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크심과 사랑과 우리의 소망


선지자선교회 1983년 11월 23일 수새

 

본문 : 눅 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더라'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인자라고 한 것입니다. 구약에는 사람의 그 연약성을 나타낼 때에 인자라 이렇게  말을 한 곳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인자라고는 예수님만  말씀했습니다. 구약에서 인자라는 말은 사람은 모든 면이 무지하고 무능하고  가난하고 아주 참 형언 못 할 만침 그 사람의 약한 점을 말할 때에 인자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인자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극히 크신 분으로서  모든 것을 다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다 내어 놓으셔서 하나도 없는 자 됐다  하는 뜻을 하나 가르치고,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지극히 높으신, 지극히  강하신, 지극히 영광스러우신, 지극히 두려우신 그 모든 것을 내 놔서 하나도  없는 자가 되었다 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둘째는 이러므로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주님이 내어 놓으신 그 모든 무한하고 충만함을 그에게 다  주신다 하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인자라 말은 지극 히 부요하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난해지셨다, 이 가난해지심은 주님을 바라보는 자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가난해지셨다 그 뜻을 나타내어서 인자라 말한  것입니다.

 그 '인자가 올 때에' 그 말은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온갖 그 무한을 우리  위해서 내어 놓으시고 가난해지시기까지 하셔서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는데 이  공로를 바라보는 자는 그에게 모든 것이 피조물이면서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이렇게 지극히 존영해지는 이것을 하나님이 주실라고 이렇게 공로를 베푸시고 이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이 하나님이라 그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오는데,  이렇게 큰, 우리에게 소망을 가지시고, 은혜를 가지시고 오시는데, 이분이  이렇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영원토록 충만케 하시기 위해서 오시는데 '믿는 자를  보겠느냐' 그 때에 믿는자를 보겠느냐, 인정하고 시키는 그대로 하는 자를  보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극히 큰 역사를 성경에  기록해 주셨는데, 계약해 주셨는데-구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 계약했다는  말이고 신약은 다시, 구약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 구약에 계약한 그 계약을 새로 더 또 똑똑히 세밀히 우리에게 계약을 써서 준  그 계약이 신약입니다. 약이라 한 말은 약속 약(約)자입니다. 구약은 처음에  약속으로 선포한 것이고, 신약은 또 그 후에 약속으로 선포한 것을 가리켜서  신약이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두번이나, 다른 약속은 아니고, 처음  약속이 깨닫는 사람은 그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것이데 또 사람이 둔해서  어두워져서 구별 못 하는 것을 더 똑똑히 알려 주기 위해서 새로 그 계약을 다시  선포한 것이 신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으로 신약을 깨달을 수 있고  신약으로 구약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구약만으로서는 인간이 깨닫지 못할  것을 또 신약으로 깨닫고 신약만 보고 깨닫지 못한 것을 구약을 보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만 필요하니까 신약만 보고 어떤 사람은 구약만  봅니다. 이래서 설교하는 사람들도 구약만 설교하게 되기도 쉽고 신약만  설교하게 되기 쉬운데 그러면 안 됩니다. 구약과 신약을 다 겸해서 설교를 해야  되겠습니다.-이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신 이 약속을 인정하고 이대로 지켜  행하는 자를 보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뜻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합시다.

인자가 올 때에, 이렇게 큰 부자가, 무한히 충만하신, 분이 충만한 것을 이것을  줄라고 왔는데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을 자가 있느냐 인정하고 받을 자가 있느냐  하는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고, 또 이렇게 큰 사랑을 가지시고 큰것을 주실려고  오시는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정하는 자를  보겠느냐 그 분의 지극히 크심.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대해서  사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 생각이 나오게 되고 생각이  나오면 거기에는 평안과 기쁨과 담력입니다. 우리가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하나님을 사모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이 곧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하셨나 먼저 하나님을 사모한 것이,  사모할 하나님이,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 다 희생해서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또 하나님과 화친을 주신 이 사실을 자기가 새김질해서 생각하므로 이제,  이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됐고 나의 주가 됐고 또  아버지가 되시고 주가 되신 이분이 어떤 분인지 몰랐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가 깨닫게 됐습니다. 깨닫게 된 그분이 영원 자존하신  분입니다. 영원히 스스로 계신 분이요, 아무도 아무것도 없을 때에 홀로 계신  분이요, 그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요, 예정하신 분이요, 지금도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크나 작으나 모든 것을 혼자 예정하신대로 주권적으로  섭리도 하시고 그런 것 또 재창조도 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이 하나님이  이런 일을 무엇 때문에 했느냐?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당신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당신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를  만드시려는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선한 목적입니다.

