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07:40
우리의 구원
1982. 3. 3. 수새
본문: 로마서 1장 15절 - 17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저 뒤에 안 들립니까? 저 뒤에 들립니까? 저음을 없애고 고음만 남구소 저 뒤에 들립니까? 네 지금 안 들리는데 있으면 손들어 표해 주십시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는 이 말씀은 복음이 어떤 때나 어떤 때나 어떤 것에나 어떤 곳에서나 복음가지고 못할 것이 없다. 복음 가지고 부족할 것이 없다 하는 그말입니다. 어떤 곳에서라도 복음으로는 다 할 수 있다. 어떤 때라도 복음만 하면 다 된다. 어떤 일이든지 물건이든지 어떤 것에 대해서라도 복음 가지고 못 할 것 없다. 복음이면 다 된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자람을 느끼지 않는다 하는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에 제일 선진국이라 할 수 있고 또 세계 제일인 입법을 가지고 있는 그 자랑스러운 로마입니다. 그 로마에는 인간의 자유성을 그때부터 옹호하는 아주 발단의 걸음을 걷고 있는 로마이기 때문에 종교라 하는 것은 다 몰려와 가지고 종교 자유를 가지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뿌리박고 있는 온갖 종교 온갖 사상 온갖 지식들이 다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새로운 도가 들어가기가 참 힘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도와 정 반대의 도가 하나님의 도이기 때문에 인간의 도로써 가득 찬 그곳에 인간이 만든 도라면 뭐 어떤 도라도 다 종류가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박해가 없지마는 복음은 로마에 그렇게 수많은 종교 수많은 사상 수많은 지식 자유와 이렇게 싸워서 이 복음으로써 전부를 대항해서 나가야 되는 이런 곳인데 바울이 말하기를 로마에 가 가지고도 복음을 전하기를 지금 하나님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어려운 곳에 가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려고?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가지고 못할 것이 없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 말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가지고 암만 복음이 좋고 복음이 능력 있다고 말하지마는 이렇게 하나님의 도를 전하기가 그 어려운 이 험악한 로마에도 복음가지고 가능할 수가 있다 말이냐? 가능할 수가 있다. 우리가 어린아이에게는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잘 듣고 조금 장성하면 복음을 잘 안 듣고 또 세상 지식이 좀 많은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면 더 안 듣습니다. 그때에 로마는 세계의 최고로 복음 전하기가 어려운 복음의 대적 그 인본이 가득 찬 곳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 가 가지고 복음 전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 복음 하나 가지고 로마에 있는 전 문화와 전 종교와 전 사상과 전 자유와 대립해서 싸워야 하는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가지고 모자라는 것이 없다. 복음가지고 안될 때 없다. 복음은 전능이다. 이러기 때문에 복음 하나면 다 되는 전능의 전능의 복음이기 때문에 어데든지 복음만 내 놓으면 된다. 여기에서도 복음 가지고 되느냐? 복음가지고 된다. 저게도 복음 가지고 된다. 이 일에는? 이 일에도 복음이면 된다. 지금도 복음이면 된다. 어느 때 어떤 장소 무엇에 대해서든지 복음이면 다 될 수 있는 이것을 나는 믿는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이 무엇이기에?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믿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는 폭발이다. 복음은 믿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는 능력이다.
폭발이다. 복음은, 믿는 자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복음은 어떤 강하고 억센 거라도 그것을 다 박살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이다. 또 이 복음은 받는 자에게 폭탄이다. 받는 자에게 큰 폭탄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복음이 뭐이기에? 이 복음가지고 못할 것이 없는 복음은 만능이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만능이라 말입니다. 권능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무엇이기에?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것을 홀로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주관자이시며 주재자이신 이 하나님이신 데 보이지 않는 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 무한한 하나님의 평강 이 하나님의 무한하심으로 모든 존재가 생겨졌는데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나타나는 능력이다. 이 복음 속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폭발되는 능력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가지고 못할 것 없다.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은 믿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데서든지 복음가지고 못할 것 없다. 복음가지고 모자라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복음 그 까짓 거 가지고 안 될 것이 없는 것을 믿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 하나면 다 됩니다. 그 가정이 아주 파멸된 가정이라도 복음이면 그 파멸을 다 깨트리고 거게서 건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은 아무리 그 죽음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것이라도 이 복음이면 거게서 살려낼 수가 있습니다. 또 아무리 온갖 깊은 죄 가운데에 깊이 파묻혀 있는 그 자라도 이 복음이면 거게서 캐내 가지고 살릴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가지고 못할 것이 없고 복음은 전능이다.
