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


선지자선교회 1986년 4월 19일 새벽(토)

 

본문 : 로마서 1장 14절∼17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게 빚졌다고, 빚이 졌다. 그거는 다른 사람에게 줄 걸 다 못 줬다 그 말입니다.

빚졌다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을 다 못 줬다. 어떤 것을 다 못 줬는가? 혹은 돈을 몇 억 대 줘야 될 터인데 줄 돈을, 돈을 남의 돈을 몇 억대를 떼먹었는가? 혹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생명 품앗이를 방는데, 그는 나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나를 구출했는데 나는 그를 생명 바쳐 구출하지 못했으니까 생명의 빚을 졌다 말인가, 그런 큰 빚 그런 것으로서 유가 될 수 없는 아주 큰 빚을 진 것을 지금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빚? 이것만 갚아 주면, 이것만 내가 주면, 그에게 줄 걸 내가 이것을 주면 그는 이거 하나 가지고 우주와 영계에 하나님 다음에 존귀한 위치를 가질 제 삼등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이런 모든 부요와 충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이걸 전해 주지 못해서 항상 마음이 눌린다.

빚진 자다. 헬라인으로 말하면 그 당시에는 세계에 헬라인이 제일 지성인입니다.

제일 문화인이고 제일 지성인을 하나 대표해서 들어서 말하고, 또 야만이라고 말하면 아직까지 무식해서 미개한 사람들을 말을 하고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내나 같은 말입니다.

'내가 빚진 자로라'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이런 모든 사람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빚진 자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복음을 전해서 이 복음을 참 자기 복음을 삼는 사람이라고 하면은 이는 뭐 말할 수 없는, 천상 천하에 제 삼위를 차지할 수 있는 이런 존영하고 행복스러울 수 있는 이 복음인데 이 복음을 내가 전새 주지 못해서 이렇게 존귀히 될 수 있는 이 사람들을 이 복음을 내가 전해 주지 못해서 이렇게 존귀히 되지 못한다 하는 그 고통감에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그저 힘이 닫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 하기를 원하노라' 로만 그때 어떤 나라냐 하면은 로만 율법적으로 세계에 제일 앞선 나라입니다. 입법을 세계에 제일 공정하고 구비한 입법을 해 놓은 나라가 그해 로마 나라입니다. 로마 나라의 법을 지금도 온 세계는 그 법을 근거를 해 가지고 그렇게 사람들은 다 입법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에 가장 문명한 그 나라지, 또 그 나라의 법이 잘 돼 가지고 있어서 세계 어떤 사람들이라도 와서 살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라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또 그 나라에는 종교도 어떤 종교든지 다 종교를 용납을 해서 그 나라에는 없는 종교가 없이 그렇게 종교가 가득 찬 그 나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뭐 새로운 종교를 가서 전해 봤자 들을 만한 그런 형편이 아닌 그런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전도할라고 보면 불교가 심한 그 마을에는 전도가 잘 안 됩니다. 또 유교가 심한 그 마을에는 전도가 안 됩니다. 종교 하나만 들어가 가지고 그 종교가 힘 있게 해도 전도가 잘 안 됩니다. 또 과거에 우리 동양에 가정 본위, 가정 위주로 해 가지고 가정이라는 그 가, 문이라는 그것이 중요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대성받이가 사는 그곳에는 복음을 전해도 잘 안 됩니다. 왜? 그 사람들에게 그게 딱 뿌리 잡혀서 얽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해 봤자 툭툭 튕기지 안 됩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해변이 복음이 잘 안 전해집니다. 제주도 가 가지고 지금 교회 하나 세웠지만 그 교회 서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또 남해도 이제 교회가 근근히 됐지만 남해도 저 해 변가에는 참 어렵습니다. 왜? 거게는 뭐 여러 가지 종교를 믿어 그런 게 아니라 전부 미신을 믿는 미신이 들어서 사람들을 다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 미신을 극복할 만한 그런 전도의 힘이 없어서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대성받이에 참 복음 전하기가 힘든다, 양반 동리에 전하기가 힘이 든다, 불교 있는 마을에 전하기가 힘이 든다, 그런 것을 느껴 본 사람이 알 것이고 또 영감 받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도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 그 말은 로만 복음 전하기가 이렇게 힘든다 말이오. 어렵다 말이오. 그러나 그 곳에서도 가서 복음을 전할라고 내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면, 그렇게 강하게 뿌리가 결어서, 우리가 곡식 씨를 심을라고. 해도 덤불 위에 심으면은 덤불이 얽혀 가지고 씨 심어 봤자 그것이 위를 덮어 버리니까 결실이 없다 그렇게 말을 비유로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런 것 하나 둘만 뿌리가 얽혀 가지고 있어도 거게 복음을 전하기가 참 힘이 들고 다른 종교가 가 봐야 그 종교가 발도 못 붙이는데, 벌써 이미 발 뻗어 가지고 있는 그 종교가 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회회교가 들어 가지고 점령하고 있는 회회교 마을에, 회회교가 주장하는 국교가 되다시피 돼 가지고 있는 그 나라에 복음이 안 들어갑니다. 할라 해야 안 들어간다 그 말이오. 그런데 그런 것으로 유를 할 수 없는 이 로마에 복음 전하기를 바울이 원한 그 이유가 뭐이냐? 이 복음을 전하기를 그가 절망하지 안하고 낙망하지 안하고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 이 복음 하나만 들면 됐지-이 복음이 좋기는 좋지만, 요 부끄러워한다는 요 말이 요거 좀 이상하게 우리나라 말로는 발표가 돼서 요 정확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서 숨긴다는 그런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그런 부끄러움이 아니고 요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어데서든지, 여게서는 복음 가지고 안 된다. 여게서는 이 복음보다, 복음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믿고 행하는 것이 복음인데, 복음을 믿는 건데. 여게서는 이 복음보다는 이게 낫다, 여게는 지금 복음보다 이 정권이 세력이 있다, 이 복음보다 여기는 과학이 세력이 있다, 여기 복음보다 이게 낫다.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복음보다 이게 낫다 하면은 나은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고 복음은 수치스럽게 아주 마음에 천하게 그렇게 그만 제이호로 하든지 삼호로 하든지 그렇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복음보다 나은 게 없다. 어데서든지 이 복음이 제일이다, 복음이 능력 있다, 복음이 제일이다, 그러기에 복음만 하면 다 되지, 여게는 복음 가지고 모자란다, 여게는 복음만 가지고 안 되겠다, 복음만 가지고 안 된다는 그런 일이 나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는 것을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신구약 성경 이 기독교, 내나 기독교인데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왜 부끄러워하지 안하느냐? 안 하는 것은 '이 복음은' 이 신구약 성경 예수 믿는 도 이 예수교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 복음을 누구든지 믿기만 믿으면, 여기 믿는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이요 또, 인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만 믿기만 하면 돼. '그는 틀림없다, 사실이다' 이렇게 믿기만 하면 되는 것 있고, 또 믿는다고 해도 참 껍데기로 믿는다고 하기 쉽지 참 인정이 안 되는 게 있다 말이오.

