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9 22:03
마음 눈이 밝아야
1987. 10. 14. 밤 (수)
본문:마태복음 6장 19절∼24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들은 실상과 비유가 섞여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모든 것을 가리켜서 보물로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자기가 수고해 가지고 얻은 모든 것을 보물로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자기가 수고한 것이 하늘에 저축이 되면 거게는 손해는 안 보지마는 땅에다가 쌓아 두게 되면 “좀과 동록이 해한다” 좀은 세월이 지나가면 상하는 것을 말하고, 동록은 썩히는 것이 근방에 가면 썩어집니다. 썩히는 것은 죄를 말하고 이 좀은 세월이 지나가면 없어지는 걸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수고한 그 수고의 공력이 하늘에 저축이 되든지 땅에 저축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다 같이 공부를 해도, 공부해서 자기가 얻어지는 수익이 하늘에 저축되는 사람도 있고 땅에 저축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기가 이런 무슨 사업을 해서 돈을 번다 할지라도 번 재물이 하늘에 저축될 수도 있고 땅에 저축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저축되는 것은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자기가 무엇이든지 투자하는 것도 있고 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도 있으니 사람이 여게 투자하든지 저게 투자하든지 둘 중에 무엇이든지 하나 사람은 하기 마련입니다.
이런데 하늘에 투자하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가도 그것은 없어지지 안하고 아무리 죄악이 어떻게 들끓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도 상하지 안하지마는 땅에는 어떤 방식으로 저축을 한다 할지라도, 만일 사람에게 하든지, 나라에 하든지, 가정에 하든지, 자기에게 하든지, 어떤 사람을 공부를 시키든지, 출세를 시키든지, 구제를 하든지 뭘 하든지 그 사람이 땅의 것을 위해서 수고했다고 하면 그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없어집니다.
세상에서 뭐 어떤 자선 도덕 또 운동 자비 그런 것을 많이 베풀었다 해도 땅의 것으로 이래 한 것은 그 사람이 죽어도 끝나는 것이고 또 죽기 전에라도 그것은 없어지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좀먹는다 말은 없어질 날이 있다 그겁니다. 그러나 하늘에 쌓아 둔 것은 없어질 날이 없고 또 죄악으로 인해서 해되지도 안하고, 도적도 도적질 못 한다 하는 그 말은 최후까지 아무것도 해하지 못한다 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가 땅의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은 그것이 없어지지 안하고 아주 실속 있는 일이며 대단히 든든한 일로 보여지지마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늘에 쌓아 두는 것, 하나님의 진리대로 복음대로 이렇게 사용해서 인간 구원에 저축하고 하는 이런 것은 허무한 것같이 보여지지마는 그것은 허무하지 안하고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거게 세밀한 말을 다 냅두고 간추려서 말하겠는데 이것은 믿는 성도들이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늘 소망을 위해서 살라. 땅의 소망을 위해서 산 것은 다 죄로 멸망받든지 세월이 지나갈 때에 멸망받든지 반드시 멸망을 받는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서 이를 위해서 한 것은 시간이 아무리 가도 죄악의 심판이 와도 그것은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영원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의 소망을 두고서 사는 것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이것이 소망을 두고 사는 그것 자체도 땅에 소망 두고서 노력한 것과 하늘에 소망을 두고 노력한 것은 이것은 아주 차이 있다. 땅에 소망을 두고 한 것은 전부 다 썩고 망하고 멸해지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고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말라. 소망 두는 그것만 해도 땅에 소망 둔 것은 다 헛일이고 하늘에 소망 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그 알속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더 큰 문제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네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노력하는 것과 땅에 소망을 두고 노력하는 이것도 이거 자체도 하늘에 소망 둔 것은 가면 갈수록 그것이 가치 있어지고 영광스러워지고 영원하지마는 땅에 소망 두고 산 것은 세월이 가서 없어지든지 죄악으로 없어지든지 반드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땅에 소망 둔 것은 예수님 재림 때가 되면 다 불타버리고 없어집니다, 누구의 것이나. 또 그 개인이 죽어도 없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에다가 소망을 두고 사는 것과 하늘에다가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이것만 해도 크게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라 그것을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뭐 그것은 해석하나 안 하나 땅에 소망을 둔 것은 땅의 것을 얻기 위해서, 땅의 수입을 위해서, 땅의 유익을 위해서, 땅에서 사는 그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 다 땅에 소망 둔 거고, 또 우리가 세상 떠 가지고 하늘나라 가서 영원히 살 터인데 하늘나라에 가서 살 그때에 필요한 소망을 두고서 그것 위해서 사는 것은 하늘에 소망 두고 사는 것입니다.
