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강

 

1987. 6. 4. 새벽 (목)

 

본문:빌립보서 4장 4절∼7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쁨은 신불신자간에 인생의 제일되는 행복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평가합니다.

기쁨은 신불신자간에 인간의 제일이 되는 행복이라 그렇게 평가합니다. 또 하나님도 성경에 나타난 걸 보면 하나님도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당신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신 것도 당신의 기쁨 때문에 정했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정이나 창조나 모든 대속이나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 영광의 찬미, 하나님의 후사,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상속해서 유업으로 주어서 영원히 당신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는 그 모든 기쁨을 위해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 가운데에 철학자들은 ‘인생의 행복은 쾌락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어떤 종교나 어떤 사상이나 어떤 주의나 거게 골자의 목표는 기쁨입니다. 기쁨이 없는 사상, 기쁨이 없는 주의, 기쁨이 없는 운동, 기쁨이 없는 전투, 기쁨이 없는 건설, 무엇이든지 기쁨이 목표인데 그 건설해 그거 나가면 결국은 기쁨이 된다 하는 그것을 사람들이 소망의 목표로 두고서 달리는 것입니다. 그거 없으면 다 사망입니다.

그러기에 지난밤에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기쁨은 이 세상 것으로써는 이 기쁨은 가질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뭐 생명과 정권을 권세를 바꾸지마는 실은 그가 몰라 그렇지 그 권세는 자기의 생명만 못합니다. 또 무슨 행락이나 영광이나 존귀나 명예나 공로나 그런 것들도 기쁨만 못합니다. 그런 것을 다 사람들이 몰라서 다 그라고 있는데 어짜든지 최종 행복은 기쁨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땅의 것은 기뻐지지 않습니다. 육체의 생명도 좋습니다. 육체의 생명도 좋지마는 그것이 결국으로는 고통과 슬픔을 갖다 주지 그 생명이 기쁨을 갖다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거 좋지 못하다 그렇게 말합니다.

물론 신혼부부가 좋습니다. 또 옹기종기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그것이 재미 있고 좋습니다. 그것은 다 동물들도 곤충들도 자기를 아낌없이 희생하는 그렇게 기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 기쁨이 다 결국은 슬픔으로 눈물로 다 고통으로 번민으로 결국은 다 결론을 짓고 말기 때문에 심령이 밝은 사람들은 거게 대해서 가치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후란시스 같은 사람은 자기가 동굴에 있다 나와 가지고는 눈 온 날 아침에 눈사람을 만들어서 크단하게 만들어서 이거는 우리 아내 또 그 다음에는 우리 장자 장녀 뭐 차남 차녀 뭐 이래 쭉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해가 돋으니까 그만 스르르르 녹아버립니다. 이제는 가족 다 죽어버렸으니까 나 혼자만 남았다 하고서 주님하고 결혼하고 그만 여생을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 심령이 밝기 때문에 그게 그거라 그 말이오.

또 어떤 사람은 책상 위에서 다 그립니다. 책상 위에서 그림 한장으로 그려 가지고서 요거는 뭣뭣 하는데 그것이 다 죽어지고 다 없어졌다 하고서 그렇게 그만 책상 위에서 그림 하나 그려 보고서 안 된 거는 다 정리해 버리고 이는 참으로 참이라 가치 있는 것만 간추려 가지고서 산 것이 모든 성자들입니다, 성녀들이고.

그러기에 이 세상에는 어떤 것으로써도, 인간의 행복은 기쁨인데 어떤 것으로써도 인간이 기쁨이나 쾌락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기쁨과 쾌락을 가지기 위해서 자꾸 추상하고 추론하다 보니까 모든 종교들이 생겨졌습니다.

이종교들이 생겨졌고 또 철학들이 생겨졌습니다.

