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23:07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1984. 7. 19. 목새벽
본문 : 베드로후서 2장 22절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구역에는 여기에 기록하기를 이렇게 기록했어요. 구역에는 번역하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먹고 또 돼지가 씻었던 구덩이에 눕는다' 이렇게 번역이 됐는데, 그거는 뜻을 알기 위해서 그렇게 번역한 거 같은데,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괜찮은데, 이 말은 그 지방에서 어떻게 지금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개가 '토하였던 데로 돌아간다 그렇게 말이 돼 있는지 도로 먹는다 그렇게 했는지, 일본말로서는 돌아긴다 이라고 또 우리 한국 말도 돌아간다 이라고 과거에 구역에는 번역하기를 토하였던 거를 도로 먹는다 어렇게 말해 놨습니다. 뭐, 그거는 뜻은 다 같은 뜻입니다.
지난 밤에 말씀한 거와 같이 이 세상에는 사람 지식 하나님의 지식 이 두 가지 지식이 있습니다. 사람 지식과 하나님 지식과 같은 것도 있고 또 사람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이 다른 것이 있습니다. 같은 것아 있는 것은 고 단편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지식이나 사람 지식이나 같은 거 같습니다. 고 방편에 대해서 말한 그것은 같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기와 목적, 또 그 결과, 이렇게 넓은 범위에서, 그러면, 사람에게 대해서 말 한 것도 사람의 근본이 어찌 됐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사람의 지식은 다 틀렸습니다. 또 사람이 무엇을 목적하고 살아야 되느냐 하는 그것도 다 틀렸습니다.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도 다 틀렸습니다.
왜? 그것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지음 받은 것이, 제가 지음 받은 것이 지을 때 어떻게 지었다 그걸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지음 받은 것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났는데 난 그것이 뱃속에 뱄을 때 '어떻다 하는 그걸 알 리가 없다 말이오. 날 때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네가 날 때 이렇다 이 말 하니까 그래 그 말 듣고 하는 것이지, 또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어찌 되는지 모르는데 영원무궁한 세계에 대해서 네가 금생은 하룻밤과 같고 내세는 영원무궁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네가 합당하게 살아라 하는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고 살고 난 다음에 모두 제 각각 잘 산다고, 바로 살고 옳게 살고 제일 지혜 있게 산다고 살았는데 하나님이 심판하시기를 너는 이게 틀렸고 너는 이게 틀렸고 이렇고, 이렇고 하는 것을 다 심판하시는데 그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대해서 그 결과를 이렇다 하는 것을 바로 말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지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하는, 맞은 거는 어떤 게 맞은 거냐 하면 비유컨댄 발을 떼 놓는 거는 맞습니다. 발을 몇 놓는 거. 출발도 맞지 안하고 어디로 향해 가는 것도 맞지 안하고 다만 걷는 것만 맞습니다. 자 걷는 것만 사람이 출발을 어디서 하고 어디를 향해서 가고 그러면 그 다음에 종착되는 곳은 무엇이라 하는 그것은 다 틀리고 걷는 걸음만 맞다 그 말이오. 걸음 그거는 방편인데 걷는 걸음만 맞아요. 그럴 수 있겠습니까? 동기는 하나님과 틀리고 목적도 하나님과 틀리고 결과도 하나님과 틀리고 걸어가는 방편은 같다 그거 그럴 수 있겠습니까? 비유컨댄 사람이 걸음을 걸을 때에 나설 때에 이 사람은 나는 서울로 가야 되겠다 하는 서울 갈 목적으로 그래 출발했습니다. 또 아 사람은 나는 제주도를 가야 되겠다 그래 생각하고 출발했습니다. 