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4 14:18
■ 주님의 구속의 사랑에 감격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는 지은 죄가 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은 백영희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종종 말씀하셨던 ‘주님의 구속의 사랑에 감격’에 속한 것이라 여긴다.
다음은 백영희목회설교록에서 ‘구속+감격’을 검색해서 찾은 부분이다.
【무한한 불행을 상대하여 이 불행에서 구출해 주신 예수님의 이 대속의 사랑에 감격해서 세상 모든 고난은 주님이 나를 대형해 주신 이 사랑을 깨닫게 하는 이 작용만 하지. 그것이 나에게는 고통이 되어지지 않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의 참된 정상적인 심정인 것입니다. (1979. 12. 14. 금 저녁)
【"문들을 열고 들어가라" 이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공로를 자기가 정말로 입어라. 정말로 입고 이 속에 나는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나를 사죄해 주셨고 죽기까지 해서 나를 칭의해 주셨고 죽으셔서 벌 받으셔서 하나님과 결합시켜 주셨다. 요 사실을 네가 영감으로 깨닫고, 영감으로 깨닫고 요 구속의 은혜를 네가 바로 깨달아 요 은혜에 감격하고, 요 사랑에 감격해서 네가 죄 없는 자로, 죄 없는 소유로, 의로운 자로, 의로운 소유로, 하나님과 다시는 끊어지지, 생명이 끊어져도 끊어지지 안 할 수 있는 너로서 요렇게 결합 생활을 해라. 요것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1980. 1. 15 화 새벽)】
【그 참고 견디는 그것이 무슨 표시냐 참고 견디는 그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나오는 것은 주님의 대속을 자기가 연구해서 깨닫는 거기에서 나옵니다. 주님의 대속을 자기가 어느 정도 믿고 있느냐 하는 그 믿음의 양은 자기에게 좋은 형편이 닥칠 때에 표시가 아니고 자기에게 어려운 형편이 닥칠 그때에 참고 견디는 그것으로서 주님의 이 사랑의 구속을 전지전능 주권자의 구속을 전지 전능 주권자가 나를 사랑하심으로 대속 하신 이것을 인정하는 그것으로 인해서 참고 견디는 일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되 억지로 참고 견디는 일도 있을 수 있겠고 참고 견디되 안심하고 참고 견디는 일도 있겠고 기뻐 못 견뎌서 참고 견디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하신 주님이신 것을 자기가 믿을 때에는 이렇게 날 사랑하시는 분이 역사 하니까 의례히 내게 좋은 것이 있으리라 깨달아지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도 닥치는 일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고 견딜 수 있겠고 그보다도 한 걸음 나아가서 의례히 이거야 이렇지마는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주님이 이렇게 나를 대속 하신 사랑이 큰데 이 큰사랑을 내가 더 믿고 인정하고 싶으나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좀 힘들여 인정하고 힘들여 참고 힘들여 견디고 할 수 있는 이런 형편이 오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내가 감사하는 그 감격하는 그 감격을 표시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그런 형편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더 좋아질 거라는 그거는 내비두고 주님의 이 대속의 사랑에 대해서 자기의 사은에 대한 그 사은할 수 있는 형편과 기회를 만났기 때문에 더 기뻐 즐거워하는 그것이 저의 구속의 사랑의 감격이 끊어지지 안하고 그 감격이 자기에게 충격 되어있는 그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참고 견디는 그런 일이 없으면 참고 견디는 거야 좋은 데야 뭐 좋을 때야 아 제가 하고 싶어하는데 뭐 참고 견딜게 뭐 있겠습니까? 자기에게 불리한 그런데 어려울 때에 참고 견디는 그것이 주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게 아니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안심하고 참고 견딜 수 있고 안심하고 참고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전지 전능의 주권자가 움직이시니까 또 내게 좋은 거 올 거라 그 말이요. 소망으로 인해서 또 기쁨으로 참고 견딜 수 있고 이 구속의 사랑을 다는 모르지마는 그 참을 알면 거기 대해서 감사의 그 감격이 있으면 그로 인해서 좋아지는 그것 다 내비두고도 주를 사랑하고 주의 그 대속의 은혜를 참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났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앞으로 좋아질 거는 물론이지만 그거 내비두고 라도 사랑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났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무엇이 뒤에 결과로 어찌 된다는 그것보다도 당신을 그 구속을 기념할 수 있는 구속을 기념할 수 있는 구속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형편을 만났기 때문에 자기는 기쁘고 즐겁게 참고 견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참고 견디는 이것은 주의 구속을 믿는 그 필연적인 행위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믿는 것은 아닙니다. (1980. 4. 27. 주일오전)】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기가 온유함으로 받아라 그 말속에는 뭐든지 온유함으로 받아라 네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라는 것을 너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이 분을 연구해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고 이 말씀은 나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이 주님은 어떤 분이신데 나를 위해서 대속하셨는가 주님을 연구하고, 연구하고 보니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나도 주를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고 대속하신 이 분을 연구하고 연구해 보니 이 분이 전부요. 이 분이 큰데 이 분을 따라 가는 일에 두려울 것이나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고 이래서 여간 하나님을 아는 가운데에서 네가 이 도를 받을 때에 평안하게 받고 담대히 행할 수 있고 아무 염려 없이 걸어 갈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이 도를 받도록 네가 하나님에게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는 자가 되어 가지고 이 도를 받고 이 도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행동할 그것만 네가 받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네가 그 먼저 기본지식으로 기초지식으로 네가 가지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가 너를 구원하지 못 한다.
