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

 

1985. 1. 23. 밤

 

본문 : 신명기 28장 1절∼6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제 본문을 듣고 좀 성경을 근거해서 깨닫는 그런 일을 하도록 합시다. '네가'  이것은 구속 받은 성도들을 가리켜서 네라고 말씀했는데 여게는 너희라고 한  것과 네라고 한 것과는 다릅니다. '네가' 하는 것은 개인을 상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네 하나님' 하는 말씀은 곧 내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은 곧 내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을 구약 성경에서 보면은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 육체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고 이렇게 말씀하신 데는 많지를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흠이 없는  신앙을 가졌을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조금만 거리낌이 있어도 그만 즉시 모세에게도 네 백성이라고 말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지를 안했습니다. 그것은 구약 때는 예수님을 모형해서 예표로  짐승으로 속죄제를 드리는 때인데 짐승으로 속죄제를 드리나 흠 없는 백성들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때에 그들이 지공 지성하신 하나님 앞에 정죄나  멸망을 받지 아니할 수 있는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내  백성이라 이렇게 말씀했고 조그만침만 홈이 있어도 하나님은 멀리 피해서 모세야  네 백성이라고 이렇게 말했고 이스라엘이라 이렇게 말씀했지 내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내 백성이라 이 말씀을 하시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얼마나 까다롭고 얼마나 철두  철미합니다.

 그러기에 구약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가 그만 하나님과  상관이 끊어졌다가 이렇게 아주 중복적으로 관계를 가졌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해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내 백성이라 이렇게 마음 놓고  발표하신 일이 많지를 못합니다. 아주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시는 중복될 수 없는 단번 화목제를  드려서 예수님이 친히 대제사장 되시고 또 속죄 제물이 되셔 가지고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이후부터의 신약 교회의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구속받은 그 중생된 자들의 하나님이 되어 계십니다. 그런고로 이는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지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이라 말은 곧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신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된 것은 창조주가 내 하나님이라 말이요, 전지  저능자가 내 하나님이라 말이요, 대주재자. 주권자.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 내  하나님이라는 말업니다. 하나님이라는 그 이름으로 나타날 때 에는 어떤 때에  그런고 하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지신 그 무한한 충만한 것을 은혜로 주시는  자를 나타낼 때에 하나님이라 이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 자존자이신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그 뜻 만이 아니고 하나님이라 할  때에는 그분이 창조주시요. 모든 주권자시요, 또 모든 것을 은혜로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그 면을 나타낼 때에 하나님 이라 그렇게 표시하셨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내 하나님된 것은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나는 내것이 됐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내것이 됐다, 하나님은 당신의 가지신 모든  것을 다 내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주시도록 되어 있다. 하는 말입니다. '네  하나님' 하는 말은 내 하나님하는 말입니다. '네 하나님' 하는 말은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됐다는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많은 명상을 자지는 것이 좋고, 또  하나님이 세 가지 위로 나타나신 것은 세 가지 직분으로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 삼위의 하나님을 우리는 많이 명상하고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자는 어떤 분이시며 성령은 어떤 분이시며.

성부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묵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그것이 중생된 새사람의  양식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그 외부는 이 시공  세계를 가져 있기 때문에 물질의 것을 접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물질을  먹으나 영도 물질을 먹지 안하고 마음도 물질을 먹지 안하고 다만 고기 덩어리만  물질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프란시스는 자기 제자들이 한 달 동안 기도하러 가 가지고 같이  기도하고 오기로 하고 하루 한 끼 씩만 식사를 하고 제자들은 따로 머물면서  기도하고 그 선생님 프란시스는 따로 머물면서 기도를 하는데 그 제자들이  선생님은 어떻게 기도하시는가 보기 위해서 그래 이 사람이 가 보고 저 사람이  가 보고 선생님 모르게 은밀히 가 가지고 들어 봤는데 그 제자들이 와서 하는  말이 꼭 같은 말입니다. 한 달 동안 기도하는 것이 늘 성부에 대해서 묵상하고  성자에 대해서 묵상하고 성령에 대해서 묵상하는 그것이 한 달 기도이더라고.

'아버지는 누구시며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고 한참 이렇게 오래 동안  생각하다가 또 감사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또 자신이 또 회개를 하고 그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서 한 달 동안 내 내 명상하고 묵상을 하는 그것이  기도더라고 그런 말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 책에서 봤습니다.

