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찬송가는 답이 아니다

2016.01.10 19:07

선지자 조회 수:

   통일 찬송가는 답이 아니다

  선지자선교회

: 강신우 교수

 

새로 편집 발행된 찬송가가 문제가 많아 다시 발행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 전에 통일 찬송가에 대해 쓴 칼럼에 이어 그것을 더 보강하는 차원의 글을 쓰려고 생각하였다.

 

선교 초기 때부터 장로교와 감리교 사이에 찬송가 통합에 노력하여 온 이상한 전통이 한국교회에 있어 왔다.

 

선교초기에 장로교와 감리교 더 나가 같은 장로교와도 선교를 하는 데 많은 경쟁이 있어 왔다. 이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를 완화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선교구역을 나누어 선교를 하자는 서로간의 합의가 있었다. 이 합의 결과 영호남지역에서 감리교회의 교세가 약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로교와 감리교의 격한 경쟁관계를 약화시켜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키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선교 초기 찬송가의 통합과 분열은 장로교와 감리교 두 교단 사이에서 있어 왔다.

 

한국교회 초기의 대표적인 찬송가인 장로교회의 찬양가(1894), 감리교회의 찬미가(1896) 그리고 평양을 중심으로 한 장로교의 찬셩시(1895)가 발행되어 사용되었다. 이에 두 교단은 찬송가를 하나로 통합하자고 합의하고 찬숑가(1908)을 발행하여 사용하였다. 찬숑가는 한국 교회의 최초의 통합된 찬송가이다.

 

그 후에 이 찬숑가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수준 높은 찬송가로 편찬하자는 의도 아래 신정 찬송가(1931)를 감리교와 장로교가 함께 발행하였다. 신정 찬송가는 두 번째 통합된 찬송가이다. 이에 장로교는 신정 찬송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신편 찬송가(1935)를 발행하여 사용하면서 찬송가 통합은 깨어지게 되었다.

 

이때까지 찬송가의 편집과 발행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신정 찬송가의 서문에 편집 위원장인 아펜셀러는 미래에 한국인 전문인들이 나와서 이 보다 더 발전된 찬송가를 만들어 달라는 그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문제가 있다. 장로교와 감리교는 교리가 다른 것은 물론 찬송가의 전통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로교회는 시편을 운율화한 시편가에서 시작되어 아이작 와츠(Isaac Watts 1674-1748 영국 찬송의 아버지로 불리 우며, 개혁교회의 목사이다.)의 객관적 내용의 이성적인 찬송이라면, 감리교회는 찰스 웨슬레(Charles Wesley 1707-1788 요한 웨슬레의 동생)의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내용으로 하는 아르미니우스적이며 감성적 찬송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두 교단이 하나의 찬송가로 발행하고 사용하였던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편, 그 당시에 부흥성회에 열심이던 성결교회의 교세가 확장되었고, 그들이 사용하던 부흥 성가(1930)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이 부흥성가는 서문에 언급되었듯이 유럽과 미국의 부흥회와 전도회에서 부르는 복음가을 주축으로 편집 한 찬송가로 필자의 논문에 분석된 기록에 의하면 79.8%의 복음가를 가지고 있는 찬송가였다.

 

여기에 앞선 찬송가들의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반에 사용되던 복음가의 백분율을 보면 찬양가(1894) 24%, 찬숑가(1908) 39%, 신정 찬송가(1931) 42%, 신편 찬송가(1935) 41.5%, 부흥성가(1930) 79.8% 이다. (: 찬송과 예배의 이론과 실제:호산나 음악사 / 강신우 258-9)

 

대한민국이 건국 한 후에 다시 1930년대에 발행된 3개의 찬송가를 각 교파가 따로 사용하는 데에 불편을 느끼고 하나의 찬송가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여 합동 찬송가(1949)가 발행되었다.

 

합동 찬송가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한국인들이 편집하여 발행한 최초의 찬송가로 필자는 알고 있다. 이 찬송가는 교세가 커진 성결교회와 기존의 장로교와, 감리교회가 함께한 찬송가이다.

 

이 찬송가는 앞서 통합하여 편집 발행된 찬송가(찬숑가/19030 과 신정 찬송가/1931)와는 달리 편찬의 원칙 없이 장로교의 신편 찬송가, 감리교의 신정 찬송가 그리고 성결교회의 부흥성가를 합본하여 만든 찬송가로 그 내용이 바로 그 전에 사용하던 신편이나 신정 찬송가에 비하여 수준이 크게 떨어진 찬송가가 되게 되었다.

 

부산에 기반을 둔 고려파 장로교는 이 합동 찬송가가 교회 연합운동의 결과물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전에 사용하던 장로교회 찬송가인 신편 찬송가를 계속 사용하였다. 이로 인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합동 찬송가는 하나의 통합된 찬송가가 아닌 것이 되었다.

 

합동 찬송가의 사용을 거부하고 신편 찬송가를 사용하던 고려파 장로교회와 통합측 장로교회가 연합하여 전에 사용하던 신편 찬송가를 중심으로, 1959년 발행된 청년 찬송가(생명의 말씀사)에서 일부 찬송들을 채택하여 새 찬송가(1962)을 발행하였다.

