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11:42
목사 사태
1986. 12. 21. 주일새벽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번 공과는, 모르는 사람은 자기 죽는 일도 그것을 예사로 여기고 또 자기가 큰 실패될 일도 거게 대해서 예사롭게 여기고 자기에게 한없는 성공이 되는 일도 모르는 자는 예사롭게 여깁니다.
이와같이 이번 공과를 여러분들이 받기는 받았지마는 이 공과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아는 척해도 모릅니다. 여게 앉아 있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모른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 아는 것이 너무도 껍데기고 속에 알맹이를 모릅니다. 그만치 깊은 공과입니다.
이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뽑아낸 것인데 디모데후서 3장 15절을 읽고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 공과를 제가 기록할라고 여러 달 전에 생각을 하고서 또 하다 하다가 이번에 기록할라다가 또 못 하고 못 하고 이라다가 기록했는데 제가 요 깨달은 것을 기록해서 공과 작성을 할라 하는 것이 한 석 달 이상 걸렸습니다. 늘 마음에 눌려 가지고 이라다가서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거 전혀 모릅니다. 여기서 어제도 내가 말 들었는데 우리 진영에 어떤 사람이 어떤 교역자가 가 가지고서, 서부교회서 배운 사람인데 설교하는 걸 듣고, 내가 압니다. 제가 뭐 뭐라고 쌓아도 그거는 껍데기로 그럴 것이다 이래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 사람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물으니까 모두 ‘설교를 그래 하면은 안 되겠던데요.’ 또 ‘그것은 얼마 안 돼서 아주 탈선돼서 딴것 돼 갑니다.’ 그래도 그걸 듣기 좋다고 또 하는 자들은 합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아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껍데기 형식으로 말이나 알고 말로 표시할 수 없는 그 영감으로 표시된 그 속의 알맹이는 모르고 믿는 목사 장로 꽉 찼습니다. 그것은 생활의 결과가 다릅니다.
그는 기껏 올라가 봤자 도덕 생활이나 사회 생활, 도덕주의 사회주의지 신앙이라 하는 거 뭐인 것을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번 공과는 그냥 지낼 게 아니고 꼭 학생들에게 외우도록 해야 됩니다. 외우도록 하는데 그 상을 줘서, 만 명이면 만 명이 다 외워서 다 상을 받도록 해야 될 터인데 만 명이 상을 받는 데에 만일 십 원짜리 같으면은 만 명이면 얼마입니까? 십만 원 됩니까? 십만 원 되는데 연필 좋은 거 한 자루면 얼마갑니까? 백 원 갑니까? 아이구 그라면 백만 원 해야 될쎄, 백만 원. 이 백만 원을 해도 이거 해야 되는데 주일학교 돈이 얼마 됩니까? 이게 십계명보다 뭐 위에 있습니다. 왜? 십계명 속에 알맹이입니다. 사도신경보다 훨씬 위에 있습니다. 알맹이입니다. 십계명은 그는 외부적으로 강령을 말했고 이는 속에 알맹이 대속을 말했기 때문에 이거는 꼭 저거가 몰라도 외우면 언젠가 자기가 이 뜻을 깨달을 때에 믿을 때에 그때 비로소 신자의 행위가 이루어집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시상할라 하면은 뭐 하나의, 그때 십계명 외울 때에 뭣 줬습니까? 가방 얼마짜리입니까? 오백 원짜리면 이것도 좋은 연필 한 자루 백 원씩 해서 그렇게 상을 주기로 하고 전부 다 외우도록 해서 외우도록 하십시오.
뭐 몇 달이 돼도 외우도록 하십시오. 외우도록 하고. 인제 외우면 나중에 가서 그런 가운데에 혹 진리를 깨달아질까 하는 것이지 저거가 외운다고 모릅니다.
이러니까 이번 공과는 외우도록 하기를 힘을 쓰고 선생들이 깨닫고 먼저 믿는 사람 되면은 여러분들에게 큰 능력이 나올 겁니다.
