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정리) 내 양을 먹이라

2014.06.0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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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양을 먹이라

  선지자선교회

본문 : (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 디베랴 바다에서 조반

 

디베랴 바다에서 조반을 제자들과 함께 먹은 후에 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 조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먹은 조반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먹기도 하시고, 또 같이 육으로 동행하시기도 하고, 또 서로 육으로 만지기도 하시고 교제하기도 하시고, 또 안 보일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고, 그런 몸으로 부활 하셨는데 우리도 부활하면 그런 몸으로 부활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그렇지 필요가 없을 때에는 보이지 안할 수도 있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2. 요한의 아들 시몬아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같이 조반을 자시고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시몬은 베드로가 되기 전 이름입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성신의 감동을 받았을 때에 주님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줬고 시몬은 그전 이름입니다. 그전 이름을 부르면서 말씀하시는 것은 물론 중생돼서 성신의 감동 받은 뒤에는 말할 것이 없지마는 옛사람으로 돌아가기 쉬운 고로 옛사람 이름을 불러서 지금 말씀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은 베드로가 새사람 되고 난 다음에 얻은 새 이름이 아니고 옛 이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옛사람으로 돌아가면 그만 하나님의 양떼를 사랑하다가 양떼 사랑할 마음이 하나도 없고 그만 양떼에게 이제까지 자기가 희생하고 봉사한 것이 원통하고 아깝게만 돼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명을 바쳐 교회를 세워 놓고 마귀의 시험에 들면 나중에 대우 문제 때문에 뒤에 가서 망령된 일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을 먹이라'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세 번째 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베드로라고는 한 번도 안 부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알지 못하심이 없사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3. 양떼를 구원

 

왜 옛 이름을 세 번이나 부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뜻이 있습니다. 주님이 제일 원하시는 일은 뭐인고 하니 당신이 피로 값 주고 산 그 양떼를 구원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제일 주님이 고대하시고 또 제일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줬다고 하면 그 준 것에 대해서 값을 결단코 잃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산 양떼를 구원하는 것이 주님이 제일 소원하시는 일이지마는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복음 위해서 자기 재산도 다 바칠 수 있고, 몸도 지위도 권세도 다 바쳐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다 바쳐 일할 수 있고, 또 일을 해야 되고, 또 일을 한 사람들도 옛사람에게로 돌아가면, 생명도 바치기를 아까워하지 안했던 사람이 옛사람으로 돌아가면 이제까지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고 수고한 것이 원통하게 여겨지는 그런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망령이 되어지기 쉽기 때문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함께 말씀하신 것인데 베드로가 대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양떼를 이 사랑하고 기르다가 옛사람으로 돌아가면 그를 위해서 수고한 것도 아깝고, 물질 희생한 것도 아깝고, 또 더군다나 자기 일생을 바친 것은 더 아까운 그런 생각이 나게 됩니다. 그럴 때에 기억해서 그럴 때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구원에 대한 그 일에 대해서 마음에 원하고 원해서 했지마는 옛사람으로 돌아갈 그때는 변해지는 것이니까 옛사람으로 돌아갔을 그때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불러서 말씀하신 이 말씀을 기억해서 옛사람으로 돌아갈 그때에 옛사람이 생각이 나서 망령을 부릴 그때에 주님의 사랑을 더 기억하라 하는 것으로써 이렇게 세 번 말씀하신 것입니다.

