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10:41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내가 깨끗하다
1988. 5. 5.목후집회
본문 : 사도행전 20장 26절-35절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제는 이 시간과 내일 아침 시간만 남았습니다. 또 먼 데서 오늘 새벽 오전 오후 이 세 차례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다고 먼 데서 온 학생들은 또 세상 자기의 담당된 과정이 있기 때문에 또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오후 예배가 끝나면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학생들이 온 것만 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요 와 가지고 이 말씀을자기가 잡고 놓지 않는다고 하면 자기 들은 큰 축복과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
오전 시간에와 아침에 공부한 대로 다시 한번 생각하고저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렇게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멸망과 구원에 대해서 자기가 거기에 거리낀것은 하나도 없이 자기 의무와 책임을 다 했다 하는 이 결론을 지운 평강의 말씀입니다.
우리 일생 생활에서도 자기 자체로 인한 그 행복도 있고 자기의 소행으로 인한 행복도 있습니다. 이 둘은 각각 다른 것 같으나 실은 하나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모를 때에 사람들은 어리석게 헛된 안심과 장담과 위로와 용기를 가집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어리석은 만용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평강과 용감은 무지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언젠간가 깨달아질 때에는 그에게 큰 고통으로 화하여지고 맙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강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다 이러한 류의 것들입니다.
마치 우리 안에 있는 도야지가저를 지금 잡을라고 흥정하러 온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료를 맛있게 먹지 사람만치 ‘저는 나를 죽일라고 온 자들이 저렇게 둘러서 지금 노리고 있다’ 하면 밥맛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뛰고 자랑하고 부러워하고 하는 그 모든 것은 인생의 영원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분이 보이는 그 모든 것보다 크신 것도 그들이 모르는 근시자요 다 소경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그것은 마지막 죽을 때가 가까워 오면 조금 눈에 뜨여서 고통이 시작돼 가지고서 영원히 그 고통이 계속된다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이 권위 있는 이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준하여 염려될 것 없고 두려울 것 없고 책망 받을 것 없고 벌 받을 것 없고 평안과 환영만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렇게 준비 했다고 하면 그 사람의 평강은 참 평안한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이는 내가 하나도 내게 뭐 박해가 오든지 매장이 오든지 공격이 오든지 적이 생기든지 생명을 뺏기는 그런 일이 있어도 너희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감하지 안하고 다 증거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평강과 기쁨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종종 저도 말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서서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도 좋지마는 서서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것만으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외나 속에 참이 되는 진짜 알맹이 일은 못하고 외식으로 지나가기 쉽다. 그러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일하지만 말고 좀 누워서 일하도록 하라 그런 말을 제가 자주 합니다.
권사님들은 나이가 많아도 내가 꼭 가야 돤다. 내가 이 일을 인해서 기도하러 가야 된다. 또 심방을 가야 된다. 가다가 넘어져도 그렇게 지금 애를 씁니다.
엊저녁에도 우리 집사 어떤 분이 병원에서 한 달 동안은 입원해 가지고 있어야 된다 하는데 엊저녁에 ‘아무래도 양씨들이 갔고 이랬으니까 내가 가다가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가야 된다’ 병원에서 만류하는 것을 엊저녁에 와 가지고서 진통하고 있는 것을 제가 잠깐 가서 기도해 주고 왔는데 그동안에 하늘나라 갔는지 있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하는 일과, 하나님과 나, 내 움직임 모든 것,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리워진 것 없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리워진 것이 없으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당신의 하실 일을 다 하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워서 일하라 그것은 이런 것 저건 것, 내가 혹 남의 피에 깨끗지 못하고 지금 내 피가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방해한 일이 없는가 그런 것을 고요히 찾아서 그런 것이 하나씩 둘씩 해결이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강하게 자유롭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들은 자기의 일생 동안 언행 심사로 살아 나온 것이 혹 다른 사람의 구원에 방해된 일이 없나, 남의 행복에 방해된 일이 없나, 그 사람이 사람됨에 방해된 일이 없나? 그것은 분명히 내가 방해 했으면 나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댓가를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고요히 병들어 누워서 생각할 때에 그런 것들이 하나씩 둘씩 생각나서 모든 사람의 피에 거리끼는 것을 하나 둘 회개해서 하나씩 둘씩 깨끗해질 때에 하나님도 그 이상 기뻐하시는 것이 없고 우리 자신에게도 그 이상 기쁜 것이 없습니다.