또 서울 가겠다 하는 그 사람은 서울 가 가지고 누구를 만나 가지고 무슨 성공을 하고 만나 가지고 일을 하겠다 그런 생각 가지고 지금 걸어가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제주도 가 가지고 뉘를 만나 가지고 어떻게 하겠다 그래 생각해 가지고 걸어가는데 그러면, 걸어가는 걸음은, 발자욱 떼 놓는 그 걸음은, 둘이 다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제주도 갈라 하는 사람과 서울 갈라 하는 사람과 걸어가는 그 발자국, 지금은 타고 다니지만 옛날은 타고 다니는 게 없어. 걸어가는 발자국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같습니다. 내나 제주도 가는 사람도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자꾸 이래 바꿔 가면서 떼 놓고, 서울 가는 것도 그렇고 걸어가는 걸음은 다 같습니다. 그러나 동기와 목적이 다르면 마지막에 가 가지고 보면 아주 틀리겠습니까? 같겠습니까? 왜? 걸음발은, 걸음은 같은데 종착은 다르겠습니까? 어떻게 다릅니까? 걸음은 같이 걸어가는데? 이 사람도 오른발 떼놓고 저 사람도 왼발 떼 놓고 자꾸 이래 같이 걸어가는 데 가서, 가서 보니까 도착한 곳이 다르겠습니까? 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사람의 지식은 사람이 어디서 나왔으며 어디로 가며 또 결과가 어떻게 된다 하는 그것은 전연히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전연히 모르고 사람만 가지고 자고 일어나고 또 사람에게 대해서 이렇게 접촉하고 저렇게 접촉하고 이래 살아라, 물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그렇게 살아라 이것이 세상이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잘 때도 너는 자고 있지만 또 깰 때도 있다. 너는 지금 살고 있지만 너는, 죽을 때도 있다.' 너는 이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검사를 받는다. 또 너는 이 세상은 하룻밤 나그네 같고 영원무궁세계 가 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걸 생각하며 살아라.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은 범위 넓게 인생이 어떤 것이다 하는 그 시발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또 인간이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 살든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하는 걸 가르쳐 주시고. 또 그 다음에는 심판에서 그 사람의 생활이 이랬든지 저랬든지 그걸 검사해 가지고 영원한 지옥과 천국이 있다 그러니까 거기에 맞춰 살아라, 이렇게 사는 걸 하루하루 생활을 그거 맞춰 살라 하고.
세상은 거기에 맞추지 안하고 그저 그날그날을 맞춰 살라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만드신 분이, 또 그분이 먹이고 입히고 살리시는 분이, 또 그분이 모든 생활을 다 하고 난 다음에 다 검사하실 분이, 검사해 가지고 영원한 지옥과 천국으로 갚아서 보응 해 주실 분이 그분이 말씀해 놓은 말이고, 사람이 한 말은 나는 것도 모르고 죽는 것도 모르고 이다음에 하나님의 검사 있는 것도 모르고 영원 내세가 있는 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요 토막만 알고 하는 말이니까 그 말대로 살면 뭐이 됩니까? 그 말대로 살면 뭐이 틀리겠습니까? 사람이 난 데 대해서 어떻게 뭐 때문에 나왔느냐 하는 그거 모르니까 거기에 대해서 틀릴 것이고, 또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검사가 있다는 그걸, 검사, 심판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사니까 거기에 틀 거 또 영원한 내세가 있다 하는 것을 모르고 사니까 거기에 하나도 맞추지 못하고 살 거 그러니까 전체가 다 틀립니다.
그러면 요것을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사람의 지식은. 사람의 지식은 총괄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지식은 자기를 위해서 살아라 하는 그것이 사람의 지식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아라, 또 두 번째는 이 세상에서 네가 살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서 살아라 그렇게 가르칩니다. 또 하나는 너는 살아 있으니까 죽은 후의 거는 생각지 말고, 살아 있으니 살아 있는 네기에 좋도록 살아라, 살아 있는 네기에 맞춰서 살아라 그렇게 이 세 가지로 살라고 세상 지식은 가르칩니다. 세 가지.
