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0:31
겸손
1982. 6. 2. 수밤
본문: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여게 ‘순복’이라는 말씀이 있고 ‘겸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순복’이라는 말씀과 ‘겸손’이라는 말씀이 뜻이 거의 같습니다.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이 말씀은 너보다 신앙 선배된 사람들의 그 발자취를 따라가라 하는 말입니다. 너보다 믿음이 장성한 그런 사람들의 신앙의 자취를 따라가라.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다 서로 순복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세상은 다른 사람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는 것으로 장기를 삼지마는 하나님의 교회서는 정반대입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려는 그런 사망의 법칙을 버리고 어쩌든지 자기 아닌 다른 것에게 순종하는 자 되기를 힘써라 하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에는 옛사람이 성장하기 쉽고 다른 이에게 복종을 할 때에는 새사람이 성장되기 쉽습니다. 물론 옳고 바른 데에 복종하면 온전히 성장이 되어지지마는 삐뚤어진 데라도 복종을 할 때에 그 일은 틀렸지마는 자기에게 자기 주장으로 살려는 그것은 하나 꺾어지는 유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이 말씀은, 자기가 무엇이든지 주장을 해 가지고 자기 주장대로 하는 그것이 일종의 교만입니다. 겸손은 자기 주장대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아닌 다른 이의 주장대로 하는 것을 겸손이라, 순복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은 자기 주장대로 하는 자를 물리치시고 자기 아닌 다른 이의 주장을 따르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렇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구체적으로 해석하시기를 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분에게 순복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해석을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네가 네 마음대로, 네 주장대로, 네 뜻대로, 네 욕심대로, 네 의견대로 하지 말고 신앙 선배들의 그 신앙을 따라서 신앙 선배들의 그 주장과 그 의견과 소견을 따라라. 이렇게 말씀해 놓고 네가 네 주장대로 하지 말고 네게 가까운 장로들, 신앙 선배, 신앙에 너보다 장성한 사람 그런 분들의 의사를 따라라. 요것을 제일 처음에 말씀했습니다.
네가 네 주장대로, 네 뜻대로, 네가 언제든지 너를 주장하려고, 네가 뭐 어데서든지 네 마음대로 할려고 그렇게 하는 것을 버리고 먼저 네 눈으로 보는 신앙 선배들의 그 의사를 따르도록 노력을 해라. 그래 놓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 이 말씀을 또 해 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 자기 주장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의견대로 자기가 왕이 되어 가지고 살고저 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다 쫓겨남을 받는다.
위에는 신앙 선배와 자기와의 관계를 말씀해 놨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인간 취급을 어떻게 하시느냐? 하나님이 인간 취급하시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제 주장대로 하고 제 욕심대로 하고 제 고집대로, 제 뜻대로 제가 머리가 되고 제가 왕이 되려고 하는 이런 행동은 다 하나님 앞에 쫓겨남을 받는다.
이것을 버리고, 아예 다른, 자기 아닌 다른 이의 주장, 다른 이의 의견, 다른 이의 소견, 다른 이를 머리로 두고 자기는 그 밑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런 인간성을, 이런 정신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은혜 주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신앙 선배와 자기와의 관계에 있어서 교만은 금물이고 겸손으로 너를 튼튼케 해라. 이렇게 인간 대 인간, 신앙 대 신앙으로 대할 때에 너보다 옳고 바른 그 신앙 선배의 의견에 따르도록 노력하라.
사람은 자기 주장, 자기 뜻, 자기 욕심, 자기 소원, 자기 사정, 자기 형편, 자기 유익, 자기 좋은 것, 자기가 왕되는 것, 어쨌든지 사람이 사람 대 살 때에 다른 사람을 앞세우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앞설려고, 자기가 위에 갈려고, 자기 소원대로, 자기 뜻대로, 자꾸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위주로 자기가 앞설려고, 이렇게 자기 위주, 자기 중심 이것을 하나님께서 버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인간 대 인간을 대하거든, 삐뚤어진 데야 할 수 없지마는 인간 대 인간을 대하거든 아예 너는 네가 선생 노릇이나 네가 머리 노릇이나 네가 주위 주장 노릇이나 또 네 소원이나 네 의견이나 네 유익이나 너 너 너 너를 먼저 생각하는 이 일을 버리라.
이 일을 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할 때에는, 너보다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 좋은 소견, 좋은 판단, 좋은 소원, 좋은 뜻 그것을 따르려고 애를 써서, 네가 사람과 사람 관계에 머리되려고 애를 쓰지 말고 네 머리되는 그런 사람을 네가 찾으려고 애를 쓰고 그런 사람에게 너는 복종하는 사람으로 그 부하로 살려고 그렇게 하는 요 사상을, 정신을 가져라 고걸 말합니다.
