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로교인 언약과 바르멘 선언
선지자선교회
(서문)
최덕성 교수가 쓴 책 ‘장로교인 언약과 바르멘 신학 선언’에 대한 자료를 이두옥 목사님이 인용하여 쓴 ‘김윤섭 전도사와 장로교인 언약서’ 중에는 ‘장로교인 언약과 바르멘 선언’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이 자료와 이 글은 그 시대의 그들과 동일한 신앙노선을 걷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중요한 글인 것을 심중에 단박 느껴져 왔습니다. 그러하나 계통의 신앙노선에 비해서 실제의 신앙에서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곤혹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자료와 이 글을 소개하고 싶은데 어떤 성격의 주제로 소개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까닭은 병아리 같이 미약한 자가 태산 같이 지대한 것을 논할 자격과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하고 지나치느냐? 아니면 본 책임상 자료와 글 그대로를 소개만 하느냐? 아니면 이 자료에 토를 다느냐 하는 그 세 가지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숙제를 가지고 하룻밤을 지나서 아침에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자료와 이 글에 대한 여러 면의 입각한 것들이 삭아지거나 흐려지지 아니하고 더욱 뚜렷이 돌출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나 또 어떤 성격으로나 표현하고 소개하여 알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져서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또 이 자료와 이 글을 소개하고 또 간략히 토를 붙여봅니다.
우리의 계통 신앙노선은 어디에 속했는가?
우리의 실제 신앙은 어떤가?
우리의 신앙 지표는 어느 정도에 두는가?
우리는 환란을 대비하는 신앙인가?
우리의 신앙은 그들 신앙과 어떤 비교가 되는가?
자신에게 그 표리부동의 정도가 태산 같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본문)
● 장로교인 언약과 바르멘 선언
○ 장로교인 언약
만주에서의 신사참배 투쟁에 대하여 최덕성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만주의 하얼빈, 봉천(심양), 안동에서도 신사참배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최덕성 저 「장로교인 언약과 바르멘 신학 선언」 p.17
김윤섭(하얼빈), 박의흠(봉천), 박인지(문순), 김경락, 최용삼, 계성수, 김성심(이상 안동) 등이 반대운동의 지도자들이었다.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 시행을 결의하자(1938) 봉천노회는 총회 결의를 따르지 않는 한부선 선교사를 제명 처분했다. 선교활동도 금했을 뿐 아니라 교인들과 접촉하는 것까지도 금지 시켰다. 노회에 복종하지 않는 전도사들에게까지 여러 면에서 제재를 가하였다.
그러나 한부선 선교사는 만주 지역의 몇몇 교회와 평소에 자기의 신앙노선을 따르는 교인들에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악”이라고 가르쳤다.
약 다섯 그룹의 사람들이 그리고 개인적으로 수다한 사람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그들은 조선 예수교장로교회를 신앙적으로 떠난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공교회라 할지라도 성경 도리와 신앙 양심에서 이탈하면 영적 교회라 지칭할 수 없으니, 새로운 활로를 타개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일신(唯一神) 종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장로교는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가의식”이라며, 수용하였다. 그리하여 일반 교인들에게 “하나님도 섬기고, 신사에도 참배하라”고 독려했다. 그것이 계명을 위반하는 죄악이라고 지적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믿음으로 살려는 성도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는가? 저들에게서 떠나고, 또 저들과 영적 교제를 끊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거룩성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자연발생적으로 만주에 있어서의 수진성도들은 교회를 형성하였고, 또 확대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 그룹의 중심에 우뚝 서 있던 분들이 한부선 선교사요, 김윤섭, 박의흠 전도사였던 것이다.