 '네가' 하는 이것도 하나님이 직접 대면해서 하는 '네가' '네 하나님' 그 말은  누가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하는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그 말은 나는 네  하나님 됐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 하나님 됐다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됐으니 모든 것은 내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셨으니 모든  것은 내것입니다. 요 하나님에게 대해서 구약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늘 계속되어 있지를 안했습니다. 그저 중복적으로 퍼뜩  하나님 되셨다가 그만 또 서로 이별했습니다. 거리끼는 것이 있어서 하나님은  얼른 피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 안에  상주하여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됐다 하는 여게 대해서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이 제약의 말씀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가 하는 것을 성경을 보고 연구해서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것만치 그는 행복이 되고 하나님을 모르는 거 만치 그에게는  불행해집니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자기 것이 다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 구속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런데, 구속 받은 성도들이 새로 무엇을  가질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가질라고 하는 것 아니고 자기 것 되어 있는데 벗어  버리지 말고 버리지 말고 자기 것 되어 있는 것을 자기 것으로 한 현실이  통과되면 인이 맞아집니다. 하나님의 도장이 찍힙니다. 이제 그것이 확실히  실상이 이루어져 버립니다.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만 현실에서 그것을  벗어 버리기 때문에 그 일이 낭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엇을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은 만들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대신 다 흠없이 완전히 해 놓으셨습니다. 완전히 해 놓으신  것을 우리가 받았는데 이 받은 이것을 내가 부인하느냐 믿느냐하는 그것이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이 결정되니 안 믿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사하지를 못합니다. 안 믿는 죄는 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지마는 사하는 죄도 있고, 사함을 받지 않는 죄도 있는데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안 믿는 죄요. 고범죄입니다. 안 믿는 것도 용서하면  된다 그거 없습니다. 주님이 대속하신 그 구원은 믿을 때에 내것이 되고 부정할  때에 안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부정으로 영원 불변적으로 확정을 지울라는  것이지 새로 무엇을 만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고 밑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라 말은 계약의 하나님이라 말인데, 요 계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데 공으로 주시는데  공으로 우리가 받는 것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공으로 주시는 것을 인정하고  받으면 됩니다. 인정하고 받으면 되는데, 이 계약은 어떤 계약인고 하니  인정하고 공으로 받는 계약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실력으로 인정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고 범위 내의 것을 하나님께서 계약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계약을 당신이 하시고 이 계약을 우리가 지키는  것이 이것이 무엇이 되는 거 아니라 이 지키는 것이 당신이 은혜로 해 주실라고  계약한 요 계약을 믿으면 반드시 지키게 되고 안 믿으면 못 지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느냐 안 믿느냐는 그 표는 요 계약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이  여실히 과학적으로 나타냅니다. 마치 수학으로 말하면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  되는 거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면 인정 이콜 (equa1,=) 자기가 행하는 것. 믿고 행하는 거 고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공으로 이 모든 것을 주시기로 약속하고  주시는테. 주시는 고것을 믿는 것만치 고 상대방에는 행함이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는 그 약속을 우리가 받는 것은 그 가치를  내고 받는 거 아니고 다만 공으로 주시는 그것을 주신다는 그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인정하면 요 명령 지키면 내가 주겠다 할 때에고 명령을 지키기  마련이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고것을 인정하면 고게 믿는 겁니다. 고것을  인정하면 인정은 자기로서 할 수 있는 그 계약의 조 건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왜? 자기가 그거는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동이 없는 것은 인정 안  한다는 증거요 인정을 안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약을 거짓말 한다 하고서 그것을  거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것도 그저 자꾸. 범벅 타령으로 이래  거석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마는 실지로 행할 수 있는 그런 무슨 구체적인 말만  하면은 사람들은 그만 듣기 섦어합니다. 그래도 실행에는 좀 구체적보다도 더  구체적이어야 실행이 되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실행이 안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라고 이렇게 많이 말씀하신 그 여호와는 계약하고서 계약 이행의  하나님이라 하는 그런 뜻인데 이 여호와가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분개하실 때에 여호와라고 나타났고 또 하나님이 기뻐 사랑하실 때에 여호와라고  나타났습니다. 이랬는데, 구약에는 이 둘로 나타났으나 신약에는 이제 만군의  여호와라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없는데 없으나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나실 때 어째 나타나셨던가 하는 그것을 우리는 생각해서 구약 때는 만군의  여호와기 때문에 하나님이 멸하시지마는 시약시대는 멸하시지는 안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심히 섭섭해 하시고 노여워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을 봐 가지고서 신약을 깨달아서 우리는 노여움을 풀어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인사 전도지에 그 주의 진노와 징계를 보는 눈동자가 계속해  달라고 하는 것은 그러면 주님의 진노를 보면 우리가 그 진노를 발견해 가지고서  진노를 풀어드리는 거 우리가 회개한다는 거는 회개함으로 뭐 죄가 없어지고  회개 안 하고 죄가 있어지는 건 아닙니다. 주님의 노를 풀면 주님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는 사랑의 징계가 변하여서 하나님의 긍휼의  축복으로 바꾸어져 오게 됩니다.

 그러기에 여게 '네 하나님 여호와' 그 말은 하나님이 네 하나님 되신, 네  하나님이 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나로 하여금 받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고 길을 마련했습니다. 고 길을 마련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계약입니다.

 계약은 어떤 정도의 계약이냐? 그 계약은 아무 힘드는 거 아니고 그 계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정 말로 나에게  주실 것으로. 주실 것으로 인정만 하면. 인정만 하면 고 행동은 될 수 있는 고런  범위 내의 아주 간략한 것을 우리에게 계약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네 하나님 여호와'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셔 가지고 여호와 할 때는 벌써 하나님의  무한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지금 주실 길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지공하신 분이요 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벌써 대속의 공로까지  베푸셔 가지고 우리를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받아 가지고 당신만치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기를 목적하고 하나님이 하시는데 어짜든지 되는  방향으로 연구하셔 가지고 되는 방향에 가장 쉬운 길을 모색한 것이 여호와  계약입니다.

