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0:46
겸손
1989. 7. 26. 수새벽.
본문: 베드로전서 5장 5절∼10절.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감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성경이 증거하는 것을 보면 이 겸손에 대해서 많이 주의를 주셨습니다. 겸손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에게 은혜받는 유일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침을 받는다' 겸손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침을 받는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물리침 받으면 뭐 자기는 어떻다 할지라도 희망은 없습니다.
또 '겸손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신다' 겸손을 많이 말씀했는데 이 겸손에 대해서 우리들이 잘못하면 겸손의 뜻을 잘못 알기 쉽습니다.
겸손이라면 그저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좀 사람이 겸손하게 되여지도록 그렇게 할라고 애를 쓰고 하는 그런 것 좋은 것 많지마는 그게 잘못하면 가장 교만한 사람이기 쉽습니다. 가장 교만한 사람이 돼서 사람들을 자기가 얻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그런 사람되기 쉬운데 그런 것은 아주 교만 중에 지능적인 그런 고등 교만입니다.
그러면, 겸손은 어떤게 겸손인가? 겸손은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가 자기대로 언행심사를 하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가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의 행동을 자기가 바로 하는 것이 그것이 겸손입니다.
교만은 어떤게 교만인고 하나 자기를 잘못 알고 자기를 지내치게 높이 평가하는 것이. 그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잘못 알고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교만이요,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인정하시리라' 또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대우를 해 주시리라' 또 '사람들은 나를, 내가 이런 실상을 가졌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해 주리라' 이렇게 생각을 해서 지나친 대우를,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 지나친 대우를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그게 다 교만에 속한 것이요 또 자기의 모든 면에 가치를 실상보다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다 교만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내가 이렇게 하니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대우하리라' 또 '나를 이렇게 인정하리라' 또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내 주위나 환경이나 모든 것을 해서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고 이런 복을 받으리라' 또 '사람들도 나를 이렇게 대우를 하리라'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데, 그것이 꼭 바로 알고 바로 정상으로 자기를 인정하고 또 정상으로 자기에게 대우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대할 것도 바로 생각을 가지면 그것이 겸손이 될 터인데, 전부 사람들이 보면 자기를 지내치게 평가해 가지고서 모든 원망, 불평, 낙망, 시비, 미움, 모든 시기, 쟁투, 훼방 뭐 그런 것이 전부 거게서 다 나옵니다. 딴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데서 다 그런 것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겸손은 어데서부터 생겨지는고 하니 자기를 바로 알라고 애를 쓰는 데에서 차차 겸손이 이루어져 갑니다. 또 자기를 바로 알라고 애를 쓰면 자기 아닌 자기와 상대하는 상대들을 차차 바로 알라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상대방 중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상대요, 또 모든 사람들이,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의 상대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모든 사람은 어떤 존재들이며 거게 있는 모든 사물들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렇게 해서 자기를 바로 알도록 연구를 하고 하면 자기가 자기를 바로 안 것만치 하나님도 바로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을 바로 알면 안 것만치 자기도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바로 아니까 자기가 자기를 바로 아니 자기의 정상인 언행심사를 하기 마련이고 또 하나님을 자기가 바로 알면 아는 것만치 하나님께 대해서 다른 관계를 언행심사를 가지게 되고 또 다론 사람들을 바로 알면은 다른 사람에게 대한 언행심사가 바로 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옳고 바른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아는 여기에서 모든 옳은 것을 찾기도 하고, 인하기도 하고, 인정도 하고, 행동도 하지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다 지내치게 자기를 평가하고 모든 행동을 합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인 척 하고 행동하니까 그 행동은 전부 자멸하는 행동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인 척 하고서 행동하면은, 어린 아이 같으면 그저 조그만한 물건이나 하나 들고 갈 수 없는데 그것이 지금 장정이 지고 갈 수 있는 쌀가마니를 제가 지겠다고서 짊어지면은 치여서 죽습니다. 자기를 모르고 모든 일을 계획하는 것이나 또 소망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전부 자살 행위요.