믿기만 하면 다 됩니다. 공짜배기요. 공짜배기인데, 믿기만 하면 다 되는데 이 믿는다는 것을 본인이 믿는 줄 알고 속아 가지고 실상은 믿는 게 못 돼서 실패되는 이런 조건들이 많다, 그런 일들이 많다 말이오. 그런 것은 믿는 것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믿는 것을 그것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껍데기 믿음이 아니고 진짜 믿는 그 믿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고런 것은 네가 믿으면 요대로 행해 봐라 하는 거 있어 믿으면 요대로 행해 봐라, 믿으면 요대로 행해 봐라 하는 것은 행하는 것이 뭐가 커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요거 다 아주 어려운 말이오.

요거 지금 이 세간의 교계에 잘 안 나가는 말입니다.

이게 지금. 이러기 때문에 나가면 뭐 이거 대적이 얼마든지 대적이, 이거 복음은 이거는 순전히 이거는 아주 엉터리같은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어길 수 있는 그들이 인정 못 할 거리 먼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강하게 받아 가지고 이걸 참 깨달아야 증거를 할 수가 있고 깨달아야 이 도를 전해서 이 망하는 세상을 구출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구출 못 합니다. 행함이 그것이 커서 행하는 게 아니고 행하는 그것은 믿는 믿음을 실상화시키기 위해서 행하라 한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은 전능자라, 나는 전능자의 보호를 입고 있다, 전능자가 나를 품에다 품고 있다. 전능자의 품 안에 들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 그 말씀 어데 있습니까? 그 말씀이 있습니까?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너희들이 얻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나니' 그 말씀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몇절이요? 1장 5절? '말세에 너희들에게 주시기 위한 이 구원은 하늘에 간직해 가지고 있는 것인데' 하늘에 간직했다 말은 지극히 높은 걸 말합니다.

이 구원인데, 이 구원을 너희들이 얻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습니다. 이 능력의 보호를 입은 것은 이 구원 얻기 위해서, 구원 얻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능력의 보호를 입었습니다.

'입었나니 이러므로 너희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 이랬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 그 시험이 있는 것은 뭐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을 하나님이, 시험이라 말은 이 복음을 믿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시험입니다. 알겠습니까? 믿으라 했으니까 믿도록 자꾸 도와 줘서 믿어라, 믿어라, 믿도록 도와 줘서 이렇게 믿도록 하지 안하시고 믿지 못하게 하는 이 어려운 환난이 자꾸 있다 그 말이오.

못 믿구로 하는 환난이 있다 있다 말이오.

못 믿구로 하는 그 환난은, 못 믿구로 하기 위해서 못 믿구로 하는 그 환난을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를 입었는데 이 능력의 보호 입은 것을 인정치 안하니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조그만한 환난을 닥치니까 '아이구 이제는 예수 못 믿겠다' 이라다가 아무래도 믿어야 되겠다, 그래도 믿어야 된다 하고, 믿어 보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어 보니까 문제도 없이, 믿어 보니 참 그 능력이 와 가지고 보호해서 '과연 그 능력이 보호하는구나.' 또 조금 더 큰 환난이 오니까 그만 낙심을 하고 믿지 못합니다.

자꾸 믿어라, 믿어라 이렇게 인제 해서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래,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러니까.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믿어 보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지 안했느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너희들을 보호하고 있다 믿어라. 처음의 거는 믿었지만 이제는 더 큰 어려운 문제가 왔기 때문에 못 믿겠다 그 말이오. 믿어 봤자 이 일이 되느냐 했는데 옆에 사람이 있다 말하기를 '믿어라, 믿으면 된다 네가 한번 믿어 봐라. 속을 요량하고 믿어 봐라, 한번 믿어 봐라.' 믿는 것도 인정하는 그 믿음은 참 어려움인데, '네가 그러면' 인정하는 믿음이 큽니까? 행하는 믿음이 큽니까? 예? 인정하는 믿음이 억억만 배도 더 큽니다.

행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행함을 이와같이 하나님이 시키는 것이라 말이오. 행해 봤다 말이오.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으니까 염려할 것 뭐 있나? 나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는데 다리오 왕 네가 어떻게 할 것이며 사자구덩이 집어넣는다 할지라도 사자가 어떻게 할 것이냐, 불미 가운데 집어넣는다고 할지라도 나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고 있는데.' '나는 우상에게 절 안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 계속합니다. 이러니까 사자 구덩이 집어넣고 불미 구덩이에 집어넣었지만 과연 떡 들어가고 보니까 하나님의 전능이 보호해서 불 속에 들어갔지만 불 냄새도 나지 안하고 나왔고, 사자구덩이에 들어갔지만 뭐 터럭 하나도 상하지 안하고 그대로 살아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참 전능의 보호를 입고 있고, 전능의 능력으로 보호하신다고 계약에 선포해 놨는데 과연 그렇구나.' 그 다음에 믿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있다가서, 믿은 그 사람도 '아, 과연.' 이랬는데 과연이라는 사람이 많이 생깁니다.

옆의 사람도 떡 보고 '사자구덩이에서 나왔네. 불 속에서 나왔네. 과연 그렇구나.' 이래 가지고 점점 믿는 믿음을 강하게 만듭니다. 본인에게 인정하는, 이 믿는 인정하는 이게 큽니다. 인정하는 이것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또 한 문제를 주니까 '이제는 믿습니다.' 또 해 보니까 되거든, 되거든, 되거든 이러니까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게 됩니다. 자꾸 계약한 대로 믿고 보니까 그대로 된다 말이오.

