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현실은 주님과 가까워지게

 

1988. 4. 13. 수저녁

 

본문 : 마태복음 10장 16절-42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그저 간단하게 아무래도 알려 놔야 되겠다 해서 그래 이 마태복음  10장 16절 이하의 말씀을 봉독했습니다.

 필기하는 것도 좋지마는 필기보다도 잘 들으면 더 유익이 있습니다. 듣고  깨달아야 되지 깨닫지 못하면 나중에 필기하다가 실패하기 쉽습니다.

 16절에, 예수님께서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위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어렵고 또 어떻게 좋고 우리 현실이 어떻게 변해져도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서  주님과 이렇게 결합이 되어지는 그 외에는 자기 현실을 해결하는 방편은  없습니다.

 요 말 여러분들에게 이해가 됩니까? 과거에는 거기에 대해서 상세한 해석을 해  줬지마는 지금은 이제 간추려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니까 이리는 양을 삼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이라는 이 현실 세상은 우리의 구원을 삼킬라고 하는 것이  현실 세상입니다. 형통도 우리 구원을 삼킬라고, 여러 가지로 불통되는 어려움도  우리 구원을 삼킬라고, 우리의 현실인 온 세상은 우리의 구원을 삼킬라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나타나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양의 형편이든지 저 모양의 형편이든지 우리가 주님 앞으로만  그로 인해서 가까이 가서 주님과만 가까이 결함이 되면 어떤 형편이든지 다  우리에게는 구원이 됩니다. 요런 걸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이제 그 해석은 하지  안하고 지나가겠으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현실 뭐 재미나는 현실도 있고 크게 성공되는 현실도  있고 대 낭패와 고통되는 현실도 있고 하는데 그 현실은 어떤 종류의 것이  오든지 우리 구원에는 꼭 같습니다. 그것이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 때에 ‘이런 현실을 닥쳤으니까 이 현실에서는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저런 현실을 닥쳤으니 여기에서는 또 저렇게 그  지혜를 써 살아야 되겠다’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하다가 다 망하고 맙니다.

 그저 어떤 현실이 닥쳤든지 주님에게로 가까이 나아가는 요 하나 가지고 모두가  다 완성됩니다.

 이걸 좀 알아듣기가 어려운 말이고 믿기가 어려운 말인데, 여러분들이 수백  수천 종류의 현실을 닥칠 때에 이 현실에는 내가 요렇게 할까 조렇게 할까, 자꾸  이렇게 사람들이 천태만상의 현실을 천태만상으로 연구하고 그 방편을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고게서한 방편만 쓰면 됩니다.

 거기에서 내가 여기에서는 어떻게 하면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겠느냐?  어떻게 하면 주님과 가까워지겠느냐? 주님과 가까워질 것만 연구해 가지고  가까워지는 일만 노력하고 보면 모든 것은 어떻게 해결되는지 그 해결되는 그런  이치는 우리들이 모릅니다. 전지 전능자가 아십니다.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나  그게 미련한 것 같지마는 그것으로서 해결은 잘 됩니다.

 요것은 자신이 살아본 사람들이라야 알지 그리 안 하면 모릅니다. 그저 믿고  살아보십시오.

 또 그 다음에, 지혜는 배암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라 하는 이 말씀은  배암은 마귀를 말합니다. 배암의 지혜는 이 세상 지혜를 다 총칭해서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배암의 지혜를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배암의 지혜를 가진것만치  자기에게는 유리합니다. 배암의 지혜는 자기가 가지나 그 배암의 지혜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그 배암의 지혜를 비둘기같이 순결한 그 영감 생활에 활용을  하고 이용을 하면 그 모든 배암 지식이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됩니다.

 그러나 이 배암 지식을, 배암 지식을 그것을 자기가 그 지식에 복종해서 그  지식대로 이렇게 살아나가서 뭐 할라 하는 사람들은 헛일입니다.

 배암의 지식을 가지는 것이 나쁜가? 배암의 지식을 가지되 배암의 지식은  자기가 거기에 복종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지식,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것은  영감인데 영감 생활 하는 데에 배암의 지식을 종을 삼고 이용물을 삼아서 이용할  때에, 모든 배암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에게 이용을 당할 때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 선물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고것을 여기에 말했습니다.

 또 17절에, 사람들을 조심해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회당에서  채찍질 하겠고 총독과 임금 앞에 끌려갈 것이다.

 이래서, 이 사람을 대할 때에 아주 조심해 대해서 그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에 그 사람과 철통같이 그 한 몸같이  친밀한 것이 내일에 제일 원수로 정대립으로도 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가질 때에 네가 지금 그 사람과  밀접하고 친근하고 한 그것이 변동 없는 그 믿을 만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오늘 너와 한몸같은 사람을 내일 너와 정반대의 원수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드신다.

