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강

 

1987. 6. 6. 새벽 (토)

 

본문:빌립보서 4장 4절∼7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지난밤에 증거한 말씀을 또 다시 한번 생각하려 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서만 구원되는 구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곧 객관 역사로 이루어지는 구원인데 이 구원은 우리 본인들이 알고 난 다음에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알기 전에 이 구원이 택자들에게는 다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도 디모데서에도 “이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고 영원한 때 전부터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구원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에베소 1장에도 3절 이하에 보면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벌써 이 구원은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주기로 작정하시고 그 작정하신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런 것을 가리켜서 순전히 주님의 은혜로 우리 주관은 하나도 상관 없이 객관 은혜로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구원을 가리켜서 기본구원이라 이렇게 우리들이 말을 하고, 또 구원 하나 더 있는 것은 이 구원을 얻은 자들이 이 구원을 알고 그 다음에는 이 구원에 대해서 확실히 믿고 그럼으로 이미 받은 이 기본구원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받은 기본구원을 확신하고 이 구원을 힘입어서 자기가 이 구원을 벗지 안하고 이 구원을 입고 살려고 함으로 여러가지 현실에 어려움이나 모든 조화들이 생겨 가지고 거기에서 이 기본구원을 입어 이 기본구원을 힘입어서 자기가 힘입은 행위를 하는 그것이 건설구원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부활한 자의 영광의 차이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40절 이하에 내려보면은 “부활한 자의 영광은 이와 같다” 했습니다. “육체도 여러 종류가 있고 형체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형체마다 그 영광이 각각 다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이 각각 다르다.” 예를 들면 거게 말씀하시기를 형체는 땅에 속한 형체들도 수없는 형체가 있고 하늘에 속한 형체들도 수없는 형체가 있는데 그 형체 중에는 작은 형체도 큰 형체도, 가치가 높은 형체도 낮은 형체도 있어서 수없는 그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하늘에 있는 이 태양이라는 해도 한 형체요 땅에 있는 이런 무슨 조그만한 모래알 하나도 형체라. 형체는 형체지마는 해, 태양, 태양 한 개의 그 형체의 영광과 땅에 속한 한 모래알의 그 형체의 영광이 얼마나 차이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다 부활은 하기는 했지마는 부활한 자들의 영광의 차이는 이와 같다 하는 것을 고린도전서 15장 40절 이하에 똑똑히 기록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기본구원이라는 이 구원, 이 구원을 우리가 이 성경에서 찾아서 알고 또 확실히 믿고 생각함으로 우리들의 이 행위구원 곧 건설구원 성화구원을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본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알든 모르든 이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주십니다. 그런데 이 기본구원은 본인이 알고 이 구원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알기 전에 하나님이 이 구원을 주셔서 이 구원 주신 지 오랜 후에 비로소 자기가 이 구원 이루는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부름을 받았다” 이렇게 말했고 또 기본구원에 대해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 가지고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그렇게 하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데 건설구원은 이 구원이 다 순서적이고 또 초월적입니다. 초월적으로서 마치 집짓는 그 시공자가 먼저 터가 있어야 되겠고, 또 터를 마련한 다음에는 기초를 해야 되겠고, 기초 하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기둥이 있어야 되겠고, 봇짱이 있어야 되겠고 자꾸 이렇게, 마치 돌담을 쌓듯이 돌 한 개 놓고 또 그 위에 또 돌 한 개 놓고 포개서 놓는 거와 같이 이렇게 건설구원은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돌담을 쌓을 때에 돌 위에 돌을 놓는 것은 힘만 있으면 누구든지 그것을 얼마든지 놓을 수 있지마는 밑에 돌 없이 이 초절적으로 밑에 돌 없이 위에 돌을 놓는다는 것은 이것은 놔지지 않습니다. 밑에 돌 없이 위에 돌을 놓는 것은 그라면 그거는 당글아 매든지 어짜든지 해야 되지 그게 놓아지지는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구원은 돌담 쌓는 거와 같다.