이런데, 믿는 믿음이 그만, 믿으면 되는데 믿지 못하니 고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행함이라 하는 것을 이렇게 하도록 해 가지고 행함을 가지고, 행함을 할라고 하다 보니까 자기는 믿는 줄 알았는데 안 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고것을 행하고 보니까 믿음이 더 확고해졌고 이러기 때문에 이 행하게 하는 것은, 행하는 그까짓 것, 우리가 암만 해 봤자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드셨는데 그분의 능력이 할라면 그거 대번에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행하는 그것이 무슨 하나님 일 추고 하나님을 뭐 돕는다는 그게 아니라 그 말이오. 이 행하는 것은 뭐이냐? 행하는 것은 믿음을 더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지난밤에도 지금 증거하는 것은 믿음이 제일 귀하다 믿는 이것이, 사실로 인정하는 믿는 이 믿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행함도, 이런 순종도 이렇게 실행하는 것도 해 보고 난 다음에는 과연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해서 이사야 49장에 '너희들이 이렇게 믿음을 지키면 모든 군왕들은 너희의 양부가 되고 모든 왕비들은 너희의 유모가 될 것이라 모든 존귀한 자들이 너를 어깨에 멜 것이고 네 발의 티끌을 핥으리라' 믿고 보면은 이렇게 되어지고 난 다음에야 '과연 여호와 계약은 빈틈이 없다.' 그때사 나를 여호와로 인정할 것이다. 주님이 그러면 그렇게 이렇게 자꾸 이런 연습을 시켜서, '과연 이대로 하니까 이렇게 됐다 이렇게 됐다.' 발의 티끌을 핥는다.' 이렇게 된 것은, 그러면 그렇게 행함으로 발의 티끌을 핥고 어깨에 메고 모든 게 다 너를 위한 것이 되어지는 이 결과를 맺도록 하는 것은 그 행함을, 주님이 그렇게 순종하는 행함을 귀하게 여겨서 순종하는 행함을 위해서, 행함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이렇게 행함으로 말미암아 과연 여호와의 계약은 하나도 틀림이 없이, 가감이 없이 여호와의 계약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이 계약대로 사실이라는 것을, 이 계약을 인정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까 행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까, 뭐입니까? 이 행함을 만들기 위해서, 이 행함이 귀하니까 행함을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이 시간은 성령이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심령이 밝아서 이걸 압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은 행함 그까짓 거야 하나님이 뭐 엿새 동안에 했기 때문에 한 시간만 해도 다 할 터인데 뭐 인간에게 자꾸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건데, 그것은 하나님이 한 것은 가치 없고 인간이 해야 가치가 있어서 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오. 하나님이 한 게 더 좋지 뭐.

이런데, 그러면 이렇게 모든 행하게 하는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이것은 뭐 때문에 그라면 이 행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 말씀이 채말 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계신다, 하나님은 전능자다, 하나님의 계약은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선포해 놓은 것은 책임을 지신다, 하나님은 한번 말하면 책임을 지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신 그분이 어떤 분이 시요, 그분의 말이 어떤 말이요, 그분을 믿고, 그분이 한번 말한 것 이라면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믿도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믿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행한 그 행함이 위대하기 때문에 행함을 만들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까, 믿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어지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하이고, 여기 남반은 말이지 이런데, 남반은 이거는 드나 안 드나 이 뭐 얼떨떨떨 이라다가, 그래 가지고 헛일이라, 요 도를 받으면,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이 사실로 알고 있는 사람 손듭시다 하면 고만 그 드는 게 이래 드는 것과, 이래 드는 거는 감동이 없는 자라. 감동이 없는 자라. 또 이래 드는 자와 이라며 막! 이 손을 끌어서 막 하늘로 뛰오르며 '주여!' 이라며 들 수 있는 이 속에 영감이 있어야 돼. '아멘. 과연 이렇다 예수 믿는 도리가 이런 거구나. 내가 이거 깨달았다. 참 이거 참 도이다.' 이것을 믿는 믿음의 용기가 있을 터인데 남반은 보니까 이래 드는데 여반은 보니까 이래 드니 여자들이 믿는 것 같지만 감정이 빨라서 그렇지만 속에 견고한 믿음은 참 없습니다.

양산동에 가 가지고 기도하는데 여반들이 기도하는 수가 많습니다. 많은데, 성조가 우는데 들어 보니까, 늘. 우는데 한 사람이 기도할 때는 조그매 울고 그리 안하면 안 울고, 여반들이 기도할 때도 뭐 조그매 울고 이랬는데 그날 양성원 학생들이 다 가 가지고 기도할 그날 밤에는 마구 굉장히 울었어. 울어서 내가 그때 두시인가 돼서 일어나 가지고 이 성조가 우는 소리에. 놀라 깼소. 깼는데, 그래 가지고 이래 내가 그때 이 성조가 어데서 우느냐, 이게 참 성조냐 성조가 아니냐 하기 위해서 내가 그 동리를 이리 가서 들어 보고 저리 가 들어 보고 했는데 그래 확실히 성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조는 땅에 기어다니며 울지 않습니다. 암만 봐야 안 보입니다. 누가 봤다 하는데.

공중에 높이 날아서 높은 데서 울기 때문에 여게서 들으면 여게서 우는 것 같고 저게서 들으면 저게 우는 것 같고 그 거리가 얼마나 머느냐? 그 거리가 아주 멀어서 보면 그 소리가 아슴아슴하게 들리다가, 또 똑똑히 들리다가, 또 이쪽으로 아슴아슴하게 들리다가 저리 들리다가 또 저리 들리다가 아주, 그렇게 그거 나는 보지를 안했는데 그 때는 아마 연자같이 그렇게, 연자보다 더 빠르게 날아다니는 높은 그 창공에서 우는 새인데 그렇게 날아다니면서 우는 새라' 그렇게 저는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양성원 학생들이 가니까 그렇게 야단스럽게 울었어. 마구 뭐 보면 좋아서 못 견뎌서, 못 견뎌서 그 새가 운다 그 말이요, 못 견뎌서.

그래서, 아마도 이 양성원 학생에게 그라면 하나님이 좀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다, 이래서 양성원 학생에 대해서 소망을 내가 가집니다. 가지고, 또 하나 깨달은 거는 여자들이 암만 떠들어 쌓아도 남자 신앙을 못 따라오는 모양이다, 하나님께서 이거 남자들 신앙을 인정을 해 주신다 하는 그런 것도 내가 또 느꼈다 그 말이오. 이거 손 드는 거 보니까 그래. 손 드는 거 보니까.