암만 생겨져도, 그 후에 사람들이 추론하고 추상해 가지고서 이런 장래가 있기 때문에 기쁠 수 있다 해서 불교에서는 극락을 말하고, 극히 즐거운 곳이라 해서 극락입니다. 아주 극히 즐거움이라, 극락이라 말하는데 그들은 극락을 가정하고 추상해 가지고서 그러나 그 극락이 자기에게 확실히 있다고 인정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양심으로 생각하면 인정도 되지 안할 뿐 아니라 또 그 어두운 사람들은 자꾸 극락이 있다 있다 하는 거게 맹종돼 가지고서 거게 피동되어서, 있는 줄 알지마는 실상 그것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다 슬픔으로 화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알아서, 최종을 알아서 이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자, 또 맹종해서 어리석어서 가졌던 자는 나중에 실상이 없어서 없어지는 것 어쨌든지 이 세상에는 기쁨이라는 그것은 없습니다. 왜? 기쁨은 다 영원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늘 기뻐도 내일 슬프면 그거 기쁨이 아니라 그 말이오.

기쁨도 다 영원성을 가졌기 때문에 이 기쁘면 오늘도 기쁘고, 내일도 기쁘고, 환난 중에도 기쁘고, 죽어도 기쁘고, 죽은 후에도 기쁘고, 영원도 기쁘고 그거라야 기쁘지, 영원성의 존재기 때문에 일시 있는 거는 다 속이고 마는 것이지 그것이 그 기쁨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도 그런 것입니다. 생명도 영원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 산 것이 영원히 살아야 되지 살다 죽으면은 그거 큰 고통이 됩니다. 사람이 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건 죽는 것 때문에 고통을 느낍니다. 좋은 것을, 생명을 좋아하지마는 그것 다 영원성 가진 것인데 영원성의 존재가 아닌 것을 사람들이 그거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틀렸다 그거요.

사랑도 그러합니다. 사랑도 영원성을 가진 존재인데 그 사랑이 영원성을 가지지 못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 되고 말고 원수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 가지지 딴거는 가질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 기쁨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라고 말하는 건 주 안에 밖에는 항상 기뻐할 것이 없습니다. 주 안에서밖에는 항상 기뻐할 것이 없어.

그런데 이 기쁨도, 기쁨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기쁨이 어데 자기 몸 밖에 무슨 회사에 있는 게 아니고, 사업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무슨 이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그 인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과학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기쁜 이 기쁨은 자기 안에 있습니다. 자기 안에는 뭐이요? 자기 안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기 안에 항상 기쁘고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쁜 데 또 생각하니 더 기쁘고 더 기쁘고 자꾸 더 기쁘고, 그러면 그 더 기쁨이 미쳐서 그런가? 아니야.

그것은 이 주 안에 있는 기쁨은 사선의 경계가 없습니다. 사선의 경계가 없어.

그전에 제가 거창 있을 때에늘 저를 따르던 변판원 선생이라고 있었는데 주일학교 반사였는데 참 그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가시밭에서 길렀어. 자기 형제들이 많은데 형제들은 노름하고 부모는 형제들 그놈들이 불량지기고 하니까 부모는 꼼짝 못하고, 이놈들은 노름하면서, 농사는 크게 짓는데 소도 큰 소 먹이고 하니까 일하기 싫으니까 어찌 됐든간에 그 변판원씨만 자꾸 뚜드립니다.

내가 언제 말 들으니까, 복숭나무는 참 그게 여뭅니다. 복숭나무는 나무 중에 몇째 가는 여문 나무입니다. 복숭나무 작대기를 요만한 걸 똥똥하게 팔뚝시만한 요만한 걸 가지고서 어떻게 조겨대고 얼마나, 인제 농사가 잘못 돼도 뚜드려 패고, 소가 말라도 뚜드려 패고, 일이 지심이 나도 뚜드려 패고 자꾸 뚜드려 패면, 투드락딱 뚜드리면 돈도 나오고, 뚜드리면 곡식도 나오고, 뚜드리면 풀도 제초가 되고, 뚜드리면 소도 살이 찌고, 뚜드리면 뭐 그만 농사 짓자면 시골에서는 비료가 그때 없을 때니까 풀을 벱니다. 풀을 베어 가지고 전부 해. 뚜드리면 풀을 많이 벤다 말이오. 이건 뭐 어짤 수 없으니까.