온유함으로 받아라 네가 하나님을 앎으로 인해서 이 도대로 행하는 네가 자신 만만하고 평안하고 단 마음으로 원하는 마음으로 세상이 강하게 올수록 다니엘이 오히려 비쭉거리고 사드락메삭 아벳느고가 불에 집어넣는다 할 때에 그들은 두렵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을 아는 연고입니다. (1980년 8월 1일 금 저녁)】
【내 집에 먹인 개야 내가 잡아먹고 싶으면 잡아먹고 내 집에 키우는 닭이야 고아 먹고 싶으면 고아먹고 하지만 소 한 마리 잡아주면 닭 한 마리 잡아주는 것 보다도 낫고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죽었으면 그는 더 크고그가 어떤 분인지 그 분이 어떤 분이신데 어떤 분이 그 분이 나를 대신해 죽으셨다니 그 분이 어떤 분인데. 만물을 보아 알찌라. 얼마나 크신 분이며 얼마나 위대한 분이며, 그 분이 어디에 일곱 가지의 유한한 분인지. 그의 크심이 무한함을 성경이 말하고, 영감이 알려주고 자연만물들이 알려서 그 분이 얼마나 크며 그 분이 얼마나 높으며, 그 분이 얼마나 능력이 크시며, 그 분이 얼마나 부잔지, 그 분이 만드신 우주 가운데에 조그마한 못대기 한 지역을 맡은 정권자라도 그 정권자가 자기를 기억하고 자기 위해서 희생하고 자기를 동정하고 자기 위해서 노력한다면은 감사 할 수 있는데, 우리를 구속하신 그 분은 어떤 분인데.
그 분이 지구를 만들고 우주를 만들고 그 안에 만물을 만드셨소, 만물을 보아 그 분을 알 수 있고 성경에서 모르면 만물을 만물에서 모르면 성경을 영감에서 아니 그 분이 무한히 크셔 나로서는 감히 그 분을 바라볼 수가 없소. 그 분과 나와 거리가 억억만만리도 넘어, 이 분이 나를 생각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다니 나를 위해서 그 부요와 모든 소유를 내어놓으시다니 천해지시다니, 이것을 죽는 날까지 연구하고 깨달아 여기에 감격해서 사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이요. 이 사랑 이 크시고 놀래 감격해서 자기의 죄인된 것, 자기가 불의한 것, 하나님과 원수되 것, 어떤 것과 원수되었는데, 왕과 원수된 것이 아니라 어떤 위대한 인물과 원수된 것이 아니라 어떤 분과 원수가 됬는데. 어떤 분의 뜻을 거슬렸는데, 어떤 비뚤어진 일을 행했는데 여기에서 주님이 구속해주신 자기 진리 여섯 가지 진리를 평생 연구 해야되고, 그 분의 사람을 평생연구 해야 되고 그 분이 날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하셨으며 나에게 주신 구속이 그 양이 얼만지, 넓이가 얼마인지 가치가 얼마인지, 권세가 얼만지. 효력이 얼마동안 인지 이로 인해서 이 구속을 인하여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 무엇인지 소망이 어떤 것이지, 이것을 알아 여기에 합당한 생활을 이 자의 생활을, 부족하지만 있는 대로 하려고 하니 그 세상의 빛이 되고 좋은 복음의 소식이 되고 인간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되고 생명과 평강과 구원을 주는 것이 되어지니 화려하고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것이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1980. 10. 10. 금 저녁)】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면 주일을 우리에게 주시는 데에는 하나님이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셔 가지고 하나님이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은 창조주가 피조물 같이 됐다 그 말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된 것은 왕이 거지 병신같이 된 것과 그 거리와 하나님이 피조물 같이 된 것과 그 거리가 어찌 됩니까. 누가 나를 사랑해서 일국의 대왕의 권세를 가진 그 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거지 의 위치를 취하지 아니하면 나를 구원할 수 없어서 왕의 자리를 내놓고 그런 천하게 되기까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했다고 하면은 그 사랑이 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피조물 됐습니다. 이것이 제일 큰 희생입니다. 하나님이 부요를 다 내놨습니다. 이래가지고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다했는데 우리 죄가 얼마나 큰 지 모르기 때문에 그 형도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 죄의 형벌에서 우리를 해결한 것이 어떤지 아무 성자라도 모릅니다. 아는 것이 다릅니다. 이것에 대해서 알아가는 데로 자기는 주의 것이 안될 수 없고 주의 사랑에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욕구에 응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범위가 넓고 무겁고 큰 요구인데 그것도 우리가 모릅니다. 그것을 주님이 대신 다 응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된 그 원수에 독함이 그 복수의 그 무서움이 영원무한한데 이것을 대신 복수 받고 화친을 해서 우리에게 화친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결 지워 주신 것이요.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하나님과 화평을 줬지만 사죄를 가지고 죄없는 자로 사는 칭의를 가지고 의로운 자로 살고 하나님과 화친한 자가 되어서 화친한 자로 사는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는 안됩니다. 죽으심으로 우리 문제를 다 해결 지워서 자본은 밑천은 다 마련했습니다. 근거는 다 마련했습니다. 