우리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자기가 머리되고저 하는 이것도 좋습니다. 이런 야심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욕망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종의 크게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자기가 머리되고저 하는 것, 또 자기 뜻, 자기 주장, 자기 유익, 자기 소원, 자기 이름 이것을, 여게서나 저게서나 이것을 내놓고, 이것을 위해서, 이 주장으로 사는 이 인생관을 완전히 회개하고, 자기가 머리될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옳은 사람이 없나? 자기보다 바른 사람이 없나? 자기보다 좋은 소원을 하는 사람이 없나? 좋은 것을 옳은 것을 주장하는, 자기보다 신앙적으로, 진리적으로, 판단적으로, 경영적으로 자기보다 나은 분이 없나? 이것을 찾는 자가 되어져라.
‘내가 어데를 가야 내가 왕 노릇을 할까?’ 찾기는 자기가 왕 노릇 할 곳을 찾고, 또 어데든지 가면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왕 노릇을 할까?’ 하는 이 사상을 가진 이런 사람은 회개하라. 이 사람은 망하는 일이다. 왜? 그러니까, 제가 왕이니까 전부 저만 못해야지. 제가 머리니까 전부 자기 위해야지. 그러면 거게서, 그 자리에서 왕 노릇을 한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발달이나 성장은 없습니다.
이러니까 어데든지 네가 갈 때에 ‘어데 가야 왕 노릇 할까? 선배 노릇을 할까? 머리 노릇을 할까? 내가 왕이 되어 가지고 전체가 나를 위하는 이런 곳을 찾아갈까?’ 그렇게 네가 이런 것을 생각지 마라. 이런 것을 원하지 마라.
말고 너는, ‘아! 오늘 하루에 사는 동안에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나보다 의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나보다 지혜있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나보다 선배를 만났으면 좋겠다. 나보다 유식한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거게서 그 부하가 되고 그 제자가 되고, 내가 그 부하가 되고 내가 그 제자가 되고 내가 그 심부름꾼이 되어서 내가 복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또 그런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하루동안 사는 그 장소는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은 내 선배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복종하는 그 장소에서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순종하는 장소에 살았으면 좋겠다. 가르치는 게 아니고 배우는 자리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고쳐줌을 받는 자리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요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 사람으로 되어 있는 데 교인은 그 교역자 상대할 때에 으레 교역자에게 ‘나는 오늘 배워야 되겠다. 좋은 지도를 받아야 되겠다. 좋은 인도를 받아야 되겠다. 좋은 본을 받아야 되겠다. 이제 내가 목사님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고 거게 따라서 살아야 되겠다.’ 으레 그렇기 쉽습니다.
그럴 때에 목사는 어째야 되는가? 목사는 ‘나는 오늘 이 교인들과 나와의 지금 원족을 가니까, 야외예배를 가니까, 오늘도 하루종일 무슨 생활을 같이 하게 되니까, 나는 오늘 교인들에게 어떻게 왕 노릇을 할까? 어떻게 대가리 노릇을 할까? 어떻게 선생 노릇을 할까?’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럴 때에 그다음에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이랬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목사는 ‘오늘 내가 교인들하고 이와 같이 접촉을 하는데 내가 오늘 교인들에게서 무엇인가 배울 것 있었으면 좋겠다. 지도받을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 교인들이 내 으뜸이 되고 선생이 돼 가지고 내가 거게 참 배울 것이 있고 지도받을 것이 있고 본받을 것이 있고 따라갈 것이 있고 그리 됐으면 좋겠다. 오늘 내 제자가 있기를 원하는 것보다 오늘 내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마는 가르칠 수 있는 사람 만나는 것보다 나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것을 가져라.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그다음에는 다 서로, 서로는 장로와 장로 아닌 사람, 장로도 그 평신도에게, 신앙 후배에게 겸손하라. 복종하라. 이것을 네가 찾고 참 꿈을 꿔라. 이런 꿈을 꾸라. 이런 포부를 가지라. 이런 소원을 가지라.
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어데든지 가면 선생되려하고, 어데든지 가면 왕되려고 하고, 어데든지 가면 머리되려 하고, 어데든지 가면 제가 주장 노릇 하려고 하고 제 의견을 세우고 제 소견을 세우고 제 뜻을 세우고 이래서 제가 머리되려고 하는 그런 자는 하나님에게 필요가 없다.
그런 자는 인간에만, 인간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그런 자 된다. 그런 자는 다 쫓겨난다. 하나님에게만 물리침을 당하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전부 밉상으로 보였으니까 물리침 당합니다.
이런 사상, 이런 정신을 가지고 이런 성질을 가진 사람, 이런 인간성, 인간은 이런 인질을 가진 사람,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 이 사람은 저를 뜯어 먹고 제게 들어 붙어서 손해나 보이고 제 기생충처럼 제게 해나 끼칠 그런 자나 자기에게 들어 붙을까 자기에게 참 가르쳐주고 유익주고 도와주고 자기보다 큰 자는 그런 자를 다 접하기 싫어한다. 다 물리쳐 버려요. ‘그놈 교만해.’ 와서 물어도 바로 안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만 물리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도 다 물리치게 됩니다.