그래 가지고서 어쨌건 죽자껏 이렇게 하는데, 그때에 고무신으로 말하면 벌써 고무신이 많을 때입니다. 고무신을 한 켤레 못 사 신어서 평생, 이 시골에 가면은 재목 낼 때에 거도, 송판 켜는 거도쟁이들이 이 나무를 얹어 놓고서 거도로 켜면은 이제 피족은 떼내 버려 버리고 속에 알맹이만 거석하는데 요새는 뭐 기계로 가지고 하지마는 그때는 사람들이 손으로 거도로 이래 켰습니다.

켰는데 피족 떨어지면 피족이 요래 생겼다 말이오. 요래 생겼으니까 요놈을 끊어 가지고서 좀 두꺼운 데 끊어 가지고서 거기다가 구멍을 뚫어 가지고서 그래 인제 삼으로 이래 해서 막 이만, 이것보다는 좀 굵을 거야, 아마. 그렇게 해 가지고서 이렇게 나막신, 게다 압니까? 요새는 쓰리빠 이거 코 끼어 가지고 다니는 것 있지, 왜 여게? 요새 쓰리빠는 또 푹 끼는데 그게 아니라, 그때는. 이 앞에 일본 사람 신 이래 가지고 이래, 이래 가지고 엄지가락 끼어 가지고 그래 다니는 것인데 그거 신고 저 비탈에도 항상 그거 신고 다녔어. 그 나막신을 끼었으니까 얼마나 그렇겠습니까? 비탈에도 나막신 신고 그래 가지고 풀을 한짐씩 베어와 가지고 이래 돌아다니고, 그래도 풀 베러 갈 때에 노래 부르고 올 때에 노래 부르고 쉬지 안하고 노래 불러.

그러고 제가 저 삼봉산에 가 있으면은 벌써 다 일해 놓고 저녁 먹고 올라오면 벌써 소리가 들립니다. 저 밑에서, 그는 산곡의 백합화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산곡의 백합화 성도들이여’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올라와 가지고 올라오면 벌써 길이 머니까 높은 산이니까 올라와 가지고서 거게서 또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 보고 이래 하다가 또 한 세시나 되면 내려갑니다. 내려가 가지고 또 새벽기도 교회 나가 참석하고 또 쇠죽 끓어 주고 또 일하고, 그래 가지고 뭐 어데든지 그 사람 가는 데는 산곡의 백합화 노래 소리요. 골짜기 어데든지 가면 그만 그 사람 있는가 없는가 알아. 그만 그 노래 소리도 좋아요, 소리가 크고.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항상 노래 부르고 좋아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이 기쁨을 얼마나 실력있게 길렀느냐? 6 5 때에 공산주의들이 저 구덤터재라 하는 그 재에 가 가지고 이 변판원 선생을 나무에다가 열 십자로 이래 떡 당글어 매놓고서 그래 인제 성경을, 장 성경 가지고 다니니까. 그 사람은 항상 성경 가지고 다녀. 성경 놓고 다니지 않아. 풀 베러 가도 성경 가지고 다니고, 풀 베러 가도 딱 성경을 꽂는 데 이래 만들어 가지고서 성경 가지고 다니고 어데든지 성경 가지고 다녀. 밤이고 낮이고 뭐 논 매러도 성경 가지고 어데든지 일하러 가도 성경 안 가지고 다닐 때 없어요.

성경 가지고 왔는데, 이 사람들은 믿다가서 낙심한 자들이기 때문에.ㅡ그 사람이 어찌 됐는지 모르지마는 그때 여러 사람이 잡혀가 가지고 모두 거기서 모두 죽이는데 한 사람이 살아왔어. 한 사람이 살아와 가지고 그 사람이 그 된 사실을 전해서 알았지 그리 안 하면 그 사람이 어데 가 죽었는지도 몰라요.

