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0 20:57
■ 칭의(稱義)에 대하여
(서론)
‘칭의(稱義)’는 ‘의롭다 칭하다’ 또는 ‘의롭다 일컫다’는 말이다. 그러면 ‘칭의’는 성경의 구원론에서 무엇인가? ‘칭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론을 명확하게 알아야만 한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론’은 무엇인가?
(딛3:4-5)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론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그리하여 다음의 본론에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근거한 해석을 하면서 ‘칭의’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이것이 곧 ‘칭의’라고 알리도록 하겠다.
- 본 자료에 대한 전문은 홈폐이지> 연구> 교리문답>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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