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전도 방편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167
게시일 : 2005/12/23 (금) AM 10:35:30 조회 : 107
■ 교회의 전도 방편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는 언제나 은밀히 일하십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붙들고 일하실 때도 은밀하게 일하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붙들고 일하실 때도 은밀하게 일하셨고 사무엘, 엘리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들은 고요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박또박 행했습니다.
이러한데 지금 우리들은 전도 방편을 성경대로 하지 않고 성경이 가르치는 전도 방편을 버리고 인간 방편대로 전도 방편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 방편에 있어서도 신앙적 간음과 음행을 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도 방편으로 불파, 신유파, 지시파, 등이 교회를 휩쓸었는데 지금은 그 방편이 지나가고 셀 목회, 멘토링 목회, 열린 목회,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는 전도 방편은 무엇인가?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오직'이라 하셨으니
단 한 방편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하셨으니
오직 성령 세례를 받는 길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셨으니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권능을 받는다는 말씀합니다.
성령세례는 무엇인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옛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새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의 사람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례는 무엇인가?
'물로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라고 벧전3:21에 말씀하셨습니다.
행1:6에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행1:7에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라고 하셨으니 즉 '너희들의 사욕을 버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내 증인이 되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상대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상대하는 것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생사도 의식주도 다 맡기는 것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권능이 무엇이냐?
우리로 하여금 주님 한 분만 상대케 하는 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상대해서 우리에게 속한 자들에게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상대하는 자가 되도록 전하는 것이 성령의 권능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진리적 전도방편입니다. 이 방편 외에는 전도 방편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행1:8에 '오직'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전도라는 것은 구원의 도를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구원의 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구원의 도입니다. 구원의 도는 복된 음성이기에 복음이라 하는데 이 복음이 곧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전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다 맡기는 자가 먼저 되고 나서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다 맡기게 전하는 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권능이요 이것이 성령의 권능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하셨으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의 자리에서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으로 받는 박해라는 것은 무엇인가?
죄짓지 않는 자로 산다고 받는 박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받는 박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산다고 받는 박해를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박해를 말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면 곧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벗지 아니하면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현재 성령 받은 자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까? 성경 방편대로 전도를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예루살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권능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때문에 오는 박해를 피해서 있기 때문입니다. 곧 죄를 짓고 살기 때문이요 불의를 행하고 있기 때문이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2:38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라 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전도는 인간 방편으로 절대 될 수 없고 성경 방편대로만이 교회의 전도는 됩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권능으로 땅 끝가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이 길 외에는 전도 방편이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성령의 권능이 없이 전도가 되었습니까? 예배당에 교인들이 부흥되었습니까? 이는 교인들만 모인 것이지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증인 된 자가 교회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다 맡기는 자들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생사와 의식주를 예수님께 다 맡기고 전 생활을 예수님으로만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만들려고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구원의 도를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의 본질을 벗어나서 주 예수 밖에 것으로 전도하면서 전도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요10:1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활대속을 전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께서 피 흘려 구속하신 성도들의 구원을 도둑질하는 절도요 흉기를 들고 빼앗아 가는 강도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대로의 전도 방편을 씁시다. 먼저 죄를 회개합시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성령세례를 받아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게 되는 권능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예수님께 자기의 생사나 의식주나 그 모든 것을 다 맡기는 자가 되어서 기쁨과 평강과 생명에 거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받은 기쁨과 평강과 생명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입니다. 이것만이 성경적 전도입니다. 이 외에는 인간 방편입니다. 인간 방편의 전도 결과는 절도와 강도가 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될 뿐입니다.
전도에는 두 방편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방편 성경대로의 방편입니다. 또 하나는 인간방편 세상방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는 기쁨과 평강과 생명이요 또 하나는 여전히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 받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전도의 방편을 취하시렵니까? 당연히 성경대로의 방편이라 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박해를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 않은 죄를 회개합시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전도하려는 죄를 회개합시다. 전도의 시발은 회개입니다. ⊙고전1:18에 말씀하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회도 십자가를 지는 회개로 시발되었습니다. 이는 성경대로의 전도 방편이었습니다. 그 때 그 전도로 인하여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십자가를 지는 회개로 전도 방편을 삼읍시다! 회개를 하면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방편 외에 전도 방편을 성경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 방편을 버립시다! 인간 방편은 예수님 증인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대로의 전도방편을 가집시다. 성경대로의 전도 방편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1907년 평양대부흥회 때의 이길함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 1907년, 어떻게 성령이 평양에 임하셨는가?