 이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람은 사귈 때에 그 사람이 앞으로 나와 원수가 돼  가지고서 법관에도 송사하고 공회에도 회당에도 송사하고 또 그 사람이 이런  모든 총독과 임금들 앞에도 끌고 가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사귀라 고걸 말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사귈 때에 그 사람이 언제 나와 어떤 대립이 돼 가지고서 나를  송사하고 나를 그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언제 될런지 모르니  사람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아무리 그가  그렇게 대립돼 가지고서 내게 어떻게 한다고 해도 내가 그에게 아무런 걸려  들어갈 것이 없도록, 아예 오늘 좋지마는 내일 원수가 돼 가지고 나를 어떻게  지금 삼킬란지 대적이 돼서 나를 해할란지 모르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떻게  된다고해도 너는 그에게 대해서 담대하고 평안하고 아무 그런 염려 없는 그런  생애로 사람을 사귀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거석한 것이 있으면은 주님에게 고해 가지고서 다 정리하고  정돈해 가지고서 내가 친하고 있는 사람이나 원수로 돼 있는 사람이나 같은  사람이라. 나와 지금 가장 원수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내가 속을 일이  없지마는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속을 일이 많다. 왜?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원수될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신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사귈 때에는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어떠한 대립자가  되어져도 내가 그에게 아무 걸릴 것이 없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조심해서  사귀라. ‘사람을 삼가라’ 삼가라 말은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사귈 때에도 언제든지 주님과 하나 돼 가지고서 주님의 인도  따라서 사귀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원수가 돼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너는  거기에 걸려갈 것이 하나도 없다. 주위 환경이 어떻게 됐든지, 주위 환경이 천태  만상의 어떻게 됐든지 너는 주님하고 밀접하게 결합하는 고걸 항상 계속해라.

 또, 네가 수많은 종별의 사람들을 사귈 때에도 너는 주님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언제든지 그 사람으로 더불어 대화도 하고 의논도 하고 꼭 주님하고  하나가 딱 결합돼 가지고서 사람을 사귀라. 그라면 아무 일 없다. 고걸  말합니다. 그러면 둘을 배웠습니다.

 또, 총독이나 임금이나 공회나 회당에 여러 가지 채찍질도 하고 잡아서  가두기도 하고 고문도 있고 고형도 하고 별별 그 일들이 있는데 그때도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 그럴 때는 어떻게 되겠는가?  공회에 잡히고 회당에 끌려가고 총독에게 임금에게 이 모든 형무소 또 이 모든  경찰서 수사관과 별별 그런 모든 권력가 세력가에게 끌려갈때는 어떻게 될까?  끌려갈 때에 그새도 너는 주님하고 하나 돼 가지고서 주님만 나타내 보이는 일  돼야 된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나와는 상관없다.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령을 어떻게 지키는 것을 저들에게 보여 줄 것뿐이다.’ 한 말씀  같이 이렇게 이 세상에서 수많은 종류들의 그 세력에게 끌려가는 그런 일이 있을  때는 그때는 어떻게 내가 처세할까?  이 사회가 달라지고 국가가 달라지고 모든 세력들이 달라져 가지고서나 예수  믿는 사람을 끌고 이리 저리 이래 넣어서 이렇게 할 때는 어떻게 할까?  그때는 너와 주님과 둘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는, 보여 주는  그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요 또 그것이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목적이기 때문에  그거 하면 너는 승리한다 고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럴 때는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이러니까 그런 모든 처지에 할 때는 이때는 내가 어떻게 지금 사람 운동을 할까  이 배경 운동을 할까 또 물질로 뇌물 운동을 할까 어떻게 할까 이렇게 될 때에  네가 나아갈 길은 무슨 길이냐? 예수님과 너와의 한 덩어리되어 있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유일한 생명의 방법이다. 이 처세하는 것을 지금 이거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일 이런 시대가 지나가고 어떻게 해서 뭐 시대적으로 그런 일도 있고  개인적으로 그런 일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나 또 사회적으로나 그  지역적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에 그러면 내가 사람에게 끌려서 원치 안하는 자리  원치 않는 입장 그런 걸 만날 때에는 내가 어떻게 처세해야 될까? 내가 갈 길이  무엇인가? 그때는 뭐입니까?  총독에게, 임금에게, 경찰서에 수사관에게, 또 이건 모든 종교 단체, 불교  단체, 또 이종교 단체 어쨌든지 그런 세력들에게 내가 끌려갑니다. 그런  세력에게 끌려서 잡혀가고 끌려가고 이래 고문도 당하고 그래 당합니다. 그라면  그럴 때에 우리가 갈 길은 어떤 길일까? 어떤 길을 가야 될까?  그때 잘못하면 세상 방편이 뭐 수십 수백이 있으니까 이리 해야 된다 저리 해야  된다 다 이라는데 고것은 다 우리가 갈 길 아닙니다. 고때는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증거가 되게하려 하심이라’ 그때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때 증거하는 것이 공산주의에  끌려가서도 우리가 거기에서 피난하는 길, 우리가 거기에서 복된 길, 우리가  승리하고 성공하는 길, 거기에서 구출되는 길은 무슨 길이요?’ 구출되는 길은,  공산주의에 끌려갔을 때에 구출되는 길은 무슨 길이요? 예? 무슨 길이요? 여기  양성원 학생들 무슨 길이요? OOO. 하나된 거? 하나된 거. ‘증거하게 하려  함이라’하나 된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 알겠습니까?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그래 주님이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말씀한  것입니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저는 와서 제일 하고, 저는 와서 저하고 싶은  일 하고 제가 와서 나한테 뭐 십자가에 못을 박든지 창으로 찌르든지 어떻게  하든지 저 할일은 저 하고 나는 상관없고 저 할 일은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아이구, 요 좀 매를 좀 덜 때려 주십시오. 아이 좀 그만 고문을 덜해 주십시오  고생을 덜해 주십시오.’ 그거는 주님이 나 할일은 아니라 했습니다.