 

4. 주께서 나를 구속하신 사랑

 

그런고로 우리는 형제 구원을 위해서 복음의 역사를 하는데 이 역사를 하면서 아까운 이 귀한 역사를 헛된 영광으로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어떤 소망이나 수입을 위해서 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요 기막힌 일입니다. 자기가 복음 위해서 삶으로 말미암아 사는 그 효력이 이 세상에서 돌아 을 세상 소망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유다서에 말씀하시기를 '더러운 이익을 위해서 아첨하는 자들이라' 이랬습니다. 더러운 이익을 위해서 양떼를 기르다가 바른 데로 그들에게 지도하지 못하고 아첨하는 아부하는 그런 칙칙한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복음에 일하러 나선 이 일에 한 시간 한 시간, 한 자욱 한 자욱에 걷는 그 걸음을 결코 땅에 것을 소망해서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나를 구속하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사랑에 감격해서 해야 되고, 또 우리가 주님 앞에 곧 가서 설 터이니까 주님 앞에 가서 설 그 일을 생각하면서 복음 위해서 수고해야 되지 다른 것 때문에 수고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땅에 것을 소망하거나 또 자기의 기분이나 이런 것 위해서 해도 안 되겠습니다. 순전히 주님이 나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내가 주님의 그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은 못 하지마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 그분에게 내가 무엇을 대접을 할꼬? 대접하려 해도 내가 미약한 것이지마는 이것 가지고 주님이 피 흘려 구속하신 인간 구원에 바치는 것 외에는 당신을 대접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일을 해야 되겠고 땅의 일을 생각하면 그만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주님이 나한테 은혜 베푸신 것은 변하지 안합니다.

 

5. 인간 대 인간

 

그러니까 주님 바라보고 하는 사람은 주님이 내게 대해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변할 수 없고 변하면 스스로 회개를 해야 되지 변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 구원할 때에 인간 대 인간으로 인간을 보고 구원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 '내가 이렇게 힘써 애써 구원해도 이것을 모른다' 그럴 때 우리는 암흑이 옵니다.

 

제가 전번에 약 일 년 동안 고생을 했는데 그 시험이 역연 그 시험입니다. 그것을 내가 늘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 이렇게 주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서 이렇게 내 딴에는 조금도 허비하지 안하다시피 하고 다 바쳐서 했는데 그 결과가 내 가정들을 볼 때 그 결과가 무엇이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해 주신 것이 있나? 또 이거 할 때에 이 교인들이 뭐 무엇을 아나? 먹고 사는 그까짓 거야 요새 뭐 거지가 얻어먹어도 굶어죽지는 안하는 건데 그까짓 거 대접도 아닌 것인데 뭣이 있나? 이래서, 주님을 위해서 수고한, 주를 생각하고 주를 바라보면서 수고한 이 바른 생각이 들 때는 죽도록 충성하고도 나는 참 무익한 종이라 해서 주님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하겠는데 이게 그만 옛사람으로 바꿔질 때는 그것이 나온다 말이오. 그것이 열두 달 동안 계속해 있어 그런 게 아니고 그게 잠깐 동안 내게 문뜩문뜩 나온 거기 대해서 주님 앞에서 당당히 벌을 받았습니다. 그때 뼈아프게 회개를 하고 이래도 또 문뜩 그게 나올 때에는 그것으로써 또 회개한 것 헛일하고 또 받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기도할 때마다 그렇고 식사 기도할 때도 한 번도 안 빠집니다. '있는 것 다 주께 바쳐서 충성하겠습니다. 또 하게 해주옵소서.' 그러고 난 다음에 마지막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인 것을 알고 주님 앞에 살아서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노엽게 하는 이런 범죄를 하지 안하도록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제가 늘 계속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주님 나는 이렇게 했는데 주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지 안하시고 나로 하여금 시험에도 들게 하시고 또 가정도 이렇게 하고 하시니 마음에 그만 섭섭해서 불만 불평을 품었다 그 말이요, 주님 앞에서 그 벌로 단단히 맞았습니다. 똑 내가 맞은 것을 계수해 보니까 열두 달 맞았습니다. 열두 달을 몽둥이를 맞았어. 그러면서 많이 회개하고 깨닫기는 깨달았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아직까지 그런 일을 닥치지 안하고 그런 단계에 이르지 안했는데 나 한 사람이 시험을 당해 징계를 받음으로 여러분들은 징계 안 받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이런 말 합니다. 그저 일을 하되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일을 하고 세상 것을 생각하면서 일하지 맙시다.