땅에 두고 사는 것은 누구든지 조만간에 반드시 전부 전멸된다. 땅에 소망 두고 사는 것은 전멸이 된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은 하나도 멸해지지 안하고 영영하다 그것을 여게서 말을 합니다. 이것도 그러하지마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하는 것을 그 다음에 말하기 위해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 있는 그곳에는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면 자기가 소망을 하늘에다 두고 살면 자기 마음은 항상 하늘에 있게 되고 자기 소망을 땅에다 두고 살게 되면 자기 마음은 항상 땅에 있게 된다. 그것 그럴 거 아닙니까? 그러면 사람은 자기 마음이 땅에 붙어 있는 사람도 있고 하늘에 붙어 있는 사람도 있고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게 되면 마음이 항상 하늘에 들어붙어 가지고 있고 자기가 땅에 소망을 두고서 살게 되면 자기 마음은 항상 땅에 들어붙어 있게 된다.
그러면 하늘의 소망은 영원히 멸해지지 안하고 땅의 소망은 멸해지기 때문에 그것도 큰 차이가 있어서 땅에 소망 두고 사는 것이 참 그것은 완전히 속고 망하는 일이지마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게 되면 마음이 항상 하늘에 들어붙어 있게 되고 또 소망을 땅에다가 두고 살면 그 마음은 항상 땅에 붙어 있게 된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마음을 하늘에 붙여 놓으면 뭣하며 땅에 붙여 놓으면 뭣하는가? 하늘에 붙여도 좋고 땅에 붙여도 좋지 그 마음을 꼭 하늘에다 붙일 이유가 뭐인가? 이것은 사람들이 좀 알기 어려운 것인데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놨습니다. 마음을 하늘에 붙이면 어떠며 땅에 붙이면 어떠냐? 아무리 우리 사람들은 계산해도 모릅니다.
마음을 하늘에 붙이면 뭐 마음이 항상 하늘에 있을 것이고 땅에 붙이면 땅에 있을 것이고 그렇지 땅에 붙인다고 하늘에 붙인다고 그뭐 그렇게 무슨 희한한 그런 일이 생길 게 뭐꼬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래서, 네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마음이 하늘에 붙어 있고, 항상 하늘에 가 있고 네가 소망을 땅에 두고 살면 네 마음이 항상 땅에 붙어 있게 된다.
그러면 하늘에 붙어 있거나 땅에 붙어 있거나 그것 뭐 별 차이가 뭐라서, 자꾸만 어떤 사람은 하늘만 생각하고 ‘이러면 하늘에 손해가나 유익이 되나? 이러면 하늘에 가 가지고서 꾸중 듣겠나 칭찬 듣겠나?’ 만날 그것만 생각하지, 소망을 땅에 둔 사람은 ‘야 이러면 지금 내 수입이 더 되나 덜 되나? 이 세상 지위나 명예나 모든 권세나 의식주가 더 좋아지나 나빠지나?’ 항상 그것만 생각해서 땅에 있으니까 필요한 것 더 잘하고 마음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당장 수입도 있고 모든 게 되니까 더 유익해 보이고 마음을 하늘에다 두니까 하늘에 대한 그거야 당장에 무슨 효력이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없으니까 모든 사람들은 마음을 하늘에다가 붙여 두는 것보다 땅에 붙여 두는 게 낫다 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다 땅에 붙이고 삽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하루 종일 살면서 땅의 것만 생각하고 아마 마음을 땅에다 붙여 놓고 산 사람이 많지 안했느냐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든지 사람을 만나든지 길을 가든지 항상 하늘의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하늘에 붙여 놓고 산 사람도 있고 땅에 붙여 놓고 산 사람도 있고, 바쁘다고 땅에 붙여 놓고 바쁘다고 하늘에 붙여 놓는 게 아니라 바빠도 하늘에 마음을 붙이는 사람은 하늘에 붙이고 또 땅에 붙이는 사람은 땅에 붙이고, 수월해도 마음을 하늘에 붙이는 사람은 하늘에 붙이고 땅에 붙이는 사람은 땅에 붙입니다.
요것은 자기가 마음을 하늘에다가 두면 어떠며 땅에 두면 어떤가 요것을 확실히 알고서 할라 해도 그게 어려운데 그거 저절로 되는 것은 그만, 뭐이든지 물건 놓으면 땅으로 떨어지는 거는 자연히 떨어지지마는 달아 올릴라 하면 힘듭니다.
마음도 땅에 붙이는 것은 저절로 돼지고 하늘에 붙이는 것은 역부로 마음을 하늘에 둘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 인이면 만 인이면 그 마음이 다 마음을 땅에 붙이고 살지 하늘에 붙이고 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뭐 마음을 하늘에 붙여 살라고서 이렇게 하니 하늘에 붙여 살아서 좋은 게 뭣이냐 하는 것을 그 다음에 말씀해 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 다음에 32절에, 이제 그 설명을 합니다. 마음을 하늘에 붙이고 땅에 붙이는데 차이 있는 설명을 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은 이 육체의 눈 말이오.
