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23:01
하나님의 주권
1984. 4. 8. 주일오후
본문: 사무엘상 7장 12절∼14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습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주권이라, 주권이라 말은 권세를 혼자 가졌다 독권이라 하는 그런 말과 다른 말입니다. 주권이란 말을 사람들도 종종 쓰기는 쓰지마는서도 아주 뜻이 다릅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주권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권세는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세 아닌 권세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뿐인데 이 권세는 건설하는 권세도 있고 파괴하는 권세도 있습니다. 권세가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또 하나님의 것이고 또 하나님에게만 있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멸망하는 권세도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또 구원 얻는 권세도 다 하나님에게 서 나왔습니다. 다만 이 권세는 건설하는 권세와 파괴하는 권세로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파괴하기 위해서 파괴하는 권세를 내셨고 건설하시기 위해서 건설하는 권세를 내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셔 가지고서 그 자유로 파괴하는 권세를 제가 써서 사용해서 자타를 파괴하는 그런 결과를 맺을 수도 있고, 또 자기에게 주신 자율을 가지고 건설하는 권세를 써서 자타의 건설하는 그 결과를 맺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권세는 이 사람의 것도 있고 저 사람의 것도 있고, 이 사람이 만들어 놓은 권세도 있고 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권세도 있고 권세가 뭐 여럿이 권세를 내고 그 여럿이 그 권세를 다 각각 주장하고 있는 그런 주장을 가리켜서 여기 주권이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피조물들에게는 권세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만드셨고 또 만드신 그것들에게 여러가지 종류의 권세를 다 부여해 주셔 가지고서 그 권세로서 어떤 것은 자라고 어떤 것은 죽고 어떤 것은 건설되고 어떤 것은 파괴되고 자꾸 이렇게 그 자유성을 활용해 가지고 그런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서는 타락한 지위에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구속을 받은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예수님의 대속이 있은지 후로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택함을 입은 사람들과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두 종류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그 지공하신 지공성에다가 비추어 볼 때에 사람들이 꼭 같이 타락을 한 것을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은 구원하시고 저런 사람은 구원하지 안하시고 그렇게 선택과 유기한다면 하나님의 그 지공성에 맞지 않다 그렇게들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그것보다도 하나님께서 근본 사람을 짓기 전 하나님의 의지의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구원되는 사람을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창조해서 벌써 그 사람이 창조되기 전에 구원얻을 자로 예정이 되어 있는 그것을 말하면 더우기 하나님이 어떻게 그렇게 불공평할까? 또, 하나님이 멸망할 사람은 멸망하도록 예정하시고 멸망할 사람으로 창조하셔 가지고 멸망을 하는데, 그래 놓고 또 하나님께서 너는 범죄해서 이렇다 저렇다 그렇게 정죄하는 그런 판단하는 것이 다 모순되지 않은가. 그것이 하나님의 진실이라는 속성에 비추어 볼 때에 맞지 않다 그렇게들 사람들이 논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말이지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에서 당신이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목적에 반대되는 것을 만드셔 가지고서 목적을 이루시고 또 목적에 그 건설하는 건설을 방해하는 것을 만드셔 가지고 건설을 더 견고케 온전케 하는 그 하나님의 당신의 홀로의 기뻐하시는 뜻으로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대로 이루시기 위해서 없는 가운데서 당신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창조를 받았든치 저렇게 창조 받았든지 창조받은 것은 아무 권세가 없습니다. 창조하신 대로 저는 창조되었고 또 창조하셔 가지고 쓰시는 대로 쓰셨지 어떤 것을 하나님이 만드실 때에 가장 피조물 가운데에 제일 불행스러운, 말하자면 불행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창조되었다 할지라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 이의를 해 봤자 소용없고 또 할 수도 없고 해야 효력 없고 그대로 없는 가운데 지으니까 지음 받았고, 또 죽게 하시니까 죽고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 의지대로 예정하신 그 예정을 또 주권 능력대로 이렇게 하시는 것이니까 그대로 움직여지지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귀하게 쓰는 그릇과 천하게 쓰는 그릇을 각각 그 토기장이 뜻대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만들어진 그릇이 만든 토기장이에 대해서 왜 나는 이래 만들었나 저래 만들었나 할 권리도 없고 만들은 대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성경에 간단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셨고, 또 지음을 받은 것들이 이런 권세 저런 권세, 이런 힘 저런 힘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으신 거와 같이 그 권위나 힘도 없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줘 가지고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처럼 모든 면이 온전하고 구비한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파괴를 알려야 되겠고, 건설을 또 알려야 되겠고, 옳은 것을 알려야 되겠고, 또 삐뚤어진 것을 알려야 되겠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계대자로 모든 천상천하에 있는 피조물을 하나님 대리로 관리하고 통치하고 시은을 은혜를 베풀 수 있는 그런 자로 만드시려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하나님 다음 만물 위 위치를 가진 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이 만드실려고 하시기 때문에 거기에서 파괴를 피조물에게 자유를 줘서 자유 의사 자유 의사를 살려 가지고서 자유의 의사로서 능동적으로 모든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해 가지고 삐뚤어진 것은 배제하고 옳은 것은 따라서 행하도록 이렇게 해서 다 자유성을 줘서 창조해서 양육하시고, 또 거기에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온갖 구비한 지식과 구비한 지식과 구비한 모든 판단과 구비한 평가와 구비한 경영 모든 면이 온전하고 구비해서 부족함이 없는 자 되게 하려고 하시기 때문에 거기에는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를 짤막한 이 한 토막의 세상살이를 두시고 우리 자신들만 해도 수많은 현실로 자꾸 바꾸어지고 또 우리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형편을 듣고 보고하는 그 모든 것들도 많이 바꾸어집니다.