 

6. 주님을 대접

 

주님을 대접하는 것은 주님의 피로 구속한 양떼들을 구원하는 일 이것보다 더 큰 게 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많이 연보를 해도 연보하는 중심이 '내가 물질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면 좀 모자랍니다. 자기가 물질을 바치되 '주님은 나 위해서 생명과 그 높은 지위 부요를 다 바쳐서 구원해 주셨는데 나는 미약한 이것이나마 몸을 바치지 못하고 생명을 바치지 못한 내가 주님의 복음에 바치오니 이것을 가지고 인간 구원에 다소나마라도 써주시옵소서' 하는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바쳤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저 먼저 어떤 사람이 '연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 그것은 목사님이 착각했다' 하는데 내가 착각이 아니고 자기가 그거 깨닫지 못해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물질을 바쳐서, 몸을 바쳐서, 시간을 바쳐서, 자기가 이런 지위에 있어서 이 지위에서 지위의 세력을 당당히 부릴 수 있지마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그 세력을 부리지 못하고 그 지위를 희생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그 방편입니다.

 

자기가 권세를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말도 하고 싶은 대로 말 탁 할 수 있지마는 그 사람에게 유익된 그런 유익된 복음의 말, 그 사람을 책망하는 말이나 권면하는 말이나 이래 꼭 복음에 유익된 이런 말은 할 수 있지마는, 무슨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할 말 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서 말 못 하고, 또 자기가 무슨 희생을 당해도 자기 희생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해를 입어도 자기 해를 면키 위해서 말 못 하고,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만 말하지 그 사람의 구원 위하지 안하고 나를 위해서는 사람에게 말을 할 수가 없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말로써 주의 복음을 위해서 희생한 것입니다.

 

7. 복음을 위해서 충성

 

그런고로 어쩌든지 우리가 이 복음을 위해서 잘 살고 갑시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복음 위해서 살아서 구원 얻은 사람이 많이 나타나면 그것도 기쁘고 좋지마는 그것이 꼭 다는 아닙니다. 저는 목회해서 이렇게 교인들이 많이 되는 나타난 이것을 보니까 재미도 있고 또 할 기분도 용기도 나지마는, 죽도록 충성하여 목회를 했는데 평생 동안에 아무런 양떼들이 구원 얻은 일도 없고 별로이 교인 몇 사람 안 되고 그래도 그 충성하기를 나보다 충성 더 했으면 그 사람의 상급이 훨씬 더 큽니다. 주님은 다 아십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수고하는 것이나 충성하는 것이나 하나도 덮어 가룰 수 없고 전부 주님이 다 알고 계시니까 그분을 보면서 하되 그분이 나를 구속하신 그 사랑에 감격해서 하고, 그분을 보고 하니까 그분이 상급을 다 기억하고 총총 주실 것이다 하는 그 상급을 바라는 것도 주님은 말씀했지마는 우리는 실상하고 부끄러운 소리입니다.

 

주님이 나를 이렇게 했으니까 그 사랑에 감격해서 해도 모자라는데 이렇게 하니까 뭘 상급을 더 주실 것이다, 많이 주실 것이다. 그것을 바라는 것은, 주님이 주시기는 틀림없이 주시지마는 그것을 바라는 것은 참 부끄럽고 염치없는 체면 없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털끝만한 수고도 상은 잃지 안하십니다.