이래서, 하나를 준비하면 그 다음에 또 준비가 되어지고 또 그위에 또 준비가 가해지고 이렇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저 초절적으로 그렇게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지난밤에도 거게 대해서 우리가 많이 익혔습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의 구원은 이 기본구원은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기 때문에 우리는 받기만 받았지 우리가 그것은 힘쓸 필요나 생각할 필요나 염려할 필요가 없고, 부활한 자의 영광이 되는 건설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행함이 필요합니다.

이래서 “너희들이 힘써” “더욱 힘써” 힘쓰라 말을 많이 성경에 해 놨습니다.

이제 힘써야 되는 이 구원은 순서가 있어 가지고서 또 구원에서 구원을 하나 이루면 그 다음에 또 그 다음 구원을 이루고 자꾸 이래서 이 구원이 점점 초월적으로, 이 하나 놓고 또 그 다음에 구원 이루고 또 이루고 자꾸 이렇게 이루어 가는 이 초월적인 구원이지 하나 이룰 구원을 이루지 안하고 그 다음에 넘어가 가지고 이루는 그 구원은 돼지지 않는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것을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높은 산을 올라갈라 할 때에 사람이 힘이 없어도 그저 한 자욱에 많이 떼놓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조금씩 한 뭐 한 치나 두 치나 요래 떼놓는다 할지라도 세월만 지나가면 몇천 메타라도 올라갈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고 그것을 초절해 가지고서 만일 십 메타만 된다 해도, 십메타면 한 서른 자 되는데 십 메타만 된다고 해도 그것을, 초월로 이렇게 한 자욱에 두 자욱 자꾸 이렇게 가면은 천 메타도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십 메타를 단번에 올라갈라고 하면은 십 메타 올라가는 사람은 없다. 오늘도 체육이 이렇게 발달됐다고서 야단을 하지마는 그 체육가들 중에도 한 자욱에 십 메타를 올라가지는 못한다.

한 자욱씩 한 자욱씩 조그매씩 그저 한 치씩이라도 자꾸 이렇게 순서적으로 올라가면 한 치 올라가고 한 치에다 또 한 치 올라가고 또 한 치에다 또 한 치 올라가고 이렇게 하면은 천 메타 아니라 몇 천 메타도 올라갈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 생활은 그 순서가 있는데 일순서를 우리가 이루고 그 다음에 이순서 이루고 또 삼순서 이루고 자꾸 이렇게 해 나가면 구원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고 그것을 순서를 밟지 안하고 일순서는 하지 안하고 이순서 삼순서 사람이 초절적으로 허영과 허욕의 그런 구원 이루는 방편을 가지는 것은 안 된다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래서 지난밤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이 항상 기뻐하는 이 기초를 만들어 놓으면 이 기초 위에 그 7절까지에, 마지막에는 7절에 “그리하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을 그 사람이 얻어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평강이라면은 이는 참 말할 수 없는, 지난밤에 말했지마는 말할 수 없는 그 평강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든지 또 어떤 그 현실을 당해도 항상 기뻐하셨습니다. 또 모든 성도들이 항상 기뻐했습니다.

전도인 컨토너라는 사람은 그 사람이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불란서에 있는 왕이 그것을 막아서 전도하지 못하도록 하니까 그래도 전도하고 또 고문과 고형을 줘도 또 형벌받고 나갔는데 나가면 또 전도하고 이라니까 그것을 전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고문을 다 했습니다.

몸뚱이에다 실을 감아 놓고 기름으로 태워도 보고 또 쇠를 달궈 가지고서 지져도 보고 이래도 그 항상 기뻐하면서 언제든지 복음을 전하고 그 기쁨을 없애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왕이 그 컨토너라는 그 성자의 기쁨을 없애 볼라고서 온갖 고문을 가해도 그 기쁨을 없애지를 못했습니다. 없애지를 못해서 마지막에는, ‘네가 아무리 그리 해도 내가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구원의 기쁨을 네가 없앨 수가 없을 것이다.’ 그 기뻐하고 즐거워하니까 그 구원의 기쁨을 없애 볼라고서 오만 고문과 고형으로 가했습니다. 그러나 없어지지 안하고 더욱 더 기뻐지니까, 기쁘니까 그 사람의 목을 끊어서 마지막에는 죽였습니다.