“육체의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만 환하게 밝으면 자기 온 몸이 환하게 밝습니다. 눈이 밝으면 손도 밝고 다리도 밝습니다. 눈이 어두우면 여게 지금 무슨 어떤 독약이 손을 넣으면 그만 손이 바짝 녹아버릴 독약이 있지마는 눈이 어두우면 그것도 모르고 여기 푹 짚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 손이 어둡다 말이오. 어두우니까 푹 짚지. 눈이 밝으면, 다른 사람이 짚은 것 보고 ‘아이쿠 거기 손 대지 마라. 거기 손 대면 손 그것 타 버린다.’ 눈이 밝으니까 손도 밝고 다리도 밝고 다 밝습니다. 눈이 어두우면 전신이 다 어두워집니다. 그것 이해됩니까? 그건 다 그렇지요.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둡게 된다. 눈이 어두우면 손도 어둡고, 다리도 어둡고, 팔도 어둡고, 모두가 다 어둡다. 어두워서 그 전신 지체가 다 어두운 놀음만 하게 되지 밝은 놀음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눈이 어두우니까 온 몸이 어둡고 눈이 밝으니까 온 몸이 밝아지는데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하는 이 빛은 자연의 빛 곧 마음을 말합니다. 네 마음이 어두워지면 말이요. 마음이 어두워지면 그 어두운 것이 얼마나 네게 큰 화가 되겠느냐?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이 빛은 마음의 빛, 마음의 눈을 말합니다.
마음의 빛 마음의 눈,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러면, 네 마음이 어두워지면, 네 마음이 어두워지면 그 어두운 것이 얼마나,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네게 있는 그 마음의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운 것이 네 모든 언행심사에 있어서,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경영이든지 무슨 사업이든지 인인 관계든지 네 마음이 어두우면 네 언행심사의 전행동과 생활이 얼마나 어두워지겠느냐 그렇게 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땅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라”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하늘에 두는 것이 그게 가치가 크다. 또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이러니까 네 마음을 하늘에다 두면 네 마음을 하늘에다가 두면 네 마음이 밝아지고 네 마음을 땅에 두면 네 마음이 어두워진다 요걸 말합니다.
사람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마음이 하늘에 붙어 있게 되고 땅에 것을 소망하고 살면 마음이 땅에 붙게 된다. 마음이 하늘에 붙게 되면 그 마음이 밝게 되고 마음을 땅에 붙이고 살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것을 여게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 어두움이 “마음이 어두우면 어두운 것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네 마음이 어두우면 얼마나 어둡겠느냐?” 네 마음이 어두우면 네 생각이 얼마나 어두워지며, 네 비판이 얼마나 어두워지며, 평가가 얼마나 어두워지며, 네 경영이 얼마나 어두워지며, 네 계획이 얼마나 어두워지며, 네 소원이 얼마나 어두워지겠느냐? 사람들이 뭐 소원은 가질수록 좋다 이렇게 생각되지마는 마음이 어두워서 잘못된 소원 하나 가지면 그 소원 때문에 일생 동안 제가 바짝 마르고 입에서 단쇠와 같이 쇠똥내금이 납니다. 입에서 평생 쇠똥내가 납니다. 속이 활활 타니까 그뭐 속에서 좋은 내음새가 날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 이래 만나 가지고 입에서 쇠똥내가 나면 뭣인가 그 사람에게 고민이 있는 증거입니다. 고통이 있는 증거요.
사람이 소원 하나,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안 할 소원 하나 했다고 하면 그놈 때문에 평생 저는 그저 개글개글거리고 고통하고 또 잘못 취택한 그 소원 하나 때문에 저만 망하는 게 아니라 가족까지 다 망하고 육체만 망하는 게 아니라 택한 자라면 구원까지 다 망쳐 버립니다.
또 그 마음이 어두워 놓으면, 마음이 어두우면 자기가 무슨 비판하는 것이나 평가하는 것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평가 하나 잘못해 가지고서 일생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언제 내가 뭐 여게 무더기 자살했다 말을 들었는데 그 여사장이 자기가 마음을 하나 잘못 먹어 가지고 그 경영을 잘못 해서, 지혜는 있는 사람인데 자꾸 돈을 빌려 와 가지고는 고리 대금으로 이자를 쳐서 착착 주고 이래 자꾸 빌리고 주고 이러니까 이 돈 임자들은 이 사람 신용 있고 이 사람에게 돈 빌려 주면 된다 이래 가지고서, 그 여자 자살한 여자가 무슨 어데 여자라 하지, 요새? 오대양? 오대양인가 뭣인가 그거 제가 이래 보니까 그 여자가 오판을 했어. 잘못 경영했어. 이래 가지고 자꾸 메꿔 나간다 하는 것이 제 돈 가지고서 만 원 가지면 만 원 그것 가지고서 자꾸 이자를 주니까 얼마 이자 주니까 좋아서 자꾸 신용 있어 가지고서 만 원 빌려 가지고서 내나 이자 주고 또 신용 있다고 또 십만 원 주니까 십만 원 또 이자 주고 이래 가지고 가속도로 많은 빚을 내고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은 자살했으니까 받을 데가 있습니까? 톨톨 팔아 가지고서 전부 다 그 여자에게 돈 줬는데 이제 그것들도 다 자살할 건데 자살은 했는가 안 했는가 모르겠습니다.
