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14:47
현실에 세 가지 길
1984. 12. 7. 금야
본문 : 로마서 6장 17절∼23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는 말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 하는 말입니다.
죄를 범한 그 댓가는 사망이라. 은사는 영생이라. 하나님이 공으로 주시는 모든 것은 다 영생이다.
그러면, 영생이면 어데서 영생하는가? 사람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그런 곤고한 가운데서 안 죽고 영생하는가? 또 남한테 욕 얻어먹고 천대받으면서 안 죽는 영생하는 영생인가? 여기 영생하기를 어데서 영생하는고 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한다 그랬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한다는 말은 제사장으로 영생한다는 말이요.
선지자로 영생한다는 말이요, 왕으로 영생한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영생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서 잘 조화를 일으켜 하나님도 피조물을 좋아하시고 피조물도 하나님을 좋아하여 이렇게 피조물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그 관계를 이루는 그 중계 역할 중보 역할을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그렇게 존귀한 직책으로 영생한다. 또, 선지자로 영생한다 그 말은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이 아니면 피조물은 일순간도 살 수가 없는데 하나님의 모든 것들을 다 피조물들에게 받아 옮겨 줘서 피조물들이 그것을 받아 가지고 잘 살게 하는 이 선지자로 영생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왕으로 영생한다 하는 말씀은 모든 만물과 천군 천사와 모든 것을 하나님 통치의 일군이 되어 그 모든 것을 다 질서 정연하게 잘 다스리는 그 다스리는 자로 영생한다 그렇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한다.
또, 그 밑에 보면 예수 안에서 영생한다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영생한다 말은 사람이 피조물이기 때문에 실수 할 수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대형해서 잘못된 것을 예수님이 다 책임져 주셨기 때문에 영원히 잘못됨이 없는 그 안에서 영생한다. 영원히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으로서 영생한다. 의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 하나님이 하나 하면 하나, 둘 하면 둘,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 피동인데 그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의로 영생한다. 또, 하나님과 그 친밀한 관계를 가진 하나님과 밀접한 그 화평으로 영생한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공으로 주시는 뭐 댓가 내는 거 아니고 공으로 주시는 그 은사인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한다. 예수 안에서 영생한다. 이거 우리가 퍼뜩 생각하면 거게 대한 뜻을 깨닫지 못해서 별로이 우리가 예사롭게 생각하지마는서도 그 사실을 새겨 보면 뭐 우리가 말로 할수 없는 어떻게 그 참 영광된 영생인지 측량 못 합니다.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 값은 사망이라 그렇게 여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내시고 사람들에게 아주 행복되게 사는 그 방편을 주셨습니다. 아주 사람들이 행복스럽게 잘 사는 참 복된 그 방편을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이 복된 방편의 길 이거 하나뿐이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이 행복스러운 이 한 길뿐이었습니다. 이래서 이 길로 살아 나가는데 이 길로 나갔다면 아담 해와는 안 죽고 영생하고 언제든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만 섬기고 자유롭게 평안하게 기쁘고 즐겁게 영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배암이 또 복되다 하는 길을 하나 갖다가 줬습니다. 이래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길 하나와 배암이 주는 복된 길 하나와 이 복된 길이 둘이 웠습니다. 이러니까 해와가 이 길을 택할까 저 길을 택할까 어느 길을 택할까 이제 한 길뿐일 때는 그리 갔지마는서도 갈래길이 하나 생겼으니까 어느 길을 가야 되느냐 해서 방황했습니다. 그라다가 보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복된 길은 그 길이 쉽지 아니하고 빠르지 아니하고 배암이 주는 길은 아주 쉽고 빨랐습니다. '너 그럴 것 없다. 내가 너희에게 너 복된 길을 하나 말을 해 주겠으니까 나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러면 네가 당장 뭐 하나님, 된다.
하나님에게 속해 가지고서 그렇게 살 거 아니라 네가 그만 하나님 되는데 그럴 거 뭐 있느냐?' 그렇게 하면서 배암이 복된 한 그 방편의 길을 줬습니다. 해와는 어리석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길을 버리고 배암이 주는 그 길이 쉽고 속성되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그 시키는 대로 행해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러면 선악과 먹은 것은 배암이 잘된다 하는 그 방편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길 아닙니다.
이랬는데, 배암이 시키는 그 방편 대로 살고 보니까 살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길과 배암 제가 주는 길과 두 길 중에 배암 주는 길이 속성되고 아주 쉽다고 좋다 이랬는데 살고 보니까 그 결과가 그만 사망되고 말았습니다. 결과가 망하고 말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에게는 세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되다 하시는 길이 있었고 배암이 주어 복되다 하는 길이 하나 있었고 그러면 둘이고, 또 이제 살아 보니까 복되지 않고 멸망되는 그 길이 하나 새로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세 길이 생겼습니다.
