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와 은혜주의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57
게시일 : 2003/05/05 (월) PM 08:31:59 (수정 2003/05/08 (목) AM 09:36:21) 조회 : 64
■ 율법주의와 은혜주의
율법주의라는 말은 구약적이란 말입니다.
신약에 와서 율법주의라는 말은 형식주의라는 말이며 외식주의라는 말입니다.
형식주의라는 말은 실상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말하고
외식주의라는 말은 속에 들어가지 않고 겉에만 머물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율법주의는 외식적, 형식적, 구약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은 잘 지켰으나 외식적, 형식적, 구약적 이었습니다.
구약의 성막은 신약시대의 교회입니다.
성막은 형식이며 교회는 실상입니다.
성막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교회를 알 수 있고,
교회라는 실상을 통하여 성막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를 끌어 올 수는 있어도 구약시대로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성막은 형식이며 구약시대입니다.
교회는 실상이며 신약시대입니다.
구약시대는 율법시대임으로 율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은혜시대임으로 은혜로 살아야합니다.
은혜주의라는 말은 '믿음주의'라는 말입니다.
믿음주의라는 말은 '주님주의'라는 말입니다.
주님주의라는 말은 '복음주의'를 말합니다.
복음주의는 진실주의를 말합니다.
'진실주의'라는 말은 율법이라는 겉 형식에 머물지 않고 실상인 진리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는 신구약 성경입니다.
신구약 성경 도리가 율법입니다.
성경에는 진리인 구원의 도리가 있습니다.
구원의 도리대로 살면 구원의 실상인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복음주의, 은혜주의, 믿음주의, 진실주의, 실상주의로 살게 됩니다.
'은혜주의'라고 하는 것은
구원이 인간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은혜주의라는 말은 '대속주의'로 산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율법도 되고 복음도 됩니다.
성경이 율법이 된다는 말은
성경을 외식적으로 대하면 율법이 되어 그 말씀이 정죄를 합니다.
성경이 복음이 된다는 말은
성경을 진실적으로 대하면 복음이 되어 그 말씀이 구원이 됩니다.
주님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복음이라 합니다.
은혜주의는 주님 모시고 계명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주의는 주님 없이 계명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가르쳐도 주님을 전하지 않으면 율법주의입니다.
설교를 해도 주님을 전하지 않으면 율법주의입니다.
주님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사활 대속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죄를 전하는 것입니다.
칭의를 전하는 것입니다.
화친을 전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활 대속을 전하는 것은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활 대속을 전하지 않는 것은 율법을 전하는 것입니다.
신학자가 주님의 은혜가 빠지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교역자가 주님의 은혜가 빠지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하루 사는 동안에도 주님의 은혜가 빠지면 율법주의자로 살았습니다.
율법주의로 사는 것은 기본구원 뿐입니다.
은혜주의는 사는 것은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행함을 강조하다보면 믿음을 등한히 하기 싶다 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나
믿음에서 행함이 나오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행함 이라는 교리를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하겠습니다.
'율법주의는 행함'
'은혜주의는 믿음'이라는 교리는
율법을 행하는 그 자체가 구원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그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대속 공로를 믿는다는 말이며
주님의 대속 공로를 입은 자로 산다는 말이며
대속 공로인 사죄, 칭의, 화친, 부활의 소망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이 교리를 한마디로 요약하여 '은혜주의는 믿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은혜주의로 산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자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외식주의자입니다.
은혜주의는 믿음주의, 대속주의, 예수주의로 살아야 건설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율법주의는 불신주의, 행함주의, 인본주의로 살면 기본구원 뿐입니다.
은혜주의는 주님위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주의는 자기위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많이 압니다.
신학지식도 박식합니다.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판단하면서 어느새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진리를 말할 때 '아멘' 하면 '은혜주의자'입니다.
진리가 듣기 싫으면 '율법주의자'입니다.
오늘의 율법주의는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신학주의 입니다.
오늘의 은혜주의는
기독교 신본주의, 기독교 성경주의입니다.
열심히 목회를 하여도
열심히 신학을 가르쳐도
주님을 모시고 하지 않는 것은 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모시고 하지 않는 것은 행함뿐이기에 율법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인적요소로 하는 것이요.
은혜주의는 신적요소로 하는 것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하지 않는 것은 전부가 율법주의입니다.
(롬3:2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