뭐 그저, 지혜 있는 것은 사부 이자로 빌려 가지고 그 사람 오부 주니까 일부 남는다 싶어서 그래 하고 또 이부 남고 삼부 남고 이래 가지고서 전부 이 돈놀이 해서 이래 했는데 그래 가지고 또 뭐 열 몇 명인가 다 자살했는데 그런 것도 돈 준 그것도 다 그래 망했어.
우리 교회도 뭐 돈 떼여 가지고서 환장을 하고 또 신앙도 다 팔고 미치괭이 모양으로 그러는데 돈 줘 가지고 떼이면 고요히 떼이고 말면 병신은 안 되고 뒈지지는 안할 터인데 이래 가지고 그게 아까워서 날뛰다가 나중에 저까지 뒈지고 맙니다.
여게 있는 그 부자, 돈 삼천만 원, 지금 삼천만 원 같으면 얼마 아니지만 그때는 또 그것, 한 십억 있는 사람이라. 지금 한 백억도 더 됩니다. 백억 더 되지요. 돈 삼천만 원 때문에 그만 화병이 들어 가지고서 죽었습니다. 그것도 마음이 어두워 그래. 그때 십 몇 억 있는 사람이 삼천만 원 그것 돈 뭐입니까? ‘이것 가지고 화병이 나서 밥 한끼만 못 먹어도 내게 손해다.’ 그 단정을 딱 짓고 고걸 바로 판단했으면 그 못 받을 것 이미 못 받는 그것 때문에 뭐 병들 게 뭐 있습니까? 이래서, 마음이 어두워지면 욕심도 어두워지고, 생각도 어두워지고, 경영도 어두워지고, 소원도 어두워지고, 비판도 어두워지고, 평가도 어두워지고, 또 모든 희로애락도 어두워지고 전부 어두워집니다.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 네 마음이 어두워 놓으면 그뭐 어두움으로 말미암은 그 결과에 네게 이르는 그 화가 얼마나 많겠느냐 하는 그 말씀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 보면, 저것은 조 생각 하나 잘못 가지고서 많은 사람들과 원수되고, 또 저 망하고, 남 괴롭히고, 밥맛 없고, 좀 심하면 병들고, 나중에 그라다가 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뒈지고, 이것 뭐 마음이 어두워 가지고 일어나는 화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래서 사람이 마음이 어두우면 이거 참 육체의 눈 어두운 것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 뭐 몇백 배가 아니라 몇천 배도 더 심한 불행이다. 이것을 깨닫고 마음이 밝은 것이, 마음 밝은 것이 육체의 눈 밝은 것보다 낫고, 마음 밝은 것이 돈 많은 것보다도 낫고, 마음 밝은 것이 지위와 권세보다도 낫고, 마음 밝은 것이 보배라는 것을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고 많은 그 온갖 실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기능을 가졌다 할지라도 마음이 어두우면 보배로운 가진 기능이 그것이 자기를 망쳐버리고 맙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재물도 자기를 망치고, 권세도 자기를 망치고, 실력도 자기를 망치고 어찌 됐던간에 마음만 어두워 놓으면 자기에게 있는 보배가 다 들어서 자기를 망치지 해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보배도 망치고 또 자기에게 화되는 것도 망치고, 마음이 밝으면 훅 나 앉으면 되는데.
이 층암 절벽인 이 험한 산길을 가면서 육체의 눈이 어두우면 그 당장 떨어져서 박살이 돼 버리고 맙니다. 박살이 되고 말아요. 눈이 어두우면. 이 세상은 그거보다 더 험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눈이 밝으면 뭐 다른 사람은 그런데 눈이 밝으면 요리조리 요리조리 평지같이 다니요.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어두우면 이것 참 화 중에는 제일 큰 화다 이것을 깨달아서 자기가 ‘내가 지금 당한 이 어려움은 이것 지금 낭파되고 이 어려움 당하고 이것 지금 고통하고 있는 것은 이것은 뭣 때문인가?’ 살펴보십시오. 전부 마음이 어두워 그렇습니다.
뭐 참 첩첩 멸망과 환난 중에 싸였다 할지라도 마음만 밝으면 거게도 요리 가고 요리 가고 요리 가면 다 넘어가 버립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은 여기 보니까 이리 봐도 떨어져 죽겠지 이리 봐도 바위지 이러니까 이리도 저리도 못하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데, 눈을 감으면 그런데 눈을 뜨면 요리 가면 되고 조리 가면 되고 요 홀짝 건너 뛰면 되고 요게 또 거머쥐고 올라가면 되고 뭐 평지같이 갈 수가 있어.
