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구원

 

1980. 9. 4. 목새

 

본문 : 디모데후서 1장 9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우리의 행위대로 구원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면 우리의 행위대로 아니란 말은 우리가 생기기를 이렇게 생기면 이런  행위하고, 저렇게 생기면 저런 행위를 합니다. 명철하게 생기면 명철한 행위를  하고 어리석게 생겼으면 어리석은 행위를 하고, 우리 생긴 것과 행위가 하나인데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 이 말씀은 우리 생긴 대로 함이 아니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 날 때부터 좋은 유전을 받아서 아버지 어머니가 그  요소가 좋아서 좋은 유전을 받아서 선천이 좋고 또 좋은 가정에 태어나서  후천적으로 모든 것이 구비하게 잘 되었고, 그면 그 안 믿는 생활들이 쓰는  말인데 그 자꾸 그건 다른 말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씁니다. 안 믿는 생활이  선천이라 말은 나기 전에 타고난 걸 말하고, 후천이란 말은 나고난 다음에 이런  것, 저런 것 수양된 것을 가르쳐서 후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이 좋고 나쁘고 그것대로 구원된 것이 아니라 그 말이요. 순전히  하나님이 이 생활에게는 은혜를 이렇게 주고 저렇게 주고 하신 그 은혜 주신  그대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는 이 말씀입니다. 그면 그 구원이 이루어지면  언제부터 언제까지냐? 영원한 때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러니까 끝이 없는  것입니다. 시작은 있었지마는 끝은 없는 구원입니다. 영원까지니까 영원이니까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면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대로 된 것이 아니면  무엇대로 됐느냐?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자기 뜻과, 자기 뜻대로 됐다. 자기 뜻대로 한 말은  하나님의 뜻이란 말입니다. 그 목적도 하나님의 뜻이요, 예정도, 창조도, 섭리도  다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능력대로 입니다.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면 그리스도는 영존하신  하나님이시지마는 예수님은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그분을 가리켜서  예수님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나타나신 년대는 이천 년 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면 그리스도는  영원 전에 계셨지마는 예수님도 영원 전에 있었다는 것을 여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라는 하나님과 또 하나님의 역사 안에 이 목적이 작정됐다 그 말입니다.

그면 예수님이 도성인신해서 나타나시기는 이천년 전이지마는 창세전에 또  하나님의 예정 안에, 하나님의 목적과 동시에 존재한 것을 여게 나타냅니다.

예수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역삽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역사 안에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그라이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구원 역사 역사는 하나님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  가지고서 구원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인데 그면 모든 만물 창조는 다 예수 안에서  된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된 것이요, 예정이 다 예수 안에서 된 것입니다.

나타나시기는 이 시공세계에 나타나시기는 이천 년 전쯤에 나타나셨지마는 그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조물을 만들어가지고 우리 구원을  하시려고 하는 그것은 벌써 목적과 동시에 했다 그기요.

그리스도는 영원 전에 하나님과 동시에 계셨고, 내나 하나님이시고,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은혜대로 하심이라.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은혜를 이렇게 줬으면 이렇게 되고 은혜를 저렇게 줬으면 저렇게 되고 주신  은혜대로 된 것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잘 이룬 자도 자기라도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뜻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로  말미암아 된 것 같으면 자랑하지마는 순전히 하나님의 뜻과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또 아무리 지옥가고 아무리 그 허무하고 악한  자라도 그 대해 가지고서 우리는 멸시를 해서 교만할 수는 없습니다. 그걸  평가는 합니다. 저 악하다 더럽다 이런 것은 정평 정가해야 되지마는 서도  하나님이 나는 뜻과 은혜로 해서 된 것이지 내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만할 수도 없고 그들을 멸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된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은혜대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만들어지는 그것이 사람으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것과  순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과 그 중량이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중량이 어떻습니까? 사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그 중량은 뭣만큼 중량이  있겠습니까? 사람만큼 중량이 크지요. 순전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면 그 중량이 뭣만큼 있습니까? 하나님만큼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기 구원 아니라도 구원 이루어진 모든 구원이 하나님이  이루시기 때문에 그 내 구원이 아니라도 남의 구원을 멸시를 못합니다. 남의  구원 멸시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 멸시가 됩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구원을 잘  이뤘다 할지라도 자기 구원을 자기 힘으로 이룬 것같이 여기고 자랑하면 그  사람은 구원 이룸을 받은 자기 하는 기 아니고 그 구원은 벌써 옛사람이  차지해가지고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옛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구원이룬  구원받는 사람이 아니고 옛사람이 벌써 구원 이뤄 놓은 것을 그것을 자기 것이  안 되지마는 서도 제 것처럼 여겨가지고서 가증스러움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좁으라운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를 모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 지식이 왜 필요하냐? 필요한 것은 세상 지식 그거는 인간  지식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런 지식 저런 지식 모든 지식을 알면 인간의 그  범위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범위를 , 인간의 범위를 알면 세상  지식을 쪼꼬매 가진 생활은 인간의 범위를 조금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알고 그러기에 앎에 차가 있습니다.