그렇지만 미련한 이것을 가지고 누리고 살도록 이렇게 하는 데에는 다시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대속하지 아니하면 안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 위하여 죽으실 뿐만 아니라 죽으심으로 베푸는 그 공로를 우리가 붙들고 그 행복을 그 구원을 누리고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영원히 사람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 사람이라는 이 꺼플을 벗지 못하고 입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히 천하고 영원히 모욕당하고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된 이 큰 사랑으로 희생을 제공해 가지고 주일을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주신 것은 당신의 능력을 가지고 엿새동안에 만든 것이요. 엿새 동안에 만든 그것을 주시면서 엿새 동안에 만든 이것을 너희 마음대로 취급하지 말고 이것을 다 선물로 줄 터이니 내 법도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이것을 취급하면서 살라 이렇게 주신 것이 안식일입니다. (1980. 10. 12. 주일오후)】
【예수님의 대속을 끌여들여서 이용을 운동이라고 하면 그 운동은 마귀 운동인줄 알아야 됩니다. 마귀 운동 요것으로 구별하면 여러분들이 아주 간단하게 구별하지만은 이것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크냐 작으냐 세력이 있느냐 없느냐 계시록에 보면 말세에 이단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 예수님은 어린양인데 그건 새끼양이라 했어 더 순진한 것이요. 새끼 양인데 하늘에서 심지어 불을 ㄸ러어 트리게 하고 땅위에 기이한 이적을 다 행하기 때문에 천하 있는 사람들이 그 앞에 다 머리 숙이고 다 따
라간다 했소 그렇지만은 그것이 나중에 가서 계산할 때에 보니까 666이라 인간으로서는 최고지만은서도 하나님의 수는 칠수인데 666이요 7에 도달치 못했다 말이요. 7이 아니라 말이요 신본이 아니라 말이요 인본이라 그말이요.
666인데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라 그 사람의 수라 말은 인본이라 그말입니다. 암만 해봤자 인간만 조모은 인본이라 그말이요. 인간의 지식 인간의 생애만 주모아 놨다 말이요. 짐승의 수라 짐승은 뭐입니까. 짐승은 뭐이라 했어 계시록에 짐승은 뭐이 짐승이라 하지요. 예 계시록에 공부 안했어 계시록에 짐승을 뭐이 짐승이라고 그 짐승으로 상증했다 했습니까.이러는 것 배워놓은 것내 버리는 모양이라 그래 세상 세상 짐승의 수라 세상수라 말이요. 암만 말해도 세상 주 모은 것이라 그말이요. 인간 주 모아 논 것 세상 주모아 논것을 가라쳐서 666이라 그렇게 말해 666인데 이 수는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더라.
그러기에 우리가 이것으로서 구별해야 되지 그러면 그 사람이 아무리 교회서 갖다가 연보를 만힝 하고 뭐 갖다가 전도를 많이 하고 계획을 하고 설교를 잘하고 어떻게 한다고 해도 보자 그 종자가 어디서 나왔노 그 뿌럭지가 어데서 나왔노 그 시발이 어디서 나왔느냐 어데 근거되어 있노 그 뭐이냐 그것이 과학을 근거 정치를 근거 세상 지식을 근거 뭐 갖다가서 이 사회를 근거 뭐 근거 뭐 근거 이라고 예수님의 피에 놓고 예수님의 살에 녹고 예수님의 구속에 감격해서 구속받은 요 자기인줄 알고 깨닫고 고게서 부텀 시발되 나온것이 아니면 전부 미혹입니다.요것을 여러분들이 아고 자기 바께 있는 이교회를 구별해야 되고 세상을 구별해야 되고 또 이 모든 교훈들을 운동들을 구별해야 됩니다. (1981. 7. 24 금 새벽)】
【그러나 주님이 나 구원하기 위해서 당한 그걸 생각하면 내가 암만 당해봤자 그만침이나 당하겠나. 그러면 주님이 자기 구원하신 그것을 생각하고 또 자기도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형제를 구원할 그 각오를 가지고 구원할라 할때는 어떤 여러 가지 애로가 있을 것이라. 또 이것이 영생인데 인생이 이것 모르니까 다 멸망을 받고 있는데 여 가운데서 어쩌든지 영생으로 구원해아 되겠다. 자기가 가진것도 영생과 하늘나라 참된 사람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자기를 웅호할 수 있는 이 보배로운 것을 지금 들었습니다. (1981. 9. 23. 수 새벽)】
【목회자가 참 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쨌든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자기도 이렇게 '주님이 인간 구원을 위해서 원하시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일 하려면 뭘 해야 되느냐? 인간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 주님을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요런 일이겠구나!' 해서 주님을 위하려고 주님을 위하되 월급받고 하는 그것은 월급을 받으니까 월급쟁이와 월급받고 하는 것이 되어지니 월급받지 않고 이제 자비로 하고 하겠다 이래 가지고 사도 바울도 자비랑 가지고 하고 하려고 이렇게 애를 쓰다가 그대로 마쳤지만은 자비로 하는 것보다 오히려 사례, 월급을 받고, 사례를 받고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왜? 그것을 받는 것은 거기서 생활비를 받았기 때문에, 자기의 생활을 위해서 무엇 좀 한다는 것, '안 받으니까 내가 생활을 위해서 무엇 좀 해야 되지 않는가?'고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 참 재미가 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압니까? 자기가 자기 위해서 하는 일을 버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 아니오.