세 길이 생겼는데, 그러면 해와와 아담이 배암이 주는 길을 따라서 행하고 하나님의 주시는 길은 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시는 길은 묵어 버립니다. 그 길이 그만 묵길이 되어서 그만 그 길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묵길이 되고 이제는 사람에게는 두 길만 있게 됐습니다. 배암이 주는 잘 사는 길, 또 살고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망하는 길 이 두길이 인생들에게 있게 됐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두 길을 앞에다 두고 자기 현실에서 고민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꼬, 안 믿는 사람들 불택자들은 자기 현실을 당할 때에 이 현실에서 이 길을 가나 저 길을 가나, 이 방편을 취하나 저 방편을 취하나 하는 그 두 길을 두고서 사람들은 현실에서 자기 걸어갈 길을 선정합니다.
그러면, 선정하는 그 길은 어떤 길인고 하니 배암이 주어서 잘된다는 길입니다.
또 하나는 망하는 길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망하는 길은 피해야 되겠고 잘되는 길은 취해서 걸어가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사람들은 그 두 길을 두고서 지금 선택에 분주하게 선택해 가지고서 자기 나름대로는 다 망하는 길은 피하고 잘되는 길을 택합니다. 잘되는 길을 택해서 모두 잘되는 길이라고 그 길을 택해서 잘되는 길을 걸었는데 걷고 난 다음에는 다 멸망입니다.
그러기에, 망하는 길이 차차 넓어집니다. 또 잘되는 길은 그대로 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 현실에서 이 두 길을 만나 가지고서 망하는 길을 피할라고 애를 써서 아무것이도 이라다가 망하지 안했느냐? 아무것이도 이라다가 망하지 안했느냐? 모든 사람이 살고 난 그 결과로 망하는 길을 사람들이 듣고 보고 했기 때문에 누구 누구는 이래 가지고 망했고 누구 누구는 이래 망하고 했으니까 사람들이 걸어서 망한 길은 다 그것을 낱낱이 사람들이 들어서 알고 보아서 알고 또 자기가 경험해서 알고 체험해서 알고 망하는 길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는 대로 망하는 길은 피하고 성공하는 길을 걸어 갈라고 애를 쓰는 것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인생들인 것입니다.
이런데, 그러면 망하는 그 길은 어데서 나왔느냐? 그 길은 어데서 나왔느냐? 그 길은 걷기 전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라면 틀림없이 잘 된다 해서 잘되는 길을 택해 가지고서 걸었는데 걷고 나서 결과적으로 보니까 결과가 망한 것이 망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는 타락 전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복된 한 길이 있었고 그때 뱀이 와 가지고서 이게 복되다 하면서 말하는 새 길이 하나 나왔고 요 두 길이 사람들에게 있었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길은 버리고 배암이 주는 그 길을 택해서 걷고 보니까 그 길이 두 길이 돼 버렸습니다. 그 길이 두 길이 됐습니다. 그 길이 무슨 두 길이 됐는고 하니 그 길을 걷기 전에는 잘되는 길인데 걷고 나서 보니까 망하는 길 이래서 그 두 길이 인생들에게는 생기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앞에서 어짜든지 망하는 길은 벗어나고 잘되는 길을 택할라고 마음껏 힘을 씁니다. 이래서 있는 지능대로 뭐 정치가든지 학자든지 사업가든지 재벌가든지 학자든지 어떤 종교가든지 말할 것 없이 어짜든지 자기네들 대로는 망하는 길을 피하고 행복된 길을 걸 올라고서 애를 씁니다. 그러면 행복된 길을 걸을라고 애를 쓰는데 그 길이 무슨 길이냐? 그 길이 배암이 주는 잘된다 하는 그 길입니다.
이러니까 그 길을 걸어서 사람들은 잘되겠다고 죽는 날까지 그저 망하는 길은 어짜든지 죽을 때까지 피하고 잘되는 것만 택해 가지고서 열심히 걸어 갔는데 마지막 결론이 다 사람은 죽고 망하고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게 되는 그 결말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심령이 어두워져서 심령이 어두워져서 그 계산은 대지를 못합니다. 심령이 어두워져 가지고서 광범위하게 계산을 못 합니다. 조브랍게 단편 계산만 할 줄 알지 광범위의 계산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고 배암은 이제는 사람들 마음 속에 들어가서 성령이 계시지 아니하는 사람들 속에는 배암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배암이 주관하고 있어서 배암이 있다 말하기를 이 길 가면 행복되다. 이 길 가면 행복되다 처음에 에덴 동산에서 해와에게 행복되다는 길을 가르쳐서 말해 준 그 배암이 각자의 마음 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이렇게 하면 행복 되다, 이렇게 하면 행복되다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그 말이 조금 범위 넓게 생각해 보면 자기 전에 있는 사람이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 갔는데 그 사람들이 다 잘된다고 그 길을 택해서 가다가 다 망하고 말았으니까 이 배암이 자기 마음 속에서 이라면 잘된다 하는 그것이 배암이 가르쳐 주는 것인데 그것이 곧 사람이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의 길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길 사람이 판단하는 길, 사람의 지혜대로 판정 되는 그 길입니다.
그 길은 행하기 전에는 행복된 길이지마는서도 행하고 난 그 결과를 보면은 다 망하는 길인데, 요것을 좀 폭 넓게 생각하면 이 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 다 잘되겠다고서 생각을 하고 걷기는 걸었는데 그 사람이 다 걷고 나서 보니까 척 망하니까 늙을 때 죽을 때 다 후회를 하지마는서도 소용이 없다.