만주지역의 신사참배 거부 운동 교회는 점차적으로 확산하여 23개 교회에 이르렀다.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교인 수가 770명에 이르기도 했다. 1941년 1월 신사 불참배교회에 속한 교인은 세례자가 250명, 입교 인이 117명, 유아 세례교인이 64명이었다고 한부선 선교사는 증언했다. 동상서 p.19.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살 일념으로 고향을 버리고, 새 땅을 찾아 온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의 장로교인들이었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이들은 스스로를 결속시키는 교회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목사나 장로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노회와 같은 합법적인 치리회를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협의회 성격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그것은 선교사, 전도사, 평신도들로 구성된 대회 성격의 신앙공동체였다. 비록 헌법적인 치리회의 권한은 갖지 못했으나, 교회의 본질적인 것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구비한 참 교회였다.
교회 수가 늘어나고 소속된 교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교회 안에도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즉, 신사참배 거부하는 성도들은 신사참배를 수용하는 기성교회의 회원 자격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나는 거부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신사참배를 묵인할 것인가? 자녀들을 신사참배를 행하는 교회에 계속 보내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들이 일어나서 교인들 사이에서도 이견(異見)이 분분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직과 신앙고백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덕성의 장로교회 언약 p.21.
그들은 먼저 성경공부를 했다. 며칠 동안 신사참배의 성격과 본질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고, 토론하면서 성경의 가르침을 결집시켰다.
첫째로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는 정의를 내리고,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성경말씀을 찾아 정리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한 「장로교인 언약」을 만주 지역의 각 교회에 배부하여 열람케 했다. 그리고 이 언약에 신앙적으로 동의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성명토록 했다.
이 「장로교인 언약」을 작성하고, 배부하여 동의를 받는데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김윤섭 전도사였다.
연령상으로나, 신앙의 연조로는 박의흠 전도사가 선배였으나, 이 언약서의 초안을 만들고, 한부선 선교사의 자문을 구하고, 또한 신앙동지들의 동의를 구하면서 한 조목, 한 조목씩 완성해 나갔던 것이다.
한부선 선교사는 그를 평하기를 「언약서를 만드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라 하였다. 「장로교인 언약서」 p.22.
언약서 작성에 참여한 인사들은 대부분이 시골 출신의 전도사들로 정상적인 신학공부를 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수많은 신학박사들이나 명문대학 출신의 기독교 지식인들이 신앙의 지조를 팔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날뛸 때,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건 수진성도들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서 황량한 만주 벌판에서 유리방황하며, 때로는 왜경에게 체포되어 죽음 직전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빛나는 「장로교인 신앙고백문」을 남겼다는 것은 한국 장로교의 금자탑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안식을 누리고 있지만, 그들이 투쟁했던 이 땅에는 아직도 친일파의 쓴 뿌리가 남아있어,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을 금할 수 없다.
김문제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이 「장로교인 언약서」는 해방 후 돌아온 한부선 선교사에 의하여 전하여졌으나, 한글로 된 원문(原文)은 찾을 길이 없고,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전하여졌다고 하였다. 김문제, 「십자가와 십계명 Ⅲ」p.235
언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함께 모여 금식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근거되는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발취하였다. 언약서가 작성한 뒤에는 동의자의 서명, 날인을 구하였다 함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것으로 저들의 작업이 완료된 것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장로교인이라 하면서 이 언약서에 동의하지 않으면 집회도 인도할 수 없었고, 또 세례도 주지 않았다.
언약(言約)
현 한국교회의 형편을 보건대, 배교와 권징의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우상숭배를 피하고자 하는 신자는 기성 교파와 동참하지 않고 나와야 할 것을 확신하고,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우리는 다음 것들이 우리가 피해야 할 우상숭배 죄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으로 믿는다.
1. 신자(信者) (행 11:26, 요 15:8, 요 8:31, 눅 14:26-27).
① 죽은 자를 매장한다(행 8:2, 요 19:40-42).
② 그들을 위해 애곡한다(행 9:39, 요 11:35, 롬 12:13, 행 8:2).
③ 그러나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일을 한다(사 45:9, 롬 9:20).
