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6 23:41
■ 성막 공부
- ‘성막 공부’에 대한 원천자료는 백영희 목사님의 강단설교 ‘백영희목회설교록’과 서부교회 ‘주일학교 공과’로써 부족한 종이 발췌 정리하였다. 2004. 8. 29 김반석 목사
본문: (마24: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서론)
1. 예수님의 제자들의 성전관과 예수님의 성전관의 차이
마24:1-2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성전관과 예수님의 성전관이 다른 것을 나타내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 외모의 아름다움을 보고 또 그 웅장함을 보고 존귀하게 여겨서 예수님께 보이려고 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성전에 대해서 그 실상을 보지 못하느냐 책망하시면서 이 성전은 돌 하나도 포개지지 않고 완전히 훼파 될 것을 말씀하셨다. 성전이 더러워져서 하나님께서 완전히 파멸시킬 성전인데 제자들은 이 성전을 아주 아름답고 고귀하고 거룩하게 보았다. 이렇게 성전관이 정반대의 차이가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다.
2. 신약교회 우리들의 교회관
이것은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된 일로써 신약교회의 말년에도 우리 믿는 사람들의 교회관이 예수님과 정반대가 될 만큼 차이가 있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고 있는 이때에 첫째로 교회관이 바르게 되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신약의 교회도 더러워져서 주님께서는 분히 여겨서 멸해 버리시려는 교회를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 모든 믿는 자들은 좋은 교회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믿는 자들이 보는 교회와 주님께서 보시는 교회가 틀려서 주님께서 보신대로 교회를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니 믿는 자들이 교회를 평가한 그 평가는 잘 못된 것임을 이 말씀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본론)
1.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교회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구약의 성전이나 신약의 교회는 이름만 다를 뿐 꼭 같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말한다. 처음 에덴동산에서 성막으로 이름이 바꾸어졌고, 그다음에 성막이 성전으로 이름이 바꾸어졌으며, 그 다음에 성전이 교회로 이름이 바꾸어졌다. 교회가 성전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 모이는 예배당이 교회인 줄 여기므로 고전3:16에 교회와 성전이 같은 것임을 나타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말씀하셨다.
2. 단일 성전과 단일 교회
예배당은 교인들이 예배 보는 장소이지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교회이며 또 하나님의 성도들이 성전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신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아야 된다. 개인 성전, 가정 성전, 사회 성전, 세계 성전, 역사 성전으로 되어 있는 이 모든 성전은 단일 성전이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의 성전은 단일성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일 교회이다.
단일교회 안에는 시대의 교회도 있고, 동서양의 교회도 있고, 사회 교회가 있고 또 가정교회가 있고, 개인교회가 있다. 이렇게 교회는 여럿이지만 교회의 본질과 본성은 하나이다. 교회는 단일교회이다. 마치 한 몸 안에 여러 지체가 있고 또 지체 안에는 여러 세포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교회는 단일교회이다. 이렇게 단일교회인데 교회가 교회를 헐고 깎는 것은 마귀장난이다. 전부 자기 머리를 자기가 상하게 하는 모순된 것이다.
구주도 한 분이시오, 성령도 하나이오 진리도 하나이요, 교회도 하나이다. 교회는 그 안에 지체로 세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들이 옛사람 멸망할 것이 속에 들어서 내 교회 네 교회, 내 교파 네 교파 하므로 멸망하는 일을 한다. 귀신이 들리면 자기 머리를 자기가 뚜드려 상하게 하는 것처럼 악령의 장난이지 성령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을 때 그 하나님을 성부라 하고,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이루신 하나님을 성자라 하고, 또 구속 받은 우리를 실질적으로 영생을 이루도록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성령이라 한다. 그러므로 성령이나 성자나 성부나 한 하나님이시다. 한 하나님이시나 그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직분이 각각 다른데 성부의 격위가 있고, 성자의 격위가 있고, 성령의 격위가 있다. 삼위라는 것은 격위를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본체도 하나이지만 격위가 셋이다.
4.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을 변질시키면, 하나님의 성전을 깨트리면, 하나님의 성전을 해치면, 하나님의 성전을 상하게 하면 하는 말씀이다. 더럽힌다는 것은 변질시킨다, 깨트린다, 해친다, 상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를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해야 된다는 말씀이다. 너희가 더러워지면 성전이 더러워지는 것이 되고, 성전이 더러워지면 너희가 멸해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성전 된 우리들은 깨끗으로 보존이 되고, 더럽히는 것으로 절단이 난다.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가 더러워지지만 않으면 천하 사람이 다 달라 들어도 멸하지 못한다. 더러워지면 첩첩 인간의 옹호 속에 들어있다 할지라도 멸해진다.
5.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벧전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하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점차 온전하게 되어져 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우리 심신의 지체들이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계실만한 깨끗한 지체가 되어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므로 심신의 지체를 하나씩 둘씩 깨끗케 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져 가도록 우리가 힘쓰는 것이 지금 우리가 이루어 가는 구원이다.
내 손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눈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발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입술에도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 당신의 것으로 주관하시도록 하는 것을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느니라 말씀하신 것이다. 산 돌은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켜서 산 돌이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에 거하셨다. 산돌 같은 예수님같이 우리도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점점 거룩한 성전이 되어져 가는 것을 말씀한다.
6. 성전 밖 마당
(계11:1-2)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전 밖 마당은 척량 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에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힌다고 하셨다. 마흔 두 달은 삼 년 반이다. 삼 년 반이 상징하는 것은 구약시대를 삼 년 반으로 상징했고, 신약시대를 삼 년 반으로 상징해서 말씀하셨다.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힌다. 삼 년 반 동안 짓밟힌다. 신약교회 시대에 짓밟힌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교회로서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 이 셋은 척량하라 하셨다. 이 셋은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시지만 이 셋 외에 것은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었다는 말씀은 신약시대 외식교회 인본교회는 세상에게 짓밟히도록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이다. 신약시대의 외식교회 인본교회 곧 믿는다고 하나 세상을 근본 삼는 세본교회(世本敎會)는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간섭하지 않으시고 또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신약교회 내내 세상에게 이용당하고, 세상에게 종이 되고, 세상 앞잡이가 되어서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더럽히고 괴롭히기만 한다는 말씀이다. 짓밟으리라 말은 세상에게 이용당한다는 말이다. 교회 중에는 세상에게 이용당하는 외식교회, 인본교회 즉 세본교회가 있고, 세상에게 이용당하지 않는 신본교회가 있으니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라 하셨다.
7. 성전
성전은 성전 울타리 안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기를 성전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면 다 성전인줄 안다. 그러나 성전은 성전 울타리 안에 있기는 있지만 성전만이 성전이지 성전 울타리 안의 것은 성전 밖 마당인 것이다. 성전 울타리 안에 몇 분의 몇이 성전이 되느냐? 7분의 1이나 8분의 1정도가 성전이고, 그 나머지는 성전 밖 마당이다. 그러므로 성전 울타리 안에 성전 밖 마당이 있고 또 성전이 있다. 이와 같이 교회는 다 교회인줄 알지만 교회 안에는 성전 밖 마당과 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이 있다. 밖 마당은 크고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는 밖 마당 보다 작다.
8. 신약의 외식교회
신약교회 껍데기 외식교회가 알맹이 참 교회의 칠 배나 팔 배나 된다는 것을 계시록 11장에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 중에 알맹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낱낱이 척량한다고 하셨다.(계11:1) 척량 한다는 말은 간섭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길다 이것은 짧다, 이것은 넓다 이것은 좁다, 이것은 크다 이것은 작다, 이것은 깨끗하다 이것은 깨끗하지 못하다 하고 간섭하신다는 말씀이다. 척량이라고 말씀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칙을 가지고 늘 심사하고 간섭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공의법에 심판 받지 않도록 하나님의 법칙에 맞나? 안 맞나? 세밀히 주시하시고 간섭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참 교회가 아닌 외식교회, 인본교회, 세본교회는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안 믿는 사람들에게 내어 주어서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힘을 당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로 재림 때까지 성전 밖 마당 같은 교회들은 세상에게 짓밟힌다는 말씀은 세상을 능가하지 못하고 세상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참 교회는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자기의 신앙만큼은 빼앗기지 않는데 성전 밖마당 같은 교회는 세상에게 피동 되고 세상에게 이용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을 말씀한다.
그런고로 신약교회 시대는 참 교회의 분량보다 외식교회의 분량이 칠 배나 팔 배나 많다. 외식교회는 무엇을 보아서 아느냐?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것과 또 세상을 따라서 피동 되고, 세상에게 짓밟힘을 당하고, 세상이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기고, 세상에게 이용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참 교회는 죽었으면 죽었지 세상에게 이용되지 않고, 세상이 민다고 밀리고, 당긴다고 당기고, 올린다고 올려가고, 밟는다고 밟히지 않는다.
(결론)
1. 세 가지 기억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너희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면 사사로운 아들이요, 징계가 있는 것은 참 아들이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신약 교회인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또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것과 또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된다는 이 세 가지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야 되겠다.
