실행할 때? 알고 행할 때에? 알고 행할 때에? 알고 행할 때에, 그래? '알고 행할 때에' 맞아요? 여기에서는 말하는 게 안 들려. 그 감사하다 말이 들었어 안 들었어? 안 들었어 들었어? 안 들었어? 틀렸어. 빵점이라.
우리의 뺏기지 안할 기쁨, 평안, 즐거움, 이 담대, 이 모든 것은 어느 구멍에서 나오느냐 하면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이 사실을 알고 깨닫고 믿으면 뭐 나옵니까? 감사가 나오요. 믿으면 감사 나와요. 믿을 때에 그 구멍에서 나옵니다. 딴데 안 나와요.
그라기 때문에, 이제 감사하면 믿고 믿으면 감사함이 되고 감사하면 벌써 그 다음으로부터 자기 주관이라는 전부는 어찌 됩니까? 기쁘고 즐겁고 담대하고 평안하고 소망에 넘칩니다.
그러면, 이거는 저 혼자 놀음이요, 저 혼자. 자기 주관이라. 저 혼자 놀음인데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그 모든 이미 예비해 놓으신 그 인자하심을 나를 위해서 베푸신 인자로 내가 믿고 기뻐 즐거워하면 그게 내것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내것 됐소 안 됐소? 내것 됐어, 내것 됐어.
이러기 때문에,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것을 네가 알아 깨닫고 믿으면 감사가 나와서 네 주관이 변화되고 주관만 변화되는 게 아니라 그러면 하나님의 당신의 존재에 대한 인자, 모든 창조의 존재에 대한 인자, 당신이 원수에게서 나를 구출하신 이 구원에 대한 인자, 내 자신의 의식주 모든 보호 여기에 대한 인자가 내것이 되어서 내가 누리게 된다 그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고 깨달아 감사에 나아가서 기쁨되는 그것은 그 실상을 내가 벌써 효력을 누리는 것이요 누리는 것이 공연히 말뿐이 아니고 주관뿐이 아니라 누릴 때에, 알고 믿고 누릴 때에 그것이 실상으로서 내것이 되어지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의 소원이 어데 있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참 기쁨에 있고, 하나님 자체가 다 내것이 되고, 하나님 자체가 다 내것이 되고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존재가 다 내것이 되고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모든 원수 속에 그 전체는 이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는 내 구원이 되고 하나님이 또 역사하시는 모든 것 내 의식주와 내 부요가 되어지고 한다면 이 외에 더 구할 것 뭐 있습니까, 구할 것 뭐 있어? 이 외에 더 구할 것이 있습니까? 없어. 이만하면 충만하고 충만해요.
그러면, 내가 새삼스럽게 하나님 앞에 만들어 달라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새로 만들어야 됩니까 이미 나 줄라고 다 만들어 놨습니까? 나 줄라고 다 만들어 놨어.
만들어 놨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데에서 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믿지 못한 데에 누리지 못하는 이것뿐입니다. 알고 믿음 때에 우리 자신이 변화됩니다.
근본 겁쟁이가 담대함이 되고 담대한 자가 된다고 주관대로 담대한 게 아니라 담대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다 모든 것을 다 역사하셔서 내가 담대하니 부끄럽지 않게 하십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그 바라봄을 부끄럽지 않게 합니다. 왜? 바라보는 것이 헛일되면 부끄러울 것 아니요? 바라본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안하니까 부끄럽지 않습니다. 다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워지지.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을라고 애를 써서 깨달아야 되겠고, 그러기 때문에 여기 무진장이 들어가 가지고 있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렇고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그 창조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어떤 존재를 대하든지 그 존재에 대해서 만일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한다. 무슨 갑자기 무슨 지진이 났다 뭐 전쟁이 났다 이러면 그런 것이 닥쳤을 때에 거기에서 우리가 할 일은 뭐인가? 할 일은 뭐인가?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할 일은 뭐인가?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과 인자를 베풀고 계시니 하나님의 인자라, 하나님이 나를 자비히 여기신다, 나를 사랑하신다 이렇게 만 생각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뭘로 어떻게 해서 나를 사랑하시나 고것을 바로 알아야 된다 그 말이요, 바로 알아야.
공연히 모든 존재, 이 모든 존재들이 뭐 막 벼락이 나고 야단이 되는데도 '이 모든 존재는 나를 다 하나님이 인자히 여기셔서 창조하셔서 이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나에게 인자를 베푸신다 인자를 베푸신다' 고렇게만 알고 있으면 소용이 없어. 뭣을 통해서 어떤 방편으로 나에게 인자를 베풀고 계신다 고걸 알라 그 말이오. 고걸 아는 게 문제라.
통틀어서 하나님의 모든 창조 그 전부는 하나님이 나에게 인자하셔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모든 존재로 하여금 나에게 인자를 베푸는 역사를 하신다 하는 것이야 전체로 아는 것이지마는 이 내 현실에 대해서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느 존재가 나에게 어떤 방편순서로 나에게 인자를 베풀고 계시나 하는 고것을, 고것을 발견하는 데에서 싹수가 있습니다.
