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금

 

1984. 11. 1. 목새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니' '세상의 소금이니' 하는 이 말씀은 너희는 이  김장에 쓸 소금이니. 김장에 쓸 소금이니. 이 김장 소금이니 하는 그 말  한가지입니다. 김장 소금이니, '너희들은 세상 소금이니' 이거는 장 담을 장  소금이다, 장을 담을 소금이다. 또 김장할 김장 소금이다, 너희들은 세상을 김치  담기 위해서, 맹물 같은 세상을 간장을 만들기 위해서, 세상을. 이거 비유인데,  세상을 이 소금화되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소금이라 그 말은  지난밤에 세 가지를 말을 했습니다. 소금에는, 소금이라는 간 뭉텅이입니다. 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금 뭉텅이에 간을 뽑고 나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간 뭉텅이가 소금 뭉텅이입니다. 이와 같이, 이거 비유인데, 이와 같이 우리는  세 가지 뭉텅이어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피뭉텅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 뭉텅이. 대속 다 전하고  보니까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소금이 간을 다른데 전하고 보니까 소금  뭉텅이는 콩알만한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성령님의 감과 감동 영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또 하나님이 게약해 놓으시고 교훈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이  진리를 전하고 나니까 그거 전하는 데에 쏵 다 녹아 버리고, 녹아진 거는 전부  소금으로 녹아진 거와 마찬가지로 녹아진 거는 전부 예수님의 대속으로  녹아졌고, 사죄로 녹아졌고 칭의로 녹아졌고 하나님과 화친으로 녹아졌고 그 세  가지로 녹아졌고. 영감으로 녹아졌고. 진리로 녹아진,  녹아져서, 우리가 녹아진 것만치 그것은 뭐로 녹아졌느냐?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녹아졌기 때문에 녹아진 그것이 어디로 갔느냐? 녹아진 것만치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가 접해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가서 다 간이 돼 버렸습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가서 사죄로  염색했고 또 칭의로 화친으로 염색해서 예수님 대속의 공로로 물들여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것이 됐고, 영감의 것이 됐고 진리의 것이 돼서 베 쪽에다가 색깔  물을 염색하면 그 베는 무슨 베든지 횐 그만 푸른 물들이면 새파란 베 조각이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악령 악성과 악습으로 물들어 있는 모든 사람을 이  세 가지로 그것을 탈색을 시켜서 그런 것을 다 옛사람인데 그런 것을 벗기고  새사람 입게 하는 데에는 희생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간칠. 썩어가는 세상을 썩지 않도록 하는 이 방부제 또  세상이 완전히 인간의 가치를 잃고 있는, 인간 맛을 잃고 있는 인간의 가치를  잃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조성하는 거 이 두 가지를 할  재료를 우리가 가졌고 이 세 가지로 우리에게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가지고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것이 전달되서 그들이  변화되고 이래서, 이 간으로 완전히 변화되고. 색깔도 변화, 외모도 변화되고,  질도 변질되고, 또 행위도 완전히 동화돼서 변동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인데, 이렇게 하는 데에는 소금이 녹아지는 거와 같이 이것이 이 간은  녹아지지 않고는 간이 다른데 가지를 못한다 이 세 가지 능력은 희생하지 않고는  이 세 가지 능력이 다른 것에게 전달되어 가지 못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우리는 전달해야 될 우리들인데 우리가 녹아지는 방편 외에는 전달되는 방편이  없다. 녹아지는 방편으로만 전달된다.

 그러면 녹아진다고 하면 사람은 한정이 있는 것인데 자기를 이 세 가지로  인해서 희생하게 되면 그것이 유지되느냐? 안 믿는 사람들의  하는 일은 자기를  희생하면 희생한 그것만치 그것이 없어지고 다시 복구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없어졌으면 없어졌지 다른 변동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접을 붙여져서, 조물주에게 접을 붙여  가지고서 조물주에게 연결된 것이 되기 때문에, 피조물이.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둥치에 붙는 거와 같이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연결된 이 행위라 이  행위가. 예수님이 이 일 하셨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된 자들이 이 일 하는 것은  조물주에게 연결된 행동이기 때문에, 창조주에게 연결됐으니까 무진장의 진액이  올라온다. 이래서, 얼마든지 올라온다. 그래서 연보 이치로, 심는 자에게는 씨를  주시고 양식을 주신다, 심으면 더 주고 심으면 더 주고 자꾸 더 준다, 그러기에,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희생한 자는 여러 배 혹 백 배도 받는다'  그러면, 그 말씀에서 그러면 백 배 천 배 얼마든지 받는다 하는 것으로 우리가  그 도리를 들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리 되면 어찌되느냐? 이리 되면 가장 피조물 중에는 보배롭게  쓰여지는 창조주에게도 필요하고 피조물들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되어진다.

