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론과 원론의 그 원리적용과 그리고 자기중심 자기위주
선지자선교회
우리가 일반론과 원론이 있음을 압니다. 법에도 일반론 현행법과 원론 법철학이 있음을 압니다. 법철학의 그 원론은 더 깊이 따로 있음도 압니다.

선교사라는 말은 오랜 세월 보편적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 본래 선교사는 복음이 전해지 않는 곳에 순교를 하면서 까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주님의 종을 일컬어서 선교사라 불렀습니다. 이러다가 지금은 국내가 아니고 국외에 복음을 전하러 나가면 이러함도 다 선교사라 합니다.

일반론으로,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국외에 그것도 순교가 있는 그런 곳에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주님의 종을 선교사라 하였고, 또 복음이 이미 전해진 곳에 그것도 순교가 없는 그런 곳에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주님의 종도 선교사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두 성격의 선교사가 있는데 이 두 성격의 선교사 중에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순교가 있는 그런 곳에 복음을 전하러 가면 선교사이고, 이미 복음이 전해져 있고 순교가 없는 그런 곳에 복음을 전하러 가면 선교사라 할 수 없는가? 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반론적 시각과 원론적 시각으로 대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일반론적 시각으로 선교사라 함은 국외 그 선교지 국민에게 복음을 전하면 선교사라 합니다. 물론 국외 그 선교지 국민에게 복음을 전하더러도 일반 목회적 차원이 있고, 그런 것을 넘어서 또 선교적 차원이 있습니다.

한국 초기교회,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최초의 목사 7명, 서경조, 길선주, 이기풍, 양전백, 한석진, 송인서, 방기창을 안수하여 세우고, 그 중에 이기풍 목사남을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한국 초기 교회 때는 국내가 되는 제주도라는 곳도 선교지로 대하고 그곳에 가는 주님의 종을 선교사라 불렀습니다.  

이런데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선교사라는 그 이름에 대하여 국외에 그것도 거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곳이어야 하고, 또 순교의 위험이 있는 곳에 파송되는 주님의 종이라야 선교사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선교사라 부를 수 없다고 합니다.

또 그런 정도의 곳이라야 '선교'이지 그런 곳이 아니면 '전도'라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 분의 그런 말씀이 거의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 그러함은 선교에 대한 원론적 차원에서 바라 보는 시각으로 보면 말입니다.

그러나 선교는 물론이거니와 그 어떤 현상에도 일반론으로 대하여 논리 할 수도 있고, 또 원론으로 대하여 논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말입니다. 일반론으로 말할 때 원론을 갖다 붙이고, 또 원론을 말할 때 일반론을 갖다 붙인다면 서로 간에 상치가 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를 하게 되면 선교에 대한 귀중성을 알게 됩니다. 그 귀중성이라는 것은, 땅 끝까지 이르러 주와 복음을 전한다는 그 주님의 명령 순종과 또한 선교를 하므로 목회자 자신이 받는 은혜와 교인들이 받는 은혜는 점점 더 충만해져 갑니다.
  
그 어떤 분이 말하기를 목사라는 이름을 두고 선교사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이름의 영광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교사라면 그런 영광의 자리는 없습니다. 선교비 차원을 보면 본국 교회 목회자들은 선교사를 문전박대는 하지 않지만 거의 동냥꾼 취급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도에 대해서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백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도 중에 전도는 새벽기도에 참석할 수 있도록 권면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장성한 자를 장성시키는 것이 전도 중에 전도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일반론이 아니라 전도에 대한 그 원론이 되겠습니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미종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선교이고, 원론적으로 말하면 전도입니다.    

각설합니다.
무엇이 문제이냐?입니다.

문제는 일반론과 원론의 적용에 있어서가 문제입니다. 자기 형편에 따라서 어떨 때는 일반론으로 적용시킵니다. 또 어떨 때는 원론을 적용시킵니다.

자기가 옹호하고 싶으면 그에 따라서 그에 맞게 일반론 아니면 원론을 적용시킵니다. 자기가 배척하고 싶으면 그에 따라서 그에 맞게 일반론 아니면 원론을 적용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자신을 볼 때는 언제나 일반론 아니면 원론으로 그 원리를 적용시켜 논리하기 때문에 정당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론이나 원론을 적용하는 그 배후가 자기중심 자기위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자기에게 가리어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반론과 원론을 각각 그 현안에 맞게 바로 적용시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두 원리를 적용시킬 때 자기중심 자기위주를 배제시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기중심 자기위주를 배제하고, 그 일반론과 그 원론을 그대로만 그 원리에 맞게 적용시킨 글들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여 좋았음을 다들 인정하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4.07.04-3925 김반석 2024.03.30
공지 신앙 표어와 목회 표어 김반석 2024.03.30
공지 나는 독립으로/무언의 용사로/주님만모시고/어디까지든지 [1] 김반석 2022.12.14
공지 김반석의 표어적 성구 [1] 김반석 2018.12.02
공지 김반석의 묵상 선지자 2014.08.15
3925 큰소리 칠 것은 큰 소리가 안치진다 김반석 2024.07.04
3924 약하다, 부족하다, 잘못했다 김반석 2024.07.02
3923 단점을 이기는 법 김반석 2024.07.01
3922 싸움의 두 종류 김반석 2024.06.29
3921 배척받는 원리와 환대하는 원리 김반석 2024.06.29
3920 신천지의 길거리 활동을 배격하다 김반석 2024.06.29
3919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김반석 2024.06.28
3918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김반석 2024.06.27
3917 목회자의 안팎 김반석 2024.06.26
3916 잘난 사람 · 똑똑한 사람 김반석 2024.06.26
3915 이단의 거짓말과 참람된 말 김반석 2024.06.25
3914 구원론에서 발명과 발전 김반석 2024.06.25
3913 똑똑한 자, 좋은 자, 나쁜 자 김반석 2024.06.24
3912 주의 종은 무익한 종 김반석 2024.06.23
3911 부피와 가치는 다른 것이다 김반석 2024.06.23
3910 백영희의 신앙노선 분별법 김반석 2024.06.20
3909 신앙은 실체, 순진은 그림자 김반석 2024.06.19
3908 세상 복과 천국 복 김반석 2024.06.19
3907 변호사와 의사와 목사의 본분 김반석 2024.06.14
3906 관심과 감시 김반석 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