자기를 모르고 행동하는데 자기를 모르는 가운데서도 자기를 지나치게 크게 알아서 자기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도 있고 또 자기를 지내치게 작게 적게 이렇게 알아서 자기의 정상의 행동을 못 하는 일도 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바로 알아야 모든 언행심사의 계획이 바로 되고 모두 다 또 소망이 바로 됩니다.
자기라는 자본을 그것을 바로 모르고 날뛰면, 조그만한 다른 말로 비유한다면 이거는 한 백만 원이나 가져야 살 수 있는 그 물증을 자기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한 만 원쯤 밖에 안 되는데 이 돈 가지고 그걸 사리라고 생각을 하고서 이렇게 모든 것을 상대하니까 상대방들은 전부 자기 말에 응해 주지 않습니다. 왜? 천만 원짜리를 돈 한 백만 원 가지고 살라 하면 그거 뉘가 주겠습니까? 안 준다 말이오.
사람들이 모든 계획하는 것이 자기를 지내치게 평가해 가지고서 모든 경영과 계획을 가지기 때문에 그 경영과 계획이 바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안 되면 어찌 됩니까? 자기는 꼭 그래 하는데 안 되니까 무슨 사람됩니까? 환경과 주위를 원망하게 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또 자기는 필연적으로 안 되니까 낙망하게 될 터이고. 또 시기하고 쟁투하고, 미워하고, 모든 죄악이 자기를 자기가 바로 알지 못하고 지내치게 평가하든지 또 지내치게 적게 잘못 평가하든지 하면은 자기에게 나오는 모든 계산이 다 틀린다 그거요.
또 상대방인 하나님과 모든 하나님의 지으신 사람들과 모든 사물들을 그것을 바로 모르고 자기가 상대하다 보니까 자기 상대하는 것이 전부 상대방에게 대해서 침노가 되고 침해가 되고 가해가 되고 모든 상대방들을 다 해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이 들어 줄 리가 없다 말이오. 하나님 해하는 일을 우리가 하면은 하나님이 안 듣습니다. 또 사람들도 그 사람에게 해하는 일을 하면 안 듣습니다.
그러면 가정마다 뭐 조그만한 가정 생활이라 하는 것도 이래 보면은 그 집에 자기를 바로 아는 사람이 그 가정을 구원할 사람입니다. 자기를 바로 알고 가족들에게 대해서 자기의 정체 정상을 가지고 정상적인 행동을 모든 가족들에게 하면 모든 가족들은 다 만족하고 기뻐하고 뭐 원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아는 사람이 하나만 가정에 있어도 그 가정이 돼요. 자기를 모르고 자기를 지내치게 평가해 가지고서 날뛰는 사람이 하나만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온 가정은 다 파괴가 돼 버립니다. 교회도 그러하고 가정도 그러하고 자기 개인의 사업도 그러합니다.
이래서. 겸손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게 겸손인고 하니 자기를 바로 아는 것, 자기 아닌 모든 상대방들을 바로 알아서, 그러면 자기 바로 알면은 자기 자본을 바로 아는 것이오. 자기를 바로 알면 자기 자본을 바로 아는 것이오.
백 원짜리를 누가 백 원짜리로 쓰지 백 원짜리를 누가 천 원짜리로 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백 원짜리가 천 원짜리인 척 하고 하니까 항상 쓰여지지 않습니다. 이거 백 원을 사지고서 백 원으로 써야 뒈 터인데 백 원짜리 가지고서 천 원짜리 물건 달라 하니 그것도 되지도 안하고 만, 원짜리 물건을 하나 달라 하니 되지도 안하고 또 백 원 고서 뭐 사람을 쓰든지 뭐 자본할라 하는 것을 할라 하니까 일이 다 안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바로 모르는 데에서 월권하고 남용하고 침해하고 또 이러니까 실패당하고 원망. 불평. 낙망, 미움, 시비. 뭐 시기 쟁투 모두가 다 자기를 바로 알지 못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또 자기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알면 그 일이 바로 되는데 바른 일을 누가 그걸 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른 것은 해하지 못합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이런 무슨 존재들이 힘이 있는 줄 알지마는 제일 힘센 분이 누군고 하니 하나님이 제일 힘이 셉니다. 그분이 완전자요 제일 힘이, 새고 하나님이 제일 권리가 있고 힘이 세고 그 다음에는 두번째는 뭣이 실력이 있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이소. 뭐이 실력 있습니까, 두번째는? 뭐이 실력 있어? OOO집사님? '하나님과 연결. 되는 거! 네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거는 엉뚱한 대답이고 진리 그것이 바른 대답이오.