또 그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혀 있는 것이 직통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소원하심이 나를 통해서 다 되고 내 소원은 당신으로 통해서 다 되는 것을 가리켜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문을 열라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성경에 먹는다는 것은 육체는 입으로 먹지마는 인격의 양식은 입으로 먹지 안하고 눈으로 먹고 귀로 먹습니다. 눈으로 볼 때에 양식이 되고 귀로 들을 때에 양식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 먹는다 양식된다는 말은 모든 행동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문을 열라. 너와 나의 가로 막힌 것을 네가 열어라. 그러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를 통해서 내게 대한 사명을 다하고 너는 나를 통해서 네게 대한 사명을 다해서 나는 너를 통해서 모자람이 없이 다 완성을 할 수 있고 또 너는 나를 통해서 완성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은 내가, 자기가 자주 접촉한 사람에게 내가 그의 피에 대해서 얼마나 내가 저촉되어 있으며 얼마나 거리꼈으며 얼마나 내가 못쓰게 꾸정크렸는가? 그 피를 꾸정크렸는가? 그 구원을 꾸정하게 흐리게 했는가? 이런 것을 생각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너희의 피에 깨끗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런 정리 생활을 정돈 생활을 해서 나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크고 작은 사실은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다 그대로 하나님의 필림에 다 촬영되어 있고 하나님의 그 테이프에 다 녹음 되어있는데 우리는 이 사실도 알지를 못하고 헛되이 욕심만 부리고 날뛰고 안심하고 뛰놀면 어짤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진노를 지금 끼치고 있지마는 그들은 좋다고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논다 그렇게 말씀했는데 그때에 일어나서 좋다고 뛰논 그 뜀 끝에 삼천 명이 몰사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다시 반성하지 안하고 더디했으면 이스라엘은 다 전멸됐을 것입니다.
이런 우리는 큰 과제 앞에 있고 지극히 큰 절대 공정하고 사가 없는 무서운 절대자 앞에서 우리는 지금 걸어가고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어리석게 헛되이 기뻐하고 헛되이 울고 헛되이 근심하고 안심하는 거, 알고 보면 전부 꺼꾸로요.
근심할 것은 안 하고 안 할 근심은 하고, 그래서 야고보서 4장에 너희 웃음을 울음으로 바꿔라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꿔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모든 사람의 흥망 성쇠에 대해서 나는 깨끗하다. 이 면을 또 우리가 살펴서 정돈하고 가야겠습니다.
그러면, 내 언행 심사와 내 모든 계획과 그 생활의 움직임과 내 지체의 용모와 피부의 움직임이 그 모든 것이 내가 누구의 행복에 구원에 내가 손해를 끼쳤으며 흐리게 했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질고를 줄 때입니다.
저도 82년에 하나님이 질고를 줘서 그때에 다시 살아날 희망이 없다는 그 질고 중에 있을 때의 그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그때에 저도 이 성구를 들고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와의 관련된 그 면을 제가 생각해보니 참 기가 막혀서 울기도 혼자 많이 울었었습니다.
우리들도 이번에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모든 사람의 피에, 모든 사람의, 내가 들어서 그의 불행에 관련이 있고 그의 행복에, 지장에 관련이 있고 한다면 이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안하는 미래인데 오늘이라는 오늘에 이런 것을 다 청산할라면 청산할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이 말씀하시기를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회게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는 이 일로서도 분망합니다.
이런 것이 사람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있는 것을 모르고 이런 것이 속에 쌓여 있으면 아무리 그 선천 후천의 건강한 사람이라 하고 특별히 특수한 은혜로 잘남을 받은 그런 위인이라도 이런 것이 한 두 가지 들어 있으면 그 사람은 항상 병신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쓸데 없는 욕심 하나도, 명예 욕심이나, 보면은, ‘저 사람은 모든 것이다 구비한데 꼭 안 가질 욕심을 가지고 있네. 저 사람의 그 눈이 그면에 눈이 가리워 졌으면 좋을 건데 안 볼 것을 보는 안 뜰 눈이 뜨여졌네.’ 이래 가지고 평생 안 봐야 좋을 터인데 안 봐야 좋을 것을 하나 보고 난 다음에는 그게 좋다고 달라들어 가지고서 뭐 가족이고뭐이고 다 전심 젼력 기울여 가지고서 그 일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의 해 아래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공연히 가치 없고 얻어 봐도 얻기까지는 얻으면 좋을 줄 알지마는 얻고 보면 만족 없고 얻고 보면 괴롭고 얻고 난 다음에는 벗어 낼래야 벗어 놓지도 못하는 그런 괴로운 것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눈을 밝게 한 사람들은 ‘주님이여, 나에게 안 볼 것을 보는 이 눈을 다 감겨 주옵소서.’ 에덴 동산 인류 시조가 안 볼 것을 본, 안 뜰 눈을 뜬 그것 때문에 대대 손손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하나님같이 된다는 그런 걸 생각을 가질 필요가 뭐 있습니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우리는 간단한 시간에 다 말하지는 못하지마는 그저 딱지만 떼서 우리는 이모 저모로 모든 사람의 피에 나는 얼마나 나는 부정한가? 모든 사람의 휘로애락, 흥망성쇠, 그 사람의 기쁨에 내가 얼마나 부정하게 되어 있는가? 공연한 사람을 환장을 들여 가지고서 공연히 웃고 죽도록, 웃도록. 병신을 만들어, 놓고 공연히 갈급해 가지고서 지금 막 갈증을 가지고서 환장 든 사람같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고, 아무것도 소용없는 것인데 공연히 폐단으로 이렇게 내가 만들지 안했는가?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어떤가? 이것을 여러분들이 그저 평소 건강할 때에 그렇게 된다면 참 좋습니다.