모릅니다. 중간반 반사들 이거 어림도 없습니다. 중간반 반사들 지금 교역자로 다 나가야 됩니다. 다 나가면 형식으로는 다 형식 교역자는 다 됩니다. 다 나가서 교역하는 가운데에서 혹 깨달을까 해서 하는 것이지 그뭐 그거 깨달아서 내보내는 거 아닙니다. 전부 껍데기 외식입니다.
이 기독교 진리는 제가 실행하는 회개에서 알아지는 것이지 회개 안 하고는 알아지는 것 아닙니다. 뭐 산에 가서 암만 기도한다고 해 봤자 소용 없어.
회개하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변화되면 알아집니다. 제딴에는 말 잘하고 수단 있고 활동하고 하면은 되지 하지마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모든 일이 되지 하나님 축복하지 안하면 일이 안 됩니다.
그래 어제도 내가 어떤 중간반 반사하고 얘기를 했는데 뭐 서부교회는 중간반 반사들이 갑자기 다 내놓고 나가면 중간반은 뭐 다 절단나리라 생각해. 절단나도 좋소. 절단나도 그분들이 먼저 구원을 이루어야 되지 구원 이루지 안하기 때문에, 이루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저 나가서 혹 개인 목회를 하면 거게서 저희들이 어떻게 해 가지고 발버둥치다가 고쳐질까 하는 그런 소망이지 서부교회는 중간반 반사들이 지금 손 딱 떼고 다 모두 목회로 나가면 중간반은 완전히 싹 무너지고 없어집니다. 없어져도 구원이 이루어져야 되지, 그러니까 그저 나가 가지고 어짜든지 개척 교회를 빨리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 뭐 우리 총공회만 아니고 고신도 총신도 칼측도 또 성결교도 침례교도 감리교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인물 양성은 자꾸 인물들은 자꾸 양성이 속으로 양성되든지 안 되든지 자꾸 일할 사람은 자꾸 많이 있는데 교회야 있습니까? 이러니까 교회를 자꾸 자기가 개척해 가지고 나가서 교회를 만들지 교회 되어 있는 교회는 그렇게 담당해 가지고서 갈 그런 교회들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저 서울에서는 빌딩 한 채에 교회가 여섯 교회가 들어 있습니다, 빌딩 한 채에. 빌딩 한 채에 교회가 여섯 교회까지 거게 개척 교회가 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 방에 무슨 교회, 요 방 무슨 교회 요 방에 그래 가지고 다 간판 붙여서 그래. 그래라도 자꾸 발동을 쳐 가지고서 교회를 세워져야 전도사 인허 주고 또 그래 가지고 다 자립 교회가 돼야 목사 안수 주지 뭐 다른 거 이제 시험치는 그런 거는 전부 백점 다 맞습니다. 시험치는 거 백점 다 맞아요.
이러니까 그것 가지고 해서 이래 하는데 부득이 우리도 교회를 세워 가지고 해 줄라고 애를 쓰기는 썼지마는 그게 안 되고 이렇는데 지금, 이번에 ○○○조사님도 나간 것은 저 ○○에 교회를 세우기로 교역자회에서 결의를 해 놨는데 그 모든 조건들이 안 되고 또 그때에 나갈 사람들이 없었는데 ○○○조사님이 나갈라 해서 다행히 그만 거게는 나갔습니다.
지금도 ○○에 개척 교회를 세울라고 하고 있는데 그건 결의가 됐습니다. 결의된 데에는 매월 십오만 원 보조가 나오고 또 무이자로 뒤에 상환하기로 하고 이백만 원 무이자로 빌려 주는 거 그외에 딴거는 없습니다. 그라고 그 사람은 총공회 일꾼으로 그렇게 인정을 받는 그것이 됩니다. 지금 여기 ○○ 한 군데 있습니다.
그라고 먼저 ○○○조사님이 저 ○○에 가 가지고서 그때도 총공회서 허락된 그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나서 갔습니다. 지금 여기 ○○가 있으니까 ○○누구든지 가면 십오만 원 이백만 원 그거는 보조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데는 지금 그것이 결정 안 된 데는 보조가 없습니다.