세상 지식은 이런 것 저런 것 현실을 당하거들랑 네가 이리 저리 비판해 보고 네기에 유리하도록 살아라, 네게 유리하도록 살아라, 너 좋도록 살아라 네기에 유익하도록 살아라, 또 두 번째는 이 세상에서 사는 데에 유익 하도록 살아라 또 뭐입니까, 하나는? 죽는 거는 생각지 안해.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으니,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 밥이 필요하다 살아 있으니 돈이 필요하다 살아 있으니 옷이 필요하다, 살아 있으니 살아 있는 데에 유익하도록 살아라. 그러면, 살아 있는 데 유익하도록 살아라, 세상에 유익하도록 살아라, 네기에 유익하도록 살아라 이렇게, 요렇게 가르치는 것이 세상 지식입니다. 세상 지식은 요 세 가지요. 요래 뭉쳐서 모두 다 그 세상 지식에 파묻혀 놓으니까 그걸 몰라 그렇지 이 세상 지식을 다 전체를 이래 들고 해부를 해 보면 꼭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그와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뭐라고 말하는고하니 너는 너를 만드시고 기르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 성경 법칙대로 살아라, 하나님을 위하여 성경 법칙대로 살아라, 너 좋게 살지 말고 하나님 좋게,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법칙대로 살아라, 성경 말씀은 너 좋게 네 생각 네 법칙대로 살아 있는 요것만 생각하고 살지 말아라, 너 좋게 세상 좋게 살아 있는 동안 좋게 이렇게 살지 말아라, 너를 만들어 내시고 먹이시고 기르시고 보호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모든 생활을 심사 검사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지고 계신 이 하나님이 너희에게 사는 법칙을, 생활하는 법칙을 내 놨으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 법칙대로 살아라 요걸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거 첫째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살아라,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라,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라, 이것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전부를 다 위하는 법칙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는 법칙은 모든 피조물도 다 위하는 법칙이라 하나님 위하고 피조물 위하고 다 전부를, 전 존재를 위하는 법칙이나 하나님을 네가 위해서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라 요걸 말합니다.
둘째로 말하는 건 뭘 말하는고 하니 사람이 어떻게 살든지 반드시 하나님이 검사하는 심판이 있다, 하나님이 검사하는 심판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검사가 있는 줄 알고, 네 속 마음이나 생각이나 그런 것 다 하나님이 검사하는 검사가 있다. 네 마음에 꼭 옳다고 보이지만 하나님의 법칙에 틀리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서 네가 옳고 바르게 살아라.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라. 이거는 하나님이나 모든 피조물이나 모든 존재에게 유익하도록 사는 생명의 법칙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라. 살되 네가 살았다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바로 살았는지 삐뚤어지게 살았는지 하나님이 검사의 심판이 있으니까 검사의 심판이 있는 줄 알고 그 검사 심판에 걸리지 안하도록 네가 살아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셋째로는 사람은 죽어 부활해 가지고 심판 받아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사는데 이 세상은 하룻밤과 같이 짧고 오는 세상은 영원무궁한 세상이 있다. 그러니까, 네가 하나님의 심판과 부활 영생 이게 있다, 이것을 알고 살아라.