전부 다 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이다. 이렇게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성신의 감화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에게 기록영감이 임했을 때에 그는 사람이지마는 정확무오의 일을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잘못됨이 없는 정확무오를 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성경 기록한 이 성경기록으로 믿는 사람은 정확무오가 가능하다 하는 것을 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으로서 영원히 영원히 추호도 틀림이 없는 이 완전을 이루는 정확무오가 택자들에게는 가능한 이 가능할 수 있게 그 능력을 가져 그 능력의 생각이 생각할 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 했다.
그러면 성신의 감화는 우리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복음가지고 미진하거나 미달하거나 모자라는 그런 감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이것이 성신의 감동될 때입니다. 성신의 감화가 우리에게 오는 것 만치 내가 성령에게 붙들린 것 만치 내가 전적 삐뚤어진 자인데 삐뚤어진 자가 바로 된 것 만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것이 증거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의 증거입니다. 성신의 감화가 오면 우리 몸을 뜨겁게 하고 우리에게 뭐 불이 붙게 하는 그런 것은 우리 마음이 뜨거워질 수 있고 깨달음이 인정이 뜨거워질 수 있고 욕망이 뜨거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신의 감화가 오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사람이 조그마한 일, 이렇게 크고 어려운 이것도 복음 같이 된다. 그것이 뭐이냐? 성신의 역사의 차이입니다. 그 사람이 성신의 은혜를 많이 받았느냐 적게 받았느냐 하는 그 차이는 이것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복음가지고 무엇이든지 일이 있으니까 이 일도 이 일 복음가지고 하면 된다. 이 장소에도 복음가지고 하면 된다. 이때도 복음가지고 하면 된다. 그 어데든지 복음을 내 놓습니다. 복음이면 만능이라 복음이면 전능이라 복음가지고 못할 것 없어 복음가지고 로마 같은 그런 나라에도 복음하나 가지고 된다 말이냐? 복음 하나만 된다. 복음이 뭐이기에? 복음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 창조 또 창조의 것을 보존 또 창조의 것을 운영하는 승리 이래서 둘을 모아서 셋 둘을 모아서 하나 파괴도 하고 건설도 하고 뽑기도 하고 심으기도 하고 하는 이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인데 이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인데 이 능력이 복음 속에 다 들었다. 이 능력이 복음 속에 다 들었다. 그러기에 복음 하나만 하면 다 되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복음 속에 하나님이 다 들었으면 그 복음 속에 하나님이 다 들었으면 그 능력만 가지면 된다는 말이냐? 그 능력만 가지면 되는데다가 또 하나 더 있다.
뭐이냐, 복음은 인간 구원을 일으키는 폭탄이다. 복음은 폭탄이다. 복음은 폭탄이다. 조그마한 뭐 화약이지만은 있어도 제가 그 보니까 제가 일본가 가지고 석탄 불에 가서 잠깐동안 한번 좀 몇 달 동안 그것을 한번 구경을 했는데 아주 조그만 합니다.
요만한데 짊어지고 가 가지고 그 구멍 뚫고 그 안에 넣어 놓으면 아주 서글프지마는 도화선에 불을 딱 당겨 놓으면 그만 뭐 큰 여물고 큰 석탄들이 다 깨져서 한 무더기 내려앉습니다. 아주 적지마는 폭발이 되면 폭발이게 심히 강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폭발이다. 하나님이 나타나는 폭탄이다.