그러고 서부교회서 제가 있는 한은 그 공로를 봅니다. 이 사람의 공로는 얼마 있다. 공로를 보고서 공로 있는 사람은 서부교회서 다문 조그매라도 보조해 줍니다. 그러나 공로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은 보조를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래 아시고, 어짜든지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데에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데에는 제가 잘난 것도 필요없고, 유식한 것도 필요없고, 언변 좋은 것도 필요없고, 수단 좋은 것도 필요 없고 꼭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데는 하나님이 같이 하실 수 있는 사람 되기를 원하는 요것이 옳은 방편이지 그 외에 딴 방편 쓰는 사람은 되는 거 같은데 다 실패입니다.
여게 우리 진영에서 시험을 치니까 시험 그때 시험이 구십팔점된 교역자인데 그분이 무대가 좁다고 나가고 이 복음 가지고는 다른 데 가서는 넓게 목회는 못 한다, 이 복음은 하나의 우물 안에 개구리 같은 그런 복음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가 가지고 암만 해 봤자 교회는 안 됩니다. 교회는 안 되는데 모으면 이런 거 저런 거 주 수단으로 모아 놓으니까 그거 나중에 하나님 앞에 벌을 받을란지 상을 받을란지 그거는 이제 보면 교인 된 교인은 다 나가 버립니다. 교인 된 거는 나가고 그런 것들만 주 모웁니다.
오늘 교회들이 참 많으나 교회가 적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역자는 뭐 교역자 산태가 났다, 내 말이 아니고 어데라도 말해. ‘교역자 산태가 났다. 목사 산태가 났다.’ 목사 산태가 났지마는 목사보다 더 귀한 거는 없습니다. 참목사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요. 귀합니다, 아주.
우리 진영 교역자 어떤 사람을 보고 말하기를 너 그 교훈만 가지고는 다른 데 가서는 목회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한다고서. 이런데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이 복음을 그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다른 교훈을 가지고 하고 있고 하니까 처음에 된 옳은 교인들은 다 가 버리지 거기 안 있습니다. 이제 나중에 그런 것으로 주 모웁니다.
그러니까 모으는데 세상 가지고 모으는 데 사람이 제일 많고 그다음에는 인본주의로 모으는 데, 세상이 제일 많지 않습니까 세상이 제일 수가 많고 그다음에는 제일 타락한 교회가 숫자가 많습니다. 인본주의 교회, 사회주의 이 모두 정치 이런 것들 주 이래 가지고서 사회주의 정치주의 도덕주의 인본주의, 그러면 그거 가지고 하면은 교회 숫자는 많이 모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깨달아야 되지 깨닫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이번에는 이거 가르칠 때에 간단하게 가르치십시오. 그저 뭐 가르칠라고는 하지 말고 외우는 게 제일입니다. 외우는 게 제일인데 예수님 믿는 것은 자기의 행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를 자꾸 내가 많이 읽어보라고 말한 것은 행위 가지고서 자기 행위로 가지고서 목회를 하고 행위 가지고 축복을 받고 행위 가지고서 구원을 이루고 이렇게 할라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꼭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래서, “성경은 능히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런데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건데 믿음으로 얻는 것이 뭐이냐?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입니다.
일곱 가지 대속을 믿음으로 자기가 그 사람이 되지, 믿음으로 그 사람이 되지 안 믿고는 천하에 제일되는 그 행위, 천하 인간들의 옳은 행위를 다 똘똘 다 뭉쳤다 할지라도 일곱 가지 중에 하나도 못 합니다. 다 뭉쳐서 해도 하나의 댓가가 안 됩니다. 그 일곱 가지는 인간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은 절대 할 수 없는 완전입니다.
그 일곱 가지는 예수님이 두 가지 죽으심으로 만드신 구원, 또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심으로 만드신 구원, 두 가지. 일곱 가지, 이 일곱 가지는 그것은 완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인간 한 행위를 다 뭉쳐서 하나로 한다 할지라도 그 일곱 중에 하나의 억억억억만분의 일 댓가도 안 됩니다. 이거를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제가 행위 가지고 뭣을 이룰라 하는 것은 다 망하고 맙니다.
