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9 23:31
■ 극보수의 실제는
교계에서는 우리 진영 총공회(한국교회사적으로 고려보수)를 “극보수”라고 평가하는 것같다.
‘극보수’가 있으면 ‘보수’가 있겠고, ‘보수’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진보’가 있겠다. 그리고‘극보수’가 있으면 ‘극진보’도 있겠다.
우리 진영 총공회의 신앙은 백영희목사님이 대표적으로써 일제 신사참배를 이기시고 또한 6·25 전쟁 시에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앙승리를 하셨다.
우리 진영 총공회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었다. 그런 것은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라야만 성경대로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신앙을 교계에서 평가하기를 ‘극보수’라고 말한다.
우리 진영 총공회가 지금은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 예전보다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제는 교계가 평가하는 ‘극보수’에 있지 못하고 ‘보수’ 정도가 된다. 한국교회는 예전에 비하여 예수 믿는 신앙이 많이 낙하(落下)되었다. 그리하여 예전에 교계에서 ‘보수’는 ‘진보’가 되었고, 예전에 ‘진보’는 ‘극진보’가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 ‘극진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 ‘극보수’라고 한다면, ‘보수’는 성경대로 믿는 신앙에서 미달이 된다는 것이며, ‘진보’나 ‘극진보’는 성경대로 믿는 신앙에서 낙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 성경대로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 안되면 성경대로의 구원도 안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계에서 교단의 신앙을 평가할 때에 ‘극보수’ ‘보수’ ‘진보’ ‘극진보’로 표현을 하면 그것이 어떤 신앙을 말하는지 금방 알아 듣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에는 “예수를 아주 바로 잘 믿는다” “예수를 바로 잘 믿는다” “예수를 바로 잘 믿지 아니한다” “예수를 아주 바로 잘 믿지 아니한다”는 의미가 내재(內在) 되는 소통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를 아주 바로 잘 믿는다”는 것은 성경대로의 구원을 아주 바로 잘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극보수’라고 표현을 하면 이것은 예수 믿는 신앙보다도 예수 믿는 성향을 말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극보수’라는 표현은 그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교단이나 교회나 개인의 신앙을 평가할 때에 ‘극보수’ ‘보수’ ‘진보’ ‘극진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말이 좀 길더라도 “예수를 아주 바로 잘 믿는다” “예수를 바로 잘 믿는다” “예수를 바로 잘 믿지 아니한다” “예수를 아주 바로 잘 믿지 아니한다”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런 것은 예수를 아주 바로 잘 믿어야만 성경대로의 구원을 아주 바로 잘 이루기 때문이다.
‘극보수’ 즉 누가 공연히 힘들게 예수를 믿으려 하는 자가 어디있을까?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라야만 성경대로의 구원을 바로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이 극보수의 실제이다.
- 2022. 03. 29∥김반석목사∥선지자문서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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