그러기에 교만한 자 되지 말아라. 교만이란 것은 자기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요 겸손은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인데, 바로 알면 이 행동이 나옵니다. 겸손한 자의 지금 행동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어디든지 가면 자기가 밑자리 가려고, 자기가 밑에 가려고 애를 쓰고, 도우려고 애를 쓰고, 지도받으려고 애를 쓰고, 부하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자기보다 나은, 높은, 어데든지 가면 선생님 만나려고 애쓰고,-제가 선생님 되려고 애쓰고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자는 쫓겨나고, 어데든지 배워서 선생님을 모셔 선생님을 찾아 모시려고 하는 자는 은혜받는다 그말이오. 이거 원리 원칙이 그런 것입니다.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요 뜻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되겠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어떤 사람은 ‘오늘 내가 여기 가서, 거기 가니까 어떻게 해야 왕이 되고 어떻게 해야 선생이 되고, 어떻게 해야 내 주장을 세울고? 내 뜻을 세울고? 내가 머리가 될고?’ 이렇게 살아 가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서는 잘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머리가 됩니다. 머리가 돼요. 머리되면 그거는 사망의 머리입니다. 심판뭉텅이의 머리요. 하나님 앞에 산 데에서는 그게 아닙니다.
어데서든지 자기는 그날 배울 데가 아무데도 없어 배우지를 못하고 가르치기만 했으면 ‘오늘은 내게 대해서는 아무 유익이 없네. 무익하네.’ 하고 배우는 것을 자기 수입으로 알고 가르치는 것은 자기의 의무와 책임의 일을 한 걸로 알고, 가르치는 것은 일한 것으로 알고 배운 것은 자기의 수입, 자기의 성장으로 이렇게 압니다.
그러기에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네가 어데서든지 왕 노릇 하려고 애를 쓰는 짓은 하지 말고 네 머리를 찾아라. 네가 부하를 찾지 말고 네 머리를 찾아라. 네가 왕될 자리를 찾지 말고 네 왕을 찾아라.
그러면 ‘아, 너는 교인이니까, 너는 교인이니까 왕될 자를 찾고, 너보다 신앙 선배 위에 있는 사람을 찾고’ 밑에 사람, 무식한 사람, 어린 사람, 후배 이런 사람만 이럴건가?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여게는 ‘다’라 말은 젊은 자들을 말합니까 장로까지 겸해 말합니까? 저 ○선생, 장로 젊은 사람 겸해 말합니다. 장로들도 겸손을 힘써라 그말이오. 겸손, 겸손을 힘써라.
힘쓰는데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허리를 동이면 힘이 나고 든든하다 그말이오. 허리를 볼끈 쥐면 든든하지 않소? 든든하고,
아! 짐지는 사람들이-요 조는구만. 여게 졸아.-짐지는 사람들이 말이요 허리끈이 떨어지면 큰일납니다. 만일 무거운 짐진 사람들이 가다가 이 허리끈이 툭 터지면 그 사람 죽습니다. 허리끈 툭 터지면, 지고 난 다음에 허리끈 터지면 대번에 팍 찌그러 앉아서 그만 병신되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두꺼비가 한 50척 이상 된 데서 뛰어내려도 이놈이 바람을 되게 집어넣어 가지고 뱃심을 되게 집어넣어 가지고 툭 떨어지면 안 죽습니다. 나 안 죽는 것 봤소. 옥상에 두꺼비가 이 밑에 뛰어내렸는데 안 죽어. 그놈이 배안에 힘을, 바람을 집어넣어 가지고 다 힘을 탁 써 가지고 하니까. 허리를 동이면 힘이 있어져.
이러니까 네가 어리석게 공연히 공중에 휙 날려가지고 들려가지고 비행기 타고 돌아다니면서 그래 우쭐거려 가지고 떨어져 죽을 그런 어리석은 짓 하지 말고, 허리를 창창 동이면 튼튼하다.
너를 든든하게 네가 참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것같이 네가 든든하게 그렇게 네가 든든한 처세 해라! 튼튼한 처세를 해라! 이런 참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고 튼튼하고 아주 견고한 처세를 해라. 그거는 뭐이냐? 겸손이다.
어데 가도 보면 ‘아, 보자 여게서 나보다 나은 의견이 어데 있나? 나보다 좋은 인생관, 좋은 소원, 좋은 포부, 좋은 말, 나보다 좋은 것, 나보다 위에 있는 것, 나보다 큰 것 이것이 어데 있는고?’ 하는 요 마음을 가지고 어데든지 딱 들어가서 요 생각을 가지고 그것만 지금 찾아서 먹습니다. 그것만 수입하요. 자꾸 그것만 지금 어데든지 수입합니다. 이것보다 튼튼한 처세술이 없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왜? 인간도 그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정말로 네 선생님 된 사람도 이 교만한 자는 물리친다. 네 머리가 되어줄 수 있는 참 위대한 사람도 너 같은 그런 자는 물리친다. 어데든지 자기에게 해를 줄 자나 자기와 친근해지지 자기에게 유익줄 자는 다 삥거트려 내버립니다. 어쩌면? 교만하면 물리침을 당합니다.
