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 15:25
■ 주의 영에 대하여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 주의 영이 무엇이며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어떤 자유함이 있는가?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
그러므로 ‘주의 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주의 성령을 말씀한다.
그리고 ‘자유함’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보혜사-요1:14),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보혜사-요14:26),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보혜사-요15:26) 것이다.
(첨부)
■ 그리스도의 영에 대하여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영은 무엇인가?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는 주의 성령이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말하는데 곧 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므로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 제사장 직책이며,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 선지자 직책이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 왕 직책이다./ 그래서 주의 영(주의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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