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01:19
말씀은 유일한 배경
본문 : 요한복음 12장 47절∼50절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신구약에 기록된 성경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요 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아버지의 말씀은 어떤 권위를 가지고 신실성을 가졌다 이라면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은 댜 그렇다는 말이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어떤 권위를 가졌다 하는 것은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은 다 그런 퀀위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감화의 말씀은 어떤 권위와 진실성을 가졌다 하는 말은 곧 신구약 성경을 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발표된, 기록돼서 선포된 이 말씀은 성부의 말씀이요 성자의 말씀이요, 성령의 말씀이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삼위일체라 말은 몸은 하나요 직분이 셋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직분 맡은 것이 각각 달라서 셋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비유가 적절하지는 안하지만 가장 가까운 비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 사람인데, 사람은 한 사람인데 아내에게는 남편 노릇 하는 그 사람이요. 온 가정에 대해서는 호주 노릇 하는 그 사람이요, 또 자녀에게 대해서는 아버지 노릇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 한 사람이 아버지도 되고 호주도 되고 남편도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하나님이신데 성부의 직책을 할 때도 있고 성자의 직책 할 때 있고 성령의 직책을 할 때도 있고 그 직책을 하는 것은 각각 다르지만 한 하나님이라는 그것을 가리켜서 삼위일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 대한 믿음이 항상 어려서 성부 하면, 하나님 아버지 하면 예수님과는 좀 멀어진 것같이 생각하고, 또 성령님 하면 또 아버지와 아주 거리가 멀어진 것같이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이신데 위가 서이라, 위라 말은 동장의 위, 반장 위, 통장 위. 또 구청장 지위, 또 내나 시장 위 위라 말은 직업이라 말이요. 계급을 말하고 직분을 말합니다. 자기의 높고 낮은 계급 과 직책을, 둘을, 자기 직분과 책임 그 직책을 한데 뭉쳐서 말할 때에 그 사람의 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그 사람의 높고 낮은 그것만 생각할 때는 지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의 지금 위가 뭐이냐, 또 직위라 말하면 그 사람의 지금 하는 직분이 무슨 직분을 하고 있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위, 삼위. 위는 각각 따로 가지고 있지만 내나 하 하나님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성부의 말씀이요 성자의 말씀이요 성령의 말씀이요 한 분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47절, 요한복음 12장 47절 봤는데,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이 말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예수님께 서 그 사람에게 '네가 말씀을 지키지 안했으니' 하면서 심판하지 안한다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할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할려고 오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48절에, "나를 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예수님을 버린 자가 어떤 자가 예수님을 버린 자인고 하니 주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자가 예수님을 버리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자가 어떤 자인가? 주님의 말씀을 받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친근히 하는 자가 어떤 자인가? 하나님 말씀을 친근히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어떤 자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움직이는 자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인 것입니다.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심판할 이가 따로 있습니다.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그러면, 주님이 지금 말씀하신 이 말씀이 사람들을 전부 심판입니다. 신불신자를 다 이 말씀이 심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 공심판은 예수님이 대신 받았기 때문에 공심판은 우리가 받지를 않습니다. 공심판에서 지옥과 천국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심판에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다 행했기 때문에 공심판에는 우리가 정죄받지 안하고 무사히 의인으로 다 통과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자는 누구든지 지옥 가지 안하고 하늘나라는 갑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는 사람중에 사심판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공심판을 면해서 나온 사람 중에 모든 사람들을, 공심판을 예수님의 공로로 면제해 나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심판하는 심판이.