 여호와 계약은 뭐이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요것을 네가 조건으로 네가  요리요리하면 내가 요거 주겠다. 내가 요런 거 요런 걸,너 주겠는데 요런 거  요런 것을 네게 주겠는데 내가 요런 거 요런 거를 네게 줄 때에 네가 요렇게  하면 주겠다, 요렇게 하면 주겠다. 하나님께서 고렇게 약속을 선포해 놓은  것입니다. 요렇게 하면은 내가 너에게 주겠다 하는 고 계약을 선포해 놓은  것인데, 고 계약이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그 댓가되는 거 아닙니다. 그  댓가의 억억억억 억억억 억억 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겁니다. 다만 고 계약으로서  우리가 고 계약을 지킬 수 있는 고거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신 그것을 내가  인정만 하면 됩니다. 인정. 인정하게 하는 정도요. 인정하면 또 넉넉히 행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을 우리에게 계약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당신의 그 긍휼을  합해 가지고 주기는 줘야 되겠고 또 주는 데는 저거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길로 해 가지고서 이 주고 받는 것이 이것이 뒤에 가서 탄로 가 나고 주고 받는  이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지공법에나 위반이 되든지. 또 이치에 틀리면 이치에  틀리면, 그거 죄기 때문에 안 되겠는데 가장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데에 은혜로 주시는 제일 간략하고 쉬운 방편, 또 우리로서 다  넉넉히 받을 수 있는 고 범위의 정도 요것을 연구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계약이 하나님 여호와의 계약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말씀을 삼가 듣고' 이 말씀은 이말씀가지고  무얼하는 게 아니라 말씀은 우리가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지키는데  우리가 지키는 그거 가지고 뭐 되는 아닙니다. 우리가 지키는 그것은 이것  지키면 아주 지극히 보배로운 것을 주시는데 지키는 것과 보배로운 것과 그 뭐  댓가가 된다는 거. 가치대로 준다는 거 그거 아닙니다. 예를 들면. 만일 어린  아이에게 혹 그 비유가 뭐 억지 비유가 될란지 몰라도 조그만한 세 살 먹는  아이를 딸이나 아들이나 딱 낳아 놓고 말하기를 '얘, 너 네가 크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또 세계 모든 유력한 모든 학을 공부하도록 유학 이것을  다 너에게 내가 공으로 학비 대어서 시켜 주겠는데 내가 시켜 주겠는데 내가  너를 이거 모든 걸 시켜 주겠는데 네가 내 입에다가 사탕 한 개만 내 입에 넣어  주면 내가 그 모든 걸 해 주겠다. 그럴 때에 그 아이가 십 원짜리 돈을 가져  있다 말이오. 십 원 짜리 노란 돈을 가져 있는데 그 아이가 참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학비를 대어서 아주 높은데까지 공부를 시켜 줄 터인데, '네가 지금 네게  있는 돈 가지고서 사탕 한 개 사다가 내 입에 넣어 주면 내가 그렇게 학비를  대어서 해 주기로 내가 너하고 약속을 하겠다: 이렇게 만일 했을 때에 그 아이  가 사실을 가치를 안다고 하면 그 아이가 뭐 그거야 사탕 한 개라도 제게 돈 십  원이 있으니까 그 사탕을 사 가져 와서 입에 한 개 넣어 드리면 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입에 한 개 넣어 드리는 그 사탕 한 개 넣어 드리는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무슨 대학 한 학기 등록이나 됩니까, 어데?  등록금이 됩니까? 십 원짜린데 그러나 고것이 어린 것을 데리고 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아버지의 하는 말을 제가 인정만 하면 할 수 있는 것이고 힘 안  들이고 인정만 하면 할 수 있는 것인데 인정 안 하면 웃고 말 것이라. 힘이 들어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인정하고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거, 야, 그라면 사탕을 사을 거라. '네 손에 있는 사탕 그거  내 입에 한 개 넣어 주면 내가 그렇게 해 주지' 그렇게 말할 때에 제가 그 말을  듣고서 소망을 가진다면 그 소망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자기가 느낀다면 그  사탕은 아버지 입에 넣어 줄 거 아니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 조건으로서 '네가 이리 이리  해라 그라면 내가 이 모든 것을 주시겠다' 하는 것이 우리가 그 아이 모양으로  어려서 철이 없어서 주시겠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위대하고 이런데  이것의 가치를 정말로 알고 믿으면 우리가 주님으로 더불어 계약한 그 당사자  중에 하나인데 내가 지킬 그 계약 지킨다는 것은 뭐 아주 누워서 놀기지 문제도  없는 그렇게 쉬운 것이라 그말이오. 쉬운 것 인데 다만 이 계약 조건에서 되는  것이지 이것이 계약을 지킨 그 뭐 공로 나 가치가 들어서 하나님 앞에 뭘 얻는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전부 네 하나님하는 것도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거는 참 공짜배기로 말할 수 없는 거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됐다 하는 데 대해서도 그 사람의 지식에 따라서, 프란시스 그 분은 한 달 동안  그랬다 하는데 지금도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됐다, 하나님이 계신다 하는 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고서 어떤 사람은 여러달을 운 사람 있습니다.

'여러 달을 왜 울어? 슬퍼서, 아니.' 여러 달 운 사람 있는 것은 희망이 있다  말이오. 세상을 본 사람은 세상이 너무도 절망적이요 너무도 희망이 없고 하나도  눈꼽재기만한 것도 산 것을 볼 수 없는 것이 죽음만 가득차 있는 세상인데 이  하나님 한 분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살 맛이 있고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고 모든  것에 대해서 희망이 있는 이것을 생각하고서 오래 동안 참 감사의 만족의 그  눈물을 흘린 그런 사람 들 뭐 성도들 가운데에 수천만 있는 줄 압니다. 그저  양은 달라도 그런 거 느낀 사람들이 많은 줄 압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인 것도 하나님의 순전한 사랑과 은혜요 이 하나님이  여호와로 나에게 상대해 주는 것도 이거 말할 수 없는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받아 가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서 받을 수 있는 고  가장 쉬운 방된을 연구해 가지고서 고 방편을 우리에게 선포 해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어렵고 무거운 게 아니라 지극히 큰 것을  아주 우리가 능히 지킬 수 있는 고런 방편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네게 이 신구약 이 성경 계약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주신  것은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큰 긍휼이요 얼마나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쉬운  길을 연구해 주신 것입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모든 것을 다 우리  것을 만들 수 있는 이 조그만 한 뭐 집 한 채도 만들라 하면 힘이 드는데 하늘과  땅의 것, 영계와 물 질계 이 모든 것을 우리 것 되게 하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렵습니까? 아주 우리 것 되게 하는 그 계약 조건을 보면 계약이 아주  쉽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다 할 수 있는 그런 쉬운 계약 조건들을  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선포해 놓았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이것도 할라면 할 수 있는 정도의  것입니다. 감당 못 할 게 아니고 그저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 이든지 혹은  또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은 말씀이든지 하는 이 말씀을 이 말씀이 내가 현실을  당할 때 필요하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나와의 맺은 조건이기 때문에 이 계약을  내가 잘못 알면 이 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터이니까 이 계약을 바로 알아야 바로  이행하지 이 계약을 모르고야 뭐이 되겠느냐? 아, 그 시험치는 사람이 시험  문제도 모르는데 그 사람이 무슨 좋은 답을 쓰겠습니까? 답을 못 쓴다 말이오.