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종류의 파괴도 알리시고 또 건설도 알리시고, 또 파괴는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 나감으로 파괴가 되고 하나님의 그 법칙과 인도를 따라감으로 건설이 되어지는 이것을 실물로 마치 교재를 삼아 가지고 실지의 교재를 삼아 가지고 가르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실물 교재라' 그렇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가르치는 교실이라 배우고 가르치는 집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고, 또 모든 면에 실험하고 연구하고 또 연습하고 또 연단하고 연성하는 그 세상이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그 사랑을 가지고 모든 면을 구비해서 상상도 못할 그런 모든 것들도 다 구비해 놓으시고 이것을 마음대로 이렇게 쓸 수도 있고 저렇게 쓸 수도 있는 그 환경 속에다가 넣어 놓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이제 타락을 한번 경험해서 멸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대속하셔 가지고 중생을 시키셔서 하나님의 인도가 타락한 자들에게는 없는데 하나님의 인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구됐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배반함으로 죽은 것이 인간이요 또 하나님의 인도를 따름으로 다시 구원받게 된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구속해 놓으시고 이런 저런 모든 재료들을 구비해 놓고 하나님이 여러가지로 인도하시고 법칙을 보이시면서 이것도 한번 연습해라 저것도 한번 연습해 봐라 이래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시는 이 모든 자연은총의 오만 것들을 가지고 다 연습하는 이 세상이라. 연습하고 난 다음에는 연습한 그것들도 다 두고 연습한 사람과 연습한 기능과 또 연습할 때에 의롭게 옳게 쓰여진 그것들과 이것은 다시 새 하늘과 새 땅에 그게 만물이 새로와 질 때에 그대로 있고 나머지는 다 원소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제일 알속 있게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제일 알속 있게 사는 사람인가?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온전한 자를 이루시기 위해서 짧은 한 토막 세상을 두셨기 때문에 보이고 접촉 되고 모든 것 있는 이거는 전부 다 하나님의 것이요, 다만 나는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무궁세계의 것을 연습해서 그 연성하는 실력만이 기르는 것이 나의 알속이라 그렇게 생각을 하고 거기에서 연습을 하는데. 이걸 바로 깨닫고 옳게 연습하는 사람은 자존하신 하나님이 무궁세계에서는 당신에게 배치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당신과 동행할 수 있는 존재들만 다 무궁 세계에는 남아 있고, 또 하나님의 그 한 분의 뜻, 한 분의 목적, 한 분의 경영, 한 분의 소원, 한 분의 그 모든 그 계획을 뜻을 그대로 이룰 수 있는 그런 시공자 그런 실력가를 만드실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쓸 수 있는 것, 그 나라에 필요한 그 실력, 또 무궁세계에 그 나라면 무궁세계인데 무궁세계에 하나님에게 필요한 존재, 또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존재, 자기에게 필요한 존재 이것을 연습하고, 또 틀리면 또 재벌 몇십 번이든지 연습을 하고 또 연단을 해서 어떤 장애가 있어도 어떤 장애가 있어도 그 장애를 다 능가하고 이룰 수 있는 그 연단을 받고, 이래서 모든 것에 제재 받지 안하고 참 온전타 할 수 있는 그런 연성을 이루는 무궁세계의 그 실력을 자꾸 이 연습 가운데서 연습해서 의를 연습하는 것 진리를 연습하는 것 영감을 연습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을 연습하는 것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연습하는 것 한 말로 말하면 믿음 연습인데, 이 연습만이 세상에서 할 일이라 이것을 깨닫고, 연습하는 데에 이런 재료로 이런 연습도 하고 저런 재료로 저번 연습도 해서 연습이 온전하고 구비하면 그 사람이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이런 것 저런 것을 재료로 삼아 가지고서 이용해서 연습을 하는 세상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아셔서 순서도 틀림없이 또 필요성도 착각 없이 그렇게 현실을 만들어 주시니까 현실을 만드는 데에는 하나님이 책임졌으니 그 현실을 내가 손을 대어 가지고 이렇게 잘 돼 갈라 하는 그런 생각 가지지 안하고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 현실이라는 재료를 이용 해 가지고서 거기에 적당한 연습을 해서 연성되도록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요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다 성령의 사람들이오.
바울이 말하기를, '과거에는 내가 족하게 여겼고 또 소원했고 가치로 여겼던 그런 것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다. 이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얻어지는 것만이 참인 줄 알기 때문에 땅위에 이 모든 것은 이것은 다 배설물이다.' 이 배설물 속에 알맹이는 뭐이냐? 알맹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온갖 구비하고 무한하고 충만한 것을 내가 연결되어서 내것으로 삼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살아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온전하시고 거룩하시고 깨끗하심이 아무것도 아닌 나를 통해서 나타나서 이제 하나님이 그 무한하심이. 나를 통해서 만물에게 무한히 나타나서 만물에게 충만케까지 되어지는 이것이 자기의 알속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은 과거에는 그거 배설물이라, 과거에는 이 배설물만 가지고서 자기는 가치로 삼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연습하라 하니까 그것 가지고서 연습은 하지 안하고 자꾸 꺼멍꺼멍 연습할 재료를 다른 사람도 연습하지 못하게 제가 끌어 모아 가지고서 그 모아 가지고 제것인 줄 아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고, 또 영원을 연습하는 것인데 현재에 그 재료 다툼에서 시비해 가지고 재료 그것이 자기가 치부가 되는 줄로 알아서 그렇게만 생각을 해서 자꾸 남을 해치고 거기에서부터 남을 돕는게 아니라 남을 해치고 남의 것을 빼앗고 남에게 도움받고 하는 그 파괴를 자꾸 연습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권세가 다 권세는 하나님께서 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영계나 물질계에 어떤 존재든지 하나님이 짓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또 지음을 받은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서 자기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 모든 존재들과 관련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이래서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힘이라 할 수 있고 권세라 할 수가 있고 그것들이 다 연결돼 가지고서 움직인다면 그 단체 움직임 그런 것도 다 권세라고 이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권세도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생겨진 것이라.
그래서 로마서 13장에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뭐 정권의 권세만 그렇게 한 걸로 생각하지마는서도 권세는 종류대로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지 안한 것이 없다 하는 말은 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것은 영원히 자존하신 분은 한 분이시요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은 지음을 받았다 해서 우리는 일원론을 믿습니다. 원인이 하나라, 원인은 하나님 한 분이 원 인이라, 원인이 하나라 해 가지고서 일원론을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세부에 세부면으로 들어 가 가지고는 그 일원론이 아니라 다원론으로 이렇게 고만 미혹을 받아 가지고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다 이래 다원론으로 미혹을 받는 것도 많이 있고, 또 권세가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안 한 권세도 있는 것으로 이렇게 자꾸 혼돈시키고 착각해 가지고서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실패케 합니다.
권세는 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분에게서 났다, 모든 권세는 그분에게서 났다 죄를 짓는 권세도 그분에게서 났고 의를 행하는 권세도 그분에게서 났고 아주 명철한 존재도 그분에게서 지음 받았고 아주 우둔한 것도 그 분에게서 났고 모든 선량한 것도 그분에게서 지음 받았고 악독한 것도 그 분에게서 지음 받았다.
그런데, 그분의 한 것은 그 모든 이런 것 저런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동기가 뭐이냐? 동기가 하나님처럼 온전한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한 것이요 또 그 목적의 결과는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그 결과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을 구비시킨 그것을 단편적으로 보고 사람이 좁은 범위에서 조브라운 생각을 가지고서 이것은 하나님이 잘못됐다 잘 됐다, 또 이거는 원망거리다 이거는 불공평이다 공평이다.