그러나 유급이 되면 자기 위해서 할 일은 안 해도 되니까 다 버릴 수 있는데 하는 것은 안 해도 되는데 하니까 그건 자기 양심의 거리낌이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의 일을 하되 자비량 하고 할련다' 이렇게 하다가 마지막에 그것보다 오히려 매이기를 유급에 그 복음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이 더 매이고 다른 것이 허비가 없겠다 싶어서 유급의 전도사로 나서서 모두 다 유급의 목회자를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다 깨닫기 때문에 자기 소유를 바치는 것보다도 시간을 바치는 것보다도 자기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 이것이 제일 주님 앞에 갈 때에 그래도 부끄럼이 적겠다 싶어서 자기의 헌신을 하고, 헌신하고 난 다음에라도 그 목숨을 바치기 전에는 다 바치지 못했기 때문에 목숨 바치기를 원해서 순교를 원하는 것이 다 이런 면을 깨닫고 하는 것입니다. 공연히 무슨 영광이나 존귀를 위해서 있는 것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니까 주의 계명 지키는 이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되는 것이요 주의 기쁨이 자기 안에 점점 형성되는 것이요 주님의 주시는 모든 것을 하나씩 둘씩 받아서 실상을 만드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의 일, 주의 일이 뭐인가?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주의 일이 뭐인데? 주의 일은 주님의 피로 구속하신 구속하는 일 하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자기 구원 이루는 일도 주의 일이요 남의 구원을 이루는 일도 주의 일입니다. 구원 이루는 이 일 외에는 할 게 없어. 가치 있는 일이 없어. (1981년 12월 11일 금 새벽)】
【그 다음에 두 번 째로 어려운 것은 자기 현실에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이것이 둘째로 어렵습니다. 계명을 지키기는 쉬워도, 주님을 생각하기는 쉬워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나를 구속해 주신 주님의 구속을 생각해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이것이 둘째 순위로 어려운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생각하는 자는 다 영생 얻는다. " 그 말은 주님이 나 위해서 대속의 이 사랑을 베풀어 죽으신 그 사랑에 자기가 감격해서 살 때는 다 영생 만든다 그 말입니다. 영생 만든다 그 말이오. 주님을 사랑함으로 내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이 현실에서 모든 게 있지마는 '나는 구속받은 자이기 때문에 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자기가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여기에 대해서는 이 사람에게 대해서는 이 계명 지켜야 되겠다. 이 물건 대해서는 이 계명 지켜야 되겠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이 계명을 지켜야 되겠다.' 모든 것이 와 가지고 그만 생각하고 그로 인하여 관계를 맺어 그에게 피동되라고 하는데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니까 주님께서 '너는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거기에 대해서 내가 계명 지킬게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대해서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에게 계명 지키고, 또 물건에 대해서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물건에 계명 지키고, 사건에 대해서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건에 계명 지키고, 그 사건에 계명 지키고, 그 사람에 계명 지키고, 그 물건에 계명 지키고, 그 감정에 계명 지키고, 그 모든 미에 계명 지키고, 그 흥에 계명 지키고, 그 급함에 계명 지키고, 이렇게 주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을 지키는 이것이 둘째 발자국에 어려운 것입니다. (1982년 1월 16일 토 새벽)】
【이러니까 여기 연보에는 거짓이 없어야 됩니다. 외식이 없어야 됩니다. 억지가 없어야 됩니다. 강제가 없어야 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구속의 이 사랑에 감격해서 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이것이 첫째, '나도 이 사랑으로 이 구원 받았으니 형제를 구원하는 데에 나도 투자하겠다' 하는 이 두 가지 동기에서 이 연보가 되어야 하고, 또 그다음에는 억지로나 강제로나 아까운 마음 가지고 하지 않고 즐겨 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되니까, 그 연보해서 아까운 마음에, 마귀란 놈은 자꾸 아까운 마음 들도록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 기도하고 생각하고 다 생각해서 아 잡던 것이 '아, 내가 오늘 떠나도 그만일 터인데 이것을 형제 구원을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대로 형제 구원에 이거라도 바치게 됐으니 참 기쁘다 즐겁다.' 하는 이 마음이 돼 가지고 뒤에 후퇴하지 말고 이것을 가지고 할 것이고, 깨닫고 보니까 이 하나가 인색했던 것이 열도, 깨닫고 보니까 더 바치고 싶습니다. 이래서 바치면 됩니다. (1982. 5. 23 주일오후)】
【그런고로 우리는 이 복음에 일하러 나선 이 일에 한 시간 한 시간, 한 자욱 한 자욱에 걷는 그 걸음을 결코 땅에 것을 소망해서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나를 구속하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사랑에 감격해서 해야 되고, 또 우리가 주님 앞에 곧 가서 설 터이니까 주님 앞에 가서 설 그 일을 생각하면서 복음 위해서 수고해야 되지 다른 것 때문에 수고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땅에 것을 소망하거나 또 자기의 기분이나 이런 것 위해서 해도 안 되겠습니다. 순전히 주님이 나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내가 주님의 그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은 못 하지마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 그분에게 내가 무엇을 대접을 할꼬? 대접하려 해도 내가 미약한 것이지마는 이것 가지고 주님이 피흘려 구속하신 인간 구원에 바치는 것 외에는 당신을 대접할 길이 없습니다. (1983년 9월 30일 금 지권찰회)】
