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

 

1983. 6. 1.수새

 

본문 : 시편 17편 1절∼15절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나를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치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 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우리가 과거 어두움에 있을 때에는 어두운 이 세상만 가졌던 우리들입니다. 참  하나님도 안 보이는 어두운 세상, 또 인생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도 안 보이는 세상, 또 세상은 잠깐인 하루밤에 지나지 않는 짧은 세상도  보이지 않는 세상, 영원 무궁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살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의 눈이 뜨여졌고 또 하나님의  빛인 진리의 말씀과 영감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존재는 다 보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하나님의 영영한 목적과 경영도 알고, 또 하나님의 법칙도  알고,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도 알고, 영원을 짧은 세상에서 좌우로 결정되는 이  중요한 일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우리가 어두운 세상만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아니고 어두운  세상과 광명한 하늘나라를 겸하여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라도 이렇게 두 나라를 가지고 있고 또 우리 안에 내라는 이 자신도 두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주격인 영을 죽이고 제가 대신 영처럼, 우리의 주인처럼 가장해 가지고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이 고기덩어리를 유혹시켜서 이제까지 참 우리를 죽인  악령과, 악령이 우리에게 넣어 준 그 악성, 이것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요 또  몸의 주인인 줄 알고 그것을 따라서 악습에서 악습으로 계속해 나오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하여 죽은 참 나 곧 영을 살려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지지 안하는 이 연결인 영생을 가지게 하셨고 또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와 우리의 영이 하나같이 뭉치어 영원히 동거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에게는 중생된 영이 참 내 마음의 주인이요, 육체의  고기덩어리의 주인이요, 또 내 영을 악령과 합작해서 죽이고 내 속에 가장해서  나 아닌 것을 나같이, 내 주인 아닌 것을 내 주인인 것처럼 이렇게 위장을 해  가지고 내인 줄 알았던 옛사람 나, 악령 악성으로 악습의 행위가 제 행동인 줄  알고 이렇게 사는 이 나와 나도 둘 됐 습니다.

 나도 둘 되고, 우리의 세계도 둘이 됐고, 우리를 인도하는 자도 둘이 됐고, 또  지식도 둘이 됐고, 소망도 둘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행동도 둘이 됐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단순한 하나이던 것이 둘이 됐는고로 옛것으로 소속했다가  새것으로 소속했다가, 또 옛것을 소망했다가 새것을 소망했다가, 또 옛것의  인도를 받았다가 새것의 인도를 받았다가, 옛것 생활 새것 생활 이렇게  갈팡질팡으로 그저 하루 몇 번이라도 이렇게 변동해서 위로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고 또 옆으로 악령으로 근심되게 하고 있습니다.