이길함(Graham Lee)선교사의 간증
1906년 8월에 우리 평양에 주재하는 선교사들은 우리 자신의 영적인 삶을 더 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1주일간 사경회를 개최했다. 원산의 하디 박사가 와서 우리에게 대단한 도움을 주었다. 성령께서 그 집회를 통해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시며 그분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놀랍게 사용하시기를 사모하도록 우리의 심령에 간절한 열망을 불어 넣어주셨다.
사경회 후 즉시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 연례회의에 참석하였으며, 거기서 하워드 애그뉴 존스톤(Hpward Agnew Johnston)을 만났는데 그를 통해 서울 선교사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 존스톤 박사는 평양에 와서 우리 한국 교인들에게 인도에서 나타난 놀라운 성령의 현시에 대해 들려주었으며 그 이야기를 들은 한국인들 몇 사람이 같은 축복을 받기를 대단히 열망했다. 그 때로부터 축복이 임할 때까지 한국인들과 선교사들은 놀라운 부흥이 임하도록 기도해왔다.
우리가 연례회의에서 돌아와 성령의 부으심이 임하도록 간구하면서 얼마 동안 특별집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 때에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그 집회를 즐겼으나 성령께서는 권능 가운데 우리와 함께 임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를 계속하였고, 그리스도 마스 때에 우리 선교사들 심령에 한 주간 특별 기도회를 갖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불어 넣어주셨다.
이 특별 기도회는 우리 모두에게 대단한 유익이 있는 집회였다. 이 집회가 마치기 전에 평안남도 겨울 남자 도(道) 사경회가 시작되어 약 700명의 남자들이 성경공부를 하며 2주를 보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이 사경회 동안에 특별한 축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 장로교 선교사들은 매일 정오에 모여 사경회를 위해 기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오 기도회는 우리 모두에게 대단한 유익을 가져다주었다. 왜냐하면 이 정오 기도회가 우리에게 바로 벧엘이었기 때문이다.
1월 6일에 우리는 평양시내 네 개의 장로교가 연합하여 장대현교회에서 사경회와 평양시내 사람들을 위해 저녁집회를 시작했다. 만약 남녀를 같이 참여하도록 한다면 장소가 너무 협소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들의 경우 네 개의 다른 장소에서, 학교 남학생들의 경우 중학교 예배실에서 별도로 모임을 갖도록 요청하였다. 장대현교회에서는 단지 남자들만 참석하였다.
장대현교회는 약 15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매일 밤 교회는 사람들로 꽉 찼다. 토요일 저녁까지 매일 밤 집회 가운데 주의 능력이 점점 강하게 나타나 토요일 저녁집회는 그 때까지 열린 저녁 집회 가운데 최고였다. 주일에 우리는 평양의 네 개의 각 교회에서 정규 주일예배를 드리고, 주일저녁에 장대현교회에서 계속해서 평양시내 네 개의 교회가 연합하여 다시 저녁집회로 모였다.
우리는 그 주일 저녁집회에 대단한 축복을 기대했었으나 놀라운 축복을 받는 대신 우리는 아주 독특한 경험을 하였다. 집회는 냉랭했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난 것처럼 보였다. 한번의 설교와 유익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몇 사람의 열의 없는 간증이 있은 후 우리는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며 무거운 심령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전 저녁 집회에서는 생명력을 가진 간증들과 실제적이고 진지한 죄의 고백이 있었으나 주일 저녁에 모든 것이 막힌 듯했다. 그 집회는 하나의 죽어 버린 형식적 집회처럼 보였다. 한국인 형제들도 우리 선교사들이 느끼는 것과 똑 같이 느꼈다. 주일저녁은 음울한 밤이었다.