 아니고, 다만 나 할일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그 계명을 어떻게 지킨다는  것을 저희들에게, 많이 고문이 오면은 더 신실히 지키는 것 보여 주고, 또 오래  동안 그 고문과 고형이 있으면은 오래 동안 아버지를 계속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는 걸 보여 줄 것뿐이라. 보여 줄 것뿐이라. 그만 꼭 같은 방법입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는 우리의 할일은 무엇이 우리 할 일인고 하니 그들에게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다는 것을 증거해 보이라고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때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는 거 ‘주님은 구주시다. 또  만유주시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이러면, 자꾸 고문해 때리면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나타내고 또 독약을 먹이면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나타내고 자꾸 그것만이 우리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  그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돼요? 저 뒤에 이해가 돼요? 네, 이해가 되면  돼요.

 이거 지금, 지금 안 배워 놓으면 그럴 때 가서 얼떨떨해 가지고서 어짤줄을  몰라요. 요거 지금 가는 길을 말하고 있는데.

 또 그 다음에 보면 19절에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 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하나님의 성령이시니라’ ‘성령이시니라’  이래서, 무슨 고문이나 고형이 있어 가지고 고문이 고형이 있어서 문초를 받고  이렇게 할 때에는 주의할 것이 뭐이냐 하면 ‘이럴 때는 대답을 어떻게 할까?’  이렇게 지금 고문과 고형의 이 지금 문초가 있을 때에는 이때는 이렇게 대답해야  되겠느냐 저렇게 대답해야 되겠느냐 그 대답할 것을 네가 생각지 말라.

 대답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니 주님이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도록 너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기다리고 그분이 하는 말씀이 네 입을 통해서 나타나도록  그렇게 해라. 그럴 때에 너와 주님과 하나 돼 가지고서 주님이 네 속에 계셔서  너를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도록 그렇게 해라. 그래야 권위 있는 말 하고 실수  없는 말 하고 이렇게 돼지지 그렇지 안하면 다 실패한다.

 이러니까 그럴 때도 주님하고 하나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통해서 말하도록 내 안에 계셔서 내 입을 통해서 말하는 주님으로 그렇게  밀접해지고 또 어떤 환경에서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그 계명을 얼마나  지키는 것을 증거하는 그 결과로 나타나도록 주님과 하나되고,   그러면, 여기 쭉 내려보면 지금은 급하니까 잘 몰라도 여러분들이 가서 보면  이렇게 이런 형편 저런 형편 여러 가지 형편이 있는 걸 말했습니다. 그 형편을  말했는데 그 형편마다 주님하고 하나 돼 가지고서 나타나는 그 결과로만  성공합니다. 딴 걸로는 성공을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형편에서는 요건  결과가 맺어지도록 주님하고 하나 됐고 조런 그 과정에서는 조런 결과가  나타나도록 주님과 하나 됐고 어쨌든지 여기에서나 저게서나 주님하고 하나되는  여기에서 이런 형편에는 이런 결과가 나왔고 저런 형편에는 저런 결과가 나왔고  모든 우리의 전생활의 형편과 사정은 주님과 나하고 하나되어 결합되는  거기에서만 성공이 되고 거기에서만 생명의 결실을 맺을 수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는 고문 고형할 때는 ‘내가 뭐라고 대답할꼬?’ 대답할 걸  네가 생각지 말라 그래 놨어요.

 19절에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고때  잘못하면 내가 이럴 때 이러니까 여기서 요렇게 말해야 될까 조렇게 말해야 될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대개 백의 백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다 그런 일 닥칠 때에 의례히 그래’생각 안 합니까? 안 믿는 사람은  다 그렇게 생각해 가지고 대답하는데 우리도 그만 구습이 있어 가지고서 우리도  그렇게 대답할라고 하기가 쉽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기에 말하기를 ‘어떻게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이거 안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럴 때에 ‘요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될꼬?’ 생각지 말라  말이오. 이게 기독자의 이 처세술입니다.

 그럴 때 잘못하면 그런 일 있으면 ‘지금 오늘밤에는 지금 고문과 고형을  하면서 모든 조서를 꾸며서 전부 지금 문초하고 조사해 가지고서 조서를 꾸밀  터이니까 오늘밤에는 무슨 말을 할꼬 어떻게 말할꼬 하면은 자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자기에게로 돌아갔어. 여기에서는 이걸 모르면 안 그럴 수가  없어.

 어떻게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말은 생각지 말라 말이오. 생각지 말아라.

말고 그저 주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이 하실 말을 하십시오’ 당신에게 맡겨  놓고 당신이 말씀하도록 기다릴 때에 당신이 내 입을 통해서 말하게 됩니다.

 그때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무슨 말할 걸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님이 말합니다.

 이러니까 내 안에서 성령이 말하니까 성령님이 말하니 그 말씀은 전지의  말씀입니다. 전지의 말씀. 내 속에 전지의 말씀이 그때 나와야 그런 것을 다  이기고 그거 다 증거하지요. 또 전능의 말씀이라. 그러면 전지의 말씀이요  전지의 말씀이요 전능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피조물들이 그 앞에서  조그마치도 해치지는 못해. 유익되게 만하고 구원에 도움되는 작용만 하지  딴거는 못해.