파사 나라에 전국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그렇게 졸라대고 왕까지도 똘똘 뭉쳐서 다니엘을 죽이기로 했는데 그 때에 다니엘은 눈도 꼼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무슨 배짱을 가지고 다 다니엘이 그렇게 배짱 좋게 간 크게 그렇게 날뛰었던가 큰 무기가 있습니다. 큰 무기가 있어. 뭘 믿고?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폭발물이다.' 이제 이렇게 여문 환경이 나를 몰아 쏴놨으니 여기에 서서 내가 복음만 가지는 여기에서는 여문 환경이 나를 몰아 쏴놨으니 여기에 서서 내가 복음만 가지는 여기에서는 큰 폭발이 되어서 이 파사 나라가 뒤집어진다하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과연 그는 복음을 가지고 그 파사 나라의 전부를 홀로 이 복음가지고 대항했을 때에 과연 이 복음은 그의 믿음을 통해서 폭발이 됐을 때에 그 다니엘을 죽이려고 하던 그 나라는 정 반대로 뒤비져서 다니엘을 해하는 자는 저거가 죽이려고 왕이 선포를 하고 당장에 하나님 멸시하던 그 나라에 관인 전부가 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제일 높이고 섬기는 것으로 완전히 박살이 됐습니다.
반대하던 게 박살 됐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 가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복음만 복음가지고 모자랄게 없다. 왜 너는 무식한데 무식도 문제없다. 복음이면 된다.
네가 병신인데 병신이라도 복음이면 된다. 상대방이 이렇츰 억세고 강한데 그까짓 거 복음이면 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가지고 부족하다 여기지 않는다. 복음가지고 모자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없다. 복음가지고 모자랄 것이 없다. 복음이 뭐인데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보이지 않는 이 하나님의 능력이 이 복음을 통해서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이 복음을 통해서 폭발이 되도록 하나님이 나타나고 보이지 안 하는 하나님이 이렇게 나타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보이지 안 하는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고 이래서 이 복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건설이 하나님의 파괴가 하나님의 복수가 하나님의 보상이 보기 시원치 않지마는 이 복음을 통해서 폭발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으로서 파괴시킬게 없고 건설하지 못할게 없고 구원하지 못할게 없고 안될 일이 없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려면 하실 수가 있지마는 무슨 그런 계약이 있느냐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평안하게 피조물을 평안하게 안보 하는 이 보존도 복음으로만 하기로 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지음 받은 모든 만물을 인간만이 아니라 택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음 받은 모든 것을 이 복음 하나 가지고 그것을 잘 보존해서 안보하기로 되가지고 있다.
복음 외에는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것이 복음 외에 다른 것 가지고는 보존될 게 없다. 하나님이 당신이 없는 가운데 지으신 것을 이것을 복음으로만 안보 하도록 하나님이 이렇게 정해놨다.
또 복음으로만 살리고 복음으로만 기르고 복음으로만 평강을 누리고 이 복음 안에서만 생명과 평강에 속한 신령의 생명 신령과 생명에 속한 것이 이 복음에만 복음에만 있도록 딱 한정해버렸다. 딱 국한을 시켰다.
그러기에 이 복음 밖에는 마치 노아 홍수 때에 방주 밖에는 사멸뿐이지 사(死)멸(滅), 죽고 멸하는, 사멸뿐이지 거게는 생명이 없었던 거와 같이 이 복음이라는 큰 구원의 뱃속에 이 여기에서는 생명과 평강과 구원이 있지 이 밖에는 없도록 하나님이 딱 해 놔버렸다. 자, 복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복음은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이 복음을 통해서 폭발된다.
그런데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영계 것이나 물질의 것이나 이 복음 안에서만 생명과 평강을 얻지 이 복음 밖에는 생명도 평강도 없다.
전부는 이 복음 안에서만 생명과 평강을 얻지 이 복음 밖에는 생명도 평강도 없다. 전부는 이 복음 밖에는 멸망뿐이다.
이 복음 안에서만 되게 되었다. '내가 네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다 이루리라 포도나무가 포도나무에 붙지 아니하면 절로 마르고 불에 탄다 너희가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그 안이라 그 말이 복음 안이라 그 말이요.
그러면 복음이 뭐이냐? 복음은 하나님의 의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망에 속한 파멸을 하나님이 해결 지으시고 피조물의 모든 사멸을 하나님이 이 사멸을 다 치료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모든 건설을 하나님이 해 놓으시고 또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가 되어 가지고 하나가 되어 가지고 살 수 있는 이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 복음이다. 이게 복음이다.
하나님이 모든 병들고 망하고 죽고 모든 멸망에 속한 이 멸망을 하나님이 이것을 다 깨끗이 정리하고 치료해 놓은 것이 복음이다.