요걸 깨닫고 어데든지 요 처세관, 요 처세 방편, 요 처세술을 딱 가지고 가면 그만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참 실수없고 든든하고 큰 수입만 하고 옵니다.
당장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을 완전히 파악하고, 자기는 이래 앉았는데, 저 굴파고 굴을 파고 다리도 넣고, 궁덩이도 넣고 등어리도 전부 다 굴속에 넣어서 딱 숨어 가지고 눈만 빼곰하이 요래 놓고 딱 이래 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다른 것 다리를 물 수 있소? 궁덩이를 물 수 있소? 덩어리를 물 수 있소? 아무데도, 눈만 빼곰하이 내놓고 다른 것만 딱 요래 보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자기 먹을 것만 딱딱 찾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눈은 구덩이다 넣어서 감고 궁덩이만 내 놓아서 다른 것이 와 다 틀고 물고 이러면 이놈은 다 절단나지 않소? 이렇게 처세하는 자.
팽이 압니까? 팽이. 이 팽이를 끄트머리 빼족한데 이래 팽이 세워놓은 거와 같이 요렇게 처세하는 그런 자는, 이자는 참 불쌍한 자입니다. 얼마 안 가서 발길에 차여서 저 길가에 벌벌 굴러 돌아다니요. 굴러 돌아다닙니다.
처세는 팽이를 꺼꾸러 박은 자가 돼야 됩니다. 팽이를 거꾸로 탁 박아 놓으면 밑에 끄트머리는 못 한 개만하이 뾰족하지마는 이게 파보니까 밑은 더 크니까 암만 흔들어 봐도 안됩니다. 이래도 돌을 빼면서 ‘야, 이거는 팽이 세워 놓은 돌 같다.’ 그까짓 거야 시쁩니다. 건드리면 휘뜩 자빠져 버려. 이렇지만 ‘아, 돌 이거는 팽이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한가지인데.’ 그러면 빼기가 힘들다 그말이오. 사람도 팽이를 거꾸로 박은 거와 같이 요렇게 처세해야 된다 말입니다. 바로 박은 것같이 그래 잘난척하고 들어가는데, 처음에 가 가지고 뭐 설쳐 가지고 잘난척해 가지고 ‘어떻게 해야 여기 으뜸이 될까?’ 이러다가 다른 사람이 슬슬하면 어쩌다가 그러다가 팍 실수해 가지고 바짝 깨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래 놓고 그 다음에 마지막 결론짓기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복종하라 그말인데,
네가 인간 대 인간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네가 후회가 없고, 속을 것이 없고, 손해가 없고, 이용당하지 않고 네가 참 유익을 보고 알찬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이뿐만 아니라 너는 여게서 인간 대 인간에게 배워 가지고, 하나님 대 인간, 하나님과 너, 하나님과 너 관계에 네가 이 겸손으로 네 생의 법칙을 삼아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하나님에 복종하는 것으로 네 처세 방편을 삼아라! 그렇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예수믿는 사람은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면 안됩니다. 자기 목적을 가지면 뭐이냐? 자기 목적 가진 자는 교만한 자요 물리침 당합니다. 자기 목적을 가지지 마십시오.
목적도 자기 목적은 가지지 말고 목적도 순복의 목적, 목적도 순복의 목적, 소원도 순종의 소원, 뜻도 순종의 뜻, 이래서 모든 것을 당신의 것을, 모든 것을 당신의 것을 내것 삼으려고 해라. 당신을 따라가라. 능하신 손 아래 복종하라.
하나님은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내게 대해서 제일 좋은 걸 해 줄려고 하시고 전능의 능력 가지고 좋은 것을 해 줄려고 하시는데 제가 소원은 ‘다른 거는 하나님에게 내가 다 복종하지마는 요거 소원만큼은 내 소원대로 해 줘야 됩니다.’ 그것은 제가 전지의 지혜로서 아니라 해도 제 의견에 꼭 소원이 된다고 하니까 요것도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하는 말씀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구속을 하셨고, 또 나를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는 이 주님이시요, 또 완전자, 완전자이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이분에게 맡기고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기고 너는 따라가라.
소원도 네 소원, 목적도 네 목적, 뜻도 네 뜻, 뭐 뭐이든지 네게서 뭐뭐, 무엇이든지 네게서 나오는 것은 다 포기해 버리라 그말이오. 무엇이든지 네 생각에서 나오는 것, 네 마음에서 나오는 것, 네 뜻에서 나오는 것, 네 성질에서 나오는 것, 네 마음에서 나오는 것, 네 지식에서 나오는 것 뭐이든지 네게서 나오는 것은 다 버리라!