창조주와 피조물에게 제일 필요한 존재가 되어진다. 그러나 기독자들이 이  간으로 자기를 전부 되게 하는 것과. 자기가 이 세 가지 간 뭉텅이. 소금 뭉텅이  모양으로 이 세 가지로 자기 전부 되는 거, 예수님 대속과 영감과 진리의  뭉텅이가 되는 거. 주님의 사죄의 사람이 되고 영의 사람이 되고 진리의 사람이  되고. 둘째는 이렇게 해서 주님의 대속으로 대속으로 자기가 희생하고. 대속으로  희생하고, 대속을 위해서 희생하게 아니라 대속의 것이 돼 가지고 대속으로  희생하고, 영감을 위해서가 아니고 영감을 위해서가 아니고 영감으로 희생되고,  진리를 위함이 아니고 진리로 희생되고. 자기가 진리가 돼 가지고 진리로  희생되고 이렇게 하면 쓸데없는, 맛을 잃으면 쓸데없는 거 되고, 이 세 가지로  희생하는 이 일을 하지 안하면. 세 가지가 없든지, 예수님의 영감 진리 이 세  가지가 없든지 이 세 가지가 있다 할지라도 생을 안 하든지 하면은 이거는 맛  잃은 소금이니까,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는 하나. 녹아지는 거 하나 이래서 이 두  가지가, 두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으며 맛 잃은 소금 되고,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아주 맛있는 소금 되고. 비유입니다. 맛있는 소금 되고, 이러니까, 맛있는  소금이 되면 아주 조물주와 피조물들에게 쓸데없는게 아니라 제일 요긴하게  쓰여지는 것이 된다 하나님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되고 모든 피조물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심지어 음부와 마귀에게도 다 필요한 존재가 되어진다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밖에 버리는 거와 같이. 쓸데가 없으면 밖에  버리는데, 맛을 변하면 밖에 버리는데 맛을 그대로 지니고 그대로 좋은 소금같이  좋은 기독자가 되니 밖에 버리는 반대로 안에 영접한다. 밖에 버리는 거 반대로  안으로 영접한다.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로 영접한다. 만물이 영광의  찬미로 영접한다. 모든 피조물들이 중보자로 영접한다. 예수님께서 신인 양성  일위로 말미암아 모든 택자의 중보가 되었고 택자들은 예수님의 중보로 말미암은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 모든 아직까지 부름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다 중보가  되고 그 밖에 모든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다 중보가 되어진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과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 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됐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의  중보로 인해서 네가 이런 자 됐기 때문에 네가 그대로의 행하면 하늘과 땅의  것이 다 너에게 속하고, 너는 그들에게 주고 그들은 너를 바라보고 사는 그런 참  만물 안에 영접함을 받는다. 하나님의 보좌로 영접함을 받는다.

 만물 안에 만물 안에. 만물 안이라 말은 형체로만 생각하면 밖의 것이 크고  안의 것이 작은 걸로 생각하지마는 이 국토 안에 백성이 있고 백성 안에 이  정부가 있고 정부 안에 거기에 왕이 있다. 그러면 왕이 제일 크다. 면적적으로는  그렇지마는 그분이 제일 크고 크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물들이 너희들을  영접해서 만물 안에 너희들을 모시게 된다.

 '밖에 버리워' 안으로 영접하여, 잃으면. '맛 잃으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맛을 가지면 모든 피조물들에게 존귀함을 받게 된다. 잃으면 거름에도 쓸데없는  존재가 된다. 믿는 사람을 위해서, 불택자는 믿는 사람의 거름입니다. 불택자는  믿는 사람의 거름인데 너는 불택자가 아니기 때문에 택자에게 거름도 되지  못하고 아무짝도 쓰지 못한다. 네가 이 맛을 지니고 소금의 직책을 하게 되면  너는 거름에도 쓸데 없다 하는 네가 모든 피조물 들에게도 유일한 너는 필요의  것이 되고 조물주에게도 필요한 것이 되어진다 하는 그것을 지난밤에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생각해서 실행을 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지난 화요일날 아침에 말했는데, 제가 이상 중에 뭣을 봤는데 아주 어떤  분이 아름다운 새를 기르는데, 그 새의 종류는 내가 뭐인지 몰랐습니다. 보니까  털이 났는데 큰 거는 보니까 털이 어북 메초롬하이 나지는 안하고 전부 그 살에  날개도 표가 나도록 좀 났고, 또 어린 거는 겨우 노란 털만 나고 이랬는데, 제가  거기에 같이 수종을 들면서, 같이 새를 기르는 데에 수종을 드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또 그 기르는 분이 계시는데, 이 밖에 모두 다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모아 넣으라고 해서 내가 모아다가 이렇게 모아 가지고 한테로 넣으니까  큰 것이 자기보다 약한 것을 다 잡아 먹을라고서 고만 달라들어서 입으로 물어  가지고 놓지 안하고 자꾸 이라는데, 얼마나, 자꾸 놓지 안하고 빨아 당기니까  입이 째져서 입이 째져도 놓지 안하고 빨아당겨. 그래 내가 급하게 그것을 다시  나눠서. 안 놔요. 안 놓는 걸 이렇게 이놈을 입을 벌리고 당겨 가지고서 이렇게  하니까 피가 나고 이래 상했어.

