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형제와 화목하고 급히 사화하라
선지자선교회
본문 : (마5:21-26)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서론)
1. 노하는 자마다, 라가라 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
강령되는 뜻만 증거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하는 사람은 심판받고 라가란 말은 욕한다는 말인데 ’욕하는 사람은 공회에 잡히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말씀하신 것은, 심판과 공회에 끌려간다고 말씀하신 것은 노할 수도 있고 욕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단정 짓지 아니하고 조사해야 봐야 된다. 조사를 받게 된다. 또 공회는 보이는 교회를 말하는 것인데 교회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것은 노하고 욕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고 욕할 만한 행위도 있고 노할만한 행위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조건 이렇게 정죄하지 못하고 심사받아야 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2. 하나님의 심판에 통과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 그만 무사히 통과가 되어야 되지 하나님의 심판에 걸렸다고 하면 문제는 똑같아집니다. ‘긍휼이 모든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했는데 심판에 벌써 걸리게 되면 결국은 걸리지 안 걸릴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 대해서 쓰인 방편은 ‘분을 품되 해지도록 품지 말아라’ 의의 분도 있고 그런데 노할만한 그런 분도 있지만 이거 다 우리가 위험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본론)
1. 노하는 자
제가 깨달은 대로는 이제는 참 노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요. 여기 노하는 것을 살펴보면 자기를 위해서 노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상대방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의 단위 높은 방편을 써서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노했는데 그것도 어리석은 일을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맡겨 두고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냉정스럽게 나가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저는 요새 회개하기를 내가 형제를 위해서 과격한 말을 하기는 했다. 너무 적극성 있게 그 사람을 고쳐보려고 바로 잡으려고 내 희생도 생각도 안하고 그 사람에게 어떻게 미움이나 악감을 가질 것도 생각도 안하고 고쳐보려는 노력에서 했는데 그것도 다 헛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냉정하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네가 그것은 잘못됐다. 이렇게 고쳐라' 한 번 말해 안 들으면 두 번 세 번 열 번 말할지라도 과격한 방편은 아예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정 지었습니다. 그 일을 하므로 고쳐지는 양은 속도는 빠르고 많은 것 같지만 그로 인해서 잘못된 그 모든 찌끄러기는 전부 내게 다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손해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허락지 안한 희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나쁜 것이 있어도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렇게 하고 한 번 말 해 모자라면 두 번 말하고 열 번 스무 번 말할지라도 그에게 내가 격분하기까지 노하기까지 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 ‘이에서 지나가면 악으로 쫓아나는 것이니라’ 그것은 자기 중심의 것이 됩니다.
나는 인생살이 70년에 실패의 그 모든 구멍이 그 구멍이었습니다. 남을 너무 굳게 하려고 지나치게 적극성으로 나무라는 거기서 사람도 잃고 또 내게도 더러운 요소가 자라고 또 그러다 보면 내가 오히려 남 구원하려고 하다가 내가 더러운 데 빠지게 되고 백해무익이라는 그 결산을 계산해봤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해서 성내는 일 하지 말고 대개 성내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공격적으로 성내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세상이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는 것은 그만 놔두면 힘 안 들고 좋지만 상대방을 고쳐 구원해보겠다고 하는 지나친 열정에서, 지나친 사랑에서, 지나친 의에서 한 그것이 다 자기에게 백해무익입니다.
이래서 마지막에 결산을 지어볼 때에 인간이 인간에게 성내지 말아라.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이에 몇 번이든지 말할 수 있고 해도 안 들으면 하나님께 맡겨 두고 말지 지나치게 할 필요 없다. 혹 그런 것이 상관이 없을 수 있는 그런 관계라면 부모가 자녀를 기른다든지 이럴 때는 거기는 그런 것을 초월하고 그런 것은 노해도 그 노하는 흠점을 다 삭일 수 있는, 없앨 수 있는 그런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혹 부부간에는 그런 것을 없앨 수 있는 그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혹 그 방편을 쓰는 것이 효력이 있을 것 같지만 위험합니다. 부부간에도 써가지고 나는 백 가지 다 손해 봤지 결산 할 때에 유익은 없었습니다.