또 이것은 원인이 거기에 속한 것 이리저리 여기에 속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좁은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그런 미혹적인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지식에도 터가 되는 지식을 단단히 잡고 그 터를 요동치 안해야 됩니다.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 혼자만 계셨습니다. 요것이 어데든지 미혹받지 안 하고 요동되지 안하고 이대로 나갈 때에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혼자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누가 예정을 당신 혼자 했다 그말이오. 혼자만 계셨고 혼자 예정했습니다. 또 예정한 것을 지금 많이 이루셨고, 지금도 그 예정한 것을 뭐 개미 한 마리가 개미 한 마리가 지금 오늘 났다, 또 내일은 또 무엇이 났다 하는 나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이나 그 전부의 원인이 하나님이시라.
그 한 분이 원인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분이 한 분이 원인이신데,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원인이시면 죄짓는 것 죄도 다 하나님이 원인이신데 죄를 하나님이 원인을 만들었으니까 인간이 죄 안 지을래야 안 지을 수 없는 것인데, 그래 놓고 하나님께서 또 이렇다고 이렇게 심판하고 하시는가 이렇게 정죄를 하시고 책망하시고 노하시고 이러는 것인가? 그것이 다 하나님이 당신이 어떤 분이시며 당신의 뜻이 무엇이며 만물에게 대해서 당신이 어떻게 통치하시고 관리하시고 치리하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 인생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알려서 이 세상은 이런 것 저런 것 연습을 시켜서 알려 가지고 이제 여기에서 연성된 것이 앞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통일되어서 다시는 그런 타락이나 그런 이탈이나 모든 그런 삐뚤어진 것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완전 무결로서 영생하는 그 나라가 수립돼 가지고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가 영원히 존속되는 것이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만일 범죄했을 때에 범죄했을 때에 그 범죄에 대해서 아이구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법칙을 어겼다 그 어겼다는 것을 자기가 깨달으는 것이 좋습니다. 어겼으니까 이것을 고쳐야 되겠다 그것도 좋습니다. 어겼으니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으니까 자복을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도 좋습니다. 또 어겼으니까 어긴데 대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징계를 받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게 되면 그거 말로 쉽지 그거 참 굉장한 것인데 그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인데, 그렇게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영원전 예정하시고 영원의 그것을 주권 능력으로 섭리해 나가시는데 왜 내게 이렇게 범죄한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거기에 대해서 그저 법칙을 어겼으니까 범죄라 회개해야 되겠다, 이거는 고치야 되겠다, 눈물을 흘리겠다는 그런 단순한 데에서만 있을게 아니라. 왜 이런 순서가 내게 됐을까 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해서 그저 잘못된 것 그것만 단순히 깨닫고 고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내 구원에 필요하기에 그것이 나와 관련된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기에 그분이 필요성으로 느낀 그 필요성의 범위성이 어데까지 가는가 하는 그 범위성도. 자기가 자꾸 점점 생각해서 넓게 깊이 알려 갈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시요, 이러니까 하나님 그 온전하신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 외에는 슬기로운 일이 없다,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 그분을 바라보는 것 그분을 의지하는 것 그분으로 만족하고 그분이 인도하시고 주시는 대로 받는 그 외에 슬기 있는 것이 없고 더 좋은 게 없고 더 성공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을 바라 보고 그분에게서 무엇을 얻고 배우고 인도받으려는 것 이거 외에 더 좋은 게 없다 하는 것으로서 마지막에 결론을 짓게 됩니다.
그럴 때 차차 그 사람은 어데서든지 어데서든지 자기는 만족하고 어데서든지 다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요, 어떤 현실이라도 없어서는 안 될 자기에게는 온 천하의 수억억만의 현실들이 많이 있지마는서도 억억만 명이 가진 그 현실보다도 내게는 내게 당한 요 현실이 내게 대해서는 제일 보배로운 현실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깨닫고 평가하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졸한 데도 처할 줄 안다. 나는 이런 평안에도 처할 줄 알고 고난에도 처할 줄 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지족함을 배웠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족족한 그 이상이 없는 은혜라는 것을 이제 내가 배웠다.' 바울이 말한 것이 그것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권세라는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다 나왔는데, 하나님의 권세를 분류한다고 하면 건설하는 권세와 파괴하는 권세니 파괴하는 권세도 하나님에게서, 건설하는 권세도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인류의 근본인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도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 타락을 하나님이 예정하지 안했으면 타락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타락은 타락은 파괴인데 그 파괴는 다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건설을 전제로 한 건설을 위한 파괴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 위에 권세를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 권세 밖에는 없는데 이 파괴는 건설을 위해서 있고 건설은 파괴를 위해서 있고, 이래 가지고서 이 둘이 서로 이렇게 섞여서 연단해 가지고 마지막에 완제품, 마지막의 완제품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무궁세계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다 검사를 맡아 가지고 그 검사에 통과된 것은 무궁세계에 영존할 것이요 다 영생할 것들이니 양이 적든지 많든지 그것만이 우리의 구원이요 성화요 완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주권이라는 것은 주권이라 말은 권세의 주인이라 말입니다 권세는 그분 한 분에게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또 권세는 그분 한 분이 홀로 주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 권세는 그분 한 분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권세는 그분 혼자 이용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 권세를 우리가 분류하면 건설과 파괴 이 두 가지가 있으니 인간의 자유성을 하나님이 주셔 가지고서 능동적으로 파괴를 취해서 파괴에 나아가고 건설을 취해서 건설에 나아가고 오늘의 파괴를 취해서 파괴에 나아 간 것이 내일에는 또 그것이 건설을 사모하고 앙모해서 건설을 취해 건설에 나아가게 되니까 파괴가 건설을 재촉하고 또 건설이 파괴를 낳게 되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한 토막 세상에서 연단해 가지고 온전함을 이루어 가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는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산주의 김일성이가 살아 움직이는 그 권세도 주님에게서 나왔고 그가 주장하는 것도 주님에게 나왔고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지금 죽이니 사니 하고서 남한을 적화시킨다고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이것도 다 주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게 뭐이냐? 남한에 이제 적화만 되면은 이 교회 이것들이 들어서 서양 사람 미국 사람들하고 친밀해 가지고 있으니까 이거 가서 이 교회부터 없애 버려야 이 미국과 연결줄이 끊어지고 어떻게 한다. 이러니까 남한에 가서 이 기독교를 박멸을 하겠다 이렇게 않는 그것도 주님에게서 나왔어. 그게 뭐이냐? 그것이 교회, 하나님의 목적인 교회를 완성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교회를 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해치는 것은 자기 본인의 자유성에서 파괴 건설을 취하느냐 건설의 권세를 취하느냐 거기에서 이제. 자유 의사, 능동적으로 행동 거기에서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왜 말하느냐? 조브랍지 말라 말입니다.