자기에게서 나온 것을 이걸 주장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물리침 당한다. 네게서 나온 것은 전부 다 버리라! 버리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을 따라가라. 복종하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을 너는 그것을 네가 받아 가지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을 받아 가지라! 그러면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하나님께서 당신이 경영하시는 그 경영을 이룰 대로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 이제 이루시면 그러고 난 다음에 너를 높인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했는데 그때는 뭐하는 때인가? 그때는 뭐하는 때인가? 그때는 나를 사랑하시는 전지 전능자 그분이, 내게 대해서 생명까지 나 위해서 희생해 주시는, 날 사랑하시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전지하신 그분이 전지한 지혜로 전능하신 그분이 전능한 능력으로 나 위해서 좋은 것을 지금, 나 위해서 좋은 것을 목적으로 세우고 경영하고 그것을 이루는 뜻입니다.
내게 좋은 것, 처음에 좋은 것, 둘째 좋은 것, 세째 좋은 것, 넷째 좋은 것, 최고로 좋은 것 이렇게 당신이 내게 대해서 좋은 것을 이것을 경영을 턱 해놓고 지금 내게 대해서 더 내가 이상 원할 것이 없는, 더 이상 좋은 것이 없는 이렇게 좋은 것을, 좋은 것, 뭐? 내가 쑥 올라가는 것, 내가 쑥 올라가는 것 하나님은 우리를 천하게 만들고저 하는 마음 없습니다. 아주 좋게 만들어서 쑥 올라가게 만듭니다.
“너를 높이시리라” 나를 높은 자, 세상에서도 높은 자, 하늘에서도 높은 자, 나를 높은 자 만드시려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높은 자 만드시려고 지금 애를 쓰는데 때가 되면 그만, 높은 자 만드려고 애를 쓰는데, 높은 자 만드려고 애를 쓰는 데 높은 자가 되면 그말이오. 높은 자가 될 수 있으면 말이오.
높은 자 되려고 애를 쓰는데 높여 주는 거야 문제가 없는데 높은 자리 둬 가지고 높은 자리 감당 못하면 그거는 도리어 참 감옥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그 말은 내가 너를 높일 때에 높임을 감당할 수 있는 자, 너를 높이는, 네가 높아지는 그것을 지금 만들려고, 너를 높아지는, 너를 높아지도록 만드는 데에는 네 성질 고쳐야 되겠고 지식 고쳐야 되겠고 마음 고쳐야 되겠고, 뜻 고쳐야 되겠고 네 습성도 고쳐야 되겠고 취미도 고쳐야 되겠고 또 네 뭐 지식도 고쳐야 되겠고 포부도 고쳐야 되겠고 인품도 인질도 뭐 고칠 것이 많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하나님께 좋은 것 참 높은 것 이 존귀한 것 말이오. 존귀한 나를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그 만드시는 순서와 절차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러니까 요 시간에는 요거 만들고 조 시간에는 조거 만들고 이래 자꾸 만들어서 고쳐서 나가는데 때가 되면, 이제 하나님이 좋은 것을 목적하시고 경영하셨는데 그것이 하고 하고 해 가지고 이제 그것이 되면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이제는 네가 쑥 올라간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네가 뭐인지 모르니 너는 암말도 말고 순복해라. 겸손해라. 네가 내 앞에서, 내가 뭐 이렇게 널 지금 네게 대해서 제일 좋은 것을 목적 세워 놓고 이대로 제일 좋은 걸 해 주려고 내가 지금 경영하고 있는데,
그 설계를 세밀히 해 가지고 오늘은 뭐하고 내일은 뭐하고 내일은 무슨 일하고 모레는 무슨 일하고 저 모레는 누구 만나고 저 모레 또 웃을 일 만나고 저 모레는 억울한 꼴 당하고 저 모레는, 그다음에는 또 매맞고 그 모레는 욕얻어 먹고 그 모레는 칭찬받고 이 순서가 쫙 짜여 가지고,
또 외로움 당하고 환영받고 뭐 환영받을 때 뚝 떨어져 가지고는 또 안될 터이니까 환영받는데 그걸 또 연단도 시키고 이래 가지고 그 복잡한 순서가 있는데, 이 순서는 너를 높은 자 존귀한 자 만들기 위해서 복잡한 순서가 지금 다 설계되어 가지고 있는데 이 설계대로 해야 존귀한 네가 될 터인데,
이 설계대로 하는 데에 네가 가다가, ‘아, 그건 나 싫습니다. 안할렵니다. 안됩니다.’ 이렇게 세우면 가다가 모든 것이 다 중단되고 낭파되고 마니까 너는 네가 내 앞에 맞서 가지고, ‘아, 이거는 내 주장이 옳은데요.’ 이래 하지 말고 너를 비워라. 네가 선생되려고, 네가 주장되고 네가 머리되고 네 주장을, 네 뜻을 세우려고 애쓰지 말고 너를 비워라. 네가 겸손한 자 되어라.