그거는 앎의 차가 무슨 차냐? 인간을 앎에 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그것은 모릅니다. 그것은 그것을 초월해가져  있기 때문에 모릅니다. 인간 지식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은 그들이 모릅니다.

게 그들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 지식으로 인간의 범위를 알 수가 있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가 있고, 인간 세계를 알 수가 있고, 인간 세상을  알 수가 있고, 인간의 모든 활동을 그의 모든 심리와 공작 그런 것을 세상  지식을 가진 것만큼 많이 넓게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서는 그게  뭐이냐? 이것이 666입니다. 7이라는 7수에 도달하지를 못했습니다. 7수가  아니라면 이것이 제일입니다. 최고요.

그 위에 7수가 있기 때문에 최고가 못 되는데 이것은 암만 많아도 6이 되고, 더  많으면 60되고, 더 많으면 600되고, 더 많으면 육천 되고 더 많으면 육만 되지  그 선을 넘어가지 올라가지 못한다 그 말이요. 6이라는 그 수 암만 많아봤다  인간지식이지 인간지식을 그 뛰어올라간 인간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지식에는  도달하지 못 한다 그깁니다.

그러기에 인간 지식을 많이 아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어데 필요한가? 세상에  필요한데 이것이 그 위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을 당하면 이 모든 인간  지식이 망하는 지식이 다 살아납니다. 살아납니다. 그것이 죽은 지식이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에 복종하면 산 하나님의 지식에 이렇게 피동이 되니까 산  하나님의 지식에게 피동 되니까 이것이 아무리 이거 줄은 마이크 줄은 죽은 거  아니요? 죽었지마는 내가 산 내가 거머쥐고 흔들 때 흔들리면 이 지금 마이크  줄은 내 삶의 힘에 산 내 힘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산 움직임을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것이 이대로 있으면 죽지마는 내가 이것을  작용을 하니까 여게 지금 필요 있게 활용하고 있다 이기요.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다스림을 받을 때에 죽은  지식이 산 지식에게 이용이 되니까 그 지식도 산 지식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 지식은 다 사망선 아래에  있는 것인데 인간 지식 이것이 하나님의 지식에 복종치 안하면 그 지식은 삶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 복종  되지 못하고 속하지 못하게 되면 그 지식이 많은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많은 것은 죽음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예? 죽음이 많습니다. 적으면 죽음이  적습니다. 또 그 지식에 그것이 하나님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그 지식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꼭 둘을 받아야 되겠는데 예를 들면은, 둘을 받아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지식 둘 받을 때에 세상 지식 없는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 둘을  받았는데 둘 안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둘을 받았는데, 세상 지식 많은  사람은ㅎ의 지식 둘을 받지 안하고 하나만 받았습니다. 왜 너는 하나만  받았느냐? 나는 세상 지식이 저 생활은 없는 세상 지식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은  나와 같은 세상 지식이 없으니까 하나님 지식, 하나님의 것을 둘을 받았지마는  나는 이 세상 지식이 있기 때문에 저 생활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저  생활 둘 받는데 나는 하나만 받아도 저 사람 둘 받은 것을 저 사람이 받은 거와  같을 수가 있다 이렇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 인간지식이 무엇을 대신하지요? 무엇을 대신했지요? 뭣 대신했습니까?  인간 지식이 뭣 대신했지요? 노영자씨, 뭣 대신했지? 동상이몽이라더니 마는  서도 둘이 부부 자면서 꿈은 딴 꿈꾸는 거와  하는 거 모양으로 여 지금 예배를  보면서도 이 자리 앉아서 지금 생각은 딴 생각하고 있는 기라. 수입 많이  보는구만, 설교 듣고 또 자기 딴 생각하고, 그기 얼굴에도 나타나는데 우리 둔한  인간 눈에도 나타나는데 하나님 앞에는 얼마나 나타나겠소?