산다싱이라는 사람도 그가 서장에 가 가지고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 열심히 전하는 것이나 기쁨으로 전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이방 도를 가져왔다 해 가지고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뭐 굉장한 고문과 고형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컷 고문해 놓고 나서 또 내놓으면 또 복음 전하고 또 복음 전하고 이라니까, 한번 고문하는 것은 거게는 열대 지방인데 열대 지방의 그 거머리, 거머리라 하는 것은 참, 거머리는 보면 실나끈 같은 것이 와 가지고서 피를 빨아먹으면 나중에 이 엄지손가락보다 커집니다. 열대 지방의 거머리는 굉장히 독합니다.

우리가 시골에 있을 때 모 심으러 가서 보면 모를 심으면 그 거머리가 똑 실라끈 같은 게 와 가지고서 들어붙어서 잠깐 피를 빨면은 그 몸뚱이가 불룩하게 아주 엄지손가락보다 크게 피를 빨아 가지고서 그래 커집니다. 그러면 그 뒤에 가서 따갑고 뭐 근지럽고 아픈 것이 굉장합니다.

이랬는데, ‘이놈이 이렇게 아무래도 한번 좀 자극을 받아 가지고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좀 불안하게 되도록 해야 되겠는데’ 해서 발가벗겨서 묶어놓고서 거머리를 많이 갖다 부었습니다. 여러 마리를 갖다 부었어. 갖다 부어 놓으니까 이 거머리가 몸에 와 가지고서 그 피를 빠니까 얼마나 해? 뭐 다 그래 피 쪽 다 빠지요. 그래도 그 기쁨이 충만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인친 표를 받고 있다, 성령의 인친 표를 받고 있다.’ 이렇게 하면서 속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아무리 없앨래도 없앨 수 없었습니다.

지난밤에도 말했지마는 6 5 때에 변판원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은 주일학교 반사였는데 그는 참 자기 가정에 박해가 굉장히 많았고 이래서 뭐 굉장한 박해를 당했었습니다. 그랬는데 6 5 때에 인민군들이 그 사람을 붙들고 저 구덤채 잿만당이라고 하는데 그때 사람을 몇십 명을 잡아서 끌고 가 가지고서 같이 죽이는데 그 변판원 선생이 거기 갔어. 갔는데 다 죽고 한 사람이 남아 가지고 그 뒤에 그 소식을 와 전했습니다.

죽일 때에 이래 나무에다가 열십자를 이래 팔을 이래 댕겨서 매고 열십자로 이래 매놓고서 그 앞에서 인민군이, 그 사람은 항상 성경책 가지고 다닙니다.

변판원씨의 성경책을 가지고서 말하기를, 예수 믿다 다, 예수 믿다가 인민군 된 사람들이니까, 이북에서. 그 사람들 성경을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니까.

이제 성경을 가지고서 성경에 있는 구구절수마다,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면서 ‘예수님이 네 죄를 대신해서 죽어서 네 죄가 없어진다는 이런 말을 이런 거짓말을 믿느냐?’ ‘믿습니다.' 이라니까 믿는다 하니까 칼로 가지고서 그 배를 쿡 찔러서 푹 찌르니까 또 물이 쏟아지고 그래도 기쁘고 즐거움으로서, ‘믿습니다.’ 또 나중에 성구를 대면서 ‘영생한다 하는데 이놈아 네가 영생한다는 이 말을 믿나?’ `믿습니다. 영생합니다.’ 성경에 오만 성구를 말하면서 자꾸 몸을 찌르니까 그래도 자꾸 암만 몸에 피는 다 빠졌지마는 물도 다 빠지고 이렇지마는 기쁨이 충만해 가지고 자꾸 이렇게 성구를 ‘믿습니다 믿습니다’ 증거를 하니까 마지막에는 `이놈 속에는 뭐이 들었는고? 뭐이 들어 이런가?’ 하면서 그 뱃구멍 있는 데를 도려서 이만치 구멍이 뚫혔어. 그래 가지고서 마지막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의 기쁨을 없애지를 못했습니다.