(꼬박꼬박 조는데 탈이라. 고 귀신이 들어가 있다 그말이오. 무슨 귀신이 들어가  있어? 아. 신명기 28장 이거 또 하는 말씀하니까, 그런데 반사들은 깨달은  반사들은 '한주간 더합시다' 이렇게 나한테 그랬고 더 합시다 하는 사람들은 뭐  알았다 말이오. 오늘 아침에 ○○○ 조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하는데  껍데기 만 한 게 아니고 속에 자기가 깨달아 믿는 것이 속에 있는 것을 내가  봤습니다. 아주 설교 그 ○○○ 조사님 아침에 설교 잘 했습니다. 그 설교면 이  세대에 없는 백 점입니다. 없는 백 점이오. 그 속에 성령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합니다. 자기 속에 확실히 믿는 확신을 가지고 해.)  '삼가 듣고' 삼가 듣는 것은 계약을 믿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증거요  계약을 믿는 증거요 믿는 증거는 뭐이냐? 들을 때는 삼가 듣는 것이 증거라  말이오. 삼가 안 듣는 것은 믿지 않는 그 표시요. 성경을 읽을 때에 삼가 읽지  않는 거는 이 계약을 믿지 않는 표시요. 이 계약이 어떠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길을 하나님이 연구하셔 가지고서 우리가 쉽게 간략하게 받을 수 있는 고  길을 열어 주셨는데 고걸 받을라면 고 길로 졸 졸 순서를 밟아야 받는데 그  사실을 믿는다면은 고 순서인 고 길을 귀너머 들을 리가 없다 그 말이오.

 삼가 듣는 것은 그거는 뭐이냐? 요 믿는 증거입니다. 여호와의 계약을 믿는  증거요, 하나님이 제 하나님 됐으니까 큰희망이 있는데 큰 소망이 있는데 희망이  있는데 그 희망을 믿는 사람이라. 믿는 사람은 삼가 듣기 마련이라 그 말이오.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내가 오늘날' 요게서 우리가 요 걸  단단이 기억하고 자꾸 새깁시다. ' 내가 오늘날 네거, 그 하나님이 '내가 네게'  그러면 '내가'는 하나님 아닙니까? 그러면 예를 들어서 여기 우리 집 아이가  있다 말이오. 우리 집 아이가 꼬마 아이가 있는데 '내가 네게' 하면 서로 둘이  사이에 아무 것도 끼여 있지 안하고 서로 마주 상대해 가지고서 하는 말  아닙니까? 요게 하나님과 우리 성도들이 마주 상대하는 요 상대는 요게서 밝히  나타났습니다.

 에덴 동산에 고 에덴 동산을 해석하는데 에덴 동산은 신인 교체의 위치라  고렇게 고 해석한 것이 박 윤선 목사님이 주석에 고렇게 해석을 해놨습니다.

창세기 2장에 있는 해석을 하면서 에덴 동산 해석하면서 에덴 동산은 신인  교제의 위치라 그래 말하고 다른 주석에는 거게 없어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대면하는 요 대 면은  오늘날이라는 요 현재, 현장, 현실 요게서만 하나님과는 대면할 수 있고 서로  주고 받고 대화할 수 있고 또 동거할 수 있고 동행할수 있는 거는 요게서만 있지  요 외에는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뭐 몇십 년을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요  현재 시간으로 말하면 현재 장소로 말하면 현장 모든 실존으로 말하면 현실  거게서만 하나님과 자기와는 상대할 수 있다. 그외에는 상대하지 않는다.

 요게서 상대하는 내가 네게. 내가 네게. 내가 오늘날 네게 요렇게 마구  상대하는 요 상대로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나 너 요렇게 말씀한 일이 요 신명기  28장에는 세 번 있습니다. 세 번 있는데 다른 데는 여러분들이 찾아 보십시오.

신약 성경을 찾아보고 구약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그 참 수족같이 쓰는 종들에게 가끔 있었지 별로이 단독이 일  대 일로 단 둘이 요렇게 상대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별로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위대한 종들에게 일생동안에 한 번 혹 그렇게 할 때가  있었습니다. 모세에게 대해서도 그렇고 거기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그 뭐 많이 있지를 안 합니다.

 이랬는데, 그러니 요게서 우리는 '아, 내가 하나님을 만내고 또 하나님과 서로  대화하고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것은 요 시간으로 말하면 요 시간 요  현재, 장소로 말하면 요 장소, 자기가 뭐 감옥에 있든지 자기가 바쁠 때  뭐이든지 고 장소 현장이라는 고 장소, 또 자기가 무슨 사실을 만났든지 고 현실  고게서만 주님은 나와 이 밀접한 상호 관계를 있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주 요거 요합니다.

 사람들이 고 시간 놓치고 난 다음에는 암만 해야 헛일입니다. 사람들은  요게다가 중점을 두지 안하고 벌써 그 시간은 지나 보내고 난 다음에 엉뚱한  시간에 뭐 하나님과 동행하는 적으로 또 하나님과 교제하는 적으로 뭐 어떻게  하지마는서도 그 하나님과는 꼭 요 현재, 현장, 현실에서만 하나님은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나 요렇게 단 둘이 상대할 수 있지 다른 데서는 상대할 수 없다는  요것을 우리가 아주 명심해야 됩니다. 아주 이거 중요합니다.