그러면, 하나님도 세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위해 살아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라, 이다음에 부활 후에 사는 오는 세상은 영원무궁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서 살아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그것을 통틀어 한 마디로 말하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경건하게 살아라 그래 말했습니다. 오늘 공과, 이 공과 제목이 '회개에 후퇴하지 말아라' 그랬지요? 그게 제목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경건하게 살아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경건하게 살아라, 세상 지식은 자기에 유익하도록, 이 세상에 유익하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유익하도록 이걸 위해서 살아라 하는 것이 인간 지식 전부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만 유익하게 살라 했는데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보다도 죽어 가지고 오는 내세에 부활해 가지고 사는 다시 살아 가지고 사는 그 세계가 큰데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살아 있는 동안만 위해 살라 하니까 그게 틀리지 안했습니까? 또 천국은 영원무궁한데 세상 위해 살라 했기 때문에 틀리지 안했습니까? 또 하나님과 창조주 하나님과 만물이 있는데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저 좋도록만 살라 하니까 이거 틀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은 전부 어디 가 빠져 죽느냐? 저 좋도록 저 위해서 사는 고 구덩이에 빠져 다. 솔빡 다 죽습니다. 사람은 저 위하고 저 좋게 저 위하게 아주 저 잘난 재미로, 저 잘난 재미로 저 좋게 또 제 생각대로 사는 요 구덩이에 폭 빠져 죽습니다. 자기 생각이 틀렸다. 하나님의 생각이 맞고 자기 생각은 틀렸다 요걸 아는 사람이라야 희망이 있습니다. 나 좋게 살게 아니라 나 아닌, 나 아닌 뭐인데? 나 아닌 하나님 있고 나 아닌 사람 있으니, 나 아닌 하나님과 나 아닌 사람이 있으니 그것 좋게 살라고 해야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틀린 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 복 있고 또 자기는 자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다른 거 위해서 자기는 살아야 된다는 요걸 알아야 되지 뭐이든지 닥치면 '이거 내게 어찌 되는가?' 자기 좋도록 하려 하는 고게 들어서 사람을 망쳐 버리고 어두워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항상 그래야. 그저 말한다는 것이 항상 어떻게 하면 나 좋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내기에 속한 거, 내 가족 위해 살까, 가족 좋게 할까. 나 좋게 할까. 내 자녀 좋게 할까 전부 이것은 제게 속한 것이오. 내게 속했으니, 내니, 내 팔이니, 내 몸이니. 또 내 사람이니 내가족이니. 내 나라니. 내 민족이니. 내 민족이니 좋아한다 내 민족 그것도 사람 죽는 길입니다. 내 민족은 남의 민족, 다른 민족을 위한 내 민족이 돼야 살지 내 민족 위해 사는 거는 전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니 인류가 최고라, 인류 위해서 살라 하는 거는 다 죽는 것입니다. 인류는 인류 아닌 다른 것을 위해서 살아야 인류가 사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인간 지식이라 하는 것은 몰라 그렇지 인간 지식 속에 들어가면 그만 파묻혀 버리요. 인간 지식 속에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인간 지식을 보면 인간 지식 그거는 다 참 근시자의 노름입니다. 멀리 보지 못하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소경 노름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지식이 제일 중요한 것인데, 그러기에.
하나님의 속성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지식입니다.
인간 지식 하나님 지식 두 가지가 있는데, 인간 지식은 어떻게 살라고 말합니까? 자, 말해 보이소. 첫째, 하나님도 뭐 모든 이웃도 다른 사람도 만물도 상관없이 자기 좋게 자기 위해서 살라 했으니까, 자, 이 일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판단해 봐요. 이대로 살면, 이대로 살면 그 일이 잘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한번 생각을 해 봐요. 속에 그게 있어야 돼.
하나님도 상관 없고 모든 이웃도 상관없고 저 좋게만, 이러기 때문에, 저거 가정만 알고, 저거 가정에 저만 알고, 제 기에 해로우면 막 어림도 없습니다.
제기에 해로우면. 저 좋게 제 기분 좋게,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다 자기 좋게 하다가 죽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죽었어. 세상 지식은 자기 좋게.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이라면 내게 유익하겠느냐 저라면 내게 유익하겠느냐, 자기에게 유익한 그 점을 취해 가지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 그 말이오. 세상 지식이라.
그게 망하는 길이라. 그렇게 살면 되겠소. 안 되겠소? 여러분들 속에 지금 판단이 나야 돼. 그렇게 하면 되겠소 안 되겠소? 자, 혹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 그러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몰라, 그렇게 느끼는지. 절대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자기 위해 사는 거는.
자기 유익하도록 사는 거는 절대 안 된다! 자기 위해 사는 거는 절대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막 외워서 절대! 절대! 절대! 이래 쌓아도 닥쳐 놓으면 저 좋도록만 합니다. 저 좋도록 하는 자와 하나님과 이웃을 좋게 하는 자 와는 달라.
