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6:00
인인관계의 계명을 지키라
1988. 11. 20. 주일오전
본문:에베소서 6장1절∼9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 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들아 두 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 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 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요사이 계속해서 십계명으로부터 내리 오계명까지의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오늘은 이 계명 지키는 일에 있어서 다른 각도로 또 우리들이 알아야 될 것이기 때문에 증 거를 할려고 합니다.
우리는 두 큰 보응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피조물 보응 속 에서 살고 있고, 하나는 보이지 않는, 자존자시며 완전자시며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도 하시고 관리도 하시는 이 하나님의 보응 속에서 살고 있는 저희 들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늙으나 젊으나 강한 자나 약한 자나 할 것 없이 다 공평된 피조물 이 보응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피조물이라면, 이 물질계 피조물이러면 우주에 있는 전부는 다 피조물입니다. 이 피 조물 속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가 피조물 속에서 산 그대로 정확하고 공평된 보응을 자기가 받게 되는 것이 그것이 이 피조물계의 자유법이며 공평법이며 또 진리입니 다.
이래서 모든 사람들이 절대적인 이 제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불만하고 불 평하고 원망하고 또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스스로 자타를 속이는 그런 일을 하게 됩 니다.
그 말은 다른 조부라운 것으로 하나 예를 든다면,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에 다 같 은 토지에 농사를 지으면 그 사람이 노력한 대로 그대로 댓가가 나옵니다.
혹 생각하기를 꼭 같은 토지에서 저 사람은 수고를 적게 해도 많은 수확을 받았고 나는 많이 해도 적은 수확을 받았다 이래서 땅이 하후하박으로 그렇게 공평치 않는 그런 보응을 준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거기에 지혜의 활동과 몸의 활동이 있 는데 그 활동한 꼭 그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이래서 시골 농촌에서는 그런 전설들이 있습니다. '땅은 심술이 없다' 어떤 사람에 게 하후하박의 그렇게 그 용욕스러운 그런 행위가 없고 꼭 공평 정대하게 행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이 땅이다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피조물이라면 땅도 있고 또 모든 공기도 있고 햇빛도 있고 그 가운데는 생물 무생 물 식물 그런 것들이 다 섞여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자기가 그 가운데 살고 있으니 사람에게 어떻게 했든지 정당한 보응을 받고 또 이 공기 햇빛에 어떻게 자기가 상대 했든지 공평된 보응을 받고 또 사람들에게 대해서 어떻게 했든지 공평된 보응을 받 는 것이 그것이 이 피조물계의 정확한 보응 제도입니다. 이것을 사람이 변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자기가 미래적으로 좋은 것을 소망하면 좋은 보응이 올 수 있도 록 자기가 해야 되지 좋은 보응이 오게 하지 않고 그런 것을 기다리는 것은 다 그것 은 미신이요 미혹입니다. 또 자기가 좋은 보응이 올 수 있는 그런 일을 했는데 한 것만치 절대 그 보응이 삐뚤어지지 않고 정확히 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기 행한 대로 다 보응을 받고 있다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리 입니다. 이래서 피조물계에 이 피조물과 자기와의 어떠한 관계를 가졌든지 관계 가 진 그대로 이 피조물들은 정확한 보응의 대우를 해 줍니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땅을 원망하지 않고, 공기를 원망하지 않고, 햇빛은 원 망하지 않고, 그 모든 생물 무생물, 동물 곤충 이런 것들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이 모든 것이 공평된 보응의 이 절대적인 제도를 어길 수 없고 이제도는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까지는 그대로 지극히 공평하게 다 보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도 앞으로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은 자기를 단속하는 것과 또 자기가 모든 피조물과의 그 관계가 어찌 되느냐 하는 그 관계점을 찾아서 바로 하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이 피조물들계에 진리요 그것이 정도입니다.
바른 도입니다.