인민군들이 잡아가 가지고 그래 달아놓고 성경에서 ‘야 이놈아 이렇게 허무한 이 영생을 이놈아 믿느냐?’ ‘믿습니다' 이라니까 칼로 푹 찌르고, 또 `이놈아 예수가 이렇게 네 죄를 다 대신 담당했다 하는 거 이걸 믿나, 야 이놈아?’ ‘믿습니다.' 또 찌르고, 그 기쁘고 즐거움으로 자꾸 그래도 하나 하나 그라니까 성경 다 뜯어내도 ‘믿느냐?’ 믿는다고 이라니까 그래 암만 그래도 기쁘고 즐거워하고 뭐 칼을 가지고 여러번 찔렀지마는 기쁘고 즐거워하니까 ‘이놈이 뱃속에 뭐이 들어서 이놈은 이렇게 항상 기쁘고 즐겁고 이놈은 자꾸 그래도 조금도 그뭐 근심이나 걱정이나 고통 거석이 없고 기쁘고 즐거운가?’ 그래 가지고 뱃구멍을 도렸어. 뱃구멍 있는 데를 이만치 도려 가지고서 칼로 도려서 뱃구멍에 구멍이 뚫혀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죽어버렸어.

그때에 순교는 참 제일 멋진 순교는 그 사람이 제일 멋진 순교했고 그 다음에 둘째 순교한 것은 배추달씨가 둘째로 순교했고 셋째 순교는 박기천 조사님이 셋째 순교했습니다.

박기천 조사님이 자기가 군 직원으로 있을 때, 면에 있으며 군 직원으로 있을 때에 출장 가다가, 그 사람이 그때 전도는 들어서 믿기는 믿었는데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출장 가다가 어째 제가 가조 집회 할 때에 ‘백 조사님이 가조 집회 한다 하니’ 그때 내가 백 집사든가 몰라. 백 집사일 거라.

‘백 집사가 가조 집회 한다 하니까 가 봐야 되겠다.’ 그래 와 가지고 집회 참석하고 난 다음에 그만 그 걸음에 사표 내 버리고 나서 가지고서 복음으로 살았습니다.

이라다가 늘 따라다니고, 집회마다 늘 따라다니고 이라다가 나중에 마지막에 ‘그라면 네가 여기 산골짜기 여기서 전도사 노릇을 해라’ 하고서 그래 그때 거기서 교회 맡아서 전도사 노릇 했습니다. 그라다가 순교했어.

그라다 순교했는데 박기천씨 아들이 그때 찾아왔어. ○○○씨 봤지? 아들이 찾아와 가지고서,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 ○○○목사님은 잘 알지도 못하고 ○○○목사님과 그때 이랬습니다. ○○○목사님과는 대립이 돼 가지고 그래 내치 신앙 생활 했었는데 그 사람이 와 가지고서 ‘○○○목사님에게 은혜받아 가지고 내치 이래 지냈는데 우리 아버지가 뉘 말 들으니까 백 목사님과 서로 연락이 있었다 하는데 그거 어찌됩니까?’ ○○교파에서 감쪽같이 그래 놨는데 그게 다 안 드러난 게 드러나는 거라. 이다음에 가서 드러나면은 어떻겠어? 그래 나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말을 하지 안했어. ‘그 사람이 군직원으로 있다가서 그때 집회 참석하고 사면하고 믿기 시작해 가지고서 그래 거기서 있다가 그렇게 됐다’ 그 말만 하고 내가 더 이상은 말하지 안했어요. 그 이상 그거 말해 봐야 그게 알아들려지겠소? 이랬는데 그 변판원씨는 그렇게 해도 그러니까 나중에 뱃구멍을 도려 가지고서 그래 죽었는데 그리 안 하면 어데 죽었는지 모르지. 모르는데 하나, 하나님이 꼭 증인을 남겨 놔요. 증인을 남겨 놔서 그 사람이 와 가지고 사실을 얘기해서 알았지 그리 안 하면 알지도 못할 것이고 어데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랬어.

○○○씨 그 알아요? 그 초상 칠 때 참석했어? 그 구덤터재에서 죽었는가? 산곡에 백합화 많이 불렀지? 언제든지, 내가 삼봉산 가 있으면 그 산에 기어올라옵니다. 뭐 하루밤도, 아무리 피곤해도 거기 있으면은 꼭 올라오면서 그만, 부지런히 일해 놓고 막 정신 없이, 거기 올 욕심으로 일해. 일하고 난 다음에 그래 가지고 그라는데 아무리 뭐 칼로 찔러도 그 기쁨이 요동치를 안했어. 그 기쁨이 그것이 일시에 되는 게 아니라 많이 길렀습니다. 그 기쁨을 찾는 것이 생각에서 찾고 또 생각에서 찾아 가지고서 또 믿음으로 잡고, 찾고 잡고 찾고 잡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그 기쁨을 길렀어.

