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17:18
회개
1989. 8. 19. 새벽
본문: 빌립보서 3장 17절∼21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십자가는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이요, 십자가는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이요, 자기를 애끼고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요, 이웃을 높이고 사랑하고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어떤 것이 십자가인가? 주님의 십자가는 도성인신하시고 하나님이 사람 되시고, 또 사람으로 공생활과 사생활을 하여 사람 생활을 하셨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사람되시고 또 죽으시고 또 사람으로 부활하신 것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무엇이 우리의 십자가인가? 우리는 주님을 높이고 사랑함으로 주님이 사람 되심같이 나도 주님을 위해서 낮아지고,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심같이 나도 주님 위해서 죽고, 주님이 나 위해서 부활하심같이 나도 이런 곤욕스러운 생애를 계속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요 내가 지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다 생명이요 평강이요 영광이요 영원한 영생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는 어떤 것이 십자가의 원수인가? 십자가의 원수는 자기를 미워하고 해치고 애끼지 않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요, 이웃을 애끼지 안하고 사랑하지 안하고 해치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요, 주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고 거역하는 것이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십자가의 원수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십자가는 그 결과가 다 생명과 평강이요 영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 가지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이 어떻게 십자가인가 이렇게 혹 이해가 좀 어리면 안 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교를 십자가의 도라 합니다.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 이제 말한 대로 하나님이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서 사람되신 것이 십자가의 시발이요. 또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십자가의 대속이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이 십자가의 완성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나 위해서 십자가 지신 주님의 이 대형 대행 대화친을 위하여 죽으시고 또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영생을 위하여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신 주님이 곧 나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주님의 그 사람 되심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이 죽으심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사람 되심을 생각하고 죽으심을 생각하고 부활하심을 생각하여 항상 감사하고 나도 주님 위해서, 낮아지시고 사람 되심같이 나도 낮아지고, 주님 위해 낮아지고 주님 위해서 죽고 주님 위해서 사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은 도성인신 사활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을 사모하는 자는 주님의 도성인신 사활을 사모하는 것이 주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우리의 능력이요 이것이 위로 하나님을 위함이요 옆으로 이웃을 위함이요 자신을 위 함입니다. 이거 외에는 사랑하고 위하는 길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이 아버지 따라서 사람 되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심같이 주님이 나 위해서 이와 같이 도성인신 사활하신 것을 내가 항상 생각하면서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명령 따라 내가 낮아지고 죽고 또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는 이 생활이 우리가 지는 십자가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사모하고 생각하는 거 외에는 사는 길이 없고 또 주님이 도성인신 사활하심을 따라서 내 몫에 태인, 내가 주님 명령 따라서 낮아지고 죽고 다시 부활하는 이 길 외에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산 생활이 없고 영생 생활이 없습니다. 녜, 많이 읽으면 깨달을 것입니다.
재독을 많이 듣고 자세히 생각하면 알아집니다. 예배 후 교회 주변 청소하겠습니다. 예배 후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OOO권찰님 구역에 초상이 났습니다. 여덟시 삼십분까지 교회로 오시면 같이 가실 수 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언제든지 외우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이번에는 공과가 새로 나올 터인데 묵은 공과에 충분치 못하면 새로 나오는 공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공과를 충분히 완전히 소화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하루 삼십분 기도 잃지 말고 계속해야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미래가 좋아질 것입니다. 기도하러 온 권사님은 여덟 분, 목사님은 세 분, 장로님은 일곱 분. 재독에 참여한 수 삼백오십오 명.
단체로는 주일학교와 중간반 반사들이 꽃마을에 밤에 팔십오 명이 가서 기도하고 왔습니다.
이 보고를 사찰이 보고하는데, OOO씨가 보고하는 것 같은데 OOO씨는 이 글씨 쓰는 것을 조심해서 써야 자기가 고쳐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글씨 상을 봅니다. 글씨를 보고서 그 사람을 대개 짐작을 하고 그려냅니다. 그러기에 글씨가 자기를 만들고 자기가 글씨를 만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