④ 또는 그의 심판과 우리를 고민케 할 때에 하나님께 대항하여 반문치 않는다(시 119:75, 욥 1:21-22, 렘 10:6).
⑤ 또 소망 없는 자 같이 슬퍼하지도 않는다(살전 4:13, 삼하 12:23).
2. 죽은 사람의 과거 덕행에 불구하고
① 산자는 죽은 자에게 묻지 않는다(삼상 28:3-19, 신 18:11).
② 죽은 자를 찾지도 않는다(사 8:19).
③ 묻기 위하여 불러올리지도 않는다(삼상 28:8-11,13).
④ 또 이런 비슷한 어떤 것에도 묻지 않는다(살전 5:22).
3. 그러나 신인 예수 그리스도는 제외 된다(요 1:1-14. 딤전 2:5, 빌 2:9-11).
① 신자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겔 28:2-10, 행 12:22-23).
② 또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어떤 사람에게도 돌릴 수 없다(행 14:13-15).
③ 또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다(시 146:3, 사 2:22).
④ 또 하나님께만 있는 생사권(生死權)을 사람에게 돌릴 수 없다(요 19:10-11)
4.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시다(고전 8:4-6, 사 44;6)
① 그리고 신자는 다른 신을 둘 수 없다(출 20:3).
② 섬길 수 없고(왕하 17:35, 마 4:10), 하나님과 함께 섬길 수 없고(왕하 17:33-40), 경배할 수 없고(마 4:10), 두려워할 수 없고(왕하 17:35). 교통할 수 없고(신 18:10-11), 절할 수 없고(왕하 17:35), 기도할 수 없고(사 45:20, 44:11,17), 제사 드릴 수 없고(왕하 17:35, 출 22:20), 위하여 제물이나 제상을 차릴 수 없고(렘 7:18, 19:13, 겔 20:28,30-31, 렘 32:29, 사 65:11), 다른 신을 위해 울 수 없고(겔 8:13-14), 또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 위해서도(고전 8:5), 마귀를 위해서도(고전 8:5) 울 수 없다.
또 어느 우상이라도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고(렘 10:3-5), 그를 위해서 이것을 해 달라고 물을 수도 없고(출 32:1,7), 이들을 하라고 명하는 자들에게 순종할 수 없고(신 13:1-3, 6-8, 18:20-22, 행 5:29, 갈 1:8-9, 갈 3:5) 이들의 일에 동참할 수 없고(고전 10:20-21), 이들에게서 피해야 하며(살전 5:22), 또 형제로 하여금 실족케 말 것이다(고전 8:13).
5. 신자는 해나 달이나 별이나 하늘의 천사들을 경배하거나 섬길 수 없고(신 4:19), 목석의 우상에게도(렘 3:9), 그것이 금이나 은이나 녹이나 돌이나, 나무로 만들었거나 우상이나 형상에게도(계 9:20, 겔8:9-10),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에도(사 2:8-9), 또는 피조물 어느 것에도 경배하거나 섬길 수 없다(롬 1:25,32, 계 18:21). 단 사람이 사람에게 절하는 것은 예외이다(창 49:9). 또 이러한 어떤 비슷한 모양에도 경배하거나 섬기지 못한다(살전 5:22).
6. 신자는 하나님 외에 경배하기 위한 전(殿)이나, 높은 곳을 지을 수 없다(렘 32:35). 또 어떤 신당도 갖고 다니지 못한다(암 5:26). 또 이들 장소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다(왕하 16:3-4, 왕하 17:9-11), 경배할 수도 없고(렘 1:16), 또 어떤 비슷한 모양에도 그렇게 할 수 없다(살전 5:22).