또 하나는 창조주의 보응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창조주가 그 사람의 언행 심사의 고 행동에 따라서 정확한 보응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래서 사람 은 피조물의 보응 세계에서 살고 있고 창조주의 보응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범죄한 후로부터 하나님의 정확한 보응을 받아서 다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게 된 것이 그것이 창조주의 정확한 보응의 결과입니다. 이래서 아무리 그 사람이 무신론을 주장하고 또 무슨 뭐 무슨 만능이라 무슨 만능이라 만능을 말해도 그 어리석은 소리지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그 보응을 아무도 불응할 도리가 없는 것 입니다. 불응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이 나서 죽는 것이 곧 불응하지 못한다는 그 증 거입니다.
이렇게 이 두 정확한 보응 세계에서 사람은 살고 있는데 조물주의 그 보응 세계에 서는 정확한 보응을 받아서 사람들이 본 지위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전부가 저주 일 로요 사망 일로지 거게 축복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축복이 있는 그것은 사람들은 혹 이종교 이런 모든 종교 유사 단체에서 저거의 그 주장을 따르기 때문에 복을 받는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마는 그런 것은 전연히 없 고 다만 그 사람이 피조물 보응계에서 자기의 행한 대로 보응을 받고 사는 것이 모 든 이 세상 사람들의 전 생애입니다.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독생자를 보내셔 가지고 이렇게 창조주의 정확한 보응 세계에서 멸망에 떨어진 사람들을 거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또 그 모든 잘못된 것을 그 공의에서 건지기 위해서 대형으로 사죄의 대속 을 했고, 대행으로 칭의의 대속을 했고, 대화친으로 영생하는 생명의 대속을 했고, 또 이렇게 모두 다 근거는 완전 설정을 해 놨지마는 그 완전 설정된 그 공로를 힘 입을 수 없기 때문에 힘입어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제는 영원한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신 큰 희생의 사랑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생 하는 이 생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리신 것은 진리로 살렸고 영감으로 살렸고 예 수님의 이 네 가지 대속으로 살리셔서 우리를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정확 보응 세계에서 완전히 멸망하였던 저희들을 하나님의 공평된 보응 세계에 우라 대신 이 보응을 받아서 완 전 멸망을 받으신 그로 인해서 우리는 멸망이 없는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완전 보응 세계에서 타락 한 그 자리에서 다시 본 자리를 회복을 가지지를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의 대속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보응 세계의 그 지위에 올라가지 를 못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람이 본 지위에서 타락했다. 그렇게 성경이 말씀했 습니다.
다만 피조물들의 그 자연 보응 세계에서 그대로 살고 피조물을 초월한 창조주 완전 자 영원 불변자 그분과의 관련된 보응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세상살이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세상살이로 끝나면 이다음에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해 가지고 그의 이 자연 보응 세계에서 살던 그 심판이 이 세상에서는 준비요 무궁의 그 보응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궁세계의 보응을 적응시키는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공평된 심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평된 심판에서 거게서 정죄 받으면 이제 영원한 유황 불 구렁텅이 영원한 사망으로 그때에 보응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안 믿는, 아직까지 예수님을 모 르는 사람을이 사는 거와 같은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그런 처세관을 가지고 살아서 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인생은 어떠하다'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가르 쳐 주신 대로의 인생관을 가지고 이 처세관을 가지고 모든 생사와 행불행관을 가져 야 합니다.
성경이 말한 대로 죽는 것은 무엇이며 사는 것은 무엇이며, 행복은 무엇이며 고통 은 무엇인가 하는 그것이 이 세상 지식과는 아주 판이한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된 그 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죽은 가운데서 진 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시 중생돼서 살리심을 받은 우리들인데 이것을 깨 닫지 못하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그런 자기인 줄 알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그 런 생각을 가지고 그 제도와 법도를 지켜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며칠 전에 교훈하기를 오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는 인인 계 명인데, 사람을 향한 인인 관계의 계명인데, 오계명은 부모에게 효하라, 또 육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라, 칠계는 남녀 이성에 성결하라, 팔계는 물질에 결백을 가져라, 구계 는 언어에 정확하라, 십계는 자기의 분수 이상을 탐하지 말아라 하는 그 여섯 가지 계명을 지키는데 이 계명 지키는 것이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한 가지 종류는 이 계명 지키기가 쉽습니다. 한 가지 종류는 이 계명 지키기가 힘 듭니다. 내나 오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를 지키지마는 지키기 쉬운 그 방편으로 지 키는 것은 그 지키는 효력이 이 세상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것은 이제 말한 대로 피조물들의 그 보응, 피조물들의 보응 그 세계만 향해서 했 기 때문에 그 행한 대로 세상에서 보응 받아 가지고 세상에서 상당한 효력을 얻습니 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무궁세계의 보응은 없습니다.