이러니까 내 앞에 잘된다고 하는 이 길은 이 길을 걷기 전에는 잘되는 것으로 보이지마는서도 걷고 난 다음에는 멸망되는 그 길이니 멸망하는 길은 결과에서 결과에서 나온 길이요 잘 된다는 것은 아직까지 결과를 나타내지 않은 시발에서 나오는 길이니까 시발에서 나오는 길이니 잘된다는 그것은 배암에게 꼬임받은 길이요 배암이 꼬우는 길이요 또 망한다는 그 길은 벌써 꼬여 가지고서 망하고 난 다음에 결산이 나도 결말이 나고 난 다음의 그 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에게는 두 길이 있어서 망하는 길을 피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도 다 후회의 길인데 후회의 길인데 그 길이 왜 그래 망했느냐? 망하는 그 길이 어데서 생겼더냐? 망하는 그 길이 걷기 전에는 다 행복되다고 배암이 말하던 그 길인데 행복되다고 하는 그 길을 걸은 그 길이 결말적으로 망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암이 주는 행복되다는 길이나 망하는 길이나 꼭 같이 망하는 길이니 내나 그 길이 그 길이요, 하나는 미래적으로는 그 미래적으로는 잘된다는 그 길인데 모든 것이 통과돼 가지고서 회고적으로는 전부 망하는 길이 됐으니까 이거는 전체가 망하는 길이다. 그래서 인생에게는 전부가 망하는 길 이거 하나뿐이었는데, 망하는 길 하나뿐이었는데 사람들은 회고적으로 뒤로 돌아 보고는 망하는 길인 줄 알고 미래적으로 전진적으로서는 망한다는 것을 모르는 그 길, 그러면 그 미래에 두고 미래적으로는 잘된다는 그 길 하나가 회고적으로는 망하는 길이 되어지는 요 길이 인생들 앞에 있어서 이 두 길 속에서 열심히 망하는 길을 피하고 잘되는 길을 취한다고 애를 쓰기는 쓰지마는서도 그 잘된다고 취한다는 그것이 에덴 동산에서 배암이 주는 그 길이기 때문에 다 같이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이대로 두면 다 멸망받기 때문에 이 멸망받는 자들에게 다시 영생하고 행복되는 길을 이걸 다시 저들에게 열어줘야 되겠다 해서 이 길을 열어 주실라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잘못된 그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하시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데에 화친을 일으키고 이 세 가지 대속으로서 휘장 가운데 이 생명의 길을 하나 열어 놨습니다. 이래서, 이 생명의 길을 하나 열어 놓으셨는데 이 생명의 길은 어떤 길인고 하니 그 길은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해 주는 길입니다. 그 길은 제가 하는 길이 아니고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해 주는 길인데 공짜배기로 해 주는 길인테 공짜로 해 주는 그 길을 우리가 걷기만 걸으면 공짜로 해 주는 그 길을 걷기만 걸으면 하나님께서 공짜로 해 주는 그것을 다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공짜배기의 그 길을 걸을라 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 길이 믿음의 길인데 믿음의 길이란 말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해 주는 길이니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공으로 해 주겠다, 이렇게 하면 공으로 해 주겠다, 하나님이 공으로 해 주시는 그것을 공짜배기로 받는 그 방편을 행하는 것이 이제 하나님이 주신 공짜배기로 받는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걸어가는 그 길이 믿음의 길이요, 또 다른 말로 하면은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모든 그 충만한 것을 다 주시는데 공짜배기로 주시는 것을 네가 이렇게 받아라, 이것은 이 순종으로 받아라, 저것은 저 순종으로 받아라. 그렇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우리에게 해 주시는 것을 공짜로 받는 것이지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뭐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앞에는 이제 길이 몇 길이 됐는고 하니 세 길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한 길 됐다가 배암이 길을 줘서 두 길 됐다가 사람이하나님의 길은 버렸기 때문에 그 길이 묵어서 다 폐로가 됐습니다. 그 길 이 폐로가 돼 버리고 배암이 주는 한 길과 배암이 주는 대로 걸어가 가지고 망하는 그 한 길과 이제 인생에게는 망하는 길과 배암이 주는 잘 된다는 길과 요 두 길을 가지고 안 믿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자기 현실에서 멸망을 피하고 행복을 이루겠다고 저렇게 날뛰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오셔 가지고서 다시 과거에 사람들이 버려서 묵어 버린 묵어 버린 묵어 버린 그 길을 복구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묵어 버린 그 길과 비슷한 새 길을 하나님께서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았습니다. 새 길을 하나 줬습니다.