갈라디아서는 그것 때문에 요긴한 복음이라고 이라는데, 그러기에 율법으로 의를 얻을라 하는 사람이라 그말은 자기가 행위로 의를 얻을라 하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을라 하는 사람은 행위로 의를 얻을라 하는 사람이라 말입니다.
그 사람은 다 하나님 율법을 다 지켜야 되니까, 다 지켜야 되니까 제가 다 지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 신구약 성경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의 다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하나의 인간이 알 수 있도록 표시해 놓은 하나의 각도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 속에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밀 의지, 은밀 율법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전지자니까 전지자가 법을 세워 놨으니까 전능자가 아니면 전지자의 세워 놓은 그 법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전능자가 아니면 행할 수가 없고 전지자가 아니면 그 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예수님이 이 일을 우리 대신 다 행하셨습니다.
대신 행하신 것은 예수님이 그 인성으로는 다 행하지 못합니다. 인성으로는 다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가 돼 가지고 행하셨습니다. 신인양성일위로 신성으로 행하셨는데 신성으로 행하신 데는 성부 성자 삼위일체가, 그 뚫고 바로 보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이 대행한 것은 삼위일체가 다 합해 가지고서 삼위일체인 하나님이 인성을 붙들고 이 일을 이루신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자기는 의인이 됩니다.
이것이 내 대신 했다는 걸 믿을 때에.
우리가 내 대신 한 것을 믿을 때에 그라면 알고 믿습니까? 아니오. 예수님의 그저 사활의 대속은 나를 대신해서 이 사활해 가지고서 공로를 설정했기 때문에, 내 대신 했기 때문에 이거는 내 대신 했으니 내것이라 이거 믿는 것뿐입니다.
내것이라. 내것이라 믿으니 믿을 때에 그는 완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가지 면으로 완전자가 됩니다.
믿음으로 자기 것 만들고 그다음에는 자기 것 만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법적으로는 이거 자기 것 됐습니다. 알든지 모르든지 법적으로는 자기 것이 완전히 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것 돼 가지고 있는 것이 뭐 자기가 반대한다고 없어지는 줄 압니까? 아니오.
택한 자에게는 이 일곱 가지 대속은 이것은 변동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변동할 수 없이 절대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기본구원 영구원 얻는 구원이고 그다음에 건설구원 행위구원 얻는 것은 이 사실을 믿는 것만치 자기에게 효력이 옵니다. 만분의 일을 믿으면 만분의 일 효력이 오고, 억만분의 일을 믿으면 억만분의 일의 효력이 오고, 이것을 가리켜서 “구원에 이르는” 구원에 이른다, 구원에 이른다는 그것을 며칠 전에 여게 금요일날 밤에 제가 증거한 거 같은데 “구원에 이른다” 이른다는 것은 그거는 이 구원은 담박 얻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마치 높은 산을 올라갈 때에 저 산만당, 절정, 절정이 있고 밑에 발치 있으면, 세계 제일 높은 산 그 고가 얼마 됩니까? 얼마 납니까? 무슨 산? 히말라야 산이라 하나? 히말라야 산은 팔천 얼마인데, 그 산 만당이 팔천 얼마인데 거게 이른다는 거는 그저 거북 모양으로 살살 기어서 이래 가면 일 미터 올라가고, 일 미터 반 올라가고, 이 미터 올라가고 이래 가지고 올라가서 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산 발치에 있는 사람, 아직까지 산을 보고서 올라가기 시작도 안 하고 보고만 있는 사람, 또 일 미터 올라간 사람, 천 미터 올라간 사람, 몇천 미터 올라간 사람 이렇게 있는 거 모양으로 이 우리 구원은 이렇게 건설구원은 이루어 나간다.