 

새 찬송가는 전에 사용하던 합동 찬송가에 비하여 월등히 수준 높은 한국 교회 보수파 장로교회 찬송가이다.

 

한편, 이에 자극을 받은 중도와 진보 성향의 교회(합동측 장로교회, 감리교회, 기독교 장로교회, 성결교회)들이 함께하여 합동 찬송가를 중심으로 이를 개혁한 개편 찬송가(1967)를 발행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 개편 찬송가를 한국 찬송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찬송가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개편 찬송가는 각계의 전문 위원들이 참여하였고 확실한 개편의 내용을 제시한 것이 신정 찬송가를 닮았다.

 

여기에서 필자는 개편 찬송가의 발행은 새 찬송가의 출현으로 인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새 찬송가와의 경쟁심의 발동으로 그 보다 더 나은 찬송가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이는 찬송가인 것이다. 항상 선의의 경쟁은 좋은 결과를 가져 온 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는 찬송가가 교파마다 달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곤 한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교파마다 교리가 다르고, 찬송에 대한 전통이 다르기 때문이며, 다른 이유는 서로 비교 발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찬송가가 발행되어야 많은 수의 찬송을 저장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0년 후반서 1980년에에 이르는 기간에 보수 성향의 장로교회는 새 찬송가, 중도, 진보 성향의 교회는 개편 찬송가, 집회 성향의 순복음교회와 침례교회 교회는 합동 찬송가를 쓰는 아주 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새 찬송가는 장로교 찬송가다운 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개편 찬송가는 전에 없었던 우수한 찬송가들이 많이 보강되었으며 미국 복음가의 수를 과감하게 줄인 것이다. 합동 찬송가는 익숙한 찬송과 복음가가 많아 집회 성향의 교회에서 사용하기에 알맞은 찬송가이다.

 

어찌 보면 이 시대가 한국 찬송가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한국교회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서 한국 찬송가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하나는 여의도를 비롯한 광장에서의 대형 집회이다.

 

그 당시 한국교회 부흥의 열기는 빌리 그레함 목사와 같은 부흥사들의 집회와 통일교 집회에 대항하는 대형 집회가 여의도 광장에서 자주 있던 때이다. 이러한 집회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새 찬송가 몇 장, 개편 찬송가 몇 장, 합동 찬송가 몇 장 하는 것은 큰 불편이었다. 단지 이 불편을 해소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찬송가 통합의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고 필자는 본다.

 

다른 하나는 순복음교회의 부흥을 꼽을 수 있다.

 

초기의 성결교회는 부흥운동으로 교세를 확장하였고 그 뒤에 기성교단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어 지금에는 장로교나 감리교와 같은 기성 교회와 구분이 안 되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그 이유는 기성 교단들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나간 결과가 아닌가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순복음교회의 교세가 커지고 성장하는데 자극을 받은 기성 교회들이 전과는 달리 교회 질적 성숙을 포기 하고 순복음교회와 수적 경쟁을 하였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신자의 수를 늘리는 데에 집중하면서 일부 기성 교회는 순복음교회와 같이 대형화는 되었으나 교회문화의 내용과 수준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성결교회가 기성 교회의 성향으로 변화한 과정과는 달리 오히려 기성 교회 가운데 많은 교회가 집회성향의 교회로 변질되어가는 길을 가면서 찬송가라는 교회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깊은 나락으로 함께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찬송이라는 문화 유산은 경건주의나 복음주의와 같은 시기에 좋은 찬송이 나타나거나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다행히 영국의 복음주의는 찰스 웨슬레라는 걸출한 찬송 작가가 있어 예외적인 면이 있기는 하나, 여기에는 이에 대항하는 옥스포드운동(Oxford Movement)이라는 교회 문화를 강조하였던 운동이 있어 신앙과 문화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필자의 견해는 순복음교회가 한국교회의 성장이라는 동력을 제공하였으나 기성 교단은 성숙이라는 교회 내적 발전을 포기하여 현재 한국교회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얼마 전 필자가 사는 이곳의 한국 서점에 우연히 들렸다가 새로 발행된 찬송가를 구입하여 그 내용을 보게 되었다.

 

어느 분이 우리 민화(옛날 가정집 벽에 흔히 붙어 있던 민속화)에 담긴 풍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이 났다. 우리 민화는무서운 호랑이를 재미있고 우수꽝스럽게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가 어렸을 때에 본 고양이를 닮은듯한 수줍은 모양의 호랑이 그림이 기억이 났다.

 

필자가 그 찬송가을 펼쳐보면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통일 찬송가의 내용은 필자가 접한 한국 찬송가 가운데 최악이라 말해도 과한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그 가운데 일부 한국 저자의 찬송시와 찬송곡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이하여서 경악을 금 할 수가 없었다. 찬송이라는 시문학과 찬송 곡조을 몰라도 이렇게 모르나 하는 생각에서이다.