새 길을 하나 준 거는 무슨 길인고 하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으로 주시는데 공으로 주시는데 이것은 네가 이렇게 받아라. 이 공으로 주니까 공으로 주니까 이것을 네가 받는 데에는 보자기를 가지고 받아라. 보자기 가지고 받아라 하는 것은 보자기 가지고 받아야 되지 보자기 아니고 딴거 가지고 받아 가지고는 받치지 안하는 것, 또 이것은 네가 딴딴히 야문 그 광주리로 받아라, 또 이것은 광주리로 받아 가지고는 다 흘려 버리고 안 되니까 이것은 네가 그 물이 흐르지 안한 무슨 통이나 그런 거 가지고 받아라 하는 것처럼 물 같은 거 그런 거는 금이나 이런 것은, 그 금이나 수은이나 이런 것은 그 그릇으로 받아야 되지 광주리에 받으면 쏵 다 흘러가 버리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 이것은 그 거창하게 아주 널펑하게 이러니까 그런 것은 보자기에다 대고 싸야 되지 이런 조그만한 광주리에 받아 봤자 광주리에 가지고는 또 그게 담겨지지를 안 한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공으로 해 주시는 것을 이거는 이래 받아라. 이거는 네가 이래 받아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시키는 것입니다. 네가 이래 받아라 하는 것이 하나님이 네가 이렇게 해라 하고 고것이 고렇게 하면은 하나님이 공으로 주시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공으로 주시는 것을 받는 그 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길은 이것은 내가 공으로 주는 것이니까 요래 받아야 된다, 조래 받아야 된다. 하나님이 사키시는 대로 받아야 되지 시키시는 대로 받지 안 하면 받을 수 없는 그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해서 공으로 받는 그 길이 하나 나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에게는 세 길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 길이 있고 배암이 주는 행복된 길이라고 하는 속이는 길 하나 있고 배암이 주는 대로 행하고 보니까 망하는 그 길 하나 있고, 이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이 두 길만 두고서 현실에서 이 길 가나 저 길 가나 그렇게 분망하는 것이니, 잘 된다는 그 길도 망하는 길인데 제가 망하기 전에는 잘되는 것으로 속아서 그래 보여지는 것이지 걸으면 그것도 망하는 길, 그 걸어 보니까 망한 그것도 망하는 길 다 망하는 길.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 앞에는 멸망하는 길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길이 두 길로 나타나고 있다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허 기억합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들에게 새 믿음의 길을 하나 만들어 줬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길을 만들어 줬으니까 믿는 사람들 앞에는 세 길이 있고 안 믿는 사람들 앞에는 두 길이 있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세 길이 무슨 길이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로 열어 놓은 생명의 길, 믿음의 길, 순종하는 길 그 길 하나 있고, 또 배암이 준 사전에는 잘된다고 이래 보여지는 그 길 하나 있고 또 행하고 보면 결과적으로는 망하는 그 길 하나 있고 이래서 믿는 사람들 앞에는 세 길이 있습니다. 세 길. 세 길이 있는데, 요 세 길 있는 것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가르쳐 주시니까 요 세 길 있는 것을 똑똑허 보고 세 길 중에 두 길은 배암이 준 길이요, 사전에 잘된다고 하는 그것도 속이는 것이지 잘되는 것이 아니니까 배암이 주는 속이는 길 하나 있고 배암이 준 속은 길 하나 있고 속이는 길 하나 있고 속은 길 하나 있고 고 두 길이 있습니다. 속이는 길 하나 있고 속은 길 하나 있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길 하나 있고 요래서 이 세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성경 말씀대로 하라 영감대로 하라 하는 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길 순종하는 길 요 길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그밖에 두 길은 사람들이 이래 볼까 저래 볼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길 외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길 외에 요래야 되겠나 조래야 되겠나 자기가 심사 숙고를 하고 밤새도록 생각하고 다른 친구에게 물어서 또 연구를 하고 또 아주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물어서 연구하고 이래 가지고서 어짜든지 잘된 길을 하나님의 주신 길 버리고 인간에게 묻고 연구하고 모두 다 협의해 가지고서 그 안 망하고 잘되는 그 길을 택하는 고 길을 택하게 될 때에는 벌써 고 길을 택할라고 할 때에고 중생된 사람이지마는 고 속에는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이 지금 그 사람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벌써 옛사람이 됐습니다. 옛사람이 됐고 하나님의 길을 버렸을 때에는 그만 즉시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이니까 그 옛사람이 제가 생각하는 것도 속에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그 놈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암만 연구해 봤자 배암의 연구, 또 천인 만인에게 물어 봤자 하나님의 길 외에 다른 길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것도 다 배암에게 유혹받은 그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것도 전부 배암의 가르치는 길 그 전체가 배암이 가르치는 길인데, 그 길을 가지고서 이는 내 맘에도 고라면 고라면 잘되겠다 싶습니다. 아,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에 고라면 잘되겠으니까 오만 사람에게 다 물어 가지고 이제는 여러 수많은 사람에게 물어서 요 길은 잘된다고 했으니 요 길은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서도 고거는 배암이 주는 길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길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길을 걸을 때에는 반드시 그 길을 걷기 전에는 잘되겠다. 