2.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또 하나는 산 돌처럼 우리도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고 있다. 산 돌은 예수님을 상징해서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인성을 예수님의 신성이 전적 주관하심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우리 전체를 전적 주관하시도록 성전이 점점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다.
3. 외식교회와 참 교회
또 하나는 신약교회는 껍데기 외식교회가 칠팔 배나 크고 알맹이 교회는 껍데기 교회에 비해서 칠팔 분의 일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고 또 알맹이 교회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로서 이 세 가지가 알맹이 교회인데 이 알맹이 참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밀히 간섭하시며 척량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막 구조)
1. 성막
성전 울타리 안에 성전 밖 마당과 성전이 있고, 성전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 법궤와 속죄소와 그룹 천사가 있고, 성소 안에 금향로와 떡상과 등대가 있고, 성소 앞에 세수통과 놋제단이 있다. 성막 성전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을 성경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똑똑히 가르쳐서 신약교회 우리들에게 기억하기 쉽고 구별하기 쉽도록 주신 상징적 구원의 도리이다.
2. 성막 구조
그러면 성막의 구조를 말로서 대략 설명하려고 한다. 먼저 2:3 비율의 직사각형 그림을 그리고 그 다음에 직사각형안에 안에 처음 그린 것보다 칠팔 분의 일쯤 작게 직사각형을 그려서 넣고, 뒤에 그린 작은 직사각형은 앞에 그린 직사각형의 중간 지점에 오도록 그리지 말고, 한쪽으로 붙여서 삼분의 일 정도의 공간이 위 부분에 생기도록 하고, 삼분의 이 정도의 공간이 밑에 생기도록 그린다. 그러고 나서 뒤에 그린 작은 직사각형 중간정도 지점에 선을 그어서 칸을 둘로 나눈다.
처음에 크게 그린 직사각형은 성전 울타리가 되고 다음에 작은 직사각형은 성전이 되겠다. 그러면 울타리 안에 성전이 들어서고 남은 공간이 성전 밖 마당이다. 작은 직사각형을 선을 그어 둘로 나누었는데 위쪽 한 칸은 지성소가 되겠고 아래쪽 한 칸은 성소이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둘로 나눈 경계선은 휘장이다.
○ 지성소
지성소에는 법궤(증거궤)가 있고, 법궤 위에 속죄소가 있으며, 속죄소 위에 그룹 천사가 있으며,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성소에는 제사장이 있는 곳이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는데 그 휘장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를 상징한 것이다.
○ 성소
성소에는 금향로와 떡상과 일곱촛대가 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 바로 앞에 금향로(분향단)라 하는 금으로 만든 향을 피우는 화로가 있다. 또 거기서 조금 나와서 오른편으로 진설병을 두는 떡상이 있다. 또 그보다 조금 나와서 왼편으로 금으로 일곱촛대를 만들어서 등불을 켜는 일곱등대가 있다. 성소 안에는 이 세 가지가 있다.
○ 성소 입구
또 성소 바로 입구에 물두멍이 있는데 물을 담아 놓은 세수통이다. 또 물두멍 앞에 놋쇠로 만든 놋제단이 있다. 이것이 성전 구조가 되겠다.
3. 성막 그림
아래는 성막 구조 그림인데 성막 구조를 설명한대로 정확히 그리지 못하고 윤곽만 그렸다. 요즈음 성막 구조나 기구들을 재현해 놓은 자료들이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구원의 도리에는 그런 자료들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배제(排除)하려고 한다.
4. 성막 도면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실 때에 모세를 통하여 성막 짓는 도면을 주셨고, 그대로 성막을 지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셔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축복을 받았다. 그 후 성전 지을 때도 성막 도면 그대로 지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 로마 병정들에게 훼파를 당하고 난 후에는 다시 성전 짓는 일이 없었다. 그것으로서 구약 이스라엘 자손들의 성전이 절단 났고, 신약교회가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보이는 성전은 짓지 않고 신약교회를 성전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성전을 짓게 하시고 성전에 내주하심으로서 실상이 되는 성전이 어떠해야 되는가를 상징적으로 가르쳐주셨다. 신약시대 우리는 이 상징적 성전에 대한 말씀을 보아서 하나님의 실상적 성전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신약에서 가르치는 도리만으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구약 때 가르치신 도리를 찾아가서 깨달을 수 있다. 또 구약성경으로 알지 못하는 것은 신약성경을 상고해서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다. 그리하여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으로 깨닫게 되고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으로 깨닫게 된다.
5. 4가지 거룩과 10가지 요소적 작용
오늘도 성전관 곧 교회관이 잘못되면 실패한다. 하나님의 성전 된 교회는 4가지 거룩과 10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어야 한다. 개인교회나 가정교회나 사회교회나 세계교회가 가져야할 구비 요소는 꼭 같다. 4가지 거룩이라 말은 4가지 구별이라는 말인데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셨으니 개인교회도 4가지 거룩과 10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어야 하고, 가정교회도 반드시 4가지 거룩과 10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어야 한다. 사회교회도 세계교회도 마찬가지이다.
○ 4가지 거룩
① 이방과 성전: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
② 성전 밖마당: 신자와 신자의 구별
③ 성소: 하나님의 참 일꾼과 거짓 일꾼의 구별
④ 지성소(법궤와 속죄소): 진리와 성령의 구별이다.
○ 10가지 요소적 작용
① 제단(놋제단): 대속을 입은 자가 또 전하려는 노력
② 세수통(물두멍): 언행심사의 깨끗케 하려는 노력
③ 등대(일곱등대): 모든 사람에게 옳은 행실로 감화를 주는 노력
④ 떡상(진설병상):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
⑤ 금향로(분향단):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명상과 기도의 노력
⑥ 휘장: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루는 죄를 찾아 회개하려는 노력
⑦ 법궤(증거궤): 성경을 통해서 알고 그 효력의 결과를 입으려는 노력
⑧ 속죄소: 대속을 입고 자기로서 다하였을 때 하나님과 문제가 완전 해결
⑨ 그룹: 천사의 옹호를 받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노력
⑩ 속죄소 위 그룹사이의 하나님: 하나님과 동행 이상의 노력이 우리의 전인격과 생활에 있어야 깨끗한 성전이 되는 것이다.
● 성막 공부 2장 (구조편)
성전구조는 이방과 성전이 구별되어 있고, 성전과 성전 밖 마당이 구별되어 있고,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별되어 있다. 성전 곧 교회된 우리는 4가지 거룩이 있어야 한다. 4가지 구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① 이방과 성전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
성전이라는 말은 거룩 聖 집 殿 거룩 된 집 곧 구별된 집이라는 말이다. 성전 된 우리가 첫째로 이방과 성전을 구별해야 한다. 이방은 성전 밖마당 까지 들어와 있다.
우리는 세상과 교회를 일차적으로 구별해야 된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 때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을 구별을 해야 된다.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깨끗해야 된다. 깨끗은 모든 것이 바르고 참되다는 말이다. 변질되지 않고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이 깨끗이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과 달리 깨끗해야 될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원해야 하고 또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실제로 결과가 깨끗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 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 중에 제일 외부적 거룩이다. 이것이 첫째 거룩이다.
② 성전 밖마당 (신자와 신자의 구별)
교회라는 교회 안에는 이방인의 마당이 있다. 교회 안에서도 '이 사람은 이방인이다 저 사람은 믿는 신자다' 구별하는 구별성이 있어야 한다. 저 사람은 교회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믿음이 전혀 없다. 또 믿음이 어리다. 저 사람은 교회는 나오지만 아직 믿는 사람의 표적은 보이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된다.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이방인의 마당이다. 이렇게 성전 울타리 안에는 성전 밖마당이 있다. 신자라고 다 같은 신자가 아니라 좀 더 깨끗한 신자가 있고 또 좀 더 더러운 신자가 있다. 이렇게 두 종류의 신자가 있다.
그러므로 자기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 보다 좀 더 깨끗해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주님의 구속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더러운 것을 보고 또 부족한 것을 보고 위로를 받을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깨끗해야 될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보다 더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깨끗해지도록 노력을 하고 또 결과적으로 실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이 거룩이 있어야 된다. 이 작용이 있어야 된다. 이것이 둘째 거룩이다.
③ 성소 (하나님의 참 일꾼과 거짓 일꾼의 구별)
셋째로 구별할 것은 성소를 구별해야 된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신앙 지도자를 구별해야 된다. 참 제사장인지 거짓 제사장인지 구별해야 된다. 믿는 사람이 누구나 제사장이 되는 것 아니고 신앙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 지도자는 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지은 것이 신앙 지도자가 된다고 성경에 말씀하셨다.
(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성소에는 누구든지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라야 출입한다. 그러므로 성소는 제사장 구별이다. 성소 안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구별해야 한다. 신앙 지도를 하는 목회자가 참 목자인지 양의 껍질을 입고 속에는 양을 삼키는 이리인지, 껍데기는 목자이지만 속에는 절도요 강도인지, 신앙지도에 대해서 구별을 해야 된다. 이러면 인간에 대한 구별은 다 했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가르침이 더 바르고 옳고 은혜가 더 있다' 이렇게 종들과 종들을 구별해서 더 바른 지도를 받기 원하고, 더 바른 지도를 받도록 노력을 하고, 또 바른 지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셋째 거룩이다.