당신과 꼭 같은 자를 만드실려고 하는 이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운영하십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의 사랑의  지극히 크심과 하나님의 그 자체의 지혜와 능력의 크심과 또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하시는 이 섭리가 지극히 크심,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 지극히 큼, 이 사실을  내가 믿는 자를 보겠느냐 이 사실을. 이렇게 하나님이 지극히 큰 사랑으로  지극히 큰 존재가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시고 지극히 큰 섭리와 역사  모든 이것들을 구비시켜 당신이 없는 가운데에서 챵조하셔 가지고 이렇게 구속  역사를 섭리하시는 이 광대한 이 사실을 믿는 자를 보겠느냐? 그래서, '인자가  올 때에' 이렇게 이 크신 분이 이 모든 것을 주어서 우리를 부요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오시는데 오시는 이 분을 보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크심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과 이  소망을 받은 우리와 이 소망을 받은 우리가 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그  아주 잔인하고 강팎하고 완패하고 교만하고 무례한 그 법관도 이렇게 듣기  싫지마는 자주 와서 말하니까 이 자주 말하는 것이 귀찮아서도 들어 줬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는, 이것을 원하고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이렇게 기다리고  계시고 계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이 사실을 믿는 자를 보겠느냐 이 탄식하는  소리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인자가 올 때에 이 사실을 믿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뭐이 제일 중요한고 하니 낙망치  않게 하기 위해서 비유하셨다, 낙망하는 것.

 우리가 과거를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자기가 무엇을 이렇게 하나님에게  구하다가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이 그것이 분명히 성경적은 성경적인데, 성경에서  구하라고 했고 또 그런 것은 구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하나님에게 구해야 되는  건데 하나님에게 이거 구할 때에, 자기가 무엇을 하나님에게 성경대로 구합니다.