 요런 것도 미리부터 안 알아 놓으면 이럴 때에 실패하게 됩니다. 왜정말년에도  이런 성구들을 미리부터 안 사람들은 그때 이렇게 대답할까 저렇게 대답할까 한  사람들은 다 실패했어. 그라면 인간 생각이 나가지고서 악령·악성·악습 그놈이  들어서 말했기 때문에 내나 그놈들 부하의 말이니까 그까짓 거야 말할 거 뭐  있소?  그러나, 그때에 믿음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말해 주실 것을 생각하고서  하나님이 말해 주시도록 기다리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알려서 어떨 때는  말 안 해 주니까 말 안 하고 대답 안 하고, 안 한 게 좋고 또 어떨 때는  대답하니 말에 그들이 꼼짝 못 하고 그 앞에 그만 기합되기도 한다 말이오.

요것도 작정을 해야 됩니다.

 주기철 목사님을 내가 그걸 본인에게 듣지는 안하고 나는 그 책을 있기는  있는데 안 읽어 봤어요. 이랬는데 그저 간추려만 보고. 이랬는데 모든 간수들이  갖다 놓고 고문과 고형을 하고 이래 할 때에 그때에 자기가 뜻밖에 말이  나오기를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데 너희들이 어데 이런 행세를 하느냐고  고함을 지르니까 그만 우쭐해서 그만 그 고문이고 다 없어버리고 그만 그들이 다  굴복하고 다시 감방으로 모셨다고.

 그때 무슨 말 하라는지 우리는 몰라요. 그럴 때에 우리 인본주의 말하지  말아요. 주님이 말하게 해 주실 줄 알고 그렇게 해요. 그러니까 고럴 때는  당신이 내 속에서 말하도록 고렇게 결합을 해야 됩니다.

 또 21절에, 장차 형제가 형제를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이렇게 죽게 하는  그런 이 죄악이 관영해지는 그런 때가 우리 환경에 옵니다.

 환경에 올 때에 그런 일을 보거들랑은 이상한 일 보는 걸로 생각지 말고 그런  일이 내 주위 환경에 닥쳐지는 것은 미리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런 환경이 온다  하는 것을 미리 요거는 지식으로 가지고 있으면 돼.

 이럴 때, ‘주님 말씀하신 대로 이제 그 일이 오는구나’ 놀래지 말고, 놀래지  말고 그럴 때에 하나님이 예언하신 대로에 고 현실이 닥쳐왔다하는 고것을  생각하고 고때도 요동치 말고 주님이 나를 인도하신는 그 인도만 딿도록  주의하고 고럴 때에 제일 주장은 뭐이냐 하면 내가 나를 주장하는 고런 일 하지  말고 주님의 인도를 딿도록 주님에게 맡겨 놓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또 그 다음에 22절 이하에 보면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저 동리에서 이 동리로 자꾸 이렇게 쫓겨다녀요. 쫓겨다니는데 다 다니기  전에 주님이 오신다 이랬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 도리를 지킬라고 하면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동으로  밀려가고 서로 밀려가고 이렇게 밀려서 다니는 것이 이것이 성경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는 신앙생활 할 때에 나는 꼭 부산 서구동대신동 1가 382번지 요게서  꼭 예수 믿어서 가겠다는 고것을 안됩니다. 고게 붙으면 주님은 고거 뗄라  합니다. 주님 욕심 많소. 주님 욕심 많아서 어데든지 붙었으면 꼭 그 자리를  뗄라 합니다.

 불었으면 그 자리에 떨어지도록 당신이 만들 때에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안하고  고 자리 고 지키고, 고 자리를 지키고 있을라 하면은 어찌되느냐? 주의 말씀  어겨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지 안할라고 하면 그 자리서 뚝 떨어져서  옮겨져 가도록 그렇게 돼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나는 꼭 요게서 예수 믿다가 죽을란다, 끝을  요게서 끝난다 그걸 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갈길은 어덴지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가야 되지 어데든지 붙어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에게만 붙어 있어야 되지 주님 외에 딴데 붙은 데는 그만 주님이  시기하십니다. 알겠습니까? 붙어서 안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은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저 동리에서 저 동리로하는 그  말은, 이스라엘 모든 동리를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온다 하는 그 말은 주님이  우리가 처세하고 있는 어떤 그 곳이라도 고것을 떼지 안하고 고 일정하고 고게서  자기는 뭣을 해 보겠다고 하면은 안 됩니까 주님이 이렇게 이곳으로 밀고  저곳으로 밀 때에는 하루 열 번 밀려가도 주님만 안 떨어지고 주님만 안  떨어지고 자기 붙어 살고 있는 세상은 그것은 열 번이라도 스무 번이라도  떨어지고 주님만 안 떨어지도록 이렇게 해야 되지 자기가 어떤 여기 자기 본토  고향이 어데든지 거기에서안 떨어질라고 하게 되면은 결국은 주님을 떨어져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이 암만 많이 있어도 자꾸 변해져서 네가 그저  이리저리 자꾸 끌려 다니고 이리저리 자꾸 변동될 그런 일이 있어도 주님만  떨어지지 말아라. 주님만 안 떨어져야 되지 잘못하면 자기 분토 안 떨어질라고  이래 하다가 나중에 가 보면 주님 떠나버리면 헛일이다.