④ 지성소 = 법궤와 속죄소 (진리와 성령의 구별)
넷째로 지성소이다. 성소를 지나서 지성소이다. 지극히 구별할 곳이다. 지극히 구별할 것은 법궤와 속죄소와 그룹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해야 된다.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이 지성소 안의 구별이다.
지성소에는 법궤와 천사 옹호 위에 예수님의 세 가지 속죄로 된 속죄소가 있다. 하나님과의 불목된 것이 해결되고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이 속죄소이다. 법궤는 진리를 상징했고 속죄소는 예수님의 대속을 상징했다.
진리와 하나님, 진리와 영감을 구별해야 된다. 이것이 최고의 구별이다. 지성소의 구별이다. 이 이상의 구별은 없다. 여기서 최상의 구별을 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자기와의 사귐, 하나님과 자기와의 맺는 언약,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위치인 지성소는 아무리 위대한 성도의 사귐이라도 이 안에 들어오면 안 된다. 이 안에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제일 중심의 보호자, 자기의 제일 높은 위치의 보호자, 여기는 하나님만 모셔야 한다. 아무리 성도와 성도끼리 관계를 맺고 협동을 하고 어떤 역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끼여 놓으면 안 된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는 언제든지 그대로 보존하고 하나님 모신 마음은 아무 것에게도 내어 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환영하고 좋아하는 위치에는 어떤 성자라도 용납해서 안 된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되는 위치가 내 마음 안에도 있고, 내 행동 안에도 있고, 내 인격 안에도 있어서,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용납지 않은 이것이 밀실이요 골방이다. 이것이 지성소이다.
(사26: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하나님을 자기 인격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 마음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 생명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 행위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에게 최고의 위치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에 성령의 감화가 함께 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4가지 거룩은 첫째로 이방인과 교회를 구별하고, 둘째는 교회 안에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곧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고, 셋째는 교훈이나 신앙 지도에 있어서 지도자가 바른지 삐뚤어졌는지 구별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에 대해서는 최고의 구별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지성소에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서 자기가 아는 대로의 죄를 깨끗이 정리하면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려진 것이 틔어져서 자기 심령이 밝아진다. 심령이 밝아지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기를 진리대로 살게 만든다.
성경학자라고 해도 율법으로만 알고 복음으로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 진리를 인간 지식처럼 알았지 진리가 전능의 능력을 가진 진리인줄은 모른다. 진리가 자기를 어디서든지 능히 보호하고 세울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진리라는 것을 모른다. 진리의 외형만 알았지 진리의 권위는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성소에 들어가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고 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벧전3:21 하반절)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선한 양심은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니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넷째 거룩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거룩이다. 이것이 윤곽적 성전이다.
● 성막 공부 3장 (기구편)
성소 앞에 제단(놋제단)과 세수통(물두멍)이 있다. 성소 안에 등대(일곱등대)와 떡상(진설병상)과 금향로(분향단)가 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다. 지성소 안에 법궤(증거궤)와 속죄소와 그룹이 있다.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 성전 곧 교회 된 우리는 10가지 요소적 작용을 가진 행위와 마음과 인격과 자체가 되어야 한다.
① 제단(출27:1-8) : 대속을 입은 자가 또 전하려는 노력
성전 안에는 제단이 있다. 제단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 짐승으로 제사 드리는 것이 제단이다. 하나님 앞에 잘못 된 것을 용서받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받는 것이 제단이다.
성전 안에는 놋쇠로 만든 제단이 있다. 이 제단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성을 이루었다. 제단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것이 제단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진 것을 고쳐서 화합하는 것이 제단이요. 또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 제단이다. 이렇게 자기와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제단이다. 이 제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 안에는, 우리 마음 안에는, 우리 생활 안에는, 우리 인격 안에는, 우리 속성 안에는, 우리 사상 안에는, 제단이 있어야 된다. 제단이 있어야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잘 믿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실수한 것이 없는가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것이 제단이요 또 현저히 하나님 앞에 잘못된 죄가 없는가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것이 제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깨끗해야 된다. 놋으로 만든 제단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된다. 놋 제단이 있어야 성전 된 우리가 더러워지지 않는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이 없어서 성전이 절단 난 것이 아니다. 제단은 있었지만 제단답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여 성전이 절단 났던 것이다. 제단 생활은 인격을 기울여야지 인격을 기울이지 않고 입술로 형식으로만 하면 소용없다. 더럽고 가증스러운 제물이다. 그래서 사1:12에 보면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셨다. 제단은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 요제, 전제를 드리는 것이 제단이다.
○ 소제, 요제, 전제
자기와 자기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제사이다. 이것이 믿는 사람 속에는 언제든지 있어야 한다. 주여! 이 재물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 집도 당신의 것입니다. 이 회사도 당신의 것입니다. 나를 피로 값 주고 사셔서 당신 것이 된 내가 이 소유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늘 있어야 소제, 요제, 전제를 드리는 심령이며 인격이다. 생애이다.
○ 속건제
자기가 모르고 지은 죄와 실수로 지은 죄를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노를 풀고 용서함을 받는 것이 속건제이다.
○ 속죄제
자기가 뚜렷이 지은 죄를 예수님께서 대속해 주신 피 공로에 속량함을 받는 것이 속죄제이다. 속죄제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잘못된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속건제 속죄제이다.
○ 화목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불목 된 것을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목을 재계하는 것이 화목제이다.
○ 번제
자기 몸과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재인식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번제이다. 내 전부를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쓰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 번제이다. 나는 내게 대해서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고 그 대신 하나님께서 자유 하시도록 하는 생애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 번제이다.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다 맡겨 놓고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번제이다.
그러므로 제단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제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단인데 자기와 하나님과의 죄 문제와 다른 사람과 하나님과의 죄 문제에 있어서 해결하기 위해 희생하는 희생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주님께서 제단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대속 하신 것처럼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희생할 정신이 있어야 되고, 희생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희생하기를 원해야 되고, 희생하기를 노력해야 되고 또 실제로 희생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첫째가 희생 작용이다. 희생 작용이 있어야 제단이다. 제단이 있어야 성전이다.
② 세수통(물두멍:출30:17-21) : 언행심사의 깨끗케 하려는 노력
다음에는 세수통이 있다. 씻어서 깨끗케 하는 물통이 있다. 세수통은 상징적인 것인데 자기가 손으로 활동했든지, 발로 활동했든지, 입으로 활동했든지, 어떻게 언행심사의 활동을 했든지 항상 하나님 앞에서 깨끗이 하는 운동이 있어야 된다. 오늘 누구를 만나서 서로 교제하는 거기에 부정이 없었나? 말에 실수가 없었나?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리끼지 안 했나?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안 했나? 내가 기뻐한 기쁨이, 내가 근심한 근심이, 내가 웃는 웃음이, 내가 화를 내는 노함이 잘못됨이 없었나?
마치 물로 더러운 것을 씻는 것같이 자기의 신앙양심으로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깨끗이 양심으로 씻고, 말씀으로 씻고, 영감으로 씻어서 깨끗이 하려는 이 작용이 우리 인격 속에, 우리 사상 속에, 우리의 정신 속에 있어야 한다. 이래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수 있는 성전이다.
개인교회나 가정교회나 사회교회나 교회가 날마다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역사가 속에 있어야 된다. 깨끗하게 하는 역사가 없으면 껍데기 허우대가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멸망을 받는다. 그 교회가 세상 온갖 것을 다 구비했다 할지라도 깨끗이 하려는 것이 그 속에서 쉬지 않고 역사를 해야 안 망하지 깨끗이 없으면 망한다. 깨끗하게 하려는 결례통, 씻는 통, 씻어서 깨끗해지려는 운동이 교회에 역사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파멸이다.
세수통은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으로 자기를 깨끗케 해야 될 줄 알고,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깨끗하기를 노력하고, 또 깨끗해 져야 한다. 자기의 매일 생활을 살피면서 깨끗해져야 하는 것이 자기 의무인줄 알고 깨끗케 하려는 작용이 우리 속에 있어야 성전이다.
③ 등대(출25:31-39) : 모든 사람에게 옳은 행실로 감화를 주는 노력
다음에는 성소에 일곱등대를 두었다. 어두움을 환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 등대이다. 우리는 가정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혼자 있든지 둘이 있든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빛이 있어야 된다. 우리가 돈 중심, 자기 중심, 가정 중심, 살기 위한 목숨 중심, 사회 중심, 민족 중심, 국가 중심, 이런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성전 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애국도 하고, 애민족도 하고, 애가정도 하고, 애자기(愛自己)도 하고, 애사업도 해야 한다. 저 사람은 모든 일에 하나님 중심이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등대생활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이라, 자비라, 도덕이라 하는 것은 빛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에서 움직이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노력이 있어야 되고 또 보여주는 결실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성전이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기독자인 것이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이 어두우므로 우리는 세상에게 밝은 것을 보여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밝은 것을 보여 주도록 노력이 있어야 되고 또 결과가 맺어야 된다. 그러면 밝은 것이 어떤 것인가? 세상에는 돈 중심, 명예 중심, 직장 중심, 물질 중심, 민족 중심, 국가 중심, 사회 중심, 문화 중심, 가족 중심, 자아 중심, 별별 중심들이 많은데 이것은 어두워진 것들이다. 모든 것에 근원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고 피조물을 중심 하는 것은 인간이 원죄와 본죄로 타락하여 심령이 어두워져 그렇다.