 이놈 빼뜰어서 그래 따로 놓고 나서 내가 그래 그때 '이거 와 이럴까? 이게 왜  이럴까, 이래? 이상한 걸 보여. 이거 왜 이래 자꾸 잡아 먹을라고 할까' 이라고  나니까 거기서 대답이 없고 '뭣 때문인지 그런지 좀 생각해 봐라' 하는 그게  나와서 내가 생각해 보니까 '아, 이 작은 놈은 먹지 못해서 크지 못해서 작았고.

이 큰 놈은 먹어서 크기는 컸지마는 이놈도 먹지 못해 놓으니까, 생명은 있고  먹지 못하니까 그 새끼를 잡아먹을라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까  다 이 사고는 먹지 못한 거기에서 사고가 생겨졌다.'  이제 그라고 난 다음에 제가 그 이상에서 벗어나서 '이상하다. 이거 뭣 때문에  이게 이래 될까?' 그래 제가 대번에 척 깨달아지는 것이 '아, 이것이 하나님의  양떼들이다. 이게 다 성령의 운동들이다.' 그거 내가 비둘기인지 그거는  몰랐어요. 비둘기인지 그거는 몰라도 어쨌든지 그랬는데 그 먹지 못하다니?  어떻게 한자리에서 먹지 못했을까?' '어린 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달음으로 양식이 되어서 자라가는 것인데 들어 봤자 암만 들어도, 예배당에  와도 들어 깨닫지 못하니 그것들이 배가 고파서 자라지를 못한다. 암만 교회  주일은 지키고 몇십 년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하나님의 도리를 들어서  깨닫지 못하니까 그것이 자라지 못하고 고렇게, 다 같은 새끼인데 그렇게  자잔하이 해 가지고서 아주 곯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큰 것은  뭐일까? 그는 들어 깨닫는 양식을 먹고서 자라기는 자랐는데 그는 이제는  실행하는 실행을 해야 그것이 양식이 되고 자랄 터인데 실행이 없기 때문에 다  곯아 있다.'  거기에까지는 제가 깨달아서 해석을 했는데, '그러면 이 큰 것은 뭐일까? 아,  장성한 교인이겠다, 그러면 뭐일까? 권사님들, 장로님들, 권찰님들 집사님들, 또  주일학교 부장들. 반사들 다 이런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어린 거는 이거 새끼들은 아주 어린 교인인데 먹는 거는 그를  잡아먹을라고서 뭐 그렇게 애를 쓰나' 거기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니까 즉시  저에게 깨닫게 해 줬습니다. '아, 그것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행함으로  하나님을 먹는다. 행함으로 또 진리를 먹는다. 행함으로 예수님의 피공로를  먹는다. 행함으로 예수님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먹는다. 행함으로만 먹는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이니.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 참된  음료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자라가고 있다. 먹지 않는  자에게는 다 영생이 그속에 없다 이랬는데. 행함을 통하여서 하나님으로  부요해지고, 행함을 통하여 예수님의 대속으로 부요해지고, 행함을 통하여  진리로 부요해지는데. 행하지 안했기 때문에, 들어 깨달음으로써의 자라는 그런  분량은 자랐지마는 이제 깨닫고 행함으로 자라야 될 것은 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이 면이 자라지를 안하고 있다' 하는 그것으로써 제가 깨닫고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운 사과를 하고 그렇게 그날 새벽에 새벽 예배 인도하러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월요일날 어떤 권찰과 함께 동행하는데 내게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저를 보고는 깨닫지 못하고 남을 보고는 깨닫는 것이 그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그랬던 모양이오. 그를 보고서 내가 말하기를 '권찰님이 일을  하되 엉뚱한 거 가지고 일을 한다. 양떼들을 먹이지 안하기 때문에 그 양떼 길러  봤자 다 쭉댕이다. 아무 힘이 없다. 앞으로 환난 오면 전부 쭉댕이로서 다  그것은 절단나 버린다. 그것은 권찰 말하기를 '권찰 네가 네 사람 만들지 하나님  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너는 하나님 사람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 제 사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때 그 대화하는 가운데서 자꾸 그런 말이 이래  나오니까 그 권찰님이 견디지를 못해서 그만 그 말 나온 후로부터 울었습니다.