기쁘니까 환난 중에 그라지.

예수님은 십자가 못박힐 때 예수님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그 말은 ‘나를 어떻게 이 모든 구속 제물로 대속 제물로 나를 이와 같이 정해 가지고서 대속 제물이 되었습니까?’ 그 기뻐하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해석하기를 ‘예수님께서 그때는 죽기가 싫어서 하나님께 대해 원망을 했다.’ 원망했으면 죄지. 원망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성경의 주석의 백분지 구십구는 다 원망이라고 해 놨어.

원망이라고 하지 안하고 여기 대해서 감사로 이렇게 해석한 이는 내가 알기로는 김현봉 목사 하나뿐이었습니다. 거게 대해서는 동감이었었어. 동감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 다 모두 그것을 뭐, 뭐 아마 칼빈 주석도 내가 보지 못했지마는, 좀 가서 ○○○목사님 좀 한번 찾아보십시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말이지요. 아마 거기도 그 원망 불평으로 했는지 뭐라 했는지 내가 그건 잘 모르지마는. 이렇게 육덩이가 돼 가지고서 성경을 보기 때문에 항상 육덩이요.

이러니까 말해야 못 알아들어.

이번에도 지금 시비가 나 가지고서 그 은혜받은 걸 전부 소방대들이 다 꺼 버렸어. 은혜받은 불을 소방대가 가 가지고 다 껐어. 왜? 제 교훈과 맞지 않으니까 제 교훈을 세울라고서 이 교훈을 모두 다 헐어 다 꺼버려 놓으니까 그게 소위 소방대라, 소방대. 불 끄는 소방대. 성령의 불을 끄는 소방대라.

소방대인데, 그래 말하기를 ‘세상에 한 사람이 어떻게 그라면 지옥 가서 이를 갈고 있고 하늘나라 가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알기가 어려울 말씀이요, 거리가 멀어서.

우리가 기쁨을 길러야 됩니다. 기쁨을 길러서 자꾸 하나님께서 이 기쁨이 최고 행복인데 이 기쁨이 여게도 있나 저게도 있나 자꾸 이래 가지고 해서 여게서도 이 기쁨을 깰 수 없고, 저게서도 기쁨을 깰 수 없고, 칼 앞에서도 기쁨을 깰 수 없고, 모든 고문과 고형 앞에서도 기쁨을 깰 수 없어야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공들이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어떤 게 그거, 독침을 찌르고, 그냥 고문과 고형도 그 힘들고 고문과 고형보다도 독침이라 하는 것은 약을 넣어 가지고 하니까 독침과 독약을 먹일 때에 그때에 독약을 먹으니까 사람이 변질이 되는데 그럴 때도 이 기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는 경외함과 하나님으로 인한 그 기쁨이 우리에게 변동되지 안하고 있게 해 달라 하는 그것을 밤낮 기도하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라 그 말이오. 이것을 길러야 되지 안 기르면 되지 안해.

그러니까 한 시간, 한 시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기본구원 열 가지 기본구원 또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하면 열한 가지라면 열한 가지로 이렇게 이걸 자꾸 생각하니까 기뻐진다 말이오.

그러면 한 시간 그 살면서 자기의 정력이라는 정력이 있는데 자기의 정력, 한 시간 일하면 한 시간 정력이 그만치 없어졌습니다. 알겠습니까? 없어졌는데 그 정력이, 그 정력이 돈하고 바꾼 정력도 있고 그 정력이 죄하고 바꾼 것도 있고, 그 한 시간 빠진 그 정력이 뭐이 되느냐? 그 정력이 돈 보고 해서 그만 없어진 것도 있고, 그 정력이 아주 없어지는 것도 있고 그 정력이 자기의 기능이 됩니다. 그 정력이 자기 기능이 돼.