기독자들은 이렇게 “항상 기뻐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평강으로 줘 가지고 이래 되는 것인데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 다음에 “모든 사람에게 네가 관용한 것을 알려 줘라” 그 다음에 순서적으로 지난밤에 항상 기뻐하라는 이 토대 위에 건설되는 것이 몇 가지가 건설된다고 했지요? 열 가지가 건설돼. 열 가지가 건설되는데 이것까지 치면은 열한 가지라.

열 가지 건설이 되는데 그 열 가지 건설이 제일 처음에 기초가 되는 항상 기뻐하는 것 이것만 하면은 이호되고, 이호 하면은 삼호되고, 삼호 하면은 사호되고, 사호 하면은 오호되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인데 이러기에 기독자들은 이렇게 이 성경은 차차 차차 이렇게 하라 했는데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라라” 이렇게 순서적으로 신앙 생활 해 가지고서 자라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지 안하고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서 전부가 다 이 초절적으로 초절적 신앙을 가지고 되든지 말든지 제 그저 지식으로 알면 구원이 되는 줄로 알고 입술로만 말하면 구원이 되는 줄 알고 그 실상을 만들라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밤에 말씀해 놨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지금 말하는 것은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이거는 세상에는 항상 기뻐하는 기쁨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항상 기뻐하는 기쁨은 하나도 없어요.

오늘은 저 다른 교회서 온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반사 선생님들을 생각하고 이 말씀을 증거하도록 준비했으면 좋을 건데 지난밤에 증거하던 증거가 돼서 계속적으로 증거합니다.

이런데 반사 선생님들께 하나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밤이든지 낮이든지, 또 젊어서든지 늙어서든지, 전장에서든지 감옥에서든지 뭐 병들었든지 언제든지, 또 죽든지 죽은 다음에 영원 무궁이든지 그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그 기쁨이 세상에 있습니까? 세상에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그런 기쁨이 세상에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오늘 아침에 온 반사 선생님들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이 세상에 있습니까? 하나 그런 것 하나 있거든 하나 말 좀 한번 해 보십시오. 있습니까? 보니까 처녀들 많이 왔는데, 결혼의 첫사랑이라고 굉장히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 기쁘고 즐거운데 그 기쁨과 즐거움은 마지막에 뭘로 화해집니까? 마지막에는 눈물과 고통과, 눈물과 고통과 근심과 한숨으로서 마지막에는 화해지지 안해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것만치 그 마지막에 결과는 하잖은 것으로서 그렇게 배나 몇 배나 하잖은 것으로서 바꾸어지지 항상 기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게 주 안에는 항상 기쁠 것이 있습니다. 늙어도 기쁘고, 죽어도 기쁘고, 심판 앞에 가도 기쁘고, 전쟁 속에도 기쁘고, 고문과 고형 속에도 기쁘고, 변판원 선생같이 예수 믿는다고 잡아서 칼로 찔러도 기쁘고, 사도 도마는 인도에 가 가지고 복음 전하다가 철봉에다 달아 놓고서 철봉으로 뚜드려서 다 낱낱이, 몽둥이로 뚜드려 가지고서 그 피와 살이 전부 산산히 터져 가지고서 퍼져 가지고서 다 분산돼 가지고 그래 순교당했습니다. 그래도 그 도마가 숨을 끊어지기까지는 그 얼굴에 기쁨이 충만했어. 어데서든지 기뻐할 수 있는 이 기쁨이 이것이 우리 기독자들의 구원의 기초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 말을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기쁨, 예수님의 그 기쁨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면 다 가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다시 증거하는 것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밖에는 항상 기쁠 게 없습니다. 젊을 때 기쁜 것은 늙어지면 없어지고, 시작할 때 기쁜 것은 마칠 때는 없어지고, 또 세상에서 날 때의 기쁨은 세상을 떠날 때는 기쁘지 안하고, 만날 때 기쁜 것은 나뉘어질 때는 기쁨이 없어지고, 모두가 다 그거는 다 불완전한 것, 속이는 것, 거짓된 것뿐이지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완전한 것은 없는데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이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말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러니까 주님 안에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항상 기쁠 수 있는 이 기쁨을 세상에 고문과 고형, 고문이라면 아주 그 문초하면서 고생을 주는 것이 고문이요 고형은 또 자기가 문초하면서 형벌 주는 그런 모두 어려움인데 그뭐 단기간의 고문 고형이나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이나 또 자기에게 배고픈 거나 헐벗는 것이나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날이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것이 없다.” 말하는 것도 그런 것들이 도무지 해하지 못하고 한 그런 것이 모든 성도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그 손양원 목사님을 좀 근심되게 해 볼라고 아무리 애를 썼지마는 근심되게 하지를 못했고 그 기쁨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왜? 그들은 다 세상이 모르는 고차원에서 이 기쁨을 취했기 때문에 그 기쁨은 세상이 해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면 항상 기뻐하는 것은 이 기쁨을 찾는 데에는, 이 항상 기쁨을 찾는 데에는 뭘로 찾는다고 했습니까? 녜, 생각으로 찾습니다, 생각. 자꾸 생각하면 찾아집니다.