있으니 그 심판의 이름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렇게 고린도후서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그리스도로 변화된 것이 얼마 있느냐, 그리스도로 변화된 것은 두고 변화되지 않은 것은 다 멸망에 던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택한 자들이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은 큰 구원 얻었지만 자기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직책을 행하고 그리스도로 변화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성장 돼야 할 그 현실에 그리스도의 직책을 행하지 안하면 그리스도의 그 능력이 성장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장된 대로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너는 그리스 도화된 것이 얼마나 있나 보자' 해 가지고 그리스도화되지 안한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짐을 받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받지 안한 사람은 그만 첫째 심판에서 영원한 멸망을 받고 있지만 구속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을 받기는 받았는데 다시 제가 현실에서 이 구원을 던져 버리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영원히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당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그 자체와, 자기 자체와 지식과 행위와 또 맺어져 놓은 모든 이력 그것이 자기가 되는 것인데, 구속은 받아 가지고 있기는 있지만 그 이력을 조사하니까 그 이력이 하나님 말씀대로 된 이력이 없습니다, 쏵 다 깎아 버리고. 다 전부 제 욕심대로 인간 생각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런 것을 따라 움직여 살았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따라서 살지 안했지 때문에 이 말씀 대로 되지 안한 건 쏵 벗겨 버립니다. 이 말씀대로 되지 안한 그 모든 자기 모든 해 놓은 일을 깎아 버리니까 남는 게 없습니다. 또 이 말씀대로 자기가 행동한 게 있는가 해서 그 행동을 조사하니까 이 말씀대로 한 행동이 없으니까 쏵 다 깎여 버렸으니까 행동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이 말씀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심사하니까 이 말씀대로 된 지식이 없고 썩을 세상의 뱀의 지식만 가득 차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식을 쏵 다 깍아 버려 버리니까 또 지식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 남는 건 뭐입니까? 자기 자체만 남았는데 구속받은 것만 남았기 때문에 이런 걸로 자꾸 커지는 것인데 이것이 있으니까 아주 같이 영생은 얻고 하늘나라에 가기는 갔지만 그 사람은 아주 소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뭐 신체가 커서 대인 되는 것 아닙니다. 신체가 커서 대인 되는 것 아니오. 나는 그 전에 ○정권 때에 이 ○대통령은 아마 좀 큰가 해서 봤디만 그 ○대통령 키가 아마 내 키보다 작거나 우리와 꼭 키가 같거나 뭐 그럴 거 같아.
그 사람이 왜 그리 큰가? 그 사람이 해서 점령해 놓은 이력이 크고 또 그 사람의 행동이 크고 그 사람의 모든 지능이 크고 이러니까 됐지 신체로 달면 뭐 우리보다 뭐 중량이 동등 되거나 작거나 그렇지만 그 사람은 크고 우리는 작은 사람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늘나라도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서 벌거벗은 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지금 힘을 쓴다고 사도 바울도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서 작은 자로 벗은 자로. 이런 거 다 벗었다 말이오. 그 사람의 이력도 벗었지. 지식도 벗었지, 기술도 벗었지, 능력도 벗었지, 행위도 벗었지 다 발가벗어 버리고 근본 구속받은 본 체밖에 없으니까.