이래 가지고 어쩌든지 시키는 대로 순종을 해라. 그러면 그 순서 순서에서 만들어 가지고 나중에 그것이 완전히 만들어지게 되면 그 결과는 뭐이냐? 네가 존귀한 것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능자가 우리를 지극히 존귀한 자를 만드시려고 하시는데, 세상 것으로도 존귀하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존귀하고 이렇게 존귀한 자를 만드시려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경영하시고 순서를 딱 짜놨는데 이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복종밖에 없다 말이오. 복종 안 하면 안돼. 이 일이 이루어지는 데는 복종 안 하면 안돼. 이러니까 네가 복종하라.
그러기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내가 이것이 소원이니까 이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다 악한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요. 어리석은 자.
실은 가난해서 자기가, 심히 가난해도, 가난해도, 가난할 때에 뭐 돈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은 해 봤자, 돈을 얻어 봤자 땅의 것이요 병든 자가 병낫기를 기도해 봤자 낫아 봤자 땅의 것입니다.
그런 신앙 가지고는 초자연의 능력이 와서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가로막습니다. 아예 예수믿는 사람은 ‘중병이 들었는데 병낫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게 당연한 기도가 아니겠소? 실은 그 기도도 악한 기도입니다. 악한 기도요. 그것도 자기 중심의 기도라 말입니다. 이게 신앙이오.
‘아, 내가 지금 밥 먹을 게 없으니까 밥을 달라 해야 할세.’ ‘아! 나는 밥을 구하지 않을련다. 내가 기도할 것은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주님, 주님이 분명히 나를 세상과 하늘나라에서 지극히 존귀한 자를 만드려고 주의 사랑이, 주의 지혜로, 주의 능력으로 이 일을 이루시려고 설계를 딱 해놓은 줄 압니다.’ 그런데 그 설계에 어긋나면 주님이 내게 대해서 정한 목적대로는 달성하지 못할 터이니까 어쩌든지 목적대로 목적을 이루는, 그 설계대로 달성시켜 주옵소서. 설계대로 달성해 주옵소서.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병들어도 좋고 좋습니다. 설계대로 당신이 설계한 그대로 해 주옵소서.’
누가 ‘야, 이럴 때는 이래라.’ ‘아니다. 주님이 내게 대해서 설계하신 그 설계대로 나는 되기를 원한다.’ 이러니까 당신이 그 설계대로, 내게 대한 설계대로 나를 인도하시니, 인도는 어떻게 인도하는가? 내 현실을 요런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어떨 때는 매장당하는 현실 만들어서 매장에서 매장을 당해도 참아라. 또 어떨 때는 병드는 그런 전염병 얻는 그런 현실을 딱 만들어 가지고 전염병이 탁 들도록 만들어 가지고 이제 ‘전염병이 들었으니 어찌할꼬? 여게서도 감사하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하는 이게 믿음이니까 이거 할 것.
여러가지 수많은 그 모든 순서를 거쳐 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존귀한 자 되게 하려고 정하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많은 설계가 되어 있으니까, 그 설계에 이탈되면 안되니까, 그 설계대로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설계로 하려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현실도 주시고 저런 현실도 주시고 별별 현실을 준다 말이오. 죄짓게 하는 현실도 주시고 의를 행하는 현실도 주시고 별별 현실을 주신다 그말이오.
이럴 때에 죄 지었으면 회개하고 또 손해가야 될 때에는 손해가도 믿음 지키고 옥에 가서도 믿음 지키고 어려워도 믿음 지키고 자꾸 이렇게 복종만 해 나가는 그거는 뭐이냐? 요렇게 복종을 해 나가면 ‘내가 지금 어려움을 닥쳤으니까 요 다음에는 아마 수월한 것이 올 것이다.’ 그런 생각 가지면 안됩니다.
어려움이 한 번 닥치고 또 평안함이 한 번 닥치고 그래 교체될런지, 내게 대한 이 존귀케 되는 목표를 정해 놓으시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설계해 놓으신 그 설계가 내게 어려움에서 어려움으로 어려움으로 어려움으로 어려움만 계속하다가 끝이 맺어질런지, 어려움에 가다가는 또 평안도 있고, 평안 어려움 평안 어려움 이래 가지고 이것이 교체가 되어 가지고 참 알롱달롱 재미있게 이래 이런 설계가 되어 가지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말이오.
분명히 내게 대해서 설계는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각자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 지극히 존귀한 자로 설계는 해 놓고 있습니다. 지극히 존귀한 자로 설계는 해 놓고 있습니다.