이 길을 걸으면 만족하겠다 싶으지마는 막상 그 길을 걸어 가지고 결과로 보면은 인간은 다 후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은 큰 정권을 가졌으니 어떻겠다, 재벌을 가졌으니 어떻겠다 말하지마는서도 막상 그 길대로 걸어 가지고서 성공을 하고 난 다음에 죽을 때도 내가 세상에서 한번 잘 살았다 그렇게 잘 됐다고 그렇게 만족하는 길은 하나도 없습니다. 얻고 난 다음에는 다 후회합니다. 정권도 잡고 난 다음에는 다 후회합니다. 정권 잡고 난 다음에 후회하지 안하는 사람은 정권에 지금 확실한 맛을 모르고 정권에 그 진리를 몰라 그렇습니다. 진미를 본 사람은 아, 꿈에도 하기 싫습니다. 이러니까 정권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그 정권을 안할라고 하지마는서도 옆에 사람들이 안하면 안하면 당신은 좋지마는 우리는 다 죽지 않느냐 그러니까 안할라면 너하고 나하고 같이 죽자 이라기 때문에 하기 싫은 대통령을 하고 하기 싫은 왕을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길 요 외에 두 길 있는 것은 잘된다는 길이나 망하는 길이나 그거 다 배암이 주는 길인데 잘 된다고 보이는 그 길은 사전에 제가 계산이 착오돼 가지고서 사전에 잘 돼 보이지 착 그대로 실행하고 나면은 결과적으로는 다 사망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고 길은 이 길이나 저 길이나 배암이 주는 길이요 또 천 인 만인이 말해도 속에 뱀이 주관하는 그 사람이 말하기 때문에 만날 들어 봤자 그 길이기 때문에 그건 다 배암의 길이기 때문에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길을 피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요 생명의 길, 하나님이 주시는 요 길을 우리가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길을 사람들이 걸어가야만 되는데 왜 믿는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가지를 못하느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이 길을 왜 걸어가지 못하느냐? 걸어가지 못하는 그 이유 두 가지 있습니다. 걸어가지 못하는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잘 될 것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옳고 좋다 싶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그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갈라 하면은 어려운 난점이 둘이 있기 때문에 난 점 둘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길, 하나님께 복종하는 길 그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해 주는 것을 광주리만 대고 받는 것인데 하나님이 공짜배기 해 주는 것을 받는 그 공으로 받는 길인데 찍해야 받는 길 받는 그 수고인데 받는 그 수고도 좀 힘이 드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은 힘이 드니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길은 좋지마는서도 그 길대로 하기에는 내가 힘이 모자라니까 안 되겠다, 좋기야 좋지마는 그 길 대로 나갈 수가 있나? 제 힘이 모자라니까 그 길은 못 가겠다 싶어서 그 길을 포기하는 그런 폐단이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자기가 연약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키면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 또 네가 나에게 복종하면 내가 모든 것 다 해 주겠다, 뭐 성경에는 다 해 주겠다 했습니다. 네가 나 시키는 대로 하면 영생하도록 해 주겠다. 아, 영생도 당신이 해 주는데 못할게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네가 연약한 힘을 가지고서 내 이름과 내 말을 지켰으니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다 통과할 수 있는 그 힘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라고 할 때에 우리 힘이 모자라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우리 힘대로만 충성만 하면. 모자라는 것은 당신이 다 해 줄라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해라.
그러면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해 주겠다.' 생명의 승리하는 그 승리야 하나님이라야 승리하지 어째 그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할 수가 있습니까? 진리가 승리하는 승리, 천하가 달라들어도 진리가 승리하는 승리를 해 주겠다 했으니까 그거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있는 힘만 다하면 하나님이 해 주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내 힘이 암만 모자라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의 그 길을 내 모자라는 것 하나님이 보충해 주시기로 약속을 하신 그 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부족해도 하나님이 인도하는 그 길을 담대히 가서 힘껏 걸어 가면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이렇게 걸어가면 이렇게 걸어가면 큰 성공이 오고 큰 행복이 온다 하는데 천하 만민위에 뛰어난 데가 된다 이랬는데 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다 주신다고 이렇게 말했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네것 된다고 말했는데 그리되면 좋기야 좋지마는서도 그렇츰. 그렇츰 어려운 일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렇츰 그 어려운 일이 그거야 아내가 하는 이까짓거야 무슨 힘이 있다고 내가 이 일 한 이게 이 일한다고 그 일이 되겠느냐? 암만 봐도 하나님이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 주겠다고 이렇게 말을 해도 그 일이 너무 어려우니까 안 될 것으로 보여진다 말이오. 그래 보이나 이 계약하신 주님은 전지하신 주님이시요 전능하신 주님이시요. 없는 가운데서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시요, 또 만물을 복종시키는 주님이십니다. 만물을 복종시키는 주님이라. 