 다른 데서는 요렇게 명확하게 해 놓은데가 없습니다. 요렇게 명락하게 해 놓은  성구가 없습니다. 성구는 백 번 기록한 성구나 한 번 기록한 성구나 가치나  권위는 꼭 같습니다. 여러 번 기록했으면 사람들은 뭐 여게도 있다 여게도  저게도 있다 자꾸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것이 여러 번 있으면 더 권위가 있고  숫자가 적으면 권위가 적은 줄로 그렇게 아는 그 사람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거게 대해서 아직까지 구별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백 번 말하나 한 번  말씀하시나 꼭 같습니다. 고걸 우리가 기억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요 '명' 하는 요 '명'은 단수입니다. '명하는'  그러면 명하는 것은 고 명령 한 번이라 말입니다. 명하는 거 한 번. 명하는 거  하나, 모든 명령은 고 명령이 주 합해지면 모든 명령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명령 하나라 하는 요것은 고때에 건설 명령을  말합니다. 건설 명령. 건설 명령은 언제든지 하나지 둘은 아닙니다. 건설 명령은  하나지 둘은 아닙니다. 하나지 둘은 아닌데 우리가 건설 명령만 지킬라고 하면은  건설 명령은 절대 못 지킵니다. 건설 명령은 어데서 나오는 거 하니 기본  명령에서 나옵니다. 기본 명령. 기본 명령에서 나오는데 기본 명령을 여기  저기서 성경에서 보면은 막 여러 군데 말해놨지마는서도 고 기본 명령을  간추려서 순서적으로 말해 놓은데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5절에 보면은 고게  일곱 가지를 말해 놨습니다. 일곱 가지 그거는 기본 명령이라. 언제든지 그 명령  토대 위에서 해야 됩니다.

 그러면 거게 첫째는 뭐이냐? '네가 선으로 하라' 했습니다. 선으로 하라 말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라 말이오. 피조물 중심을 피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라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첫째가 기본 명령의 첫째가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  중심은 주인을 바꿨다 그 말이오. 과거에는 내가 주인인데 내가 주인인데 이제  하나님을 주인으로 바꿨다 말이오. 또 모든 피조물 중에 이런 것 저런 것을  주인으로 삼았는데 이제 주님을 주인으로 삼는다 말이오. 주님 중심 주님 위주라  그말입니다. 이 말은 원죄를 벗으라 그 말입니다. 원죄를 벗으라. 하나님  중심이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네 중심, 피조물  중심 위주로 살던 그 사망에서 전환해라. 사망에서 삑 돌아서 거라. 사망에서 삑  돌아서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사람으로 바꿔지거라, 이것이  새사람입니다. 하나님 중심인 이 사람이 새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 명령이 뭐이냐? 새사람으로 살아라 하는 그거는 기본  명령이라 말이오. 우리는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언제든지 어데든지 어느 때든지  그 새사람으로 살아야 되지 새사람으로, 살지 안하면 그 뭐 명형 암만 지켜 봐야  소용없습니다. 아주 요거 중요합니다. 거게 데살로니가전서 5장15절에 있습니다.

15절이지? 15절에 그게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 그러니까 하나님 중심은 새사람으로 살라 그 말이오. 새사람으로  살아라. 요것이 기본 명령의 일 호입니다.

 고 다음에는 '기뻐하라' 이랬습니다. 기뻐하라. 이것도 항상 피오. 뭐 밤이나  낮이나 기쁘기를 장소가 변해지는데 따라서 다르고 항상 기쁩니다. 늘 계속  기뻐. 기뻐하라 그 말은 위에 것을 되새기는 말입니다. '네가 새사람으로  살아라' 이래 놓고. 새사람으로 사는데 기뻐해라. 그말은 새사람으로 사는  과정이 어떻게 어떻게 돼서 과정이 어떤 과정을 통과해 가지고서 새사람으로  살게 되었으니 새사람은 얼마나 든든하며 얼마나 든든하며 얼마나 완전하며 그  소망이 얼마나 무궁하고 무한하며 그의 실력의 지능이 무한하고 무궁한 이 모든  자기가 자기된 것을 자기가 자기 된 것을 깨달음으로서의 기쁨이 너희는 계속  있어야 된다. 요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본 명령의 둘째입니다.

 처음에는 '너는 새사람으로 살아라.' 이것이 기본 명령이고 고 다음에는  새사람으로 사는 너에게는 네가 새사람으로 산 네가 어떤 자인지 아느냐? 그걸  생각해서 ' 아 기쁘다.' 죽음에서도 기쁘고 가난에서도 기쁘고 어데서라도  세상이 이런 고문 고형이나 이런 가난이나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은 그 어떤 기쁨입니까? 그 기쁨은  제가 새사람되어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이것을 자기가 깨달아서 그 사람이  사람이 돼 가지고 새사람의 그 기쁨을 가져 있을 때 이 기쁨은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둘째로 거기에 기본 명령의 둘째가 항상 기뻐하라.

 고 다음에 또, 뭐 입니까? 세째, 항상 기도하라. 왜? 자기가 새사람 되고  자기가 자기 돼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과정이나 그 희망이나 그 모든 자체를  생각하고 보니 첫째 할 일이 뭐입니까? 할 일이 뭐입니까? 뛰고 굴릴 일입니까?  기쁨은 그 본능으로 나옵니다. 기쁨은 본능으로 나오는데 기뻐해 가지고서 할  일이 뭐입니까? 돈벌이해야 되겠습니까? 권리 지금 거기 권력을 준비해야  되겠습니까, 뭐해야 되겠습니까? 기도해야 된다 말이오. 이제 보니 자기가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주님이 시행 하니까. 이거 뭐 구할 것이 얼마나 많고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겠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이거 기도할 게 얼마나 많고 자기가 사람이 불어 가지고서  억억만 명이 들어서 천 년 해도 못 할 걸 기도로 다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깨달았으면 너는 기도할 수 없으니까 쉬지 않는 기도가  있을거라. 요게 뭐이냐? 기본 명령의 삼호입니다.

 그다음에 네째는 뭐입니까? 감사하라, 감사하라, 너는 이런 형편에서도 저런  형편에도 항상 감사하라, 너는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요것이 기본 명령의 네째입니다. 감사한 것은 또 저 위에 쭉 가서  옛사람 생각해 보고 새사람 생각해 보고 내가 새사람 된 것 새사람 된 과정.

