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의 '공회' 노선

2007.05.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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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의 '공회' 노선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175
게시일 : 2006/03/11 (토) PM 00:32:23  (수정 2006/03/11 (토) PM 00:45:23)    조회 : 90  

■ 총공회의 '공회' 노선


총공회 신앙노선은 영감과 진리의 노선입니다. 영감과 진리의 노선이 아니면 총공회 노선이 안됩니다. 성경말씀대로 해도 율법이 될 수 있습니다. 총공회 대로해도 율법적이 될 수 있습니다.

총공회의 신앙노선에는 밖과 안이 있습니다. 밖은 외형으로서 예배, 찬송, 행정, 등이 있습니다. 총공회 외형 속에 실상은 반드시 영감과 진리대로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총공회 신앙노선입니다.

총공회 보수노선은 영감과 진리대로 할 때에 총공회 보수노선입니다. 총공회 노선에서는 중간 노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영감과 진리대로의 노선이 아니면 총공회 노선이 아닙니다. 물론 외형적 형식을 보고 '총공회 노선이다!' '총공회 중간 노선이다!' '총공회 노선이 아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총공회에는 중간노선은 없습니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이지 이 길도 아니고 저 길도 아닌 중간의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걸음에는 쪽발 걸음이 있을 뿐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의 외형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여러 쪽으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형 속의 실상은 두 쪽입니다. 총공회 보수노선과 총공회 타락노선 이 둘 뿐입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하면 총공회 보수노선이고 영감과 진리대로 하지 않으면 총공회 타락노선입니다. 그러기에 총공회 보수노선과 총공회 타락노선을 분간하는 데에는 영감대로 진리대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분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외형적 총공회 보수노선이라도 영감과 진리대로 하지 않으면 총공회 보수노선이 되지 않고 또 아무리 외형적 총공회 보수노선이 아니라 할지라도 영감과 진리대로 했다면 그때는 총공회 보수노선입니다.

이렇게 '총공회 보수노선이라' 또 '총공회 타락노선이라' 하다보니 보니 진작에 '영감과 진리대로의 보수노선이라' '영감과 진리대로의 타락노선이라' 해야 하는 구별의 잣대를 '총공회 보수노선이라' '총공회 타락노선이라' 하고 주객이 전도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총공회 보수노선은 영감과 진리 대로를 위해서 있는데 영감과 진리가 총공회 보수를 위해서 있는 것 같은 어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에는 밖과 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밖과 안이 다 충실해야합니다. 그러나 자칫 밖에만 충실하고 안은 부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령의 눈이 밝지 못하면 외형의 밖만 볼 수 있습니다. 외형이 되는 밖은 울타리로서 영감과 진리대로 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강조하려는 것은 총공회 신앙노선에는 반드시 영감대로 진리대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공회 신앙노선을 보수한다는 것은 영감대로 진리대로 걸어가는 노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반드시 총공회 신앙노선을 보수 할 수 있고 영감과 진리대로 살지 않으면 총공회 보수노선을 걸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영감과 진리대로 살지 않고 아무리 총공회 보수노선을 말해도 그것은 허공에 외치는 말이 됩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구원의 길을 바로 걸어가는 노선이라는 것을 자타가 알게 됩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살아 자타의 구원을 바로 이루어 가는 우리의 신앙노선의 외형적 이름을 나타낼 때 총공회 신앙노선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노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이지 단지 외형적 노선 보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총공회 보수는 영감대로 진리대로 사는 길뿐입니다. 영감대로 진리대로 살면 자연히 총공회 보수는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영감과 진리대로는 뒷전으로 돌리고 어떻게 하면 총공회를 보수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총공회 보수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총공회 변질이 생겨질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합니다. 성경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총공회 보수에도 이 성구 도리를 적용시켜 보면 어떻게 해야 총공회 보수노선을 걸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진정한 총공회 보수를 외치는 것일까? 하고 염려 연구하는 우리들에게 먼저 자신이 진리대로 영감대로 살고 그 후에 진리대로 영감대로 살자고 전하면 그것이 바로 총공회 보수를 하게 되는 첩경의 진리의 걸음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총공회 노선의 외형은 개인마다 교회마다 공회마다 각각 여러 노선으로 분류 할 수 있겠습니다.