조그만한 샘 안에 개구리 모양으로 그렇게 조브라운 생각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자기의 좁은 아주 반대속 같은 그 반대라는 그 뭐 고기가 있는데 반대속은 속이 아주 좁답니다. 나는 그 고기를 지금 모르고 말만 들었어. 이랬는데 그렇게 자기 좁은 주관대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주관대로 비판하고 주관대로 평가하고 그래서 주관대로 경영을 하고 주관대로 뭐 이해(利害)라 이거는 승패라 승리라 실패라 이렇게 조브라운 제 마음대로 그 와 같이 하는 사람은 자꾸 자기를 파묻을 매장 구덩이를 파는 거와 한가지입니다. 인간이 자기 주관대로 나가면 자기를 파먹는 매장 구덩이를 자기가 파는 것이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하면 자기가 이 피조물 속에 파묻히지 안하고 천상천하에 있는 피조물을 참 주인공으로 통치할 수 있고 그것을 발 아래 발등상으로서 삼아 가지고서 그 위에 디디고 올라서서 그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자꾸 커지고 넓어지고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을 그런 것을 다 관할하고 능히 은혜를 베풀고 그들에게 통치를 할 수 있는 그런 능소 능대 할 수 있는 그런 자기로서 변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브라운 생각을 가지지 맙시다. 없는 가운데에 하나님이 혼자 계셨습니다. 요걸 꼭 믿어야 됩니다. 없는 가운데 당신이 혼자 계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당신이 모든 것을 영원전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목적은 뭐이냐? 목적은 그 교회입니다. 목적은 교회, 그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목적대로의, 목적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를 만들어서 피조물은 볼 때에 하나님 같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하나님이 피조물로서 가장 잘 순종하는 하나님의 모형적 존재가 되어지고 하는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은 교회의 머리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한 것이 그것으로서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홀로 계셨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목적하나를 정해 놓고 난 다음에 이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난 다음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정은 오늘 이거 여기 갖다 놓은 것도 예정, 내가 여기 설교하는 것도 예정. 여러분들이 여기 앉은 것도 예정, 또 어떤 사람이 날 욕하는 것도 예정, 미워하는 것도 예정. 나한테 친절하게 하는 것도 예정, 모든 것이 예정,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고대로 또 하나님께서 주권의 능력을 가지고서 성취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정도 당신 혼자 했다 그말이오. 또 모든 성취도 당신 혼자 성취하신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대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다. 다 필요 있어 지으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천사장 미가엘이 사탄에 대해서도 천사장 미가엘이 사탄에 대해서도 말할 때에 거기에 대해서 지나친 말하지 안하고 하나님께서 너 잘못됐다고 말을 하실 것이다 너 잘못 됐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렇게 꾸짖을 것이다 이렇게 말했지 거기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속단되는 그런 말을 하지를 아니한 것을 유다서에 기록했습니다.
그런고로, 모든 존재를 볼 때에 그것을 그 존재가 전지하신 이 목적을 정하신 사랑의 주님이 그것을 예정까지 해 가지고 고걸 또 고대로 창조한 것이기 때문에, 그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된 것인데 우리가 그 속단적으로 조브라운 생각을 가지고서 이러니 저러니 논평할 것이 아니고, 저거는 뭣 때문에 존재하냐? 저 존재가 내 눈에 띄었고 내 귀에 들렸고 내게 접촉했고 나와 관련을 가졌으니까 이게 뭣 때문에냐 뭣 때문에 이것이 있게 됐느냐? 이것을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아는 대로 파서 알도록 사색하고. 또 자기가 양심을 써서 영감으로 자기에게 알려 주시는 대로 그걸 알도록 이렇게 노력을 해 가지고서 자꾸 알아서 이제 알아 들어 가고, 깨달아 들어가고, 접촉해 들어가고, 점점 이렇게 확대하게 광대해지도록 광대라 말은 넓다 말이 아니고 광대란 말은 조그만한 것이 자꾸 커져서 넓어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광대한 지식을 가져야 되겠고 광대한 사상을 가져야 되겠고 광대한 소망을 가져야 되겠고 광대한 비판과 평가와 광대한 그 모든 우리의 생활을 이렇게 가져서 스스로 자기 발등을 자기가 쪼는 거와 같은 그런, 자꾸 마귀란 놈이 오해를 시켜서 그런 착각 가운데에서 실패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권세는 두 가지 종류밖에 없는 것인데 하나는 건설, 하나는 파괴 그러면 하나님께서 두 가지 권세를 내시고 그 외에는 권세가 하나도 없습니다.
파괴, 건설 건설 이 두 가지 권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건설하는 권세를 우리가 써서 건설되어 나갈라면은 어떻게 하면 건설되어 나갈 수가 있느냐? 건설되어 나가는 것은 옳은 것, 옳은 것 옳은 것은 자꾸 건설되어 나가는 건설 권세를 쓰는 것이고, 또 삐뚤어진 것은 점점 파괴하는 권세를 쓰는 것이고, 그 죄도 하나님이 내셨고 의도 하나님이 내셨는데, 이렇게 죄로 점점 파괴하는 것을 이루어 나가게 하시고 또 의로 건설하는 것을 이루어 나가게 하나님이 하셔 가지고서 의가 파괴를 봐서 의가 알고, 파괴가 의를 보아서 파괴를 알고 이렇게 해서 파괴된 것을 주워 모아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라고 그것이 복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구렁텅이라고 그래 말하고, 의를 다 종합시켜서 그것을 하늘나라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러니까 지옥과 천국이 지옥과 천국이 이것이 끝난 것이라 하는 그런 말을 우리가 하지 못합니다. 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은 폐해지지마는서도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소망이 항상 있다 말은 앞으로 자꾸 우리가 소망해 것이 있다 말이고 또 믿음이 있다 말은 믿음은 소망을 자기의 것으로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도 항상 있다고 했지. 사랑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그 구원의 섭리도 계속해서 있다고 말씀하시지.