또 모든 생명과 평강의 건설을 하나님이 이렇게 해 놓으신 하나님이 이렇게 해 놓으신 이것이 복음이요. 피조물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영원히 밀접하게 요렇게 결합을 딱 만들어 논 이것이 복음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을 이 일을 하시려고 오셨어.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대속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의 의 이것을 모든 파괴를 다 완전히 치료해 놓은 것이 사죄입니다.
대행으로 치료해놨소. 대행으로 망할 것을 당신이 대행하고서 당신이 대신 망하고 망할 것은 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대행이요 사죄 받은 것입니다. 당신이 대신 완전 건설을 일으켜 논 것이 대행입니다. 대행으로 칭의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 이 사죄의 높이와 길이와 깊이 샘이 이것을 하나님이 해 놓습니다. 모든 파괴를 완전히 이것을 수축해서 이 파괴를 완전히 치료해서 완전히 치료해서 완성으로 완성으로 구해놓고 또 당신이 친히 모든 면에 완전 건설을 일으켜 놓고 그는 파괴를 완전해결 건설에 대해서 완공의 해결 이랬지마는 조물주가 서로 의견이 틀리면 탈입니다. 이 조물주와 벌어지면 절단입니다. 이런데 조물주와 영원히 벌어질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하나님이 치료한 모든 파괴를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치료다. 복음은 하나님의 완성시키는 건설이다. 복음은 하나님과 영원히 결합을 일으키는 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다.
이런데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 복음으로만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로 돼 가지고 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의가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이 의가 나타나기를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폭발적으로 보기에는 아주 허무한 것인데 그 허무한 것을 통해서 인간이 상상 못할 만치 크게 나타나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로마의 이렇게 파괴시켜서 이렇게 치료할 것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뭣 가지고 하느냐? 이 복음은 로마에 있어서 모든 죽고 사는 것을 다 치료할 수 있다. 이 복음은 로마에 영원히 충족하고 모든 면의 부족함이 없는 모든 건설을 이 복음이면 할 수 있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이런 로마나 하나님과 결합을 시킬 수 있다. 이 복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이 복음 하나 들고 나는 다 외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렇게 믿은 것이 성신의 감화가 왜 그가 인간으로서 정확무오의 일을 할 때의 그때의 영감이 이 영감이라.
인간으로서 정확무오한 일을 할 그때의 영감의 이 영감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믿는 그 믿음을 가졌을 때에 그 영감 가지고 기록한 이 기록은 획 하나가 이 천하는 없앨 수 있어도 그때의 획 하나도 없앨 수 없는 이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애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 아름다움이 다 없어지지마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거는 다 없지마는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는 그 말씀이 곧 너희들에게 전해진 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이미 건설해 놓은 이 복음이 일으켜 논 복음이 역사해 놓은 이 복음 속에 하나님이 일으켜 논 이 보배를 받을 수 있고 이 보배를 알게 하는 것이 성령이요.
이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이 복음을 써먹게 하는 것이 성령이요. 이 복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성신의 감화요. 이 복음을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이것이 성신의 감화요. 이 복음가지고 어데든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렇게 충만히 마치 폭발처럼 이렇게 나타나게 하는 이 폭발역사를 하게 하는 것이 성신의 감화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에 이 복음이 어떤 이미 내용을 가지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병들고 죽고 상하고 파괴되는 모든 한말로 말해서 사망에 속한 것을 완전히 치료해 놓은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 속에 완전 치료가 들었습니다. 우리가 차지하면 됩니다.