 

8. 예배당 의자와 천장

 

그런고로 어쩌든지 우리가 얼마 남았는지 그것을 모르지마는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합시다. 이래서 제가 며칠 전에 기도하는 가운데에 '아무래도 지금 때는 바쁘니까 이래서 있어 안 되겠다.' 그래서 저것을 의자를 만드려고 하면 좀 돈이 적게 들어도 언제 만들려 하면은 얼마가 걸릴지 모를 것이고, 또 나무 말리려 하면 그렇겠고 이래서 어제 저 OOO조사를 오라하고 ○O○소장하고 O○O집사하고 세 사람을 서울로 보냈습니다. 부산에 돌아볼 데를 다 돌아보고 서울 가서 거기에서 성구사에서 큰 회사인데 거기는 원목이 마른 것도 많이 있고 이렇기 때문에 가서 그 값을 흥정을 해 봐라. 흥정해서 약간 좀 비싸도 빨리 해서 다 들여와서 정리해 버리고 이것 모두 다 안정하고 어서 구원 준비를 해야 되지 이래서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급해져서 의자를 그렇게 가서 돌보고 뭣하면 거기다 흥정해서 빠른 시일 내에 다 들여오도록 할 겁니다. 일층도 다 의자를 다 하고 또 사층도 의자 다 하고, 저기도 의자 다 채우고, 이러면 상당히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집을 팔고. 뭘 팔아 넣어서라도 이래도 이것을 빨리해서 어서 구원 이루는 일을 빨리 해야 되지 머뭇머뭇 그럴 때가 아니다. 대단히 위급한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랬습니다.

 

그러고 이제 이 천장도 지금 생각에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말씀을 듣는 데에 괜찮겠나? 돈이 많이 들어도 천장도 이 말씀을 듣는데 들어야 돼지지 안 들으면 안 되니까 제일 잘 들리도록, 암만 돈이 많이 들어도 연보해서 안 되면 우리가 빚을 내어서 하고, 빚을 내어 해서 그 이자만 내면 되니까 그 이자를 우리가 좀 배를 졸라 가면서라도 이자를 내서 갚아 가면서라도 빨리 이것을 해 놓고 예배드릴 때에 소리도 지장 없이 다 들려지고 우리가 이런 것 모두 머뭇거리는 것 지저분하게 이런 것 없애고 일편단심을 가지고 구원 준비에 달려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 장소가 저래 가지고 있으니까 여기 한 분 저게 한 분 앉으니까 마음이 어쩐지 안정이 안 되고 이래서 참 하나님이 은혜는 위로부터 내려 주십니다. 나도 생각하기를 내가 일생 동안 예수 믿은 후에 요새만치 나에게는 영감이 큰 때가 없습니다. 영감이 더 충만한 때가 없고, 과거에 뭐 진동되고 야단났지마는 그럴 때는 아주 어린 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할 만한 넉넉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이거 장소가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좀 지장이 돼서 그걸 빨리 빨리 해서 하려고 생각을 가집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하루 밤 나그네와 같은 저희 일생이오며 또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도 모든 징조를 보아서 박두한 것을 저희들이 봅니다. 악마의 마귀는 저희의 때가 얼마 남지 안한 것을 알고 있는 궤휼을 다 써서 택한 자들이라도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고로 이런 죄악 저런 죄악 제 일계명으로부터 제 십계명까지에 든 죄악이 최고로 발동하고, 최고로 왕성 되고 관영한 때를 만났습니다. 주님이 주의 택한 백성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어 주시는 이 영감의 은혜가 아니면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사오니 주님이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참 정금 같은 깨끗한 믿음을 가져 주님의 영광의 찬미되기에 족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거룩한 교회, 깨끗한 교회, 온전한 교회, 참 주님만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바라보는 정말로 주님이 만족하시고 주님의 영광의 찬미가 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성화시켜 주시옵소서. 오늘도 심방할 때에 주님이 나를 구속하신 이 사랑에 감격해서, 감격이 안 되면 고요히 묵상해서 이 사랑에 감격해서 오늘 하루도 수고하여 이 수고 하는 데에 성신이 동행할 수 있는 바른 마음 자세와 그 모든 정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설교: 백영희 목사(1983. 9. 30. 지권찰회)

정리: 김반석 목사(2014.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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