이러니까 어떤 궁지에 빠져도 눈만 밝으면, 마음 눈만 밝으면 평지같이 자기는 자유할 수가 있고, 또 어떤 위험지라도 그러하고, 적이 뭐 적이 천천 만으로 둘러 있어도 그 적들이 둘러 있는 그 적의 마음보다도 내 마음의 눈이 더 밝으면 적을 밟고 다닙니다. 이 적보다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을 적 제까짓 게 암만 해도 그 사람을 당하지 못합니다. 세계는 마음의 눈 밝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래서, 땅의 것은 땅에 있는 마음 눈 밝은 사람이 차지하고 있고 하늘의 것은 하늘에 마음 눈 밝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만 아니라 이 세상을 넘어서 멀리 영원 무궁한 그 장래까지를 보는 멀리 보는 참, 망원경이라 할까? 이렇게 멀리까지 멀리 보고 넓게 보고 이래 보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땅의 것을 보고 분주하게 날뛰는 것을 보고서 ‘너는 마음의 눈이 근시자로구나. 소경이로구나. 암만 해 봤자 멸망인데 네가 웃을 것도 없고 울 것도 없고 그뭐 아무 그럴 게 하나도 없는데 너는 공연히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늘에 속한 이 택자들은 그 마음 눈 밝은 사람은, ‘마음 눈이 밝으면 왜 지위도 못 차지하는고? 돈벌이도 못 하는고?’ 그런 것을 가치로 보지 안하고 영원한 것이 보여지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보니까 그것 보고 지금 애쓰고 노력하고 있지 땅의 것 보고서 애쓰고 노력하지를 안하는데, 안 하는데 마음 눈이 어두워서 그런 거 못 취하는 줄 알거든.
못 취하는 게 아니고 그런 것은 가치로 삼지 안하고 똥오줌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속에 영원한 것이 들어 있는 그것을 마련하지 어데서든지 그런 것 속에서 믿음을 마련하고 또 구원을 마련하고 성화를 마련하지 그런 것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밤에 지금 증거하는 것은 어짜든지 마음의 눈이 밝지 안하면 안 된다. 마음의 눈이 밝지 안하면 생각도 전부 저 망할 생각, 소원도 저 망할 소원, 마음의 눈이 어두우니까 예수 믿어 중생된 사람이 하늘나라 위해서는 노력하지 안하고 항상 버리고 갈 소용 없는 것 거기다가 전심 전력 기울여서 죄만 짓고 이러니까 그것도 나중에 망하고 영도 육도 다 망하고 말아.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음의 눈이 밝아야 금생도 내세도 영도 육도 행복을 누리게 되고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다 헛일 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못나고 병신이라도 가만히 보면 그게 마음의 눈이 밝습니다.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은 절대 무시 못 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은 그 사람은 헛일을 하나도 안 하요. 손해볼 일 하나도 안 하요. 망할 일을 하나도 안 하요. 질 일을 하나도 안 하요. 이러니까 뭐 작아도 얼마든지 클 수 있지, 적어도 얼마든지 많을 수 있지, 약해도 얼마든지 강할 수 있지.
그러기에 이 사람의 지체 중에 보배는 육체로서는 육체의 눈이 보배고 이 심신의 육체 전부 심신을 다 망라해서 말하면 마음의 눈이 제일 보배입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 그 보면 저 망할 일을 죽자고 고집하고 합니다. 말을 해도 안 들어. 저 망하게 하는 말은 하면 귀에 쏙쏙 들어오고 ‘그러면 망하니까 안 된다’ 하는 말은 저를 해치는 줄 알고 귀에 한 마디도 안 들어옵니다.
이러기에, 자기를 망치는 말인지 복되게 하는 말인지 이것을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이걸 모릅니다.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은 이걸 다 알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의 눈이 밝아야 되는 요것을 가치로 아는 이 사람이 먼저 돼야 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야 되지 마음의 눈 어두우면 안 된다.
마음의 눈 어두운 사람은 지도를 못 합니다. 지도를 그거 알아듣구로 할려 하면 망하는 걸 말해야 좋아하고 알아듣고 사는 것은 말하면 다 원수가 되고 반대가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옛날부터 선지가가 옳은 지도를 했는데 선지자가 죽임당하지 안한 사람이, 죽임 안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미움 당하지 안한 사람이 없소.
아마 서부교회서도 내가 옳은 지도를 많이 안 해서 미워하는 사람이 적지 옳은 지도를 많이 하면 미워하는 사람이 자꾸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 총공회도 미워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것은 그 가는 게 틀리기 때문에 ‘그리 말고 이리 가거라’ 하니까 모두 싫어서 반대하고, 반대한 사람 많소.
이래서 내가 할 수 없어서 ‘총공회 나는 인제 행정은 안 한다. 나는 총공회 행정 나는 손 뗐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그랬어. ‘총공회 행정은 내가 손을 뗐다.
뗐고 그저 내가 교훈이나 증거하지 행정 않겠다.’ 왜? ‘내가 말하니까 자꾸 반동적으로 이러니까 너거가 가다가 코가 깨지든지 뭐이든지 봐야 알지 그것 내가 말해 봐야 듣나?’ 조끄매만 이래 해도 모두 다 이래 대립이 되고 다 적이 되는데 이것 참 사람을 꼭 옳게만 인도한다고 하면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은 다 적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적이 안 될 수가 없어.