다만 오계로부터 십계까지의 그 계명을 지키는 데에 지키기 어려운 그 방편이 있으 니 어려운 방편 있는 그것은 지키기는 어렵지마는 그 지킨 효력은 이 세상과 무궁세 계에 그 효력이 있습니다.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무궁세계까지 그 효력이 계 속됩니다.
그러면 그거는 지키기 어려운 방편은 무엇인가? 어려워도 무궁세계까지 효력이 있 으면 그게 좋지 않느냐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계명은 지키기가 좀 힘이 듭니다.
이 세상에서 그 보응이 끝나고 마는 그 여섯 가지 계명 지키는 것은 그 계명 지킴 에 하나님은 먕놓고 피조물끼리 계명을 지킵니다. 오계명은 나를 낳아서 길러 주신 분이기 때문에 나는 효해야 된다 하는 것이요, 또 인인 관계에 박애의 이걸 가지지 않으면 자기가 사회에 자유가 없으니까 이래 하는 것, 모든 이 여섯 가지 계명 지키는 것이 다만 피조물들과의 관계만 생각하고 그 관계 에만 맞춰서 이래 지키기 때문에 그 관계 맞춰 지키는 데에는 방해자가 없습니다.
악령도 그거는 좋아하고 협조를 합니다. 그러나 이 여섯 가지 계명을 지킬 때에 지 키기 어려운 방편은 무엇인고? 이것은 창조주 조물주이신 주재자이신 그분의 명령을 따라서, 이 오계로부터 십계까지도,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인해 서 지키는 이 계명 지키는 방편입니다.
그러면 이 지키기가 좀 힘이 듭니다. 힘이 드는 것은 왜 그렇느냐? 첫째로 하나님 을 중심해서 하나님의 명령이니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 순종을 위하여, 또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의 기관이기 때문에 그 기관인 부모를 공경해서 효 를 하라 이랬기 때문에, 그 근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또 마지막 결말이 하나님 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에게서 발동해 가지고 마지막 결과로 하나님에게로 들아가는 것,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감이니라' 하는 이 성경 말씀대로 이렇게 하는 이 생애는 악령이 저희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해를 합니 다. 악령이 방해를 합니다.
또 사람들이 방해를 합니다. 왜? 오계로부터 십계까지는 인간 관계기 때문에 사람 들이 좋아하지마는 하나님을 위해서 할 때에는 그것이 인간의 비위와 엇갈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위주로 해서 사람 따라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따라 하 기 때문에 하나님 따르는 그 제도와 인간을 따르는 그 제도 둘이 상충돼 가지고 어 긋나게 될 때 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마찰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이 세상 법에서는 '네가 부모에게 효를 하되 죽고 난 다음에 늘 제사를 꼭 계속해서 드려야 된다' 하는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제도요, 또 하나님께서는 '네 가 그 부모를 공경하되 살아서 계실 때에 부모를 공경해서 효를 하고 세상을 뜨고 나면 부모를 네가 잘 성의 있게 장례를 지내고 또 장례를 지내고 나서도 일 년에 몇 차례든지 가서 찾아가 가지고 그 묘가 어찌 됐나 하는 그런 성묘를 하고 이래 하고 제사는, 거게까지만 하고 그 넘어서는 못 한다.' 이래 되기 때문에 그 일이 인간의 법도와 하나님의 법도가 달라서 마찰이 될 때에 여러가지 애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계로부터 십계까지의 지키는 것도 지키기 쉬운 방편이 있고 지키기 어려 운 방편이 있으니 쉬운 방편의 효력은 피조물들이 주는 것이요 어려운 방편의 효력 은 그 창조주를 상대해 가지고 지키기 때문에 창조주가 거게 대한 보응을 주시기 때 문에 피조물들의 보응과 창조주의 보응이 있기 때문에 그의 보응이 영생이요 다 영 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 이 오계로부터 십계까지를 지킬 때에 세상에 이런 이런 종교 저런 종교, 불교에서 그와 같이 하라 했다 유교에서 하라 했다, 선교 에서 하라고 했다, 뭐 이런 무슨 철학에서 하라 했다, 또는 과학에서 하라 했다, 무 슨 윤리학에서, 이 세상 이런 것 저런 것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는 그걸 따라서 하는 거 그것은 다 그것이 쉬운 방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 상관이 없습 니다.