울면서 나중에. 갔다가 이제 서로 나뉠 때까지 울음을 가지고서 이렇게 눈물을  가지고 이렇게 나뉘었는데. 그때까지는 그분이 마음에 그 듣는 것을 옛 사람이  들었지 새사람이 듣지를 못했습니다. 옛사람이 들어서 섭섭하다 분하다  분개함으로 눈물이 흘렀지 '내가 과연 이거 사람을 기르는데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내 사람을 만든다' 하는 거기에 대해서 마음에 애통하는 그런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옛사람이 분개한 눈물입니다. 분개한 눈물이든지 어쨌든지  그 눈물은 필요있는 눈물인 것은 그 속에 심령을 충격줬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다시 그것을 또 치료하기 위해서 내가 그날 밤에. 그날 밤에 두 사람이 어떤,  나하고 동행자 어떤 남자하고 둘이 그 집에를 갔습니다. 가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안했으나 그분이 소화를 했는지 오히려 기쁨이 충만해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라고 돌아왔습니다. 그라고 그날 밤에 자다가 새벽 한 그때 두  시쯤이나 됐는지 얼마 됐는지 해서 제가 그러 이상함을 봤는데. 그래 그런 말을  전달해서 그거 제가 깨달아졌는지?  그러면, 이 큰 것이 작은 것을 자꾸 잡아먹을라 하는 거는 뭐이냐? 그거  뭐이겠느냐? 거기에 대해서 한참 좀 오래 동안 좀 내가 묵상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장성된 자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를  먹으면 한없는 영양의 양식이 되고서 강건하게 자라고 얼마든지 배부르게 먹어  얼마든지 충만해질 터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배부를라고,  그것을 차지하려고 하지 안하고, 그걸 차지하는 것은 행함으로만 차지할 수  있는데 그걸 차지하려고 하지 안 하고 그 어린 자기에게 소속한 어린 양. 어린  양 그것을. 새끼, 저보다 새끼된 그것을 잡아먹을라고 하는, 그것을 제 사람  만들라고 하는 그 비참한 일 하고 있다. 암만 제 사람 만들라 해 봤자 제 사람  되지도 아니하고 입만 째졌더라. 되지도 안하고 입만 째졌는데, 그걸 빼뜰어서  내놨다. 이러니까,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자랄 그 부분은 진리를 깨달음으로  자라게 되고, 또 깨달음으로 자라고 난 다음에 실행함으로 자라야 될 부분은  실행함으로만 자라지 실행하지 안하면 자라지 않는다. 실행하면 하나님으로  부요해지고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의 영광스러운, 이 참 모든  것의 전부가 되는 대속. 이 대속으로 부강해지고 진리로 부강해질 자가 이  영원하고 참된 것으로 부강해지지 안하고 취해 봤자 죽고 썩는, 인간을 제 사람  만들면 얼마나 만들 것이냐? 언간을 제 사람 만드는 이 갈증에 부딪혀서 그렇게  되어지는 그런 비참이 나온다 하는 그것을 제가 그날 아침에 느끼고 그래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새벽 기도에 나왔습니다.