7. 우리는 위에 인용한 여러 성경 구절에 있는 죄를 범한 자들은 불신자 우상숭배 행위로서 하나님께 특히 가증한 것임을 믿는다. 형제라고 불리는 자가 이런 일을 행하거나 가르치거나, 그런 교훈을 믿고 있으면 신자는 먼저 그에게 가서 그의 잘못을 가르쳐주고, 그 형제를 얻고자 노력할 것이나 듣지 않을 때에는 하나 또는 두 증인을 데리고 가서 증거할 것이요, 그래도 듣지 않을 때에는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권면도 듣지 않으면 그 신자는 그와 절교할 것이요(고전 5:13), 나와서 그들과 절교하고 또 이를 행하는 자나 교훈을 믿는 자들을 가르칠 책임이 있다(계 2:14-15, 신 8:4-7).
이렇게 새로 언약에 통합한 우리는 결코 장로교 신조나 그 정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요, 현실 교회가 그 신조와 정치(치리)에서 떠났으므로, 그 총회의 치리 하에 있을 수 없음을 확인하는 바이다. 여기 서명한 우리는 이에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모든 진리와 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믿고 받아 드림을 선언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 진리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종교요, 사람에게 구원을 줄 수 있고 또 구원하는 오직 참 종교임을 믿는 바이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경, 대소요리문답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사람이 만든 완전한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이들 신조에 나타난 교리를 양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친 대로요, 우리의 신앙을 표시한 것으로 기쁨으로 받아드리는 바이다.
우리는 여기 우리들이 자진 발기하며, 이들 신조를 하나님의 말씀에 예속된 우리의 특수 집단의 표준으로 동의하는 자들로 동참하기를 바란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의 도우심으로 이들을 지키고, 전하고 수호하기로 받고 믿고 언약하는 바이다.
○ 바르멘 선언
이 글은 최덕성 교수의 「장로교인 언약과 바르멘 신학 선언」이란 책 중의 “신학 선언과 장로교인 언약의 비교” 부분을 요약 발췌하였다.
바르멘 신학선언은 1934년 5월 독일의 루터교회, 개혁교회, 연합교회에 속한 대표들이 바르멘에 모여, 나치의 통치하에서 독일 개신교회가 직면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발표한 신앙고백문이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하얼빈에서 작성한 “장로교인 언약”과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유사점이 있어, 비교하여 보고자 한다.
(1) 민족주의 기독교에 대한 저항.
바르멘 신학선언은 독일교회가 독일 민족과 독일 역사, 이성, 문화, 심미적 감정, 권력 등을 수용하면서 그리스도의 교회되기를 포기한 것에 대한 거부 선언이다. 기독교와 국가, 교회와 민족, 복음적인 것과 독일적인 것 사이에 그 어떤 연결도 용인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제 1차 대전의 패배로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극심한 공허감에 빠져 있을 때, 히틀러가 등장하여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를 절규하면서 독일을 구원할 메시야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이때 일어난 소위 독일 기독교 운동은 정치적 권력의 비호 아래 거대한 조직으로 팽창해 나갔다. 교회 지도자들은 나치의 반공산주의 운동에 동조하면서, 독일적 사회주의와 기독교 복음을 혼합하였다. 그리하여 반 마르크스, 반 유대인, 반 국제화, 반 프리메이슨 주의를 표방하고 게르만 민족의 인종적 순결과 “적극적 기독교”를 지지했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 복음주의 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죄와 타락과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했다. 구원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독일 민족 국가나 히틀러의 사회주의에 있지 않다고 외쳤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의 독일의 상황과 장로교 언약이 선포된 한국의 상황은 일치점이 많다. 우상숭배, 정치의 신앙 간섭, 민족주의 기독교, 성경을 재편집한 일, 교회 중심의 신학을 민족 중심의 기독교로 바꾼 점,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정치권력과 야합하고 앞장서서 지지한 일, 교회가 이단 집단이 된 일, 이러한 음모에 일부 성도들이 항거한 일 등이다.