또 찾는데 그 찾으면 만나고 난 다음에는 찾아 만난 것을 자기 것을 삼을라면은 어떻게 하면 자기 것을 삼을 수가 있습니까? 믿으면 자기 것이 돼집니다. 자꾸 생각하면.

그라면 뭘 생각하느냐? 기본구원 열 가지를 말했습니다. 기본구원 열 가지는 창세 전에 우리는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택함을 받은 것. 그라면 택함을 받았는데 우리 택함 받은, 우리 택함 받은 이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또 예정하신 대로 우리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면 이 역사에 이런 거 온 세계에 하나씩 둘씩 전개되는 모든 그 전개되는 그것들이 누구를 위해서 전개하고 있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선생님들 한번 말해 봐. 인제 지금 말했지. 누구를 위해서 전개하지? 또 모든 존재들이 누구 위해서 창조됐습니까? 말하는 것 같은데. 우리 위해 창조됐어요.

모든 이 우주와 영계에, 물질계와 영계에 모든 순서가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그것이 전부 내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이 예정됐습니다. 또 예정된 그대로 모든 존재가 다 생겨진 모든 존재가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보이는 거 안 보이는 거 모든 우주에 있는 것이나 영계에 있는 것이나 그 전부가 내 구원 위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지어서 존재해 있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삼호 구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그러면 창세 전에 택했으면 우리를 뭐할라고 택했는가? 요 택한 데 대해서 가서 알면 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말해 줄라 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에베소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ㅡ천지를 창조하기 전ㅡ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렇게 이거 읽어 보면은 뭐 굉장한 축복이라.

모든 것이 우리 위해서, 자, 예택에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선택 구원. 선택 구원 얻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순서들을 다 예정하신 그 예정 구원 얻었어. 예정이 나 위해서 있어. 모든 존재들이 나 위해 있어. 그러니까 창조 구원 얻었습니다. 모든 창조가 내 구원 위해 있어.

이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우리의 죄의 형을 대형함으로 대신 형벌 받아 가지고 사죄 줬고, 대신 행함으로 칭의를 줬고, 또 대신 화친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었어. 이렇게 대속을 주셨고, 이라고 난 다음에는 영생하는 중생을 줬어요.

우리가 중생된, 피와 성령으로 중생된 이 중생은 영생하는 중생입니다. 세상에 영생하는 것도 이 생각하면 얼마나 기뻐? 그러니 영생을 이걸 자꾸 생각해 보면은, 영생을 생각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한다’ 이 영생은 아무도 죽이지 못하는 이 영생을 자기가 확실히 믿고 깨닫고 잡아 놓으면 이만해도 염려할 게 없어. 뭐 죽음의 염려는 영생 가진 사람은 없어요. 영생해요.

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어요.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졌어요. 또 우리 성화의 씨를 받았어. 성령과 진리와 피가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보증을 받았어. 이래 가지고서 또 생명의 부활을 우리가 또 받게 돼요.