게 인간 지식을 무슨 대용으로 했지? 하나님의 지식으로 대용했습니다. 그면  인간 지식 그것이 죽은 것이 많다고 해서 산 것을 대용할 수 있습니까? 그게  많으면 죽은 기 많은 것이지 대용을 못하는데, 이것으로 죽은 것으로 산 것을  대용할 줄 알고 아무리 대용해서는 안 된다 안 된다 해도 인간이 대용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대용을 하되 어떤 생활은 많이 하고 어떤  사람은 적게 하고 하는 것뿐이지 대용을 전혀 안하는 사람이 참 됐으면 완성인데  그거 되기 어렵습니다.

그만 이 대용을 많이 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적게 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적게 한 사람이 복 있소. 대용 안 한 사람이 복 있소? 대용 안 한 사람은 자기를  어떻게 한 사람이지? 예? 저 사람, 호경이 삼촌? 대용을 안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한 사람입니다. 게 대용을 안 하면 하나님의 것을 대용을 안 하면 그것이  망령하고 가증한 그런 이제 죄를 안 짓게 됩니다. 대용도 안하고, 그거는 쓰지도  안하고 그것을 아예 포기해 둡니다. 포기하게 되면 그게 유익입니까? 해입니까?  예? 유익입니까? 햅니까? 햅니다. 해가 됩니다.

그만 대용해도 안 되겠고, 이걸 써먹지 안하고 포기해도 안 되겠고, 그면 어째야  됩니까? 하나님의 것이 이거 죽은 것이기 때문에 죽었는데 하나님의 것이 연결이  되면 살아나게 됩니다. 죽은, 얼어죽은 사람이 손도 새파래졌고, 발도  새파래졌고, 속에 생명이 접선이 되면, 생명이 돌아오게 되면 생명의 힘에서  차차 차차 혈맥에 혈기가 돌고 신경이 움직이고 이래가지고서 그 손발이  살아납니까? 안 살아납니까? 살아나면은 죽었던 것이 살아나면은 없는 것보다  낫습니까? 못합니까?

죽은 것이 살아났는데 어떤 사람은 팔이 하나 없는데 죽었으니까 없으나 있으나  한 가지지만 서도 살아나고 보면은 죽었던 그것이 없는 것이 좋습니까? 많은  것이 좋습니까? 많은 기 좋지 않소? 그게서만 비로소 살아날 수가 있고 효력을  발생할 생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은 요것을 하나님의 지식에게 소속해서 아 그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에게 이용당하는 요렇게 이용을 안하면 안 되는데 요렇게 이용하면 효력이  나는데 요렇게 이용을 할려고 하다가 그만 요렇게 이용을 해보니까 효력이  나거든, 요렇게 이용을 해보니까 효력이 나서 요것이 없는 사람과 요것이 있는  사람과 제 눈으로 비교를 해보니까 요것을 고게 소속시켜 이용을 해보니까 없는  사람보다 제가 효력이 큽니다. 유익이 있습니다. 유익이 있으니까 고 유익에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고 유익에서 아 없는 사람보다 요거 유익하니까 있는  것이 효력 있소? 없소? 네? 있는 것은 효력이 있겠소? 없소? 어? 666의 그 있는  것이 효력이 있소? 없소? 와 대답을 안 해? 효력이 있어? 없어? 효력이 확실히  있지. 효력이 확실히 있었지. 효력이 있는 것을 저도 보고 다른 사람도 본다  이기요. 효력이 있었어.

효력이 있으니까 없는 자와 있는 자기와 비교해서 효력이 있으니까 또 없는 자가  없는 것과 저 사람 많은 것과 비교해보니까 효력이 있거든, 있으니까 없는 자도  아 저기 효력이 있다. 있는 자도 아 내가 이것이 효력이 있다. 효력이 있다는  고게서 착각을 해서 요 효력은 없는 사람보다도 있는 내가 효력이 더 있으니까  요 효력은 하나님의 요소를 저 사람은 없으니까 하나가 이루어졌는데 나는 있어  둘이 이루어졌으니까 자기에게 있는 고걸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대용, 대신 할  수가 있다고 착각하는 고게서 실패가 나옵니다. 알아듣겠습니까?