이 말이 들려지는지? 지극히 존귀한 자로 설계는 해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 대해서 설계 하나님이 안 해놓은 사람 하나도 없소. 지극히 존귀한 자를 되게 해 볼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목표를 존귀한 자의 존귀한 자 되는 이 존귀한 자의 목표를 정해 놓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설계를 안 해놓은 사람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이런 일이 닥칠 때에 ‘아, 어찌 이런 일이 닥치는고? 이런 일은 뭘, 이런 일이 닥쳐. 주님이 전지하신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존귀한 자, 주와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세상에도 참 존귀한 자 영계도 존귀한 자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나를 온전한 자 만드시는 이 설계이지 뭐 별 게, 설계의 순서이니까 이 닥친 현실에서 ‘이 이상하다. 왜 이런 일이 닥칠까?’ 할 것이 아니라 ‘내게 대한 설계이니까 이 설계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물을 것뿐이지 ‘어떻게 됩니까? 요 현실에서는 어떻게 내가 요 설계는 어떻게 순종해야 됩니까? 여게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물으면 ‘여게서는 네가 참아라. 여게는 성을 내라. 여게는 주먹을 내라. 여게는 입을 다물어라. 여게는 하라는 대로 순종을 해라.’ 별별 것이 있다 그말이오. ‘여게서는 어떻게 하면 당신이 내게 대한 설계해 놨는데 그 설계를 내가 위반하지 않고 설계를 따라서 가겠습니까?’ 하는 이것입니다.
이러기에 분명히 우리 각자들을 하나님의 그 사랑에서, 하나님의 지능에서, 하나님의 그 욕심에서, 지극히 큰 욕심에서 만족할 수 있는 이런 보배로운 지극히 큰 자를, 존귀한 자를 우리를 만드시려고 우리 각자들을 다 이렇게 계획을 하고 설계를 딱 해놨는데 이거는 분명합니다. 해놨는데 내 목적 달성이 되는 데에는 그 설계의 순서에 어떤 순서가 놓였는지 모릅니다.
그 설계 순서에 배부를 것만 놓여 있겠습니까? 아, 백목사가 서부교회 지금 교인들 많고 들성들성하고 ‘아, 백목사! 백목사!’ 하는 이것만 그 설계에 놓여 있겠습니까? 모릅니다. 내 앞에 남은 때가 긴지 짧은지 모르지만 내 앞에 설계가 어떤 설계가 되어 있는지 모르니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이 세상에서 비참한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고 흉악한 일도 많고 무서운 일도 많고 모진 일도 많고 따가운 일도 많고 아픈 일도 많고 추운 일도 많고 별별 일이 있으니 ‘야, 그 일은 참 소름끼치는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일 없으면 그 일이 있어 가지고 내게 대한 목적 달성이 된다고 하면 그 일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그 일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이러니까 아예 ‘주여, 이 세상에 있었던 온갖 순서, 어떤 온갖 형편이 내 순서에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문둥병이 내 순서에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암병이 내 순서에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크게 타락하는 큰 범죄가 내 앞에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감옥이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주여! 어떤 게 놓여 있는지 모르나 분명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전지하신 지혜로 나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능한 설계를 해놓은 설계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설계대로 현실 현실이 내게 바꾸어 오는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어떤 일이 와도 나를 사랑하심으로 온전케 하기 위해서 전지하신 주님이 설계하신 설계의 순서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이고 그 설계 외에는 내게 좋은 게 없어. 내게 우는 순서가 있으면 우는 순서에 울어야 되지, 천하영광을 다 갖다 줘도 우는 순서 그것만 못하다 그말이오. 그것만 못해.
이러니까 ‘분명히 이런 줄 아니 이것이 올 때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것을 기도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앞에는 어떤 순서가 있을런지 모릅니다. 어떤 순서가 있을런지 모릅니다.
차 사고가 나 가지고 갑자기 죽는 그런 순서가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몰라요. 또 차 사고 나 가지고 아랫도리가 바짝 끊어져 버리고 이래 가지고 토막이 돼 가지고 병원에 가 가지고 입원해 가지고 드러누웠을 그 순서가 내게 있는지 모른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에게도 있는지 몰라. 모른다 그거요.
그러나 분명히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나를 높이시기 위해서, 높은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게 설계하신 순서이니, 내가 범죄함으로 닥친 순서도, 범죄 그것도 순서요 범죄함으로 닥쳤으니까 여게서 내가 반성하고 또 회개해야 될 그것이 순종이니까 또 회개할 것, 그러나 낙망은 없습니다. 어떤 죄 가운데 빠져도 낙망은 없습니다. 어떤 일에도 낙망은 없습니다.
분명히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서 설계하신 그 설계의 순서는 틀림없습니다. 다만 내가 그 순서에서 당신의 뜻을 어겨나갈 때에 그것도 한 순서 중의 하나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겨나갔으니까 ‘아이구, 내가 범죄했습니다.’ 범죄했으니 끙끙 앓으면서, 끙끙 앓으면서 ‘나는 범죄했다. 주여, 나는 범죄한 죄인입니다.’ 낙망하는 그까짓 것 회개 아니오. 범죄가, 범죄했으니 ‘아이구 잘못됐습니다. 왜 주님이 이런 순서를 순서에 넣었습니까? 이 설계 했습니까? 당신이 설계하지 않은 내 순서에 내 앞에 닥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설계한 순서인데, 이 순서는 뭐 할려고 설계했습니까? 여게서 내가 깨달을 게 뭐이며 얻을 게 뭐이며 내가 순종할 게 뭐이며 복종할 게 뭐입니까? 원대하시고 광대하신 당신의 사랑의 전지의 경영에 이 설계 중의 한 순서이니 그 설계로서 무엇을 목적해서 이와같이 있는 것인가?’ 이것을 더듬어서 당신의 광대하심과 당신의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그 사랑을 바라보면서 여게서 웃으면서 담대히 소망을 가지고 이 순서를 경영한 것도 나를 사랑하셔서 경영했다 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낙망이나 염려나 기독자는 없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없는 것이오.