 고 뒤에 내가 그것을 생각할 때에 그것이. 내가 그런 것을 무슨 생각한 것도  아니고 그랬는데. 나도 뜻밖에 그런 광경을 본 것입니다. 뜻밖에 그런 광경이  내게 부딫혔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내가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생각할 때에  내가 미련해서 현재에 되고 있는 거, 현재 서부 교회가 어떤 형태에 되고 있다는  것을 보는 눈이 없으니까 어두워서 이것들이다. 지금 양식을 먹지 못해서 아무리  교인들이 재적수로 말하면 삼만 사 오천이 된다고 하지마는 와 봤자 들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신입구출로. 새것은 들어오고 묵은 것은 나가고 자꾸 신입구출로  되는 이런 형편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꾸 자라지는 안하고 이제 뒤에. 먼저  들어온 사람은 나가고 뒤에 또 새로 들어오고 이와 같이 되어 있는 이걸 보고  깨달아야 되는데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그와 같이하셨다. 그러니까, 암만  교인들이 많이 와도 깨닫지 못하니 그것이 소용이 없다. 자라지 않는다. 중생은  하기는 했지마는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우연히 그 마음이 나서 얼마 전부터 자꾸 지권찰회 때는 내가  하는 말이 '권찰님들이 가면 자기 식구를 교회 나오라 하는 이것으로써만 다 한  줄 알고 나왔으면 다 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와 봤자 깨닫지 못하면 소용  없습니다. 깨닫도록 그 귀를 열어. 귀를 열어 주십시오. 귀를 뚫어 주십시오'  하는 그것을 어짠지 몇 달 됐는데. 한 두 달 됐는가 그때부터 그것을 자꾸 내  입에서 나와서 그것을 강조하게 됐습니다.

 됐는데, 이번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거 안 되겠디.' 그날도 그 권찰님한테  말하기를 '네가 암만 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이거 소용이 없다. 잘못된  방편으로 기룬다.' 내가 그 전에는 말을 네 사람으로 기른다 소리를 했지마는 그  날에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기 전에 벌써우는데 내가 그런 말 더 할 수  없어서 말은 못 했습니다. 못했는데, 말하기를 '어쩌든지 재독을 자꾸 들리도록  해라. 하나님 말씀을 자꾸 들리도록 해서 재독을 들어야 되지 재독을 안 듣고  그러면은 자라지 못한다' 그것만 말했는데, 그 광경을 보고 난 다음부터는  '아무래도 이거 재독을 이걸 열심히 시켜야 되겠다.'  사람들이 설교 들을 때에 지루하다 하는 것은 옛사람이니까 지루할 뿐만 아니라  듣기가 싫어 죽을 지경일 거다. 옛사람이기 때문에 이 말씀만 들으면 옛사람은  죽는다. 옛사람은 곯아서 뻐들어진다. 이러기 때문에, 듣기 싫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그 속에는 강사가 미워 못 견딜 것이고 설교자가 미워 못 견딜  것이고. 설교자가 그저,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마는,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마는  은연중 속에는 '설교자 저거 그만 아파 들어 누웠으면 좋겠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말까지는 나오지 못 하지마는 은연중 내가 새벽기도 안 나오는 것이  겉으머리는 걱정하고 속으로는 어짠가 자기도 모르게 뭣인가 기뻐하는 자가 자기  속에 있고 이제 평안한 자가 속에 있고 안심하는 자가 속에 있을 것이다.