영육밖에 없으니까 그것이 뭣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제일 작은 자요 천한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자기를 만들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지식은. 내가 신구약 성경을 내가 암만 외운다고 해도 그건 내 지식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을 그 말씀을 자기가 알고 현실을 당했을 때에 이 말씀을 네가 환영해서 이 말씀대로 현실을 내가 살아야. 이 말씀대로 현실을 살아야, 이 현실에 이 말씀을 버리고 네가 네 생각대로 사느냐, 그러면, 이 현실에 하나님 말씀을 네가 행하느냐 혹은 인간들의 말 마귀의 말 그 모든 이 세상 말을 취하느냐? 이 현실을 네가 어느 말씀을 네가 환영하고 영접하느냐 그럴 때 이 현실에서 여러가지 애로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현실을 살아서 통과하면 그 현실에서 그 말씀은 자기의 말씀이 됐고 말씀은 같이 있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행위도 그러하고 인격도 그러하고 마음도 그러하고 모든 몸의 움직임도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의 지식,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행위, 하나님 말씀대로의 일, 하나님 말씀대로의 사람 이렇게 자꾸 건설해 나가는 것인데, 그 현실에서 그렇지 안하고 너는 현실에서 돈 대로의 지식 세상 과학대로의 지식, 그 모든 또 돈대로의 행위, 돈대로의 마음 돈대로의 일, 그러니까 돈대로의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껍데기는 다 같은 사람 같지만 보면 돈 대로 된 사람, 권세대로 된 사람 또 세상의 어떤 과학대로 된 사람, 하나님 말씀대로 된 사람. 어떤 정권자대로 된 사람, 어떤 배경대로 된 사람 그렇게 사람은 속은, 알맹이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 재림 때에 한자리에서 다 같이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은 사람은 꼭 같고 그 자리에 같이 살지만 그 중심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방편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심판은 각각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그러면,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말할 거 오만 것을 다 명령해 주시는데 거기 피동했다 그 말이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피동됐습니다. 피동됐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실패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에게 피동되면 실패가 없습니다.
50절에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는 좀 마음을 넓혀야 되는데, 어제도 모든 것을 계산할 때에 쪼부랍게 하지 말고 좀 범위를 시야를 넓게 잡아라, 시야를 넓게 잡아서, 시야를 넓게 잡아서, 얼마나? 모든 존재로 말하면, 존재, '아, 이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니 제일 높다. 이 사람이 뭐 장관이니까 높다. 이 사람이 지금 시장이니 높다' 그렇게 그럴 게 아니라 이제 모든 존재에 대해 전체를 다 봐야 됩니다. 그거만 볼게 아니고 모든 존재 다 볼 때 '아 이거 시장 있는 동시에 대통령도 있구나. 대통령 있는 동시에 이보다 더 강대국의 대통령도 있구나' 또 그 위에 '이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모든 존재는 하나님까지 꽉 넓혀서 보면 거기에서 평가가 바로 됩니다. 무엇이 크고 작은 것을 바로 볼 수가 있다 그말이오.
내가 어제 만나 가지고. 장로님들과 만나고 모든 권사님들과 만나 가지고 말할 때에 이제 이데를 보내며, 그때, 가지는 안했습니다. 가게 되면 갈라고 가서 대화할 때에는 꼭 세상에서 어떤 대통령이나 이 시장에 있는 누운뱅이 병신.
지금 구불러 다니는 누운뱅이 병신이나 꼭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거 인식하고 가라 했습니다. 꼭 같은 사람이다. 꼭 같은 사람인데, 다만 그 직책이 각각 다른 것이지 근본은 꼭 같은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다르지 안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그렇게 눌리고 꺾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직분을 가졌으니까 이 직분이면, 그러면, 직분을 가졌으면 그 직분 가진 것이 높은 게 아니라 직분을 바로 행하면 가치있고 직분을 바로 행하지 안하면 그거는 가치 없어 정죄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배경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배경 가지기를 원합니다. 이래서, 뭐 좀 보면, 그래서 ○정권 말년에는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죽으면서. 죽으면서 하는 말이 뭐이냐 하면 '빽' 그러며 죽는다고. '빽' 하며 죽는다고 그거 나는 처음에 듣고 무슨 말인고. '빽' 하며 죽는다고. '나는 빽 없어 죽는다' 그렇게 말하고 또 이제 아이를 낳을 때 나오지 안하거든 '빽' 하면 그만 뛰어 나온다고. '하 빽' 그렇게 빽이 세월이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나라가 망하고 그 정권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차를 타고 다녀 봐도 보면 기름이 졸쫄 흐르고 아주 뻔쩍뻔쩍한 옷을 입고 있으면 '아 저거 ○정권에 속한 사람이로구나' 환하게 볼 수 있어.
