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19:34
세상의 빛-세째
1988. 9. 9. 금야
본문: 마 5:14-16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빛에 대해서 여섯 주일을 공부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지막 빛 셋째 빛에 대해서 다음 주일은 가르칠 주일입니다. 공과는 벌써 반사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 다 외우고 있는 줄 압니다.
공과에 셋째 빚의 본문은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또 자기 일에 충실히 하여서 학교,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교, 또 사회에서 좋은 모본이 되는 것이 셋째 빛이라 이렇게 공과에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공과는 다 외우고 있습니다. 첫째 빛은 자체에 대함이요, 둘째 빛은 사회에 대함이요, 셋째 빛은 자기의 소유에 대한 빛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들어서 자기 귀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을 때는 꿀같이 달고 배에는 쓰다 그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힘들지 안하고 큰 소망만 말하니까 다 좋아하지마는 이대로 실행할라고 하면은 어려움이 있으니까 모두 다 그만 배반해 버리고 맙니다.
우리 서부교회는 벌써 하나님의 말씀은 뭐 다른 데 비해서 몇십 배 많이 들었습니다. 또 가장 실행하기 쉽도록 간추려서 그렇게 아주 쉬운 말로 알고 기억하기 쉽도록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높은 고등 술어를 나는 모를 뿐만 아니라 알아도 그런 고등 술어를 쓰지 않습니다. 가장 무식한 사람들, 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서민들의 그 말을 가지고서 또 가르치면서도 아주 기억하기 좋고 알기 쉽도록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충분히 성경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 하나씩 실행을 해서 실상을 이루어 나가야 되지 실상을 이루어 나가지 안하면 도리어 아는 이 말씀이 너는 왜 이렇게 알면서 행치 안했느냐 하는 것으로써 이 말씀이 행하지 아니하고 알고 있는 말씀은 그 말씀이 자기를 정죄한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이 실상으로 빛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빛의 직책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공과를 벌써 여섯 주일 가르쳤습니다. 이제 다음 주 가르치면은 일곱 주일째 가르칩니다. 자기가 실행을 해 본 사람은 일곱 주일이라도 모자라서 더 갈급할 것이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힘이 없고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신앙 생활은 그러합니다.
'너희들이 처음 사랑을 잊었도다 에베소교회에, 그런고로 네가 어데서 떨어진 것을 알라.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라. 그렇지 안하면 네게서 촛대를 옮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도를 받아서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는 재미도 없고 또 기쁘기도 하고 또 힘도 쓸 만한 그런 면이 있었지마는 오랫동안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안하고 보니까 나중에는 예수 믿는 것이 그만 권태나고 기쁘지도 안하고 게을만 부리고 그저 하나의 제도나 법도나 이런 의식에만 주력을 해 가지고서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 2장 1절 이하에 에베소 교회는 사람 보기에는 훌륭한 생활했지마는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대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말씀은 오늘 공과에 대해서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어짜든지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 실행해서 꼭 실상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실상 이루지 안하면 우리 배우고 안 것이 참 불쌍합니다. 나도 여러분들을 가르친 사람으로서 불쌍하고 하나님 앞에 대 책망받을 것이고 여러분들도 또 배워 가지고 알면서 실행 안 했으면 나중에 부끄럽고 비참한 사람됩니다.
셋째 빛 셋째 빛은 공과의 본문에 기록돼 있기를 매일 성경 읽고 또 기도하고 매일 성경 읽고 매일 기도하고 자기 일에 충실히 해서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또 사회인이라면 사회에서 또 가정의 사람이라면 가정에서 모본이 되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 이것이 셋째되는 빛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읽고 기도하고 자기 일을 착실히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모본이 되면, 그러면 우리의 셋째 빛생활 하는 목적이 어데 있는가? 모든 사람들에게 모본되는 그것이 빛생활 하는 목적인가? 아닙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이것이 목적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 전체는 뭐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 전체요, 또 하나님에게 모든 사람으로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 신앙 생활에 전부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전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모든 사람으로 우리의 생활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그것이 우리 신앙 생활의 전부입니다.