 이리저리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저 동리에서 저 동리로 온 그 동리를 다  돌아다녀도 주님은 떨어지지 말아라 요것을 거기에서 말합니다.

 ‘이 동리에서 너희를 폅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랬으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처소도 주님과 떨어지게 할라고  ‘이 세상은 주님하고 나하고 떨어지게 만들라고 네가 이 자리에서 살라면  주님하고 지금 주님의 계명을 어겨야 된다 할 때에 그저 그 자리서 못 가고  이사를 자꾸 가도 이사를 가도 주님하고 떨어지지 안하고 또 그 어떤 그  불목됨이 있어도 주님과 떨어지지 안하고 그저 주님과 떨어지지 안하구로만 자꾸  이래 노력을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고, 주님을 인해서 우리들이 미움을 당해 가지고 이리 밀려 가고저리  밀려갈 때에 그때에 밀려가는 것이 성경이니까, 밀려가는 것이 성경이니까  우리는 몰라요. 여기 있다가 그 계명을 지킬라고 하면은 우리가 어데로  밀려갈란지 모릅니다.

 그럴 일도 있을 수가 있어요. 말씀을 어겨서 죄짓지 않을라 하면은 이놈은 잡아  가지고 가자. 죄를 지으면 안 잡혀 가고 이 부산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는데  죄를 안 지을라 하면 죄 안 짓는 이놈을 잡아가지고 가야 되겠다. 그래 네가 이  계명을 어기지 안할라고 하면은 네가 고집을 하면은 너는 가자. 싣고 저  소련으로 갈란지 이북으로 갈란지 모른다 그말이오. 그리 가는 것이 하나님의  성경이라 말이요. 가도 주님은 떨어지지 말아라. 온 동리를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오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 가보면 그것이 살 길이라.

 요셉이가 죄짓지 않을라고 하는 것이 감옥에도 들어갔고 이렇게 멀리 갔는데,  주님의 계명 지키다가 망한 사람이 요셉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의 계명을  지키다가 망한 사람이 요셉이라. 그는 나중에 가보니까 망한 그것이 또 구원에  성공이 됐어. 자기뿐만 아니라 그 족속을 다 구원한 그런 일이 되고 말았어.

 이러기, 때문에, 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범위를 우리가 깨닫고 그저 우리는  주님하고만 떨어지지 않으면 돼요. 어데서든지 어떤 뭐 어떤 별별 종류를  가지고서 주님과 나와 떨어지게 만들라고 이 세상이 달라들어도 거기에 이런  방법 저런 방법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처세 방법을 다 쓰지 말고 다만  주님하고만 떨어지지만 안하면 됩니다. 주님하고만 떨어지지만 안하면 성공이요  인간 방편을 써 가지고서 어떻게 그때 형통한 거 같으나 주님과 떨어지면  망합니다. 떨어지지 안해야 되는 걸 말합니다.

 또 그 다음에 24절에 보면, 제자가 선생같고 종이 상전 같으면 되지 않느냐?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했거든 하물며 그집 사람들이랴? 이러니까 이는 예수님이  땅위에서 이런 고난 저런 고난 모든 고난을 당하셨으니 나도 그와 꼭 같은  종류의 고난당할 것을 각오하고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땅위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만 고난의 종류를 당한 그대로 나도 그 고난을 당할 것을  각오해라.

 각오하는데, 너는 너를 위해서 사람으로서 고난당하는데 나는 너를 위해서  하나님으로 내가 고난당했으니까 네가 아무리 내 고난 같은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너 위해서 고난당하는데 꼭 같은 고난당했으면 하나님이  긍런 곤욕을 수욕을 당했는데 네가 수욕당한 그것이야 하나님 당하는 수욕같이  당했으니까 하나님과 같은 동등대우를 받았는데 네가 뭐 족하지 않느냐?  고것을 우리는 가다가서 어려움 당할 때마다 이제 그 하나님으로서도 이  생명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이렇게 당하신 이 생명길을 내가, 이 길을 걸어  갈라고 할 때에, 할 때에 의례히 그 종류대로의 모든 애로가 있는 것은 필연한  것이 아니냐? 이러니까 종이 상전 대접 받으면 됐고 제자가 선생님 대접 받으면  되지 안했느냐?  이제 너희들이 주님의 당하신 나 당한 걸 했으니까 하나님인 내가 받는 대우와  같은 대우 받았으면 됐지 뭐 그 이상 너희들이 바랄 것 뭐 있겠느냐 말씀하신 요  비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라고 그 다음에는,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사람들은 나타난 거, 나타난 소리, 또 나타나 보이는 것,  나타나 들리는 것이 나타난 것만 사람들이 생각하고 나타나지 안한 것은 생각지  않는데 나타나지 안한 것이나 나타난 것이나 그게 하나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이 나타난 것만 상대한 사람은 좋은 거는 나타나도록 하고  나쁜 것은 가루고 또 이제 나타난 것만 보고 사는 사람은 나쁜 것은 가루고 좋은  것은 나타나기를 원하고 그래 사는 사람들은 일방적인 생활이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서 감추어진 면이 없는 거 없고 감추어진 것으로서 나타나지 안할 면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나타난 것과 나타나지 안한 그것이 하나이기 때문에 양면을  보고 살아라. 양면을 보고 살아라.