이러니까, 어떤 사람의 그 전기에 그런 말이 세계에서 성자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전기에 지옥에 있는 지옥에 있는 그 유황불 구렁텅이에 거기에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거기에도 희망이 있다. 그 완전 멸망이고 거기에도 또 희망이 있다 하는 그런 말을 한 마디 해 놨는데 그 말 한 마디 한 것으로써 그 책이 정죄를 받아 가지고 모든 학자들에게 정죄를 받아서 그 책이 그렇게 정통 학자들에게 많이 보급이 안 되고 정죄받은 그런 책입니다. 그 사람이 산다씽이라는 사람이 기록한 그 책 가운데에 그런 설이 약간 있습니다. 그라고, 천주교에서는 연옥설을 주장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설을 주장하고 이라는데, 그런데 대해서는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명문 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고 명문된 지식대로 그저 이 세상으로 끝난다 인간의 구원은 제상으로 끝나지 세상 넘어 딴 데 또 지옥에서도 뭐 구원 얻는 길이 있는 거는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믿는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 이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이 조금 문제점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소망이 하늘나라 가서 하늘나라의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면은 그것으로서 소망이 다 이루어졌으니까 또 미래의 남은 소망이 뭐인가 거기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조브라운 생각을 가지지 말고 그저 간단하게 건설은 그 의로 옳고 바로 된 것으로서 건설의 권세를 자기가 쓰게 되는 것이고, 또 파괴되는 권세는 이것은 삐뚤어진 것으로서 파괴되는 권세를 씁니다. 이래서 삐뚤어진 것을 이름하기를 죄라고 이렇게 이름을 말하고 또 바로 된 것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의라 그렇게 말을 해서 성경에 표현해 놨습니다.
의는 어떤게 의인가? 의는 바로 된 것이 의인데 바로 된게 어떤게 바로 된 것인가? 바로 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인간 인간이 하나님과 따로 이래 있어 가지고 하나님에게 속할 수도 잊고 안 속할 수도 있고 이렇게 있던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니까 타락이 됐습니다. 하나님을 배반 하니까 그것이 죄의 종자입니다. 삐뚤어진 것.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에게 속하지 안한 것이 인생이 삐뚤어진 것이요 하나님을 딿지 안하는 것이 인간이 삐뚤어진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법칙을 지키지 안하는 것이 인간이 삐뚤어진 것이요 인간이 제가 독존자처럼 저 홀로 무엇을 해 보고 살아 보겠다 하는 것이 그게 삐뚤어진 거라.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간단하게 그 선악과 먹지 말라 했는데 선악과 먹어서 삐뚤어진 그것이 여러 가지를 다 내포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삐뚤어짐으로써 어떤 결과를 맺었느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실하게, 사망을 낳는다 죽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 인간이 그 후로 전부 보통 생육법으로 난 사람은 다 이 사망을 다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망을 받고 있고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사망인데 제일 싫어하는 사망이지마는 사망을 안 받을 수 없어 모든 사람이 사망을 당한다는 것이 뭐이냐? 사람이 아무리 싫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고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저는 그 보응을 받고야 말지 어길 수가 없다. 사람이 늙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이요, 사람이 죽기 싫은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절대성을 반항하고 싶고 절대성을 그것을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이요, 죽기 싫다는 것은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이요, 죽기 싫은데 죽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성을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하는 그것으로서 거기에서 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그 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줘서 모세로 통해서 율법 준 것은 죄를 알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율법인데,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왔고 이제 옳고 바른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와서 예수님은 참 사람으로 옳은 사람이요 바른 사람이요, 옳은 행위 바른 행위, 하나님이 제일 만족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조금도 부족함이 결함이 없이 완성을 이루고 만족을 이룬 것이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입니다.
그러면 이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힘입어 가지고 그 대속의 공로를 힘 입어서 대속의 공로를 힘입는 것이 우리 사람들에게는 첫째로 옳은 것의 종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대속한 공로 그 대속한 공로를 자기가 힘입는 것이 우리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제일 옳은 것의 종자입니다. 대속의 공로를 힘입은 사람이 점점되어져 가는데 죽는 날까지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 주님이 나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 내가 죽은 자로 살고 내가 남아 있는 것은 대신 죽은 자를 위해서 사는 이 연습을 몇천 번이든지 해서 죽기 전에 이 일이 완성 된다면 성공입니다.
우리의 옳은 것은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자기의 대속으로 믿고 자기 대속으로 있는 이것이 첫째 의요,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선물 온 것이 있으니 그 선물이 뭐이냐?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 그 지식을 두번째 우리가 가지는 것이 우리의 의요. 세번째는 그 지식 속에 성신의 무한하신 그 감화가 다 쓸라면 세상에도 둘만한 책이 모자란다고 하는 은밀의 그 영감 의지 영감의 뜻 그것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가지는 것이 이것이 첫째 둘째의 일호 이호 삼호의 우리의 의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세 가지 활용으로서 자기 그 영은 이 세 가지로 하나님이 객관 역사로써 변화를 시켰기 때문에 우리의 지금 말은 우리 마음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이 말하고 있습니다. 영은 벌써 중생돼 개조됐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몸이라는 이것이, 넷째로 옳은 것은 뭐이 넷째로 옳은 것이냐? 넷째로 옳은 것은 이 세 가지가 합동 역사를 하는 이 세 가지가 합동 역사를 하는 데에 우리의 심신이 그 합동 역사에게 붙들려서 합동 역사에게 속해서 합동 역사에게 피동되어서 있는 것이 그것이 이제 넷째번의 우리의 의입니다. 넷째번의 의가 계속해서, 그러니까 그 세 가지 역사에게 소속하는 일 거기에서 피동되는 일 이것이 그저 계속해서 죽 나가는 것이 이것이 우리 사람들에게는 옳은 의가 됩니다. 이 외에는 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의는 불택자에게는 있을 수 없고 예수님이 그 대속을 담당하지 안한 자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택함을 입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이 의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죄의 값은 사망이요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이니라' 로마서 6장 끝절에 말씀하신 이 의를 사람들이 간편하게 생각하기를 인간들이 의인이라 의인이라 뭐 의인이라 의롭다 하는 그런 껍데기 껍데기 권위 없는 그런 것으로서 사람들이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래서, 이 세 가지 의의 종자를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그 종자가 커 나가는 것은 뭐이냐? 이 세 가지 힘으로서, 예수님의 대속과 진리와 영감과 이 세 가지 힘으로서 우리의 마음이 자꾸 변화되어 나가는 것, 또 우리의 모든 몸이 변화돼서 기능이 이렇게 변화가 되어 나가고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심신의 기능이 변화돼 나가고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심신의 기능이 변화돼 나가니까 이 세 가지로 말미암은 심신의 기능이 변화된 그 기능이 모든 일들을 접할 때에 그 일이 변화돼 나가고 물건을 접할 때에 물건이 변화돼 나가고 자꾸 이렇게 변화돼 나가는 이것이 뭐이냐? 의로운 행위라, 그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또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라 그렇게 말씀을 표시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의인데 이 의로 말미암아서는 뭐이 되는가? 이 의로 말미암아서는 우리에게 사는 것 의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이 사는 건설 말이요 사는 건설, 의를 쓰면은, 건설하는 권세를 쓰게 되고, 건설 하는 권세에 속하기 때문에 건설이 되는데는 이 생명 건설이 됩니다. 생명 건설이 되는 것은 육체의 생명 건설도 되고 영의 생명 건설도 되고, 또, 이 의로서만 복이 건설됩니다. 복이 의로만. 복이라면은 자기의 인격이 복된 인격의 복도 있겠고 지능의 복도 있겠고 속성의 복도 있겠고 또 자기의 모든 영광의 복도 있겠고 돈복도 있겠고 돈복도 있겠고 집복도 있겠고 옷복도 있겠고 뭐 먹는 식복도 있겠고, 있겠으나 이제 모든 복 모든 복은 의로 인해서 이루어집니다.