온 세상이 어두운 세상인데 우리들이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물질 앞에서도 하나님 중심, 명예 앞에서도 하나님 중심, 감정 앞에서도 하나님 중심, 수치와 모욕 앞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면 생사 문제가 걸릴 때도 있다.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 등대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빛인데 이 빛을 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빛으로 살기를 원하고, 노력하고, 빛으로 산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큰 빛이 되든지 작은 빛이 되든지 빛의 작용이 있어야 등대이다.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있는 성전이다.
④ 떡상(출25:23:30) :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
다음에는 떡상이 있다. 떡상에 진설 된 떡은 하나님의 식물이다. 진설병의 떡상은 하나님께서 잡수실 식물이라는 뜻이다. 성전의 떡상은 성전 된 교회를 가르치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주신 교훈이다. 떡상의 진설병은 하나님의 식물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에 그것이 하나님께는 양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을 할 때에 하나님께는 그것이 양식이 된다.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만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지 다른 것으로는 안 된다.
떡상의 진설병은 하나님의 떡이며 제사장의 떡이다. 제사장이 그 떡을 먹는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게 잡수시고 제사장은 볼 수 있게 먹는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서 우리에게 분담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는 당신의 도움을 입어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한다. 이것이 있어야 성전이다. 하나님의 종들로서는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는 데에 주력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는 데에 능숙해야 한다. 또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진정한 협조가 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늘 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내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이것을 찾아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간절한 작용이 우리에게 있어야 성전의 떡상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일에는 자기 힘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주여! 나를 도우시옵소서 주의 뜻을 깨닫게 도와 주시고 깨달은 대로 실행하게 도와주옵소서 당신이 돕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깨달으며 돕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간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힘을 입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 작용의 역사가 있는 것이 성전이다.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실 수 있는 성전이다.
하나님의 뜻 속에는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었다. 영생도 들었고, 존귀도 들었고, 성공도 들었고, 평강도 들었고, 피난도 들었고, 복수도 들었고, 원수에 대한 승리도 들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되 당신의 뜻대로만 행할 때에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우리에게 온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 작용에 간절과 노력과 인내가 그 인격 속에 있어야 한다.
또 떡상이라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이 하나님 앞에 헌신할 줄 아는 헌신 역사가 있어야 된다. 우리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는 노력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운동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역사가 있어야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상이 있어야 한다.
자기들만 생각하고 하나님께 바쳐 사는 것이 없으면 구약 말년의 성전같이 우리 개인교회도, 가정교회도, 사회교회도 무너뜨려져서 파괴된다. 제자들 눈에는 아름다운 성전이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24:2) 하셨다.
⑤ 금향로(분향단:출301-10) :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명상과 기도의 노력
다음에는 금향로가 있다. 금향로는 향불을 피워서 올리는 것인데 이것은 성도의 기도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것이 금향로이다.
(계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기도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교제이다. 신인교제(神人交際)이다. 신인교제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고하는 것이 교제이며, 자기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을 의논하는 것이 교제이며. 두려운 것이 열이고 백이고 있어도 하나님과의 문제가 제일 두려워서 하나님으로 교제하여 해결되고 나면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목을 끊는다 해도 그까짓 것은 하나님과의 두려움이 해결이 되고 난 다음에는 보여 지지 않는 것이 금향로이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련성에 자극이 제일 크고, 충격이 제일 크고, 마음과 정성이 제일 많이 끄는 이 작용이 있는 것이 기독자의 인격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되어 있는 인격이다.
금향로는 기도의 단이다. 우리는 기도 생활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분주한 가운데에서 잊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섭섭해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찾아서 감사하고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인격요소가 있어야 된다. 사은의 작용이 우리에게 있어서 사은하는 기도,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잘못된 것을 찾아서 자복 하는 기도, 또 내게 있는 모든 사정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의논의 기도, 내 사정을 모두 고백하는 도고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또 우리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의뢰하고 바라면서 간구 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 그러기에 감사의 기도, 잘못된 것을 자복 하는 회개의 기도, 의논하는 도고의 기도, 하나님께 간구 하는 간구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 되고 또 기도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되고 또 실제로 기도를 해야 된다. 기도로 유명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유명한 생애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기도의 인격 작용이 있어야 된다. 이것이 금향로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⑥ 휘장(출26:31-37) :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루는 죄를 찾아 회개하려는 노력
그 다음에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경계선이다. 우리는 이 휘장이 있어야 된다. 예수님의 대속 공로로 우리의 영에 대해서는 휘장이 열렸지만 우리의 심신에 대해서는 휘장이 열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우리 마음과 몸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잘못됨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가로막고 있는 잘못됨을 계속 찾아야 한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가로막혀 있는 휘장이 없을 때는 벌써 더러워졌다. 자기의 잘못을 찾는 것이 없을 때는 벌써 죽었다 속화되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자기와의 가리워진 것을 발견하고 주님의 대속에서 해결을 짓고 보니 또 다시 하나님과 가리워진 것이 새로 보인다. 이렇게 가리워진 것을 찾아서 주님의 대속으로 해결 짓는 작용이 우리 속에 계속 있는 것이 성전이다. 이것이 깨끗한 성전이다.
⑦ 법궤(언약궤, 증거궤:출25:10-22) : 성경을 통해서 알고 그 효력의 결과를 입으려는 노력
다음에는 법궤(언약궤)이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곧 성경이 들어 있다. 구약은 처음 약속이며 신약은 새로 주신 약속이다. 구약에 자세한 면을 더 높여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 신약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교훈과 예언과 약속과 책망과 심판이 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께서 성전 된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훈 하신 말씀이 자기 인격 속에, 자기 사상 속에, 자기 마음 속에, 자기 생활 속에, 자기 활동 속에서 작용을 해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책망이 자기 활동 속에 작용을 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이 자기 활동 속에 작용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약이 자기 활동 속에서 작용해야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작용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법궤(언약궤) 곧 신구약 성경 말씀에서 교훈을 받고, 말씀에서 책망을 받고, 말씀에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과 인생과 그리고 금생과 내세의 모든 것을 배워서 알고 또 비판하고 평가해서 성경말씀을 자기의 법칙으로, 자기의 스승으로, 자기의 길로 삼아서, 성경과 자기와의 관계점을 활용하는 것을 원해야 되고 노력해야 되고 또 효력의 결과를 입는 것이 있어야 성전이다.
⑧ 속죄소(출25:20-22) :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자기로서 다하였을 때 하나님과 문제가 완전 해결
(출25:20-22)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다음에는 속죄소이다. 속죄소는 자기의 모든 죄를 주님의 구속을 힘입어서 해결 짓는 것이 속죄소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속죄소이다.
우리가 율법을 준행 하는 자가 되어야 사죄와 칭의가 건설되고, 사죄 칭의가 건설되어야 천군 천사의 옹위가 건설되고, 천군 천사의 옹위가 건설되어야 그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 하셔서 명령하시게 된다. 이것이 성전 된 우리들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보좌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설치되어야 그 위에 속죄소가 설치되고, 속죄소가 설치되어야 그 위에 천군 천사가 옹위 하고, 천군 천사가 옹위해야 그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 하시는 것이니 이것이 지성소이다.
우리들이 율법으로 정죄 받아 죽은 후에는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는 살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로만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천군 천사가 옹위할 수 있는 위치이며, 천군 천사가 옹위 하는 위치 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좌정 하신다. 따라서 율법으로 정죄 받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사죄를 입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 위에 속죄소로 뚜껑을 덮으라고 하셨다.
대제사장이 속죄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드린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에서 대형 대행하여 주심을 모형 한 것이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지성소에서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선포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 위 속죄소 위에서 내리는 명령이다. 율법 위에 속죄소가 있고 속죄소 위에 그룹이 있다. 율법 위 속죄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세계가 있다.
속죄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결합되는 것이 속죄소이다. 속죄소에서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실제로 화친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게 된다. 하나님과 화친 될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통해서 역사 하실 수가 있고, 자기는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은 자기 안에 거하시게 되고, 자기는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작용이 실질적으로 자기 사상에, 자기 인격에, 자기 정신에, 자기 주관에, 자기 관념에, 자기 본능에 역사 하는 것이 속죄소이다. 이것이 깨끗한 성전이다.
⑨ 그룹(출25:20-22) : 천사의 옹호 받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노력
그룹은 천군 천사를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 공로로 속죄함을 받은 자로 살면 천군 천사가 우리를 옹위한다. 속죄소 곧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살면 천군 천사가 옹위를 하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좌정 하시고 명령하신다.
속죄함을 받아 천군 천사의 옹위를 받는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좌정 하신다. 하나님의 보좌되는 우리 속에 성령의 감동과 진리의 말씀을 주신다. 이 요소적 작용이 있어야 그룹이다. 이것이 성전이다.