일제 말기 한국교회를 시녀로 삼았던 일본 기독교는 민족주의 일본 기독교라고 하는 혼합 종교였다. 기독교와 일본 민족주의, 신도주의와 정치 이데올로기의 혼합물이었다. 순수한 복음으로 시작된 한국 기독교는 혼합 일본 기독교의 시녀 단체로 전락했으니, 여기에 대하여 장로교인 언약을 내세워 항거하며, 원래의 기독교로 복원시키려고 한 점에서 독일의 바르멘 신학 선언의 동조자들과 일치점을 발견하게 된다.
(2) 우상숭배에 대한 저항
개신교는 무신론자들을 교회법에 의한 치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우상숭배하는 기독교인은 치리의 대상으로 치리한다. 우상숭배는 피조물에게 경배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존경과 경배를 다른 피조물에게 바치는 그릇된 공경행위이다. 민족, 국가, 가족, 명예, 재물 등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섬기면 우상숭배이다.
바르멘 신학 선언은 독일 기독교의 오류를 6개의 복음적인 진리들을 고백함으로 지적하고 있다. 각 사례마다 성경 구절을 제시하며, 신학적으로 확증했다.
① 성경과 그리스도가 계시한 것 외의 사건, 능력, 인물, 신념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는 일.
② 삶의 영역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고, 다른 주께 속한 영역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그리스도를 통한 칭의와 성화가 필요 없는 삶의 영역이 있다고 가르치는 일.
③ 교회가 자신의 메시지를 망각하고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이나 정치적 확신으로 인하여 변질되어 버린 일.
④ 교회의 고유의 직책은 수행치 않고 권세로 군림하는 특수 지도자를 따르는 일.
⑤ 국가가 교회의 과업에 관여하는 일이나, 교회가 국가나 위엄을 침해하는 일.
⑥ 주님의 말씀과 사역을 인간적인 욕망과 목적과 계획에 예속시키는 일 등이다.
이와 같이 바르멘 신학 선언은 성경 외적인 것을 설교하거나 그리스도가 아닌 주, 능력, 인물을 섬기는 것을 거짓 교리로 규정했다.
신사참배 거부 운동의 신학적 기초와 이해를 문서로 표현한 장로교인 언약은 직접적으로 우상숭배를 거부한 고백문이다. 교회의 고유한 직무는 수행하지 않고, 천조대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규정했다. 바르멘 신학 선언과 장로교인 언약은 정치권력과 야합한 교회가 저지른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국가와 교회가 강요하는 성경 외적인 교리를 신학과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거부한 것이다.
(3) 정치권력의 신앙 간섭에 대한 저항
바르멘 신학 선언은 교회가 불의한 국가 권력에 복종하는 것과 국가가 교회의 신앙을 간섭하는 것이 잘못임을 천명한다. 교회는 적법한 지도에는 순종하지만 불법적인 폭군에 대해서는 저항한다.
국가는 하나님의 정한 바에 따라 정의와 평화를 확립하는 과제를 맡았다. 국가에 부여된 권한을 넘어, 교회의 과업까지 수행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교리도 국가의 과제와 위엄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하나님께 위임 받은 사명은 수행치 않고, 권력과 야합해서 국가의 과제에 두둔하는 것도 잘못이다.
신사참배는 그 자체가 국가권력 유지를 위한 부산물이며, 국가 권력의 신앙 간섭이다. 그것에 항거하는 것은 곧 정치권력에 대한 항거이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계명 준수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국가의 교회 간섭, 신앙 간섭에 대한 항거였다. 종교적 군국주의 국가인 일본은 신사참배, 황제숭배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항거는 곧 정치적 권력에 대한 항거였다. 신사참배 반대자들에게 적용한 죄목, 치안유지법 위반, 불경죄, 육군 형법 위반, 보안법 위반 등을 보더라도 여실히 증명된다.
