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희 주의(主義)

2007.05.14 12:38

반석 조회 수: 추천:

백영희주의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55
게시일 : 2003/04/30 (수) PM 01:56:00  (수정 2003/05/24 (토) PM 10:56:51)    조회 : 118  

■ 백영희주의(主義)


칼빈주의라고 하면 개혁주의를 말합니다.
개혁주의라고 말함은 성경주의를 말함입니다.
중세 천주교가 비성경적으로 타락되어 나갈 때에 성경적으로 나가자는 주의였습니다.

백영희주의라고 말함은 개혁주의를 말합니다.
현대의 교회가 비성경적으로 속화되어 나갈 때에 성경적으로 나가자는 주의입니다.

사도주의도 개혁주의입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비성경적 율법주의로 나갈 때에 성경적 은혜주의로 나가자는 주의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벨주의
아브라함주의
엘리야주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대마다 그 시대를 감당할 선지자가 있었고 교리 신조가 있었습니다.
사도시대에는 사도신경이 있었고
칼빈시대는 기독교강요가 있었으며
오늘의 백영희시대에는 백영희설교록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초대교회 때의 최고 교리와 신조이었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개혁교회 때의 최고의 교리와 신조이었습니다.
백영희설교록은 현대교회 때의 최고의 교리와 신조입니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신작로가 고속도로에 비교할 수 없음 같이
기독교강요나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이 백영희설교록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교리사는 다룰 때에 교리면 보다 신조면을 더 깊이 있고 중요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교리의 분량은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사를 보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순교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도들이 사도신경을 그대로 믿고 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신사참배나 6,25  환란 때에 순교자는 손가락 꼽을 정도였습니다.
오늘 신앙박해가 닥친다면 순교자는 얼마나 될까요?

현대교회는 교리 홍수시대입니다.
신앙박해로 환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교리에 파묻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사도들과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교리를 알고 있으나 믿음 없이 학문적 지식으로 전하기 때문에 신앙을 지킬 힘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 없는 나무에서 신앙 열매가 맺어질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말세가 되어 갈수록 교리는 발전하나 신조는 퇴보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살펴보면 사도신경에서 기독교강요로
기독교강요에서 백영희설교록은 교리 발전입니다.
그러므로 교리 지식만으로는 신앙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신앙를 지키고 살 때의 믿음이 신조이며 믿음으로 살 때의 깨달음이 교리입니다.

사도들의 신앙승리가 교리와 신조로 나타났으니 사도신경입니다.
칼빈의 신앙승리가 교리와 신조로 나타났으니 기독교강요입니다.
백영희의 신앙승리가 교리와 신조로 나타났으니 백영희설교록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신앙승리를 하려면 교리만 붙들어서는 안 되고 신조도 병행해서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주의의 신조인 개혁주의는 보수 계대 해야 한다고 강조할 수 있어도
'기독교강요'를 오늘에까지 그것만 붙들고 있어야 정통교리, 정통교단이라고 강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리는 교회역사에 따라 발전하여야하고
신조는 교회역사에 상관없이 보수하여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교회 시대에 '기독교강요'를 최고의 교리라고 고집한다면 마치 소달구지 길을 신작로 보다 낫다고 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백영희설교록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보다 발전되었고
기독교강요가 사도신경보다 더 발전되어 비교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시대별 최고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이었습니다.
진리를 보수한 순생 순교의 신앙노선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붙들고 쓰신 그 시대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영희설교록이 기독교강요보다 더 발전되었다고 비판할 수 없고 기독교강요가 사도신경보다 더 발전되었다고 비판할 수 없습니다.

강 상류가 있기에 하류가 있고 강 상류의 물이 흘려 내려오기 때문에 강 하류의 강폭이 넓은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강 상류의 폭에는 충족한 물의 양이라 할지라도 그 물의 양으로는 강 하류의 넓은 강폭을 다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신경이나 기독교강요가 초대교회, 개혁교회에서는 각각 최고의 교리이지만 현대교회 말기(末期)인 지금은 최고의 교리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영희설교록의 구원론 하나만 보더라도
기독교강요나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에서의 구원론 보다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는 것을 연구해보면 누구든지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백영희설교록이 현 시대에는 최고의 교리라 할지라도 언제 까지나 최고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시대마다 주님께서 그 시대를 감당할 종을 세우신다는 것을 교회사를 통하여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교리 연구에만 치우치지 말고 신조 연구를 동시에 하여야 하겠습니다.
교리라는 싹이 날 때에 그 뿌리가 되는 신조는 어떠했는지 그것을 연구해서 그 신조를 우리 것으로 삼는데 주력해야 참신학자, 참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껍질 속에 알맹이가 있음 같이
교리는 껍질이며 신조는 알맹이 입니다.
보이는 교리 속에 보이지 않는 신조가 있음을 알고 그 신조를 더 중요하고 가치 있게 다루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
마틴루터
죤 칼빈
다 기록할 수 없지만 시대마다 주님이 세우신 선지자의 이름입니다.

깃발의 이름은 달라도 외치는 소리는 꼭 같습니다.
개혁주의
성경주의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사도주의는 칼빈주의를 낳고
칼빈주의는 오늘의 백영희주의를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