1월 14일, 월요일 정오에 우리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울면서 간절히 간구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월요일 저녁집회에 바로 그 축복이 임했던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 월요일 저녁집회에 참석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해달라고 내내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우리가 장대현교회 건물 안에 도달했을 때 우리 모두가 무언가 임하고 있음을 느꼈음을 감지했다. 간단한 설교가 있은 후 우리는 함께 통성기도를 드렸으며 모든 청중들이 함께 여기에 합류했고 이 통성기도는 이들 집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기도 후 몇 명의 간증이 있은 후 사회자가 청중들에게 일어나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새벽까지 계속 기도회를 가질 계획을 가지고 혹 오래 남아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남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5백에서 6백명 가량이 남았다. 우리는 이들을 장대현교회 건물의 한 L자 형 예배실에 모으고 집회를 시작했는데 그 집회는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목도하지 못했던 그런 집회였다.
기도 후에 죄를 고백했으며 즉시 하나님의 영이 그곳의 회중들 가운데 임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흐느껴 울며 마루 바닥에 고꾸라졌고 혼신을 다해 통회하는 가운데 손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내 요리사가 죄를 고백하려고 시도하다 집회 중간쯤 통회하며 그 방을 가로질러 내게 와서는 “목사님, 내게도 소망이 있습니까, 나도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소리치고는 바닥에 쓰러져 울고, 또 울고, 거의 고통 속에 절규했다.
때때로 죄의 고백이 있은 후 전 회중이 통성으로 통회의 기도를 드렸고, 수백 명의 남자 성도들이 통성으로 함께 드리는 기도의 효과는 무언가 형언할 수 없었다. 다시 또 다른 사람이 죄를 고백한 후 회중들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통회의 기도가 시작되어 우리 모두 울었고,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 집회는 죄를 고백하고 울며 기도하면서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중 몇몇은 교회의 높은 제직 가운데 몇 사람, 특별히 강씨와 김씨 사이에 마음에 증오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우리는 이 저녁 집회가 열리는 동안에 모두 와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기를 희망했다.
월요일 저녁에 강씨가 용기를 가지고 그가 얼마나 김씨를 미워했는지를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자존심이 강하고 강한 사람이 울음을 터트리고 다시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그런 후 다시 자신이 얼마나 강씨를 미워했는가를 말하면서 통회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새벽 2시가 되었으나 아직도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건물이 점차 추워가고 우리가 아직 또 다른 저녁집회를 남겨두고 있어 우리는 여기서 월요일 저녁집회를 마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 화요일 정오기도회에 우리 선교사들은 전날의 놀라운 저녁집회에 대한 감사로 가득한 심령을 가지고 모여, 또 다시 화요일 저녁집회 때에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화요일 저녁집회 때 우리의 가장 은사를 충만히 받은 설교자, 길선주가 간단히 설교한 뒤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약 6백명이 남았다.
그 집회는 월요일 저녁집회와 상당히 유사했지만 성령의 현시는 더 강력했다. 우리 중 몇은 두 사람, 특별히 김씨와 주씨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 드렸는데, 그것은 우리가 볼 때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할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가 용기를 내자 상황은 절정에 달했다.
강대 앞쪽에 앉았던 그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앞으로 나와서는 즉시 자신의 죄를 고백할 기회를 가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다른 형제들, 특별히 블레어 선교사를 미워했음을 고백하고는 온 몸을 전율하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다. 그는 마루 바닥에 고꾸라졌는데 모습이 꼭 발작하는 사람 같았다. 그가 통회하자 온 회중은 마치 하나의 강력한 통회의 폭풍처럼 통회하기 시작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우리 선교사들은 나머지 무리들과 함께 울었으며 회중들이 통회하는 것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그들이 흐느껴 우는 동안 강씨가 일어나 기도했다. 심령이 가난한 그 남자는 절규하며 기도하고는 완전히 녹아내려 자신의 죄를 완전히 통회 자백하였는데 마치 심장이 끊어지는 듯했다.