고걸 발견하고 고 다음에 고 사실, 천 가지 만 가지면 다 아니라. 고 사실인 고 실상인 고것, 고것을 발견하고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잘 힘쓰면 알게 될 터인데,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는 네 가지로 생각하십시오. 우리 현실에 하나님 자체로서는 모든 피조된 존재들로서는, 모든 존재들이 막 뒤죽박죽 이래 여여서 오고 가고 이렇게 분주 복잡하게 되어 있는 이 복잡에서는, 또 나에게 대한 그 안보나 의식주나 이 모든 데 대해서는 내가 생각하기를 '어느 것이냐? 어느 것이 나에게 이 현실에서 주님이 베푸시는 인자의 줄이냐? 인자의 줄이냐? 인자의 뭉텅이냐? 인자의 그 실상이냐?' 고것을 발견하라 그 말이요, 고거 발견해. 고거 발견하기가 어려워 고것을 발견하고 그 다음에는 주님이 요렇게 나를 인자히 여기시고 긍휼이 여기신다 하는 것을 내가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우리 주관은 완전히 변화됩니다.
믿을 때 우리 주관은 완전히 변화됩니다. 믿을 때에 주관은 완전히 변화되면 주관만 변화된 허공을 치는 것이냐? 주관이 변화되는 그것은 하나님이 네 가지 실상으로 이루신 고것을 내가 실상을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실상을 누리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영원한 인자를 네가 깨달아 감사하면 하나님이 이 네 가지 종류는 전부 너를 사랑하셔서 베풀어 놓으신 것인데 이 베풀어 놓으신 그것의 실상의 효력을, 실상의 혜택을 네가 실상으로 네가 누리게 된다 하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현실에 대해서든지 '여기에는 하나님이 내게 어떤 인자를 베푸시노? 무엇을 통해서 인자를 베푸시노? 어떤 종류의 인자를 베푸시노?' 하는 고것을 꼭 잡아서 '주님이 요것으로 나에게 인자를 베푸신다' 하는 것을 발견하고 믿을 때에 감사함이 나오고 자체도 변화되고 하나님의 베푸신 모든 것도 나에게 실지로 효력 있게 내가 그 혜택을 내가 누리게 됩니다.
주관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누리는 것이지마는 그 실상, 내 주관에 감정적으로만 누리는 게 아니고 실상의 효력을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현실에서 이 네 가지 종류로, 요 현실에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에게 지금 인자를 베풀고 계시는데. 요 현실에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자체가 내게 지금 인자를 베풀고 계시든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를 통해서 인자를 베풀고 계시든지 하나님이 섭리를 통해 가지고 인자를 베풀고 계시든지 하나님이 모든 이 만물을 가지고서 나에게 기업적으로 인자를 베풀고 계시든지 의식주 안보로 인자를 베풀고 계시든지 하는 고 계시는 그것을 통틀어서 도매금으로 이래 할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요 면으로 요렇게 나에게 인자를 베풀고 계신다는 고 개별을 고것을 깨닫고 믿을 때에 감사와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해지고 도매금으로 믿을 때에 든든하고 사실 실상 하나하나를 깨달아서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실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좀 깨달아집니까? 이런데 이 서부교회는 말이요 오면은, 땅에 말이 아니오.
세상에 박사들이, 세상 박사들이 오면 한 마디도 못 알아듣습니다. 한 마디도 못 알아 듣고 에이고 그 무식한 영감탕구 하나 강단에 앉혀 놓고서 뭐 말도 어데 사투리인지 뭐인지 모두 표준말도 아니고 앞뒤도 안 맞고 뭐 문맥도 안 맞고 말도 순 무식한 말 야만 말 그런 말 하면서 뭐이 무슨 말인지 암만 들어 봐야 내 무슨 말이지 모르겠더라, 무슨 말인고.
알 리가 있나? 알 리가 있나? 하늘에 속한 말씀을 하는데 땅에 속한 네가 들을 리가 있나? 이러기 때문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고 통달한 자. 그 지혜에 통달한 자는 숨기시고, 지혜 있고 통달한 자는 못 알아듣는다 그 말이오. 지혜 있고 통달한 것이 무슨 지혜로 지혜 있고 통달했습니까? 마귀 지혜로 통달하고 지혜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로 통달한 사람들입니까? 자, 그 세상 모든 지혜 있고 통달한 사람들 하나님 말씀 못 알아듣는 사람들 그 지혜 통달이 마귀와 세상으로 통달해졌습니까 하나님으로 통달해졌습니까? 세상으로 통달해졌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 저 뒤에는 왜 안 들어? 세상으로 통달해졌어, 세상으로 통달해졌으니까 많이 버려졌어 많이 버려졌어. 많이 썩어 졌어. 많이 어두워졌어. 많이 더러워졌어. 옳은 데서 거리가 멀리 떠나버렸어. 이러니까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지? 주님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늘에서 본 걸 말하지마는 너희들이 듣지 안하는도다.
