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집회

2007.05.14 12:37

반석 조회 수: 추천:

재독집회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54
게시일 : 2003/04/28 (월) AM 01:37:23  (수정 2003/05/02 (금) AM 09:06:13)    조회 : 75  

■ 재독집회


재독이라고 하면 백영희 목사님의 음성설교를 듣는 것을 말합니다.
재독의 수단은 음성으로 듣든지 비디오로 듣든지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 수단으로 성경책을 봅니다.
또 성경이 음성 테이프로도 나와서 듣습니다.
성경 음성 테이프를 듣는 것은 권하지 않지만 부득이 건강상 성경책을 읽을 수 없어서 듣되 마음 중심을 기울려 들으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기록하여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그 시대가 오늘의 시대와 같았다면 성경 말씀을 컴퓨터로 입력하여 파일로 보내든지 아니면 글과 음성이 담긴 CD로 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지금 우리들이 읽는 것은 성경 기자들이 쓴 것을 재독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속에 복음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재독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라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죄의 대속
칭의의 대속
화친의 대속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성경을 재독 하는 것은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하는 자로 사는 능력을 받기 위함입니다.

예배 때에 설교라는 것은 성경을 안내하는 방편인데
설교를 듣는 자가 설교를 듣고
죄 없는 자
의로운 자
하나님과 화친한 자로 살도록 인도하였으면 설교를 잘한 것입니다.
설교는 예수를 잘 믿도록 하는 것이 설교인데 이렇게 예수를 잘 믿도록 하였으니 좋은 예배이며 좋은 설교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재독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재독 합니다.
더 이상의 성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5월, 8월 집회 때에 백 목사님의 설교로 재독을 하는 것은 그 설교가 성경 말씀을 잘 안내해주기 때문에 재독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의 설교가 더 성경을 잘 안내 해주는데 백 목사님의 설교 재독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되고 비성경적이겠지요.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 기준은
복음적이냐, 비복음적이냐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라는 말은
그 설교를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면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며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이라는 말은
그 설교를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점점 멀어지면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이 되는 것입니다.

집회 때의 백영희 목사님의 재독설교를 들으면 그 말씀 속에 구원의 도리인 진리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나면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어야 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다시 말하면
죄 없는 자로 살겠다.
의로운 자로 살겠다,
주님과 동거동행하며 살겠다는 감화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설교 속에 성경과 연결된 진리가 있기 때문에 성령이 함께 하심입니다.

진리와 성령은 함께 하신다는 성구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요일5:7-8)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백 목사님의 재독이 비성경적이다 라고 하는 것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왜 악령의 역사이냐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와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악령의 역사 아닙니까?
예수를 잘 믿으려 하는 자를 예수를 잘 못 믿게 방해하였으니 악령의 역사 아닙니까?

그 동안 재독이 비성경적이다 라고 방해한 서울공회의 백태영 목사님의 지금을 돌아보시면 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집회 기간에 백 목사님의 재독설교를 듣는 것은 성경적이고 복음적임이 틀림없습니다.

재독집회 시간에 백 목사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설교가 웅변적이어서 듣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성경 말씀을 잘 조명하여 그 말씀 속에  구원의 도리를 듣고 있으면 백 목사님의 목소리를 통하여 진리가 나오게 되어 그 진리에 성령이 함께 하셔서 그 음성을 듣는 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치료법을 연구하여 문서나 비디오로 남겨놓았는데 그 의사가 죽었다고 그 병이 치료되는 치료법의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 이치와 같습니다.
다만 의사가 살았을 때 직접 강의를 받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문서나 비디오를 보는  차이는 치료법의 이치와 상관이 없고 그 이치를 습득하는 습득자의 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재독 설교에 의존하다보니 타성에 젖을 수도 있고
재독이 비성경적이라는 말을 듣고 피동 되어 전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재독을 주체하는 주체 교역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표적인데 주체 교역자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여 회개를 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집회에 은혜의 역사가 가감되는 요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교역자들이 백 목사님의 재독 말씀에 귀중성을 깨닫고 성도들에게 그 귀중성을 잘 전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를 말씀드린다면 전에는 재독이 있기 전에 강사를 정하여 30분정도 설교를 준비하였는데 그것이 없으니 집회를 이끌어 가시는 원로 목사님들이 집회를 위한 기도의 준비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순교하셨으니 후배 된 교역자로서
제자 된 교역자로서 이 순교의 신앙노선을 잘 계대해야겠다는 보수성을 가지고  
백 목사님의 비워진 자리를 그대로 채울 수는 없겠으나 비슷한 설교라도 감당해야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자책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형편상 설교는 못하고 있지만 설교를 하는 심정으로 집회기간 동안 애를 태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재독 집회에 참석한 교인들이 왜 은혜를 받지 못하겠습니까?

성경을 왜 봅니까?
진리가 있어서 보지 않습니까?

음성 재독을 왜 듣습니까?
진리가 있기 때문에 듣습니다.

재독을 들어도 은혜가 안됩니까?
재독하는 이유를 잘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은 아직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훗날 진리를 보는 눈이 자라서 이것을 깨달으면 자신의 가슴을 칠 것입니다.

총공회는 교역자가 있습니다.
교역자는 누구보다 교인들을 사랑합니다.
교인을 죽는 길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총공회 교역자는 아직 살아있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백영희주의"로 나가는 분이 많습니다.

장로교가 칼빈주의입니다.
칼빈주의라는 말은 개혁주의라는 말입니다.
개혁주의라는 말은 천주교가 비성경주의로 나갔을 때 성경주의로 나가자는 주의를 말합니다.

"백영희주의"라는 말도 개혁주의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속화되어 비성경적으로 나가는데 "성경주의"로 보수하겠다는 말입니다.

칼빈주의라고하면 칼빈을 따라갑니까?
"백영희주의"라고 하면 백영희를 따라갑니까?
성경적으로 나가겠다는 말입니다.

순생 순교의 하나님의 종을 대항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요.
진리말씀 운동을 방해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고라의 말을 듣고 따라가면 고라당파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순생 순교의 좋은 종을 통하여 총공회를 세워주신 주님께 먼저 감사하고
이 주님의 종이 주신 성경 진리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애통하고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재독집회에 대하여 더 이상 의문이나 재론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