【사죄의 은총을 누리다니? 어디서든지 죄에 대해서 주님이 사죄해 주셨으니까 내가 이 사죄의 공로를 힘입어서 죄를 대항하면 죄가 물러가게 됩니다. '나는, 주님의 대속으로써 사죄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죄를 지을 수가 없다' 할 때에 그 죄가 물러가고 나에게는 패전을 당하고 가는데 이것을 잊어버리고 '나는, 인간의 의지로 한번 죄 안 짓기로 하고 했는데 죄를 지을 수가 있겠느냐? 또 내가 어찌 양심상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 오 만 것을 다 들이대도 죄는 호령치고 우리에게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 그 '주님이 나를 내 죄에서 구속하시려고 주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나를 여기에서, 죄를 다 대속 하셔 가지고 사죄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다시 죄를 범할 수가 없다, 나는범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나는 죄를 다시 범할 수가 없고 나는 그 있는 자가 다시는 될 수 없다! 예수님이 대형으로써 이 죄를 멸한 요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요 사랑에 감격하고 요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요 권위를 힘입어서, '이러기 때문에 죄는 나에게 상관하지 못한다. 죄가 이놈아 네가 나한테 와 가지고 어떻게 덤비고 있느냐? 주님께서 대속하심으로 죄와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죄가 내게 어떻게 와서 네가 상관을 하고 가까이 왔느냐? 죄야 물러가라' 하면은 그놈이 당장 물러갈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고 경험과 체험이 있는 사람들이 가리켜서 '피의 능력 피의 능력' '피의 능력 있도다. 죄를 이기는 것은 주님의 피의 능력으로 죄를 이긴다.' 하는 그건 자기네들의 그 신앙 체험에서 그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 하는 것이오. (1984. 9. 25. 화 새벽)】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그 구원을 간단 명료하게 말을 하면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에서구출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시기 위해서, 또 하나님과 화친하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이 하늘의 모든 것을 다 희생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부요도 영광도 권세도 다 희생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형제를 이 사랑을 가지고,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이 사랑을 깨닫고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형제들에게 전하여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도 내게 있는 모든 소유나 또 영광이나 존귀나 내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다 형제.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여 구원하는 이것이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이고, 또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위에서 우리 위해서 낮아졌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데까지 낮아져도 불만 불평 없이 끝까지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낮아지는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요, 주님이 부탁하신 일인 줄 알고 형제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낮추는 것, 낮아지는 것, 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셨고 세상에서 온갖 곤욕을 참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떠한 사랑으로 구원한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이 사랑에 감격해서 우리가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이 날 구원하기 위해서 하신 요대로의 이 모형을 형제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 이것이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이요,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985. 10. 30. 수 저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뭐이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내가 너 희를 사랑한 거같이 이제 주님이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렇게 큰 힘 들여 가지고 주신 이 대속을 다른 형제에게도 내가 전해 가지고서 그 형제도 이 대속을 입어 서 이렇게 인간 영원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 얻는, 이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 가 지고 나도 이 대속을 형제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전해줄라고 하니까 좀 괴롭고 힘이 듭니다. 새벽 잠을 못 자고 새벽에 오늘 아침에도 일찌거니 지금 심방 가고 뭐 전도 가야 됩니다. 그것도 하고 이러는데 힘이 들어도, 어려워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괴로와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나중에는 자기 직장에 좀 손해가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손해 가도 전할라고 애쓰고, 나중에는 밥을 굶어도 전할라고 애를 쓰 고, 마지막에는 감옥에 가도 전할라고 애를 쓰고, 마지막에는 죽어도 이거 전하는 것을 전하는 이제 여게서 주님은 만족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 리는 것은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종이라 다시 하지 안 하고 너를 내 친구라 해서 나 있는 데 너 있고 너 있는 데 나 있고 너와 나와 함 께 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은 모든 것을 너에게는 하나도 숨기지 안하고 다 알 려서 나 아는 거 너 다 알고 너 행하는 거 나 다 행하고 나 행하는 거 너 다행하 고 너와 나와 같이 되어서 내 보좌에 나만 앉을 게 아니라 내 보좌에 너와 함께 내 보좌에서 영원히 다스리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985. 12. 1 주일오후)】