사람이 자기 일을 충실히 할라고 해도 그게 잘 안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일이야 다 잘하고 싶은 마음 있습니다. 아마 사업가들은 자기 하는 사업이 잘 되도록 원치 않는 그런 사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 사업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또 공부하는 학생들 쳐 놓고 자기가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또 모든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덕 세우기를 원치 않는 그런 학생 하나도 없습니다. 뭐 정치가들도 어짜든지 자기가 지금 정권을 잡은 동안 이 정치를 하는데 흠없이, 이 정치가들이 늘 말하기를, O대통령이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 그런 말을 많이 했고, O대통령도 약간의 그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는 그런 말을 좀 많이 했는데 마지막 때에는 그런 말이 별로이 들리지를 안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일을 충실히 할라고 하는 그 욕망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일 자체가 잘 되고, 또 그 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덕이 있어서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고 모든 사람이 감동받고 이렇게 하기를 원치 안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일 사건 자체가 잘 되고, 또 명예적으로나 모든 공로적으로나 모든 덕 면으로나 모든 면에서 다 잘해 보고 싶은 그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을 할라고 달라들어서 하다 보면은 마지막 일을 다 해 놓고 난 다음에 욕 안 얻어먹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정죄받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또 하는 일에 '잘못됐다. 그래 하지 말 걸.' 후회 없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일을 하고 난 다음에는 다 본인으로서는 후회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욕을 얻어먹고 또 그 일은 원만치를 못하게 되는 이것이 실상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31절 이하에는 말씀하기를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했습니다. 자유한다 말은 틀림없이 옳고 바르게 참되게 사람들이 하고 싶은데 그대로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리가 그 사람을 도와야 그 사람의 하는 일이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고 자신도 후회할 것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욕 얻어먹을 것이 없고 칭찬받을 수 있는 그렇게 자기 일을 잘 할 수 있지 진리가 안 도와 주면 자기 일을 잘해 자 아무도 없습니다. 이치가 안 도와 주면 안 됩니다. 또 그 밑에 내려가 보면은, 인자가 너를 자유케 하면 참 자유하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그 사람의 하는 일을 도와서 형통하도록, 실수 없도록, 후회할 것이 없도록, 흠점이 없도록, 잘 하도록 그렇게 주님이 안 도와 주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일생 동안 살아가는 이 모든 삶에 있어서 다 사람들이 원하기는 좋은 것을 원하나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경영은 사람들에게 있으나, 경영. 경영은 사람들에게 있으나, 사람들이 이래 해 볼라고 저래 해 볼라고 경영을 세우지마는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안 이루어 주시면 안 됩니다.
이래서, 우리는 참 각각 어떤 분야에서 활동을 하든지 어떤 종류에서 생활하든지간에 우리의 일생 동안 산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모본이 되고 빛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이렇게 아름답게 귀하게 참 칭찬받고 존귀받고 기념을 할 만한, 이렇게 흠점이 없는 이런 생애를 하고 싶지 않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 일생 동안 사는 데에 사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또 소유적으로나 자기의 자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모든 데 있어서 후회할 것이 없이 모든 일을 잘 하고 싶은 이 마음 없는 사람 여기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아마 하나도 없을 걸요.
어리든지 장성하든지 학생이든지 사회인이든지 노인이든지 뭐 도덕가든지 종교가든지 정치가든지 문학가든지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 일생 동안에 사는 생활이 흠과 점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는 그런 깨끗하고 온전한 생애를 하고 싶은, 그렇게 살고 싶은, 그런 결과가 맺어지고 싶은 이 소원 있는 사람 한번 손 한번 들어봅시다, 나도 있습니다. 아마 이거 없는 사람 하나도 없을 것이오. 뭐 세상 사람 다 뭐 쳐 놓고도 자살하는 사람은 그게 안 되니까 자살할라 하지 다 사람 쳐 놓고는 이것을 다 소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기를 이는 진리가 그렇게 흠없이 잘 일생을 건설하도록, 일생을 살도록 진리가 도와 줘야 된다 이래 놨습니다. 진리가 도와 줘야 된다.
진리가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그말은 네 소원 성취가 진리가 도와 주면 네 소원 성취가 된다. 또 인자가 자유케 하면 참 자유하리라. 예수님이 도와 주시면 자유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안 됩니다. 뭐 자기가 수양도 하고 절제 생활도 하고 조심도 하고 또 온갖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경영은 사람에게 있지마는서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안 이루어 주시면 안 된다 이렇게 말했어.
이랬는데, 우리 셋째 빛에 대해서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하여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기를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이 말은 간단하게 자기 세상에서 말이오.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세상에서 빛이 되도록, 본이 되도록.
