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6 16:17
■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서문)
1.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딛3:4-7)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 ‘중생의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다.
2.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
(행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을 전하여야 하고,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전하여야 한다.
아래의 본문에는 두 제목의 글이 있다. 하나는 「피와 죄 사함의 관계」이다. 또 하나는 「믿음과 의롭다 함의 관계」이다. 그리하여 ‘피와 죄 사함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을 전하는 것이며, 그리고 ‘믿음과 의롭다 함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단 구원파(박옥수, 이요한, 권신찬)는 중생의 씻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만 말하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부인한다. 이것은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고후11:4)을 전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이단이다. 고후11:13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하셨다.
그리고 우리 정통교회는 중생의 씻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자세히 전하는데, 성령의 새롭게 하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자세히 분명하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정통교회는 부족한 종이 성경을 근거하여 정리한 이 글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자세히 분명하게 아는데 참고가 되면 감사하겠다.
- 본 자료에 대한 전문은 홈폐이지> 연구> 교리문답>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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