그렇게 행동이 나타났으니까. 월권하고 남용했으니까 망하지 않을 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정권자 가 된다면 '아, 그 사람 옷을 검소하게 입고 아주 옷는 볼 것이 없는데 눈방울이 또록또록하니 정신 딱 차려 가지고. 보니까 그 사람이 제일 경 건하게 그 찻간에서 제일 경건한 사람이더라' 그러면 그때 '아, 그 사람은 현 정권에 속한 사람인갑더라' 이리 되면 그 정권은 권불십년이라고 권세는 십년 안 간다고 하는데 그 권세를 어떤 자가 뺏들겠습니까? 못 뺏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배경을 자꾸 원하고 있습니다. 배경을 원하고 있지만 배경은 좋은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배경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가까이 볼 수가 없고 우리의 배경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배경은 가까이 있는 배경이 뭐인가? 이제 신구약 성경 말씀이 유일한 배경입니다. 유일한 배경이오.
이 말씀을 배경 삼아서 이 말씀과 나와 하나 되면 천하가 망쳐도 망치지를 못합니다. 이걸 꼭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과 나와 함께 하는 그 행위를 어떤 자가 정죄하고 망치겠습니까? 정죄하면. 나라가 정죄하면 그 나라가 망할 것이고 개인이 정죄하면 개인이 망할 것이고 단체가 정죄하면 단체가 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와 하나 되어서 내가 말하고 움직이고 하는데 그 움직임을 어떤 자가 정죄해. 정죄하면 그거 다 망하기 때문에 그까짓 거 뭐 살아도 송장같이 여기면 됩니다.
그러기에, 배경으로서는 하나님 말씀보다 더 큰 배경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할 때에, 아무리 사람들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 찬성을 한다고 해도, '아. 이제 시장도 나를 돕고 군수도 나를 돕고 대통령도 나를 돕고 뭐 국회의원도 나를 돕고 세계의 뭐 박사들이 나를 돕고' 어제 여기 공사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두 다 이제 교수들 대학 교수들을 데려다가서 이제 다 심사하겠다고 이렇게 말한다고 하는데, 교수들 데리고 올 테니까 그때 와서 다 심사하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말 들을 때 내가 속으로 좀 증오심이 난다 그말이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내가 간접적으로 듣고 '교수도 요새 지금 교수를 누가 믿노? 전부 돈에 팔려서 왔다 갔다 하는데 교수를 믿나? 교수 뭇 믿는다. 또 측정기로 암만 측정해 봤자 그거 못 믿는다. 아. 내 몸이 측정하는, 내 몸이 측정해서 내 몸에 지금 진동을 받았고 내 몸이 지금 체득을 했는데, 내 몸이 체험하는데 내 몸보다 다른 무엇을 믿겠느냐? 내 몸에 그러니까 다 그렇다 하면 그거 믿어지지만 내 몸에는 지금 진동이 돼서 '이만하면 집이 손해가 가겠다' 이렇게 느꼈는데 그 느낌과 같은 느낌을 말하면 '아, 그거 맞다' 해 주지만 그 느낌에 반대되는 것을 천하 사람이 말하면 믿겠느냐? 안 믿는다. 강제로 하면 혹은 악한 자는 '아, 그런갑습니다' 이래 할지라도 속은 믿어지느냐? 안 믿어진다. 어떻게 자기를 그렇게, 확실히 자기가 체득했는데 부인할 수가 있느냐?' '뭐 교수가 오면' 이래 가지고 교수에게 말하고 뭐 측정기를 말하고 또 '이거 준공 검사를 맡았느냐 안 맡았느냐?' 준공 검사가 무슨 집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습니까? 또 설계 말해. '뭐 설계하거나 말았거나 집이 서 가지고 있으니까 집은 된것 아니가? 그거 너거 간섭할 것 없어. 이게 돼 있지만 못해. 그거 줄 필요가 뭐 있노?' 이렇게 해서 하는 걸 보니까 이 사람들이 위의 사람이 아니고 아주 공사 하는 사람은 내나 이런데 뭐 노무자와 같이 그렇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쩌든지 '일만 해내라' 위에서 그 명령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주먹 육박전으로 싸울 수도 없고 그런 사람 그래. 