대개는 이런 것은 하나님이 그저 이럴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그 죄값으로 징계를 해서 병이 들면 그때사 비로소 알고 사람들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혜 있는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 미련한 사람의 마음은 잔치집에 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의 기쁨은 그 병석에 있다, 미련한 사람의 기쁨은 전강에 있다.
그래서, 우리 한국에서는 주기철 목사님의 그 사모님이 여인으로서는 제일 위대한 신앙을 가졌었는데 그분도 마지막에는 유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신앙의 투사로서는 한국에서 제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최덕지 선생은 위암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아마 그들이 떴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지마는 가서 그이의 일생의 전기를 본다면 그럴 때가 가장 자기로서는 좋은 때요 수입이 많았고 깨끗해지는 그런 때가 아니었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져 봤습니다.
이래서, 피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을 가지고, 또 다음으로서는 내가 어떤 은사 위치에 있든지 자기는 한 양을 거느리고 있든지 두 양을 거느리고 있든지 거느리고 있는 그것은 자기가 자기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고 그런 위치에 세워 준 것이니 이 직책을 얼마나 그 책임이 무겁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성경에 말하기를 이렇게 된 것은 제가 제 된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어누리 하면 안 됩니다. 또 자기는 그와 같은 것이 인간의 흥망 성쇠를 감독하는 그 감독자로 세웠다 했습니다.
자신은 자신의 감독자요 다른 사람들의 감독자라’. 이러기 때문에, 항상 삼가라. 조심해라. 만드는 데에 잘 만들어지도록 감독하고 하나님 앞에 납품될 때에 납품되기 전에 거리낌이 있는가 감독해서 거리낌이 없이 거기에서 불에 꺼내도 버림을 당하지 않도록 네가 하기 위해서 감독해라.
요것을 요 사명감을 깨닫고 자기 직책감을 깨닫고 자기의 하는 일이 얼마나 고귀하며 가치 있는 일이며 이렇게 이 일을 맡기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때에 자기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행복은 절대로 자기 몸 밖에 있는 것 아닙니다.
자기 몸 안에 자기 마음 안에 있어서 모든 것을 깨달을 때에 자기에게는 무거운 짐이 오고 무거운 짐이 오나 그 짐을 지워 주신 이가 지극히 크신 분이니 지극히 크신 분이 자기에게 그렇게 직책을 맡겼으니까 영광스럽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맡기신 분이 다 감당하도록 하시겠다고 계약에 보증했기 때문에 이로서 자기 혼자 기쁩니다.
자기 혼자 기쁨을 가지고, 자기 대외에 대해서 하는 일은 세상과 반대입니다.
이 깨달음을 가지기 전에는 무엇인가 인사 한 번이라도 받아야 좋고 말 한 마디라도 존대를 받아야 좋고 거지 생활로 끌어당겨서 받아야 좋고, 받을라고만 두손 들고 넙죽거렸고, 이러나 이단계를 지나서 정상적인 눈이 밝은 사람이 되면 자기는 무엇인가 이모저모로 어떤 것이든지 자기는 주지 안하면 그날은 죽은 생활로 생각하고 무엇인가 주어야 자기에게는 그날 그래도 실패하지 안한 생활로 계산을 대고 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거는 세상이 모르요.
말하면 순 거짓말쟁이라 합니다. 아마 신앙생활 한사람들은 다 이럴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가치는 하나님이 만들었다. 자기 가치를 자꾸 과소 평가해서 자기 가치를 작게 만들 것이 아니라 자기 가치를 정상대로, 우리 가치는 지극히 큽니다.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 했는데 우주보다 귀한 것을 조성해 낼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는 영원히 조물주를 기쁘시게 하고 조물주가 지금 고대하면서 가슴이 도근도근 하면서 나를 부탁하고 나에게 맡겨 놓고 잘되기를 가슴이 도근 거려서 기다리는 지극히 큰 분이 기다리는 그 일을 우리가 착수해 가지고서 한다는 이 사실을 알 때에 말 한 마디 권면해도 큰가치 있고 만나지 못하면 저 혼자 앉아서 생각날 때에 ‘이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하고서 기도 한 마디 하는 데에도 참 보람 있는 큰 가치가 있고 그에게 무엇을 하나 지도를 하든지 가르쳐 주든지, 뭐 돈을 주고 육체적으로 도와 주는 그것도 하지마는 그보다도 더 지극히 큰 말씀으로 주는 것, 내가 권면 하는 것, 내가 기도하는 것, 내가 그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노력해서 내 생애로써 그가 지금이야 감동 받든지 못 받든지 할지라도 감동될 수 있는 행동을 했으면 일년이고 십 년이고 오십 년이고 죽은 후에라도 반드시 감동의 해택을 그에게는 가는 것입니다. 주를 힘입어서 한 일은 털끝 만치도 썩는 데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기를 위해서 삼가라, 너를 감독자로 세웠으니까 네가 이 일을 잘 해라, 네가 조심할 이유는 도적이 있다. 네 이 사명을 방해하는 적이 많이 있으니 네가 적을 알아야 싸우지 적을 모르면 어떻게 싸우겠느냐? 또 그러고 싸움이 없는 데에는 승리가 없다. 승리가 없으면 칭찬도 면류관도 없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교회 직책 가진 자로서 네가 가진 바의 상대적은 은혜의 사람이 떠나고 나면 엉뚱한 이리가 들어옵니다. 엉뚱한 이리가 들어와. 제가 해방전 사 개월 전에 산에서 기도하다가 제가 그 비몽사몽간에서 환상을 봤는데 사 개월 후면 완전히 전쟁은 끝사고 남북은 갈라진다 하는 것을 저에게 새 소식이라 하면서 알려 줘서 내가 그 신문을 봤습니다.