또, 모든 존귀가 다 자기가 높아지는 것도 이 의로 말미암아서만 높아집니다.
이 의로 인해서 의를 하면 건설하는 권세 이 건설하는 권세에 자기가 속해 가지고서 건설하는 권세를 힘입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건설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건설하는 권세에 속하면 건설이 되고 파괴하는 권세에 속하면 자기는 그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서 사니까 파괴가 되고, 건설하는 권능을 가지고 사니까 자꾸 건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의가 되면은 존귀의 이것이 이루어지고, 또 그 의가 이루어지면 자기가 귀한 사람이 됩니다. 귀한 것 무엇이든지 뭐 일에 귀한 일, 귀한 사람, 귀한 행동, 귀한 사업 모든 것 귀한 것도 이것도 의의 권세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성공하는 것도 그 성공은 이거는 좋은 성공 옳은 성공을 말 합니다.
세상에는 성공 같으나 실패하는 것 많습니다. 사람들은 마귀가 주는 거는 전부이 실패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의만이 우리에게 성공을 주지 의 외에는 우리에게 성공을 주지 못합니다. 의 외에 우리에게 성공을 준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뭐이냐 하면 내나 이원론자입니다. 이원론자요 그 사람이 무신론자요 그 사람이 자기가 우상된 자요 그 사람이 우상을 벌써 섬기는 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공도 무슨 성공이든지 자기에게 참 성공은 뭐 조그만한 성공 물질의 성공이든지 일시 성공이든지 무엇이든지 옳은 성공 참 그것이 멸망이 꺼풀을 입고 성공으로 나타난 그 멸망의 색깔 칠해 놓은 멸망을 가장해 놓은 성공 아닌 성공이라면 그 성공은 전부 의로 인해서만 성공이 되지 의가 아니고는 성공이 없습니다.
또, 자기가 강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강해지는 것도 의로서만 강해칩니다. 인간이 의를 행할 때에 의를 행할 때에 그 의의 능력이 의에 속한 권능이 자기를 강하게 해 주지 강하게 해 주지 의에 속하면 의에 속한 능력에 붙들려서 자기가 강해지는 것이 제가 단독이 강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이 이 결과만 보고서 그 결과를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천치 바보입니다. 어리석어 그렇습니다.
이제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은 멸망을 취하는데 멸망 그것도 제가 못합니다. 멸망 그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으로 멸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멸망을 자기가 아무리 취할란다고 취해지지도 못하고 그것을 벗고 싶어도 벗지 못합니다. 죄의 값은 이 파괴의 권능으로 갑니다. 삐뚤어지면 마치 삐뚤어진 것은 모든 것을 삐뚤어지게 하는 그 능력에 속하기 때문에 그게 삐뚤어지니까 그 결과로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 낳는다.' 그렇게 장성. 성장성을 거기에 가리켜서 말씀을 했습니다.
또, 자기가 즐거우면 또 참된 그 쾌락도 의의 능력이 우리에게 해 주십니다.
쾌락이라는 것도 의의 능력이 해 주는데, 자꾸 내가 의에 속해서 의에 속해서, 의가 무엇인데? 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의가 있으니까 의가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의입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의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인 이 진리, 또 예수님의 대속을 완성해서 완료하기 위해서 완성하기 위해서 영감 보혜사 성신이 오시면 내 것 가지고 증거하리라. '보혜사 성신이 오시면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너희들이 지금 깨닫지 못하는 것을 성령이 오시면 깨닫게 하리라.' 이러니까,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요, 대속으로 말미암은 진리와 영감이 우리 자체 의요, 행위의 기능 의요.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만 속하면 자꾸 이루어집니다. 여기에게 의에 속해서 의에 속하면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나를 강하게도 만들어 주고 나를 참 아주 쾌락도 만들어 주고 또 나를 영존하게 합니다. 자꾸 내가 있는 걸 아무로 다른 사람이 깰라고 해도 못 합니다. 그 존멸, 존재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그 존재는 의에 속했습니다. 의의 권세 건설하는 권세에 속한 것입니다. 존재도 건설하는 권세요 또 존재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고 즐거움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고 강한 것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고 성공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고 귀하게 되는 것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고 높으게 되는 것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고 복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고 자기의 생명도 건설하는 권세에 속했습니다.
그러면 이 건설하는 권세에 속해서 그 권세가 와야 이것을 해 줍니다. 그 권세 아니고는 해 줄 수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우리 자유성을 가지고서 어느 권세를 네가 청구하겠느냐 어느 권세를 내가 청하겠느냐 어느 권세에게 속하겠느냐? 네가 어느 권세를 청하나 네가 청하는 대로 그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가 네게 와서 일할 수 있다. 어느 권세를 청할래? 건설하는 권세를 청할래 파괴하는 권세를 청할래? 파괴하는 권세는 삐뚤어진 것을 인해서 오는 것이 파괴하는 권세요 건설하는 권세는 의로 인해서 오는 것이 건설하는 권세라.