⑩ 속죄소 위 그룹 사이의 하나님(출25:20-22) : 하나님과 동행의 노력이 우리의 전인격과 생활에 있어야 깨끗한 성전이 되는 것이다.
지성소에는 법궤(율법으로 정죄) 위에 속죄소가 있고, 속죄소(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위에 그룹(천군 천사의 옹호)이 속죄소를 옹위하고 있고,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 하나님께서 좌정(진리와 영감)하신다.
하나님과 동행이 속죄소 위 그룹 사이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성전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완성은 이루지 못하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소들이 우리 속에 있어서 이 요소적 소원과 노력과 결과가 양적으로 많지 못할지라도 조금씩이라도 작용이 있어야 되고 결과가 이루어져서 가는 것이 성전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작용이 있는 것이 성전이다.
(결론)
그러므로 4가지 거룩과 10가지 요소적 작용을 하는 이것이 성전 된 우리의 인격이며, 사상이며, 정신이며. 행위이다. 이것이 성전 된 우리들이다. 우리는 4가지 거룩의 양이 많든지 적든지 있어야 하겠고, 10가지 요소적 작용이 많든지 적든지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4가지 거룩과 10가지 요소적 작용이 없으면 이스라엘 종교 말년처럼 더러운 성전이 되어서 믿어도 건설적 성화구원은 이루지 못하게 된다.
● 성막 공부 4장 (재료편)
(서론)
(출25: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예물은 상대방을 대접하는 성격으로 드리는 것으로서 장삿속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기쁘고 즐겁게 사례의 성격으로 드리는 것이 예물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예물적 성격으로 드려야 한다.
예물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갚을 수가 없어서 그 사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서 롬12:1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예물은 감사해서 사은으로 드려야 한다. 오직 자원적으로, 능동적으로, 사은적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실상을 나타내실 때에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자라게 해서 나타내신다. 그렇다고 진화는 아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실상은 성막이며, 성막의 실상은 성전이며, 성전의 실상은 교회이며, 교회의 실상은 하나님의 몸이며 하나님의 지체이다. 교회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내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주 하시는 교회를 알려면 성전을 연구하면 알 수 있고, 성전을 알려면 성막을 연구하면 알 수 있고, 성막을 연구하면 에덴동산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지상에서 이루어갈 최고의 완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몸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몸 안에 마음이 있어서 마음의 작용이 몸을 통하여 나타남과 같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내주 하셔서 하나님의 전지가, 하나님의 전능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교회이다. 이것을 성화라 한다.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셨으니 성전을 알려면 성막을 연구하면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몸, 하나님의 지체되는 요소는 어떤 요소라야 되는지를 성막 짓기 위해서 드린 예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는 요소,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는 요소, 하나님의 몸, 하나님의 지체와 같이 쓰여 질 수 있는 요소 이것이 성막의 재료이다.
(출25:3-9)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본론)
1. 금 (영원성)
금은 불변성의 것을 말한다. 육체 이스라엘 백성은 금을 예물로 바쳤다. 우리도 금을 바쳐야 한다. 변하지 않는 마음을 바쳐야 한다. 그렇기에 변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변동 없는 일을 한다. 말에는 책임을 진다. 외유내강해야 한다. 외부는 둥글고 부드러우나 내부는 구원의 줏대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웃어도 아무리 슬퍼도 속에 있는 구원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큰 유익이 오고 아무리 큰 손해가 와도 변치 않아야 한다. 바다 위에는 파도가 일어나도 속에는 잔잔한 것 같이 변동이 없어야 한다.
금은 영원성의 것을 말한다. 세월이 갈수록 변하는 것, 늙을수록 없어지는 것,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는 것, 죽은 후에 심판 받을 것, 이런 것은 성전 재료가 되지 못한다. 또 자체의 성품, 욕심, 사랑, 지혜, 지식, 행동, 기쁨, 평안이 일시 있다가 없어질 것은 하나님의 성전 재료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영원성을 가져야 한다. 영원성을 가진 속성이라야 참 속성이며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성화 된 속성이다. 선이라 해도 영원성을 가진 선이 아니면 성전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 영원성의 사람, 영원성의 속성, 영원성의 인격, 영원성의 쾌락, 영원성의 평안이라야 하나님의 지체가 될 요소이다. 영원성의 것을 하되 원하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단 마음으로 해야 한다.
우리 자체의 요소가, 우리 행동의 요소가, 우리 일의 요소가 영원성을 가진 것이라야 성전 재료가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내주 하여 동거 동행할 수 있다. 영원성이 있는 것이라야 하나님께서 동거 동행하시고 그를 통해 역사 하실 수 있다.
2. 은 (거룩성)
銀은 거룩성의 것을 말한다. 결백보다 더 깨끗한 것이 성결이며. 성결보다 더 깨끗한 것이 거룩이다. 거룩은 하나만 되는 참을 선택하여 취한 것이 거룩이다. 모든 것을 생각하여 구별하고 구별하여 완전을 선택한 것이 거룩이다. 거룩성을 가진 것이라야 하나님과 동거 동행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재료가 된다.
은은 성결 깨끗을 상징한다. 마음, 정성, 봉사를 깨끗이 해야 한다. 하나님께 연보를 해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드리고 다른 생각이나 야심이 없이 드려야 한다. 사교성으로 드리는 것은 뇌물이며 깨끗한 것이 되지 못한다. 직분의 결백, 신용의 결백, 교제사교의 결백, 인격의 결백, 물질의 결백, 남녀 정조의 결백을 가져야 한다. 결백은 자기의 힘이 된다.
거룩성을 가져야 한다. 깨끗은 구별에서 온 것이다. 아무리 깨끗하다 해도 구별에서 온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깨끗의 광채가 거룩이다. 깨끗의 결과가 거룩이다.
3. 놋 (연단성)
놋은 연단성을 말한다. 놋은 연단하고 닦으면 광채가 잘난다. 우리가 세상에서 연단을 받아 어떤 사건과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요동치 않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성전 재료가 될 수 있다. 어떤 시련 파란곡절이 와도 요동치 않는 연단을 겪어야 한다.
모든 일에 연단으로 바쳐야 한다. 한번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말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서 이루어진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신다. 가다가 오다가 이루어지는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연단한 것을 원하신다. 계1:15에 보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하셨다. 세상에 있는 모든 파란을 겪어 이제는 '나 같은 죄인이 없습니다.' 하는 이런 상한 심령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참 괴수 죄인임을 아는 그 마음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그 사람이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등용하시지 않으신다. 그 충성이 영원성이 있어야 하고 그 충성이 거룩성이 있어야 하고 그 충성이 온갖 시련을 받아 연단한 충성이라야 한다.
4. 청색실 (생명성)
청색은 생명성을 말한다. 생명은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진 것이 생명이다. 육체의 생명은 짐승의 생명과 꼭 같다. 참 생명성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진리와 영감으로 결합 된 것이다. 이렇게 결합된 움직임이 영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자체가 삼합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성전 재료가 된다. 삼합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동거동행 하실 수 있고 삼합이 되어야 그 삼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수 있다. 청색실 생명성은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가 결합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몸의 지체인 손을 움직여 종을 치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원을 자유자제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지체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생명성이 있어야 하나님의 지체 하나님의 몸이 될 수 있다. 청색실이란 자기 일생의 생활이 청색실로 상징한 생명성을 가진 생애가 되어야 한다. 청색실로 상징한 생애가 아니면 심판을 받는다. 영생을 못한다.
성령님과 진리와 사람과 그 사람의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이 산 행동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산 행위인가? 산 사랑인가? 산 기쁨인가? 구별해야 한다. 행동도 산 행동과 죽은 행동이 있고, 영광도 산 영광과 죽은 영광이 있고, 기쁨도 산 기쁨과 죽은 기쁨이 있고, 노(怒)도 산 노와 죽은 노가 있다. 죽은 것은 마귀와 불법과 자기 행동과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 죽은 것이다. 산 것은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하나님의 뜻인 진리와 자기와 한 덩어리 된 것이 산 것이다. 산 것으로 행동한 행동이라야 하나님께서 내주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지체로 사용하실 수 있다.
청색실 생명성을 말한다. 산 것, 생명적인 것에 속한 것을 말한다. 행동도, 말도, 지혜도, 사랑도 산 것이라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진리와 성령이 역사하시는 데에 피동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이 진리와 영감적이라야 한다.
5. 자색실 (영광성)
자색실은 영광성을 말한다. 먼저 자기 자체가 온전해야 하고 그 다음에 자기 자체의 온전으로 다른 사람이 그 온전의 혜택을 입을 때에 비로소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자체의 좋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라야 성막 재료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완전하다 해도 자기의 완전함이 이웃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다면 영광은 없다. 영광성은 자체가 좋을 뿐 아니라 이웃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효력과 도움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야 영광성이 된다. 자기만 좋으면 소용이 없다.