모든 행함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역사하는 것이라면 틀림없다 믿는 고 확고한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런 것 저런 것 행하라,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행함을 말하는 것이지 행함 그것이 커서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것을 믿는 사람 손 들으라 하니까 여 반에는 이라고, 슬그머니 이라고 저 뒤에는 안 들다가 조그매 이래 들고, 뭐인지 모르는 모양이라. 남반에는 보니까 저 끝까지 막 이래 드는구먼. 드는데 내가 여기 좀 여반은 이래 보고 남반은 잘 못 봤어.

드는데 누가 드는데 막 이래 들면서, 이라며 막 이라면서 이렇게 뭐 몸뚱이가 따라 올라갈 만치 이렇게 아마 드는, 손을 드는 그거 손 든 그 힘을 말하면 여게서 몇백 명이었으니까 몇백 층이 됐을 것이라. 제일 힘있게 드는 사람이 그 사람이, 영감이 제일 강한 사람이라. 과연 이거다 하는 그것을 저에게 확고한 신앙이 견고했기 때문에, 그 영감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드는 거라. 그 힘이 내나 순교도 하로 그 힘이 모든 것 다 해.

그러면, 순교는 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 목숨 바친 것이 큰 게 아닙니다. 뭐 목숨 바친 것이 큰 겁니까? 6, 25때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아무래도 쭉기는 죽는 것인데 그까짓 것 뭐 목숨 바친 게 뭐이 커, 크기는? 죽는 게 큰 것 아닙니다. 그 목숨 바치는 거야. 이거 내가 목숨을 바쳤으니까 큰 것 바쳤다. 목숨 바치는 그까짓 게 무슨 큰 겁니까? 큰 것 아니오. 뭐이 큰 거냐? 자기의 목숨이 바쳐지기까지, 목숨을 바치기까지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 있고, 목숨보다 더 큰 것 있는 고 사실을 믿는 믿음의 표시가 순교로 나타났기 때문에 순교가 귀한 것이지 믿음 그것 없으면 순교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6·25때도, 6·25때 얼마나 죽었다 했지? 육십 몇만 명 죽었다 했나 뭐 얼마 죽었다 했나? 얼마나 죽었다 했지? 여러분들은 하늘나라 것 뭐 기억 못 하면 그런 거나 기억하고 있어. 그것도 기억 못 해. 세상 사람들은 그거 다 얼마 죽었다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그만 바보가 돼서 머리를 비어 버렸으니까 그만, 머리 인제 세뇌할라 하니까 머리를 씻을라 하니까 그런 거 다 뽑아 버렸고 인제 하늘나라 것도 넣지 못하고 이래 지금 중간 도중이라 그런지 세상에서도 보면 바보고 하늘나라도 보면 바보고 세상에 있는 지식도 모르고 하늘나라 지식도 모르고 이 거도 저거도 모르고 이러니까 튕 비었다 그거야. 비면 안 돼. 세상 지식, 하늘나라 지식이 들어와서 세상 지식 밀어내고 하늘나라 지식이 들어와서 세상 지식 밀어내고 하늘나라 지식으로 가뜩 차고 세상 지식 다 밀어내 없애 버리고 이래야 돼지지 하늘나라 지식도 안 믿고 세상 지식도 안 믿고 튕 빈 골, 골이 비었다 말이오. 빈 거 돼 차지고 있으면 안 돼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의문되는 것을 자꾸 풀기 위해서 지금 말합니다. 행함은 믿는 자 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행함을 말하는 것야고, 순교도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순교가, 이다음에 상을 받을 때에는 무슨 상이 있느냐? 이 순교는, 이 사람은 제 목숨보다, 목숨보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강해서 이 믿음은 목숨을 버리는 데까지 이 믿음은 나아갔다, 이 믿음은 목숨도 버리고 몸도 버릴 수 있고, 목숨도 몸도 바칠 수도 있고, 이 믿음은 자기의 전부보다 이 믿음은 더 컸고 강했다 이것을 나타내서.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돈을 천 원을 '돈 천 원 손해 가도 나는 믿겠다' 그러면 그 사람은 천 원보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더 강했다 그 말이오. 그런데 만 원 문제가, '아이구 만 원 손해보고는 나 안 믿겠다' 그 사람은 만 원보다는 이 믿음이, 믿음의 가치를 적게 여겼다 말이오. 이 사람은 있는 재산 억만, 온 세계 재산을 다 줄라 해도 이 믿음 버리면 세계 재산 다 줄께 할 때에 ' 내가 세계 재산 이거 다 주는 것을 다, 받는 것보다 나는 믿음 가지는 게 낫다' 믿음을 가졌으니까 그 사람은 세계에 있는 모든 재물보다 더' 크게 여기는 사람이라 그 말이오. 또 이 목숨이 끊어져도, 나는 목숨보다 이 믿음이 중하다 하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믿음을 가졌다 말이오.

그 믿음을 어느 정도 믿느냐, 믿음의 그 중량이 어떠하냐 하는 그것을 이제 나타낸 것이 행함입니다. 그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행함을 주시는 것이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해지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요는 믿음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모든 믿는 자는 다 준다 그 말이오.

믿는 자인데,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뭐입니까? 인정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요, 몸으로 순종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인데 몸으로 순종하는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오. 알겠소?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거 하나님이 요구하시지 않아. 마음으로 순종하는, 인정하는 것 믿는 것이라. 믿는 것인데, 이 믿나 안 믿나, 하나님이 믿나 안 믿나 보자 하는 것은,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그것은 뭘로 나타냅니까? 뭘로 나타냅니까? 행함으로 나타내지.

그러면, 행함으로 나타내면 그 사람이 믿는지 안 믿는지 몰라서, 하나님이 몰라서 믿는가 안 믿는가 이렇게 해라 그렇게 행하라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아시는데, 그 본인이 믿는 줄 알았는데 참말로 믿는지 믿는다는 게 껍데기 거짓말인지 그 믿는 여부를 본인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 몰라서 아시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본인이 몰라서 알게 하기 위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믿는 대로 행하라 그 말은, 행하는 것은 본인만 알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보고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이제 믿음을 더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뭐입니까, 그거는? 다른 사람도, 본인도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오. 자기가 믿고 행해 보니까 '과연, 그렇구나. 믿고 다 행하니까 되는 구나. 이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 이거 사실이고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하나님 말씀은 다 고대로 정확 무오하고 고대로 다 되고 또 사실이로구나.' 인정하도록 본인에게 인정, 다른 사람에게 인정 요렇게 믿는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행함을 줬다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잡도록 지금 하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거 몰라요, 이거! 예수 믿는 사람이 암만 말해도 이걸 모르는 사람이 백의 구십 구도 더 돼! 이렇게 가짜라 그 말이요, 지금. 여러분들도 이 도가 과연 이거다, 이게 아니면 다 헛일이다, 요게 참인데 요게 아니면 헛일이다는 고걸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안면에 대해서 이 보배를 얻은 느낌이 없어, 보배를 얻은 느낌이 없고 벙벙하다 무슨 말이고? 그라면, 믿음을 위해서 행함을 주신 것이라 가치는 행함에 가치가 있는 것 아니고 믿음에 가치가 있다 이라니까 믿음에 가치 있다는 그 말을, 손을 슬그머니 든다 말이오.