 이러니까, 이 설교 재독을 열심히 시켜야 되겠다 이래서, 주일날 밤에는 오전  오후 설교를 재독을 하고, 금요일날은 딴데서 오는 사람도 있으니까 재독을  하고, 그러면, 이 설교를 처음 들을 때는 잘 모르나 재독 할 때는 좀 알아 듣고  삼독 할 때는 더 알아 듣고 이렇게 해서. 자기네들이 이 도리를, 이 도리의  넓이가 얼마나 넓으며 깊이가 얼마나 깊으며 길이가 얼마나 길며 이 도리의  진상을 그대로 가서 양식이 되기까지 먹을라고 하면은 그 몇 번뿐 아니라 몇십  번 듣고, 이것을 눈을 감고 몇 십 번이나 명상하고 묵상하고 새김질해야 이  도리를 깨달은 그 깨달음의 힘이, 제가 행하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는 행함의  결과를 맺는 깨달음이라야 깨달음이지 행함의 결과를 맺는 깨달음이 아니면  깨달음이 안 됩니다. 행함의 결과를 맺기까지의 깨달음이 되어지는 그 과정은  저희들이 얼마든지 듣고 묵상하고 새김질하고 하나님게 기도하고 기도해서 이  사실을 사실대로 깨달으면 행할 준만 아니라 이 행함에서 자기의 전부는 다  완전히 바쳐서 녹아지는 소금이 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내용이 있는  것인데 이걸 깨닫지 못하니까 깨닫게 하고  이제 기도록에 등록하는 그 직원에게 좀 이제 기도록 둥록은 대략 자기네들이  할 줄 알고 또 이라니까 그것은 좀.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지를 못하는 그런  조금 손해가 있을지라도 밤에 일찍 와 가지고서 오후에 일찍 와서 예배당에 안에  들어와 보고 돌아보면 사람이 있거들랑 오늘 저녁에 재독을 듣고 갈랍니까 안  듣고 갈랍니까' 물어서 '오늘 저녁에 재독 들으러 왔습니다. 아, 나는 재독은 안  듣고 갈 겁니다.' '그러면, 재독 들으러 왔으면은 누구 구역입니까?' 재독  들으러 온 사람이면은 그 이름은 쓰지 말고 누구 구역에 하나면 하나 두  사람이면 둘 요렇게 기록을 하도록 이래 가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 바깥에 문을  조그만하게 해 놓고고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마다 어찌 '재독 듣고 갈랍니까'  이래 낱낱이 물어서 재독을 듣고 간다 하면은 누구 구역인가 물어 가지고  거기다가 기록을 해서 이걸 통계를 맞춰 가지고 누구 구역은 재독 들으러,  주일날 밤에는 재독 들으러 온 사람이 몇 사람이다 이름은 기록할 수 없고 몇  사람이다 누구 구역에는 재독 들으러 온 사람들이 많다 적다, 그러면, 누구  구역에는 재독 들으러 오는 사람이 몇 프로가 재독 들으러 왔다. 누구 구역에는  그 프로 수가 아주 적다 많다 이렇게 해서. 하나 이 말씀을 몇 번이든지  새김질해서 이것을 들어 깨달아야 자라지. 들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된  그대로 있지 자라지는 하나도 못 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나중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까 내나 테레비 보는 거와 같이. 테레비 보는 거와 같이, 이 세상 말 세상  이야기. 옛사람을 기르는 얘기. 새사람을 파묻는 얘기. 이 세상적인 땅에 있는  설교를 들으면 잘 들리고 하늘의 설교는 들리지 안 하니까 결국은 그 사람을  먹일 수 있는 기회에 먹이지 못해서 그것이 다 땅에 있는 말에게 삼켜져서 다  마귀의 자식을 만들고 만다. 이것이 책임이 있다 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설교록도 이것을 여러분들이 지금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것을 듣지마는 앞으로는 그런 말을 죽을라고 해도 못 듣습니다. 뭐 참 아이들  말로 죽다 깨어나도 못 듣습니다. 그런 설교가 없습니다. 왜? 그런 설교 한  사람은 벌써 다 갇혔든지 죽임을 당했든지 다 없어졌든지 다 자유가 없어지고  그런 또 설교하지 못할 마귀의 일군들은 얼마든지 있어 가지고 이러니까 참은 못  듣지 거짓은 왕성하게 되지 어두움은 짙어오지 빛은 가리워져 없어지지 이러니까  언제 빛을 보고서 자기네들의 바른 길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암만 이걸  말해도 지금 귀너머 듣지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되는 이것이 우연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라도 들어서 실행을 합시다. 우리가.