(4) “오직 성경”과 종교개혁 전통 고수
독일 기독교는 성경 외의 원리들에 따라 행동하면서 조직적으로 고백교회를 방해했다. 독일의 정치적 형태와 히틀러의 인격과 독일민족의 실제성과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백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을 거짓 교리로 규정하면서, 오직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청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백교회의 항거는 정치적인 동기보다는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와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바르멘 신학 선언은 독일의 개신교가 종교 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천명했다.
장로교인 언약도 성경과 장로교 신조와 헌법을 존중한다고 고백한다. 장로교인 언약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이 비록 불완전하고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 있다고 믿는다.”고 천명한다. 표준 문서들이 제시하는 교리 체계를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으로 기꺼이 수납하고, 신앙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것을 고백한다.
바르멘 신학선언과 장로교인 언약은 문장의 구성 면에서도 일치하는 것이 많다. 성경구절을 나열하고 그것과 관련된 신앙고백을 천명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고백문을 기록하고 성경구절을 나열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전통에 충실하려는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5. 교회의 보편적 본질 천명
바르멘 신학 선언은 국가의 지배를 받는 민족교회의 등장으로 교회 헌장의 법적 기초가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고백교회는 새 교회를 세우거나 연합체를 형성하려 하거나 기존 교파를 없애려는 의도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독일 기독교의 등장으로 교회의 보편성을 제공하는 “공통분모”가 위태롭게 되었고, 독일 개신교의 통일도 위태롭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독일 교회는 국가 교회와 고백교회로 분열되었다. 총회도 따로 모였고, 이러한 상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장로교인 언약도 이 점에 있어서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장로교 신조와 교회정치를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현재의 한국교회가 그 신조와 헌법에서 떠났다고 선언한다. 교회가 신앙의 원수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대항하여 박해한다고 밝힌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른 신앙을 가진 교회들이 새로운 조직체를 구성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한국교회는 성경 외적인 교회, 곧 일본의 정치권력과 신도주의의 혼합 사상을 받아들이므로 기독교의 보편적 토대를 이탈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무너졌고, 어용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일본 기독교로 개종한 사이비 한국 교회에 대항한 것이었다. 우상숭배 교회에 항거하여 새로운 교회를 조직하는 것은 분리주의적 교회관의 결과인가? 또한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분리주의 운동인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한 것은 정당했지만, 노회나 총회 같은 조직체를 만든 것은 분리주의인가?
칼뱅(Jean Calvin)의 가르침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에서 떠난 다수집단이 도리어 복음에서 떠났다”고 하였다. 특정 교회가 신앙 고백적 보편성과 사도성과 단일성을 포기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공통분모”에서 떠난 것이고, 공교회에서 분리한 것이다. 일제 말기의 한국 교회가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도 경외하고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다”(왕하 17:33), “여호와도 경외하고 아로새긴 우상도 섬겼다”(왕하 17:41).
성경은 종교적 혼합주의를 단호히 배격한다. 칼뱅은 성삼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우상숭배 의식으로 전락시킨 교회를 참 교회로 인정하지 않았다(강요Ⅳ2.9). 성경과 개혁 교회 론의 관점에서 보면,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이 민족에 의한 강압과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 아니라 바벨론이었으며, 신성 모독의 불경건집단이었으며, 거짓 교리로 인하여 무너진 허위 제단이었다. 그리스도는 감추어졌고, 복음은 뒤집혀졌다. 만일 그 교회가 참 교회라면, 캘빈이 동일한 상태에 있던 로마교회를 향하여 “터키 사람들의 모임과 합법적인 신자들의 회중을 구별하는 표지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강요Ⅳ 2:4)고 가르친 것은 거짓말이 될 것이다.
만주 지역 항쟁 자들이 언약 교회를 구성한 것은 모두 로마교를 탈피하여 참 교회를 세우려 했던 종교개혁 운동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점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개혁신앙에 입각한 한국판 종교개혁운동이며, 기독교의 보편적 본질, 곧 공교회성에 근거한 참 교회 건설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