【지금도 저 미개한 야만국에 가 가지고 아버지가 가서 선교하다가 그만 거기서 죽임을 당해 버립니다. 죽임올 당하면 그 다음에 또 아들이 대를 이어서 또 선교를 갑니다. 또 아들이 대를 이어서 선교 가면 또 그 다음에 죽고 나면 또 손자가 대를 이어 가요. 삼 대 사 대 가 가지고 선교해 가지고 그지방을 구원시킨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놀랠 일들이 많을 것이라. 그런 거는 우리가 역사로 지금 모두 다 교회사에 봐서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다 어떻게 했느냐?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간 속에 찾아왔다, 창조주가 피조물 속에 들어와서 피조물이 됐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중생시켰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깨닫고 내가 못 들어갈 데가 어디 있으면 못 갈 데가 어디 잇겠느냐? 이것을 다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의 이 사랑에 감격해 가지고 모두 다 그런 일 하는 것이지 명예로 하거나 또 무슨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인기를 끌기 위해서 이렇게 무슨 간판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닙니다.
이러니까, 성부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했지, 성부는 뭐했습니까? 독생자를 내줬지,또 성자는 어쨌습니까?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역사하셨지, 또 성령은 또 우리를 위해서 이 더러운 죄인들 속에 직접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지금 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될 때는 누구로 살아요? 누구 중생되요? 우리가 중생될 때는 뭘로 중생돼요? 성령님이요! 우리가 중생을 어찌 했느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살렸다 말이오. 이러지, 밤낮 탄식으로 간구하고 있지.
또 누굽니까? 중생된 영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면서 중생된 영 단체들이 지금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들까지도 탄식으로 양자될 것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중생된 영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전적 단합해 가지고 협조하고 있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지금 협조하는 것은 어떤 것이 협조하고 있습니까? 모든 피조물이 협조하고 있습니다. 요걸 알아야 돼. 모든 피조물이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피조물이 협조하고 있으니까 모든 피조물이 협조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공기가 협조한다 말이요 시간이 협조한다 말이 하늘이 협조한다 말이요 땅이 협조한다 말이요 바다가 협조한다 말이오. 모든 만물이 다 협조하고 있습니다. 협조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이 이렇게 이 큰 배경들이 우리를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라기 때문에,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게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어떤 것이 와 가지고 이 구원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이 구원을 없앨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여게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면 모든 게 우리 구원에 협력이 되지 우리 구원에 방치는 자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1986년 5월 20일 화 새벽)】
【우리는 오늘에는 누룩 없는 떡이 뭣인가? 성경에 “바리새 교인들의 누룩을 삼가라” 누룩은 적은 누룩이 많은 가루를 부풀게 해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썩혀 버립니다. 누룩이 들어가면 가루를 부풀게 만들어서 가루와 가루 사이에 벌어져 가지고서 구멍이 나고 뻐끔뻐끔 나고 가루가 그만 이래 퍼슬퍼슬하게 이래 아주 뭐 괴어 가지고 이래 아주 그 부풀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더불어, 누룩 없는 떡은 속에 공간이 없는, 사람과 자기와의 사이에 그 사이가 벌어지는 그런 틈이 없고 불목이 없고 화친으로 되어 있는 그 화목을 가리켜서 누룩 없는 떡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환난이든지 그 환난에서 좋은 성공을 하려고 하면 이 화목을 가지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에 감격해서 나도 이 주를 위해 살겠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거게서 은혜받아 가지고 자기도 주를 위해서 살 뿐 아니라 나는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주님 위해서 사나 죽으나 뭐 먹든지 마시든지 주만 위해서 살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생겨지는 거게다가 뭣을 덧붙여야 되느냐 하면 아무리 원수라도 이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이 대속을 생각하고 자기가 다 용서하고 관용하고 화친을 합니다. 화친하는 것. 이것이 무교병 먹는 것입니다. (1987. 11. 20. 금 저녁)】