 

찬송시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마틴 루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서 신학자의 한 사람이며, 영국 찬송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이작 와츠는 음악가와 비교하면,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이고,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동생, 찰스 웨슬레는 슈베르트와 같은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작가들도 성서와 신학 그리고 시 문학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찬송곡조를 작곡하거나 편곡한 대부분의 음악가들도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일 뿐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음악가들이다. 음악 사전 가운데 두꺼운 20권의 책으로 쓰여진 그로브(Grove) 사전은 인명 위주의 음악 사전인데 그 책에 이름과 몇 줄의 설명만 있어도 한 시대를 풍미하던 작곡가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찬송의 작곡가들 역시 유능한 음악가들이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아직 그 사전에 한국인 작곡가의 이름이 없다고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찬송시와 곡조가 실리게 되었는지 모르나 선발과 편집 과정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다른 말로하자면 어찌 이런 수준의 찬송가가 21세기 한국에서 발행되었나하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필자가 1981년에 발행된 최초의 통일 찬송가에 대하여 필자의 책 찬송과 예배의 이론과 실제”(229-242)에 자세히 분석하였다. 그 때에도 가슴이 먹먹했는데 지금은 경악 할 수준인 것이다.

 

앞선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통일 찬송가을 발행한 가장 큰 이유는 여러 교회들이 모이는 집회에서 단지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인데, 이 찬송가의 통일이 무슨 큰 신학적 의미가 있는듯한 느낌을 받도록 그릇되게 이끌었다. 하기야 통일 찬송가가 처음 발행되었을 때에 어느 유명 대학교의 신학과 노 교수는 전통이 깊은 기독교 국가에서 마저 이루지 못한 교회 연합의 정신을 한국교회가 이뤄냈다는 글을 읽고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인 듯 하다(?) 어느 나라의 교회도 찬송가를 하나로 통일한 나라는 없으며 교파마다 다른 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은 상식이다.

 

여기서 통일 찬송가라는 말의 선택 역시 의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에게 통일이란 말은 꿈에도 소원은 통일인 것이다. 어찌 그 누가 통일이란 말에 어깃장을 놓을 수 있으리오!

 

통일 찬송가 편집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는 교인들이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찬송으로 포퓰리즘도 이런 포퓰리즘은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 향한 것이 아닌 사람 중심이고, 전혀 찬송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이 없는 사람(초 신자)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 다른 헤프닝은 이번 찬송가 편집을 마치고 그 찬송가를 들고 캐나다에 가서 박재훈 목사님에게 보여주고 인정을 받아 왔다는 신문 기사이다. 박재훈 목사님은 교회 음악계의 어른이시고 존경 받는 분임은 분명하나 그 분이 찬송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가지신 분인지 알 수 없고 책을 들고 먼 길을 찾아온 사람에게 덕담 외에 할 말이 더 있겠나 하는 것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찬송인옛과 현대의 찬송”(Hymns Ancient and Modern)영국 찬송”(English Hymnal)은 당대의 최고의 찬송시의 권위자 그리고 최고의 음악가인 윌리암 헨리 몽크(William Henry Monk)20세기 영국 최고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인 랄프 본 윌리암스(Ralph Vaughn Williams)가 음악편집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위대한 음악가이며 아울러 찬송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사람들로 그들이 작곡하거나 편곡한 찬송 곡조들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여기서 필자의 의견을 끝으로 마치려 한다.

 

1. 찬송가는 각 교파의 교리와 찬송가 전통에 따라 교파마다 발행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찬송가를 발행하여 사용하면 다양하고 많은 수의 찬송이 소개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찬송의 경우만 보더라도 약 1만개의 찬송이 정리되어 있는 데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찬송이 있겠는지 상상하여 보라!

 

2. 이제 외국과 같이 찬송가를 교회마다 비치하여 교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어야 하고, 예배 때 사용하기 위해 교인들이 찬송가를 가지고 다니는 수고 역시 덜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찬송가 발행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오직 찬송가 발행과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할 것이다. 찬송가로 인한 수익금이 지금 한국 찬송가의 만악의 근원이 아닌지..., 한편, 찬송가의 가격을 낮추기 위함인지 몰라도 너무 조잡한 디자인과 제본이 그 내용과도 흡사하다. 외국 찬송가의 수준으로 찬송가의 내용은 물론 제본이 튼튼하고 품위가 있어야 하겠다.

 

3. 새로운 찬송가를 채택하기 전에 찬송가 부록을 만들어 새로운 찬송들을 미리 소개하고 교육한 뒤에 다음에 발행되는 새로운 찬송가에 채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4. 개편 찬송가(1967)는 필자가 한국에서 발행된 찬송가 가운데 최고의 찬송가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 찬송가의 우수한 찬송, 회중이 모르는 새로운 찬송들을 교육하지 않아 회중이 부르지 않은 결과, 그 가치를 잃은 것이다. 회중이 잘 모르거나 새로운 찬송의 교육은 찬송가 발행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이다.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찬송은 성경의 내용을 시적으로 재 구성한 것으로 이에 대한 교육 없이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