다만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이 하라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그분을 위해서 하고 그 분 때문에 하고 그분 명령 순종으로 하는 그것은 거게 대한 보응을 하나님께서 다 책임을 지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연의 보응과 조물주의 보응을 겹쳐서 이 보응을 받기 때문에 그 보응은 쉬 끝나지 않고 그 보응은 세상으로 시작해 가지고 영원 무궁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이 세상살이 무슨 언행심사를 하든지 그것이 피조물 만을 상대해서 할 수 있고 조물주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입 니다. 그러면 하나는 쉽고 하나는 어려우나 어려운 것은 다 영생이 되고 쉬운 것은 세상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5절에 "종들아" 이 종들이라 했는데 이 종들이 라니까 우리 동양에서는 인식이 잘못돼 가지고 있어서 자기 밑에 서사라 하든지 또 무슨 자기 밑에 쓰는 무슨 총무라든지 또 자기 밑에 쓰는 무슨 사장이라든지 이런 것은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종이라 하면 아주 노여워합니다. 과거에 종 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둘로만 말했습니다. 부리는 사람을 가리켜서 상전이라 주인이라 그렇게 말했고 또 거게 쓰여지는 사람을 가리켜서 다 종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 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루 예를 들어 돈에 팔려서 갔으면 그날 하루는 돈을 낸 사람의 종입니다. 자기가 만일 은행에 무슨 은행장으로 하면 그 은행의 종입니다. 거게 그 월급에 팔려서 거게 쓰여지고 있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요 종이라 말을 노엽게 생각지 말고, 남에게 쓰여지는 사람은 다 쓰여질 때는 종이라 내가 쓸 때는 주인이라 하는 그것을 우리가 바로 인식하고 혼돈 안 해 야 합니다.
"종들아" 쓰여지는 사람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요것을 단단히 말했습니다.
"종들아" 요새는 지금 뭐 노사분규도 많이 났고 또 지금은 그저 이 성경과는 달리 노무자 세계가 됐습니다. 노무자 세계가 돼서 얼마 전에는 노사분규에 그 사장을 포 크레인으로 달아 가지고 저 공중에 하고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이 그래 가지고 그뭐 죽었다든가 뭐 그만 정신이 나가 가지고 그렇게 됐다 말 들었는데 이 성경제도를 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기는 누구를 두려워하느냐? 상전을 두려워하라는 말 입니다. 상전을 두려뭐하고 "떨며" 두려워하고 떨며, 잘못될까 해서 두려워하며 떨며, 그거야 뭐 하루 일하러 가 가지고 하루 일 할 때만 그렇다 말이지요. 일 할 때만 혹 상전에게 이거 잘못될까, 상전한테 내가 잘못될까, 주인에게 잘못될까, 오늘 내가 하 루 일하면서 잘못될까 두려워하고 떨어라.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성실한 마음이란 정성된 마음으로, 자기 그 사 명을 정성된 마음으로. 이거는 뭐 무슨 종이든지 은행장도 종이요 또 장관도 종이요 그거는 정치에서는 그 머리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종이요 또 대통령은 국민의 종이요 전부 이거 쓰여지는 사람은 종이요 쓰는 사람은 주인입니다.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정성된 마음으로, 정성되고 착실한 마음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복하기를" 육체의 상전에게 돈받고 내가 거게 종노릇하는 그 사람을, 주인을 가리켜서 육체외 상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육체 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 사람 시키는 대로 순종하기를,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주님에게 하듯 하여, 여게 주님에게 하듯 하여 라는 요 말은 그 하는 일이 다 주님에게 하는 것같이 그 말이 아니오.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주님에게 하는 것으로 하라 그말입니다. 주님에게 하는 것으로 하라.