또 하나는 인간 지식은 뭐 좋도록 살라 합니까? 예? 세상 좋도록 살라 합니다.
세상 좋도록 살라 하는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 하나님도 계시지, 하나님의 심판 있지. 법칙이 있지, 또 내세가 있는데 세상 좋도록 우선 좋도록만 살라 하면 그 지식이 틀렸습니까? 바릅니까? 예? 틀렸소 바르요? 틀렸습니다.
이게 소용없어. 인간은 심판도 있고 내세도 있고 부활도 있고 하나님도 계시고 이런데, 우선 이 세상에서 저 좋도록만, 이 세상 좋도록만 살면, 세상 좋도록만 살면 그 방편이, 방편이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조그매 틀렸소 많이 틀렸소? 얼마나 틀렸습니까? 미친 짓이야. 그것은 절대 자기 망하는 일이라. 그런 거 아니겠소? 또 사람은 죽을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부활도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도 생각지 안하고, 천국과 지옥도 생각지 안하고 우선 살아 있는 것만 생각하고 사니까 그 사는 생활이, 자기는 전부를 가졌는데, 부활도 가졌고 지옥도 천국도 앞에 있고 심판도 있고 하나님도 있고 다 있는데 그저 우선 살아 있는 동안에만 유익하도록 사니까 그 생활이 바로 되겠소 안 되겠소? 혹 바로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을 생각하면서 그 속에 '이게 절대 바로 될 리가 없다. 이게 참 미련한 일이다.' 이렇게 그렇게 사는 생활이 망하고 망하고 망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이 짐승 같은 생활이라 하는 것을 자기 속에 뼈저리게 느끼고 느끼고 해도 이 일이 안 되는 것인데 그걸 깨닫지도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니 말해 봐야 안 들린다 그 말이오. 여기서 안면을 보면 알아요. 이 말할 때 그저 이런 거,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살아 있는 그 산 것만 생각하고 산다.' 이러면 자기 속에 '참 그렇다! 오늘까지 사는 게 참 그렇다.' 속에 그 가죽 껍데기의 형상이 확 변해져야 되는 그런 아무 감각이 없어. 내가 여기서 볼 때에 그런 사람이 하나도 안 보여.
하나님의 지식은 경건을 위해서 살아라 이래. 하나님의 지식은 경건을 위해서 살아라, 경건하게 살아라.
그러면, 경건을 위하는 것이 뭐이며 경건하게 사는 게 뭐입니까? 경건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 좋게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그 생활을 위해서 노력하라, 경건하게 살아라, 경건은 뭐인데? 경건하게 살라는 것은 지식을 말하는 것이고. 경건을 위해 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고, 경건하게 살라 하는 것은 자기가 경건 행동 경건 사람이 되라 그말입니다.
경건 행동 경건 사람이 되라 이랬는데, 경건 행동은 뭐입니까? 경건 행동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라 그것입니다. 경건생활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경건 생활입니다. 경건 사람은 뭐이냐?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사람이 된 것이 그것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경건한 행동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경건한 생활해야 됩니다. 경건한 생활을 뭐하려고 합니까? 경건한 생활 하는 것은 경건한 사람 되려고 경건한 생활 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행동 하는데. 경건한 행동은 일생 동안 했는데 경건한 사람은, 하나도 안 됐으면 그 사람은 다 죽은 사람이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경건한 행동 하는 것은 경건한 생활 하는 것은 경건한 사람 되기 위해서 경건한 행동과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 행동을 해야 경건 사람이 됩니다. 경건 행동은 뭐인데? 자, 첫째 경건 행동은 뭐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것,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법칙대로 사는 것 그게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법칙대로 사는 거, 그러면. 그렇게 사는 데에 뭘 보면서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법칙대로 사는 데는 그만 살았으면 되는 게 아니라 살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죽었다가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검사가 있어요. 하나님의 검사 앞에 서야 돼.