건설구원이 이루어나간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성화돼 나간다 하는 말과 같은 말이요 또 하나님과 자기와 가까워져간다 하는 그말과 같은 말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가 입는데 억만분의 일을 입고 있다 억억만분의 일을 입고 있다 그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입느냐?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믿음은 두 가지 믿음입니다. 주님이 내 대신 일곱 가지를 해서 이 완전을 이루어 놓은 그것이 내 대신 했기 때문에 그것은 내것이라는 것을 믿는 그것이 믿음이요 하나는 그것이 내것 됐으니 나는 내것이 아니라 나는 당신의 것이 된 그것을 믿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내것인 것을 자기가 믿기 때문에 자기 것 됐으니 자기 것 됐으니까 자기 것 됐으니 자기 것으로 가지고 살고 또 자기는 예수님의 것 됐으니까 자기가 예수님의 것이 됐으니 예수님의 것으로 살고 하는 이것이 뭐이냐? 자기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우리가 못박혔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내 대신 못박혔으니 나는 못박힌 것이라 말이오. 나는 못박히지 안했지마는 나는 못박혀 죽은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내라는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을 믿는데 믿고 믿으면 자기가 차차 차차 죽어져서 자기는 살아 있으나 완전히 죽어 버렸고 예수님의 대속은 자기 것이 됐습니다.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이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내가 산 것이 아닌데 실상으로 내가 산 것이 아닌 것으로 사는 것이라 말이오.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면 예수님이 내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나는 이거는 예수님의 것이 됐으니까 지금 내가 이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지금 살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이러니까 자기가 살아 있으나 자기는 완전히 죽은 것인 것을 억만분지 일 믿고 억만분지 일이 죽었고 자기는 죽었고 예수님이 자기를 주관해 가지고 사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이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위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아무리 말해 봤자 자꾸 말로 하면은 자꾸 미끄러져 나가 버리고 더 강퍅해지고 완패해져서 마귀란 놈이 역사하기 때문에 점점 들어봤자 자기 속에 자극이 없습니다.
이거는 실행을 할라고 하면, 실행을 할라고 하면은 얼마나 어렵다는 것 알고 어려워서 자기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이걸 다하지 안하면 이것이 하나도 안 이루어 나갑니다. 이것 다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 나갑니다.
이루어 나가기 때문에 예를 들어 히말라야 산을 올라가는데 한 자욱 한 자욱 올라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믿음으로 한 자욱 한 자욱, 믿음으로 자기가 조금 더 믿고 조금 더 믿고 나는 좀 더 주님의 것이 더 되고 주님의 대속은 내것이 더 되고, 주님의 대속은 내게 말로는 쉽지마는 실상 대속이 내것이 되는 것 또 내가 주님의 것 되는 것 또 주님의 것으로 내가 사는 것, 이래서 주님의 것으로 산다 하면은 그거 삼인칭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요것을 말하기를 주님의 것이 산다 하는 그걸 할 때에 ‘네가 엔간히 알았다.’ 주님의 것으로 산다는 거 알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고 주님의 것이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님의 것이, 주님의 것으로 살면 삼인칭인데 주님의 것이 사는 것이라 그거요.
이렇게 해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학생들에게 그저 자꾸 많은 말을 말고 이 공과를 적어 놓은 요 공과를 자꾸 외우도록 하는 그것이 제일 낫습니다. 외우면 그것을 알아.
그러면, 우리 건설, 기본구원 법적구원은, 법적구원은 그거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한 건데 법적구원은 이것은 우리 영은 법적구원으로 하나님이 구원시켰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의 구원은 완전히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몸뚱이 심신의 구원이라는 것은 이 심신구원은 이것은 중생된 영을 통해서 구원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으로 구원합니다. 자기 주관이 역사해 가지고, 자기 주관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주관이 이 하나님의 대속의 생활을 해서, 주관이 뭐? 예수님의 대속은 내것 됐고, 대속은 내것 됐으니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의 것 됐으니 주님의 것이 됐으니까 주님의 것이 살아야 되는데 주님의 것이 됐다고 천번 만번 말하는데 실은 주님의 것이 살지 안하고서 내나 제것 가지고 제가 살고 이러니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자기로 살기 때문에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일생 동안 예수 믿는다고 살았는데 나중에 하나님의 진리 가지고서 심판 앞에 가 가지고서 그 진가를 모두 다 심사하니까,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다니? 무슨 심판 앞에 갔습니까? 무슨 심판 앞에 갔어? 아는 거 같다, 저 입 그러는 것 보니까. ○○○씨? 사심판? 그래, 아는 거 보니 그래 아는 거 같애. 사심판. 무슨 심판 앞에 가요?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사심판이라 말은 맞았는데 그거는 겨우 낙제 안 하고 육십점이나 줄까? 사심판인데 사심판 이것을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해, 그리스도의 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기름 부음의 심판이라는 뜻이오.