그러면 파괴하는 권세는 죄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 파괴하는 권세인데 죄는 어떤 것이 죄냐?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그 모든 역사를 반대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 반대하는 것이 하나님 반대하는 것이 죄요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것이 죄라 말이오.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것이 죄요 둘째로는 하나님이 하신 그 일에 대해서 삐뚤어진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뭐이냐? 하나님이 하신 일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서 대속하신 것인데 이 대속에 삐뚤어지면 그것이 죄입니다. 셋째로 뭐이 죄인가?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것. 대속에 삐뚤어진 것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진리와 영감을 받지 안하고 그 타락한 사람들이 이 마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만들어 놓은 지식 마귀 지식 마귀 지식 인간 지식 인간 자식과 악령에게 이렇게 소속된 것이 그것이 죄라. 그러면 죄는 마귀와 합작되는 것이 죄요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부인하는 것이 죄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죄요 이 세 가지가 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에만 속하면 자기는 그 행복도 망치는 행복, 지위도 망하는 권세 또 영광도 망하는 영광. 그러기에 성경에 말하기를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저희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영광이라 하는데 얼마 안 지나 크게 영원히 수치가 될 그것을 영광이라고 이 마귀 이놈이 우리를 속이는 거기에 속아 가지고서 어떻게든 그리 쌓든지 죄에서 죄에서 우리에게 좋은 것이 맺어지지를 않습니다.
맺어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신 일은 예수님의 도성 인신해 가지고 대속 하신 것인데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의, 예수님의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옳은 것이요, 그 옳은 것이 우리에게 우리 대표해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표해 가지고 우리 전체를 대신 담당해 가지고서 옳은 거 해 놓은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 또 이 악령과 이 모든 인간의 자율 이거와 뭉친 것이 이것이 죄 뭉텅이인데 이 죄 뭉텅이인데 제가 죄 뭉텅이에 속해 가지고서 좋은 것이 오리라는 그런 생각을 아야 안해야 됩니다.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죄에 속해 가지고 옳은 것이 좋은 것이 오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현재에 예수님의 대속에게 거슬리고 또 진리에 거슬리고 또 영감에 거슬리고 그 거슬리는 데서 뭣이 해결이 되리라, 거슬리는 데서 무슨 성공이 오리라, 거슬리는 데서 무슨 유익이 오리라, 거슬리는 데서 무슨 행복이 오리라, 거슬리는 데서 무슨 좋은 가정. 좋은 사회. 좋은 직장. 좋은 지위. 좋은 명예.
좋은 영광 오리라 이런 생각은 천부당 만부 당이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절대성을 가지고 이래 가지고 딱 잡고 있는데 무엇이 피조물이 어떻게 이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 가기가 어려울진저 하는 말이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 가기가 어려울진저' 그분이 이래 잡고서 통치하고 있는데 이 뭣이 제가 인간이 이래 저래 흔든다고 흔들어 봤자 저 망치는 것 뿐이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죄는 우리에게 사망을 이룹니다. 또 죄는 우리에게 화를 자꾸 끌고 오게 됩니다. 죄는 화 밖에는 못 만드요. 죄는 죄에게 속한 그 권세 파괴하는 권세는 파괴하는 권세는 죄로 인해서 우리에게 오게 되고 건설하는 권세는 의로 인해서 우리에게 오게 되기 때문에 이 의로 의로 말미암아 건설하는 권세가 오면 우리에게 모든 걸 건설합니다. 모든 걸 건설하고 또 죄로 말미암아 파괴하는 권세가 오면 내 생각도 파괴, 내 정신도 파괴. 내 마음도 파괴, 내 선도 파괴, 내 적선도 파괴, 내 봉사도 파괴, 내 충성도 파괴, 전체가 파괴뿐입니다.
이러니까, 아주 뚝 떨어져서 아주 심히 낮은 자 되는 것도 죄, 죄의 권세, 또 천해지는 것도 파괴의 권세, 또 모든 실패하는 것도 파괴의 권세, 약해지는 것도 파괴의 권세 고생하는 것도 파괴의 권세, 멸해지는, 것도 파괴의 권세, 뭐 전체 내가 죄만 가지면 내가 그만 죄만 가지면 파괴의 권세에게 딱 붙기 때문에 파괴의 권세가 그때부터는 쉬지 않고 내게 와 가지고 자꾸 파괴만 모든 면으로 파괴만 하고 있습니다. 그라다가 이제 거기에서 돌아 서서 의, 의에 딱 속해 버리면 의로 말미암아 이제는 건설하는 권세가 와 가지고서 내게에 모든 면을 건설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조브라운 생각을 가지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 놓으신 이 말씀을 자꾸 상고하고 또 듣고 이랄 때에 그저 지식으로 들어서 지내 보내지 말아요. 설교를 한 말 또 한다. 한 말 또 한다 한 말을 또 할게 아니라 백 번을 해도 자기는 거기에서 받을 것이 있고 고칠 것이 있고 아직까지 백 번 들어도 못 들은 것이 있고 백 번 들어도 그 말씀을 지금 어서 들어서 그 말씀이 내게 필요해서 그 말씀으로 말미암은 효력을 자기가 얻어 가져야 될 것이 있는 것인데, 벌써 한번 듣고 두 번 안들을라 하는 거는 이 말씀이 어떤 건설을 하며 어떤 권능을 가졌으며 이 말씀이 어떤 결과를 맺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전혀 무식이기 때문에 이거나 한가지지 인간의 지식과 같은 그런 지식 모든 도서실에 가면 있는 것 인간들이 말해 놓은 인간들의 철학자, 모든 종교 창설자들, 종교 창설자들 이런 자들이 말해 놓은 인간의 말과 같은 그런 말로 알기 때문에 그것이 길가에 뿌린 씨라 그거요.
이래 아니까 세상의 인간의 많은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그와 같이 들리기 때문에 그에게 깨달음이 없다. 깨달음이 없다 말은 제 딴에는 잘 깨닫지마는서도 이 말씀이 전능의 말씀이라 없는 가운데 모든 것 만물을 창조한 창조의 능력을 창조의 독자적 능력을 가진 말씀이며, 또 이 분이 자존하신 그분의 명령의 말씀이라, 이것만이. 영생이라 이걸 모른다 그말이오. 알면 제가 굴복하지. 이 말씀에 대해서 깨달으면 한번 보면 더 좋고 두번 보면 더 좋고 들으면 더 좋고 소망이 더 생기지고 더 등이 눌리고 더 땀이 나고 더 바짝거리고 더 욕심이 나고 더 주의가 나고 더 부족이 나고 자꾸 이럴 건데 한번 듣고 두 번 들을 거 없다 하는 것이 그 사람이 벌써 교만한 사람이요 교만할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깨달습니다. 마귀란 놈이 이것을 우리에게 혼돈 시켜 버립니다. 하나님께는 건설의 권세와 파괴의 권세 이 두 권세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 파괴의 권세는 마귀의 것이 아니라. 파괴의 권세는, 마귀의 것이요 건설의 권세는 하나님의 것인가? 아닙니다. 파괴의 권세도 건설의 권세도 다 하나님의 것이오.