자색실을 말하는 것은 자기가 가진 물질이 이웃에게는 도움이 되어서 환영, 칭찬, 감사로 여기는 면이 있어야 영광성을 가진 물질이 되어서 성막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을 영원성 있게 활용(금), 거룩성 있게 활용(은), 연단성 있게 활용(놋), 생명성 있게 활용(청색실), 영광성 있게 활용(자색실)해야 한다.
자색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온전해짐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릴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또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해 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다른 사람이 온전케 되어 감사할 때에 그것이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해진 우리를 보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런 영광성이 있어야 성전 재료를 가진 것이다.
자색실은 영광성을 가진 것을 말한다. 그 생애가 영광성을 가진 생애라야 한다. 너희 생애가 너희 생애로 말미암아 타인이 유익 받은 것이 많아야 영광성을 가진 생애가 된다. 영광성을 가진 생애라야 하나님께서 계실 수 있는 성막 요소, 성전 요소, 교회 요소, 하나님의 지체가 될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성질 성품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유익을 보고 혜택을 입었다면 그 성질 성품에 하나님께서 계실 수 있는 성전 재료가 된다.
6. 홍색실 (충성성)
아가서에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하는 홍색실은 맡은 의무와 책임을 어떤 형편에서도 죽는 힘을 다 바쳐지사충성( 地死忠誠) 하는 것을 말한다.
(아4:3)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홍색은 건강을 말하는 것이니 충성을 상징한다. 얼굴이 붉으면 건강하게 보임 같이 인격이 건강하면 일을 계속한다. 충성한다. 충성성이라는 것은 인내성이라는 말과 같고 계속성이라는 말과 같다. 실이라는 것은 베틀에서 날과 씨로 베를 짜듯이 충성성, 인내성, 계속성의 재료들을 엮어서 자기 생애를 이루어야 한다. 이 이력으로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일은 잘하지만 두 가지 일을 맡기면 넘어지는 자가 있다. 이는 약해서 계속성 충성성이 모자란 것이다. 계속성 충성성이 있어야 성전 재료가 된다.
7. 가는 베실 (세밀성)
가는 베실은 세밀성을 말한다. 실이라는 것은 짧으면 못쓰고 길어야 한다. 실을 가지고 베틀에서 날을 놓고 씨를 엮어서 베를 짜는 것이다. 금, 은, 놋,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이 일시 번득거리면 안 되고 베를 길게 짜듯 일생 가져야 한다. 실을 가지고 베를 짜는 것이다. 사람이 베를 짜는 것처럼 일생을 두고 짜는 것이라야 하나님께서 무궁한 나라에서 그 재료를 들고 쓰실 수 있다. 옳은 성도의 생애를 세마포 옷으로 비유했다.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자기 일생의 생애 모든 면으로 세밀성이 있어야 하나님의 성막에 등용된다. 세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세밀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세밀한 것을 싫어하는 자는 방탕의 요소이다. 작은 것이 없이는 큰 것이 있을 수 없다. 세밀 없이 큰 것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동거 동행하실 수 있는 성막의 재료는 세밀성이 있어야 한다. 생각을 세밀히, 계획을 세밀히, 비판을 세밀히, 모든 면에 세밀성을 가져야 한다.
성경에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하셨다. 기독교는 작은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세밀해야 한다. 철두철미해야 한다. 작은 부패성이 큰 죄를 범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한다. 지극히 작은데 충성 없는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지 못한다.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가는 베실 공들여 짠 베, 자기의 목표나 계획이나 생활법칙을 공들여 짜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언제든지 규칙적이고 진실 되고 조직적이고 세밀한 생애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8. 염소털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 등은 희생의 제물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의 제물을 받으신다. 염소털은 염소를 잡지 않아도 털을 깎을 수 있다. 염소털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진 털이다. 염소는 행위가 사납고 난폭하다. 성경에는 염소를 못 쓸 것으로 말씀해 놓았다.
(마25:32-33)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양과 염소를 갈라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했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를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하셨다.
염소털이라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기를 위해서 노력하고, 자기를 위해서 생각하고, 자기를 위해서 애쓰고 활동했는데, 이제는 자기를 위하는 요소를 낱낱이 다 깎아 버리고 하나님께 바칠 때에 성막에 쓰이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자기 위주로 살던 것을 하나님께 바쳐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붙들고 역사 하신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바칠 때에 오천 명이 먹고 남음이 있었다.
염소털을 깎아 바쳐라 하는 것은 염소와 같이 자기위주로 살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쳐야 하나님의 지체, 하나님의 몸, 하나님의 성막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 위주로 살던 것을 회개하여 이제는 하나님 위주로 사는 것이 염소털을 예물로 바치는 것이다. 이것이 있어야 성전 짓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염소가 저 위해서 털을 가진 것 같이 우리도 과거에는 자기를 위해서 실력, 영광, 평온, 등 여러 면으로 보호의 털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위해 노력하던 것을 주님을 위해 사는 생애로 노력하는 것이 염소털이다.
9.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
염소털은 살아있어도 바칠 수 있지만 숫양의 가죽은 양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깨달아 수양과 같이 자기를 죽여 하나님의 성전 덮개를 위해 바치는 것이다. 자기를 보호하고 있던 가죽은 벗겨서 하나님의 성막을 덮었다. 하나님의 교회를 덮기 위해서 자기가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성전 재료로 사용하신다. 자기가 죽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덮는 것이다. 자기가 살면 하나님의 교회는 덮어 가리지 못하고 발가벗겨진다. 하나님의 교회를 덮어 가리기 위해서 자기가 죽는 것을 가르쳐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이라 말하는 것이다.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은 전신 전체를 덮고 있는 가죽을 벗겨 드리는 것이다, 털은 깎아도 양이 안 죽는다. 그러나 가죽을 벗기면 죽는다. 과거에는 자기 위해 노력하던 것을 이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생명과 몸을 다 바치는 것을 숫양의 가죽으로 상징했다. 과거에는 자기 생명까지 기울여 자기를 보양했는데 이제는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치는 순생 순교의 생애를 가리켜서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이라 하셨다. 이 재료가 있어야 성전이 지어진다.
10. 해달의 가죽
물개 종류인데 바다에서 빠르고 용기가 있는 것이 해달이다. 해달의 가죽은 털이 윤기가 있다. 바다에서 자기를 보호하던 가죽을 죽여 바치는 것처럼, 죄악 세상 바다에서 자기를 위해 살던 자기를 죽여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복음운동으로 바치는 것이 있어야 성전이 된다. 이것이 성전 덮개가 되는 해달의 가죽이다.
11. 조각목
조각목은 우리 몸을 상징한다.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 같은 것인데 성전 재료에 안 쓰이면 화목(火木)밖에 될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안 되면 무가치하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 그러나 우리 몸을 성전 짓는데 바치지 않고 세상 썩어질 것에 이용되면 소멸될 것밖에 안 된다. 성전 재료를 다 바쳐도 우리 몸을 안 바치면 안 된다.
12. 등유
등유는 등불을 켜는 기름이다. 우리는 세상에 빛을 나타낼 수 있는 영감의 능력을 받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 모든 죄악의 세력을 헤치고 나가는 영감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 등유를 말씀 한 것은 어디서나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을 나타낼 수 있는 영감의 능력을 등유로 상징했다. 모든 것에 모범이 되고 감화를 주고 모든 것의 실상, 정색, 정질을 들어낼 수 있는 영감의 능력을 등유라 했다.
등유는 성전을 밝히기 위해 등불을 켜는 재료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의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영감을 받아야 한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럴 때에 자기가 받은 영감을 가지고 모든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신앙 행위를 하는 것이 등대의 빛이다. 열 처녀 비유 중에 다섯은 기름 준비하여 밤중에 신랑을 맞이했다. 밤중은 모든 신앙 생활하기 어려운 절정을 말한다.(마25:1-13)
평소에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어려움이 올 때 빛을 잃으면 평소에 잘 산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평소에 수절을 잘 지킨 정절부인이 어려움이 올 때 정조를 빼앗겼으면 어떻게 빼앗겼던지 자기 정조는 빼앗긴 것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영감과 진리를 잃어버리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다.
아가서 4:6에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하셨다. 날이 기울 때는 그림자가 다소 있지만 해가 아주 넘어가면 그림자가 없다. 전부가 까맣게 된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도 우리는 사랑하는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신체적, 가정적 어려움이 있다. 이것을 어두움이라 한다. 이럴 때 밝히 비추도록 미리부터 기름 준비를 해야 한다. 기름 준비는 첫째가 기도이며 둘째는 어떤 어려움에도 자기가 가진 빛의 행위를 양보하지 않고 빼앗기지 않을 때 기름을 준비한 것이다.
평소에 영감의 능력으로 생활하는 것이 기름준비이다. 조그만 어려움에 요동치 않으면 큰 어려움에도 요동치 않는 사람이 된다. 사소한 일에 감정으로 움직이고 의를 계속 못하면 큰 어려움에도 계속 못한다. 그렇기에 자기에게 순서적으로 오는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연단을 받아야 한다. 사소한 어려움에도 영감을 배반치 않는 것이 어두운 환란 때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는 기름이다. 등유이다. 등유라는 것은 세상에 빛을 나타내는 성령의 감화 감동인 영감을 말한다.