이래서 자기가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하는 그것이 셋째 빛인데, 왜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하라 이렇게 기록했습니까? 자기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열심, 지혜와 능력과 열심, 또 계속하는 인내 이것은 거게서 나옵니다.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는 거게서 나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거게서 지혜도 나오고 능력도 나오고 또 열심도 나오고 인내도 나오고 잘 보존할 수 있는 겸손도 나오고 전부 거게서 나오는 것 가지고 자기 일을 세상에 빛이 되도록 충실한 생애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매일 성경 읽는 것, 성경에 보면은 성령과 물과 피는 하나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이 셋은 하나라고 이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매일 성경 읽는 이거는 뭣하는 것이냐? 거창집회 때에 여러 시간을 그 강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모든 것을 다 가지시고 주권하고 계시는데 그분을 우리가 만나야 되겠는데 그분은 또 우릎를 만날라고 애를 쓰십니다. 그분이 우리가 만나기 쉽도록 나타나기를 성신의 감화로 나타났어, 그분이 성신의 감화로 우리에게 나타났어. 그러면 성신의 감화를 사람들이 아무나따나 다 이렇게 접하는 게 아니라 성신 감화를 접하는 것이 심히 힘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신의 감화보다 더 접하기가 쉽도록 하시기 위해서 진리로 나타나셨습니다. 또 진리도 사람들이 다 그렇게 쉽게 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제 진리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무엇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이래서, 말씀은 곧 진리요, 진리는 곧 영감이요, 영감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매일 성경 읽고' 하는 말은 진리를 찾아 만나고 하나님이신 성령을 찾아 만나고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을 찾아 만나서 이 셋을 만나는 것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이 셋을 찾아 만날라고 하는 것이 성경 읽는 것이오. 성경 읽는 것은 그저 성경에 있는 책이나 읽고 성구나 읽자 이라면 그 사람은 참 개 머래 먹듯이 껍데기만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라.
그래서, 지금은 내가 그런 말 잘 하지 안하지마는서도 제가 제일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설교할 때는 한번도 그런 말 쓰지 안할 때는 없습니다. 오늘밤에는 주님이 무슨 말씀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하는 그말을 꼭 하고 설교를 했지 그말 안 하고 설교 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 처음부터 믿을 때에 말씀과 주님과 곧 성령님과 하나님은 하나인 것을 처음부터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이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곧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성경은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만나는 것이라. 그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을 찾아 만나는 것이요, 그래서, '매일 성경 읽고' 이것은 이제, 매일이면 자기 뭐 시간대로 어느 시간으로 정하든지 계속 그저, 읽기는 그래도 말씀을 생각하는 것은 계속 생각합니다.
말씀을 하루 종일 계속 생각했으면 하루 종일 하나님과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을 만나는 것이요 또 이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과 동행이요 진리와 동챙이요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과 동행입니다. 이래서 '매일 성경 읽고' 하는 것은 이 셋을 찾아서 동행하라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면, 학생들은 그것을 뜻을 모르니까 뜻을 내비두고 그저 이렇게 주입적으로 외우면 그 말씀 자체가, 성령 자체가, 예수님의 대속 자체가 그 학생들에게 기회를 타서 알려 줍니다. 깨닫게 해 줍니다. 찾아 만나고, 또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는 거는 뭐입니까? 기도하는 것은 이 찾아 만난 이 셋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진리로 더불어 서로 의논하는 것이오.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것이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것이오.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를 붙들고 의논하는 것이오. 의논은 뭐할라고? 나는 내 일에 충실히 못 합니다. 내 일을 흠없이 못 합니다. 세상에 빛이 되게 못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아무래도 내가 못 하니 진리가 해 줘야 되겠다. 진리는 뭐인데? 진리는 없는 가운데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만물을 친히 만든 이가 진리입니다. 만든 이가 진리요.
하나님은 뭐했는고? 하나님은 명령했소. 하나님은 명령했소. 그가 없이는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말은 그분은 다 명령했어. 삼위일체 하나님은 명령했고 그 공사는 누가 했습니까? 공사는 진리가 했습니다. 알겠습니까? 공사는 진리가 했어.