엊저녁에는 또 지켰나 올라도 저 아래 저녁에도 자고 나니까 와 가지고 지금 그것을 움직일라면 차를 정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차 정리하는 신호등을 들고 와 가지고 그 이래 하기 때문에 가 가지고 기계를 움직이고 이래서 옆에서 가 가지고 왜 그러느냐 이라니까 우리 기계보러 보러 왔다고. 둘러 보러 왔다고. 그 사람들 자다가 뭣 하러 둘러 보러왔겠소? 이러니까, 그것을 어제 저녁에도 지켜, 엊저녁에 지킨 사람 손들어 봐. 뻐득 들어 봐. 뻐뜩, 밤에 지킨 사람들. 엊저녁에 모두 몇 사람이 지켰나 다른 사람들은 다 안 지켰는가? 그래,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는 할 일이 기도밖에는 할 일이 없어요. 우리는 비유하시기를 포도나무 넝쿨이라. 포도나무 가지라 했어. 포도나무 가지라고 했는데, 포도나무 가지를 지금 뜯어 먹을려고 해충이 달라들었습니다. 해충이 달라들면 그 포도나무가 해충을 직접으로 단속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해요.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 깊지를 다 먹어 없애도 그 해충을 방어할 힘이 없어. 우리를 죽인다 해도 우리는 방어할 힘이 없어. 왜? 그 방편은 우리에게 뭇 쓰구로 했기 때문에 방어할 힘이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천상 이거는 주인이 와서 그만 약을 쏵 뿌려 버리든지 그래 안 하면.
포도나무 벌레는, 이만해요. 크기를 나는 그 포도나무 한 개를 마당 가운데에 거창 있을 때 심어 놨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얼마나 따느냐 하면 가마니, 쌀가마니, 쌀가마니 그거는 한 네 가마니씩 따요. 한 나무에 너덧 가마니 따요.
한 나무인데 뭐 모두 다 포식을 해. 이랬는데. 벌레가 이만해요. 이만한 그놈을 갉아먹어도, 뭐 저거는 갉아 먹어도 대항한다고 하는 것이 갉아먹으니까 마구 밑에서 물을 올리자 의싸의싸 하고 이놈을 대항하자고. 물이 올라오면 이놈은 좋다고 꿀떡꿀떡 삼키고 당장에, 이만치 커 버려요. 우리는 이 세상을 악으로 악을 대항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농부가 오면, 우리는, 우리의 농부는 아버지는 농부라 안 했습니까? 포도나무 농부 내가 떡 가 가지고 보고 그걸 괘씸해서 딱 찍어 내려 가지고 그거 아주 터주면 딱 죽어 버린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아.
이런데, 이 지하철 이거 자꾸 이래 하는데 뭐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거 사람을 시켜 봐도 또 사람들이 가서 어떻게 하겠소? 이러니까. 그만 하나님에게 맡겨서 지금 부탁하는 것이 제일 좋아 이러니까, 기도해야 되는데 이 문제 때문에 어제 기도 세 번 이상 한 사람 손들어 봐요. 아, 이제 일은 되겠어. 일은 돼. 이래 기도하면 돼요. 안 한 사람들도 다 회개하고 기도해요. 기도로 하면 하나님이 하시면 그 사람들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이래 가서 충돌할 것도 아무것도 없고 뭐 인심 잃을 것도 없고 논평 받을 것도 없고 뭐 이러니 저러니 할 것도 없고 하나님이 수습하시면 그 사람들도 안상하고 우리도 안 상하고 이 일을 잘 해 줄 터이니까, 이런 분이 우리 앞에 계시는데 왜 이분에게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니까 죽어야 마땅할 인간들 아닙니까? 기도할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도하지 안하고 뭐 제가 땀을 뻑뻑 흘리면서 야단을 지기는 거는 어리석은 일 이오. 또 인간이 제 힘으로 한다 하면 해도 재미없어. 해도 뒤에 가서. 둘이 하고 나면 '이거는 내가 잘해 그렇다' 제 공로를 나타내고 이 사람은 또 '내 공로지' 서로 일 성공해 놓으면 공로를 서로 따 먹을라고 서로 싸워 가지고 시비난다 말이오.
