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

2010.01.14 22:56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 (Morabian Business Mission)
선지자선교회
귀국하여 부산에 일정이 있어서 며칠간 머물고 있습니다. 머무는 동안의 거처는 해운대 동백섬이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의 전망 좋은 선교관입니다. 이 선교관을 운영하는 분들은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선교사역에 동역하는 분들입니다.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의 이름으로 기업을 하는 분들은 회사 수입의 25%를 선교사역에 동역 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은 국내 선교에 동역을 하고, 해외에 지사나 회사가 있는 분들은 그 회사가 있는 지역에 선교사역을 한다고 합니다. 회사를 설립하고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는 목적이 선교사역과 선교동역을 넓혀 가는 그 중심에 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이 시대의 야베스의 기도를 하는 분들임에 틀림없다고 보여 집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우리에게 어떤 구원 도리가 있는지를 깨달고 선교동역의 일선에 서서 실천하는 분들임에 분명합니다.

대상4:10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셨으니, 복의 복을 더하는 길은 지경을 넓히는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기업을 경영해서 이루어 놓은 부요를 자랑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도 생각이 좀 있는 문화인은 그에 대해 미개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러함은 살아가는 범위가 좁고 짧아서 겨우 먹고 남는 것 창고에 쌓아두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믿는 신자들이 그렇게 한다면야 홍포 입은 부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의 이름으로 선교관을 운영하시는 김 집사님은 기업체를 운영하시는 SEO입니다. 그런데 그 기업을 운영하는 목적이 전적 선교사역에 동역을 위한 목적이라 하였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교인들이 그저 사업을 해서 십일조와 감사연보를 하고 그리고 교인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하는 그 정도에 거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목적이 선교사역에 동역을 하기 위해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실상 진행하고 있는 상황들을 볼 때에 거의 목회 수준에서 사업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사업체를 가진 분들은 사업 중심으로 사업을 하지 말고 사업을 하되 그 사업이 주와 복음을 전하는 그 선교사역에 동역을 하는 그 목적으로 근본 바뀌어야 된다는 그 모델적 기업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책무와 사명 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사역에 동역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업을 하는 그 모델을 ‘모라비안’을 통해서 세웠기 때문에 그 신앙과 그 정신을 계대하는 뜻으로 이름 하기를 ‘모라비안 비지니스 선교회’라 하였을 것입니다.  

며칠 머물면서 ‘모라비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를 통해서 기독자의 기업가들이 가져야 하는 기업 경영의 목표와 목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고 배우는 공부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이런 목적 있는 기업을 운영을 하도록 그 모델을 분명하게 제시해주는 안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낍니다. 학생들과 청년들에게도 이런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장래 소망을 가지도록 가르쳐야 할 것을 또한 강하게 느낍니다.

오늘 우리 교인들이 사업을 해서 주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동역을 하는 소망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는 애초부터 그 사업의 목적이 선교사역에 동역을 하기 위해서 전적 시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목회와 간접 목회에 이르고 있습니다.

금번에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가 운영하는 선교관에 묶으면서 그 선교정신과 사업정신에 대해서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발길 닿는 곳마다 이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가 가지는 선교동역에 대해서 아는 대로 전하려는 마음입니다.

아래의 글은 모라비안에 관련된 자료입니다.

<참조>

● 모라비안 비즈니스 선교회

18세기 신앙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형제의 연합을 통하여 세상 곳곳에 사업을 일으켜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선교를 감당했던 모라비안 공동체의 선교 열정과 정신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는 기도의 공동체이며 선교사업을 운영하는 선교회이다.

● MBM 기도

1.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중보 기도자가 더 많이 세워지게 하소서.

2. 우리 가운데 준비하신 선교의 모델 기업을 통하여 겸손히 주님을 섬기는 MBM이 되게 하소서.

3. 세상 곳곳에 MBM과 동역하는 선교기업들이 더 많이 세워지게 하시고, MBM이 선교한국의 동력이 되는 은혜를 더 하소서.

4. 전 세계에 흩어져 주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사역과 가정 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충만히 주시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게 하소서.

5.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하는 MBM이 되게 하소서.

● 실패를 극복한 웨슬러

영국의 종교개혁자이며 ·신학자인. 메서디스트(감리교)교회의 창시자인 웨슬러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체험과 성결한 생활을 역설하고,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대규모적인 신앙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세계적인 영적 파동을 낳은 웨슬리 운동은 뜻밖에도 그의 실패로부터 시작되었다.

선교사로 미국에 갔지만 선교는커녕 여성 문제로 기진맥진하여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리는 일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인디언을 구원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갔지만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그러나 오! 누가 나를 구원해 줄 것인가?" 더욱이 배가 뒤집힐 듯 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두려움 없이 찬송을 부르던 모라비안들에게서 받은 깊은 인상은 그의 신앙을 더 초라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좌절감으로 암울한 시간을 보내던 그를 젊은 모라비안 피터 뵐러를 만나게 하시고, 1738년 5월24일 저녁에는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참석한 모라비안 기도회를 통해 특별한 체험을 경험하게 만드셨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웨슬리는 뜨거운 복음 전도자로 8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40만㎞를 여행하며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다. 실패와 부끄러움이 오히려 그에게 큰 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할렐루야!