 악령은 우리를 제것 삼지 못해서 근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에게  소속시켜 구원하지 못해서 근심하게 하는 이 두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런 것을 몇십 번이든지 중복적으로 거듭 거듭 망령을 부리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두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들이며 또 우리는 이 두 사이에  끼어 있는데 믿기 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것은  우리의 분깃이 아니고, 우리의 분깃이 아니고 우리의 소망이 아니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새것으로 받은 영원한 것이 우리 것인데 이 세상에  있는 썩을 것, 썩은 것, 모두 더러운 것, 약한 것, 다 사망에 속한 것 이런  것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한 쪽란에는 이런 것을 두고 한쪽란에는 남고 참되고  완전하고 불변하고 영원한 것을 두고 있는가?  그것은 썩을 그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리고,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리고,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이렇게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혀서 그것을 속량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요 또 그 외의 것은  우리의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거기에 이용할 비용처럼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 가지고 있던 세상과 세상의 것, 다시 말하면 '그  사람들은 자손이 흥성해서 자손이 많이 났다, 자손이 흥 성하다, 권세 벼슬이  많다, 또 재물이 넉넉하다, 또 몸이 튼튼하고 건 강하다, 모든 일이 다 세상에서  형통하다.' 하는 그런 것을 세상에서 소망으로 삼고 복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표준해서 그런 것을 마련하는 데에 모든 사람들이 전력을 기울이고, 또 그런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고, 또 그런 것이 됨으로 자랑하는 것이 땅위에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도 아니요, 우리의 바라는 가치도 아니요,  영광도 아니요, 복도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고 여기 17편에 말한 대로 내가 하나님 앞에  지금 그 선포해 놓은 그 법칙에 따라 거리낌이 있나, 혹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려진 게 있나, 내가 또 하나님에게 교제하는 기도에 벌 입술을 놀린 그런  망령됨이 있나,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는 꼭 바른 깨끗한 말만 하나님 앞에 구한  사람이 됐나,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겠나 안 들으시겠나, 또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나 나를 버리시나?  이렇게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그 법칙을 준해서,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그  법칙을 준해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나? 그 관계가 바로  되기를 노력하는 이것이 생활이요, 이렇게 사는 그 의로운 행위, 하나님이  인정하는 행위, 예수님의 사죄를 벗지 안하고, 칭의를 벗지 안하고, 하나님과  화친을 버리지 아니하고 사는 이 피속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 생활, 이  의로운 생활, 의로운 행위, 여기에서,  뭐 하려고 이렇게 돈에도 맞추지 안하고, 권세에도 맞추지 안하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세상 이런 저런 온갖 행복에도 맞추지 안 하고 '그게 어찌  되나? 행복이 어찌 되나? 권세가 어찌 되나? 뭐 사업이 어찌 되나?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내게 어찌 되나? 다른 사람들에게 우쭐하게 한번  어깨를 펼 만하고 자랑할 만한 그게 어찌 되나?' 땅에 있는 이것 저것 사람들이  좋다고 일생을 탐하고 바라보고 노력하고 하는 그런 것에 대한 여하의 노력은  생각이 없고, 그게 어찌 되나 하는 그런 것은 다 포기했고, 그건 다 포기했고  다만 행동의 본체는 하나님의 법칙과 나와 어찌되나?  그러면 이 법칙은 하나님과 나와의 원수된 것을 알려 주는 멀어진 것을 알려  주는 법칙이요 또 하나님과 나와 가까와지는 이것을 알려 주고 가까워지게 하는  법칙이니까 내 행위가 이 법칙과 어찌 되나? 일편단심이 내 행위가 이 법칙과  어찌 되나?  다른 사람은 '이 돈이 어찌 되나, 권세가 어찌 되나, 세상에 뭐 자녀 아무것이  일류대학에 들어갔다 하는 이 세상 지식이 어찌 되나, 지위가 어찌 되나, 권세가  어찌 되나?' 여기에 '이게 어찌 되나?' 하고서 그것을 표준하고서 밤낮 연구하고  노력하고 부러워하는 것도 거기에 있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선포해 주신 이 법칙과 나와의 어찌 되나? 뭐 하려고? 이 법칙과 나와의 어찌  되는 그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칙이 어찌  되나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그 관계가 어찌 되나 하는 그것  때문에 살피는 것,  그게 뭐인가?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그러면 그렇게 법칙이 어떻게  되고 법칙과의 어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찌 되고 하면 뭐 하려고? 그것은  하나님 만나려고. 하나님 만나서 뭐 할라고? 만나는 가운데에 그분화되고,  그분화되고, 행동은 그분 동화되고 그 분의 형상화되어서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깰 때는 이다음 부활해 가지고, 죽어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 받아 심판에서부터 시작되는 나라가 새 세계요 깬 세계인데 그  무궁한 세계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무궁한 세계는 하나님의  형상 그것만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자는 중생된 영만 있지 이  마음이나 고기덩어리가 하나님 형상화되지 못했으면 그것은 이 부활은 해서  뭉텅이 덩치는 있지마는 속에 하나님의 형상의 기능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에서는 전부 하나님의 형상만 남아 있습니다. 거 게는 길도  하나님의 형상, 산도 하나님의 형상, 나무도 하나님의 형상, 성도 하나님의  형상, 성문도 하나님의 형상, 거리도 하나님의 형상, 거기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 짐승도 하나님의 형상, 전부 하나님은 원형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모형, 지식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하나님의 지식의 모형 지식,  하나님 닮은 것, 하나님 꼭 같은 것, 그 러기에 하나님과 이질된 것은 거기 못  와. 다른, 질이 다르다 그말이오. 하나님과 이질된 거는 거기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질, 동성, 또 동망, 같은 소망. 동동, 같이 움직이는 것. 동행,  동거 이것만 있기 때문에 이것만을 소망해서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우리의 소망을 혼돈하기 쉽습니다. 전도서 7장 3 절에 보면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얼굴이 근심함으로 그 속에 마음이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목적하는 것이 하나님의 모형이요, 또 그다음에  둘째 것은 하나님과 친근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근히 되는 것.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하나님과 친교 되는 것,  첫째는 내가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내가 되어지는 이것이 첫째 우리 소망이요,  둘째로는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된 내가 하나님하고 이렇게 친밀히 사귀어지는  것, 사귀어지는 것, 통하는 것, 동행하는 것 이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애요  하늘나라의 자체의 실력은 하나님의 형상 이라.