이러니까 이런 구원은 뭐, 또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 왕직을 가지고서, 이것도 뭐, 제사장직은, 제사장직은 어떤 게 제사장직입니까? 창조주 하나님과 영계와 물질계 이 피조물과 그 사이에서 이 창조주와 피조물 그 사이 조화를 잘 이뤄 가지고서 창조주와 피조물 이 사이에 잘 조화를 이루는 이 중보가 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 예수님께서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잘 조화를 일으켜서 화친케 그렇게 하신 것이 대제사장 예수님의 이 역사입니다. 그라면 이 제사장 선지 왕직을 맡았어.

이게 뭐 이 구원이 얼마나 큰지?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을 성경이 말한 대로 ‘성경이 뭐라 했노?’ 자꾸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우리의 구원을 자꾸 이래 읽어보니까 이 구원이 참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 구원을 자꾸 깨닫고 깨닫고 이래 자꾸 이 구원을 깨달으니까 기쁨이 나와요. 자꾸 생각해 보고 또 성경 상고해 보고 생각해 보고 하니까 이 기쁨이 충만해.

기쁨이 충만해서, 자기가 그저 예수 믿는다 이렇게 하지말고, 예수 믿는다 껍데기로 이래 하지말고 자기가 신구약 성경에 말씀하신 우리의 구원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그런 구원이 있나? 참 그라면 좋겠다.’ 또 성경을 더 보고 이래 생각하니까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하나님 아니신데 이 구원이 실상이다.

실상으로 있다면 어떻겠노? 실상으로 있으면 참 그 구원받으면 좋겠다.’ 나중에 자꾸 더 알아 보니까 ‘이거는 틀림없는 실상이다.’ 자꾸 이래 믿어지고, 믿어지고 하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바의 이 구원을 인해서 자기에게 자꾸 기쁨이 나옵니다. 기쁨이 나와서, 배가 고파도 기쁘고, 가난해도 기쁘고, 욕 얻어먹어도 기쁘고, 천대받아도 기쁘고,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 상대하는 이뭐 돈 때문에 바글바글하고서 지위 권세 때문에 바글바글하고 아글아글하는 그런 저차원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 이제 이 포부가 크니까, 포부가 크니까 그 상대하지 안하는 그런 높은 사람이 되고 큰 사람이 됩니다. 이래서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알려라” 이랬어.

이래 가지고, 그러면 우리 구원은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도 어짜든지 예수님의 대속의 이 구원을 생각하면서 우리 속에 기쁨이 넘치도록 돼야 됩니다. 이거 안 되면 안 돼. 이거 넘치도록 이것부터 해야 돼. 자꾸 생각해 기쁨이 넘쳐야 돼.

기쁨이 넘치니까 아무리 죄가 와도 죄 지을 마음이 없고, 소망의 기쁨이 충만한데.

아무리 원수가 와도 원수 갚을 마음이 없고, 또 자기가 아무리 의로운 봉사를 하다가 피곤해도 피곤해서 나자빠지지 안하고, 이 기쁨이 충만하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의로운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죄되는 일은 아무리 뼈가 뿔라져도 죄짓는 일은 할 수가 없고, 이러니까 망할 일 불의한 일은 이거는 자기가 어떤 일이 있다 해도 하지 안하고 옳은 일 가치 있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래서 이 사람이 되어지니까,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지난밤에는 세밀히 다 많은 시간 증거했지만 오늘 아침에는 벌써 뭐 삼십 분인데 종이 나왔어. 종이 따르릉 나왔어. 이러니까 더 증거하지 못하니까 여러분들이 각자가 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우리에게 대속해 주신 이 구원은 이거는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참 이거는 뭐, 이 우주의 억억만 배도 더 큰데. 이 구원은 뭘로 말할 수 없어. 억억만 배도 더 큰 이 지극히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의 가치를 자꾸 자기가 성경 보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기도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생각하면 성신의 감동이 와 가지고서 이 구원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돼.

기쁨이 충만해서 땅위에 어떤 일이라도 뭐 온 세계가 다 달라들어 가지고서 내 구원을 해친다 할지라도 조그마치도 염려가 없어. 담대도 충만하고 기쁨도 충만하고 아무도 해할 자가 없어.