이 복음 속에는 하나님이 건설해 놓은 모든 좋은 생명과 신령과 평강이 모든 것이 그 속에 가득 들어 있습니다. 이 복음 속에는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 된 자라도 하나님과 영원히 버려질 수 없는 이 칭의를 일으켜 논 것이 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 속에 있는 걸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또 이 복음은 그 실효성이 얼마나 되는가 실효성이 능치 못할 것이 없어 이 복음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어 전능이라 복음은 전능이라 복음 그거 가지고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이 복음으로 모두 생각지 않는다. 이 복음이면 다 된다. 이 복음을 우리가 복음의 그 실효성 우리에게 복음의 실효성이 이 복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실효를 가졌느냐 하는 이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데 이 복음을 두고 얼마 되지 안 하면 토끼꼬리 만한 그 지식을 이 복음을 두고 토끼꼬리 만한 자기의 모든 선천 좋은 유전을 타고났다고 선천 후천의 것을 이 복음을 두고 제 무슨 그 열심이나 능력이나 자기의 건설이나 자기의 이력이나 자기의 만들어 논 그 무엇을 나타내는 거는 정말로 어리석고 미련하기가 짝이 없는 자이요. 이렇게 충만한 것이 있는데 왜 이거 버리고 거짓 것은 사망된 걸 그것을 나타냅니까 나타내기를 복음 안에 무엇이 있는 것을 우기는 알아야 되겠고 믿어야되겠고 이 복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우리는 또 믿어야 하고 이 복음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이 복음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하고 또 이 복음은 보잘 것이 없지마는 이 복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다 모두가 다 폭발적이다.
강한 그 무신론 그 세계에 와서 조그마한 입으로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십시오.'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전하고 그 사람이 목 베임을 받아 죽었으니까 그것은 없어졌다 했는데 이 복음으로 그 나라가 복음화 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도 이 복음화 된 것이 이리 됐습니다. 복음은 폭발물이라. 그거 뭐 요만한 것 하나 넣어 논 그까짓 거야 아주 서글프지마는 이것이 때가 되어서 폭발될 때에는 모든 것이 그 앞에 다 파괴되고 건설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관계에 영생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의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능력이다. 복음은 폭발물이다. 어떤 게 폭발되느냐? 복음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신 그분이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그분이 모든 지으신 영계와 물질계에 그분이 없는 가운데 지으신 그분의 그 모든 능력이 피조물들에게 폭발됩니다. 나타납니다. 이 복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분을 통해서 뭐이 나타나는데 그분을 통해서 모든 불의가 다 파괴로 개조가 되고 모든 건설될 것이 생명과 평강이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무궁하신 그 속성이 이 복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잔인 악독이 가득 찬 거기에 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된다.
이렇게 절망 속에 이 수 천길 무저갱 속에 파묻혀 있는 그 자에게 이 소망의 폭발이 나타난다. 그런고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이 복음인데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그런데 이렇게 능력 있는 이 복음을 능력 있는 복음을 무엇을 가지고 자기의 복음을 삼을 것이며 이 복음을 무엇을 가지고 써먹겠느냐 아무리 좋은 복음이지마는 이 복음이 내 것이 아니면은 나는 이 복음에게 절단만 나지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파괴만 당하지 내게는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복음 외의 것은 전부 전멸인데 복음밖에는 전부 전멸인데 이 복음을 내 것을 삼지 못하면 무슨 소용 있나? 이 복음은 내 것을 삼으려면 믿음으로만 내 것 삼을 수 있다.
이 복음은 믿음으로 삼을 수 있다. 내 것을 삼아 놨다 할지라도 이 복음을 써먹지 못하면 이 복음은 믿음으로 써 먹을 수 있다. 그러기에 믿음만 하면 된다. 믿음만 하면 복음을 차지할 수 있고 믿음만 하면 이 복음을 살릴 수가 있다.
그러면 믿음이 대체 뭐이냐 믿음은 참 보배로구나 믿음이 뭐이냐? 믿음은 하나님이 네게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너를 인도하시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반 쪼가리 믿음이다. 이것은 죽음이다. 이 온 천하 사람이 이것은 사는 것이라 하는데 이것은 생명이라 하는데 복음이 그 죽음이라고 합니까? 내가 너를 너에게 가르치는 것 너를 인도하는 것을 내가 믿어야 되고 인정해야 된다. 옳다 인정해야 돼. 네가 먼저 신구약성경에 이렇다 저렇다 모든 것을 말해 놓은 이걸 내가 인정하는 것이 이것이 반 쪼가리 믿음입니다. 요거 반 쪼가리 믿음이다.