진리. 하나님 다음에는 진리가 세력 있습니다. 진리가 뭐이 진리입니까? 진리는 옳은 것 바른 것 곧은 것 참된 것, 옳은 것이 진리입니다. 옳은 것. 그러기 때문에 옳은 거는 하나님 다음으로 권리가 있고 세력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인 만인이 지금 콩이라 해도 이 사람은, 사람들은 귀중하기는 귀중하지마는 사람보다 진리가 크기 때문에 자기는 만인이 가는 그 실보다도 어느 것이 바르냐? 참이냐? 옳은 것 요걸 찾아 가지고서 자기가 외로운 걸음이라도 옳은 걸 차지합니다. 왜? 그 사람 눈에는 옳은 그게 천하 사람이 뚤뚤 뭉친 그 세력보다도 더 강한 줄 알기 때문에, 옳은 것을 그 사람은 보이는 그런 세력보다 크게 여기기 때문에 항상 옳은 걸 찾아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귀한 것은 어떤 것이 귀한 것인고 하니 셋째로 귀한 것은 사람이 귀합니다.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자기도 사람이요 다른 사람도 사람이니 자기 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 두 사람이 더 큽니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사람을 거슬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거슬리는 사람이 성공하기 어렵고 또 진리를 거슬리는 사람은 다 실패하고 하나님을 거슬리는 사람은 다 사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겸손이라 하는 것을 제가 여러 수십 년 전에 여기서 가르치기를 '겸손은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이 겸손이다. 또 모든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을 바로 아는 것이 겸손이다' 교만은 이것은 바로 알지 못하고 잘못 알고 잘못 평가해 가지고서 행동하는 것이 교만이니 교만은 다 사망할 수밖에 없고 성공에게서는, 참에서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친다 말은 참된 능력에서는 물리침을 받고 성공에서는 물리침을 받고 생명에서는 물리침을 받고 한다는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물리치는 것은 성공이 물리치는 것이요, 생명이 물리치는 것이요, 기쁨이 물리치는 것이요, 평강이 물리치는 것이요, 행복이 물리치는 것이요, 행복이나 하나님이나 한덩어리입니다.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자는 물리침을 당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항상 겸손하는 이것은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성질의 원리를 가르쳤으니까 우리들이 겸손하기 위해서, 자기를 바로 알기 위해서, 그러면 모든 사람으로 상대할 때도 그만 그것은 자기는 누구든지 상대하면은 다 불만하고 불평스러움입니다. 불만 불평이 생겨지는 이유가 왜 불만 불평이 생겨지는가? 생겨지는 것은 모두가 다 불만 불평이 생겨집니다. 감사가 없고 불만 불평이 생겨집니다. 불만 불평이 생겨지는 것이 그 이유가 뭐인고 그것을 대답을 바로 했으면 그만 오늘 이 시간은 끝내겠는데.
모든 언행심사 할 때에 불만 불평되어지는 것이 원인이 어데 있습니까? OOO집사님? 녜, 불만 불평을 하는 것은 자기를 잘못 알고 행동하는 데에서 전부 불평이라. 자기 중심이니까, 악은 다 자기 중심, 원죄로 살기 때문에.
전부 자기 중심이니까 자기 중심은 전체가 다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주해서 있도록 이렇게 바라고 있는 자가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그래 해 줄라 합니까? 다 저는 제대로 거석을, 다 제대로 저 중심으로 할라고 하는 것이지.
바로 된 것들은 하나님 중심 할라 하지 제 중심 할라 합니까? 또 진리 중심 할라 하지 제 중심 할라 합니까? 이거는 천부당 만부당의 걸음을 걷고 있기 때문에 불행이 그에게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