이런데 여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순복하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이런데 여게 방해자가 있습니다. 여기 방해자가 있어. 당신이 설계했기 때문에 설계대로 돼야 되지. 설계대로 돼야 되지. 여러분들, 이 집을 우리가 집 짓는데 집을 짓는 데도 부수는 순서가 있으면 부수는 게 좋소 자꾸 뭉쳐서 키우는 게 좋소? 어떤 것입니까? 부술 때는 부수어야지. 부수는 것 품 드리고 부숩니까? 네? 세우면 뭉치면 좋은 게 아니라. 끊을 때는 끊어지는 것이 좋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대해서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지시고 설계를 하시고 이 설계대로 이루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이 있어도 나를 잘 만들기 위한 설계이기 때문에 그거 빠지면 안돼. 내기에 어떤 일이 있든지 내 구원을 이루는 데 빠져서는 안될 순서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 형식 계시를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 보여줬소. 요셉이 말이오. 요셉이 애굽나라 총리대신 안 됐습니까? 애굽나라 총리대신 됐는데 총리대신 된 그 요셉이 자기 형제들 집에서부터 닥친 일을 순서를 생각해 보십시오. 별별 순서, 이런 순서 저런 순서, 아무 소용도 없는 자꾸 고생만 당했는데 그래도 요셉은 고생당하고 속에는 재미있고, 또 고생당하고 또 재미있고 고생당하고 재미있고 이랬지만, 이랬지만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거는 그런 것 아니오. 재미없는 일만, 무재미 무재미 무재미, 외로움 외로움, 고생 고생 자꾸 이래도 꾹 견디고 나가는 사람이라야 큰 것을, 지극히 큰 것을 만드실 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래 만들었는데 요셉이 중간에 가다가 보디발 집에서 계명지키려 하다가 감옥에 들어갈 때에 ‘세상에 하나님 어디 있노?’ 그때 삐뚤어져도 안될 거라 말이오. 그분은 어기지 아니하고 그저 하나님이 순서 주는 대로 그 순서에서 하나님의 인도 계명 지키는 것으로만 자꾸 나가니까 마지막에 때가 되매 애굽 나라 총리대신을, 요셉을 총리대신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감옥에서 갑자기 총리대신 만든 줄 압니까? 저 벌써 요셉이가 꿈꾸지 않았소? 꿈 꿀때 그때 벌써 하나님께서 계시를 줬다 말이오. 요셉을 총리대신 만들려고 설계해 놓은 그 설계의 순서가 얼마나 복잡했습니까? 그 설계대로 순서대로 나가니까 그게 된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형식계시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에게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목표로 두시고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이 일을 이루기 위한 설계, 이 일을 이루기 위한 설계, 달리는 할 수 없는 그게 안 들고는 안될 이루기 위한 이 설계를 해 놓은 것이 우리 일생에 하나씩 둘씩 현실 현실에 닥쳐오는 이 사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 욕심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게 대한 당신의 목표 이 최고의 영광인 이것을 우리가 목표해 가지고 믿기 때문에 이 모든 순서가 다 이루어 가야 그 결실이 되는 것이지 이루어지기 전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이 자기 뜻을, 자기 주장을, 자기 소원을, 자기 목적을, 자기 비판을, 자기 평가를 자기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서는 것이 이것이 자기에게 대한 설계를 산산히 깨뜨려서 절단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인하고 그저 당신이 내게 좋은 것을 경영할 것 이것을 우리가 의심없이 믿고, 좋은 것을 경영하시고 이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런 형편 저런 형편 자꾸 이끄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야 됩니다. 이러면 이제 그것이 달성되면 뭐이냐? 높아지는 것이 된다 그거요.
그러기에 예수믿으면서 자기 뜻을 이루려는 그런 것 안됩니다. 우리가 예배당 짓습니다. 에배당 짓는데 예배당 짓는데 ‘예배당 이것만은 꼭 지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래도 나는 ‘예배당 이것만은 꼭 지어야 됩니다.’ 그런 기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믿음과 내 믿음 가지고 잘해 주실 것이오. 잘해주는 것이 어떤 것이 잘해 주는 것인가? 예배당을 잘 지어서 잘해 주는 게 될런지 중단을 해서 잘해 주는 게 될런지 어떤 게 잘해 주는 게 될런지 모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것이 협력하여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의 이 절대성, 강대성,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높은 것을 목표하신 이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현실현실을 안심하고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염려라 ‘모든 염려를 맡겨 버리라’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염려, 마귀 이런 것이 방해하는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