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5 19:30
■ 믿음
2019. 11. 5 : 1차 원고/
【선지자문서선교회 http://www.seonjija.net 김반석 e0691@hanmail.net】
(서론)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 도리가 있는 성구는 다음과 같이 엡1:13 말씀이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또한 믿어’하셨다.
그러면 ‘그 안에서’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그 안에서를 말씀한다.
그러면 ‘또한 믿어’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행13:39) 이 믿음을 말씀한다.
(본론)
1장 그 안에서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는’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그 안에서를 말씀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 곧 구속’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을 쓰기 직전에 정리한 제목 「대속과 구속」에 대한 글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활용한다.
1. 대형벌(代刑罰)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의 구속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함께 거하시지 않는(창6:3, 롬8:9) 아직 육신의 연약한 자로 있을 때에(롬5:6-7),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의 육체가 죽으시는 대형벌(代刑罰:골1:22)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죄짓지 아니하는 자로 죄 사함 곧 사죄의 구속을 하셨다.
2. 대복종(代服從)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칭의의 구속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롬5:19) 아직 죄인 된 자로 있을 때에(롬5:8-9),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대복종(代服從: 빌2:8)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로 죄 사함 곧 칭의의 구속을 하셨다.
3. 대화평(代和平)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화목의 구속
(골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가 육신의 생각(롬8:7)으로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로 있을 때에(롬5:10-11),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 모든 충만으로 거하시는 대화평(代和平:골1:19-20)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죄 사함 곧 화목의 구속을 하셨다.
2장 또한 믿어
(행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하셨다. 그러므로 이 사람 즉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가 곧 ‘그 안에서 또한 믿어’이며,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 화목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이다.
1.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의 육체가 죽으시는 대형벌(代刑罰:골1:22)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죄짓지 아니하는 자로 죄 사함 곧 사죄의 구속을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는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이다.
2.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대복종(代服從: 빌2:8)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로 죄 사함 곧 칭의의 구속을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이다.
3. 화목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대화평(代和平:골1:19-20)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죄 사함 곧 화목의 구속을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이다.
(결론)
믿는 우리가 ‘믿음’이라 하면 대개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것을 믿는 믿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는(엡1:13) 믿음을 믿음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것을 믿는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음(엡1:7)’에 대한 믿음이다.
- ‘죄 사함’은 중생의 씻음(딛3:5)으로서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짓지 아니하는 자,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구속하신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그 안에서 또한 믿는 믿음(엡1:13)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에 대한 믿음이다.
- ‘의롭다 함’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으로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요15:26) 것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눅4:18) 것이다.
(첨부)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간단히 말하면 구원파는 ‘죄 사함’만 믿으면 되고, ‘의롭다 함’은 믿을 필요가 없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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