새사람의 소망, 지극히 큰 소망, 그 새사람의 권위 이 모든 것에게 자. 기도의  권위도 생각하니까 감사하고 새사람된 것도 생각 하니 감사하고, 벌써  대속으로서 구속된 것도 생각하니 감사하고 이렇게 그 지극히 큰 소망의 희망을  가진 것도 생각하니 감사하고 이러니까 이제 감사하는 요것도 기본 명령입니다.

요것은 언제나 변동 없어. 항상 요렇게 기본 명령을 가져 있어야 돼.

 고라고 난 다음에 이제 다섯째는 뭐입니까? 다섯째는 '성령의 성령의 성령의  감화를 소멸치 말아라' 언제든지 성신 감화로 살아야 돼. 언제든지 성신 감화는  성신 감화는 계속 내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지 말라  말은 성신의 감화가 있을 때 있고 없을 때 있다 말이 아니요, 성신의 감화가  끊쳐지지 말아라 그 말이오. 성신의 감화가 끊여 지지 말라 성신의 감화로  살아라 요것도 기본 명령입니다.

 또 고 다음에 여섯째는 뭐입니까? 예언을 멸시치 말아라, 예언을 멸시치  말아라. 언제든지 예언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 말씀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은 네가  거울같이 거울을 봐야 네 용모를 아는 것처럼 신구약 성경을 들여다 보지  안하면은 네 자체가 뭐인 줄 모르기 때문에 너를 확실히 환하게 보여 줘서 너도  보여 주고 네 할 일도 보여 주고 네 의무와 책임도 보여 주고 네가 어떻게 지금  치료 받을 것도 보여 주고 네게 대해 환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네가 예언을  떠나지 말아라.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말은 예언을 떠나지 말라 말이오. 예언을  무시하지 말아라, 이 예언에 삼가 들으라 말과 같은 말입니다. 예언을 멸시치  말아라, 항상 네가 예언을 들여다보고 있거라.

 고 다음에 하나 더 있는데 뭐입니까? 일곱째는? 뭐입니까?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이랬습니다. 네가 온 세상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네가 살고 있는 네 주변은 전부가 악하다 그 말은 전체가 다 제 중심. 제 중심,  피조물 중심, 피조물 중심. 제 중심이 바다 물과 같이 가득 차 가지고 있는 이  속에 네가 살기 때문에 '세월을 아껴라. 때가 악하니라.' 그말은 무슨 말이냐?  잘못하면 네가 제 중심으로 피조물 중심으로 사는 악에게 감염되기 쉬우니 네가  일 분 일 초라도 감염되지 안하도록 세월을 아껴라. 네가 한 시간 감염됐으면  그거는 죽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이제 네가  네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 그것은 네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이나 뚜렷하게 그런 거  아니라도 네 중심 피조물 중심 속에 알맹이는 알맹이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라 할지라도 껍데기는 피조물 위주되는 그런 그 외모까지라도 외모까지라도  하나님 중심이 아닌 것은 네가 버려라. 네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은 버려라.

 요 일곱 가지는 기본 명령입니다. 요 일곱 가지 명령은 기본 명령, 요거는 항상  우리가 여게서나 저게서나 자기 현실은 날마다 변해지는데 자기 현실이 암만  변해져도 변해지는 고 현실에 따라서 저는 변하지 말고, 고 현실에 따라서  변하지 말고 요것은 언제든지 항상 영원히 변하지 안 할 요거는 기본 명령이기  때문에 요 명령은 언제든지 변하지 않고 시간과 장소와 그 모든 실존에 대해서  요동되지 않는 요것은 기본 명령이라.

 요 명령을 지키고. 요 명령을 지키면 그 다음에 건설 명령이 있으니까 건설  명령은 내게 요런 현실 저런 현실이 닥치는데 닥칠 때에는 요 현실에 지킬  명령이 따로 있고 조 현실에 지킬 명령이 따로 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는  하나지마는 이 터는 하나지마는 터 위에 집 지을 때는 이것도 뭐 못도 박고 또  꼬쟁이도 찌르고 또 긴 것도 자르고 자꾸 하는 거 모양으로 네가 그 현실을 당할  때마다 요런 현실에는 요렇게 네가 살아야 되고 저렇게 되는 현실에서는 저렇게  살아야 돼서 현실마다 거기에 해당된 하나님의 명령 너의 옳고 바른 길이 있을  터이니까 그 길을 찾아서 하나 기본 명령은 요동치 않아야 된다.

 그러면 이 건설 명령이라는 이 명령이 어데 됩니까? 이 건설 명령이 이 기본  명령 토대 위에 있어야 됩니다. 토대 위에. 예를 들면 그 새사람이, 새사람이  건설 명령을 지켜야 되지, 새사람이 건설 명령을 지켜야 되지 옛사람이 건설  명령을 지켜도 소용없습니다. 기본 명령이, 새사람으로 사는 새사람이 건설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또 이렇게 참 자기가, 하나님이 자기 만든 것을 생각할  때에 기뻐 못 견디는 거. 자기가 영생을 받았지 하나님의 아버지의 아들이 됐지,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밀접한 관계에서, 대속을 받았지, 이러니까 기쁜, 그  기본구원을 인해서 기뻐하는 고 기쁨을 가지고 요 현실에서 요것 저것을 해야  되지 기본구원 잊어버리고 기쁨 없이 슬픔으로나 탄식으로 해 가지고서 지키는  것은 그거 내나 옛사람이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다 소용이 없다 말입니다.