이랬는데, 거기에 자잔한 세주로 세밀한 것이 기록돼 있는 것은 내가 볼라고 하니까 암만 해도 눈이 어두워서 보이지를 안했습니다. 이래서 내가 못 보고 탄식을 하니까 네가 아직까지 눈이 밝지 못하고 깨끗지 못하기 때문에 이거를 보지 못한다 해서 탄식을 하고 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이북은 어둡고 이남은 밝았습니다.
그런데, 큰 구렁이를 미국에서 하나 보냈는데 이 구렁이가 한국에 와 가지고서, 한국에 보낸 것은 한국에 있는 모든, 와 가지고 한국에서 알을 낳아 가지고서 그 알을 저거들이 갖다 먹기 위해서 했다는데 그 알이 바로 기독 신자였습니다.
이래서 내가 넉 달 전에 그걸 보고서 교인들에게 예배드릴 때에 광고를 해서 넉 달이면 이 전쟁은 끝나는데 아깝게도 한국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이북은 어두운을 걸 보니까 아마 그 공산화 될 것 같고 남한은 밝은 것 보니까 민주화 될 것이 아닌가 하는데 위험한 것은 미국에 큰 구렁이가 왔는데 그 구렁이가 한국에 온 것은 한국에서 알을 낳아 가지고서 미국에서 갖다 먹기 위해서 왔다.
미국에서 한국 교회를 부패시켜서 삼킬 큰 미혹과 이단이 들어오겠다 하는 것을 제가 생각하고 그때 그것을 노트에 기록해 놓은 것이 지금도 제게 보관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오늘이 항상 오늘이라고 생각지 말고 반드시 이렇게 자유롭게 얼마든지 말씀을 들을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오전에 OOO목사님 어머니를 내가 만났습니다. 그분이 젊어서 홀로 돼 가지고서 그 자녀들을 그렇게 길러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속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날 만나 가지고 부끄러워 못 만나겠다고 하면서 탄식하는 말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내가 위로가 아니고 내딴에는 바른말을 해 줬습니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당신의 뜻이 있어서 그를 또 그렇게 갈라 가지고서 무슨 당신의 뜻을 이룰런지 모릅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또 진리를 발견해서 한국 교회를 깨끗게 세계 교회를 깨끗게 할란지 모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인데 하나님은 헛일 안 하시기 때문에 그것도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뿐입니다. 안심하시고 요동치 마시고 OO교회에 끝까지 그대로 견디십시오. 그것을 내가 부탁을 했습니다.
또, 내가 OOO목사님에게도 여러 번 말을 했고 이래서 그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을 하기를 그렇게 말을 한답디다. ‘가만히 냅두면 그만 우리가 이 개교회주의로 무소속으로 나갈 것이고 우리를 자꾸 시달려 쌓으면 그만 OO교파로든지 어디로 들어 갈랍니다.’ 이렇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에 내 가슴이 좀 뜨끔했습니다.
왜? 나는 소원하기를 제가 따로 있으면서 얼마든지 하나님이 저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제재받지 말고 자유롭게 모든 것을 발표 해가지고서 이 어두운 교계에 다문 얼마라도 광명에 도움을 준다고 하면 그런 다행이 없겠는데 어떤 단체 속에 들어가면 그 단체를 혼자 뚫고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가면 깨달음의 의사 발표가 자유되지 못하고 많이 제재를 받습니다.
이래서, 그분들도 ‘백 목사님은 다른 데 속하지 않고 이래 있는 걸 원하신다.
부애지르면 우리가 속할 랍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제는 또 돌아가면 내가 먼저 전화할 겁니다. 저거는 저한테 전화 안 해요. 내가 먼저 전화해요. OOO목사님은 말하기를 ‘아이구 목사님 내가 언제 한번 찾아가 뵈옵겠습니다. 이 불효한 이 행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이니까 열심히 그대로 일해 가지고서 이제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깨끗하게 구원해 가지고서 주 앞에 서도록 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도 그래 하고 또, 참 그들은 변해도 저는 거기에 대해서 변해지지를 별로이 안 합니다. 이거는 아마 자식은 변해도 부모는 변하지 않는다 하는 그런 무슨 요소가 끼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앞으로 이렇게.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렇게 은혜를 받는 줄 알지마는 때가 되면 안 됩니다. 은혜받을 때에 네가 은혜를 받고 구원할 날에 구원을 받아라. 은혜받을 때에 그때에 네 간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 말씀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라고, 이렇게 주신 말씀을 단단히 간직해서, 나를 은사 위치에 세운것은 나와 하나님의 양떼, 여기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귀중한 원인을 가지고서 구속한 양떼니까 귀중한 일을 맡았으면 그 사람은 귀중한 사람입니다. 높은 사람에게 쓰여지면 그 사람은 높은 사람입니다.