그러면 하나님은 창조주요, 창조한 주인이요 이 진리는 창조에 시공의 존재입니다. 진리는 인격은 없는 이치입니다. 이치인데 이 이치는 전능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말씀한 분이 능력이 있으니까 이제 이 진리가 능력 있지' 예를 들어서 '말씀한 분이 죽어 버리면 그만 이 진리도 힘 없지' 그거 아니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인 동시에 이 진리는 독자적 권능을 가진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과 꼭 같은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 읽는 것은 이 셋을 찾아서 만날라고 하는 그 노력으로 성경 읽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들을 뭐 외우기도 하고 이렇게 많이 읽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 성경을 물으면 뭘 모릅니다. 성경의 뜻은 모르요. 성경을 잘못 읽었어. 성경을 읽을 때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진 진리를 만날려고 감히 떨면서 접촉해야 됩니다. 이는 뭐 무슨 공명이나 철인이나 도덕가들이 세상 말쟁이들이 찌불찌불해서 지꺼려 놓은 그 말이 아니오. 한 진리는 물질계와 영계의 모든 피조물 전부보다 무한히 큽니다. 자기가 이 진리의 큼을 믿는 것만치 그 진리는 그에게 일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인간들의 말만치도 여기지 안하고, 교역자들도 이 진리에 대해서 타 능력관을 알지 못하고 다른 어떤 철인이나 세상에 위인이나 그런 말 한 마디나 하고 난 다음에 무슨 위대한 말이나 한 것처럼 자랑을 하고 강대상을 뚜드리고 하나님 말씀은 뭐 한글로 써 놔서 누구든지 다 아는 것 시시하게 이래 여깁니다.
그 사람은 평생 설교해도 진리 못 만난 사람이오.
진리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진리를 우리가 만나지 예수님의 피공로 아니면 진리 만나면 우리는 박살이 됩니다. 녹아져 버립니다. 지옥이 뭐입니까? 지옥이 진리를 만나 가지고 진리 앞에서 영원히 죽지도 안하면서 영원히 녹아지는 그것이 지옥입니다.
이렇게 진리는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모든 것을 그 진리가 지었지 또 진리가 짓도록 하나님은 명령하셨지 예수님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완성을 이루어 놓은 완성의 대속의 공로지.
이러니까, 진리가 그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옳고 바르게 온전한 생애를 하게 할 때에 피조물은 아무도 방해 못 합니다. 아무것도 방해 못 해. 진리가 지켜 줘야 방해 못 하지 그뭐 동서양이 다 붙들려 한다 해도 그까짓 거 소용없어.
동서양이 따라 다닙니까? 이곳에서 한 발 자욱만 내 디뎌도 모르는데? 피조물은 능력 없어. 이 진리가 우리를 보호해서 이 사람이 옳고 바르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생의 걸음을, 영생의 생애를 하게 할 때세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진리가 온전한 생애를 하게 해야 하지 딴거 가지고는 도울 수가 없어, 도와 봤자 소용없어. 그까짓 거 힘이 없어. 하나님이 도와야 돼. 또 예수님은 다 완성을 했기 때문에 이 완성이 또 보증을 해야 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이 셋을 찾아서 만날 때에 자기가 이 셋을 찾아 만날 때에 '이만치 크다' 우리 나라에 제일권세 있는 사람만치 이 만나는 이 셋은 권세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만큼 밖에는 역사 못 해 줍니다. 또 이 셋을 찾아 만날 때에 이 셋은 모든 피조물을 없는 가운데 지었고 이 모든 피조물을 홀로 주권하고 계시는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신 진리요 하나님이요 대속의 공로,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대속의 공로가 다 가졌습니다.