한 시간 자꾸 에이 비 에이 비 자꾸 이라면 에이 비를 공부했으면 그 한 시간 없어진 그 정력이 에이 비하고 바꿔져 가지고서 에이 비라는 그 지식의 기능이 내게 돼 가지고 있다 그 말이오. 그게 한 시간 사는 그 정력이 죄를 지었으면 그 정력은 죄하고 바꿔서 그 정력이 죄화됐다 말이오. 죄화됐으면 그거는 육신의 사람이 그래 됐습니다. 이래 나중에 죽을 때는 죄화된 것이 천국 갑니까? 못 가니까 죄화된 그놈 정력과 기능 그놈들이 가 가지고서 어데 가 있느냐? 그놈들이 어데 가 있소? 저 ○○○교회? ○○○교회 교인들 손 한번 들어 봐.

○○○교회? 또 ○○○교회? 없어? 왜 ○○○교회는 왜 안 왔나요? 그래 인제 그 기능이 어데 갈꼬? 여러분들, 인간의 한 시간의 사는 그 정력이, 정력이 죄화도 되고, 죄도 되고 의도 되고 믿음도 되고 기쁨도 되고 모든 것 됩니다. 이래서 새사람의 피와 살이 되고, 새사람의 기능이 되고, 그 정력은 없어졌는데 그 정력이 들어서 한 시간 어학 공부 할라고 애를 쓰면은 정력이 없어졌는데 그 정력은 없어졌는데 그 정력이 자기가 가진 영어 실력의 에이 비의 그 기능으로서 화해 가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마지막 떠날 때에, 그러기에 그 기능들 말이요, 세상에 좋고 좋은 것 좋아하고 꾀 있고 지혜 있고 그렇게 있는 그 악의, 악의 그 기능으로 화해진 그 정력하고 악의 기능하고 그놈이 저 지옥불에 가 타는데 아프다 소리 안 하겠어요? 아프다 소리 안 해요? 해요.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있어요.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이 기쁨을 기릅시다. 이 기쁨을 자꾸 길러요. 길러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연습시키는데 요런 현실에서도 기쁨을 기르고 저런 현실에서도 기쁨을 기르고 자꾸 기쁨을 길러.

이래서 변판원 선생 모양으로, 그는 칼로 찔러도 그 기쁨이 없어지지 안해. 왜? 평소에 그 기능 가지고서 이제 예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만들어 놨으니까 기쁨이 자기에게 꽉 찼으니까 그 만들어 놓은 그것이 어찌 되겠소, 나오기를? 콩자루에 자꾸 터지면 콩 나오지 콩자루에 터졌는데 뭐이 나오겠소, 나오기를? 이러니까 이제 그 기쁨 평소에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 기쁨이 이제 그때 환난 때에 푹푹 솟아나오니까 툭툭 튀어 나오는 거라. 알겠습니까? 이래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인제 이 기쁨은 주 안에서 오지 딴데서는 없어. 이는 땅위에 것으로써는 안 돼. 이 기쁨을 자꾸 기르고 길러 가지고서 어떤 때라도 이 기쁨으로 살 수 있고 이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이 기쁨을 성장시켜야 됩니다, 자꾸. 성장시켜야 돼.

성장시켜서 ‘내가 요게서는 요 기쁨이 약해 떨어졌구나.’ 여게서도 기뻐하고 저게서도 기뻐하고, 그저 껍데기로는, 껍데기는, 그래 기독자들이 근심하는 것도, 근심하는 것도 이 기쁨이 근심과 발라. 하늘에 속한 근심은, 하늘에 속한 근심은 이 기쁨을 가지기 위해서 근심하는 것이고 이 기쁨의 약점을 인해서 근심하는 것이고 근심 그것이 기쁨이요 기쁨 그게 근심이요 단일성이라는 요, 단일성이라는 요 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이리저리 치우치고 구원이 바로 되지 안합니다. 단일성.

이러니까 이 기쁨을 길러야 됩니다. 기르지 안하면 안 돼. 이 기쁨 뭘로 길러요? 이 기쁨은 뭘로 길러? 저 ○조사님? 생각으로 기르고, 또? 생각만 자꾸 하면 되는가? 생각과 믿음으로 길러요. 생각으로 찾고 믿음으로 뽈끈 잡아서 내것 만들면 돼.