여러분들, 믿는다는 믿음보다도 행함이 가치가 있다고 그렇게 오늘까지 생각을 가져 나온 사람 손들어 봐요. 믿음보다는 행하는 그 행함이 가치가 있다, 믿고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느냐, 믿고 행해야 가치가 있다, 행함이 가치가 있다, 그뭐 믿는다는 것 소용이 있는가? 순교를 당했으니까 가치가 있지. 순교 그거 행함 아니요? 순교 그거 행함 아니요? 믿음보다 행함이 가치가 있다고 이렇게 이 생각한 분들 손 한번 들어 보라 말이오. 거짓 말쟁이들. 이제까지 그래 믿었으면 손들어 봐요. 이뿐 아닐 거라. 거의 다일 거라. 정직하면 거의 다일 거라.

여게서 이 설교를 듣기 전에는 다 행함이 제일 귀하고 행함이 귀하지 순교한 것이 그게 가치 있지 믿음이 귀하다고 그렇게 생각지를 못한 사람들이 많을 건데 공연히 손을 안 든다 말이오. 그것도 거짓부리라 거짓. 거짓 자는 어데 못 들어간다 했어?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해요. 어데 있어? 요한계시 21장에도 있고 22장에도 있어.

그래, 이러니까 이 행함과 믿음이라는 이거 모든 인간이 요렇게 요거 믿어 봐라, 이거 믿어 봐라, 현실을 줘 가지고 요래 해라 조래 해라 하는 고것이 뭐이냐 하면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이나 이 모든 것을, 믿는 기능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오. 믿는 기능을.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한 그것이 행함이 가치 있는 것은 행함의 가치보다도 믿음에 가치가 있어서 그런 것이고, 행함의 가치도 믿음으로 행한 것이라야 가치가 있지 믿음 없이 행한 그까짓 거는 제가 뭐 억만 명이 죽어도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때는 그렇게 수많은 백성들을 홍수 속에 다 매장시켜 죽여 버렸는데 뭐 문제가 뭐 그래 가치가 있겠소? 이러니까 믿음이 크다.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구원을 주신다, 구원을 주신다 말은 구원은 무엇이 구원입니까? 구원은 첫째로는 구원은 하나님을 제 하나님 삼는 것이 구원이요, 또 그 다음에는 영생 가지는 것이 구원이요, 또 하늘나라 얻는 것이 제 구원이라. 하나님 가지니까 하나님의 전지 전능과 모든 것이 다 자기 것 됐고, 또 하나님의 소유인 하늘나라가 자기 것 됐고, 자기도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영생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게 구원 아닙니까? 이 구원을 믿는 자에게 준다.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 믿는 자 이 믿는 것은, 이 믿는 것은 뭐입니까? 믿는 것은 행함입니까 그저 믿는 것입니까? 그저 믿는 것입니까? 행함입니까 그저 믿는 것입니까? 그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믿고 행하는 그 행하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못 들고 있는 분들.

이 좀 생각이 있는 분들이라. 벌로 들어. 믿는 것이, 믿는 것의 가치가 이래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의 가치가.

그런데 믿음은 네가 믿나 안 믿나, 믿으면 못 행할 게 하나도 없어.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너와 연결돼 있어 하나님의 전부는 네것이라, 네라 하는 것을 확실히. 믿는 자는 그분이 하는 데는 하나님이 하시는 걸 다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네가 믿되 성경에 있는 고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라.

그러면, 행함을 가치 있는가배? 행함 그까짓 것 없어도 좋다. 행할 수 있는 믿음만 가졌으면 된다. 행할 수 있는 믿음만 가졌으면 된다. 네가 하나님의 전능을 다 힘입어 가지고 전능한 행동을 네가 했어야 가치가 있느냐? 아니다.

하나님의 전능의 행동은 하나도 안 해도 하나님을 믿을 때에는 하나님의 전능의 행동을 다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이 사실로 빈틈 없이 믿기만 믿으면 그것이 된다 요것을, 같은 말 같은데 요것을 각도를 알아서 믿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들을 믿게 하시면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면, 믿음은 뭐인데?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 능력이라 말은 폭발력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아무 보통 능력이 아니라 폭발력이라는 것인데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밀하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 능력이 마구, 믿기만 하면 폭발이 된다. 믿기만 하면 폭발이 된다.

하나님의,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이 확 나타난다.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이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불변의 이행이 나타난다 이걸 말하는 것이라 말이오. '능력이라' 그러면 이 능력이, 어떻게 해서 이 복음에는 이 능력 들어 있느냐? 어떻게 들어 있습니까? 이 복음에는 부인데 들어 있습니까? 17절에 '하나님의 능력이라' 17절에, '복음에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가 속에 들어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다. 의가 들어 잊기 때문에 믿는 자는 또 믿고 또 믿고 자꾸 믿는다. 믿어 보니까 되고 믿어 보니까 되고 믿어 보니까 되고, 또 행해 보니까 되고 행해 보니까 되고 행해 보니까 되니까 자꾸 믿음으로 믿음에 자꾸 나아가게 된다. 믿는 자는 더 믿게 되고, 행하는 자는 더 행하게 되고, 바라는 자는 더 바라게 되고, 의지하는 자는 더 의지하게 되고, 순종하는 자는 더 순종하게 되고, 그분 한 분으로 만족하는 자는 만족하는데 또 더 만족하고 더 만족하고 더 만족하고 더 만족하고 그분 한 분으로 만족하게 된다. 그걸 가리켜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 점점 믿어지게 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러기 때문에 이 의를 가진 자,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이제 믿음 하나뿐이다, 믿음 하나면 다 된다, 믿음 하나면 다 된다 이렇게 이것을 깨닫기 때문에 의인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는 믿음 외에는 할 일이 없다. 믿음이면 다다. 믿음 외에는 다른 걸 뭘 가질 것도 없고 할 것도 없고 믿음 하나면 다 된다. 믿음 하나면 다 된다.