 이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소망하고 이 일이 이루어지는 방편이라면, 이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면, 이 일이 잘 이루 어지는 데에 유익이  되는 자기 형편과 사정이라면 목이 뿔라져도 다 행이고, 병신이 돼도 다행이고,  가난해져도 다행이고, 모든 사업 실패를 완전히 해도 그것이 주의 얼굴을 보는  데에 도움이 되고 주의 형상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면 그는 큰 축복이요,  자기가 부귀 다자손, 자손이 많고 아주 재벌도 많아서 부자 되고 또 권세와  벼슬도 있고 막 세상에서는 형통해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이게 돼도  이것으로 인해서 제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이것으로 인해서 악령 악성화되어  악습이 점점 조성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나 하나님 형상화되는 이것이 안 된다면  저주 중에 저주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평가합니까? 무엇을 행복이라고 무엇을 기뻐합니까? 무엇을  한탄을 합니까? 우리가 정말로 소망하는 것이 무엇이며 부러워하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의 가치는 어데다 두고 있습니까? 우리가 만일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가치를 두면 저는 망했습니다. 온 천하가 다 부러워해도 저는 망했소.

 그러나 우리의 두는 가치가 하나님의 얼굴과 그 형상에 우리의 가치를 둔다면  그는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요 행복된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를 위하여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이용물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그것 형상화 변화시키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지 요대로 될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변화되는 것으로 기뻐하고 거기에 이용되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하늘의 사람들인데,  잘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의 것을 주고 이 땅의 것을 바꾸어다서 가지고  성공이라, 또 이것을 이용해서 하늘나라가 건설될 때에 이용 하지 안하고  투자하지 안하고 뽈끈 잡고 간직해 놓은 것으로써 자기는 단단하고 손해 안 본  것으로 이렇게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정말로 내가 소망을 어데 가지느냐 하는 그것을  스스로 판단해야 됩니다. 전부 부러움이 썩음의 부러움이오. 전부 부러움이  썩음의 부러움이요 멸망의 부러움이오.

 '그리스도 안에서 네가 다시 살리움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했는데 위엣 것은 생각지 안하고 전 부러움이 땅에 있어. 전자랑이  땅에 있어. 전감사가 땅에 있어. 전성공이 땅에 있어.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릴 때나, 기도할 때나, 또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경고를 들을 때에는 겨우 하늘나라가 조금 보여지고 사모되어지고 알쏭알쏭하던  것이 딱 그 시간 지나버리고 나면 또 세상으로 기어들어가서 전부 가치는 세상에  둡니다. 가치는 세상에 두요. 하늘나라는 가치로 두지 안해.

 가치를 세상에 두기 때문에 그 사람은 세상 표준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네가  뭘 의지해 가지고 크게 날뛰고 있느냐? 무엇 가지고? 땅의 것. 땅의 것.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보다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  이랬어. 전부 망할 생각이요, 망할 비판이요, 망할 소망이요 망할 그  평가입니다.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이렇게 날뛰어.

 그러기에 슬픔이 웃음보다 좋은 것은, 분명히 좋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좋은  것을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참으로 인해서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마귀의 형상이 나갑니다 땅에 있는 소망이 이것이 점점 시들어지고 하늘의  소망이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형상은 점점 밝아지고 옛사람의 형상 이 죽여야 될  자기 아닌 자기 이것은 점점 꺼꾸러집니다.

 땅위에 어떤 환난이 와도 영생을 가지지 안한 나 아닌 그놈이 죽고 그놈이  깨지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는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형이 와도 사형이 오면 그놈이 사형받고 그놈이 놀라고 그놈이 죽을 지경이지  그놈으로 말미암아 파묻혔던 속사람은 그때에 머리들고 그때에 소망 가지고  '주여, 이제는 세상을 떠나게 됐으니까 내 영혼을 부르시옵소서. 소망 다  끊어졌습니다.' 그게 참사람 새사람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우리가 살펴서 '내가 무엇을 소망하느냐? 무엇을  가치로 두느냐? 내가 지금 무엇을 욕망하느냐? 내가 무엇이 없어서 실쭉하이  슬퍼하고 있느냐?'  무엇이 있어서 기뻐하며 '오늘은 기쁘고 즐겁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가 썩은  감사냐, 마귀가 주는 썩은 감사냐 산 감사냐?  그런고로 우리의 전주의는 하나님의 법칙에 주의해서 그 법칙에 맞나 안 맞나  뻘뻘 떨면서, 뭐 이 돈벌이에 맞나 안 맞나 무슨 이 세상 출세에 맞나 안 맞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에 맞나 안 맞나?  뭐 하려고? 이 법칙에 맞추는 것이 당신과 나와 친근해지기 때문에 좀  친근해지나 교제가 되나 안 되나? 하나님 교제해 가지고 뭐하려 고? 자꾸 같이  있으니까 닮거든,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화 하나님의 모형되려고.