이래서 제가 인생살이 70년에 인간을 회개시키고 타이르고 깨닫게 되는 것은 절대 하나님 혼자만이 하는 것이지 인간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일찍부터 확정을 짓고 이제는 확신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얼마든지 타이르고 소원하고 안 되니 하나님이 하시옵소서’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권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에서 지나면 악으로 쫓아나느니라’ 또, 사람에게 성내는 것은 백해무익입니다. 공연히 자기 희생이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2. 라가라 하는 자
또 욕하는 것도, 라가란 말은 욕한다는 말인데 그것도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보고 욕을 하지만 내가 또 그만한 잘못이 없느냐 하면 내가 그 잘못을 세워서 욕하는 것이 내가 잘못된 그것을 전제로 굳게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손해입니다. 성경 말씀은 한 말씀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참 영생하는 말씀입니다.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미련하다 하는 것은 둔하다는 말인데 그렇게 하나님이 지어놨으니까 둔한 자, 뾰쪽한 자, 넓은 자, 둥근 자 있는 것인데 그것이 막 바로 따져 들어가면 하나님을 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두말 할 것 없이 지옥불에 들어간다. 말했습니다.
3. 형제에게 노하는 자, 라가라 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
형제에게 노하는 자, 라가라 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 이 말씀을 총론하면 크고 작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대할 때, 그 사람 남을 대하는 것으로 대하지 말고 그 사람 위에 그 사람의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가 그의 배후에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을 대할 때는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그 뒤에는 우리를 심판하실 주재이신 주님이 계신 것을 보고 그분의 눈초리를, 그분의 심리를 생각하면서 대해라 하는 것을 말씀해 놓으신 말씀입니다.
4. 먼저 가서 화목하고
그리고 23절 이하에는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형제가 내게 대해서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두고 먼저 가서 화목하고 예물을 드리라 예물을 드린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도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도 예물을 드리는 것이오. 몸을 바치는 것도 예물을 드리는 것이니 어쨌든지 내 인격과 심신, 행위, 소유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접하는 모든 것을 총칭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대접하려고 하나님을 교제하려고 할 때에 네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해서 원망하는 것도 있겠고, 나는 잘못이 없지만 상대방이 오해해 가지고 원망하는 것도 있겠고, 또 우연히 된 일도 있겠고, 어쨌든지 형제와 나 사이에 합하여 통하지 아니한 그런 것이 있거든 그 문제부터 먼저 해결 짓고 그다음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관계를 가지도록 해라.
그러면 이렇게 사람으로 더불어 서로 벌어짐이 없이 원수 됨이 없이 화목을 취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그 이유는 골로새 1장 20절로 23절까지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 피로 우리를 인간과 인간끼리 화목이 되도록 하시고, 또 다음에는 만물과 우리 사이가 화목 되도록 하시고, 이렇게 화목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화목이 없으면 하나님과 화목이 안 됩니다. 인간 화목이 있어야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과의 화목이 그다음 순서로 되어지고, 이 피조물 화목이 되어져야 비로소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다 이것이 잘 구별해서 화목이 된 이것은 기본구원이요, 건설구원에 있어서는 피조물 화목을 먼저 하나님과 화목을 그다음입니다. 피조물 화목을 해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화목을 해주십니다. 이 건설구원에 증거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히브리서 12장 14절에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으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1) 화목해야 될 이유의 하나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화목해야 될 이유의 하나는 무엇입니까? 인간 화목, 만물 화목 되어가지고 라야 하나님과 화목을 받을 수가 있다 하는 이것이 조건이 되어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목을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됩니다.