이러니까 아무리 어렵고 그거 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이라 하는 거라도 당신이 해서 주는 데에는 당신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에 당신이 해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약해도 문제 없고 그 일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문제가 없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길만 택해서 가면 되는 것인데 우리가 요 배암이 가르치는 요 두 길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그 길을 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 그 길을 가느냐? 그 길을 가는 이유는 그 길을 가는 이유는 제가 보기에 제 생각으로 볼 때에는 아주 그 길이 쉽습니다. 배암이 가르치는 길은 아주 속성이요 배암이 가르쳐 주는 거는 아주 속성이요 아주 쉽게 되는 길입니다. 아, 그렇지 않습니까? 아, 그 과일 하나 뚝 따 먹어 버리면 하나님 되니까 얼마나 속성이요 쉽게 됩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성경 말씀대로 하는 그 길이 아닌 인간 생각대로 인간들이 말하는 대로 하는 고것은 저거 생각이 볼 때에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것은 배암이 자기를 미혹시키고 있기 때문에 배암의 미혹에 걸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제가 색경을 쓰고 봐 가지고서 잘못 보이는 것이고 또 고것이 쉽게 성공한다 아주 쉽게 수월하게 성공한다 이렇게 보여지는 그것은 고것이 망할 길이고 벌써 망할 길이기 때문에 고렇게 쉽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쉽게 보여지는 그것도 망하는 길을 어렵게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망하는 길이 쉽게 보이는 고것은 배암이 쉬워야 사람들이 그걸 날큼 물어 삼키고 삼키고 그대로 순종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미혹시키기 위해 가지고서 그렇게 쉽게 하는 그 방편을 가로쳐 준 것입니다. 암만 쉬워도 멸망이면 그까짓 거야 불행의 길이고 암만 어려워도 행복이면 그 행복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망하는 길과 배암이 주는 행복된 그 길을 두 길을 가지고서 이 길은 망한다, 이 길은 망한다 하는 그것을 누가 말해 줍니까? 그건 배암이 말해 줍니다. 자기 속에 자기 생각으로 볼 때 이라면 망한다. 아무것이도 망했지 아무것이도 망했지 아무도 망했지 이렇게 망했다는 그것을 자기 속에 있는 배암이 자꾸 자기에게 인식을 시켜서 알려 주는 것은 뭣 때문에 알려 줍니까? 봐라. 이거. 망한다 망한다. 이라니까 망한다는 것을 사실 망한 것을 많이 말하니까 망한 것을 많이 말하니까 망한다는 것, 망한 것 그것을 이놈아 망한다 망한다 하는 것을 말해 주니까 망한 걸 말해 주니 신임을 할 수 있다 말이오. 망한 걸 말해 주니까 이는 망한 것 다 말해 준다. 이거는 망하고 망하는데 이거는 잘된다. 이러기 때문에 망하는 것을 말해 주는 그것이 잘된다는 그것을 알려 줘서 잘된다는 자기의 잘된다고 가르치는 그것을 인정하고 확 물고 따라 오도록 이렇게 유혹시키는 그 간교의 역사인데 사람은 요것을 분석하지 못하고 침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 자기 함정 자기가 되고 자기 낚시에 자기가 걸려 가지고 다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배암이 속에서 지배하고 있는 옛사람 그 놈은 네가 아니요 너를 죽인 네요 원수인 네기 때문에 옛사람 그거는 네가 아니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게 네기 때문에 진리대로 살라고 하고 영감대로 살라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라 하는 그 사람이 네지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고 세상대로 살라고 하는 그것은 벌써 네 속에 네가 네가 아니고 너는 참 너는 파묻어 버리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들어와 가지고서 이제 네 속에 와서 너를 주관하게 되는 것이니까 거기에 속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에서 처음에는 한 길이 있었다. 그 길만 있을 때에는 뭐 행복됐습니다. 그 길만 있을 때에는 옷도 필요 없고 뭐 노동도 필요 없고 아픈 것도 없고 고통도 없고 언제든지 자유뿐이요 기쁨뿐이요 평강뿐이었습니다. 딱 먹고 난 다음부터 고통이 왔지 그전에는 고통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행복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물을 다 통치하는 권리가 있고 모든 피조물이 다 아담에게 다 복종되고 이렇게 전체를 가지고 통치하는 걸음이었는데 요게서 배암 고놈이 우리에게 꼬와 가지고 요게 하나님이 주신 그 길보다도 더 잘되는 길이다 하는 고 한 길을 줬기 때문에 이 허욕쟁이가 이 어째 안일주의자가 안일주의자가 허욕주의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가 이래 가지고 이 길을 택해 가지고 걷고 보니까 망했으니 이제 망하는 길과 인생에게는 그만 세 길이 생겼습니다.
세 길이 생겼는데, 하나님 주신 길은 완전히 폐로가 돼 버렸고 폐로가 돼 버렸고 이제 두 길만 가지고서 인생들은 날뜁니다. 날뛰니까 제가 안 망할라고 망하는 길을 피하고 잘되는 길을 택한 그것도, 망하는 길을 피하는 그것도 망하는 길이요, 망하는 길을 피하는 것도 배암이 이거 망한다 이라니까 망하는 길 피하는 그것은 이제 그 망하는 길 피하는 것은 미래로 두고 망할 길인데 망할 길을 망할 길을 배암이 잘된다고 이렇게 말 해 줄 때 고 말을 신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를 증거하기 위해서 자기의 권위를 올리기 위해서 간교하게 그렇게 하는 것인데 요걸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지금 두 길뿐입니다. 두 길 다 마귀가 주는 것이요 자기가 아무리 뭐 어떤 사람이 도덕가가 말하든지 종교가가 말하든지 종교 창설자가 말한다고 할지라도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 이 그 속에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그거 전부 다 배암의 생각입니다. 배암의 생각이니까 망하는 길이나 잘된다는 길이나 둘 다 배암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망한다는 그 길은 저를 권위 있게 인정하도록 이래 하기 위해서 꼬우는 밑천을 마련하는 것이고, 잘된다는 그 길은 아주 꼬우는 길이고 이라니까 다 망하는 길이라 그거요.