뭘 믿어? 하나님의 의를 믿어. 하나님의 의가 뭐인데? 세 가지 큰 힘 들여서 만들어 놓은 의인데 이 의는 완성입니다.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은 다 해결돼서 삐뚤어진 것 하나도 없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 연결돼 하나님에게만 피동돼서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하나님하고 딱 들어붙어서 친화가 돼 버리고, 이제 이 사실을 믿으면 믿는 대로 되니까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는 이 사실이면 다라 그 말이오. 이 사실이면 다라.

믿으면 되는데, 이러기 때문에 '네가 믿는 대로 되리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그러면 '믿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가지고 과연 그렇다 하는 것을 보리라.

그러면, 믿음이 세상에 없습니까? 세상에서 말하기를 마귀란 놈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말합디다. '믿고 삽시다. 믿고 삽시다.' 한창 신문에 믿고 살자는 신문이 많이 떠돌았습니다. 믿고 산다. 그래 다 서로서로 믿고 삽시다. 믿고 살면 됩니까? 믿으면 됩니까? 이 세상에서 서로 믿으면, 믿음이 귀하다, 믿고 삽시다, 믿으면 된다. 교회서 그 말 많이 했습니다. '서로 믿고 삽시다' 이라니까 안 믿는 사람도 믿고 살자 하는데 우리가 안 믿어 가지고 되겠습니까? 사람을 서로 믿고 삽시다, 사람을 믿어 됩니까 안 됩니까? 사람을 믿어 됩니까 안 됩니까? 사람을 믿고 살자 말이 그게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까 죽이는 말입니까? 죽이는 말이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믿는 거기에다 뿌리 붙여 고것만 믿을 수 있어 하나님의 의를 믿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요게서 능력이 나오고 생명이 나오고 성공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의외에 인간을 믿어? '인간을 믿어야 된다.' 참말입니까? 아내는 남편을 믿어야 됩니까 안 믿어야 됩니까? 여기 부인들, 믿어야 됩니까 안 믿어야 됩니까? 믿어야 된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안 믿어야 된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뻐뜩 들어 봐요, 안 믿어야 된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다, 이것들은 아직 남편이 없어 놓으니까, 없어도 시집 갈 터이니까 그거 알아야지. 믿으면 안 돼.

믿으면 안 돼. 믿으면 안 돼. 믿으면 소박당해요. 믿으면 나중에 배척당해요, 이 남자가 언제 나를 버릴지 모르고 언제 변할지 모르니까 딱 단속해 가지고 언제 변할지 모르니 변할 틈이 안 나도록, 배척을 당하지 안하도록, 이거 언제 어찌 될지 모르니까 항상 깨어서 조심 조심 조심 조심으로 이것이 언제 지금 남자가 변할지 모르니까 이거 조석으로 변하기 때문에 언제 변할지 모르니 이 변할 틈을 얻지 못하도록 딱 단속해서 깨어서 정신 차려서 이제 변할 틈과 변할 기회와 변할 수 있는 고런 흠점을 한 내끼라도 보이지 안하도록 요렇게 단속해서 믿지 안 하고 이래 살아야 근근히 일생을 사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은 부득이 자식 낳았으니까 살기는 사는 것이지만 속으로는 다 이래 가지고 있어요. 다 속으로는 이래 가지고 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믿을 자 없어.

자식이 부모는 믿습니까? 못 믿어 그것도 믿으면 안 돼. 믿으면 안 돼. 언제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변해도 살 수 있도록 예비를 해야 되는 것 하나는, 또 아버지가 어머니가 변하지 못하도록 내가 단속을 해야 되는 것 이래야 유지가 되는 것이지 믿어 버리면 헛일이오. 하나님은 못 믿어 문제지 하나님은 믿는 이 믿음도 우리가 '하나님을 내가 믿었다가는 헛일 당할라!' 이렇게 우리가 그 믿을 수 없이 변해질지 모르니까 변하지 안하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습니까,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제 내가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분은 변치 않습니다. 변치 않습니다 변치 않는 믿음의 대상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은 어찌 됐든 간에 못 믿어 탈이오. 못 믿어 탈이오.

어찌 됐든 간에 믿어야 됩니다.

이런데, 이 세상은 마귀가, 믿었다가는 헛일하고 믿었다가는 헛일하고 전부 믿었다가 헛일하는 거라. '믿고 도장 찍어 줬다가 헛일했네, 믿었다가 연대 보증 서 줬다가 헛일했네, 믿고 결혼했더만 헛일했네, 태산같이 믿었더만 변해졌네.' 이러니까 믿으면 변해 버립니다. 믿으면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생 산 거는 다 나이가 늙어서 죽을 때 되면은, 헛되고 헛되다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다. 무엇이? 불변이 인생에게 있습니까 완전이 인생에게 있습니까, 영원이 인생에게 있습니까, 실력이 있습니까? 아무 삥삥삥이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이 돼 줄라 해도 돼 줄 수가 없어.

이렇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지 하나님 외에는 사랑을 가진 자가 없다 그 말이오. 이 말이 인정이 됩니까 안 됩니까? '그거 참 얼떨떨하다 그거 어찌 되나, 그거 이러면 사회를 막 흐트리고 막 내 흔드는 것인데, 이거 인정이 안 되는데.' '그 말은 참말로 맞기는 맞다. 인정이 된다. 확실하다. 그거 사실이다.' 이 사실이라고 인정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남반에 또 들기는 드는데 놓습시다.

이래 들면은 이래 드는 사람, 또 남반에도 이래 드는 사람, 같기는 같은데 얼떨떨하게 그 말이 그런지 안 그런지, 안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얼마든지 '믿으면 된다, 믿으면 된다.' 아무리 내가 전우의 친구라도 전우의 친구라도 이것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이거 어떻게 벼할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래 안 변하도록 단속을 해야 되고, 변해도 내가 낭파당하지 안하도록 단속을 해야 되고, 변해도 낭파당하지 안할 단속하고 안 변하도록 단속하고 이 두 가지를 가져야 그 전우의 친구라도 그 친한 친구가 계속이 돼지지 그거 아니면 다 당장 깨집니다 이래서 이제 오늘 아침에도 말하고 지난밤에도 말하고 요새 내가 골을 뺍니다.