 그 네가 어떤 것을 이거는 나타나면 안 됐다. 숨겨서 이거는 나타나면 안  됐겠다. 찬찬히 깊이 숨기는 어리석은 네야. 네가 아무리 깊이 숨겨도 그 숨긴  것이 반드시 그대로 나타난다. 또 네가 아무리 감춰도 그건 그대로 나타난다. 또  나타난 그것은 또 그 이면에 나타나지 안한 면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나타나고  나타나지 안한 그것이 다 하나이기 때문에 일면만 보고 살지 말고 양면을 보고  살아라 말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상 아무리 세력들은 우리를 억압하고 해한다 할지라도, 해한다  할지라도 이 고깃덩어리만 고문과 고형을 주지 그 영혼은 고문과 고형을 주지  못한다. 이래서 ‘몸은 감옥에 갇혔으나 양심은 자유한다’ 말한 대로 그 마음은  그들이 마음은 때릴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고 가둘 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  고깃덩어리 이것만 고문도 하고 고형도 하고 하지 마음을 붙들지도 못하고 하는  그런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 좀 신비한 것과 이 물체의 것 그 모든 것을 다  전부 망라 해 가지고서 이것을 취급하시는 이를 두려워하고 이제 고깃덩어리  이거 취급만 하는 그런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것은 이 세상 그 악의  세력들을 말합니다.

 악의 세력은 이 보이는 물체 이 나타난 형체 있는 물체 이것만 고문하지 그  속에 심령은 그들이 고문과 고형할 수가 없기 때문에 너는 이 물체 이것만  상대하지 말고 심령까지를 보고 너는 육체는 그들이 해할지라도 심령은 해하지  못하는 그런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심령과 육체를 아울러서 형벌하고 해하는  자를 두려워해라. 그러면 그 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라고 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천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제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그 생명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생명에 대해서는 사람 생명뿐만 아니라 이 짐승의 뭐 생명까지도 주님이  다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이라 말은 아주 그뭐 간략한 그런 소액의 돈인데  그런데 팔리는 그 참새지마는 천부께서 허락지 안하시면 한 마리의 생명도  아무도 세상이 해하지 못한다. 그 생명이 하나님께 주권되어 있다.

 이런데, ‘하물며 너거들이겠느냐? 너희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됐다’ 그말은  주님이 우리 택자들에게 대해서는 이 머리털만한 것도 말은 지극히 작은 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당신이 홀로 주권해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 외에 딴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권이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니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면  사람들이 믿는 사람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 줄로 이렇게 알지마는  ‘너희들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느니라.’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느니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마는 너희 주권자  천부께서 허락지 안하시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뜨리지를 못한다. 이거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그것이 다 주님의 주권적으로 주권자이신 그분이 떨어지게 해야  떨어지고 무더기로 죽게 해야 뭐 죽는 것이지 그분이 허락지 안하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말은 조그만한 곤충 한 마리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허락지 안하면 하나도 그 생명을 해할 자가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많은 참새보다 귀하지 않느냐? 너희들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주님이 다 세고 계신다. 모두 다 주권하고 계신다. 너희들에게는, 택한 중생자  너희들에게는 머리털만한 고런 사소한 것도 다 주권으로 다 간섭하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것도 우리가 믿어야 뒵니다.

 결단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기 꾀를 써 가지고서 평안한 길을 갈라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고다음에 또 말씀하시를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나를 아노라 하면은  나도 하나님과 그 사자들 앞에서 아노라 할 것이고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나를  모른다 하면 나도 이 하나님과 그 사자들 앞에서 너희를 모른다고 하겠다 요렇게  딱 서로 상호 책임을 딱 지워 놨습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우리는 요 말씀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신불신자 만물의 그 생명도 그 세상이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허락해야, 한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거 또 이 뭐 동물이니 곤충이나 다 죽는 거 그런  것도 다 주님 주권자가 허락하셔야 되지 허락지 안하면은 한 존재도 죽이지를  못합니다. 또 주님이 죽게 하는 것은 어떤 세력이 달려들어도 절대 살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생명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신다는 거.

 믿는 사람들은 그 많은 새보다도 귀하지 않느냐? 너희들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고 세신다. 머리털만한 그런 것도 전부 주님이 다 주권하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저들이 많이 해 봤자 이 고거덩어리만 붙들지 마음은 붙들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권리지만 권리가 가장 미약하고 외부적이고 국한적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허락해야, 당신이 허락해야 그 부리는  영들이 역사하지 당신이 허락지 안하면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고문과 고형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사람들이 벌써 ‘어떻게 하면 내가  좀 형을 적게 받겠느냐’ 그리 되면 벌써 그때부터는 주님과 떨어져 버렸소.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은 하룻밤에 ‘오늘밤에는 손목사님 지금 꺼꾸로 달아  가지고서 코에다가 물을 들이 넣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지금 형을 할 모양인데  그것은 코에다 물을 넣으니까 코가 아프고 이래 물을 가지고서 물을 자꾸 자꾸  물을 쓰고 써 가지고서 배가 막 이렇게 붇고 그래 가지고 배가 불러서 죽습니다.

죽으니까 오늘 밤에는 물을 잡수지 마십시오.’ 간수가 하도 손양원  목사님에게는 감화를 받아서, ‘잡수지 마십시오.’, 이라니까 ‘그래요?’ 그래  놓고 그날밤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평소에 늘 음식을 그이들에게 주고 자기는  쫄쫄 곯고 이라니까 그 감옥에서 다 덕을 세우고 감화를 받았는데, ‘오늘  저녁에는 여러분들 나를 좀 물 좀 주십시오.’ 물을 홀트리 다 거둬 먹었어.