성경에 이런 것은 구해라 내가 주시겠다 하는 그 분명히 성경에 계약된 그런  것이라도 우리가 기도하다가 그것이 좀 될 것같이 보여지면 아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가보다 그래 가지고서 우리가 또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이라다가 그 일이  안될 것같이 보여지면 그만 낙망하고 안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자기의 주관을 부인해야 이 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자기 주관을  부인해야. 자기 마음에 되겠다 싶어서 기도하는 그 기도는 언제든지 자기 주관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불탈 것이요 그거는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기도는 성령과 진리가 기도해야 그 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성령도  진리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우리 보기에, 우리 생각에, 우리가  눈치를 채 볼 때에, 우리가 이 모든 환경이나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에 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 이렇게 생각이 되어질 때에는 그때는 내 주관에  맞도록 환경을 베풀어 주시니까 우리가 믿음이 생겨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믿음이 생겨 기도하는 그 믿음이 그것이 다 우리의 주관에서 생겨져  나온 것이요, 또 우리 주관은 어디서 생겼는가? 그 주관은 환경을 보니까 그  주관이 생겨겼습니다. 환경에서 자기 주관이 생겼고 주관에서 그 믿음이 생겨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인적 요소요 이것은 아무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기도하는 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이렇게 기도를 하다가 차차 차차 하나님께서 그  현실이라는 그 현실을 주셔서 그 현실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는구나 안 들어 주시는가 보다 안 들어 주실런가보다 자기 보기에  도무지 기도해도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시겠다 안 들어 주시는가보다 이렇게  보여지는 그것이 자기 주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에 안되겠다 안  들어 주신다 내 기도는 헛일이다 안 들어 주신다 안 되겠다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시는 것이 분명하다 하는 그것이, 그렇게 보여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주관입니까 성령의 감화입니까? 대답해 보십시요. 저  뒤에 대답해 보십시요. 자기 주관입니까? 주관으로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녜. 그게 자기 주관입니다. 자기 주관에 이제는 안 들어 주시는  것 같다 하는 것은 자기 주관으로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가 헛일이다 하는  것으로 보여지도록 하나님이 자꾸 그렇게 섭리하십니다. 자꾸 그리 섭리해서  이제는 기도를 그만 말아야 되겠다 기도할 필요없고 그만 안 들어 주신다 내  기도는 헛일이다 할 그때에 자기 가지고 낙망을 하면은, 그 때에 기도 안 하면  소용없다 내 기도는 안 들으신다 아주 낙망이 되는 그때는 자기의 주관이 그렇게  낙망하기 때문에 그때는 무엇이 낙망해서 기도를 중단합니까? 기도 중단한 자가  누구입니까?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기도 중단한 자가 누구입니까?  자기의 주관입니까 하나님의 성신의 감동입니까? 자기 주관이 이제는 손을 떼는  때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주관이 손을 떼는 때입니다. 자기 주관에서는  이제는 안 된다 하기 때문에, 싶으기 때문에 이제는 기도해야 소용없다, 자기  주관은 이제는 기도하는 일을 그만 그만둡니다. 기도하는 일을 그만두고, 또  악령은 요렇게 꼬여 가지고서 너 기도해야 소용없다 해서 우리 기도를  그만하라고, 하지 말라고, 그만 낙망하라고, 하지 말라고 이렇게 살살 우리를  꾀우는데 내가 낙망했으면 악령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성공을 했습니까 성공  안했습니까? 성공했지요. 악령이 이제는 저 할일 다 해서 성공 다 했어. 악령은  성공 다 했고, 또 나는 낙망해서 그만 기도하는 것 다 끝났고 그라고 난 다음에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 산기도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라고  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기도하는 것은, 그 다음에 이제 자기가 기도하는 그  기도는 자기 주관 기도겠습니까, 자기 주관은 다 낙망 다 해 버리고 말았는데  이제 새로 기도하는 그것은 자기 주관 기도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셔서  기도하는 객관 역사의 기도입니까? 객관 역사의 기도입니다. 거기에서 기도가  비로소 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그 기도하게 하는 것은  악령이겠습니까 성령이겠습니까? 성령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때에 자기에게  그 소망이 보여지는, 보여지는 그때에는 우리가 힘쓸 것이 뭐이냐? 내주관이  지금 이렇게 힘을 쓰고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놈은 저짓부리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이 들어서 이제 보니까 아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게  분명하다 요렇게 보여지니까 기도하는 그놈을 없앨라고 애를 씁니다. 내가 이제  보여지니까. 이놈아 네가 기도하지 않느냐 보여지니까 기도하지 않느냐 만일 안  보여지고 희망이 없게 보이면 기도 안할 것 아니냐, 보여지는 그놈을 죽여서  보여진다고 기도하고 보여지지 안하니까 네가 어떤, 믿지 안하고 낙망을 하고서  이제는 절대 내 기도는 듣지 안하신다, 절대를 붙일 만큼 네가 이 기도는  소용없다고 그렇게 해도 나는 믿겠다 할 때 그것을 그때부터 만듭니다. 그때부터  이제는, 낙망이 소망으로 지금 아주, 기도할 그 소망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그  소망을 -이 보이니까, 그 소망이 보이니까 기도하는 그 기도를 할 때에, 내가  소망이 보이니까 기도하는 요거를 가지고 기도하는 줄 아느냐? 어떤 낙망을 줘  봐라 어떤 낙망이 와도 기도하겠다? 