빼는 것이 시작하면 새벽 기도도 오늘 아침에도 시간이 아마 한 시간 됐지 얼마야? 오십 오 분 됐나? 오십 오 분 됐는데, 이는 그게 뭐요? 우리가 신구약 성경대로 요대로 믿으면 됩니다. 요대로 믿으면 이루어지요. 또 행할 걸 요대로 믿고 행하면 다 돼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전능의 복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받은 이것은 뭐 때문에 성경에 기록한 대로 믿으면 됩니까? 이 세상에 공자나 석가모니나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 믿으면 그대로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왜 성경 말씀은 믿으면 믿는 대로 다 됩니까, 기록한 것은? 왜 됩니까? 뭐 때문에 됩니까? 하나님의 의 때문에 됩니다. 하나님의 의 때문에. 의 때문에 된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어도 '믿습니다' 안 돼. 믿고 기도해도 안 돼. 뭘 믿느냐? 이 하나님의 의를 자기가 생각해요. 하나님의 의를 새겨서 생각해서 의를 생각해서 요러니, 요 의를 생각해서 알고, 알므로 믿고, 요 의를 믿기 때문에 자기 기도한 것을 듣는다 하는 요것을 믿어서 뿌럭지 거게서부터 하나님의 의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거게서부터 돋아오르는 그 움이 돼 가지고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해야 된다 그 말이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게 뭐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의를 예수님이 만들었다 그 말이오. 신인 양성 일위가 만들었다 말이오.

신인 양성 일위가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고 제일 기뻐해서 모든 걸 이 의에게 다 주셨는데, 이 의를 만드신 예수님에게 다 주셨는데 이의는, 의는 뭐가 하나님의 의가 된 것입니까? 몇 가지가 하나님의 의가 됐습니까? 세 가지.

하나님의 제일 난제 세 가지가 해결된 것이요, 소원 세 가지가 해결된 것이요, 문제 세 가지가 해결된 것이요, 하나님의 좋아하는 것 세 가지가 된 것이니 이 세 가지 문제는 무슨 문제냐 하는 걸 여러분들이 가서 그거는 해석하면 알거라 그 말이오.

사죄라, 사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삐뚤어진 것이요, 죄는 하나님과 나와 삐뚤어진 것이 죄요, 또 이 모든 불의는 하나님에게 피동돼야 될 터인데 하나님 아니고 딴것들에게 피동된 것이 그것이 다 불의요 하나님에게만 피동 된 것이 의요, 화친은 뭐입니까? 하나님과 금갔던 것이 딱 들어붙은 것이 의입니다.

이 세 가지 문제가,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근심 걱정 한 것이 창조 후에 근심 걱정했습니까 창조하시기 전에 근심 걱정을 했습니까? 창조하시기 전에 근심 걱정하시고 이 근심 걱정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 해결책을 하나 마련했으니까 해결책을 마련한 것이 뭐입니까? OOO 목사님. 하나님의 목적, 똑똑히 알아. 하나님의 목적. 여러분들 요렇게 알아야 됩니다. 요것이 성경에 있는 진수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심령이 밝아서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 안 받으면 헛일입니다. 이번에 대구 가서 성령 받고 미리 성령 받도록, 미리 성령 받으면 거기 가서는 큰 것을 얻을 것이고 거기 가서, 미리 회개하면 거기 가서는 더 큰 것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것이 성령입니까? OOO집사님, 성령의 역사는 어떤 게 성령의 역사이지요? 우리 교회서 믿음 제일 좋은 사람이라 하면은 내가 여자에게서 제일 좋은 사람이라 그라면 OOO씨를 내가 들고 이랬는데 지금은 저 꼴찌라. 왜? 그때는 아이 너이 낳을 때까지 주일학교 반사했는데 반사 일등을 했어. 아이 너이 낳을 때까지. 너이 낳았는데 또 아이는 또 뭐이냐 하면 연년생이라. 매년 하나씩 놔. 매년 하나씩 낳았는데 몇 낳았지? 가리켜 봐, OOO 집사.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게 영광이라. 왜 부끄러워? O집사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아이 몇 낳았는고? 요새 마귀들이 하지 아이 많이 낳은 게 좋은 거라, 왜 부끄러워 해? 몇이라? 여섯? 일곱? 예? 되게 부끄러운가배. 부끄러운 게 아니고 그게 자랑이라. 아이 많이 낳아요. 좀 있으면 아이 많이 낳은 사람이 일등돼요.

요새 자꾸 산아 제한하는 그거 죄만 지어서 자꾸 이래 가지고 아이 배면 긁어내고 아이 배면 긁어내고 이래 가지고 자꾸 죄만 짓고 저거 정욕은 다, 금욕을 해야지 정욕은, 정욕 생활 다 하기는 하면서 아이만 안 낳을라 하는 것 그것 도둑놈 아닙니까? 그렇지 않소? 그것 죄 아니요? 다 인제 심판이 온다 그 말이오.

이랬는데, 요새는 새벽 기도 안 나오니까 몰라. 성령의 은혜가 뭐인가 하는 걸 물으니까 몰라. 그때 일등인데 지금은 일등이 아니야. 저 중간쯤이나 갔는지 몰라.

안 들으면, 듣고 읽어야 돼. 안 듣거든 자꾸 성경을 읽든지 그리 안 하면 와서 듣든지 둘 중에 하나 해야 돼.

그래, 누가 나한테 말하기를 '성경 읽는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듣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깨닫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믿어지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실행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자꾸 하나님께 구해 가지고 하나씩 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어떤 권사님이 나한테 말해. 그래 내가 은혜를 받았어. '예, 옳습니다.' 이렇게 했어.

성령의 감화가 뭐입니까? 자기 주관 가지고 믿을라고 했는데 자기 주관 가지고 실컷 절정으로 자기 주관으로 최고에 믿었는데 믿고 난 다음에 자기 주관으로 믿는 게 아니고 객관의 능력이 와서 더 믿구로 만드는 것, 자기 주관을 초월한 것이 왔을 때에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믿는 것도 그렇고 아는 것도 깨닫는 것도 자기로서는 요만치 밖에 못 깨달았는데, 자기 전심 전력에 요만치 밖에 못 깨달았는데 자기 깨달은 이상을 와서 딱 깨닫게 해 주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성령이 와서 깨닫게 해 주는 거라.

