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9 00:01
■ 신앙노선 보수 간절히 소원
어떤 책에 다음의 글이 실려 있어서 인상(印象) 깊게 보았다.
조선왕조 21대 왕 영조는 원손(정조)에 대한 사랑과 교육열에 유별났다. 원손이 3세가 되자 영조는 민우수와 남유용을 보양관으로 삼아 보양청을 설치하였다.
영조는 원손을 잘 가르치는 남유용의 공로를 칭찬하고 호피(虎皮)를 한 벌 선사하였다.
“지금 이것을 경에게 주는 것은 경으로 하여금 고비(皋比: 호랑이 가죽)를 깔고 앉은 스승이 되라는 것이니 경을 포장하려는 것이 아니고 종묘사직(주: 왕실과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위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영조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낮추었다고 한다.
이 때는 왕세자(사도세자)가 건재하고 학문에도 열심이어서 후사를 걱정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영조는 늘 종묘사직의 안정이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고비를 깔고 앉은 스승이 되라’는 말은 위엄을 갖추고 원자를 엄하게 교육해달라는 뜻이다.
우리 교단은 백영희목사님께서 세우신 진영이다. 백영희목사님께서는 일제신사참배를 이기신 신앙이며, 해방이후 고려파에서 주남선목사님과 함께하신 신앙노선이다. 그리고 6·25 환란에서 공산군이 점령한 거창지역에서 하루 세 번 종치면서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승리를 하셨다. 고려파의 지도부가 차츰 불의의 교권을 가지므로 저항하다가 제명을 당하고 독립교회로 나섰다가 몇 교회가 모여 1959년도에 사도행전 15장을 근거한 교회행정을 표명하고 공의회(공회)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른다. 백영희목사님의 신앙노선 즉 공회의 신앙노선은 순생 순교의 ‘하나님중심’ ‘성경중심’이다.
오늘의 한국 교계의 보수교단이 많이 속화되었다. 우리 진영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 진영의 목회자들이나 교인들 가운데는 본래의 신앙노선을 보수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 부족하고 미약한 종도 참 간절하다. 그래서 영조가 종묘사직을 위한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낮추었다고 하는 대목에서 북받침이 있었다. 그 여운이 길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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