뭐 우리 서부교회도 별별 모양이 다 있어. 그저 겉어머리로 이것 할 수 없어 눈어중으로 하는 사람, 우리 공회에 교역자들 중에도 속으로는 반대하고 겉어머리만 설설 이렇게 하는 사람 있고 속속들이 하나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은 마음의 눈이 밝으면 마음 눈 밝은 사람하고 하나되고 마음이 어두우면 어두운 사람하고 하나됩니다.
마음의 눈이 반 밝은 사람은 반 밝은 사람하고 하나되고, 마음의 눈이 다 밝은 사람은 다 밝은 사람하고 하나되고, 마음의 눈이 전부 깜깜한 사람은 깜깜한 사람하고 하나되지 밝은 사람이 어두운 사람하고 같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자, 여러분들, 사람이 저 좋아하는 것은 저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좋은 사람하고 자꾸 이래 만나 가지고 좋은 사람 만나 가지고 산다고서 복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저 사람은 싫고 저 사람은 좋은데 왜 그런가? 이 내가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좋으나 밝아서 좋으나? 그 분명이 마음의 눈이 어두웠으면 고것 망하기는 망했는데, 아주 명철합니다. 명철해서 깨닫기도 잘하고 뭐 다 오만 거 다 잘하는데 고게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요것만 보고 조걸 볼 줄 몰라요.
사람이 그 아이큐도 말이요, 기능이라 하는 이거 재주라 하는 그런 것도 별별 재주가 다 있어. 재주의 종류가 뭐 백 가지도 넘어요. 외우는 재주, 보는 재주, 또 쓰는 재주, 또 큰 것 잘 보는 재주, 작은 거 잘 보는 재주, 또 그 사이 삐뚤어진 것 잘 보는 재주, 또 곧은 것 잘 보는 재주 뭐 재주도 아이큐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어짜든지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나는 망한다. 마음의 눈이 밝아야 되지 마음의 눈이 밝지 안하면 하는 행동이 전부 다 자멸하고 자살하는 행위만 하게 된다.’ 요걸 깨닫고 마음의 눈이 밝기를 원하는 사람이 돼야 될 터인데.
자, 마음의 눈이 밝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렇게 모두 소원은 소원인데. 예, 마음의 눈이 밝기를 원하면 다 밝을 수 있습니다. 여게 방편을 가르쳐 놨어. 마음의 눈이 밝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이 방편을 가르쳐 놨어.
그 방편이 뭣인고 하니 하늘에 소망만 두고 살면 돼. 하늘에 소망만 두고 살면 자기 마음과 생각이 항상 하늘에 가 있어. 하늘에 가 있다고 어떻게 마음이 밝아지느냐? 그것은 뭐 해석하기 어려워요. 해석해야 여러분들이 알지도 못할 거고 그러니까 그거는 받아봐야 아니까, 마음의 눈이 밝을려면 하늘에 소망을 두고 모든 노력을 하늘에 소망을 두고 노력해야 된다. 이러면 자연히 마음이 자꾸 하늘에 가서 있게 된다.
마음이 하늘에만 가 있으면, 마음이 하늘나라 소망 하늘에만 가 있으면 그 마음은 그만 밝아집니다. 거게는 하나님밖에 안 계시요. 진리밖에는 없어요. 이러니까 자꾸 밝아지는데 하늘에 마음을 두지 안하고 땅에 두면 땅에는 마귀 이놈이 왕입니다. 마귀가 꽉 찼어. 이러기 때문에 마음을 땅에 두면 요 마음을 요래 끌어 가지고서 어둡게 만들고 조리 끌어서 어둡게 만들고 결국은 자기 마음은 깜깜한 그 먹장 같은 그런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음이 어두우면 인간은 망한다. 인간의 흥망 성쇠는 마음의 어둡고 밝은 데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안해요. 노력 그까짓 것 많이 하려고 하지 말아요, 뭐.
사람들이 보면 대개는 제가 부지런히 일해 가지고 저 망쳤습니다. 전부 저를 망치는 일만 해요. 이러니까 망치는 일 안 하고 자기 복될 일만 하면 그저 누워자면서 놀면서 설설 그래 해도 뭐 한정 없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부지런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지혜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 지혜가 그것이 마음이 어두우면 배암의 지혜가 돼서 자꾸 그 사람은 지혜 때문에 망합니다.
사람을 지도해 보면, 여기 권사님들이나 뭐 장로님들이나 목사님들 이런 분들은 좀 대개 알 거라. 사람을 지도해 볼라 하면 그게 예민하고 명철합니다. 예민하지 명철하지 날쌔지 빠르지 또 어떻게 계산이 빠른지 뭐 둘째도 안 갈 만치 그렇게 예민하고 명철한데 그놈이 마음의 눈이 어두워 놓으니까 그 명철을 제가 다 어둡게 쓰기 때문에 그것은 가속도로 망하게 돼 버려.
이러니까 명철도 필요 없고, 건강도 필요 없고, 또 부지런한 것도 필요 없고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의 눈이 밝아야 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야 돼요.