그까짓 꼬라지를 어찌 볼 거라. 보기를? 사람이면 다 그래. 이러니까,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이 해 주시면 문제가 없이 다 잘된다 그거요.
그러므로. 우리의 배경에 제일 큰 배경은 뭐이냐?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언행심사 할 때에 말씀대로 안 된 일은 어짜든지 회개를 해야 됩니다. 이 일에 대해서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여기 대해서 무엇을 하나님의 노를 풀어야 하나님이 우리 소원을 들어 줄까 하는데, 첫째 회개할 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건물을, 상상도 못 할 돈없는 우리들에게 이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이 지어졌으니까 이 예배 처소를 이렇게 넓혀 지어 주니까 감사해야 될 텐데 감사를 얼마나 하는지 그거 모르겠오. 물론 감사 많이 하는 사람들 있을 줄 압니다. 나는 여기 들어을 때 이리 보면 '아, 이 넓은 예배당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다' 저는 볼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감사는 합니다. 또 '이것이 그런 파란과 곡질이 많았었는데 그런 가운데도 당신은 쪼금도 지체 안 하고 이걸 뿍뿍 지어내 주셨다, 또 사람은 하루 열 두 번도 더 변하는 사람들인데 그 변하는 사람들 붙들고 변함없이 이 건축을 바로 해 주셨다.' 이 건물에 대한 감사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하지 않지 않느냐, 이게 노여우니까 하나님에게 그 노를 푸는 것은 여기 대해서 참 하나님이 이렇게 예배 처소를 주셔 가지고 지금은 모여서 예배보는 사람은 어제 계산 해 보니까 만 팔천으로부터 약 이만 됩니다. 한 주일날 예배보는 사람 숫자를 헤아려 보니까.
이러니까, 자, 이러니 이 장소를 주신 데 대해서 장소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를 했는가 그거를 내가 광고를 할라고 들었습니다. '이거 모두 다 예배당 하나님이 주신 데 대해서 감사해야 되겠다' 그걸 우리가 안 한 것을 회개해서 감사해야 되겠고 둘째로는, 이렇게 주님이 예배당을 주셨는데 이 예배당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으니 이것을 소중히 여겨서 애착해야 될 터인데, 소중히 여겨 가지고 애용을 해야 될 터인데, 소중히 여겨서 애용을 해야 될 터인데 소중히 여기는 것이나 애용하는 일이 없고 뭐 '원래 있는 것이 다 이래 가지고 남의 집 보듯이 보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이라 이렇게 존귀히 여기는 이러한 관심이 우리에게 혹 모자라지 않느냐 그것을 생각을 가졌고, 또 셋째로는, 이렇게 주님께서 장소 주시는데 이곳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장소요 기도하는 장소인데 이곳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참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나. 혹은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때에 경건치 안한 그런 예배를 드리니까 우리 예배를 하나님이 흠향할라고 해야 흠향을 할 수가 없는 깨끗치 못한 예배가 되어지니까 하나님께서 예배당도 밉상으로 보이고 혹 그래 된 거 아니냐, 예배를 경건하게 드렸느냐 그것을 셋째로 생각하고? 넷째로서는, 혹 이 예배당을 악용한 자가 없느냐. 여기서 저거끼리 만나 가지고, 남녀끼리 무슨 연애하는 그런 못된 짓을 한 일이 없느냐, 또 여기서 서로 싸우고 다투고 마귀 장난을 한 일이 없느냐, 우리 성전에 대해서 이 잘못된 이런 것을 회개를 하고 이제는 '감사합니다.