그런데, 이 두 길뿐이었는데 예수님께서 한 길을 가져 왔습니다. 한 길을 가져 오셔 가지고서 그 길은 무슨 길이냐? 믿음의 길이라. 믿음의 길이라. 믿음의 길인데 무슨 길인가? 은혜의 길이라. 은혜의 길이라니? 하나님께서 공짜배기로 해 줄 터이니까 공으로 해 주는 것을 네가 공으로 받아라. 공으로 받아라 하는 이 공으로 받는 그 길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러면 공으로 받는 그 길은 어떤 길인가? 하나님께서 하셔 가지고서 공짜배기로 주시는데 공짜배기로 주시는 것을 이것은 이렇게 받아라, 저거는 저렇게 받아라. 하나님이 받는 방편을 말했으니 받는 방편만 버리지 안하고 받는 방편만 행하면 고것이 착착 와서 받아지게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요 받는 방편 요것 가지고서 하나님이 고거 시키니까 받는 방편 그것이 자기에게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 있습니다. 받는 방편 그게 쉬울 때 있습니다. 받는 방편이 쉬울 때는 언제가 쉬울 때인고 하니 자기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받는 방편을 걸어 갈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놈이 없고 꼬우는 놈이 없으면 아주 쉽습니다. 방해하는 놈과 꼬우는 놈이 없을 때는 그만 받는 방편은 쉽고 걸어가게 되는데 받는 방편으로 걸어갈라고 할 때에 이 옛 사람이 놈이 와 가지고서 내 속에 들어와 가지고 이 놈이 자꾸 꼬와 가지고 그거는 죽는 길이다. 그거는 망하는 길이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이라기 때문에 내 속에 악령, 악성, 악습이 나 아닌 나 그놈이 내 속에 들어 왔을 때에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주시는 것을 받는 이 방편을 내가 취할라고 할 때 그게 어렵지 이놈만 물러가고 나면은 이 길은 필연적이고 쉽고 수월하고 즐겁고 기쁘고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이 놈이 방해해서 못 가도록 하기 때문에 그 유혹을 받은 것만침으로 어려워집니다. 유혹을 받은 것만침 어려워지고 유혹을 많이 받으면 그 길을 못 가게 됩니다. 유혹 받다가 유혹 받은 거는 차차차 물러가고 배암이 쫓겨나게 되면은 이 받는 방편, 이게 사는 길인데 이게 생명의 길인데 감사하며 웃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이 길을 걸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현실에는 반드시 세 길이 대두한다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현실에는 반드시 이 세 갈래길이 등장한다 하는 것을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서, 우리 앞에는 이 세 길이 등장합니다. 배암이 준 두 길, 또 하나님아 주시는 한 길 요 세 길이 등장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한 길은 다 영생의 길이요 이 길 버린 길은 천인 만인이 성공한다 판정 평가해 가지고서 선정했다 할지라도 요거 내나 배암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요것도 망하는 길이요, 망하는 길도 망한다는 길이요 다 꼭 같이 망하는 길이니까 우리 앞에는 세 길이 당도할 때에 우리가 거기에서 이 현실을 어찌 걸어 갈꼬 할 때에 언제든지 아, 현실에서 여기에서 두 길을 버려야 된다, 두 길을 버려야 된다 고것을 딱 우리가 명심하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 앞에 현실을 당할 때 요 두 길을 버려야 된다 두 길 버리고 한 길만 택해서 가야 된다. 두 길 무슨 길? 배암이 주는 두 길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한 길만 걸어가야 된다. 배암이 주는 두 길은 어떤 길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한 길 그 외의 거는 다 배암이 주는 그 두 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길은 무슨 길인데? 영감과 진리가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고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길을 걸어가면 그 길을 걷는 것이 네 행복을 만드는 길이냐. 네 행복을 만드는 길이냐? 만드는 길이 아닙니다. 만드는 길이 아니요, 우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그런 거 아닙니다.
만드는 길이 아니요,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데 그것을 공으로 받는 길입니다. 공으로 받는 길. 공으로 받는데 이것은 요 순종으로 받고 조거는 조 순종으로 받고, 마치 우리가 그릇에도 우리가 물건 담는 것도 이거는 이 그릇에 담아야 되고 저거는 저 그릇에 담아야 되지 아무것이나 다 같다고 같은 그릇에 담아서는 안 된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공으로 주시는 것을 내가 그릇으로 받아 가지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두 길은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길을 걸어가야 된다.
이거는 공으로 주시는 길이다. 공으로 주시는 길이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이 그라면 내가 그렇게 해 주겠다 할 때에 그걸 보고 아이구 저렇츰 어려운 일이 어떻게 내가 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이거는 한 닢 푼치도 안 되는데 하나님이 내게 시키시는 대로 내가 하는 것은 한 닢 푼치도 안 되는데 하나님이 주신다는 거는 억억만원 짜리도 더 되는데 그거 어떻게 그리 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공으로 준다 했다. 은혜도 공으로 준다 했다. 하나님이 공으로 주신다. 그러니까 그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니까 하나님에게는 문제가 없다. 또 그것은 뭐이냐? 이 그렇츰 댓가가 많으니까 그거는 공으로 준다고 '은사는 영생이라' 은사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공으로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고로, 요것을 우리가 생각해서 우리 현실에서 꼭 세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세 길 있는데 두 길은 배암이 주는 길이라.