이러니까 육체의 상전은 다만 사람들 보기에만 그러하지 실상은 네가 육체의 상전 그 속에 그리스도가 상전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면 서 너는 떨면서 두려워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 에게 하듯 해라 했어.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눈가림만 하여" 주인이야 속에야 뭐 압니까? 속은 그 속으로는 '이 놈의 집구석에 내가 오늘 이거 돈에 팔려 가지고 왔다. 이놈의 집구석 얼른 망해 버리고 내가 주인 됐으면 좋겠다.' 암만 그런 악독을 가지고 한다 해도 겉어머리 일만 잘하면 잘한 줄 알고 이렇지 속 이야 압니까? 그러니까 '눈가림만 해서' 사람들의 눈에만 뜨여지고 사람의 눈이 볼 수 없는 하나님만이 보시는 그 속은 제가 생각지 않고 일하기 쉽다 그말입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네가 사람만을 상대해서, 사 람은 눈으로 보는 것 그 이상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밖에 모르는 그 사람만을 네가 상대해 가지고 하지 말고 그말입니다.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요 처럼이라는 요 말이 똑 실화가 안 되 는 것 같고 제 삼인격같이 돼 가지고 요거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하는 그 말은 처럼이라는 말이 그 우리 말로는 말이 잘못돼 안 되는데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 말이오.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모두 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종은 그리스도는 알지 못하심 이 없으시니까 모든 걸 아시는 분이니 모든 걸 아시는 그분 앞에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그 말이오. 이 육신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비밀 은밀을 아시는 하나님을 상 대해서 은밀을 아시는 그분에게 조심해서 그분에게 걸리지 않도록 그분이 보실 때에 나쁜 것이 없도록 하는 그 그리스도의 종으로 네가 해라 그 말이오. 그리스도의 종 으로 하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네가 하는 것은 돈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돈은 그거는 자연계의 보응으로 너에게 오는 것이고 네가 오늘 하루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네가 땅위에 살고 그것이 네 구원이기 때문에 너는 오늘 여게 와서 남에게 종노릇 했기 때문에 그 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
그러면 그걸 잘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했어. 그것을 잘못했으면 오늘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했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그러면 모든 종노릇 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참 "단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섬기기를, 너는 돈에만 팔린 것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주께 하듯 하고 요것도 말이 잘못 됐어. 주께 하는 것으로 하고 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하지 말아라 요렇게 번역이 돼야 될 터인데 우리 나라 번역으로는 그렇게 된 데가 많아서 그 속 에 뜻이 바로 나타나지 못하는 일들 많이 있습니다.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 듯 하지 말라" 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하지 말아라.
8절에 "이는" 왜? 그럴 이유가 뭐이냐?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그 사람이 어떤 선을 행하든지, 선은 하나님 중심이 선이라고 배웠지요? 어떤 선을 행 하든지 하는 말은 어떤 일이든지 네가 하나님 중심으로 일을 할 때 말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일하는 사람 있고, 돈 중심으로 일하는 사람은 돈 그것 받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모두 다 하되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순종으로 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면, "이는 각 사람이 무 슨 선을 행하든지" 각 사람이 무슨 하나님 중심의 일을 했든지, 어떤 종류의 하나님 중심의 일을 했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종은 밑에 쓰여지는 사람이요 자유하는 자는 육체의 상전을 말합니다. 육체의 상전. 아무데에도 팔리지 않고 제일 제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이것은 자유하는 자라, 종이 아닌 자유하는 자라. 또 부리는 사람도 상전이요 곧 일면으로는 자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그러면 우리는 돈 보고 하는 게 아니고 사람에게 하는 게 아니고, 사람에게 하나 하나님이 그 사람을 써서 나로 하여금 그 토막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했기 때문에, 보기에는 내가 사람에게 하는 것이나 실은 주님에게 쓰여지는 것이요 또 내가 거기 온 것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사람이 외모로 보면 사람끼리 하는 것 같지마는 너는 네가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점에서 하고 있기 때 문에 이 비밀의 관계점을 네가 알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하듯 하 라.