예배당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 예배당은 주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겨서 우리가 잘 간수하고 간수하겠습니다.' 또 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정성껏 예배드려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또 예배당에서 죄 짓는 일. 다른 사람하고 시비, 악독의 시비한 일, 또 여기서 도적질하는 일. 또 다른 사람 도적질하도록 돈을 떡 내놔 가지고 다른 사람 도둑놈 만드는 일, 우리 연보궤를 단속을 못 해 가지고 연보궤 돈 뭐 몇 백만 원을 도적해 갔는지 모릅니다. 아마 몇 백만 원 될 거 같아. 생각으로는, 사실은 한 푼도 도둑 안 맞았는지 모르지 만. 자, 그런 거, 또 여기서 남녀끼리 더러운 수작으로 눈을 맞추든 지 어짜든지 이렇게 더러운 수작을 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그런 일 없느냐 이런 것을 회개하고, '주님, 이것을 주님이 안보해 주시옵소서. 이걸 보호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나중에 위원들이 만나 가지고서 '아 이것은 얼마든지 진정은 해야 되겠다' 해서 진정은 해야 될란지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어제 진정서를 해 가지고. 진정서를 이 위 우편국에 가서 진정한 것을 등기로 부친 것을 또 저게 중앙동인가 어디 우리 본부에 가 가지고 그걸 도로 찾아왔습니다. 찾아왔어. 그래 이걸 보이면서 '우리가 이렇게 진정을 낼라고 해도 그래 쌓아서 진정을 냈었다. 냈으나 이것을 지금 너거가 말로 가지고 해 주면 진정할 필요 없다. 진정하는 것이 너거에게 뭐 영광 될 것도 없고 명예될 것도 없는 것이니까, 이래 했던 걸 도로 철수해 가지고 왔다. 왔으니까, 여기는 보라. 시장한테도 진정했고 또 이래 앞으로는 대통령에게 진정할 터인데 이 하던 걸 찾아오고 될 수 있는 대로 너거 위신 안 깍고 어찌 됐든가 서로 사이 좋게 할라고 이와같이 하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어떻게 할래? 여기 대한 어떻게 해서 각서라도 써내라' 그렇게 지금 하고, 오늘이 목요일입니까?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목 금 토 사흘밖에 없어.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는 집회 갈 터이니까 여기는 아무도 없을 거라 말이오. 그동안에 저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할지 몰라. 그렇게도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라. 내가 보니까. 왜 그러냐 하면, 무엇을 몇 개만 박으면 되는데 측정기를 가져와서 '측정할려고 박습니다. 측정을 해 보니까 쪼금만 계십시오.' 쪼금만 계시면 요거 좀 박아 보면서 진동이 어찌 되는고 측정할라고 그렇게 한다고. 측정. 측정하는 것이 그거 그런 다 하며 다 박을 거라. 측정한다 하면서 다 박을라고 들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뭐 갑론을박으로 싸워 봤자 말 시비만 나는 것이고 우리의 배경이 있으니까 우리가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위반된 일을 안 하도록 해야 됩니다. 위반된 일을 안 하도록 해야 돼요. 제가 위반된 일을 하나 해서 그 죄를 즉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한 것은, 거기서 뭐 준공검사증하고 뭐 또 인제 설계 도면하고 또 뭐하고 달라 하기 때문에 내가 그만 너무 미워서 내가 말했어. 내가 말했어. '아. 그 나쁜 놈이로구먼. 그 심리가 아주 나쁘구먼. 나쁜 놈이라. 준공 검사가 제게 무슨 상관이 있어? 거기 뭐 그런 게 필요가 거기 있나? '설계도는 또 뭐 할라고 설계도? 집은 돼 가지고 있으면 집은 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저거 할 일이나 할 일이지 뭐 남의 거석을 뭣 때문에 저거가 심사할 권리가 있다고 하고 있어?' 이래 내가 야단을 좀 쳐버렸습니다.