게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여기 읽어봅시다. 듣기만 하시소. 고린도전서 1장  26절인데,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니까 예수 믿는 가운데는 이런 것 세상 것 좋은 사람으로서 훌륭한 사람이  적고 오히려 세상 것 그 없는 사람 모자라는 사람 그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왜 세상 것 많은 사람 그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를 안했습니까? 안한 이유가 뭐인고 자 한번 대답해보십시오. 고것만  대답하면 곧 마칩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까지 몇 말했지요? 18 말했는데 오늘 아침에 그 좀 더  말해서러 이 30가지를 말해줄라고 했는데 요것이 더 필요해서 요것을 말하고 고  다음에 또 언제 시간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게 세상 것 많은 사람들이 왜 그것  많은 것이 효력이 있었소? 없었소? 효력이 있었지요. 효력이 있었습니다. 이런데  효력이 있으니까 그거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많을 긴데  오히려 예수 안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지를 못해요. 큰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사람들은 그것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를 못해. 왜 그게 현저히 효력이  있는데 와 그렇습니까? 많지 못한 그 이유가 어데서 잘못돼 가지고 그렇습니까?  그자 잘못된 고것이 어데서 잘못됐느냐? 아 고 잘못된 고것이 어데서 잘못됐는지  고 잘못된 그것이 몇 군데서 잘못됐지요? 몇 군데서 잘못됐소? 자 한번  해봅시다. 첫째로 고걸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대용할 수 있는 줄 알아서  하나님의 그 은혜 대신으로 썼다 말이요. 하나님에게 받는 거 대용품이 될 줄  알고 대용으로 쓴 고게서러 고기 실패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것은 전혀 필요 없다고 다 쓰지 아니하고 아주 포기해서 던져버린 데서  그것이 실패가 됐습니다. 또 고것은 그것대로 쓰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대로 쓰고 양쪽에 이렇게 이럴 때는 이래 쓰고, 저럴 때는 저래 쓰고 오리가  물속에 들어가 가지고서는 그 날개를 가지고 헤엄을 치고 발과 날개로 헤엄을  치고 또 날아갈 때는 나는 날개로 쓰고 하는 것 모양으로, 물에 들어갈 때는 발  사용하고, 날 때는 날개 사용하는 것 모양으로, 세상에서는 그 지식 사용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에게 받은 지식을 사용하고 양쪽에 두 가지를 이것  사용하고 저것 사용하고 이렇게 사용했다 말이요.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소. 전부 하나님의 것만 사용해야 되지 이러니까 이것을  이것 쓸 때는 이것 쓰고, 이것을 쓸 때는 이것 쓰고, 이렇게 양쪽에 각각 나눠서  이것을 살 때는 이것으로 살고, 나눠서 살 때에 사는 고게서 실패. 또 대용하는  데에서 실패, 이것을 전부 포기한데서 도 실패, 손해봤다 말이요, 올라갈 긴데  그걸 가지고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아주 그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것으로만 이렇게 전적가면은 그 되지마는 그 다 포기해버리니까 그 안 된다 그  말이요.

그 하나님 앞에는 능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세상 것을 다 활용한 사람들이  능하게 됐기 때문에 적게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활용하는데 많이 가진 사람들은  폐단이 생긴다 그기요.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가난은 돈  가난뿐이 아닙니다. 지식 가난도 가난을 말한 것입니다.

적게 가진 사람은 그것을 활용을 잘하고 바로 쓰는데 많이 가진 사람들은 폐단이  생겨지드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자 세상적으로 육체로서 육체로라 말은  세상적이라 말인데 그런 것으로 풍부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력한 분들이  적은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세상 것을 많이 가진 그것이 어떻게 잘못돼  그렇습니까? 몇 가지로 잘못 됐습니까? 3가지로 잘못 됐습니다. 3가지로 잘못된  것, 요걸 꽉 잡아서 하면 이것이 삽니다.

3가지로 잘못 된 것, 이것을 잡아서 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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