마음의 눈만 밝으면 굼벵이라도, 굼벵이같이 앉은뱅이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요. 마음의 눈만 밝으면 앉은뱅이라도 누운뱅이라도 마음의 눈이 밝아서 꼭 옳은 거 복된 거 성공할 것 그런 것만 하게 되면 그뭐 사람이라는 것은 십 년까지 안 가요, 뭐. 이삼 년만 해도 그만 대성공합니다. 다 사람이 마음이 어두워서 복된 것을 바로 찾지를 못해 그렇지.
그래서, 마음의 눈이 어둡고 밝은 데에 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은 세상, 믿는 사람은 세상과 천국 이런데, 마음의 눈이 어둡고 밝은 데에서 흥망 성쇠는 다 결정된다 요것을 우리가 알고 ‘마음이 어두우면 안 된다.’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합시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안 되기 때문에 ‘주여 내 심령을 밝게 해 주옵소서. 내 마음의 눈을 밝게 해 주옵소서.’ 이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의 눈이 밝으려면 두말 할 것 없이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아요.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아서 하루를 하늘에 소망을 두고서 ‘하늘나라 이러면 유익하냐 저러면 유익하냐? 오늘은 하늘나라에 유익이 얼마나 되냐? 오늘은 하늘나라에 수입이 있나 없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계산하는 생활을 하루만 하면 그 심령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허영 허욕, 허영 허욕 악독 이런 것 다 없어지니까 밝을 수밖에 없어.
이러니까, ‘마음의 눈이 밝고 어두운 데에 우리의 망하고 흥하는 것 죽고 사는 것이 여게 있다. 이러니까 나는 마음의 눈이 밝은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마음의 눈이 밝을려면 하늘에 소망을 두고 네가 노력해 살아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노력해 살아라.
하늘에 소망 두고 노력해 살면 마음 눈 밝아진다는 것은 하늘에 소망 두고 살라고 꼬우는 말 아니오. 여러분들 꼬우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 두고 살려고 꾀우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루를 살아 봐요. 하루 살기도 힘듭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서 하루를 살면 내 마음이 하루 동안 하늘에 있습니다. 하루 동안만 하늘에 있으면은 그만 그 사람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 걸 여러분들이 좀 체험할 거라.
이것을 사실 그러나 안 그러나 이래 보기 위해서 이제 오늘은 가면 뭐 일찍 자야 또 내일 아침에 올 터이고 하니까 오늘 저녁에는 내비 두고 내일부터 말이지요.
내가 오늘 직장에 가서도 항상 하늘에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생각하면서 살아보자 참말로 저 마음 눈이 밝아지는가? 그 경험을 하고 체험해 봐, ‘아, 경험해 보니까 그렇다. 체험해 보니까 그렇다.’ 이래 해 봐야 알지 이거는 암만 말해 봐야 그것은 뭐 그게 그거지 암만 말해 봐야 이해 못 해요.
이러니까, 내일부터는 아침부터 일어나서, 하나님 생각하고 하늘나라 생각하고 이라면 막 마귀가 달라들어서 땅위에 이것 급하다 저것 급하다 해 가지고서 그 마음을 땅에다 두고 생각하라고 자꾸 이렇게 독촉을 하고 뭐 유혹을 합니다.
그래도 하루 동안만 여러분들이 마음을 하늘에 두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보면 하루를 살아보면 마치 자기가 눈 감았다 이래 뜨는 것처럼 그만침 환하게 밝습니다. 마음의 눈이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확실히 볼 것입니다.
이래 보면 여러분들이 이제 이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그래 해 보면 나중에 가서 ‘사람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데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다. 과연 그래 사니까 마음이 밝아지더라.’ 요걸 알면 그 다음에 안 했다가도 또 하고 안 했다가도 또 해서 그 사람은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 때문에 실패에 이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실패하는 일을 하지 안해요.
나는 지금 내 장사는 사람 장사인데 이 후배들이 말하기를 ‘아이고 목사님 그래 쌓아도 잘못 보고 실패를 많이 한다’고. 이제 사람들을 자꾸, ‘사람들에게 속혀서 목사님이 자꾸 좋다고 하고 자랑하고 이러면 나중에 가서는 반드시 지금 목사님이 속아 가지고 고통을 한다’ 이러면서 후배들이 모여 가지고 그란대요.
‘아이 목사님 지금 인제 골치거리 또 인제, 골치거리 사람이 인제 뭐 누구 하나 있다 둘 있다. 이 목사님 또 인제 골치 앓을 거라. 그것 지금 큰 골치 앓을 일이 또 있어.’ 그것 나는 참 그거 그런 데 대해서는 그렇지 않지 싶어서 이런 건데 나중에 보니까 그런 게 있어, 있기를.
이래도, 내가 그때 할 때에 사욕을 가지고 하지 안하고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했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이 그뒤에는 유익이 된다는 것을 내가 틀림없이 내가 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마음의 눈 밝히기를 힘을 씁시다. 이래서, 하늘에만 바라보고 사는 것, 그것만 해도 손해가 아니라. 하늘의 것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땅에 보고 사는 사람, 땅에 보고 사는 사람은 망하고 하늘에 보고 사는 사람은 흥해요. 그것만 해도 땅의 것을 소망 두고 사는 것보다 하늘에 소망 두고 사는 것이 나은데 그것만 나은 게 아니라 하늘에 소망 두고 살면 내 마음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마음의 눈이 환하게 밝아지니까 그 유익은 굉장한 유익이 있어.