귀중한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은 귀중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 된 이 자체에 그 원인과 유래를 잘 알아서 내가 나 된게 아니라 성령이 나 되게 했기 때문에 나는 어떤 혜택을 입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도 알고 내가 나와 양떼를 위해서 깨어 있으라고 이렇게 부름을 받은 이것을 감독자로 세운 것을 깨닫고 우리는 조심해서 앞으로 이 이리가 딴 데서 들어을 것, 외국에서 들어오고 국내에서 들어오고 다른 교파에서 들어오고 외국에서 들어오고 또 이 진영 안에서라도 받지 못한 다른 교훈이 들어오고 하는 그것이 이리입니다. 바로 이리. 내가 이제까지 받아 가지고 신앙생활하던 이 교훈과 다른 교훈이 들어왔다 이라면 ‘이리 들어왔다. 이리가 들어왔다.’ 이렇게 알아야 될 터인데 말하기를 ‘우리가 배운 거와 다릅니다’ ‘너거가 모두 샘 안 개구리라서 무식해서 그렇지 봐라, 이 학자는 이래 말하고 저 학자는 저래 말하고 모든 학자가 다 이래 말한다’ 하니까 그만 쑥물을 먹어서 병이 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꼭 고집해서 요것뿐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이렇게 범위가 넓고 이렇게 종류가 수다하구나’ 그만 그 쑥물 먹고, 하나뿐인 줄 았고 발발 떨면서 요거 안 어길라고 했었는데 이거는 이제 유치한 생활이다. 이거 안 되면 저것 되고 저것 안 되면 저것 되고 여러 것이 있기 때문에요거 요래 지킬라 하다가 어려움 있으면 냅두고 저것 지키고 저것 지키다가 어려움 있으면 요것 지키고 요리조리 건너 뛰면 요렇게 참말로 신앙생활 처세가 능란한데 이 깜깜 어두워서 고집하고 있었다 해서 그 사람의 신앙이 비로소 속화돼 가지고서 음행한 여인처럼 창기 신앙으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한국에 왜정 말년 때에 신학자 쳐 놓고 신사참배를 이긴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다 신사참배에 굴복했습니다. 신사참배 안 한 신학자 중에는 OOO박사가 신사참배는 안 했는데 그는 이리저리 도피해 다녀서 피해서 돌아다녔지 전투에 승리자는 아닙니다. 이 나라로 저나라로 망명해 숨어 다녔지.
이러기 때문에, 왜. 사람들이 이렇게 힘을 잃느냐? 이래서 하나님의 종들이 신학교 가 가지고 신학 사 년에 신학교 들어가기 전 발발 떨면서 주님에게 기도 안 하면 안 되고 주님에게 물어서 요걸 준비하라 하는 그런 응답을 받지 안하면 안 되고 요러니까 만날 바짝 말라서 꼼짝 못 하던 자가 신학에 가 보니까 ‘공연히 헛된 이 마취를 받았구나’ 이것도 저것도 있다는 그래 가지고서 신학 사 년에 들어가기 전 영감, 들어가기 전 좁음, 들어가기 전 간절, 들어가기 전 그 모든 책임감, 가치관 이것이 널펑해져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책은 많이 배웠는데 들어가기 전에 순수한 알맹이는 다 뺏겼습니다.
이래 가지고 냐오니까 가르칠 게 있어야지? 아무 학자가 이렇고 저렇고 그놈을 암만 내놔 봐야 양떼들이 피피피 내뿜지 먹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심령이 어두워서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그 억억만 배도 더한 귀중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라니까, 벌써 신학 사 년에, 미국 한 삼사 년 동안에 다 잊어 버렸으니까 이제는 써먹을 것이 없으니까 ‘보라, 이게 제일이다. 이라니까 원어 모르면 이거는 진리는 모른다.’ 히브리어 박사가 우리 한국에 있는데 내가 그 사람 말하지 않습니다. 한번 신학생이 나한테 오더니마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은 성경을 모릅니다.
히브리어 박사는 안 믿는 히브리어 박사가 히브리어 모르는 믿는 목사들 보다 구약 성경은 훨씬 잘 깨닫고 바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반소파로 지금 크게 일하고 있는 OOO목사님입니다. 여기 OOO집사님 여기 있어. 이분이 자기 집에 초대를 했는데 하필 그하고 나하고 둘을 초대했어. 그래 가 가지고 만났는데 그분은 그때 OO신학교 재학 중에 있고 나는 그때 졸업하고 있었는데 그말을 해.