 이 소금 비유에 얼마나 좋습니까? 소금이 맛 잃으면 밖에 버리고 소금이 맛을  가지면은 주인이 잘 간직하고, 맛 잃으면 쓸데 없고 맛을 가지면 아주 중요하고  요긴하게 쓸 것이 되고. 또 맛 잃으면 사람에게 밟힘 되고 맛있으면 사람에게  존대받고, 이거는 하나님의 계약에 이렇게 했을 뿐만 아니라 깨닫고 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이거는 이렇게 되면 이렇게 존귀할 수 밖에 없고  이보다 더 참 필요한 존재가 없고 이보다 더 존귀한 자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로, 세 가지로 희생하여 다른 이에게 이 세 가지를 전달해  주는 자 이보다 더 보배로운 자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희생에서 전달해 주면, 희생하면 없어졌는데. 희생하면 없어졌는데,  씨를 심었으니까 없어졌는데, 없어졌는데 또 씨를 준다고 하나님이 계약을 한 그  계약이 그것입니다. '나와 내 도를 위해서 희생한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준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아니오. '금생과 내세에서 준다' 이랬습니다. 금생에서  받으나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반드시 받을 때에는, 받을 때에는 안 되겠다  이는 절단난다' 하는고 절단을. 절단으로 너희들이 판단되는 그 절단을 통해서  이기게 된다. '씨라면 망한다' 하는, '요대로 하면 망한다' 하는고 너거 견해에  망한다고 보여지는, 망한다고 보여지는고 순서를 통해서 크게 흥왕하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주시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행해 보는 자는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이 자기에게  체험될 것이요, 이렇게 행하는 사람은 주님이 자기안에 계시고 자기가 주 안에  있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조금 새벽기도 많이 나왔는데 이 나머지기는 이거는 다 굶어  죽는 자들입니다. 이 나머지기는 다 자라지 못하는 자들이오. 깨닫지 못하고  무엇이, 평생 처음 만나는 이 첫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대주재 주권자 창조추  전지전능자. 부모 형제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도 더 사랑하시는 주님이  '오라. 나와 의논해서 너에게 모든 어떤 해독이든지 있는 것은 다 내가 치료해  주겠다.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해 주겠다. 어떤 사고라도 다 치료해 주겠다  너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주겠다' 이렇게 약속하신 분으로 더불어 이 첫 시간  만나 가지고 의논하지 안하고, 어떤 놈하고 만나서 의논합니까? 어떤 인간하고  만나서 의논합니까? 뭐 돈하고 의논합니까, 사업하고 의논합니까. 지위 권세  명예하고 의논합니까? '아, 내가 아무래도 요 지위 요 권세를 요 사업을' 아무리  사모해 봤자 망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들어서 인간을 망칩니다  그 첫날 첫 시간 주님 만나 가지고서 주님으로 더불어. 나를 깨끗게 하시는  주님이니까 주님으로 더불어 내가 깨끗해지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혜로워지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능력 있어지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참  내가 나아갈 그 방향을 바로 찾고, 내 소망을 바로 잡고 내 모자라는 거  주님에게 부탁하고 힘입어서 살 수 있는 이런 아주 참 부자 방망이를 만나는 이  새벽인데, 이 전지전능자를 만나는 이 새벽인데 이 시간을 주님 앞에 만나서  교제하고 의논하고 주님에게 맡기고 부탁하고 할 거 꽉 찼는데 이거 하지 못하고  뭣으로 분주한 자입니까? 그자는 다 마귀에게 홀껴서 정신 없이 끌려가는  자입니다. 목사라도 그렇고 장로라도 그렇고 집사라도 그렇고 대부흥사라도  그렇고 어떤 자라도, 처음 만나는 첫날 첫 시간 주님으로 더불어의논해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다시 갈고 다시 만나 가지고서 정비하고 정돈하고. 잘못된 거  정돈하고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 정비하고. 모자라는 거 당신에게 다 간구해서  얼마든지 넉넉한 준비가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그렇게 있어 가지고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등불이 꺼져서 예수 믿는 내음새도 나지 안하고 예수님 빛도 나지  안할 때 그때 빤짝 빤짝 빛나는 사람.