그때부터 낙망이 오고 난 너머, 낙망 너머  기도를 할라고 애를 씁니다. 낙망 너머 기도를 할라고 애를 써서 기도할 때에 그  기도는 이제, 낙망 너머 있는 기도를 할라고 애를 써서, 주님이여 나는  믿습니다. 내게 하나님께서 섭리해 가지고서 절대 안 듣는다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말하고, 뭐 사람으로 말하고, 내 형편으로 오히려 기도해서 달라  하니까 뺏들어 가 버리고, 있기를 원하니까 되기를 원하니까 정 안돼 버리고,  아무리 한다 하더라도, 형편이 이것이 도리어 이루어지기를 원했는데 도리어  깨지고, 또 내가 얻기를 원했는데 도로 없어져 버리고 이렇게 해서 어느  지경까지 갈지라도 나는 그거 믿는 거 아니고 당신이 나에게 구하라 주시리라고  하신 요 계약 요걸 믿습니다. 내가 계약 요걸 믿고 내가 기도합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내게 대해서 기도할 때에 믿을 수 없도록, 이제는 믿을 수 없도록,  기도하는 것이 헛일이라는 것으로서 당신의 그 능력을 가지고 어떤 환경을  만들어서 나로 하여금 이제는 기도하는 걸 '내 기도는 안 들으신다.' 믿을 수  없도록 그렇게 환경을 당신의 능력으로 만들어 보십시요, 능력으로 만들어도  당신이 능력으로 역사하는 그거보다도 나에게 공공하게 선포한 이 계약은 더  권위있는 것을 내가 인정합니다. 이 약속한 이 약속에 신실한 하나님이 나와  계약했기 때문에 요 계약 조건을 내가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경 주위 그걸  믿는 것이 아니라 계약 조건을 내가 믿습니다. 요것이 강하게 이루어졌을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를 안할수 가 없는 것입니다. 듣지를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안 들으면 당신의 계약에 위약자이니까 당신이 계약에 위약자면  우리를 어떻게 계약에 위약했다고 어떻게 심판하시겠습니까? 계약을 안 들을 수  없습니다. 요만큼 그 계약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계약적으로, 법적으로 안 들을 수 없는 계약 선포가 돼 가지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주관을 다 버리고 당신의 계약을, 당신의  선포를, 당신의 그 본질과 본성의 진실함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이 더  강한 하나님의 요소로 기도하는 걸 당신이 원하신다 그 말이요. 그럴 때에, 모든  환경이 그럴 때에 주여 아무리 환경이 이래도 당신은 나에게 줘야 됩니다. 나는  줄 것을 내가 바라고 믿습니다. 왜? 계약을 선포했기 때문에 내가 계약 의지하지  내 환경에 볼 때에 이 계약대로 내게는 안 된다 하는 환경이 어떤 강한, 우주에  어떤 강한 환경이 와도 당신이 나에게 계약한 그 계약을 이 환경 모든 것보다 더  믿습니다. 하는 요 믿음은 온 세상을 이깁니다. 요 기도는 온 세상을 이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낙망이라는 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과거에 실패한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낙망에 대해서 오늘 아침에  간단하게 말씀하신 요 도리를 밝히 깨닫고, 우리는 낙망이 보일수록 더  소망하고, 이제는 전혀 절망이다 할 때에, 절망이다 할 때에 그 환경을 보고서  환경이 이러니까 이제는 절망이다 하는 그것은 인간들이나 세상이 움직여 가지고  나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걸 누가 인식 시키지요?  우리를 낙망하게 하는 것은 누가 인식시켜 줍니까? 저 ○○○씨. 세상이  인식시켜 주지요. 세상이, 세상 인간이, 모든 모든 사건들이, 모든 이 사회가  나에게 이제는 안 된다 이렇게 낙망을 인식시켜 줍니다. 인식시켜 줄 때에, 그  세상이 나에게 낙망하라고 인식시켜 주는, 인식시켜 주는 그 인식보다 하나님의  계약은 더 초월한 강한 능력을 가진 것을 믿고, 온 세상이 다, 너 해야  헛일이다. 너는 그 기도는 하지 말아라 그 소망은 하지 말아라. 온 세상이 다  달라 들어 가지고 그와같이 할지라도, 하나님이 심지어 천사를 보내 가지고 야  너 그 기도는 하지 말아라 거기에 대해서는 네가 소망하지 말아라 이렇게 하고  환경을 어떻게 만든다 할지라도, 천사가 말하고 사람이 온 세상이 그와같이  말해도 나는, 온 세상이 나에게 낙망하라고 천사가 와 가지고 낙망하구로 해도  그것보다도 신실한 하나님이 계약 선포했기 때문에 내가 계약 믿는 계약이, 이  계약이 나는 더 권위있고 신실하기 때문에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나는 낙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줘야 되지 안 주고 되느냐, 구하라 주실 것이라 하지 않했느냐  하는 요런 믿음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낙망은 세상이 주는 것인데 세상보다 하나님을 크다 하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런고로, 우리가 기도에 낙망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 말씀을 굳게 잡고,  우리가, 마귀라는 놈이 낙망하라 하니까, 세상이 낙망하라 하니까, 하나님이 네  믿음이 얼마나 있는가 보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낙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을  떡 주시니까 아무래도 내 기도는 안 들으시는 것 같다 이제 그만 말아야 되겠다,  이제는 나는 기도 안 하겠다, 해야 뭐 소용없는데, 인자 보니까 모든 형편을  보니 하나님이 내 기도 듣지 안하신다, 점점 더 악화되고 점점 악화돼 나가서 온  세상이 부인케 할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이 날 부인케 하고, 하나님이 부인케 하고  천사를 보내서 부인케 하고, 하나님이 이런 섭리로 부인케 하고,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이 다 부인케 하고 해도 이 모든 부인을 꿰뚫고 올라갈 수 있는 이 소망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계약했는데, 하나님이 계약했는데 하나님이 계약했는데  계약한 것을 이루지 안하시면 하나님이 당신의 계약을 어긴 그 모든 것을 정죄할  수가 없지.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죄를 저질지 않습니다. 그럴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실패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이 낙망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 말씀을 굳게 잡습시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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