내가 있다가 ‘그런 게 아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에게 준 것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깨닫지 안 믿는 사람은 성경을 마귀적으로 세상적으로만 깨닫지 거기에 영감이 가르쳐 주는 진리는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세워요. 그래서,. 내가 부애가 어찌 나든지 막 고함을 질렀어. 어데 그따위 말을 하느냐고서. 무슨 놈의 교수가 그따위 교수가 있냐고. 막 고함을 지르니까 아마 밥하다가 깜짝 놀랐을 거라. 그랬지? 그래 그만, 멈춤해서 그라고 말았는데 지금도 나하고 친합니다.
그분은 인제 설교록 다 가져 가고 그분은 그 뒤에 말하기를 백 목사 설교 하나면 나는 그설교 가지고서 서른도 마흔도 만든다 그렇게 말을 하고 지금도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래, 그말이 지금 세월이 지나갔으니까 그 말이 명담이다하는 것을 벌써 정평했을 것입니다.
이래서, 교단 등록하자 할 때에 거기에서 우리하고 합해서 교단 등록하자고 왔고 OO교회서 우리하고 합해 가지고 교단 등록하자고 왔고 그래 그 목사님은 겸손해서 내게 와 가지고 ‘지금 OO신학이 인가도 우리에게 왔고 다 권위도 왔고 거기에서 내 버린 거 우리가 OO신학교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와서 OO신학이 됐으니까’ 외나 진짜 OO신학교는 OOO목사 거기에가 문공부에도 그래 등록돼 가지고 있고 여기에서는 OO대학하고 그거하고 그거는 버리고 OO대학해서 거기에서 OO신학교는 거기에 가 있습니다.
그라면서, ‘목사님 우리 OO신학교에 오셔 가지고서 좀 이사장이 돼 주십시오’ 하고서 사람이 왔다가 나중에는 그 목사님이 한번 왔읍디다. 그래 내가 있다가 ‘나는 뭐 자격이 없어. 내가 돈이나 많으면 거기에 이사로 해 가지고 돈을 대지만 돈도 한 푼 없는 내가 무슨 이사 해?’ ‘이름만 가지고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게 말해서 ‘나는 이름도 내 이름 거기에 내놓으면 활살이 많아서,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공연히 견디지도 못한다. 아예 그러니까 나는 뒤에서 배후에서 기도만 하겠다.’ 그라고 지금도 내가 거기에 대해서 기도 종종하고 또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무슨 교훈이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를 절단 낼란지 모릅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배워 가지고 쓴다고 하면 이만하면 보배요. ‘새 후임 목사가 왔다. 여기에서도 어짜든지 은혜 받자.’ 아니오. ‘이 새로운 교수가 들어왔다. 여기에서도 은혜 받자.’ 아니오. ‘세계에서 지금 대부흥회라는 새계 대부흥사가 지금 와서 있다고 하니까 어라가서 은혜 받자. 아니오.
그러면 어째야 됩니까? 삼가 살펴보자. 거기에 대해서 조심해 보자. 어떻게? 이리인가 선한 목자인가 살펴보자. 자기 패를 만들라고 어그러진 말로써 꾀우는 것인가 살펴보자.
그래, 참 선한 목자인지 뭐인지 살펴보는 데는 뭘로써 살펴보라 했습니까, 첫째? 첫째? 말로 살펴보고, 둘째로는? 그 사람의 행동으로 살펴보고, 또 셋째? 그 사람의 사람으로 살펴보고,. 이거는 다 가짜요. 이거는 연극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위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네째로 마지막에 살펴볼 때에 어떻게 살펴야됩니까? 뭘로?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됩니다.
자, 그 사람, 참 요새는 뭐 컴퓨터인가 뭐인가 그게 있다 하는데 딱 거석해서 그 일 년을 살펴보니까 요랬다 요랬다 요랬다. 오 년을 살펴보니까 이랬다 이랬다. 언제는 기생됐다가 언제는 정치가 됐다가 언제는 뭣 됐다가 이래 됐다.
언제는 배암이 됐다가 언제는 토까이가 됐다가 언재는 개가 됐다가 이래 막 둔갑을 많이 했다. 몇십 년을 두고 살펴보니까 환하게 다 보고 있습니다.
‘얘! 뭘로 큰소리를 해, 하기를! 하나님은 보고 계셔! 없어지지 안해, 절대로!’ 과장을 못 해요. 모든 천사들이 말하기를 지극히 거룩하고 거룩하도다 하나님의 심판이 지극히 공의롭도다 했습니다. 거기에는 조금도 오점이 없어.
이분 앞에 우리가 갈 터인데 이것도 모르고 오늘 헛된 장담만 하고 있어? 헛되게 인간들만 불법으로써 제 사람을 만들라고만 하고 있어? 공연히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라고 하나님에게 쫓겨 나갈 일을 하고 있어? 이러기 때문에, 너거들 가운데서도 제 사람 만들라고서, 이상합니다. 잘 충성하던 사람들도 이 사람을 내 사람을 만들어서 날 인정하도록해 보겠다 하는 귀신만 들어가면 그 귀신은 쫓아낼 줄을 몰라. 그러면 그만 언행심사에 모두 한다는 게 자기도 모르게 그만 그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살펴야 돼.