13. 관유에 드는 향품
향은 퍼져서 나간다. 성경에 향을 덕이라고 했고(믿음에 덕, 벧후1:5) 또 기도라고도 했다.(계8:3) 덕과 기도 이 두 가지는 한 가지이다. 그것은 기도에서 덕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나무라 함은 감나무가 있어야 감이 열림과 같이 기도라는 나무가 있어야 덕이라는 열매가 맺혀진다. 기도라는 나무가 없으면 덕이라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 기도
기도는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격 교제를 말한다. 교제는 둘이 합하여 하나 되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과 자기가 합하여 하나를 이룸이 기도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시고 자기는 단독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기와 함께 있으면서 순종함이 기도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함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이지 말고 하라는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간구 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상대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이 기도이며, 깨달은 것을 느끼는 것이 기도이며. 깨달은 것을 소원하는 것이 기도이며. 깨달은 것을 결심하는 것이 기도이며. 결심한 대로 행하는 것이 기도이다.
○ 향품
향이라는 것은 뿌리면 향기가 난다. 향은 감화를 주는 것을 말한다. 향은 자기 아닌 상대방에게 따뜻하게 혜택을 입히는 것이 향이다. 그래서 은덕이라 한다. 우리가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빛은 있으나 덕이 없다. 또 저 사람은 덕은 있으나 빛이 없다 이렇게 말을 한다. 빛은 옳고 그른 것을 밝히는 것이고 덕은 상대방에게 감화를 주는 것이다.
○ 관유
관유라는 것은 기름에 향을 부어 제조한 것이다. 관유를 바른 것은 다 거룩해진다. 등유를 먼저 말하고 관유를 뒤에 말씀했다. 빛을 나타내는 등유와 덕을 나타내는 관유를 말씀하셨는데 등유를 먼저 말씀하셨다. 등유는 불을 켜는 것이고 관유는 성전 기구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윤기 있게 하는 것이다.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바쳐서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교회를 윤택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들어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인자를 들어내는 것이 관유라 할 수 있다.
관유는 기름을 하나님께 바쳐서 윤기 있게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사참배 때에 자기 생명이 끊어져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계명을 지켜 나간 분들이 계신다. 어떤 분은 너희에게 몸을 맡겼으니 찢어 먹든지 볶아 먹든지 하라 하면서 신사참배를 이긴 분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의인을 죽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호통을 치며 이긴 분도 있다. 또 어떤 분은 하루 세 번씩 옥중에서 예수 천당하고 외치는데 맞아도 웃으면서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하면서 승리를 한 분이 있다. 첫 번째 분은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낸 자라 할 수 있고, 두 번째 분은 하나님의 엄위를 나타낸 자라 할 수 있고, 세 번째 분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자(仁慈)를 나타낸 자라고 할 수 있다.
성전에 등유가 먼저 있고 관유가 있다. 밝히는 빛이 있었고 향기도 있었다. 성전 된 우리들은 믿음을 가지고 또 신덕을 가져야 한다. 등유인 선지면(先知面)을 먼저 주력하되 또 관유인 덕면도 겸해야 한다. 덕도 귀하기 때문이다.
● 성막 공부 5장 (건축편)
(출25:8-10)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성소의 길이는 이 규빗 반, 폭은 일 규빗 반, 높이는 일 규빗 반이다. 폭과 높이는 같은 척수이다. 이리 재어도 저리 재어도 같은 척수이다. 즉 사랑으로 재어보니 사랑이요, 진노로서 재어보니 진노이다. 이 모퉁이는 사랑이요 또 이 모퉁이는 진노이다. 이리 재어보나 저리 재어보나 같은 것이라야 한다. 사랑의 잣대에는 맞으나 진실의 잣대에는 맞지 않으면 거짓 사랑이며 진노의 잣대에는 맞으나 사랑의 잣대로 맞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척수대로 법칙대로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도대로 되어야 한다. 우리 인격의 팔방을 측량하나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대로라야 한다.
(출26:1-3)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매폭의 장은 이십팔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하고
1. 앙장은 성막 옆을 두르는 천막이다
성막을 지을 때 모든 척수가 하나님의 설계대로 맞추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루어 가는 성화구원을 상징한다. 인격 성화에 있어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지시하신 그대로의 생활과 인격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해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들어 질 수 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계시고 영광 받는 것인데 척수가 틀리면 헛일이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뜻대로 순종해야 ㅎ2ㄴ다. 자기의 현재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보면 감옥에도 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보면 부자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해서 꼭 부자가 되고 꼭 거지가 되고 하는 것을 자기가 판정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조절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죽음의 길에 갈지 모른다. 우리는 자기의 처지에서 하나님의 법도대로만 행할 것뿐이지 자기가 주동이 되고 자기 스스로의 소원이나 계획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설계와 척수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심대로라야 한다. 이런 역경에서는 이런 사람으로 이런 속성으로, 저런 역경에서는 저런 사람으로 저런 속성으로 자라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데 순서를 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대로 따라 가다 보면, 자기의 신앙양심대로만 지켜 행하다 보면, 자기에게 부딪히는 것이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척수를 주신 것이니 그대로만 건설할 것뿐이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자 하면 안 된다.
2. 성막을 짜는 데는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는데 그룹을 공교히 수를 놓아서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청색은 생명성을 말하는 것이므로 생명적이라야 한다. 자색은 권위성를 말하는 것이므로 권위적이라야 한다. 홍색은 희생성을 말하는 것이므로 희생적이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처지 저런 처지로 인도하시는데 이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척수이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가면 하나님의 설계와 척수대로 아름다운 성막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척수하신대로 장막의 베를 짜는데 청색, 자색, 홍색으로 짠다. 또 여기에 천사의 그룹을 수놓아 짠다. 우리는 이런 처지 저런 처지에서 하나님의 인도대로 생활하되 생명적이며 권위적이며 희생적이며 하나님의 심부름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에게 오는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척수임으로 이 척수대로 만들어야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성막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막을 짜는 데는 언제나 생명적이라야 한다. 진리와 영감 역사에 피동 되는 것이 생명적이요. 신적요소요 이것이 곧 교회이다.(청색실) 또 날마다의 생활이 진리와 영감에 피동적이며 날마다의 생활이 왕권적 주권적이라서 아무도 변개치 못하는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께 피동 되면 만물에게는 주권적이 된다.(자색실) 또 모든 것이 희생적이라야 한다. 교회의 희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랑의 성격이라야 한다.(홍색실) 그룹을 넣어서 짜야 하니 하나님의 심부름적이라야 한다. 가늘게 꼰 베실이라야 한다. 모든 면에 세밀하게 하여서 성사(成事)가 되도록 해야 한다.
에덴동산> 성막> 성전> 교회>로 나타났다. 신약시대 교회를 성막에 붙일 수 있다. 곧 개인 신앙인격의 상징이다. 성막은 우리의 신앙인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설계와 척수에 맞아야 한다. 여기에 맞추는 데는 생명적이며. 권위적이며. 희생적이며. 심부름적이라야 한다.
● [(출26:4-6) 그 앙장의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앙장 말폭 가에 고 오십을 달며 다른 앙장 말폭 가에도 고 오십을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대하게 하고 *금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앙장을 연합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성막 베를 서로 연결하는 고를 만드는데는 청색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매 폭을 연결시키는 곳에는 청색이라야 합니다. 요동성(搖動性)이 많은 곳에는 청색으로 했으니 곧 진리와 영감적 이라야 합니다. 업을 바꿀 때나 이사할 때에나 다른 환경을 만날 때에는 진리와 영감적이라야 합니다.
또 금으로 갈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불변적이요. 후회 없는 것이라야 합니다. 착한 양심대로 나아가면 엎어져도 후회가 없습니다. 마음이 든든합니다. 신앙양심을 쓰지 아니할 때는 공포와 비겁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 [(출26:11)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그 고를 꿰어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또 놋으로 갈고리를 만들어 고를 꿰어 막을 연결하게 했습니다. 놋은 연단을 말합니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자꾸 연단 하여 과거의 신앙경험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심각한 재고로서 진리와 영감적 연결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심각한 연구에서 변개 할 것이 없고 후회할 것이 없는 것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 [(출26:14)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지니라]
붉은 물 드린 수양의 가죽으로 성막 덮개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전부가 예수님의 대속 공로의 혜택 밑에 있어야 합니다. 생명, 권위, 진리와 영감, 하나님 심부름꾼이 되는 것도 떡상도 등대도 이런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공로의 혜택 아래에서 됩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피 흘려 대속 하여 주신 희생 밑에서만 되어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 성막 공부 6장 (공과편)
제목 : 하나님의 성전
본문 :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요절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6)
1. 성전의 유래는 에덴동산으로 표시하셨고 그 다음 성막으로 표시하셨고 그 다음 성전으로 표시하셨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교회로 표시하셨습니다. 표시하신 이름은 각각 다르나 실상은 같고 다만 형태는 각각 달랐습니다. 처음은 장소 다음은 건물 마지막은 성도로서 외형은 다르나 하나님께서 내주 하심의 은혜 역사는 같았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집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아무 형체는 가지지 아니하시고 전지 전능의 주권자, 완전자, 영원자, 대주재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는 이렇게 크고 충만하고 무한하고 영원함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더러워지면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멸해지고 우리가 깨끗하면 하나님의 충만함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나를 통하여 나타나는 모든 것은 완전 영원의 것으로 생애 하게 됩니다.