 물을 전부 다 거둬 마시고, 그래 그 소원이 그 꺼꾸로 달아서 고형을 하는데  물을 안 먹으면 좀 형이 좀 고통이 덜하고 물을 먹으면 고통이 많다 하니까 주를  위해서 공통을 말이 하고 싶어서 물을 다 거둬 먹어 놨다 말이오.

 물을 다 거둬 먹고 인제 오늘 저녁에는 이제 주를 위해서 참 한 번 고통을  당하겠다 이렇게 해 가지고 지금 가서 오라 해 가 있으니까 뭐 저거끼리 자꾸  얘기를 하는데 지금 이번에 이거 제이차 대전은 이제 아무래도 일본서 못  이기겠다. 곧 일본서 손을 들게 되겠다 이런 말을 저거끼리 수근수근했는데  손양원 목사님이 거기 듣고 있는 거 몰랐다 말이오. 모르고 그런 말 하고  있었는데 손 목사님을 떡 보니까 뒤에 들어와 있거든. 부끄럽다 말이오. 오늘  내일 손 든다 했는데 그 뭐 고문과 고형시킬 체면이 없어. ‘오마이 오로까’  이라더니마는 ‘너 여기에 있나?’ 이 부끄러워서 ‘그만 들어가라’ 이래  가지고 주를 위해서 실컷 고생 좀 많이 당할라고 물을 많이 거둬 먹었는데 그만  그날 저녁에는 고문을 하나도 하지도 못했어.

 그러니까, 그런 걸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모른다 하면  나도 너를 모른다 할 것이고 안다 하면 나도 안다 하겠다.

 이거 하나님께서 모든 걸 주권을 가지시고 우리 믿음을 시험하고, 우리 믿음을  시험하시고 또 우리에게 믿음을 더 길러 주시고 또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능력으로 영광스럽게 해 주시고 전부 당신이 계획 짜 가지고서 영원  전부터 예정한 대로 이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사랑하시는 당신이  내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계획하셨고 주권으로 섭리하시고 하신  요 사실을 믿고, 이걸 안 믿으면 다 헛일이야.

 사실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 없이 주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이변에서도  주님, 저 면에서도 주님, 주님에게 밀접해지는 이것은 여기에서도 밀접 저게서도  밀접 점점 밀접해지고 당신으로서 인해서만 이렇게 동하고 정하는 요것을  연습하고 고게서 연성하는 우리가 돼야 되지 잘못하면 두려워하면 헛일입니다.

 또 말하기를 34절에, 내가 이 세상에 서로 화친하고 화평할라고 온줄 아느냐?  검을 일으킬라고 왔다. 전부 가족들이 다 불화되고 이렇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내가 온 것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그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주님이  불화를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 싸움 붙일라고 왔답니다.

 그거 뭐이냐? 그것은 이 세상 마귀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는  가족들이기 때문에 이제 생명과 하나님을 모시고 와 가지고 하나님과 생명과  하나가 되도록 할라 하니까 저 세상 마귀와 죄와 사망하고 한 덩어리 된 것이  떨어져야 되니까 떨어져야 되니까 내가 지금 이 붙은 것을 붙어 있는 것을 붙어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고 붙어 있는 것을 떨어뜨리게 하기 위해서 왔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과 진리와 생명과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그거는 더 뚤뚤  뭉쳐야 되고 이 죄와 마귀와 사망하고 한 덩어리 된 것은 대립이 돼서 떨어져야  됩니다. 그 불화가 있어야 그 가정이 구원 얻지 그리 안 하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가 돼야 되는데,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가 돼야 되는데, 또 모든 뭉텅이로 더불어 마구 박살이  나서 콩가루가 돼서 박살이 나야 돼. 박살나는 것이 기독교요 똘똘 뭉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내가 온 것은 박살내기 위해서 왔다. 서로 불화하기 위해 왔다. 또 한 덩어리  되기 위해서 왔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박살내는 것이 기독교요 한 덩어리 만드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어떤 걸 박살냅니까? 죄, 사망, 마귀, 하나님 원수  이것으로서 똘똘 뭉쳐 한 덩어리 된 것은 박살내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믿는  사람이 가면은 그게 박살이 나야 됩니다.

 또 뭘로 한 덩어리 만드는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 돼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는 그저 이 세상하고 죄하고 마귀하고 사망하고 뭉친 이거하고는  나하고는 적이 되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는 우리가 하나가 되고 이래 돼야 되는데  잘못하면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니라’ 무슨 말입니까?  그래 놓고서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절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자기 집안 식구리라 그러면 이렇게  자꾸 이래 불화하기 위해 왔다 하고 난 다음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하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제 이 죄, 사망, 마귀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는데, 이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는데 이 한 덩어리 된 이것을 정도 있고 있으니까 이 한 덩어리 된  이것을 한 덩어리 된 것을 한 덩어리 된 데에서 갈라지지 못하고 한 덩어리 된  것을 깨지 못하고 거기에 한 덩어리가 돼가지고 있으면 결국 너는 죽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너를 죽일 자는 곧 네 집안 식구가 너를 죽일 자다.