 왜정 말년에 그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 만나야 악수 못 합니다. 제가 거창 혹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 만나서 반갑다고 악수할라 하면 나는 처음에. 저게  오는데 나도 그리 가니까 마주칠 것인데 가까이 오기 전에 고만 인사하면서 '아,  이거 내가 바빠서 실례합니다.' 그래 가 버려. 이 사람들이 모두 바빠서  실례한다 하고 다 그래. 이러니까, 와서도 나중에 보니까 만나 가지고서 내가  악수하려고 손을 내니까. 그전에는 막 손을 거머쥐고 손이 떨어져 팔이 빠질  만치 막 이래 흔들어 재끼는 사람이 손을 내니까 손을 내주지 안해요. 손을  내주지 안해. 그라면 알지. 얼마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 요 시찰하고 있는 것이,  뭐 사복하고 전부 꽉 둘러서 있기 때문에. 시장에 가서도 이렇게 악수를 못 한다  말이오. 악수가 없었어요. 왜정 말년에 악수가 없었습니다. 악수하려고 손을  암만 내야 악수하는 사람이 없어 그래도 악수하는 사람은 상당히 담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까지 어두움이 오면, 성신의 감동이 떠나가 버리면 어떻게 세상 것의  얼굴이 무서운지, 그 말이 무서운지. 그 모든 계획하고 설치하는 그것이 어떻게  무서운지 그래서 두려워서 못 견뎌요.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증거가 거기에  나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두려움을 주겠다'  이랬습니다. '내가 너에게 두려움을 주겠다.' 그런 것들을 보고 두려워하면 인제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이거 참 녹아납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이렇게 준비할 때이기 때문에, 이렇게 참 보배로운 분을  만나지 뭐 거지 같은 거 뭘 만날 거요 만나기를? 어떤 인물을 만날 거요? 다  거지입니다. 주님 만나지 못하게 하고 주님 만나는데 방해하는 것은 다 거지요  나 죽일 자요. 다 죽일 자요. 주님 만나는 거 방해하는 그거 돈도 나 해할 자요  지위도 권세도 명예도 직장도 다 해할 자요. 해할 자인데. 해할 자인데, 이렇게  이 세 가지 주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이 세 가지로  살라고 하니까. 세 가지로 살라고 하니까 지위가 깨져 버립니다. 지위가 깨지면  이 세 가지로 살라고 함으로 깨진 지위는 안 깨지면 그 지위가 나 잡아 먹을  지위입니다. 이 세 가지로 살라고 함으로써 깨어진 재물은 그 재물이 안 깨지면  그 재물이 나 잡아먹을 원수인 재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 가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재물이 나는 깨어져도 이 세 가지를 행하겠다 하고  행했으니까 재물이 깨어진 줄 알았는데 깨어지지 안하고 다시 새로이 있으면  그것은 깨끗하게 씻어서 새것이 됐기 때문에 그 재물은 나를 살릴 재물이요 나를  살릴 지위요 권세요 명예요 사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말씀과 성신의 감화와 진리대로 살라고 함으로써  모두 다 낭파되겠다 지장되겠다, 이라면 내가 절단나겠다, 내가 절단난다는 그  놈은 네가 아니라 너를 죽인 너 아닌 거짓부리 네 원수인 네 아닌 네다. 그러면  죽어야지. 요걸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이 공과를 어제 좀 늦게 돼서. 제가 이 공과를 작성하려고 어제는 여기  집에서는 또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꽃마을에 갔었습니다. 꽃 마을에 가 가지고  또 해도 작성을 못 했습니다. 또 어제 또 오후에는 내려와 가지고서 여기 집에  있어도 작성을 못 했습니다. 인제 작성한다는 것이. 여섯시나 됐지요? 예?  여섯시인가 돼서 작성해서 이것이 엊 저녁에 나오지 못했으니까 못 받은 분들은  받도록 하시고. 또 이 부수가 많이 작성이 되니까 교인들도 받을 분들은 받으면  됩니다. 그렇지요? 교인들도 다 뉘든지 한 장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과 이렇게 한 것은 이거는 이대로 학생들 가르치라 하는 것  아닙니다. 반사들이 좀 보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깨달아라고 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깊이 널리 생각해서 이렇게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렇게  쉽게 알아지는 거 아닙니다. 오래 동안 많이 읽고 명상 가운데에서 비로소 자꾸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고 세계가 열리면, 세계가 열리면 그 안에 든 세계에  들어가면 이것이 보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우는 것으로 그것으로 다 되는 줄  알지 마십시오. 그 넓이와 깊이를 자기가 명상 가운데에 들어가면 그 내용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공과에 대해서 내용을 깨달아지면. 그렇게 쉽게 되는 거  아니라. 그렇게 쉽게 되면 대번에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월요일부터 내가 이 공과에 대해서 내심을 합니다. 내심을 하면은 월요일부터  항상 무거운 짐진 거같이 눌려 가지고서 있어도 월요일도 안 돼. 월요일날 '오늘  꼭 한다.' 월요일날 안 돼. 화요일날 '오늘은 꼭 한다.' 화요일도 안 돼.

수요일도 '오늘은 일찍 한다.' 안 돼. 언제든지 수요일날 오후에 그저 일찍 되면  네시나 이렇게 다섯시나 이런 정도에 가 가지고 합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게  아니라. 내 마음은 거기에다 많이 눌려 가지고 있어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여러분들이 오늘 가질 수 있을 때 가지고 그저 새김질 할 때  새김질 하고 이래 가지고 자라야 되지, 그러기에, 자기가 깨닫고. 들어 깨닫고  행해야 알아 질 것은 행해야 알아지지 그래 안 하면 알아지지 못합니다.

 네가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세  순서, 그 다음에 '진리를 알지니' 네 순서.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그때는  피조물들에게 피동받지 안하고 이 진리대로는 네가 죽어도 요대로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하는 이것이 네 토막 끄트머리에 가 있는 것인데 그렇게 쉽게  돼지는 줄 압니까? 그게. 생명의 도가 그렇게 쉽게 되는 거 아니니까. 하나님의.

이것도 성령과 진리와 피의 은혜로써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니까 우리에게 있는  것은, '죽도록 충성해라 그래야 생명이 승리하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요번 주일에 연보인데 요번 주일에 연보지요? 요번 주일에 연보인데 기도 많이  하시고 그저 양심에. 신앙 양심에 작정대로 하시오. 무리한 일하지 마시고,  억지로 하지 마시고, 마음에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연보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을 똑똑히 깨닫고 요 계약을 준해서 하십시오. 요 계약에 따라서 '계약이  요렇기 때문에 내가 계약대로 시행하기 위해서 요렇게 합니다.' 하고서 딱  하심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계약 안 지키면 우리가 어떤 논쟁도 할 수 있을  만치, '하나님이 계약을 이렇게 하지 안했습니까?' 할 수 있도록 계약을 따라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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