그랬는데, 그래서 그걸 다 내가 회개를 했어. ○장로님이 와서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만 그래 버려서 ○장로님은 또 섭섭했을지 몰라. 이래서, ○장로님한테 내가 자복을 했습니다. '아, 내가 너무 들으니까 그만 좀, 그 행위가 미워서 내가 그런 말했는데 내가 실언을 했으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장로님은 또 섭섭했을지 모른다 그말이오. 그래서 그 말을 내가 자복했습니다. 그라고 말 한 마디라고 우리는 거기서 틀리지 안하도록 말씀대로 하고, 고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기도해 가지고 안 이루어지는 것은 안 이루어져야 좋기 때문에 안 이루어지는 것인 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에게 지극히 큰 배경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한 때에 말씀대로 됐느냐 안됐느냐 말씀 배경을 가지고 뭐 폰 소리해야 되지 말씀 배경 안 된 건 제까짓 게 암만 큰 소리 해 봤자 마지막에는 심판 받고 맙니다. 말씀대로 된 것은 큰 소리 안 해도 말씀대로 된 것은 '아, 이거 이래야 좋지 않느냐' 하면 천하 인간이 '이놈 그라면 안 된다' 반대를 해도 속은 웃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됐기 때문에 너거가 정죄받지 나는 든든해.' 말씀대로 된 이거 배경을 가진 사람은, 든든합니다. 천하가 다 달려들어서 죽여도 '그놈 죽여라. 죽이니까 나는 옳은 데서 죽었기 때문에 너거는 다 정죄받곤 너거 전부가 영원히 내 종이 될 것이다. 종이 될 것 아닙니까? 옳은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 사람은 옳은 사람을 섬겨야 될 것 아닙니까, 영원히? 말씀은 유일한 뭐 둘도 없는 지극히 큰 유일한 배경이 됩니다. 또 이 말씀은 뭐이냐? 이 말씀은 지극히 큰 능력이 됩니다. 이 말씀대로 하는 것 보다 더 권능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전능입니다. 내가 이 말씀대로 했으면 한 그 일은 전능의 능력이 그 일 한 데에 같이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일 한 것은 전능의 능력이 책임을 집니다. 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전지의 지혜가 됩니다. 이 말씀대로 했으면, 이 말씀대로 했으면 제일 옳고 바르게 한 전지의 지혜가 한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몇입니까? 이 말씀은 유일한 배경이라, 또 유일한 능력이라, 또 유일이라, 지혜라, 그 다음에 하나 있어, 또 뭐입니까? 이 말씀은 영생이라, 이 말씀은 영생이라. 이 말씀은 영원히 살아. 모든 것을 이기고 남아. 영생이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있는데 이 말씀 버리고 뭘 찾아서 헤메이겠습니까? 이 말씀의 능력을 알고 이 말씀대로 해 본 사람은 전부 기적이 납니다, 이 말씀대로 한 사람은 척척척척 다 되고, 이 말씀을 어긴 사람은 다 절단나지만 이 말씀대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와서 모든 것 다 해 주시니까 척척 돼. 이 말씀을 어겨서 자꾸 지체되지 이 말씀대로 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유일한 배경이라, 이 말씀은 유일한 능력이라. 이 말씀은 유일한 지혜라, 전지한 지혜라 말이오. 이 말씀은 영생이라. 우리가 알고 요 말씀을 버리지 말고 이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좋은 날을 볼 것이요, 점점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서 앞으로 좋은 날을 자꾸 만나게 될 것이요, 이 말씀을 떠난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 젊음 보다 늙어서 자꾸 과거보다 현재가 비참해지고 말 것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