 우리가 이것을 구별하지 안하는 가운데에서 우리의 기쁨도 변동되고, 용기도  변동되고, 담력도 변동되고, 열심도 변동되고, 전부 변동이 됩 니다.

 어찌하면 이 시편 17편 기자와 같이 이렇게 돼서 그 소망을 바로 보니 이제까지  산 것이 후회라 이 소망을 가지고 이래 살아야 되겠다 이랬는데 그만 이런 새떼  저런 새떼, 이 새떼 만나 가지고 한 마디 두 마디 듣고 나니까 그것은 없어지고  내 귀는 눈은 완전히 세상으로 다 기울어져 버리고 맙니다. 완전히 기울어지고  마요.

 이러니까 내게 모든 어두움에, 멸망에, 모든 불만 불평에, 공포에, 비겁에 이런  것이 다 내 귀로 들어왔고 내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이 할례를  받아야 되고 귀가 할례를 받아야 됩니다. 귀가 죽었다가 살아나야 된다 말이요,  할례는. 눈이 죽었다가 살아나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눈이 다메섹에서 멀었다가 새로 뜨인 것처럼, 그런데서 나를  죽이는 것이 다, 나를 행복된 나를 행복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그런 데서 다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만족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데 이것다 뺏겼습니다. 또 내 입에서 나가 가지고서 그게 나가 가지고 또  이웃 다 죽여버리고.

 그래 내가 어제 어떤 사람 만나 가지고서 기도하며 부득이 내가, 엎드려 그  기도했어. '우리는 전능자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전능자십니다. 아버지는  전지자십니다. 아버지는 영원 자존자십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주권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지극히 작은 것까지 다 아버지의 주권으로 섭리하십니다.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의 대속을 했습니다. 사랑하십니다. 지극히 큰 소망을 두고 우리를  양육하고 끌고 갑니다. 주여, 어데로 가든지 인도하여 주님이 나에게 주시기로  한 지극히 큰 소망 이 소망이 이루어지는 방편이라면 사는 것도 좋고 죽는 것도  좋고, 가난도 좋고 모든 것 다 좋습니다. 부요도 좋고 다 좋습니다. 이것에  손실되는 것이라면 천하를 다 줘도 싫습니다. 주님은 천하 영광을 다 보이면서  이것 손해보이는 머리 한번만 숙이라 해도 안 하고 거절했습니다.' 하는 그런  종류의 그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바로 찾고 굳게 잡읍시다. 또 우리가 평가를 바로 합시다.

우리가 가치를 어디다 둡니까? 가치를 세상 사람과 같이 두기 때문에 우리  희로애락이 세상 사람과 꼭 같습니다.

 왜 우리의 희로애락이 왜 세상 사람과, 우리가 세상 사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세상이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이라기 때문에 우리 회로애락도 우리  생애도 다 세상과 같이 됩니다.

 우리의 가치는 하늘에 있소.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하늘의  것이 손해가고 땅의 것이 높아지는 걸 보고 기뻐하는 걸 보고 애터져서 불쌍하게  여기면서 참 위해서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어제도 우리 교인 가운데에 어떤 사람이 그만 공장에 일하다가 이걸 바싹 깨서  떠뻑 잘라버렸어. 나는 그걸 못 자르구로 이랬는데 나한테 연락할래야 연락이 안  되고 이래서 그만 잘랐다 하는데 내가 못 자 르구로 그렇츰 그래 쌓았다 말이오.

 이것 자를 때에, 잘릴 때에 꾼길 때에 그라더래요. '주님, 내가 죄를 지어  이렇습니다. 내가 어제 주일을 범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일 범한 것이 잘못된 줄  알고 주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된 그것이 팔 하나 그거 안 끊긴 것보다  낫지, 끊겨도 그게 낫지.