자기로서는 이렇게 할라고 했는데 자기 행하는, 행하는 용기, 자기가 행할라고 하는 그 용감, 그 용감 이상의 용감이 와 가지고 행할 수 있도록 나에게 용기를 주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라 말이오.

인간 주관이 다 했을 때에 인간 주관이 다 하면은 이제 영감의 은혜를 영접하는 것이니 영감 은혜는 주관을 초월한 그 객관 역사가 올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의 역사라 하는 것을 얼마든지 가르쳐도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알지만 뭐 안 들으니까 아는가, 못 배우고. 그거 자꾸 좋아서 살림만 살고 자꾸 돈만 벌고 서로 남편만 좋게.

나는 그래서, 좋은 말 내가 하나 들었어. 어떤 처녀에게, '너 결혼해라' '나는 결혼 하면 나만 못한 남자에게 나는 결혼하지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나는 결혼 안 할랍니다.' 그래 내가 깜짝 놀랬어. '햐, 이놈아 네가 참 귀한 말을 했는데 네가 정말이냐? 말은 귀한 말인데 모르겠다.' 내가 그 말 듣고 깜짝 놀랬어. 그 실상은 속속들이 그런지 자꾸 말을 들어 쌓아서 그래 하는지 그거 몰라. 왜? 저보다 나은 것한테 결혼해 놓으면 이거 코가 꿰어 가지고 이거한테 일생 동안 끌려 돌아다니며 종질 하다 보니까 아무것도 못 합니다.

저만 못한 것, 못한 것 하고 결혼해 놓으면 그저 밥은 하나님이 먹여 주시는 것이고, 오늘 산기도 갈랍니다.' 해도 '얘 가이소. 그라면 아 이들은 내가 데리고 있지요.' 또 '오늘 심방 갈랍니다.' '가이소.' '오늘은 지금 내가 좀 며칠 동안 좀 집에서 금식 기도를 좀 해야 되겠습니다.' '하이소.' 이러니까 거게 저만 못한 것한테 거석하면은 상전노릇하고 신앙에 자유하고 이럴 건데, 저보다 나은 것한테 가 놓으니까 꼼짝을 못 한다 그 말이오 지금 이라니까 OOO집사님은 눈이 요래 가지고 지금 듣고 있다. O 뭐꼬, O집사님이가? 그래 가지고 꼼짝 못 했습니다. 그 남편에게 꼼짝 못 하고 절절절 매고 그만 종질하다가 이제 하도 인제 떡 이제 남편이 왔으니까 지금은 그래.

지금도 아마 그럴 거라. 지금도 뭐 신앙의 자유로 하려다 '지금 내가 저 산기도 가 가지고 좀 금식 기도 좀 며칠하고 오겠습니다.' 이라니까 그라면 남편이 '안 돼' 하면 못 갑니다. 안 돼 하면 못 가고 뭐 '갖다 오이소' 이래 허락을 받을라면 막 오만 아부 다 하고 애교 다 떨어야 되고 막 이래 가지고 근근히 그러면 '그러면 갔다오지' 이런데, 저만 못한 남자한테 시집간다 하는 그 말을 참 귀한 말 들었는데 정말로는 그런지 모르요. 세상 것은 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남편이라 했소. 세상을 자기 배우자라 했어. 세상을 자기 분수에 높은 것을 하면, 지위도 자기 분수에 실력보다 높은 것 차지해 놓으면 거기 매여서 꼼짝 못 하요.

새벽 기도를 할 수가, 있소 뭐 할 수 있소? '이까짓 것 이까짓 직장이야 오늘 내놔도 된다, 내일 내놔도 된다.' 그렇게 만만한 직장 가진 사람은 자유를 합니다.

여러분들 자유는 천하를 얻는 것보다 신앙 자유는 그게 낫습니다. 양심 자유는 천하를 얻은 것보다 낫습니다. 좀 똑똑히 바로 알고 살아야 되겠다 그 말이오. 이 삐뚤어지게 마귀란 놈이 알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식이 삐뚤어지니까 항상 지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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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96 하나님의 의/ 로마서 1장 16절-17절/ 1986. 4. 21. 월새벽 김반석 2016.01.03
395 하나님의 의/ 로마서 1장 17절/ 1982. 4. 22. 목새벽 김반석 2016.01.03
» 하나님의 의/ 로마서 1장 14절-17절/ 1986. 4. 19. 토새벽 김반석 2016.01.03
393 하나님의 의/ 로마서 1장 17절/ 1986. 4. 18. 금저녁 김반석 2016.01.03
392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라/ 로마서 1장 17절/ 1986. 4. 18. 금새벽 김반석 2016.01.03
391 하나님의 인도/ 출애굽기 13장 21절-22절/ 1981. 3. 29. 주일오전 김반석 2016.01.03
390 하나님의 인도/ 출애굽기 15장 22절-26절 / 1981. 4. 1. 수저녁 김반석 2016.01.03
389 하나님의 인도/ 출애굽기 15장 25절-26절/ 1981. 4. 1 수새벽 김반석 2016.01.03
388 하나님의 인도/ 야고보서 1장 12절-18절/ 1981. 11. 6. 금새벽 김반석 2016.01.03
387 하나님의 인도/ 신명기 28장 1절/ 1986. 5. 13. 화새벽 김반석 2016.01.03
386 하나님의 인도/ 출애굽기 13장 21절-22절/ 1981년 14공과 김반석 2016.01.03
385 하나님의 인도/ 출애굽기 13장 21절-22절/ 1977년 29공과 김반석 2016.01.03
384 하나님의 인도와 3가지 성공 방편/ 창세기 13장 6절-13절/ 1988. 5. 1. 주일새벽 김반석 2016.01.03
383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장 26절-31절/ 1985. 9. 18. 수저녁 김반석 2016.01.03
382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장 27절-29절/ 1985. 9. 19. 목새벽 김반석 2016.01.03
381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장 27절-30절/ 1985. 9. 20. 금저녁 김반석 2016.01.03
380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장 28절-29절/ 1985. 9. 21. 토새벽 김반석 2016.01.03
379 하나님의 자녀/ 요한일서 3장 1절-3절/ 1985. 4. 7. 주일오후 김반석 2016.01.03
378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히브리서 12장 14절/ 1989. 7. 28. 지권찰회 김반석 2016.01.03
377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요한복음 1장 10절-13절/ 1989년 7공과 김반석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