내가 만일 땅에 소망을 두고 살면 그것도 손해지마는 그것보다도 내 마음이 어두워지니까 “그 어두운 것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뭐 전체가 어두워서 전체로 꺼꾸로 가니까 산다는 건 전부 다 죽는 일이고 성공한다 건 다 망하는 일만 하게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요 말씀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광고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도록 언제든지 노력하시고 삼십 분 기도는 이 빼지 말고 꼭 기도합시다.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말고 계속합시다. 또 지하철 공사를 위해서 늘 계속 기도합시다.
이랬는데 예배에대한 시간 광고입니다. 가지 마십시오. 저 뒤에 아이들 학생들도 좀 들어. 학생들 지금 손 들 거라. 저 학생들 저 지금 손 들 터이니까 저 학생들 다 가지 말아요.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금 예배 시간을 학생들을 위해서 마련할 터인데 가 버리면 지금 손 든 사람이 적으면 안 돼.
‘예배 시간 광고입니다. 우리 교회는 시간을 늦추거나 당기거나 상관없이 늘’ 뭐 시간 늦추거나 당기거나 상관없습니다. 늦추든지 당기든지 늦추면 늦추는 시계 사용하고 당기면 당기는 시계 사용하고 이리 해서 새벽은 다섯시, 지금은 한 시간 댕겼습니까? 지금 시간이 얼마입니까? 일곱시 삼십구분. 맞습니까? 일곱시 삼십구분 맞아요? 녜, 지금 일곱시 삼십구분입니다. 일곱시 삼십구분인데 이 시계 가지고 내일 아침에는 다섯시에 예배 시작합니다. 이 시계로 다섯시. 그러면 시간만 바뀌었지 우리 새벽예배 시간은 바뀌지 안했습니다. 시계가 당겨져도 다섯시 느려져도 다섯시, 또 주일날 주일학교는 오전 아홉시에 시작합니다, 아홉시. 지금 인제 댕긴 시계로 아홉시. 이다음에 늦추면 늦추는 시계로 아홉시.
언제든지 주일학교는 아홉시입니다. 또 주일날 장년반 오전예배는 오전 열시반, 그전 시계로 열시반 봤지요? 이제 댕겨 놓은 시계로 또 열시반입니다. 열시 반.
또 오후 예배는 두시 반.
이제 삼일예배와 또 이 금요일날 오일예배 밤예배에 대해서 문제인데, 자, 밤예배에 일곱시 반으로 봤는데 일곱시 반이면 너무 지금은 어둡고 나서 오래 되니까 일곱시로 하자 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랬는데 학생들이 일곱시에 수업을 마치고 또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일곱시에 수업을 마치니 아무리 와도 예배에 참석 못 하니 이것은 안 되겠다 이래서 학생들 알아보니까 고등학생들은 거개가 다 일곱시에 수업을 마치고 노동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자, 일곱시에 자기 노동이든지 수업이든지 일곱시 돼서 마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뻐뜩 들어 봐요. 그래야 되지 지금 안 들면 안 되니까. 저 여반에도, 여반에도. 여반에 든 사람들은 흔들어 봐요. 잘 안 보이니까 손을 흔들어 들어 봐. 든 사람들 흔들어 봐요, 든 사람들? 예, 이런데 상당한 숫자가 지금 참석을 못 하게 되겠는데 이 부득이 밤예배는 밤이 기니까 조금 뭐 좀 늦게 봐도 그리 알아서 하면 될 터이니까 밤예배도 종전과 같이 일곱시 삼십분으로 합니다. 고친 시계로 일곱시 삼십 분. 부득이 이것은 일곱시에 자기 업무를 마치는 그 학생들과 또 노무자들을 위해서 지금 이것을 일곱시로 했댔는데 일곱시 반으로 합니다.
또 재독은 밤 일곱시, 또 오일 낮 지권찰은 오전 열시, 꼭 종전과 같습니다. 오전 열시. 또 내일 새벽부터 변경된 시간으로 예배 드리겠습니다. 그라면 내일 아침에 변경된 시계로 다섯시입니다.
‘십월 십육일 지권찰회 후 교회 대청소를 하겠습니다. 걸레 비 물통을 준비하여 많이 참석하셔서 봉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날이 금요일입니다. 금요일날 심방 갈 사람은 다 가고 심방 안 가고 한 그 사람들만 남아 가지고서 청소를 해 주십시오. 심방을 두고서 청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심방 갈 사람들은 다 가고 심방 안 가는 사람들만 청소하고 또 심방 간 사람은 조그매 갈 사람은 얼른 청소하다가 가고, 또 갔다가도 심방 하고 얼른 와서 좀 청소하고, 그래도 심방 하는 사람은 심방 두고 청소하겠다고 그렇게는 할 수는 없습니다. 예, 광고 이상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