"이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든지 하나님 중심의 선을 행한 일, 하나님 중심으로 한 일은 다 하나님께 그대로 갚음을 받는다 그 말이오. 그대로 갚음을 받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루에 나를 종노릇 하라면 종노릇 해야 되겠고, 상전노릇 하라면 상전노릇 해야 되겠고, 감옥에 가 있으라면 감옥에 가 있어야 될 것이고, 또 고문과 고형을 받게 하시면 고문과 고형을 받아야 하겠고, 또 사형을 받아서 죽으라 하면 죽어야 하겠고, 우리는 당신의 피에 팔린 자이기 때문에 당신의 뜻을 따라서 당신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순종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라, 그 하는 일에는 다 하나님이 거게 대한 공평된 보응을 베풀어 주신다 하는 것입니다. "받을 줄을 앎이 라" 공평된 보응을 받을 줄 앎이라.
그 다음에 9절에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같이 하고"상전들아 너희들도 밑 에 쓰여지는 모든 종들에게 이와같이 하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너도, 네가 그 사람을 쓴다고 그 사람 볼 게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그 사람을 줬기 때문에 네 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관리해야 될런지 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네 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네가 주인노릇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상전노릇 잘못하는 일 이 없도록 그렇게 하라.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공갈을 그치라 말은 네가 이 비밀 을 알지 못하고 하는 행동이 전부 공갈입니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고, 돈을 좀 더 줘 가지고 한다 덜 줘 가지고 한다, 요런 수단 저런 수단 해 가지고 다 만 그 사람의 주인과 네 주인이 하늘에 계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껍데기만 가지고 그 사람에게 네가 주인이라는 그 잘못된 자세라든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잘못된 관리와 지배를 하는 그런 일이 되면 그런 걸 총칭해서 공갈이라 그래 말해. '공갈이 라' 공갈이라는 것은 협박 비슷한 것인데, '공갈이라'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사람 보기에는 너는 상전이고 그는 종 이지마는 저와 너의 상전이 따로 있다.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하늘 에 계시고" 네 상전도 곧 하늘에 계시고 그 사람의 상전도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람은 네게 와서 지금 종노릇 하는데 너는 또 그 사람을 쓰는 것으로서 주님의 종 노릇 하고 있다.
너는 그 사람을 쓰는 것으로 하나님께 종노릇 하고 또 그 사람은 너에게 쓰이는 것 으로서 하나님께 종노릇 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세계 이 비밀 세계를 네가 상대 해서, 타락해서 인간이 타락한 본지위에 떨어진 그 죽음 생활 하지 말고 산 광명 생 활에서 네가 하라.
"저희의 상전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외모로 취하는 것이 없는 줄 앎이라, 외모라 말은 이 세상 제도를 말합니다. 이 세상 제도 이것이면 다인 줄 알지마는 세상 제도 이것은 무궁 세계의 그 제도를 지금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세상 제도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너는 상전이고 그 사람은 종이 니까 이것으로 그만 그대로 영원히 그거 계속될 줄 아느냐? 아니다.
이것이 지금 이것은 뭐 종으로 하든지 상전으로 하든지 다 쓰여지기는 하나님께 지 금 쓰여지고 있고 하나님은 거게 대해서 보응을 주시는데 이 자연계의 보응 세계에 서만 향하여 사는 사람은 그것의 보응 받다가서 멸망받고 마는 것이고, 그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생명의 길을 줬기 때문에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는 것은 너도 하나님의 종이요 그도 하나님의 종이요 다 하나님의 종인데 이 세상 제도 그것 으로서 영원히 그것이 고정되는 것 아니다.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 세상 제도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네가 지금은 상전이요 그 사람은 종이라 할지라도 네 행한 대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그 행한 대로 취하시고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너는 지금 그 자리에서 영원한 종의 위치를 마련하 고 네 종은 그 사람은 네 영원한 상전의 위치를 마련할 수도 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 제도 이것이 이 세상 제도는 꼭 같다. 위에나 아래나 다 하나 님의 종노릇 하기를 이 입장에서 하고 저 입장에서 하고 이런 현실에서 하고. 저런 현실에서 하는 그거 다 같은 종노릇 하는 것이고 다만 거게 대해서 영원한 보응으로 갚아 주실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외모의 세상적 제도 이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제도로 영원하리라 생각지 말고 이 보이는 제도 속에 영원하고 완전한 제도를 네가 향하여 거게 조심해서 올바른 보응의 결과를 네가 받을 수 있도록 그 세계를 향해서 살아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계로부터 십계까지 지키는 것도 이것도 사람을 상대해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해서 우리가 하든지 안 하든지 하는 게 됩니다.