하나님께서 그런데 파괴의 권세는 자유 의사를 가지고서 이것을 취할 때는 파괴의 권세에 소속하고 이것을 취할 때는 건설의 권세에 속하도록 이렇게 해서 파괴의 권세에 속하는 것은 그 조건부로 한마디로 말하면 죄요, 죄와 하나되면은 파괴의 권세에 소속이 되고 의와 하나되면은 건설의 권세에 소속하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 파괴의 권세에 속해서 건설을 이룰 수 없고 건설의 권세에 속해 가지고 파괴를 이룰 수가 없다. 그거는 그대로만 건설만 되어지고 또 파괴 권세는 파괴만 되어지는 것이다.
요걸 확고하게 알면 어떤 자가 와 가지고서. 이러니까 마귀는 고만 참 이거 어리석은 백성들에게는 마구 유혹 줍니다. 자, 이제는 죽인다 그만 죽인다던가 죽음이라는 것 하나만 가져 오면 마구 만사 성공입니다. 죽음이라고 하나만 가져 오면 전부 다 성공해 너 죽인다 하면 못 할 말 없고, 죽인다 하면 대답 안 할 것도 없고, 죽인다 하면 행동 안할 것 없고, 죽인다 하면 배반 안 할 것 없고, 죽인다 하면 죽인다는 것이 오면 말이고 행동이고 마음이고 뭐 천 가지 만 가지로 변화시킬라 하면 '너 요라면 안 죽이고 요라면 죽일란라' '예, 내 그리하지요' '안 죽을라면 요래 해라 안 죽을라면 요래해라' 이래 가지고 죽음 이놈 하나 가지고서 성도가 천 명이고 만 명이고 억만 명이고, 뭐 지난 번에 유엔군이 철퇴될 때 그때는 이제 죽음 하나 떡 가지고 와 가지고 자 이제 죽음이 너거들이 이 유엔군이 나가면 죽는데 죽는데 어떻게 할래? 아이구 유엔군 가면 우리 죽습니다. 하나님은 어짜고? 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지만 유엔군 가면은 우리 죽습니다. 전부 유엔군 가면 죽는다고서 유엔군을 다 맞이할라 하니까 유엔군은 간부요. 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생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으로 믿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이 우리 죽고 사는 걸 주권하는 것이 주권자 하나님은 배반해 놓고 유엔군에게 살리는 권세가 있고 공산주의에게 우리 죽이는 권세가 있다 하니까 우리는 벌써 하나님 배반하고 간부하고 지금 간음했다 그말이오.
간부하고 간음했어. 종교 간음을 했다. 그거요.
이러니까, '뭐 너 그라면 굶어 죽는다, 너 그라면 맞아 죽는다 너 그라면 배척당해 죽는다. 너 이혼당해 죽는다, 너 그라면 면직당해 죽는다 너 실직당해 죽는다, 너는 병들어 죽는다.' 이놈 죽음 이놈은 이거는 정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안하는 자에게는 죽음은 정권이요 죽음은 정권입니다. 살리는 것도 정권이오. 죽음 가운데 떡 놔 놓고 너 이라면 살려 줄께, 너 주일 범하면 살려 줄게. 너 성경 말씀 어기면 살려 줄께 너 하나님 없다 하면 살려 줄께. 뭐 죽음에 살려 준다 하면 그만 살려 준다 하면 뭐이든지 다 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안하는 자에게는 죽음 이라는 그것도 정권이요, 또 살린다는 것도 정권이요, 또 이것도 영광도 '아 내가 이라면 영광 주마' 영광이 하나님에게 있다, 또 존귀가 하나님에게 있다 인간이 천해지는게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때 어떤게 와 가지고 '너 이라면 너 죽인다' '예, 네 마음대로 해 봐 너는 분명히, 믿기를 내가 죽고 사는 것은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니까 너는 아무 권리 없다. 너 한번 죽여 보든지 살려 보든지 내 마음대로 해 봐. 내가 죽여 보라고 대지는 안해. 내가 그런 말 할 필요가 뭐 있나? 이렇지마는저도 네 마음대로 안 돼. 네 마음대로 해 봐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는 걸 내가 알아.' '야 야 이 거짓말하고 이라고 주일을 범하고 이런 교제를 해야 되고 이런 손을 잡아야 되지 이렇게 교제를 해야 되지 이 교제 안 하면 너는 사업은 실패한다 거지된다 너 사업은 지금 실패해서 대 실패자가 되니까 너 패가하게 된다 그러니까 요번 주일만큼은 할 수 없으니까 주일을 범해라 이 말씀만큼은 어겨라' 이랄 때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않는 자는 그 자는 '아이구 그러면 이거 천상 이거 오늘 주일 범해서 안 되지마는서도 어쩔 수 없네' 범하고 싶어 고범죄가 아니라 강제에 꺾여서 범죄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자는 비웃어. '내가 사업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네게 있는 줄 아느냐 이 사건에 있는 줄 아느냐? 이 무슨 그 무슨 인인 관계에 있는 줄 아느냐? 이 무슨 무슨 특이하게 있는 줄 아느냐? 아니다.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는 걸 분명히 믿는다. 이러니까 딴거에 내가 너거 말에 미혹 받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이것 이 위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건설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오전 오후에서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주권되어 있는데 다만, 그 권세는, 주권이라 말은 모든 권세는 다 당신의 것이다 그 말이오.
당신에게서 나왔고 모든 거는 당신의 것이다. 당신이 홀로 주장하고 계신다.
당신이 사용하고 계신다.
이런데, 그 사용하는 권세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파괴와 건설이다. 파괴와 건설인데 파괴는 죄로 말미암아 우리 자유 의사 가지고서 죄를 취하면 파괴의 권세에게 속하게 되고, 자기가 의를 취하면 건설의 권세에 속하게 되니까 건설의 권세에 속하면 건설의 권세가 우리 일을 우리에게 와 가지고 모든 것을 건설해 주시고 파괴의 권세에 속하면 파괴가 와서 우리에게 와서 전부 다 파괴를 시키고 마는 것이니까 이것이 뭣이냐? 우리 자유 의사에 있다. 우리의 자유성에 있어서 우리의 자유로 어느 것을 선택하며 어데 속하느냐 하는 여기에서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어리석지 맙시다. 마귀의 꼬임 받지 맙시다.
말씀을 어겨야 사업을 성공한다. 말씀을 어겨야 이제 상관에게 잘 보인다.
말씀을 어겨야 내가 사업이 잘 된다. 말씀을 어겨야 내가 좋은게 돼,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이런 불신의 행위를 우리가 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읍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계약입니다. 변하지 안하는데 다만 우리가 믿고 행할 때에 하나님은 일하실 수 있지마는 우리가 안 믿고 행하지 않는 데는 하나님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