배암이 주다니? 배암이 어디 있느냐? 배암이 지금은 사람들 마음 속에 있다.
에베소 2장에 보면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 속에 지금도 역사하는 신이라 이랬습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신인데 공중에 권세 잡은 그 신이 어데 있느냐? 믿음 떠난 사람들 속에서 지금 일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는 신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앞에는 반드시 현실에 세 길을 당도하는데 한 길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길이요, 하나님께 복종하는 길이요, 복종하면 뭣 하는데?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들어 놓은 걸 이거 받아라 저거 받아라. 이거는 어째 받을까, 뭐 이거는 뭐 어째 받을까요? 그거는 보따리 가지고 받아라. 그거는 어째 받을까요? 그거는 그릇 가지고 받아라. 이거는 어째 받을까요? 그거는 광주리 가지고 받아라. 이렇게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으로 받으라고 하는 그 받으라고 명령하신 그 방편을 말씀해 주시는 대로 네가 그대로 하면은 그 복이 너에게 와서 네 것이 되어진다 하는 그 믿음의 길 하나 있고. 두 길은 배암들이 이게 잘되는 길이다, 이라면 망하는 길이다. 망하는 길, 망한다는 그 길 말하는 것도 배암, 잘된다는 그 길 말하는 것도 배암, 잘된다는 길 말하는 것은 사전에 보니까 유혹 받아서 잘될 것 같지 그렇지마는서도 사후에 보면은 일이 지나고 나서 보면은 다 망하는 길입니다. 사전 보기에 잘되는 길이요 사후에 결과적으로는 다 망하는 길이라. 사후는 죽을 사(死)자 말고 일 사(事)자 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일을 치루고 나서 뒤에 보니 사후라면 일 사(事)자 사건이 지나간 뒤에 말입니다. 사후에 보니까 망하는 길이요 사전에 보니까 잘되는 길이니. 사전에 잘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미혹에 빠져 가지고서 잘되게 이렇게 보여지는 것이고, 사후에 이거는 망하는 길이라고 고것을 사람들에게 자꾸 이라면 망한다, 이라면 잘된다 하는 것을 이라면 망한다는 그것은 마귀 제가 이라면 잘된다는 그 말을 강하게 사람들이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꼬우는 그런 방편이니까 그거 다 배암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신 요 길을 떠날 때에는 현실에서 하나님 주신 요 길을 떠날라고 할 때는 그거는 자기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 참사람 자기가 아니고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망친 자기, 원수인 자기, 자기 아닌 자기 요것이 와 가지고 하는 것이니 그 놈은 뭐이냐? 악령하고 악성하고 악습하고 요 세 가지가 뭉쳐 가지고 된 자이니 자기를 죽인 자기라. 고 옛사람 자기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될 자기라. 그러니까 그 안 믿는 사람들이 뭐 수억만 명이 있어도 믿는 사람이 여러 수만 명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요 길을 떠날 때에는 믿는 사람도 배암의 것이 돼 버리고 안 믿는 사람은 배암의 것이 됐기 때문에 거게는 된다는 것이나 안 된다는 것이나 다 배암의 것이기 때문에 도매금으로 다 배암의 것이라고 우리는 다 부인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이 시키는 요 한 길을 걷는 사람은 생명의 평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 죄의 값은 사망이라 그 말은 하나님이 주신 그 길 외에 삐뚤어진 길은 다 사망이라. 하나님이 주신 그 길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 현실에 반드시 요 세 길이 등장한다. 등장할 때 우리는 요 두 길은 배암 길이요 한 길은 하나님의 길이기 때문에 요것을 서슴치 말고 배암이 주는 두 길은 우리가 물리쳐야 합니다. 물리치고 하나님이 주사는 한 길만 택해야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한 길만 택하고 그 길 외의 거는 다 배암의 길이라 하는 것을 그만 도매금으로 그대로 그만 판정 지우면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어짜든지 기도 많이 합시다.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우리속에 마귀를 쫓아내고 성령이 와서 우리 심령을 밝게 하지 마귀가 들어 오면 그 놈이 어짜든지 우리를 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만나든지 자기 집에 누가 찾아 오든지 찾아 오면은 반드시 이 사람이 올 때 마귀를 끌고 올 것이다 하는 걸 생각하고 사람을 만날 때 아주 조심 있게 만나야 됩니다. 사람을 만날 때에 내가 저 사람에게 배암 노릇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또 저 사람이 내게 배암으로 왔을 때에 그 배암의 유혹을 받지 않게 하옵소서. 이렇게 사람을 조심해서 삼가고 사건을 조심해서 삼가고 물건을 조심해서 삼가서 항상 우리는 깨어서 조심 있게 살아야 배암 이놈에게 유혹받지 안 하지 그리 안하면 배암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다 멸망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