기름 부음의 심판이라 뜻은 기름 부음은 무슨 직을 할 때에 기름을 붓느냐? 세 가지 직을 할 때에 기름 붓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직할 때에.
그러면, 예수님의 것이 돼 가지고 예수님의 것이 산 것 만치 예수님의 것이 된 것 만치 그것은 제사장 됐고 선지자 됐고 왕이 됐습니다. 실지로 되는 것입니다.
실지로 제사장 되고 선지자 되고 왕된 것이니까 제사장 된다면 제사장은 뭐이요? 그것도 다 지금 뭐 말하면 한정 없는데, 여게서 배운 것 내가 연구해 안 것 아니오. 나는 책을 보지 안했소. 하나님이 나를 들고 이래서, 나를 들고 당신이 말씀을 해서 내가 말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나는 설교하고 난 다음에 재독할 때 나는 은혜를 받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인간 말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경 모르는 거와 같이 이것도 모릅니다. 내가 내 생각 가지고 말했는데, 내 생각 가지고 말했는데 여러 수천 년 동안 신학자들이 거기다가 전일생을 바쳐 가지고 연구한 그 모든 연구에서 다 이단되고 정죄되고 이래 가지고 다 비판 비판 해 가지고 수천 년 동안 삣고 깎고 깎아 가지고 닦아 가지고 오늘에 교리와 신조로 서 가지고 있는 그거와 내가 생각해 가지고서 말한 거와 딱 들어맞으니까 내가 하나님이겠소? 하나님이 내 속에 와 계시기 때문에 그와같이 한 것을 내가 나는 지금 자꾸 깨닫고 감사한다 그거요.
그래 나는 처음에 여기 ○○○목사님이 세계에 이 모든 교리학을 교리사를 공부했는데 이 시대에 이런 교리 저 시대에는 저런 교리, 교리에 대한 역사, 교리, 인간 역사가 교리 역사를 공부한 것이 ○○○목사가 공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도 때로부터 오늘까지의 교회 이런 교회가 나서 이리 깨달았다 저리 깨달았다, 교리라 말은 깨달았다 말인데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을 가졌다 저런 깨달음을 가졌다 깨달음의 그 모든 족보를 다 이래 깨달아 가지고 교회가 망했다 이래 깨달아 교회가 부흥됐다, 그 깨달음의 종류들을 공부한 것이 ○목사 전공이라 그거요.
그러면, 그것은 이제 지나간 모든 것들을 공부하는 것이고, 그래 내가 요청한 거는 그걸 공부하고 난 다음에는 앞으로 이런 교리는 그다음에는 무슨 교리가 나오며 또 이 교리는 앞으로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겠느냐 그것을 연구해라 하는 것을 내가 네 조목을 내가 보낼 때에 써 가지고서 보냈습니다. 써 가지고서 주면서 요거 네 가지를 공부해라. 가 가지고 공부 안 했어. 자기에게는 너무 거석한 공부하라 한다고 자기는 조직신학 한다고 그걸 반대하고 했는데 일 년 지나고 난 다음에 다시 그 길로 갔습니다. 이것이 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맞다 이래 가지고 그걸 전공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거 전공해 가지고 나왔는데 그거 전공해 나온 사람이 별로이 없습니다. 이건 ○○교파에서 끌라고 자꾸 하지마는 그분이 안 갈라 해서 안 갑니다. ○○교파에 그와같이 전공한 사람이 그만침 전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뭐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 가서 처음에 웨스트민스터 신학에 가 가지고 일학년부터 들어가서 거게서 칠 년인가 팔 년인가 계속해서 그렇게 공부한 사람이 없어. 그만 가는 사람은 처음에 대학원에 들어가 가지고 거튼거튼 이래 공부했지.