● 모라비안  

1. 설립배경

개혁가 죤 후스- 교황의 면죄부 판매와 성직자들의 부패를 공격. 교회의 머리가 교황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이며,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복음주의자며 교황은 그를 이단으로 몰아 1415년 화형. 1457년핍박을 피해 성에 숨어들어가 신약성경을 모델로 복음적인 신앙 공동체 형제회 설립. 모라비안교회 전신

2. 피박 받는 모라비안

카톨릭은 이 모라비아의 후수파인 형제회를 잔인하게 핍박. 형제들은 재산몰수와 지위를 박탈당하고 추방당해 추위와 굶주림으로 굶어 죽었갔지만 신앙을 결코 포기치 않았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견고해졌다. 또한 그들은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웠는데, 그 나라 최상의 학문은 그들로부터 나왔다.

1558년 모라비안 교회에 호의적인 왕들로 60년 동안 참으로 오랜만에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갖게 되었다. 이때에 필사적으로 붙들었던 순수 복음신앙을 버림으로 영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카톨릭과 모라비안 교회의 30년 전쟁이 치뤄졌고, 1620년 모라비안 교회가 패배해 다시 핍박을 받는다.

3, 헌신적 지지자 진젠도르프와의 만남

1722년 오랜 핍박으로 거의 전멸하고 남은 자들이 진젠도르프의 땅에 정착하게 되었고 거주와 생활에 많은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진젠도르프는 이 유서 깊은 교회를 재조직하고, '헤른후트(Herrnhut)' 공동체를 결성, 각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던 모라비안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으며, 청년 남녀들을 가정으로부터 분리시켜 엄격한 감독 하에 신앙 훈련을 시켰다.

4 모라비안의 선교활동

1731년 진젠도르프는 덴마크 대관식 때 서인도에서 온 한 흑인과 그린랜드 출신인 두 에스키모인을 만났는데, 선교사를 파견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계기로 모라비안 교회는 소극적인 경건 생활에서 적극적인 세계 선교로 방향을 전환하고. 선교활동 초기의 모라비안들은 겨우 200명 가량의 피난민들이었지만 해외로 100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 선교의 확산은 계속되었으며 1930년까지 세계 14나라에 3,000여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19세기 유럽에는 15개의 선교 기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5. 끊임없는 선교의 열정과 영향

진젠도르크는 주변의 시기로 1736년에 고향인 작센으로부터 추방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라비안의 선교 사역을 통해 변화되었다. 초기에 루터교회의 영향력 안에 있었지만 1760년 진젠도르프 사후 완전한 결별을 한다.

영국 안에 15개의 모라비안 형제단이 있었으며 말씀에 대한 경외감, 구원의 확신, 그리고 믿음에 근거한 분명한 신앙 간증으로 영국의 복음적 각성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레는 런던의 훼터 레인(Fetter Lane)에 있는 모라비아 교회에 가입하였다. 존 웨슬레가 이들과 결별한건 그들의 지나친 경건주의와 정숙주의 때문이다.

구원에 대한 참회 체험 존 웨슬레만 아니라 찰스 웨슬레 그리고 조지 휫필드 같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까닭에 모라비안 형제단의 가치는 그들 자체 운동에 의한 파급 효과로 인해 세계 선교열을 일으킨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미친 영향으로 인해 그 파장이 길게 연결된 것이다.

6. 모라비안교회 특징.

선교로서의 전체 교회로, 지역교구의 교인보다 선교사가 3배나 더 많은 특수한 교회며, 다종다양한 각계각층의 귀족, 법원의 사람, 대학생, 교수, 흑인, 백인을 가리지 않는 전세계인 모두가 그들의 전도 대상들이다. 핍박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교로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순교를 당했다.

자립선교로 선교사들은 자신의 기술과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먹고살며 선교하는 정책을 펼쳤다. 의료사업이나 교육선교사업 또는 꼭 필요한 것을 위해서는 각 교회별로 선교기금을 모아 선교지원을 하였고 선교사로 파송하는데 많은 돈이 들지 않았기에 그들이 필요한 곳에 적절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할 수 있었다.

세상의 평범한 교회가 아니라 참 '마음의 종교(heart religion)'로 부터 비롯된 교회 안의 교회며 '세상의 소금'이라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 나아오라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어, 모라비안 교회는 부흥을 맞고 루터교회와 결별의 계기가 된다.

경건주의는 개인적이고도 체험적인 것으로써의 종교, 인격적인 참여에 의한 삶의 증거, 하나님 말씀에 의한 능력이 나타나는 생활, 영혼 없는 제도, 생명력 없는 몸, 내용 없는 형식 등에 대한 저항 등이 전체에 흐르는 핵심을 이룬다.

7. 모라비안의 선교지역과 교세 현재의 모습

1732년 서인도지역을 처음 파송하고 후에 1735년에는 그린랜드, 1735년 수리남(Sirinam),1737년 아프리카, 1740년 북아메리카의 인디언과 실론(Ceylon), 1742년 중국, 1747년에는 페르시아, 1754년 자메이카, 1756년 안티구아(Antigua)에 선교사를 파송하였으며, 진젤로프가 죽은1760년 당시엔 그린랜드의 13개 지역과 중.북부 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에서 49명의 형제와 17명의 자매들이 약 6,125명의 선교사가 활동했다. 그의 사후에도 선교사업은 지속된다.

진젤로프 사후 모라비안 교회는 많은 수의 교세를 자랑한 적도 없고 그 후 계속해서 많은 숫자의 선교사들을 파송하지는 못하였다. 19세기를 정점으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핍박이 없는 평화에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지도층은 영적이라기 보다는 민주적이되어서 그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한다. 하지만 이들이 벌인 세계 선교사와 현대교회에 끼친 영향은 막대 하였다. 이들 영향으로 대서양 연안 지역에 모라비안교도와 국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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