믿는 대로 되리라. 이렇게 믿는 자에게는 그 사람에게는 이 진리와 하나님과 대속이 이렇게 능력 있게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매일 성경 읽고 또 매일 기도하고, 기도는 뭐할라고? 이 셋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것이요, 의논하는 것이요, 그분에게 내가 거리끼는 걸 찾아 가지고서 '내가 이런 것 잘못 됐습니다.' 거리낀 것은 그분에게 다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의지해서 구해 가지고서 용서를 받아서 잘못된 것을 해결짓고, 또 내가 해야 될 것 '내 힘은 없기 때문에 도와 주십시오. 이걸 해 주십시오.' 간청하고, 또 그라는 데에는 그냥 배은자로 그라면 안 되니까 '언제도 도와 주셨습니다. 언제도 도와 주셨습니다. 언제도 도와 주셨습니다.' 도와 준 것을 낱낱이 감사를 하면서, 나는 그걸 늘 그거 합니다. '주님, 내가 왜정말년 때에 그렇게 한 것 주님이 순전히 도우셔서,' 가만히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고 6·25 때 그렇게 한 것은 오늘 진리를 증거할 때에 큰소리 떵떵하고 하나도 아무 가책없고 하나도 휘일 것 없이 이렇게 이 진리를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증거하기 위해서 깨끗하게 해 주신 것 같아. 나는 동방요배가 뭐인지 그걸 멋도 모르고 안 할라 했어. 온 교인들이 다 그 교역자가 일어서 가지고 일어서라 하는데 '뭐하러 일어서라 하는고?' 일어 서라 이제 동으로 떡 돌아서라 하더니마는서도 '동방요배 해야 됩니다. 그라고 예배보게 됐습니다.' 이래 그말 듣고 그래 그만 나는 아무말도 안 하고 그만 푹 앉아버렸어. 다 했어. 그때 그 자리에서는 나만 안 하고 다른 사람 다 일어서서 다 했어. 그렇게 안 한 것 하나님이 그렇게, 나중에 보니까 그게 큰 죄인데 한 것, 이러니까 그런 걸 과거에 '하나님이 나 이런 거 저런 거 줘서 감사합니다.' 이제 성경 읽어 가지고서 이 셋을 만나서 감사하고, 잘못된 것 있는 것 자복하고, 또 내가 이래야 되겠습니까? 저래야 되겠습니까? 하는 것 의논하고, 내가 모자라니까 이거 해 주십시오 간청하고 이거 하기 위해서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이제 성경 읽고 기도했으니까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것,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것 뉘 힘으로 할라고 달라듭니까? 누구의 힘으로 할라고 달라들어요? 우리 O장로님. 누구의 힘으로 할라고 달라듭니까? 자기 일을 충실히 할라 할 때에는 누구의 힘으로 할라고 달라듭니까, 누구 힘으로? 자기가 찾은 이 셋의 힘. 녜, 자기가 찾은 이 셋의 힘.
자기 힘으로 할라고 하면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요거 기억하십시오. 자기가 오늘 나는 하루 종일 흠없이 살란다고서 이렇게 할 때에 제 힘으로 살라고 하면 헛일이오. 이 셋을 만나 가지고 이 세 분을 만나 가지고서 그분의 돕는 도움으로써 '내가 오늘 이런 일 할 때에 나를 도와서 흠없이 해 주옵소서. 내가 이 회의석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내가 이 사건을 후회없이 처리하게 해 주옵소서.' 그분의 도움을 힘 입어서, 그분을 힘입어서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찾아 만난 그 세 분 둘은 인격 존재의 것이요 하나는 무인격의 이치이나 전능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 셋의 도움을 힘입어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할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을 제힘으로 할라고 하면 헛일이라. 실컷 성경 읽고 기도해 가지고서 이 세 분 만나 가지고 그분의 돕는 도움을 힘입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 놓은 자기 의무와 책임을 충실히 할라 하는 것은 그분의 돕는 힘을 자기가 잘 힘입어서 쓸라고 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 능력을 힘입는 것이요, 쓰는 것이요, 하나님의 도움을 자기가 입는 것이오.
이렇게 하면 자기, 사회에서, 학교에서는, 학교가 자기 사회인 사람은 학교, 또 자기 공무원 사무실이 자기 사회면은 사무실에서, 또 정치하는 사람은 정계에서, 국회 의원이면 국회에서, 저 억울하게 감옥에 몰려 가지고서 거게 의인이 감옥에 가는 것 얼마나 많소? 감옥에 가면 감옥에서, 어데서든지 자기가 머물고 있는 그곳에서 능히 빛의 생활을 할 수가 있고 빛의 증거를 할 수가 있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은,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은 뭐할라고 하는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 돌리기 위해서 충실히 하지. 영광을 돌리면 어떻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모든 사람에게 모본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빛이 돼야 되지. 그러면 그런 것을 할라 하면은 그 일을 하는데 제힘으로 하는가? 아니야. 성경을 읽음으로써 셋을 찾아 만나고 그분에게 기도해서 그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서 지금 자기가 행함으로서, 지금 행하는 건 뭐이요? 진리의 능력을 힘입는 그 행위를 나타낼라고, 하나님의 돕는 행위를 나타낼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행위를 나타낼라고. 이라니까 자기 일을 충실히 했는데 그 일이 나타나기는 피로 나타나고 진리로 나타나고 하나님으로 나타났어. 하나님이 자기 하는 그 일을 통해서 환하게 비추어 나와. 그럴 때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셋째 빛에 대해서 반사 선생님들이 단단히 기억하고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영을 찾아 만나는 노력입니까? 손가락으로? 몇을 찾아 만나는 노력입니까? 녜, 셋을 찾아 만나는 노력입니다. 그러면 매일 기도하는 것은 몇으로 더불어 의논해 가지고서 그래 돕는 은혜를 입을라고서 명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까? 또 손가락으로? 녜, 셋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오.