 어떻게? 네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더불어 한 덩어리가 돼야 될 터인데, 한  덩어리가 돼야 될 터인데 한 덩어리 되니까 이 죄와 사망, 마귀로 더불어 한  덩어리 된 이 가족들이 이제 저거와 한 덩어리 되자고 자꾸 이리 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 되라 하고 이거 이라니까 두 덩어리가 한테 뭉쳤을  때에 사람들은 그 가족의 애정에 끌려서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된 이 뭉텅이보다도  그 가족과 죄와 사망으로 한 덩어리 된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너희들이 다 죽는 것은 자기 가족이 들어서 자기를 다 죽이고 망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라고  또 말씀하시기를, 37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요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더 사랑하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그 사랑을  버릴 수 없는 것은 하나님보다 그걸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대속의 피 이 셋은 하나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오. 이  하나인데 이 피와 성령과 진리 이것으로, 피와 성령과 진리. 이셋은 하나인데,  이걸 딿겠느냐? 이걸 딿겠느냐 부모 형제자매를 딿겠느냐? 이걸 딿겠느냐  형제간을 딿겠느냐? 이걸 딿겠느냐 부부간을 딿겠느냐? 만일 이보다도, 그  부부간이나 형제간이나 혈육 그것을 보다 귀중히 여기면 내게는 합당치 않다.

주님에게는 합당치 않다. 그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야 합당하다. 주님께  합당하다.

 더 사랑하는 자라야 그 가정을 구원할 수가 있지 피와 성령과 진리보다도 그  인정이나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끌려서 저도 죽고 가족도 죽고 다  죽게 된다. 그 가족과 어떻게 서로 마찰되는 일이 있고 나뉘는 일이 있어도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하나 되는 이 하나 됨을 깨지 안하고서 그 하나가 되면은 결국은  그 사망할 것이 다 생명으로 변화되어서 구원 얻게 된다 말했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러면 자기 십자가 진다 말은 자기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주님을  믿을라고 할 때에 어려움 오는 그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할 때에 어려움 오는 것이 자기 십자가니 그  십자가를 날마다 자기가 피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대로 살라고 하니까  여러 가지 애로와 마찰의 어려움이 오는 것을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어려움을  당해 가면서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 합당하지마는 자기가 그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만 사람과 마찰되면은 사람 비위 맞추기 위해서 주님과 진리를  버리고 이래 나가는 사람은 내게 합당치 않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에 39절에 보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일을 것이요 나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얻을 것이니라.’ 그러면 자기가 살기위해서 주님 버린 자는  자기도 멸망하고 자기 관련된 사람들도 멸망하고 주님을 모시고 버리지 않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린 사람들은 다 살게 된다. 그러면 주님 위해서  자기 목숨이나 모든 걸 버린 사람은 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 살아나게 되고  살기 위해서 주님 버린자는 다 죽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심판하시는데 진리 버려서 살라 하는 거는 다 죽고 죽어도  진리를 지킨 자는 다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 밤에 이것을 간단하게 말하는데 뭐할라고 이 말씀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우리가 무슨 일이 날는지 몰라요. 지금이거 남한에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 많은데 참 그 신앙이라 하는 것이 뭐 누가 잘 믿는지 앞으로  참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한번 시험하는 그런 시험하는 때가  언제 올란지 모릅니다.

 오든지 안 오든지 이 준비는 해 가지고 있어야 되고 또 준비 된 사람과 안 된  사람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무궁세계의 심판에 가서는 다 나타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돌아가 가지고 요 10장을 잘 읽어 보면서 앞으로 이런 형편이 우리에게  안 오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니까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럴 때에  나는 요렇게 처세하고 신앙생활 해야 되겠다 하는 고것을 생각하고 미리부터  준비하고 거기에 대해서 기도하고 이래야 되지 그만 이걸 미리 생각지 안하고  기도하지 안하고 이라면 그때 가면 자기 생각대로의 형편과 사정에 끌려가니까  순전히 마귀 놀음만 하고 이제까지 구원 준비하던 노력은 다 허사가 되고  맙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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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8 모든 존재의 목적/ 로마서 11장 33절-36절/ 811025주전 선지자 2015.10.30
4167 모든 존재의 목적/ 로마서 11장 36절/ 1981년 44 공과 선지자 2015.10.30
4166 모든 종교와 다른 기독교/ 에베소서 1장 3절-12절/ 1983. 6. 26.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0.30
4165 모든 종교와 다른 기독교/ 에베소서 1장 3절-12절/ 1983년 27 공과 선지자 2015.10.30
» 모든 현실은 주님과 가까워지게/ 마태복음 10장 16절-42절/ 880413수야 선지자 2015.10.30
4163 모본이 되는 생활/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082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0
4162 모세의 믿음/ 히브리서 11장 24절-26절/ 820707수새 선지자 2015.10.30
4161 모순 해결/ 시편 73장 1절-28절/ 840617주전 선지자 2015.10.30
4160 모험적인 삶을 살지 말라/ 골로새서 3장 1절-3절/ 791215토새 선지자 2015.10.30
4159 목사 사태/ 디모데후서 3장 15절/ 861221주새 선지자 2015.10.30
4158 목사를 허는 것은 교훈을 허는 것/ 갈라디아서 5장 16절-26절/ 861123주새 선지자 2015.10.30
4157 목양/ 베드로후서 1장 5절-9절/ 840316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