그 다음에는 네가 내가 말하는 것을 인정하는 그 인정을 만 분의 일을 인정했든지 천 분의 일을 인정했든지 인정한 고것을 정말로 그런가 하고 시험적으로 해보든지 어쩌든지 마음으로 인정한 그것을 실행을 해봐 실행하면 온전한 믿음이라. 온전한 믿음이냐 온전한 믿음이 되기 때문에 믿음이 된 그만침은 복음은 벌써 네 것이 됐고 벌써 복음을 네가 사용했기 때문에 좀 있으면 폭발된다. 좀 기다려라 좀 있으면 폭발이 된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서계시로 말씀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반 쪼가리 믿음인데 문서계시로 인정한 속에는 이 문서계시를 기록하게 한 그 능력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정확무오하게 이 문서계시를 기록하게 한 그 영감이 문서 계시 안에 있어 그에게 필요한대로 얼마든지 정확무오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그 능력이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 속에 들어 있는 영감입니다. 복음 속에 들어 잇는 영감이니 문서계시로 나타난 이 복음을 네가 인정하면 이 문서 속에 너에게 필요한 것을 이 복음을 기록한 것이 이 복음이 획 하나도 틀림없는 정확무오하게 한 이 성격 성질로 이 복음의 문서계시를 내가 참되다 인정을 하면 요 문서계시를 인정하는 그 속에 무한함을 너에게 정확무오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복음을 기록한 그 영감이 이 복음 속에 들어 있다.
이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게 한다. 네가 문서계시에 하나님의 가르쳐 주심을 인정하면 이 안에 무한의 정확무오의 영감으로 연속적으로 너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문서계시를 인정할 때에 그 안에 무한의 계속 영감 계시를 너희가 인정하게 된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 네가 인정하고 이것을 행할 때에 이것이 믿음이 다 네가 이것을 문서계시를 행하면 영감계시를 행하면 영감계시를 행할 수 있는 이 행함으로 나아가게 된다.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 크게 말해서 문서계시를 자기가 옳다 참되다 인정하려고 할 때에는 온 세상을 다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하나만 믿지 둘을 믿을 수 없는데 복음은 이 사망에 속한 세상 것과 반대되기 때문에 이게 복음을 믿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것은 세상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믿음 문서계시를 네가 인정함으로만 내 속에 영감계시를 네가 또 인정하게 되지 문서계시를 인정치 않는 자에게 영감계시의 인정을 될 수가 없다.
문서계시를 받지 못하는 자가 영감계시를 받을 수가 없다. 문서계시를 인정치 않는 자가 영감계시를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 고 태산을 올라갈 때에 한 자국 밟아 올라가니까 또 고 다음에 한 자국 떼면 사람이 올라가 봤자 찍해야 한 장정이면 두자 그리 안 하면 자가 홋산에 가면 자가 홋 밖에 못 가요. 한 자국에 자가 홋 밖에 못 걸어가지마는 자가 홋씩만 자꾸 올라가다 보니까 여러 수천 미터 되는 이 삼천 미터 되는 이런 높은 산에도 저 한 만당에 떡 올라가 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믿음을 이루어지는 것 인정으로 인정에 점점 올라가게 됩니다. 인정으로 인정에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순종으로 순종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기에 문서계시를 영감계시를 인정으로 문서계시 인정해서 영감계시 인정으로 나아간다 네가 문서계시 순종으로 문서계시 실행으로 영감계시 실행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크게 말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인정 행함이 믿음이요.
그런데 이 믿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갑니다. 이것을 세부적으로 말하면 네가 어렵게 힘쓸 필요가 없다. 성경 연구가 신앙입니다. 그 속에 있는 영감이 넉넉히 가르치고 남음이 있는데 사람에게 배운 것은 좀 가속도로 속히 하려하는 것이지 사람 없어도 좋다. 사람 없어도 그만 이 신구약성경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리이다.
법칙이라 하는 요것만 가지고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면 어데 까지든지 갈 수 있다. 네가 암만 다리가 짧아도 자꾸 한 자국씩 밟아 올라가면 된다.