이랬는데 그분에게 올 때 내가 노트를 사 줬어. 내가 말하는 데에 네가 공부한 그 모든 학자들의 깨달음과 다른 게 있거들랑 그것을 기록해 달라 했어. 하나도 기록할 게 없고 다 맞고 그분이 ‘네가 나 지적 안 하는 거 왜’ 지적한 거 하나 있는 것은 시편 91편에 새 사냥꾼이라 하는 거 나는, 그전에 해석은 새 사냥꾼이라는 하는 거는 새라고 했는데 나중에 내가 ‘새 사냥꾼의 올무라? 새 사냥꾼의 올무라 했으니까 아주 뭐 실력 있는 사냥꾼의 올무에 걸리지 안한다는 그런 말이라야 되지 이거는 참새나 뭐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고 이거 아마’ 지금 새로 출발하는 말이지요, 지금 밤새도록 쉬고 난 다음에 이제 이튿날 아침에 첫걸음으로 출발하는 그런 사냥꾼이 힘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것으로 해석했더니마는 그거 성경 본문에는 이 날아다니는 새 그겁니다. 그래 나한테 그것 말해서 내가 수정을 받았어. 다른 거 내가 수정 받은 게 없어.
여러분들 이러니까, 내가 이 말 하는 거는 백 목사 자랑이 아니라. 백 목사가 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당신이 시대 시대마다 씁니다. 시대 시대마다 사람을 써서 하는 것이니까 이제 당신이 깨닫게 해 가지고 깨닫기 때문에 나를 멸시하지 말고 이 깨달음 바른 깨달음 이것을 멸시하는 건 주님을 바로 멸시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요것을 여러분들이 여러 수십 번 배웠기 때문에 아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첫째 가르쳐 줄 거는 뭐이냐 하면은 우리의 구원이라는, 구원은 뭐이냐?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 받아 가지고서 완전자 되는 것이 이게 구원 아닙니까? 완전자가 조그매 되거나 많이 되거나, 어짜든지 완전이 아니면 다 멸망받습니다.
이게 되는 것이 우리 구원인데 이거 되는 것은 믿음으로만 되지 딴걸로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으로만 되는데 믿음은 무슨 믿음이냐? 우리 인간은 아무리 해 봤자 이 일곱 가지 지금 완전을 이루어 놓으신 이 완전인데 이 일곱 가지 중의 하나에, 하나에 억억만분의 일도 인간 전체가 다 달라들어도 못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한하고 어렵고 큰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셨는데 신성은 할 수 있지마는 신성이 하면은 인간에게 상관 없어.
인성이 사람이 한 것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이 한 격위를 가지고서 하나님이 인간 속에서 역사해 가지고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 일을 완성시켜 놨다 말이오. 완성시켜 놨어.
그것을 우리 대신 해 주신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내 대신 했기 때문에 그것은 내것이라’ 하는 그것을 믿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이 일곱 가지 대속한 것은 내 대신 했기 때문에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이라.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이라.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이라는 그것 믿는 것과 일곱 가지 대속을 내것 삼았으니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과 그러면 믿음이 몇입니까? 둘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주님의 것이니 주님의 것이 된 주님의 것이 사는 그것이 결말입니다. 주님의 것이 사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은 주님의 대속을 믿는다는 것도 거짓부리, 또 자기가 주님의 것 됐다는 것도 거짓부리,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산 것을 콩내끼만치 살았으면 그만치 자기는 주님의 대속을 믿는 것이요 자기가 주님의 것 된 것을 믿는 것이요 그 증거로 주님의 것이 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대번에 안 되는 것이니까 태산을 올라가듯이 “이르게 한다”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에 점점 도달하게 한다. 이런데 제가 껍데기로 말로만 하면, 말로만 하면 뭣 됩니까? 자기가 말로 하고 행하지 안하면은 말로 한 것은 자기에게 뭐 한다 했지요? 말로 하고 행하지 안 했으면 그 말한 것이 뭣이라 했지?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돼. 말로 했으니까 자기는 말로, 말로 주장했으니까 자기가 주장한 것 아니요? 말로 주장했으니까 주장했지. 말로 주장하고 행하지 안하니까 그것은 자기 한 말이 자기를 정죄하고 자기를 심판한다 그말이오. 심판하고 정죄해요. 이러니까 전부 자살 행위만 우리가 자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그것을 말해 주고 그러면 또 일곱 가지 대속은 그거 입으로만 쭉 읽어 줘요, 입으로만 딱. 외우기만 해 가지고 나중에 그 해석은 뒤에 가르쳐 줄지라도.