2) 둘째로 화목해야 될 이유는
화목을 해야 성령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1절로 22절을 읽어보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택불택자나 모두가 다 십자가로 원수를 소멸하고 화목제에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고,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얻고, 또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져 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에 이 화목이 되어야 성령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실 수 있지, 불목이 있는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가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5장 18절 이하에는 보면 화목 하는 직책을 우리 직책으로 줬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주일학교 전도하는 것이나 심방하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이 화목 운동이요, 연보하는 것도 화목 운동이요. 이래가지고 많은 건재가 합쳐서 건축이 되어져 가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건재라도 각각 나눠있으면 안되는데 그것이 합해져야 무엇이 건축이 되는 것처럼 모든 건재가 화목이라는 화목으로 조립이 되어서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셔서 자기의 전부가 되어 질 수가 있기 때문에 화목을 안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또 화목을 안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지금은 입이 있어도 지식이 있어도 여기 저기 다 거리껴서 말을 못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언론 자유, 모든 송사에 대해서 자유의 때가 옵니다. 아무리 눌린 자도 다 그때는 자유롭게 송사할 수 있고 아무리 강한 자도 그때는 송사를 다 받게 됩니다.
5.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러기 때문에 25절에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이 말씀은 하늘나라를 가고 있는 세상 생애를 하는 이것을 길이라고 말합니다. 길에 있을 때에 세상에 있을 때에 급히 해결지울 것을 해결 지워라. 너를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이 재판관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공심판 사심판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우리는 공심판의 것은 다 제거되었지만 안 믿는 사람들은 공심판을 다 거기서 공심판에게 내어주고 우리는 공심판은 면했지만 그리스도 사심판은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그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판정되면 판정 되는대로 영원한 보응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6. 관예가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관예가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그 옥은 지옥은 아닙니다. 지옥은 아니지만 모든 자유가 한정되는 자유의 옥, 가치의 옥, 대우의 옥, 모든 평가의 옥, 그런 종류의 것들을 가리켜서 옥에 가둘까 두려워하라.
7.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그 제한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네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에 그것이 다 갚기 전에는 거기서 네가 불신임하는 데에서 인정하는 자유 세계로 나오지 못한다. 네가 삐뚤어져서 잘못된 거기에서 옳다 바르다 하는 데로 나오지 못한다. 이것은 왜 송사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송사하는 자는 그 당사자다. 이러기 때문에 당사자와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해결을 지워라.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어떤 사람은 천 리를 자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비유컨대 백 리를 자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전 인류에게 자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자유 하지만 그 한 사람에게만 자유하지 못하고 이렇게 별별의 고통의 옥이 아닌 인격적으로, 도의적으로, 영감적으로, 평가적으로, 모두다 제재를 받는 이 영광이, 존귀가, 기쁨이, 대우가 쪽딱쪽딱 한정되어 있는 그 모든 수많은 감옥이 있으니 그 감옥에 갇히기 전에 세상에 있는 동안 급히 해결을 지워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8. 소금을 두고 화목
해결을 지울 때에 해결을 짓는 그 요령을 몇 가지 말씀하시기를, 마가복음 9장 50절에는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네가 사람으로 더불어 이렇게 불목이나 그 사람이 네게 대해서 원망할 것, 제가 잘못해서 원망하고 있지만 그 원망도 없는 것이 좋다. 아브라함이 그랄 족속에게 그들이 잘못했지만 잘못한 벌로써 태가 막혀서 그 민족이 생산하는 축복이 끊어졌을 때에 아브라함은 죄 지은 것 없고 저희들이 잘못해 그랬지만 아브라함에게 관련이 그래도 상대가 아브라함이 인연이 걸려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들을 용서하고 화목하라 하시고 화목을 했을 때에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 앞에 사죄를 받고, 사죄 받음으로 태문이 열리고, 그러고 난 다음에 우리의 신앙의 조상인 이삭이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깨끗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저 제가 잘못했든지 내가 잘못했든지 땅 위에 화목하는 것이 이것이 성인이다. 예수님이 화목 제물 되신 것은 당신이 잘못한 그런 것 아니고 주님이 우리의 잘못한 것 가지고 우리가 스스로 불목한 것을 화목하려고 십자가에 피 흘려 이루신 것이기 때문에 네가 무조건 화목 하는 데는 소금 두고 화목해라. 네가 희생이 없이는 화목이 없다.