형제들이 그 사람 주변에 모여 그들의 팔로 그를 감싸자 그가 곧 냉정을 되찾았다. 그런 후 그가 김씨에게 가서 사랑스럽게 자신의 팔을 벌려 그를 포옹하고 그와 함께 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 후 김씨가 통회하며 블레어 선교사에게 돌아가 “블레어 목사님, 나를 용서해주실 수 있습니까, 나를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블레어 선교사는 일어서는 “아바지, 아바지”를 두 번 말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잃고 더 기도를 하지 못했다.
청중들은 통회를 계속했고 그것은 어떻게 그들이 중단시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우리는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찬송 한 곡을 불러야 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몇몇 사람이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그들이 냉정을 찾았으며 그런 후 다시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 집회는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그 저녁에 있었던 가장 놀라운 일 중의 하나는 한 대학생의 기도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싶다고 요청 기회를 얻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기도를 시작했다. 나는 결코 전에는 그런 기도를 들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발가벗겨진 한 영혼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간음, 증오, 아내에 대한 애정 결핍,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몇 가지 다른 죄를 고백했다. 기도하면서 그는 통회하였으며, 실제로 거의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가 통회하자 청중들도 그와 함께 통회하였다. 우리 모두는 마치 우리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면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화요일 저녁집회로 평안남도 겨울 남자 도(道) 사경회는 마쳤으나 우리는 마치 이 같은 성령의 현시가 이제 그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수요일 저녁 우리 평양 시내 네 장로교회 기도회 때 똑 같은 놀라운 권능이 현시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수요일 저녁 장대현 교회에서 두 장로를 선출하겠다고 광고했었으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저녁에 선거를 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내가 그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그 날 밤 선출할 장로는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한 설교가 있는 후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돌려보냈다. 청중이 조용해지자마자 우리는 함께 통성 기도를 드렸다. 즉시 일단의 남자들이 껑충껑충 뛰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싶다며 의사를 표했다. ]
몇몇 사람이 죄를 고백한 후 주 장로가 자기 죄를 고백할 용기를 얻게 되자 그 집회는 절정에 달했다. 그 놀라운 화요일 저녁집회 내내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들은 그가 고백할 무언가 무서운 죄가 있음을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그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강단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갑자기 그가 내 곁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내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굴복하였고, 성령께서 이제 그를 깨끗게 하실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는 너무 떨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이 불분명했다. 그러나 계속하면서 그의 말은 더 분명해졌고, 그런 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토로했다. 그는 간음과 공금 유용을 고백했다.
그가 자신의 죄를 토로하는 동안 유한한 인간이 표현한다면 이제까지 내가 목격했던 바로는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 가운데 처해 있었다.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나는 그가 혹시 고꾸라지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팔을 벌려 그를 붙들었다.
무서운 심령의 비탄 속에 그는 “이제까지 세상 어디에 나와 같은 무시무시한 죄인이 있을까요”라며 울부짖고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주먹으로 강단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는 바닥에 주저 않고는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으며 극심한 고통 가운데 뒹굴었다.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마치 그는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장면을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지만 그러나 한국 형제들이 그에게 다가가 자신들의 팔로 그를 감싸고는 고통 가운데 있는 그를 위로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주씨가 통회하자 온 회중이 눈물로 통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울고 절규하고, 다시 절규하였으며, 마치 그들은 중단할 수 없는 듯했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찬송 한 곡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집회를 조금 연장한 후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현시하셨음을 인하여 감사하며 회중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 장로가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일이었다.
수요일 아침 평양 숭현여학교에 똑 같은 성령의 현시가 임했다. 스눅 여 선교사가 여느 때처럼 학교에 출근하여 첫 수업이 끝난 후 10시에 학생 예배가 시작되었으나, 그 날 아침 예배 내규는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몇 마디의 멘트와 기도가 있은 후 여학생들이 통회하며 울부짖으며 회개하기 시작 12시까지 오직 기도와 통회와 죄를 고백하였으며, 집회는 12시가 넘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목요일 아침에 수요일의 역사가 반복되었으며 채플이 정오까지 지속되었다. 금요일에 학교 수업을 중단하고 오전 내내 지난 이틀간처럼 시간을 보냈다. 수요일 아침 장대현교회 남학교, 숭덕학교에서 똑같은 성령의 현시가 나타났다.