'보수, 보수중도'     '중도, 중도보수'     '속화, 속화중도'

그러나 그 외형 노선 속에는 영감과 진리 대로이냐? 영감과 진리대로가 아니냐? 하는 두 노선뿐입니다.

그래서 영감과 진리가 없어도 총공회 노선을 걸어 갈 수 있는데 그것은 외형 노선입니다. 영감과 진리가 없이 총공회 노선을 걸어가면 조만 간에 총공회 외형 노선도 유지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익히 보아서 그 형편과 성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총공회 신앙노선을 걸어가는 우리는 총공회 신앙노선을 걸어가려는 데만 중심을 두지 말고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이 길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총공회 신앙노선을 걸어가게 되고 그것이 바로 총공회 노선을 보수하는 근원의 힘입니다.

또 이렇게 말하다 보니 말의 중심이 변질 될 뻔했습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영감과 진리의 신앙노선인 총공회 신앙노선을 보수 할 수 있습니다.

영감과 진리는 형체가 없고 영감과 진리대로 산 것은 형체가 보이다보니 그 보이는 형체를 가리켜서 총공회 신앙노선이라 불렀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영감과 진리대로의 노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체를 아무리 보수하려해도 그것만으로는 보수가 되지 않습니다. 그 형체를 만들고 보수하는 영감과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영감과 진리 없이 총공회를 말할 수 있습니다. 총공회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아도 진정으로 총공회 신앙노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답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총공회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이 총공회 외형만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총공회를 발표하는 우리가 서서히 변질이 오기 시작할까 염려가 됩니다. 총공회 외형만 발표하고 총공회 외형만 붙들고 있지 총공회를 낳은 총공회의 근원이 되는 영감과 진리는 뒤에 밀려나는 것 같아 우려가 되고 있습니다.

영감과 진리 없이도 외형적 총공회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탄알이 얼마 남지 않은 총과 같아서 얼마 동안의 한계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우리가 다 같이 영감대로 진리대로 합시다!

진정한 총공회 노선은 신앙노선이냐? 타락노선이냐? 둘 뿐입니다. 영감대로 진리대로 사느냐? 살지 않느냐? 두 길 노선뿐입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살고 영감과 진리대로 살도록 인도합시다. 그러면 총공회 노선은 자연히 보수 계대 할 수 있습니다. 총공회 노선은 영감노선 진리노선입니다.

예루살렘 공회는 영감대로 진리대로의 노선이었습니다. 총공회는 예루살렘 공회와 단일교회를 향해서 나아가는 공회입니다. 그러기에 총공회는 공회노선으로서 영감과 진리의 노선입니다.

'총공회'는 교회사에서 별도의 공회 노선이 아니라 예루살렘 공회를 보수 계대하여 나아가는 노선임을 대외적으로 나타내는 명칭입니다. 그러기에 '총공회'라고 할 때는 '한국총공회'의 약칭임을 인식해야 하고, 한국총공회가 가지는 '노선'의 성격을 말할 때는 예루살렘 공회를 향해서 단일성을 가지는 '공회'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노선의 노선정립에 혼돈이 없겠습니다.

'한국 총공회'는 '예루살렘 공회'를 계대 하려는 노선으로서 진리와 영감대로의 노선입니다. '공회' 노선으로 걸어가는 '한국총공회'에 속한 우리들은 참으로 복되고 복됩니다.

'예루살렘 공회'는 영감대로 진리대로의 공회였습니다. '한국 총공회'에도 진리대로 영감대로여야 합니다. 그래야 공회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총공회'는 '공회노선'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회 노선의 후손 된 우리들은 공회 노선을 보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후손들에게 계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신앙의 본분 의무입니다.

한국 총공회가 걸어가고 있는 공회 노선 보수의 길은 영감대로 진리대로의 길뿐입니다. 피로 구속받은 우리들이 구원받는 길은 영감대로 진리대로 사는 길뿐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공회도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길뿐입니다. 진리대로 영감대로 살면 한국 총공회는 공회 노선을 자연히 보수하게 되어지고 자연히 계대하게 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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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총공회는 공회 노선으로서 영감대로 진리대로의 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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