이러니까, 원수 중에 원수는 자기라. 자기, 좋게 할라 하면 망합니다.
신앙주의는 뭐입니까? 자기 비어 하나님 좋게, 아브라함은 몇 가지주의라요, 손가락으로? 첫째? (신앙주의!) 둘째? (독재주의!) 셋째?(축복주의!) 축복주의!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민주주의는 틀렸고 독재주의가 맞다 하는 것은 천하가 다 달라 들어도 안 되면.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자 할 것입니다. 절대로 틀리지 않습니다! 히틀러는 자기 의사에 빗나가면 당장에 처리해서 복종시켰지마는 하나님은 좀 시간을 뜨게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두고 당신의 뜻에 어겼는 거는 전부 다 전멸이오. 유황불 구렁텅이오. 당신의 한 뜻에만 딿는 것만 그대로만 모든 것을 다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무한한 독재요, 전면 독재요. 전면 독재라 말은 죄짓게 만들었으면 죄지은 그 사람이야, 죄지은 사람이야 죄를 짓게는 하나님이 죄를 짓구로 만들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심판을 못 할 것 아니요? 죄를 짓구로 만들어 놓고 죄지은 자를 심판을 합니다.
이거는 뭐 독재, 월권, 독재, 월권, 아무도 간섭을 못 해. 독재 독재 독재 독재 독재라! 이런 분이시라! 이래도 그분을 정죄하지 못해. 그분은 피조물을 무한히 탁월한 분이시기 때문에 피조물을 가르치고 만들고 알리기 위해서 모든 그것을 교훈 작용으로 건설 작용으로 해서 영생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죽이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해가 됩니까? OOO, 이해가 돼요? 어리석지 말아요.
우리가 이것을 살피고, 여기에 이런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간단한 걸 하나만 말하고 말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으니까.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글이 무슨 부탁을 받아요? 글이 무슨 부탁을 받아요? 주일학교 교과서가 부탁받을 수 았어요? 주일학교 교과서 보고 이래 주십시오 저래 주십시요 하면 부탁 받아요? 부탁은, 거기에 권위성이 없으면, 생존성이’ 없으면 부탁을 못 받는것입니다. 인격성이 없으면 대화를 못 합니다. 아무리 천하에 문서하고도 대화는 못 합니다. 내가 정독해서 읽으면 읽지, 이 하나님의 말씀은 나하고 의논할 수 있습니다. 부탁하면 그분이 신실히 들어서 너를 든든히 세울 수도 있답니다.
‘주와 및’ 주님은, 뭐? 댓 살 먹는 아이의 눈이 두렵지 주님의 눈이야 두려울 것도 없고 남편 명령 거스리기가 힘이 들지 주님 명령 거스리기야 그까짓 것, 일개의 경관이 와 가지고서 호령치면 두렵지마는 주님이야 그까짓 것, ‘믿는 대로 되리라! 따라합시다.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리라! 주님을 나무토막 같이 믿는 사람은 그에게는 주님은 그래 밖에는 해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돌덩이같이 믿는 사람은 그래밖에 그 사람에게는 응해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천하의 인간보다낫게 여기면 주님은 그에게는 천하의 인간보다 그에게 낫게 하나님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여기에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게 내가 부탁한다. 부탁하면 일방적으로 부탁합니까? 부탁하니까 그다음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하는 말은 주와 주의 말씀이기 때문에 ‘주와 그 말씀’ 그 말입니다.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능히 든든히 세우기도 해.
이 말씀은 부탁도 받을 줄 알니다. 이 주님은 부탁도 받을 줄 압니다. 이 주님과 말씀은 책임도 질 줄 압니다. 책임을 어떻게 져요? ‘너희를 든든히 세워’ 어떻게 든든히 세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 하셨는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거룩하심같이 거룩하라.
온전하심같이 온전하라, 하나님같이 거룩하라 했는데 하나님이 인정하는 거룩한 자로 만들어 세울 수도 있습니다.
이분을, 바울은 이분에게 부탁했습니다. 이분에게 부탁했어. 누구에게? 주님에게 부탁했어. 말씀은 누구인데? 말씀은 성령과 하나입니다.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인격성없고 전능의 전지의 지혜는 독자적으로 가졌지마는 인격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 완전 신령을 가지신 성령님이 내주해 계시기 때문에 이 말씀도 신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격의 근본이 되는 신격성의, 인격의 원형인 신격성을 가졌습니다.
‘이래서,’ 주님과 이 말씀은 바울이 말씀에게 부탁도 하고 주님에게 부탁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마는 그들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주님에게 부탁했고 말씀에게 부탁했고, ‘주님에게 부탁해야 주님 주님 해 봤자 뭐 눈에 보이지도 안하는데 린 그분이 후 어쌔? 거기 부탁하는 거 소용이 있습니까? 든든한 장관에게 부탁해야 주지요.