 그러면 기본 명령 토대 위에서 요 건설 명령을 지켜라. 그러니까. 네가 기도도  기도가. 네가 요 현실에서 무슨 명견을 지킬 때도 네가 기도하면서 고 명령을  지켜야 되지 기도 잊어버리고 고 명령 지키면 헛일이다. 어떤 명령이라도  기도하면서 지켜라. 네가 감사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한 사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네가 요것 저것 그 건설 명령을 지켜라. 자기가 건설 명령을 닥칠 때에는 참  감옥에 들어가는 일도 있고 죽음을 닥치는 일도 있을 때에 그때에 죽음을 닥칠  때 그때에 그 죽음이 다가 온 그 사실을 똑똑히 알고 아. 감사하고 기뻐 못  견디는 기쁨, 감사, 간구, 새사람으로 그래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도 들어가야  되고 죽어도 죽어야 이제 그 건설이 되어지는 것이고 기본 명령 떨치고 하면은  소용없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  어려움이 뭣 때문에 오느냐? 하나님께서 너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우주와 영계를 통치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은  원형이고 너는 모형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하고 정하여서 하나님과 시인  결합에 일행하는 신인 결합에 일행하는 고 일행으로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 명령 위에서 네가 이 건설 명령을 지켜야 된다 하는  요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명령이 있는데,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누가 하는 거 아니라 너와  계약해 놓은 그 계약의 하나님이 그 계약 조건을 따라서 너에게 이 복을 주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이  하나님께서 요렇게 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는 이 복을 주시는데,  그러면 이 복을 주신다는 말은 복을 주신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에베소  1장에 보면은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할 때에 그 동정을 통하여서 동하고 정함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그 믿는 자에게 와 가지고 역사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명령을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를 하십니다. 역사를 하시는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는데 그러면  뛰어나게 하는 그 표준이 뭐이냐? 표준은 첫째로 모든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심이 뛰어나고 모든 사람보다 진리를 자기 진리로 영접함이  뛰어나고 모든 사람보다 하나님의 그 속성인 하나님의 신성에 제일 가까운  하나님의 모형적 형상, 하나님이 원형이라면 모형으로 하나님 그 모형적  하나님의 형상면에서 뛰어나고 그다음에는 지능면이 뛰어나고, 지능면이  뛰어나고 모든 그의 포부가 뛰어난다.

 이러기 때문에, 썩을 것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썩지 안할 것을 소망하지 썩을  것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그 썩을 것을 자꾸 진리로 희생해 가지고 썩지 안할  것을 가질라 하는 것이 이렇게 영의 사람들이라 그말이오. 뛰어나게 되는데,  그것만 뛰어나는 거 아니라 뛰어나고 또 육체의 모든 것도 뛰어나게 된다.

육체의 모든 것도 뛰어나게 된다. 이 육체에 뛰어나는 거는 껍데기입니다.

 영국이 요 기독교를 영접해서 한창 잘 믿었을 때 그때에 존재도 없던 북해의  해적이 일시 세계를 다 점령 했었습니다. 이라다가 저기서 쫓겨 나간 튜우튼족이  그게 쫓겨나 가지고 저 미국 대륙에 걸려 가 가지고서 거기 아주 쫓겨 나간 그  족속이지마는 거게서 하나님을 바로 믿고 이랬을 때에 뭐라고 쌓아도 천연  자원이나 그 축복은 미국이 지금 세상적으로 제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일  부자입니다. 어쨌든지. 이래서 세상적으로도 뛰어나게 된다.

 그랬는데, 유대인들은 지금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세계의 큰 의문이 하나  들어 가지고 있는 퀘스쳔 마크(?)가 뭐인고 하니 사해입니다. 그 요단강이  그렇게 많이 물 흘러 내려와도 물이 없는 들어가면 삭아지고 없어지는 사해가  있는데, 그 사해는 이 바다보다 훨씬 깊습니다. 깊은데 그 바다에 물이 차지  않습니다. 들어가는데 물은 삭고 없어집니다. 그 사해에 들어 있는 그 모든 화학  작용들의 그 재료가 이것만 하면 세계를 쏵 없앨 수 있는 그 재료가 고 사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지금 은연중 숨어서 발견 하지마는 그걸 아무도 거기  손을 대지 못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게 뒤에 가서 무엇을 나타낼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강한 나라가 있지마는, 소돔 고모라성이 한창 좋을 때는  여호와의 동산 같다 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았는데 하나님의 말씀한 대로  갑자기 유황불비가 와서 타 버렸다 말이오. 타 가지고 그게 사해된 거 아닙니까?  그게 사해 됐어. 오늘도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가 이렇게 아주 세계에 부한  나라지마는서도 그 나라를 벌써 휘떡거리면 휙 넘어가 가지고 높은 장대를 수  십길 되는 장대를 세워 놨는데 이 장대가 박힌 데가 없는데 이 장대가 커  놓으니까 위에 가서 널찍하이 보니까 그것도 어북 커서 참 큰 나라같이  넓적하지마는서도 그게 들어 갈 구멍이 있고 넘어 갈 뿌리가 있고 이라니까 휘떡  넘어 가다가는 저 딱 깊은 속에 푹 파묻혀서 다시 찾아볼 수 없도록 되어지는  그런 일이 있을 것을 벌써 요한계시 18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 돌을 들어서 바다 속에 던져서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거와같이 이렇게 될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나라들은 성경에 보면은 요런 죄악을 범하고 요런  죄악을 범해서 범한 나라들은 다 고렇게 된다 하는 그것을 보고 있고. 안 믿는  사람들도 그 나라의 사람들은 학자들은 야, 우리나라는 언제 이 흔들리면 어째  되나? 흔들흔들거리면 이거 푹 넘어가면 헛일이다 하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지 천지가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 없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예수님 재림 전에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니까  성경은 거짓말 중에 거짓말로 생각했지마는서도 예언한 대로 이루어지니까 모든  사람들이 긍정하게 됩니다.

 진화론이 그 지층에 아메바가 제일 밑에 지층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서  아메바가 변해서 사람이 진화됐다고 이렇게 떠들었지마는서도 그 후에 저 구라파  지역에서 아주 몇만 평 되는 그 지층이 아메바는 위에 있고 사람이 밑에 있는 그  지층을 보고 난 다음에 휘떡 뒤비져서 진화론을 그건 다 그만 다 무시하고 그때  진화론 올라 올 때는 성경을 거짓말 됐었습니다. 그 후에 성경을 꺼내서 그거는  무시하게 돼졌는데 지금은 또 이 망령되게 또 진화론을 가지고서 자꾸 이래  가지고 아메바가 사람됐다고 이렇게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겨진다  그거야.