 그래 나눈 그거 끊지 말라 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할 수, 이 가죽 속에 들어  있으니까 대번 그게 썩지는 안합니다. 이래 주 이래 놓고 난 다음에 이러면  '아나 네가 덜렁덜렁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네가 죄지은 것을 네가 이것을  보면서 또 회개하고 하나님을 자꾸 사모하고 기도 하고 가까이 해라.' 이라면 이  손 이거 낫자 그 사람 성자 될 수도 있다 그말이오. 또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마는.

 이러니까 우리는 언제든지 가치를 하늘에다 두고 계산을 거기에 대야 됩니다.

위에 그 계산에 손해나 이익이냐? 세상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이 구비한 행복된  사람이라는 그 행복이 그 사람이 하늘나라 계산을 대 보니까 거기에는 다 손해요  영점입니다.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지식 부자, 권세 부자, 용모 부자,  건강 부자, 물질 부자, 다자손 부자, 그거 저주지 뭣이겠습 니까?  우리는 꼭 바로 소망해야 되고 바로 소망하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의 가치는  옳은 가치를 가치로 둡니다. 그러면 우리 생애는 바로 되게 됩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웃을 때에는 슬퍼하고 슬퍼할 때는 웃고, 참 기가 막혀서  탄식할 때는 우쭐해서 아주 자랑하고, 또 참 자랑해야 될 때는 또 기절하고,  전생활이 꺼꾸로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나라도 둘이요, 사람도 둘이요, 지식도 둘이요,  감동시키는 영도 둘이요, 우리의 생애도 둘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지금 구별해서  나가기 때문에 왼쪽에 아닌 이것을 다 승리한 것만이 요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승리한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통치할 수 있는 그 실력이  스스로 육성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뭘로 기뻐하는지? 뭘 지금 바라는지? 뭘 행복이라고  보는지? 누가 부러운지? 누가 부러운지? 뭣이 지금 욕망인지?  정신 차려서 우리가 살아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지 속에 알맹이 소망이나 평가는 전부 땅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나 그것도 마귀의 자식이오. 그것 내나 불탈 것이라. 그라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지. 깨어 삽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일곱시부터 이 현장에서 작업을 시작하니까 집에 가서 식사하고 모든 일  보고 시간 있는 대로 나와서 모두 이 봉사해서 또 하던 나 머지기를 다 간추려서  다 정리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똑똑히 해요. 요것이 혼돈돼 가지고 모두 다 지금 슬퍼 탄식을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형상, 당신과의 관계 그것이면 하늘과 땅의 것 다 돼. 이것만을 우리  소망으로 삼으라고 했는데 이 소망을 버리고 딴데 가니까 기뻤으면 기쁜 것만치  슬픔으로 바꿔집니다. 성공을 했으면 성공한 만치 실패를 하고야 맙니다.

 우리의 소망은 둘뿐이오. 하나님의 형상화되는 것, 하나님과 친밀한 이제  연결이 되는 것 이것만 하면 다라.

 그게 우리 소망인데 이 소망을 가진 자가 돈을 소망하고, 지위 소망하고, 권세  소망하고 그걸 가치로 여겨서 그것 있다고 웃고 그것 없다고 울고 하니 이게  하늘나라와는 아주 이질적의 것으로서 맞지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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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6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세 가지/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1986. 3. 9.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5295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대로 알고 행할 것/ 로마서 4장 1절-8절/ 1986. 10. 21.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5294 하나님의 형상-사랑/ 요한일서 4장 16절-5장 4절/ 1986. 8. 23.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93 하나님의 형상-사랑/ 요한 1서 2장 24절-29절/ 1986. 8. 2.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92 하나님의 형상/ 로마서 8장 29절-30절/ 1979. 8. 12.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291 하나님의 형상/ 누가복음 5장 8절-11절/ 1979. 8. 11.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90 하나님의 형상/ 요한계시록 18장 1절-8절/ 1981. 1. 10.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 하나님의 형상/ 시편 17장 1절-15절/ 1983. 6. 1.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288 하나님의 표적/ 출애굽기 20장 1절-2절/ 1985. 6. 1.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87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3.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5286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4.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285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5.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5284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6.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83 하나님의 평가기준은 충성/ 마태복음 23장 19절-24장 2절/ 1984. 1. 24.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282 하나님의 특사/ 롬 10장 8절-15절/ 1984. 5. 27.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5281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요한복음 1장 1절-15절/ 1984. 1. 1.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280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누가복음 18장 1절-8절/ 1983. 11. 23.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279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로마서 1장 17절/ 1984. 1. 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5278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1983. 11. 23.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5277 하나님의 축복-하나님의 명령/ 신명기 28장 1절-19절/ 1985. 1. 6.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