신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네 속에 깨달아지는 것 다 못 깨달아도 고 중에 하나라도 이 성경이 이렇게 하라 하는 것이로구나 하면 고것 보스라기 고것 고거 하나 인정하고 행하고 보니 인정하고 행하고 보니 그 다음에 새로 인정이 나옵니다. 또 새로 인정 나온 그것을 행하려고 보니까 또 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앉은뱅이 같은 것이 인정실행으로 이렇게 한참 나가고 나서보니까 저 밑에 있는 사람이 앉은뱅이 그까짓 거 가는데 내가 못 가. 제가 갈라고 달라 드는데 어떤 사람이라도 올라갈 수 없을 만치 벌써 천 미터 올라왔소. 천 미터를 올라왔소 저도 내가 올라간 그 방편으로 제가 올라와야 되지 그 방편 아니면 날라 오는 그런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지극히 작은 하나 인정으로 점점 그 인정이 커져가고 지극히 작은 실행으로 점점 그 실행이 커져 가는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보배로운 복음을 얻는 방편으로 줬기 때문에 여기에 서서는 불평을 품을 수가 없어. 이유를 달수가 없고 믿음으로만 써먹을 수가 있는데 이 믿음은 누구든지 처음에 이 믿음을 단번에 가질 자가 없고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는 조그마한 믿음가지고 큰 믿음 되고 큰 믿음가지고 아무도 강도처럼 이 무슨 도박의 인간처럼 이렇게 이 복음도 제가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는 이 방편 취하지 안하고 다른 방편을 취하려고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앉아 가지고 연구해서 다 하려고 어림도 없습니다. 어림도 없소.
네가 이 믿음을 차지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조그마한 거 깨닫고 인정하고 실행하고 나니까 고 다음에 또 깨달음이 자라가고 깨달음이 자라가고 깨달음이 자라가고 실행이 자라가고 인정이 자라가고 이것이 자라 가는 것 만치 복음은 내 복음 되고 복음은 네가 써먹은 것 되고 이 복음으로써 폭발은 나타나게 된다 하는 이것입니다. 이 외에 길이 없소.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자는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이 복음 앞에서 다 깨어집시다. 이 복음 위에 모든 것 다 내놓고 이 복음 하나 가지고서 우리는 모든 것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을 차지하는 것도 믿음이요 이 복음을 쓰는 것도 믿음이요. 이 복음으로 폭발시키는 것도 다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 총공회가 지난밤으로서 끝났는데 오늘 아침에 우리가 다 헤어져 가겠는데 이 복음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아침에 네시 조금 전에 일어나 가지고 제가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이 말씀을 증거하라는 것이 내 생각에 넣어줬습니다. 입에 넣어줬습니다. 내 입에 넣어줬어 내 입에 넣어 줘서 이 말씀을 증거하겠다 하는 것을 그때부터 작정을 하고 그래 나왔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직접 주십니다.
내가 천국에 서기관이 될 자격 있어 그런 것 아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위해서 이런 때 저런 때 그 교회 교역자라면 그 교회에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천국 제자 된 자입니다. 천국 제가 된 자 제가 변동만 안 하면 천국의 제자 된 자니 천국 제자 된 서기관마다 곡간에서 옛 것과 세 것을 내다 쓰는 주인과 같으니라 주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서기관들의 말을 들으라 그들의 행함은 본받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말을 들으라" 왜 지켜 행하라 왜 그들을 하나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세웠기 때문에 그는 멸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세워서 그를 통해서 나타냈기 때문에 행하면 너희들에게는 구원이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은 주님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나를 통해서 당신이 말씀하신 것이요 마지막으로 믿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는 믿음의 성장 법은 이것뿐이다. 복음은 이렇게 능치 못함이 없는 복음인데 하나님이 오셔서 친히 이 복음을 만들어 논 복음이다. 이 복음은 세 가지가 완성되어 있는 이 복음이다. 이 복음은 능치 못 할 것이 없다. 이 복음은 그 형태가 시작할 때는 보이지도 않는 미약한 것이지만은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의 폭발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복음은 믿음으로만 네 것 만들 수 있고 믿음으로만 네가 사용할 수 있고 믿음으로만 이 복음의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이제 복음 하나님 더 요구할 것이 없구나 하는 우리가 돼야 되고 이렇게 좋은 복음이지만은 내가 믿음이라는 도구가 아니면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이 믿음이라는 복음을 차지하면 믿음이라는 도구 이게 하나 믿음과 복음 있으면 됐다. 이외에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이 요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이 복음을 거슬리는 자는 사망이요. 이 복음으로 사는 자는 그는 생명과 평강 뿐입니다. 어데서나 무엇에서나 아무 때나 상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