3. 깨끗하게 되는 것은 사죄 받은 자로 죄와 상관없이, 칭의 받은 자로 의롭게,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하나님과 함께 동하고 정하는 자가 되면 깨끗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정상의 것이니 여기에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다 나타나 영생의 것들이 됩니다.
제목 : 성전
본문 : 마태복음 24장 1절~2절
요절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6)
1. 육체의 이스라엘은 성전을 더럽힘으로 비참하게 멸망을 받을 것을 주님이 인용하셔서 신약교회의 말년 곧 예수님 재림 때에는 성전을 더럽힌 것이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을 거울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를 더럽히면 하나님도 우리를 멸하시고 세상도 우리를 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성전으로 깨끗해지면 세상도 우리를 위하기만 하고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십니다.
2. 성전의 구조는 밖마당, 성소, 지성소, 삼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또 그 안에는 제단, 세수통, 등대, 떡상, 금향로, 휘장, 법궤, 법궤 위의 속죄소 곧 그룹 사이의 속죄소, 속죄소 위에 그룹, 속죄소 위 그룹 사이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은 성전의 신령한 면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의 구조를 가지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정신과 사상과 지식과 생활의 보이지 않는 요소를 말씀하셨습니다.
3. 우리는 위에 말한 열 가지 인격 요소와 행위 요소가 구비되어야 합니다.
제목 : 성전의 구조
본문 : 마태복음 24장 1절~2절
요절 :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24:2)
1. 성전의 구조
1)이방과 성전: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
2)성전 밖마당: 신자와 신자의 구별
3)성소: 하나님의 참 일꾼과 거짓 일꾼의 구별
3)법궤와 속죄소: 진리와 성령의 구별
2. 성전의 기구
1)제단 : 대속을 입은 자가 또 전하려는 노력
2)세수통(물두멍) : 언행심사의 깨끗케 하려는 노력
3)등대 : 모든 사람에게 옳은 행실로 감화를 주는 노력
4)떡상 :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
5)금향로(분향단) :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명상과 기도의 노력
6)휘장 :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루는 죄를 찾아 회개하려는 노력
7)법궤(증거궤) : 성경을 통해서 알고 그 효력의 결과를 입으려는 노력
8)속죄소 : 대속을 입고 자기로서 다하였을 때 하나님과 문제가 완전 해결
9)그룹 : 천사의 옹호 받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노력
10)속죄소 위 하나님 : 하나님과 동행 이상의 노력이 우리의 전인격과 생활에 있어야 깨끗한 성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이스라엘 종교 말년처럼 불결한 성전으로, 믿어도 건설구원은 이루지 못합니다.
제목 : 교회 척량
본문 : 요한계시록 11장 1절~2절
요절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 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11:1)
<서론>
요한계시록은 신약시대의 종말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65권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전 밖마당은 척량 하지말고 이방인에게 주어 짓밟히게 하라 하셨고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만 척량 하라고 하셨습니다.
척량 하지말고 버려 두라 하심은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어떻게 행동할지라도 관리 하지말고 부패해질 대로, 탈선될 대로, 속화될 대로, 범죄 할 대로 방임 포기해 두라는 말씀이니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참 척량 못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간섭 없이 버림받는 자라면 택한 자로서는 그 이상 더 큰 화와 불행은 없습니다. 이방에게 짓밟히게 한다는 말씀은 세상의 이용물과 세상에게 천대받는 것과 무시당하는 세상의 종이 되는 것을 말씀하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성전 밖마당이 될까 심히 두려워하며 기도하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간섭과 안보와 양육과 금생과 내세의 영광의 구원과 축복을 받을 성도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성도들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인가 공부하겠습니다.
2. 성전 생활은 자기의 마음과 몸의 행동과 소유와 사업, 이 모든 것들이 창조면에서 다 주님의 것들이요 또 타락해서 구속하심으로 인하여 주님의 것이 되어진 이 사실을 깨닫고 주님의 것으로 보관하고 있는 자이며 그 모든 것 안에 주님이 내주 하셔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복종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성전 생활입니다.
제단 생활은 영원한 멸망에 있는 자기를 주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구속하신 것을 깨달아 다시는 멸망의 행위 곧 사욕과 주관과 자율대로 행동하던 것을 점점 죽여 주님께 바쳐 주께서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인간구원 역사에 쓰시도록 헌신 생활이 제단 생활입니다.
경배 생활은 세상의 모든 거짓부리 사람이나 어떤 신이나 만물이나 그것들이 하나도 창조에도 보존에도 육성에도 실권 없는 거짓부리가 마귀와 협동한 이 사실을 깨닫고 자존자이시며 창조주이신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섬겨 모든 것을 주님과만 의논하고 해결을 가지려 하는 것이 경배 생활입니다.
3. 위에서 말한 이 세 가지 생활은 하나님께서 세밀히 간섭하시고 잘못되었을 때는 권유도 위로도 책망도 타일러 주시기도 징계도 하셔서 세상은 모르나 점점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맞는 참 성도로 성화 되어 갑니다.
이 세 가지 생활이 이루어진 것만큼 그의 말과 행동은 권위가 있어 세상은 모르나 실은 미래와 재림 후 영원은 이런 성도들의 호소에 주권 되어 영원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자로 성장되는 것입니다.
제목 : 성전 건축 안 하는 신자
본문 : 학개서 1장 2절~11절
요절 :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학 1:5)
<서론>
성경에는 예수님 믿는 사람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난다고 하셨고 항상 머리되고 위에만 있고 전부와 전신에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 때문에 손해 본 것은 백 배나 더 많이 보상하여 주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믿는 사람들이 형편없이 불쌍한 자가 되어 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이 큰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론>
1. 기독자가 모든 인류 중에 제일 큰복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수 있도록 우리가 성전이 되도록 힘써야 할 터인데 우리가 성전 되는 일은 다 뒤로 미루어 놓고 저 잘 살라고만 분주하고 전심 전력하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없고 안타깝기만 하십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기 망할 길만 가니 복을 못 받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모실 성전을 안 짓고 자기의 전심 전력으로 저 잘 살기에만 힘쓰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2. 성전을 짓지 않는 기독자가 어떻게 되는지 자기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하셨습니다.
1)학개 1장 6절에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다섯 가지 재앙을 말씀하셨고.
2)학개서 1장 9절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버렸느니라고 하신 재앙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3)또 학개 1장 10절-11절에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고 열 두 가지 재앙을 말씀하셨습니다.
3. 성전을 짓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가 알아보기로 합시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야만 우리를 복되게 하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은 자에게는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이 녹는 것처럼 우리가 대속을 입지 않고 어두운 죄인으로 있으면 빛 되신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망하는 고로 오시지 못하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성전은 우리 눈, 귀, 입, 손, 발, 마음, 생각, 욕심, 뜻, 지식, 성품, 감정, 정신 같은 것들이 성전의 요소인데 이 요소의 움직임과 그 자체가 세 가지 대속을 입고 살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 성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와 마음의 각 요소가 ①말씀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고 ②심신 요소가 영감 순종하려고 애쓰지 않고 ③심신 요소가 하나님 버리고 피조물과 하나 되기를 예사로이 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 성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 가지에 전심 전력 안 하고 제 욕심대로만 하면 망합니다. 우리는 뜨겁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제목 : 성전 건축
본문 : 학개 2장 1절~9절
요절 :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9)
1. 육체의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석방에서 성전을 건축하다가 방해가 많음으로 중단하고 자기 집에만 열중하였으므로 그 자체들과 가정과 사업과 소산 전부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비참하게 되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망하는 이유가 성전 건축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니 방해를 두려워 말고 성전 건축만 하라 모든 면을 축복하여 하늘, 땅, 바다, 육지, 열국, 전부를 너희들을 위하는 것이 되어지도록 진동시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담대히 성전을 지은 이후 이 축복을 실지로 받았습니다.
2.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이 된 우리들도 신령한 성전 건축을 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여 온갖 경영과 활동을 하나 그것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축복이 없고 세상에게 짓밟히는 비참이 오는 것은 이 계약대로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전을 통하여 육체의 이스라엘이나 신령한 이스라엘은 축복을 받고 성전 짓지 아니함을 통하여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실 성전 짓는 일에 모든 것을 두려워 말고 담대히 지어야 합니다.
3. 성전 짓는 것은 우리 자체와 우리의 언행심사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거리끼는 것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맞도록 만드는 것이 성전 건축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요, 빛이요, 공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거리끼는 것이 있는데 가면 멸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에 가면 축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멸할 수밖에 없는 거리끼는 것이 우리 마음에나 소원에나 행동에 있을 때에는 들어오시지 못하시니 성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성전 지은 후에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또 성전을 지으면을 다 형통하고 축복 받습니다.
- 2004. 08. 29∥김반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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