하나님이 검사하는, 하나님이 검사하는 검사 이름이 뭐입니까? 심판이라.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야 돼. 하나님의 심판에 검사받을 줄 알고, 이 모두 보면 수출품을 말이지, 수출품을 조금 나라의 그 회사가 신임이 있다.
이러니까. 그 나라 그 회사의 물건을 신용 있다고 떡 외국에서 주문을 해서 가져오면 이 직공이라 하는 것들이 물건을 만들면 그저 만들어 가지고 그만 만들어 내면 된다 이래 가지고 '만들어 내는 데는 여기 우리 공장 안에 검사하는 이 있으니까 검사원에게 돈을 전 가지고 검사만 통과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저 외국에 가 가지고 전부 들어온 걸 검사를 다 한다 말이오. 검사를 다 해요. 검사 다 해 가지고 혹 본인들은 몰라도 검사를 다해 가지고 틀린 거는 그 나라에서 전부 빠꾸를 다 해 버려. 그 나라에서 다 빠꾸해. 이러니까, 검사가 없는 줄 알고 한 사람들은 수출은 많이 했는데 나중에 가서 검사원 앞에 가서, 처음에 막 물건을 만들어 자꾸 보냅니다. 주문 오니까 자꾸 보내는데, '하 됐다' 하고 마구 보냈는데 나중에 가 보니까 그걸 검사해 가지고 싹 되돌아온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 망했소 안 망했소? 검사를 생각 안 하고 제품을 했기 때문에 망했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되 하나님의 검사가 있다 이걸 생각하면서 살아라, 검사가 있어서 사니까 까다롭기는 까다로운데, '그렇게 까다롭게 사니까 참 괴롭다.' 괴로운 게 아니라 검사에 맞으면 영원무궁세계가 있다 그 영원무궁세계가 있고 이 세상에서는 짧은 하루 밤 나그네와 같으니까 짧은 토막에 괴로워도 영원무궁세계에 큰 대우가 있으니까 그걸 생각하면서 검사에 합격되도록 살아야 되지 않느냐하는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위하느냐 하나님 위하느냐 그 둘 중에 하나라. 자기 위하지 말고, 마귀는, 세상 지식은 자기 위하라 했고. 하나님은 너 위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또 인간 지식은 세상을 위해라 이렇게 말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무궁 세계를 위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사람 지식은 너는 살아 있는 동안을 생각해서 살아 있는 동안에만 맞춰서 살아라 이랬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살았다가 죽고 죽었다가 부활하고 부활하고 난 다음에 심판받고 그 다음에 영원무궁세계가 있으니까 이 전부를 생각하고 살아라. 그 전부가 어디 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라 하신 법칙을 주셨으니 그 법칙대로 살면 다 맞습니다.
그 법칙대로 살면 죽음에도 후회 없이 딱 들어맞고, 부활에도 후회없이 딱 들어맞고, 하나님의 심판에도 후회없이 딱 들어맞고, 무궁 세계에도 딱 들어맞고 다 맞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라 이것이 자기를 위한 영원무궁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경건이 뭐입니까? 자, 경건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법칙대로 사는 거, 그러니까. 우리는 그저 매일 매일 생활에서 날 위하는 생활이냐 하나님 위하는 생활이냐? 요 두 가지를 자꾸 씨름을 해야 됩니다. 이 시간 이거는 나 위한 말이냐 하나님 위한 말이냐 그것을 판단해야 돼. 나 위한 말이냐 하나님 위한 말이냐? 제 딴에는 다 뭐 하나님 위하고 사람 위하는 것 같지만 그것을 잘못 판단하면 심판받아요. 헛일이라. 자기 위하느냐 하나님 위하느냐 그것을 생각하고, 금생 위주로 사느냐 금생과 내세 전부를 위해서 사느냐, 전부를 보고 사느냐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