택한 자들이 오계로부터 십 계까지를 지키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곧 사람만인 인인 관계만 되는 게 아니라 신인 관계가 되는 구속자들이기 때문에 바로 그 계명을 어기 는 것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할 때에 안 가려 하면 대 립 아닙니까! 하라 할 때에 안 하려 하면 대립 아닙니까? 하지 말라는 것 또 하려 하면 대립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하라 할 때 하고 하지 말라 할 때 안 하고 그라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 아닙니까? 여게서, 인인 관계의 이거 보응이라는 피조물 관계 의 보응 그것만 생각지 말고 신인 관계의 이 보응이 고차원의 보응이 있기 때문에 너는 오계로부터 십계 지키는 이 계명에서 하나님의 적도 될 수가 있고 하나님과 하 나도 될 수가 있는 그것이 여게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너는 공연히 껍데기 제도 이것만 보고 네가 거게서 얽매이지 말고 영원한 제도를 보고 속에 은밀한 그 참을 보고 나아가라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간추려 말하면, 하나님이 땅위에 정해 주신 이 모든 법도를 피조물과 의 관계로 맺어지고 있는 그 모든 법도를 우리들이 지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요 이것을 어기면 하나님과 대립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적질 하지 말라 했는데 지극히 작은 거 하나 걸리는 것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과 적이 되기 때문에 조그만한 걸 탐해 가지고 하나님 뺏겨 버리지, 진리 뼛 겨 버리지, 영생 뺏겨 버리지, 하나님의 축복 뺏겨 버리지, 마귀란 놈은 요렇게 해서 어쩌든지 그 참 억억만분의 일도 가치 안 되는 사소한 죄를 가지고 무한한 그 큰 축 복을 뺏기게 만드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하는 것인 것을 깨닫고 우리들이 오 계로부터 십계까지를 지켜야 되겠고 또 이 모든 사회의 제도 생활을 할 때에 우리는 사회 제도 그것만 보지 말고 사회 제도 속에 하나님이 그 제도 속에서 나를 살라고 했기 때문에 거게서 하나님과 나와 동행할 수도 있고 하나님과 원수될 수도 있고 하 나님의 축복 받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우리들은 어두운 세상에 있어 하나님의 절대의 법도의 이 도리를 하나도 짐작 못 하고 지척 모르던 저희들인데 주님께서 이렇게 주의 말씀으로 우리를 모든 것을 바 로 알도록 올바른 지식으로 가르쳐 주시고 알아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이 멸망에서 주님의 대속으로 구출하시고 오늘에 모든 피조물만을 상대해서 사는 여게서 조물주 를 상대하여 피조물 떠난 이 생명의 차원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비밀을 깨닫고, 잠시 잠깐 후면 준비 기간 세상을 두고 가야 되는 이 사실을 깨 닫는 눈이 밝게 하사 항상 살아 있는 것만 보지 않고 세상 떠날 것도 생각하고 무궁 세계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성신의 지혜와 총명을 저들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들은 주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이제는 크고 작은 모든 복잡한 것들을 다 주님에게 고해서 주님의 인도도 받고 치료 함도 받고 고침을 받아서 염려없이 세상을 잘 지내어 나그네로 지낼 때를 후회없는 생애를 이루어 주님 앞에 서게 하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 남모르는 여러가지 어려운 수고한 거 다 주님의 심정이 그 속에 불붙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더욱이 주님의 사랑 으로 저들에게 충만케 하사 남은 여생이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복음 위해서 마지막 바쳐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