【그래서, 오늘 오후에 본 대로 책망할 것 있다 이랬는데 이 에베소교회는 참 일 많이 한 교회입니다. 착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런 것이 다 소용이 없다고 정죄를 하신 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소용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 뭐인가? 처음 사랑은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는 다 이사랑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형으로 사죄 주신 거기에 감격이 돼서 우리는 심히 어렸지마는 그래도 자타를 그 죄에서 구원하고 싶은 그런 본능이 생겨졌고, 또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 의를 입어서 의를 건설하는 의로운 자가 되게 하려는 그런 본능이 우리에게 있었고,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해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세게로 화친을 시키고 친근케 할라고 하는 그런 역사들이 있었는데 그 세 가지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아무리 땅 위에서 인간 보기에 별별 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다른 것을, 그 죄라면 삐뚤어진 것인데. 그 삐뚤어진 것을 없애려고 하는 그 삐뚤어진 것을 없이 할라고 삐뚤어진 데에서 구원할려고 하는 요 희생의 노력, 또 바로 세울라고 하는 그 희생의 노력, 또 하나님과 피조물,인간과 인간, 인간과 만물 그 사이에 이 화목을 이후기 위해서 희생의 노력 이 세 가지 희생의 노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했습니다. 우리는 명예심으로도 얼마든지 선한 일 할 수가 있고, 또 우리는 무슨 다른 야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 꼭 주님이 나를 대형을 하심으로써 사죄 주신 요것을 기념하고, 대행으로 칭의 주신 요것을 기념하고, 대화친으로 나를 대속하신 것을 기념하는 거, 요 세 가지에서 사람을 구원하고 요 세 가지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고 희생, 이 세 가지로 사람을 구원코자 하는 희생 요것만이 가치 있습니다. 요것만이 가치 있습니다. 요것으로써 산 것은 다 모든 존재에게 다 이용 가치 있어서, 필요하고 환영받고 존대받고 하는 것이오.
이것이 없으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떨어진 걸 말하는데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은 우리들에게 이 그리스도의세 가지 대속을 내가 입을 것을 대속을 입은 이 사랑을 생각하고 대속을 입혀 주신 이 사랑을 내가 받아서 이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이 세 가지로대속하려는 그 노력과 희생 요것이 끊어지면 하나님과 끊겨집니다. 요것이 끊어지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집니다.요것이 계속될 때에는 하나님과 나와의 끊겨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죄, 그냥 희생 암만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대형으로 사죄했고 대행으로 의를 세우셨고 대화친으로 이렇게 생명 주신 사죄 칭의 화친의 세 가지 주님의 그 사랑을, 사랑으로 내가 이 세 가지 대속을 입은 것을 자기가 깨닫고 입은 것을 믿으므로 이 입은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 입히는 그 행동하는 그것이 바로 주님과 연결된 행동이요 그것이 등대의 빛이 됩니다. 그것리 등대의 빛이 됩니다. 고것이 주님과 연결된 행동이요 그 행동으로만 우리는 세상에서 빛의 본분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냥 아무리 사람들이 뭐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의학적으로 노벨상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지마는 그것은 다 세상에서는 빛이라 하지마는 주님은 아무 쓸데없다고 주님이 에베소 교회를 버림과 같이 그렇게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이게 떨어지는 것이라: 이기념이 없으면 우리는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의 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대속의 구원을 내가 받았다는 증거가 뭐이냐 하면은 이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받은 증거입니다. 이 대속을 기념하는 것은 곧 이 대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내가 이 대속 운동을 내가 계승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세 가지로 대속하신 이 대속을 내가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계속 행동하는 그것이 기념하는 거요 대속을 받은 증거요 그것이 곧 주님과 연결돼 가지고서 대속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회개하라 말은 이제 처음 사랑을 버린,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았으니 이 대속을 받은 증거 곧 이 대속을 내가 계속 지금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것, 우리가 이 세 가지, 대형 대행 대화친 이 세 가지 행동의 희생 그것이 곧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이요 성령을 기념하는 것이요 요것이 하나님과 끊기지 안하고 연결되어 있는 요 행위요 이것이 등대가 그대로의 제 본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1988. 5. 29. 주일오후)】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이 목자로서는 문으로 들어 왔나 딴 데로 넘어 들어왔나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은 7절 하반절에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이렇게 했어. 나는 양의 문이라.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문으로들어온다 말은 예수님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온다. 예수님이 양의 우리의 문이면 어떻게 그 예수님을 뭐 배를 들고 나옵니까 어떻게 들어옵니까? 이것은 하나의 이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오지 안한 자는 절도요 강도요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오는 자만 선한 목자라 이랬는데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 예수님이 나를 대속해 주신 이 대속에 감격해서 이 대속하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주님의 대속에 감격된 그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의 하시는 일을 돕기 위해서 이 복음 생활 또 이 구원 역사는 해야 되지 그게아니면 다 절도요 강도라, 거기에 감격한 감격과 주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의 대 속의 사랑에 감격해서 주를 위하고 싶은 고 간절한 마음에서 하지 안하게 되면 절도요 강도된다 그랬습니다.