제일 처음이 뭐입니까? 제일 처음이 뭐이요? 제일 처음에 몇 가지요? 예수님의 죽으심이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 죽으심 했어? 예수님의 죽으심이 몇 가지 죽으심입니까, 손가락으로? 몇몇은 요라고 다 모두 이라네. 다 이거 다 틀렸어.
이거야 이거. 예수님의 죽으심은 두 가지 죽으심이라. 우리 죄를 인해서 죽으셨고 하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행하여서 하나님과 화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화친과 또 우리 대신 율법을 행하는 그 두 가지로 인해서 죽었습니다. 그 두 가지는 죽음으로 한 게 아니라 그 두 가지를 죽어도 놓지 안하고 두 가지를 죽여도 놓지 안하고 행하면서 죽었기 때문에 완성이 됐다 그말이오. 두 가지 죽음.
그러면 처음에 죽으심으로, 처음에 그 형을 받아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이 몇 가지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죽으심으로 구원이 몇 가지 됐습니까? 저 뒤에 등신들 범벅덩이들 그래 가지고 소용 없어. 요 앞에는 손가락 서이를 가리키는데 저 뒤에는 엉뚱한 짓 하고 있어? 귀넘어 들으니까 헛일이라.
처음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형을,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죽으심으로써 구원 세 가지, 또 우리 대신 행하신, 화목 행했고 율법 행했고 행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두 가지.
또 주님이 하나님이 이 피조물로 살아난다는 걸 하나님이 피조물로 산다는 거.
여러분들 자, 아주 귀인이, 귀인이 천인 천인 천인으로 멸시 천대받는 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고욕입니까 영광입니까? 고욕 아니요? 하나님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그거는 고욕이고 얼마나 모욕이고 얼마나 그거는 고생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 주심이 그 구원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손가락 들어 봐요. 못 들으면 죽은 사람이라, 암만 나와도 소용 없어. 나중에 가 보면 몇 없어. 노아 홍수 때 구원 이룬 사람이 여덟 식구밖에 없었어. 그까짓 걸로 믿으면 다 헛일이야. 뭐 세상에 왕도 소용 없어.
장관도 소용 없고, 박사도 소용 없고, 부자도 소용 없어. 꼭 요게 맞아야 돼요. 안 맞으면 소용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 주신 구원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 다 들어 봐요. 두 가지.
그라면 예수님이 두 번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만들어 주신 구원이 몇 가지입니까? 통틀어 몇 가지, 손가락으로? 들어 봐, 다. 새로. 한 손 든 사람은 다 틀렸어요. 이거 두 손을 들어야 되지. 하나는 둘 하나는 다섯.
일곱 가지라.
요것을 아는 것이 여러분들이 이것을 안다고 바깥에 나가 하면은 막 우 달라들어 가지고 이걸 깨뭉캘라고 야단입니다. 깨뭉캘라고 야단인데 이것은 절대 틀림이 없다는 것을 가지면은 안 깨지는데 어리석은 자는 그만 깨버리면 구원 뺏겨버리요. 이러니까 똑똑히 알고 제가 실행해 보고 똑똑히 알고 난 다음에는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자꾸 말해 나가면 그들이 꺾어지고 결국 그들이 다 구원에 이르고 결국 정복하고 만다 그거요.
이번 공과 이러니까 어짜든지 자꾸 외우라고 하십시오, 자꾸 외우라고.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