이런데 이걸 세상에서 뭐 말해야 알아들어야지? 여게 와 가지고 돈이나 뭐 세상 것이나 말하면 좋아하지. 세상 걸 말하면 쏙쏙 귀에 들어온다고 좋아하고 내나 테레비 보는 그런 게 되면은 재미 있다 하지만 재미가 무슨 소용 있어? 없어지지 않는 그거라야 되지. 어리석지 말아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광고합니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 있습니다. 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께서는 공과를 다 외우도록 공부합시다. 다 외우기야 외우겠지요. 외우고 이제 거기 대해서 자꾸 새김질을 하면 그 뜻이 깨달아져. 뜻이 깨달아지면 아, 학생들에게 요거 가르쳐야 되겠다 하는 것이 속에 불이 붙어야 심방할 용기도 나고 전도할 용기도 나고 테레비 보는 놈을 당장 ‘너 오늘 주일인데 뭐 해!’ 이라면 깜짝 놀라 가지고 올 수가 있지. 그 권위야.

권위 없는 목사, 권위 없는 전도사, 권위 없는 이 반사 이런 것들은 암만 가 가지고, 테레비 보고 있으면 ‘가자’ `안 가요' `야 가자 가자' 사정해도 `안 해요' 권위 있는 반사가 됐으면은 떡 간다 말이오. 가면, 테레비 보다가서 ‘아무것아’ 부르면 얼른 꺼버려. `선생님 온다' 떡 나서며 ‘예’ 테레비 보다가 `예' `야, 시간 됐는데' `지금 갈 준비 하고 있습니다’ 하며 뛰어 나온다 말이오.

하나님의 권위로 인간이 복종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권위 없이 인간이 무슨 복종돼? 나도 이 권위가 적기 때문에 이 새벽기도 이래 나오고 있는 거라.

자기네들이 이거 뭐 손 들고 나오겠다고 다 수천 명이 말해 놓고도, 손들어 표해 놓고도 새벽되면 그걸 못 나오는 거라. 이렇게 서부교회 교인이 약합니다.

자기네들이 뭐 거짓말로 새벽기도 나오겠다고 하는 게 아니고 나오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마는 제까짓 게 마음먹어 봤자 소용 없어. 마음먹는다고 되는가? 마음먹는 대로 실행이 돼져야 돼. 죽음 앞에서도 기뻐야 되는 것이지 죽음 앞에서 담대해져야 되는 것이지 제가 담대를 가지고 싶다고 가져요? 평소에 담력을 길러야 돼요.

삼십 분 기도 놓치면 안 됩니다. 세상이 몰라 그렇지 우리의 소망과 우리가 소득은 따로 있어. 이것을 아는 사람은 세상 소득 가지고는 소득을 가지지 안해.

그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 알고 저절로 주시는데 뭣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정력을 기울여 노력하고 있소? 없어지지 않을 것 위해서 노력하지.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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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296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세 가지/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1986. 3. 9.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5295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대로 알고 행할 것/ 로마서 4장 1절-8절/ 1986. 10. 21.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5294 하나님의 형상-사랑/ 요한일서 4장 16절-5장 4절/ 1986. 8. 23.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93 하나님의 형상-사랑/ 요한 1서 2장 24절-29절/ 1986. 8. 2.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92 하나님의 형상/ 로마서 8장 29절-30절/ 1979. 8. 12.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291 하나님의 형상/ 누가복음 5장 8절-11절/ 1979. 8. 11.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90 하나님의 형상/ 요한계시록 18장 1절-8절/ 1981. 1. 10.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89 하나님의 형상/ 시편 17장 1절-15절/ 1983. 6. 1.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288 하나님의 표적/ 출애굽기 20장 1절-2절/ 1985. 6. 1.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87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3.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4.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285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5.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5284 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6. 6.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283 하나님의 평가기준은 충성/ 마태복음 23장 19절-24장 2절/ 1984. 1. 24.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282 하나님의 특사/ 롬 10장 8절-15절/ 1984. 5. 27.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5281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요한복음 1장 1절-15절/ 1984. 1. 1.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280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누가복음 18장 1절-8절/ 1983. 11. 23.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279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로마서 1장 17절/ 1984. 1. 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5278 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1983. 11. 23.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5277 하나님의 축복-하나님의 명령/ 신명기 28장 1절-19절/ 1985. 1. 6.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