너희들은 땅에 속했기 때문에 땅에 말을 하니 잘 듣고 하늘에 속한 자는 내 말을 잘 듣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말은 들리지 안하고 이 세상에서 뭐 세상 이야기, 또 도덕은 어째? 도덕, 이 세상에 도덕을 가지고서 뭐 사랑을 베풀라, 자비를 베풀라, 또 불우의 이웃을 도와라, 뭐 어째라 하니까 좋아서 말이 시원하다 하지마는 거기에다가서 사랑도 둘이 있다. 배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하나는 죽이는 독이 있는 사랑이고 하나는 영생시키는 능력이 있는 사랑이다. 사랑이 둘이 있다. 이라면 '별스러운 소리 못 듣는 소리 하나 하네' 그 사람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피에다가 끌어 붙여 가지고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고 아버지의 자녀가 돼서 영생하는 영생을 얻구로 해야 되지 그거 얻으면 소용없다 하니까 그 땅에 속한 사랑에는 그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라니까 '에이, 쓸데없는 말. 듣기 싫은 소리 무슨 소리를 해 쌓는지 그런 소리 모르겠더라.' 자, 이제 오후 오전에 설교하니까 뭐인지 전연히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 여기 많이 있어. 재미없는 사람, 에이고, 저 잔소리 그래 쌓아서 참 귀찮다 하는 사람 그 사람 세상에서 있는 지식도 그것도, 기역 니은 그것도 알라면 며칠 가야 되고, 학교를 가야 되고 또 이거 에이 비 씨 이것도 알라면 몇 해를 가야 되고 이런데 하늘에 생명 말씀이 그렇게 쉬울 것이라고, 제가 세상 일 마귀하고 합작돼 가지고서 일 년 내내 세상 일만 하고 교회는 찍해야 오전이나 한번 오고 그리 아니면 오후까지나 오고 새벽에도 한번도 안 나오고 성경도 한번도 보지 안하고 순 마귀 새끼가 돼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 당장 오는데 천국말이 들릴 거라고? 이 천국 말씀이 들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 성경 말씀 천국가는 말씀은 쉽다고 깔보는 그 큰 죄를 짓고 있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구역장이 '교회 나오십시오' 이래 끌고 나오는 것만이 나오는 게 아니라. 나오거든 안 되거든 저거 집에 가서라도, 예배당에 모여 가지고라도, 산으로 끌고 가서라도 이 말씀을 재독을 해서 한 말씀을 적어도 몇 십 번 재독을 들으면은 조금 알쏭합니다.
만일 이 진리를 깨닫고 나면은 굶어 죽어도 딴데 안 갑니다. 여기에 서부교회 가면 전부 막 죽인다 하고서 가에 병력이 둘러싸고 있어도 기어들어 오지 나가지 않습니다. 절대 안 나갑니다! 어데로 나갑니까! 안 나가!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나를 죽일라 하는 것은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쉽게 알아들을라고, 쉽게 알아 들리지 않는다고, 쉽게 깨달아지지 않는다고 그렇게 하는 자는 교만하고 망령된 자입니다. 망령된 자.
얼마나 들을라고 애를 써야지.
이러니까, 애를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서 깨닫고, 고 이치를 깨닫고 고 이치에 소망을 달고 고 이치에 뽈끈 붙잡혀서 고 이치를 어기고 가지 못하고 하는 고런 사람만 됐으면 냅둬요. 냅둬도 잘 자라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리가 만들어야 됩니다.
○○○집사님, 그렇게 지금 말귀를 알아듣는 교인이 자기 구역에 몇 사람이나 돼? 대충 한번 말해 봐. 얼마나 돼요? 몇 십 명 돼요? 얼마나 돼? 계수도 안 해 봤는가배? 몇 명이나 돼? ○○○권사님,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돼요? 그걸 몰라요? 그라면 안되지, 몇은 알아듣는데 몇은 못 알아듣는다. 아무것이 고거는 지금 알아 들을 듯 말듯 그래 가지고 귀가 열려 가지고 들을 듯 말듯 하고 있으니까 요걸 조금 힘을 써 가지고서 말씀을 듣게 만들어야 되겠다.
말씀을 알아듣게 되면 그는 서부교회 부근에, 서부교회 들어가면 막 총으로 쏴 죽인다 해도 꽉 둘러서 가지고 있어도 기어 들어오지 절대로 총 쏴 죽인다고 여기 피해서 딴 데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돈 때문에 이사 가? 형편 때문에 이사 가? 직장 따라서 이사 가? 사업 때문에 이사 가? 아직까지 진리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진리를 사람이 들을 때도 있고 깨달을 때도 있기 때문에 고 기회를 놓지 말고 들어 깨달을 수 있는 고 기회에 넣어서 알려 줘야되지 기회 지나가면 안 돼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이 뒤죽박죽 섞어 놓은 이 복잡한 원수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 구원하심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과 모든 의식주에 대해서 깨닫고 믿고 감사하는 데에 모든 행복은 다 들었습니다.
한 말로 말하면 이것을 알아 깨달아 감사하는 그 감사에서 모든 행복은 졸졸 다 나옵니다. 감사가 근거가 되지 못한 그런 모든 희로애락은 다 헛된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