그러면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은 저 혼자 할라 하는 것입니까 충실히 하는 것이 뭣을 나타내게 위해서? 충실히 하는 것은 이 세 분의 능력이 자기를 통해서 자기 일 그 일을 통해서 이 세 분의 능력이 나타나니까 그 일이 모든 사람이 할 수 없는 모본의 일이 돼.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빛의 일, 모본의 일이 돼. 그래 가지고 뭐할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반사 선생님들이 이제는 네 주일은 본문을 주입적으로 읽어서 그들이 다 포대기에, 마음 포대기에다 집어넣어서 다 마음 비에다 거의 기록이 됐습니다.
인간의 컴퓨터에 다 기록이 됐습니다. 이제는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첫째 빛을 설명을 했고 둘째 빛을 설명을 했고 셋째 빛 설명할 차례인데 설명할 때는 여러분들 마음대로 얼마든지 깨달아진 대로 마구 얼마든지 주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무엇이든지,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하여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모본이 되는 것이 셋째 빛이라 하는 것을 얼마든지 해석을 해서. 여러분들이 그들에게 충분히 이제 해도 하도 네 주일이나 외워 놨기 때문에 알 수 있어. 요 생활이 아니면 우리는 빛의 생활 못 합니다.
첫째 빛, 둘째 빛 셋째 빛 중요한 이 공과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마지막 셋째 빛 요것을 기억하고서 학생들에게 요거 꼭 거머쥐고 놓지 않도록.
그래 지금도 어떤 학생을 보니까, 아이들 내가 저거 부모에게 물어 보니 그 아이는 꼭 아침으로 공부할라 하면 딱 일어나 가지고서 세수하고 무릎 딱 꿇고 성경부터 보고 공부하지 학교 책부터 먼저 손에 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학생 많이 봐. 그거 많은 모양이라 뭐. 거의 다 그런 모양이라. 그런 학생들 학교서 다 일등이라. 남의 머리되고, 위에 있고 머리에 있지 그렇게 밑에 있지 안해. 아래 있지 안해.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안해요. 머리가 되지 꼬리가 되지 안해요.
요것을 반사 선생님들이 가르치십시오.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 그래서 학교 가도 딱 책보 가지고 가 가지고서 책상에 딱 앉아서 어떤 학생들은 뭐 옆에 하지마는 하거나 말거나 담대히 성경 읽어. 성경 읽고 기도해. 어떤 학생들은 성경 읽는 것은 모르고 그만 그냥 기도만 하고 마는 학생, 어떤 학생들은 말 들어 보니까 성경 읽는데 학생들이 찌글찌글 뭐 이래도 성경 읽는 그 학생이 이렇답니다. 막 인기가 있어. 다른 사람들이 뭐 줄줄줄 따르고 모두 이렇게 한대요. 그거 또 성경 읽는다고 시달리는 것도 다 이렇게 존귀케 하기 위해서 시달리는 거라. 존귀케 하기 위해서, 또 '성경 읽는다' 이래 쌓는 것은 이 높여 주는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라.
기독자는 노인이나 소인이나 아이나 중년이나 매일 성경 읽는 것 기도하는 것 이 일 안 하면 자기 걸음은 걷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힘 입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돕는 힘을 힘입는 것은 매일 그분 만나야 돼요. 성경 읽는 거는 그분 찾아 만나는 것이요, 셋을 찾아 만나는 것이라. 기도하는 것은 그 셋으로 더불어 의논해서 그 셋에게 용서받는 것, 그 셋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 그 셋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것, 셋의 돕는 은혜를 힘입어서 '아, 이제는 출발!' 하고 하는데 누가 이 자를 해할 것이요?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리요' 무슨 실패가 있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