학교가 보통처럼 개학하였으나 수업을 중단하고 1시까지 계속 통회하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다. 세 명의 소년들이 절제를 못하고 강력한 집회에 압도되어 의식을 잃었다. 확실히 그 책임을 맡은 한국인 교사는 필요할 경우 어떻게 그 영적 긴장에서 회중들을 벗어나게 할지 알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목요일 아침 여자 초등학교에 성령이 임하셨다. 우리 중 몇은 학교 교실까지 가면서 학생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 똑같은 권능이 그곳에 임한 것을 알았다. 베스트 여 선교사는 즉시 내려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듣고 Mrs. 번하이젤 선교사가 평양의 여학교로 내려가 그곳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목도했다. 그녀는 그 여학생들에게 몇 마디를 하자 즉시 그들이 울부짖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수요일 정오기도회 때에 똑같은 권능이 현시되었다. 30분의 기도회 대신 우리는 그 날 오후 2시까지 울면서 우리의 죄를 고백했다. 나는 결코 전에는 그 같은 기도회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영이 문자적으로 우리에게 임했으며 우리는 울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서 방해하거나 죄짓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정결케 하시려는 것처럼 보였다.
평안남도 도(道) 사경회 내내 교회 여자 성도들은 별도로 모임을 가졌으나 그곳에서는 그들 가운데 특별한 성령의 현시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 장대현 교회에서 그들을 위한 집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는 특별한 성령의 현시가 없었는데, 그것은 여인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의 죄 고백과 몇몇 자기 의로 충만한 나이든 여인이 산만하게 몇 마디 했으나 성령께서 권능으로 그곳에 임하시지는 않았다. 토요일 저녁에 권능이 임하자 여인들은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통회하기 시작했다.
우리 선교사들은 우리에게 고통과 슬픔의 원인이 되었던 한 젊은 여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을 보고 참으로 기뻤다. 우리는 그녀를 도우려고 했지만 달리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에 그녀가 통회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는데 그녀는 마치 심장이 찢어지는 듯 절규했다.
1월 20일 주일 아침 장대현교회에서 우리는 주일날 평소의 주일학교 성경공부를 가졌으며, 그 날 오후예배 때 또 다른 놀라운 성령의 현시가 임했다. 길선주 장로가 설교했는데 그는 아주 생생한 예화로 자신의 설교를 마무리했다.
그는 밧줄에 연결된 끈을 가지고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조여 묶고는 매큔 선교사가 강단에 서서 그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동안 사회자 중 한 사람에게 그 밧줄을 잡아당겨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 후 길장로는 어떻게 죄로 결박당한 죄인이 죄의 사슬을 끊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가를 설명했다.
길선주 장로가 사람들 중 몇이 통회할 때처럼 몸부림치자 드디어 그 결박이 끊어졌고 그런 후 그가 강단을 가로질러 가서 매큔과 서로 감싸 안았다. 나는 블레어 선교사와 시골 사경회를 개최하느라 시골에 있어서 그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매큔 선교사는 길선주가 결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회중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고 결박이 끊어지고 그와 길 장로가 서로 팔로 포옹하자 그 효과는 형언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많은 남자들이 곧 일어나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울부짖었고, 반면 다른 사람들은 간절히 울부짖으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길 장로는 그들에게 집으로 가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다시 저녁집회에 오라고 말했다.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 단지 여성들만을 위한 집회가 열렸으며 그 집회 때 또 다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이 현시되었다. 그 임재의 역사가 너무도 커서 한 여인이 의식을 잃었고 다른 이들도 거의 자신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
은혜 가운데 집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 즐거워했다. 시골 지역에서 그 역사는 계속되었다. 블레어 선교사와 내가 막 시골 사경회에서 돌아왔는데, 그 사경회에서도 성령의 현시가 정확히 똑같이 나타나 죄로 인한 무시무시한 통회, 죄에 대한 고백이 있은 후 놀라운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다. 평양에서 은혜로운 사역이 시작되었음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를 돌리며, 우리가 목도한 것이 단지 하나님이 아직 우리를 위해, 아니 단지 우리만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위해 예비해두신 더 위대한 축복을 위한 염원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