이러니까 손양원 목사님은 왜정 말년에 아무리 그렇게 일본 사람들이 해도 그 사람의 기쁨을 없애지를 못했어. 판사 앞에 가 가지고서, ‘네가 일본적 기독교를 네가 믿겠느냐?’ 고문하고 고형하다가. 그래 말하기를 ‘자, 내가 물을 터이니까 하나 대답해라.’ 그러니까 판사가 `물어 봐라.' `이 사접시에다 큰 덤바꾸를 담으면은 담을 수 있나 없나?’ ‘그거야 못 담지.' `그러면 담으면 어찌 되느냐?’ ‘담으면 접시가 깨지지.' `그와 같다. 하나님의 이 영광 이 구원의 도를 일본 나라에다 담아 가지고 일본 나라 안에 집어넣을라고 하면은 일본 나라가 바싹 깨지지 집어넣어지지 않는다.’ 그거야 일본 나라 망한다 하니까 얼마나 그때 그러면, 그라면 사형인데 그런데도 담대하고 기쁨이 충만했어.

왜정 신사참배 때 손양원 목사님을 잡아다 감옥에 갖다 놨는데 가둬 놨는데 감옥에 갇혀 가지고 있으면서 그 사람들이 뭐 저거도 못 먹는데 많이 주지를 못했어요. 굶어 죽은 사람 많았어. 이랬는데 물도 조그매 주고 뭐 조그매 주면 조그매 주는 그거 가지고서 거기 같이 있는 갇혀 있는 그 사람들에게, 조그매 주는 그거 가지고도 다른 사람 나눠 주고 섬기고 이라니까, 그라면서 그 기쁨을 유지했어. 이랬는데 나중에 마지막에는, 이랬는데 한번은 간수가 오더니마는 ‘손 목사님, 오늘 저녁에는 뭘 좀 잡수지 마십시오. 와도 물 같은 것 잡수지 마십시오.’ ‘왜?' 이라니까 `오늘 저녁에는 손 목사님을 꺼꾸로 달아놓고 소금물을 코에다 부어 가지고서 그라면 소금물 코에 부으면 안 먹을 수가 없고 자꾸 물을 먹어서 소금물을 먹어서 그 물이 뭐 배가 부르게 되면은 나중에 숨을 못 쉬어 가지고 죽어버립니다. 이라니까 물을 어짜든지 오늘 저녁에는 잡수지 마시오.’ 이랬다 말이오. 그 간수는 믿는 간수니까 이거 손 목사님에게 감화를 받고 이라니까 위해서 그랬어.

그래 손 목사님이 그날 밤에는 떡 모든 사람에게 갇혀 있는 사람에게 ‘오늘 저녁에는 좀 여러분들이 목이 마르지만 그 물을 다 주면 나를 주십시오.’ 이라니까 ‘하, 목사님이 물 달라 하면 드리지요.’ 전부 물 줄라 하는 물을 전부 다 거둬 가지고 다 둘러마셨어. 다 둘러마신 것은 지금 어짜든지 주를 위해서 좀 고생을 더 당할라고. 주를 위해서 고생을 더 당하고 주를 위해서 좀 어려움을 더 당하기를 소원하고 소원하고 있으니까 그 물먹지 말라 하는데 물을 먹어야 고생이 더 많이 될 터이니까 물을 청했다 말이오.

물을 실컷 먹고 가 가지고서 인제 ‘오늘 저녁에는 주를 위해서 참 생명이 끊어지는 이 주님을, 끊어지기까지 주님을 사랑해 보고 주님을 한번 위해 보고 섬겨 보겠다.’ 이 소원을 가지고 떡 가서 그날 밤에는 앉았으니까 오늘 밤에 그래 오라 했다 말이오. 그날 밤에 갔어.