가정 화목도 네가 희생 없이 화목은 안 되고, 친구끼리도, 부부끼리도, 제가 권세를 가지고 상대방을 점령하므로 저에게 복종시켜 제 중심, 자기에게 귀속되므로 화목하는 것은 화목이 아니요. 명령이요. 세상 전투이기 때문에 전쟁이오 경쟁이지 화목은 아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해라. 네가 희생을 하고 네가 손해를 보면서 화목을 해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을 생각하면서 화목하라 말씀했습니다.
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
화목 하는 데 우리가 또 주의할 것 하나 있는 것은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한다’ 또 거기 내려보면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거하사 하나님이 이 세상으로 더불어 화목케 하신다’ 그리스도란 말이 많이 있고, 또 ‘화목케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했다’ 하는 말씀이 있고, ‘성령 안에서’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화목이란 이 화목을 무조건 화목을 가지려는 것 아닙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라’ 거룩은 진가를 구별하는 것이 거룩인데 진가를 구별하는 구별을 가지다 보면 불목이 되고, 화목하려다 보면 진가를 무시하는 사람이 되고, 진가를 무시해도 안 되고 화목을 무시해도 안 되고, 꼭 진가는 옳고 그른 것은 가려서 화목케 하는 말씀을 부탁했다. 신구약성경 말씀을 준해가지고 화목해야 되고 성령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화목이 되어야 되지, 순전히 마귀적이요 세상적이요 죄악적으로 화목된 그 화목은 그 많은 것을 가리켜서 성령 안에 들어가는 준비로 화목, 말씀대로의 화목, 그리스도는 도덕의, 지능의 완성인데 이 도덕면이나 지능면이나 흠점이 없는 그 화목을 네가 힘쓰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래도 화목은 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화목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관계가 맺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합하려면 화목을 가져야 되고 화목을 가지는 데에는 진리와 성령대로 화목이 되어야 되고, 이렇게 화목을 하려고 하면 필연 자기 희생하고 자기 손해 보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희생하고 자기 손해 봐서라도 진리에 거스리지 안하는 화목을, 성령님께 거스리지 않는 화목을,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 영접 받을 수 있는 화목을, 화목 하는 일 속에 하나님이 와서 계실 수 있는 그런 거처가 되실 수 있는 화목을 힘쓰라. 이러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지만 예수님이 취하신 방편 당신이 낮아짐으로, 손해 감으로, 희생함으로, 죽음으로, 참음으로, 대형 대행 대화친을 화목으로 된 이 화목, 이 방편이 제일 좋은 방편이니 이 방편을 써서 화목 하라.
‘화평함과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급히 가서 사화하라 했는데 사화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있고 못할 것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죽었으면 할 수 없습니다. 또 화목할 수 없는 상대방에게 화목을 하는 것이 도리어 불목이 될 수 있는 그런 일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지혜롭게 생각해서 만일 직접적으로 화목할 수 있으면 네게 물질 손해가 가든지 어떤 손해가 가든지 인간의 구원이 손해 가는 것 외에는 어떤 것이 손해가도 네가 서로 직접적으로 화평하도록 노력을 해라.
그러나 그것이 인간 구원에 손해 갈, 죽어서 직접 화목을 할 수가 없다든지 또 살아 있어도 직접 화목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네가 너 혼자 네 대변자 예수님께 부탁을 해라. 네 대변자 예수님께 부탁을 드려서 '내가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이것은 내가 직접 거기서 화목을 못하겠으니 주님이 이것을 맡아서 화목해 주시옵소서. 이것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하여 주님께 부탁하고, 너는 주님과 상대방에게 못해 그렇지 너 혼자로서는 원망할만한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을 주님 앞에서 평생 가지고 알고 그래 살면 그 대변자가 눈과 같이 양털같이 다 말갛게 대변해 주신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화목을 가지도록 하라.