든든한 정권자 왕에게 부탁해야 주지요. 그분에게 부탁할 때에 그분은 천하 인간 뭉텅이에게 부탁한 것보다 더 믿을 수 있고 신실하다. 권위 있다. 말씀은 내가 부탁하는 데에 제일 믿음직한 분은 그분과, 주와 및 말씀이다. 부탁하면 그분은 이 부탁을 받아 가지고서 책임 완수로 능히! 능히! 능히!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거룩한 자들로 합격된 이 거룩한 자들 가운데에서 그들이 누리는 업을 누리도록 하실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들, 요한복음 1장 42절 이하에 보면 빌립의 소개로 나다나엘이 예수님에게 갔습니다. 빌립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지금 주님을 딿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라니까 나다나엘이 ‘이제 처음 뵈옵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라니까, 주님이 ‘이는 참으로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간사함이 없다 말은 조작배기 외식이 없다 말입니다. 이라니까 나다나엘이 있다가서 ‘주여, 나를 언제 보고서 그렇게 알아서 말씀합니까? ‘빌립이 너한테 찾아가서 데리고 오기 전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나한테 구하는 것을 내가 봤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까, 나다나엘이 그말 듣고 보니까 ‘내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오실 메시야그분을 찾아 가지고서 의논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고 했는데 그분인가 자세히 보자’ 자세히 보니까 이 무화과나무, 및에서 만난 그분입니다. 이래서 ‘주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니이다’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지마는 하나님을 섬겼지마는 죽은 하나님으로, 말씀도 죽은 말씀으로 상대했기 때문에 그들은 외식으로 멸망받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일곱 번이나 화 있다 하고 그들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무식한 여인이요 나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반 송장이라 하는 사람들이요, 나이가 많아서. 구십 몇 살도 더 먹는 사람들인데 항상 교회 가 가지고서, 다른 사람은 주! 주! 해도 다 입수이 여기는데 밤새도록 주님하고 이야기하고 ‘주님 이렇습니까? 내가 주님이 땅 위에 오시기 전에는 보기 전에는, 육안으로 보기 전에는 나는 안 죽을랍니다.’ 소근소근 이야기하고, 밤새도 이야기하고 낮에도 이야기하고 둘이 이야기하고 자꾸 인제 주님하고 이야기 했는데 예수님이 결례 받으러 성전에 데리고 갔습니다. 왔는데 보니까 항상 기도 중에서만나던 그분이 왔기 때문에 오는 것 보고 당장 알았습니다. 오는 것보고 당장 알았어.
알아 가지고 막 찬미를 하면서, 이는 내가 고대하던 매시야다. 이분을 만나기 전에 내가 안 죽을라고 했는데 이제 만났으니까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막 뛰고 굴리고 기뻐했습니다. 왜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까, 여러분들! 오늘도 생존하신,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의논할 수 있는, 내가 물을 수 있는, 나에게 둘도 없이 바로 지도해 줄 수 있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부탁할 수 있는, 내 관련된 모든 책임을 부탁하고 그에게 맡겨서 단단히 맡아 줄 수 있는 살아 계신 주님!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말씀! 이렇게 교제하는 이 사람이 자기 기른 양을 맡길 수 있고 맡을 수 있습니다.
평생 증거해도 허수아비를 증거하고 ‘하나님 말씀’ 한다 해도 ‘하나님 말씀이야 뭐 신구약 육십 육 권, 일자 무식도 한글 아는 사람 다 아는것 그까짓 거, 이렇게 독일어 영어 헬라어 무슨 어 무슨 어 무슨 어 이런 어학으로 아는 것이라야 되지.’ 해서 세상 인간들의 학자들의 말은 금덩이같이 하늘같이 생각하면 하나님 말씀은 멸시 천대받은 무식한 인간들이 볼 수 있는 말로 상대하는데 그분에게 이 말씀이 역사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안 돼!.
스스로 속지 마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무엇이든지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 너 행동한 대로 거둔다! 내가 세밀히 보응한다! 어디라고 큰소리를 해, 어디라고! 어리석어 ! 그래, 오늘에 자기와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것을 나는 죽어도 그분은 살았고 나는 늙어도 그분은 안 늙습니다. 이분을 어짜든지 발견해서 사귀어 가지고 내 현재에도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되겠고 도움을 받아야 되겠고 그분에게 상의를 해야 되겠고 그분의 지도를 받아야 되겠고 내가 못 하는 것을 그분에 부탁을 해서 그분이 해 줌을 받아야 될 거고, 이렇게 현재에 생존하신 주님을 찾아서 생존하신 주님을 모십시다. 생존해서 능히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전능의 성령님을 찾아서 이분을 이분으로 대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지혜롭지 이분을 멸시하고 천하 인간 학자들의 똘똘 뭉친 그것을 찬양하고 아무리 높여 봤자 주님은 멸시합니다! 주님은 멸시하요! 오늘에는 벌써 그런 때가 지났습니다. 임박합니다. 어서 이분 찾아가지고 이분으로 의논해야‘ 되지 이분 외에는 우리의 난제를 담당해줄 아무도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믿습니까! 저 뒤에도 믿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