 이러니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 그러면, 뛰어나게 되면은,  요건만 간단하게 말하고 말겠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는 말은 요것은 지극히  큰 능력이 어데 와서 역사한다는 말입니까? 지극히 큰 능력이 내적 역사와 외적  역사 이 양면 역사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외적 역사라 말은 아, 세계 모든  민족이 뛰어날라면 세계 모든 민족에 찬성을 하고 옹호를 해야 되지 강제로 하는  것이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모든 세계가 이렇게 우러러 보고 다 찬성을 하고  하기 때문에 모든 그 세계 모든 민족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고 찬양하고 이렇게 하도록 하는 이렇게 계명 지키는  자 밖에서 역사할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러니까, 그 말씀 대로요. '얼마 전에는 영국이라 하면은 세계가 다 모이고  영국은 모두 전부 '자, 영국 사람이면 거짓말 없다. 영국 사람은 다 그들은 참  신사다.' 이래 가지고 했지마는서도 그들이 신앙 버리고 나니까 영국 사람들이  저 중국에 와 가지고서 아편 장사하고 그런 어두운 짓을 한 번 두 번하고 난  다음에 다 불신임 받고 불신임 받고 난 다음에 영국은 바짝 깨져서 지금  있지마는서도 그까짓 거 거지 나라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도 뭐 그거 되면 되고 이랬는데 됐는데, 그 미국이라 하면 오  세계가 다 옹호하고 했는데 지금은 모두 옹호하지마는서도 공산주의는 바대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하나님의 외적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가 벌써 반쯤  거둬졌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반쯤 거둬졌어. 그 미국이 더 신앙으로  청교도들 신앙 모양으로 굳게 서면은 소련 저것도 없애 버리고 없어지고 다  옹호해요.

 이러기 때문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는 것은 지극히 큰 능력이 그  당사자들 밖에서 역사해 가지고 모든 것이 찬양, 협조 하도록 그렇게 역사하고  자기 안에 역사해 가지고서 자기 자체를 온전케 만드는 그 양면 역사를'  가리켜서 요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3절에,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이거는 외적 역사입니까 내적  역사입니까? 녜? 외적 역사 아닙니까? 또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들에  복을 받는 이거는 외적 역사입니까? 내적 역사입니까? 이것도 외적 역사  아닙니까? 하나님이 지극히 큰 능력으로 외적 역사를 해줘야 되는 것이지 인간이  암만 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네 몸에 소생이 복을 받는다' 이거는 외적 역사입니까, 내적 역사입니까  자기를 통한 역사입니까? 녜? 예, 이거는 자기를 통한 역사입니다. 자기를 통한  역사요. 뭐 아이 낳았다고 자기가 뭐 됩니까? 아이만 자기를 통해서 낳아 놨지  이 자기를 통한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서 자기를 통한 역사를 낳는데,  이러니까 자기 속에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자기 소생이 소생이 위대한  사람이 나면 위대해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건 인제 계명 지키는 대로 간다  그말이오. 계명 지키는 대로. 오늘날 네게 명하는 것을 지키는 거게 따라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유전성을 말하지마는서도 유전성에 안 맞는 거 많습니다. 계명 지키면  아주 그 머리가 아주 저능의 부모인데 그 자녀에게는 굉장한 그 초인간한 그런  지능도 타고 날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안에 있오.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이것도 외적 역사입니다.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이것도 다 외적 역사입니다.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도 외적 역사인데.

자기 위치로 외적 역사, 내적 역사 이거 안밖이 있으니까 밖에서 출입하는데  밖에서도 나를 돕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도우니까 아, 비행기 타고 오는데  비행기가 떨어지면 그만 아닙니까? 이런데 밖에서도 지극히 큰 능력이 협조하고  자기 안에 와 가지고도 협조하고 안팎에 협조하는 거 그러니 외적 역사, 내적  역사. 내외 역사, 자기를 통한 역사 이렇게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로 역사하기  때운에 이로 인해서만 기독자가 되는 것인데 기독자가 요렇게 계명을 지키지  안하기 때문에 맛 잃은 소금이 되어서 오늘 천물이 되는 것입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됐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사람에게 밟힙니다. 오늘도 진리를 바로 지키는  사람은 절대 밟히지 않습니다. 세상이 몰라도 밟히지 안하고 또 주님이  재림하시면 참 영원토록 해와같이 빛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 그때 우리 지능 가지고 할라 하는  거와같은 그런 부화 되기 전에와 같은 그런 생활하지 말고 우리는 중생 됐으니까  물벌레가 부화한 거와 같습니다. 같기 때문에, 중생된 자는 중생된 자의 생의  법칙으로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요 계명만 지키면 지극히 큰 능력이 내  안에 와서. 내 밖에서, 나를 통해서, 내 안팎에서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거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일본 나라가 우리 나라보다 사십 년 복음  먼저 받았습니다. 먼저 받아 가지고 그때 가 가지고 그 사람들은 그 공일날이라  주일날을 공일날이라 했오. 토요일은 반공일로 했오. 그거 뭐 철두 철미하게  지켜 나왔습니다. 지켜 나오고 거게서 속에서는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때에  먼저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후 사십년 넘게 받았어 복음을. 사십 년 늦게  받았으니까 그분들의 사십 년 앞에 받은데 따라서 우리는 삼십 육 년 동안  종노릇 했다 하지마는 실상 사십 년 종노릇했습니다. 사십 년 종노릇 했어. 삼십  육년이라 뚜껑을 똑똑히 열어 보면 사십 년이라 말이오. 벌써 그 경술년 합방  이전에 벌써 종노릇을 했다 그거야.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안 믿는 자에게 할 수 없는 것이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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