10. 여기 대한 교훈이 빈약
그런데 우리가 제가 여기 대한 교훈이 빈약했습니다. 그전에 말한 대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교훈, 신령적으로 화목 하는 거기 대해서 교훈은 많았지만, 인간적으로 여기 대한 교훈은 빈약해서 그것을 제가 좀 계속해야 되겠다고 아플 때 첫 주일 와서 한 말이 그 말입니다. 내나 지금 하는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교훈이 빈약해서 우리 교회는 이 불목과 화목의 중대성을 깊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예사롭게 앉아서 다른 사람을 헐고 삣고 깎고, 헐만한 일이 있어도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두려워 주님을 보므로 헐 수 없는 사람이, ‘저가 나를 안즉’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서 헐고 삣고 깎고 또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에 이간을 붙이고, 주님은 죽기까지 하셔서 화목을 이루셨는데 이렇게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을 일으켜 이리 벌어뜨리고 저리 벌어뜨려서 그것은 순전히 마귀가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는 이 마귀 역사가 우리 교회에 많습니다. 이것을 특별히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거저 앉으면 중얼 중얼 이 사람 헐뜯고, 저 사람 헐뜯고 이 사람 단점 말하고 저 사람 단점 말하고 이 사람에게 비(非)를 폭로하고 저 사람에게 비를 폭로하고, 이것을 취미로 삼아가지고 하는 이것이 뼈 아피 이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일이요, 성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일이요, 주의 보혈에 적이 되는 일이요, 자기 구원이 깨지는 일인 것을 모르고 우리가 예사롭게 여겨서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죄인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주님에게 대해서 행한 것이라는 이 말씀을 곧 내게 대해서 했다. 도덕적으로 작은 자, 없는 자, 윤리적으로 도의적으로 경제적으로 지능적으로 행위적으로 제일 작은 자, 못난 자 그들에게 대해서 행한 것이 곧 나에게 대해서 행한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내가 높이겠다. 그것이 당신을 당신으로 대우하고 당신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 화목 없으면 하나님을 못 보는데 잘못하면 인간 화목만 힘쓰고 영감도 진리도 잊어버리면 헛일이요. 영감과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인간 화목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이 구원이 되는 화목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화목을 이루는 데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결론)
1. 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
소금밖에 없습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 희생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주님이 취하신 이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라 그러면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말씀했습니다.
2. 급히 길에 있을 때에 사화 하라
어쩌든지 우리가 이 면을 힘써서 사람이 나에게 원망하는 그런 일이 생각나거든 죽기 전에 급히 길에 있을 때에 사화하라. 해결 지워라. 직접 가서 손잡고 해결해서 할 수 있는 것 해결하고 손잡고 가서 해결할 때 내가 노여움이 된다. 내 재산이 손해가 간다. 내 지위나 권세가 떨어진다. 그런 것은 성경에 말하지 않습니다. 떨어져야 마땅합니다. 암만 떨어져도 하지만 혹 상대방의 구원에 손해갈 수 있는 그런 일이라면 그것은 대변자에게 가져가서 대변자에게 부탁하라. 네가 직접 할 수 없고 대변자에게 부탁을 해서 대변자가 그 사건을 맡을만 하면 주님이 맡아서 깨끗이 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맡지 못할, 네가 직접 해도 될 일을 주님께 대임시킨다면 주님은 그 일을 맡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땅 위에 있는 동안에 급히 해결 지워라.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무궁세계의 제한이라는 여러 가지 수많은 감옥에서 네가 나오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설교: 백영희 목사(1982. 12. 12. 주일오전)
정리: 김반석 목사(2014.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