가니까 ‘오늘 밤에는 지금 나를 꺼꾸로 달아놓고서 이제 생명이 끊어지게 할 터인데 생명이 끊어져도 나는 끊어질 때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요동치 않겠다.’ 요것만 결심했어. 요것만 결심해 가지고서 ‘오늘 저녁에 어떤 고문과 고형이 있어도 내가 주님 사랑은 요동치 안해야지.’ 요것만 기도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가 가지고서, 가니까 뭐 전쟁 말 하는데 ‘이제 전쟁은 아무래도 우리 나라가 전쟁은 안 된다. 지기는 진다. 이거 뭐 아무래도 미국하고 하는 전쟁이 우리가 이기지 못하겠다.’ 저거끼리 그 말을 해 놨다 말이오. 그 말을 자꾸 얘기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이 손 목사님이 옆에 있으니까 저거 나라 망한다 전쟁 진다는 그 소리를 저거들이 했으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고문할 마음이 없다 말이요, 고문할 수 없다 말이오. 고문하면 만일 그 입에서 무슨 소리가 튀어 나오면 저거들 다 모가지 끊길 거라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나중에 거기 있다가서 ‘오마이 오로까?’ 손 목사님 있는 줄을 몰랐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벌써 고문할 수 없다 말이오. ‘가라’ 이래서 가 버렸다고.

그러면 어짜든지 사랑하는 자는 주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도 자원해서 자꾸 원하고 이러니까 이런 기쁨이 있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없어지지 안하는 기쁨,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쳐서 사랑할 수 있는 이것이 자꾸 생겨져야 되는데 이것은 성경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또 자기가 깨닫고 믿고 생각하고 깨닫고 믿고 자꾸 이라는 가운데서 이 사람이 되니 항상 기뻐하고, 항상 담대하고, 항상 평안하고, 항상 얼마든지, 얼마든지 사랑과 선으로서 무제한으로 끝까지 할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변화가 돼야 이 구원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이 변화 받는 데는 자꾸 기본구원 열 가지를 자꾸 생각하면 돼져요. 생각하고 믿고 생각하고 믿고 그라면 돼져요.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한 달도 가고, 사도 바울도 삼 년 동안을, 그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에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그 모든 동지 사도들에게 가지 안하고서 삼 년 동안을 아라비아로 갔어. 아라비아로 가 가지고서 이 기쁨을 찾았어.

아라비아로 가 가지고서 예수님의 이 구원을 자꾸 자기가 영감받아 가지고 생각하면서 또 기쁘고 생각하면서 깨닫고 이래 놓으니까 삼 년 지나고 난 다음에 자기는 어떻게 하면 이 주님의 도를 위해서 자기 일생을 순간도 빠지지 안하고 일생 동안을 다 주님을 위해서 살까 하는 이것에 지금 이 소원이 속에 불이 붙으니까 그 불 가지고 나와 가지고서 떠날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다가 마지막에 순교로 세상을 떴습니다.

이러니까 이 기쁨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면 죄도 이기지 못하고 의도 행하지 못하고 복음 운동도 하지 못해요. 이 기쁨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하시는 데에는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고 믿고 생각하고 믿는 데에서 이 일이 이루어지니까 오늘 여게 반사 선생님들 온 분들 이제부터 가 가지고서, 모두 그전에도 다 목사님들이 시켜서 그래 했겠지마는 하나 선물 주는 것은 이제 예수님이 나에게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이 구원을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그냥만 이래 돌아다니며 생각할 게 아니라 밥도 굶고 생각하고 잘 때도 생각하고 쉴새 없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기도해서 내 속에 예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자꾸 속에 불이 붙고 자꾸 불이 붙어져서 이제 남은 여생을 예수님의 피흘리신 운동에 참가하는, 이 복음으로서 인간 구원하는 이 일에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런 사람이 자꾸 되어지도록 그렇게 한번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께서는 공과를 다 외우도록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공과를 꼭 외워야 됩니다. 공과를 외우지 안하면 안 됩니다.

또 하루 삼십 분 미래의 자타의 환난을 위해서 삼십 분 매일 기도하는 거 요거 뽑지 말고 꼭 계속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록에 등록된 수는 팔천육백오십사 명인데 이 외에 등록하지 안한 사람들도 다 등록하셔서, 매일 삼십 분 기도는 꼭 빠지면 안 됩니다. 빠지면 앞으로 환난 이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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