절도요 강도된다 그말은 주의 구속에 감격해서 하지 안하면 결국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자기 위해서 하는 것 된다. 자기 위해서 자기 뭐 별별 것 다 있겠습니다. 자기 기분을 위해서, 자기 또 권위를 위해서 자기 명예를 위해서, 자기의 또 기분을 위해서, 자기 취미를 위해서 어쨌든지 자기 위해서 하는 것은 그것은 양을 자기 위해서 하면은 그 양은 자기 위하기 때문에 자기 것이 됐지 주님의 것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주님의 대속하신 이 사랑에 심히 감겨한 고 감동으로 복음 운동을 하지 안하면 결국은 사욕으로 한다 그말입니다. 결국은 사욕으로 한다. 사욕으로 하면은 그것은 그 양을 자기 양을 삼았고 사욕으로 하니까 제 중심의 양으로 길렀기 때문에 주님에게는 적이요 주의 양을 뺏든 것이요 도적질 한 것이요 그 양은 멸망 받습니다. 구원 얻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사가 벌써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로 자기 사욕을 가지고서 목회를 한다든지 권찰직을 한다든지 이렇게 복음운동을 하면 사욕을 가지고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 복음운동 하는 그것은 그 절과가 전부 다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것이 되기 때문에 주님의 것을 빼앗은 것이지 주님의 것을 구원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 생활이 우리가 얼마나 참 세밀하고 까다로운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한 것이어야 되지, 주를 위해서 주를 어떻게 위해 할 수 있는가? 주님의 대속에 감격해서 주를 사랑함으로 주를 생각하고 일하는 그 일이라야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맺지 딴 무슨 야심이나 야욕이나 가지고 하는 것은 다 헛일입니다. (1988. 6. 3. 금 지권찰회)】
【그런데 예수 믿는, 바로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주를 위해서 시작하는 일이라면 주를 위해서 하는 그 일을 시작했는데 그 일을 하다보니까 자기 소유가 다 절단나게 되고 또 자기 몸이나 생명이 다 절단나게 된다고 해서 그 알에 대해서 조그마치라도 주저를 하거나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런 형편이 되면은 더 다른 사람 보기에도 똑똑하게 뚜렷하게 그 일을 더 굳게 잡고 그 일을 감당해 나갑니다.
그러나 자기가 주님이 나를 어떻게 구원하신 이 구원에 붙들리지 안하고 주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니 나도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주님을 어떻게 위해야 되겠다는 이것을 깨달아서 나를 구속하신 주님을 인하여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이 구원하신 이 구원에 감사하는 그 사은의 생활로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소유를 다 바쳐서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이 이래 가지고 나를 구원하신 이분을 대우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도 이 세 가지를 바쳐서 대접하지 안하는 것이라면, '주님이 이렇게 큰 걸 다 바쳐서 대접했는데 내가 이 대접하는 거는 얼마짜리를 대접해야 되겠다. 내게 조금 수고가 되는 정도로 대접하겠다. 수고되는 정도지 만일 고난이 되면은 나는 할 수 없다. 고난이 되는 정도지 죽음이 오면은 할 수 없다.' 하는 그렇게 주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고 구원하신 이 사실을 깨닫고 이 사랑에 붙들려서 감격해서 주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다가 처음에 시작할 때에 아주 힘 안 드는 일로 시작이 되면은 그 일을 하다가 힘드는 일이 되면 차차 가라앉습니다. 마지막에 소유와 몸과 생명이 다 들어서 다 바쳐져야 될 그런 때 되면은 다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데에 올 때에 '주님이 나 위해 죽었으니 나도 주를 위해 죽고, 주님 나 위해서 가난해졌으니 나도 주를 위해서 가난해지고 주님은 나 위해서 몸이 다 절단났으니 나도 주를 위해서 몸 바치는 게 마땅하다' 이것을 깨닫고 이 본질과 이성질로서 일하게 된 사람들은 중단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오종덕 목사님이 시를 지어서 언제 말하는데 그 시가 '주 아위사(主我爲死)했으니'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으니, '아 주위사(我主爲死)라' 나도 주를 위해서 죽겠노라 하는 그것이, 시를 지어서 언제 한번 공부 시간에 말해 주는 것을 저도 들었습니다.
그러고 웅천은 주기철 목사님 모교입니다. 웅천에 제가 집회하러 가니까 사경회를 인도하러 가니까 나무 판자, 커다란 나무 판자에게다 큰 글을 썼는데 거게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은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주를 위해서 죽겠노라' 그렇게 쓰여 가지고 있습디다.
그래 내가 그것을 보고 '이것이 누가 이렇게 썼으며 이거 무슨 뜻이냐?' 이라니까 '주기철 목사님이 거기에 평신도로 지낼 때에, 제일 처음에 예수 믿어서 평신도로 지낼 때에 그분이 쓴 글인데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서 죽겠노라 하는 그것을 써서 하도 간이 좋아서 그것을 우리 교회서 보존하고 이래 있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과연 주를 위해서 순교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겠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 말은 죽음이라는 것은 자기 소유보다 몸이 귀한 것이고 몸보다, 생명이 귀한 것입니다. (1989. 7. 16. 주일새벽)】
선지자문서선교회∥김반석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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