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

 

1982. 4. 22. 목새

 

본문 :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가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전하신 이 전도가  복음입니다. 이 문서계시와 영감계시, 이 하나님의 도가 복음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고 하니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의 중심은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도록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면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도록 우리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는  복음은, 이 길을 전해 주는 복음은, 이 도를 전해 주는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거기에 나타나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우리들로 하여금 입을 수 있도록, 하나님 의를 받아 입을 수  있도록 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의는 곧 아버지가 독생자를 보내어  독생자가 사람되어 우리의 대속을 이루신 이 중보자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보자,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시고, 또 삼일 만에 부활하서서 아버지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성령님은 이 일을 후계 맡아 가지고 완료의 책임을 하고, 또  진리는 이 역사를 하는 데에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고,  법적으로 입힌 의를 실질적으로 입도록, 의로 장성한 자가 되도록 이렇게 하는  데에 수종듭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독생자를 보내고 독생자가 와 가지고 대형 대행 대화친의  새생명 이 세 가지 대속을 하셨고, 이 세 가지 대속을 하신 이것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입혀 주기 위해서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에 진리가  함께 역사하는, 그러면 이 진리는 아버지가 독생자를 보낼 때도 함께 일했고,  독생자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실 때도 함께 일했고, 성령님이 대속의  완료를 하실려고 하는 데도 함께 일한 진리입니다.

 이 넷이 합해서 하나로 일하는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이요 이 도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도가 복음입니다. 복된 소식이라, 기쁜 소식이라 하는 말인데,  뭐이 기쁘냐. 이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했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그러면 이 의를 입으면 삽니다. 그러면 이 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 이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는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진리가 합하여 성공해 놓은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의는 아버지가 독생자를 보냈고,  독생자는 대속의 일을 했고, 독생자가 대속의 일해 놓은 것을 성령이 와서  수종들어 이 대속을 완료하고, 이 일을 할 때에 진리는 함께 역사한 이 역사로  이루어 놓은 예수님의 대속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이 하나님의 의라면 이것은 무엇인가. 이 의가 곧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서 대속하게, 우리 죄를 대신해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을 입혀 주신 이것이 하나님의 의요, 이 구원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 복음이요, 이 하나님의 의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인데, 의가 이게 대속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타고 녹아지나 우리는 약속하신 바 의의 거하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하는 거기에 "의의 거하는 바" 의, 그 의가  무엇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불심판을 면하는 표준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의의 거하는 바, 그 의가 골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하는 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사랑, 이는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지공과 지성법으로만 활동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의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 복음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순종으로 순종에  이르게 한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을 믿음으로 산다 의인은 믿음으로 자라간다. 믿음으로 자라간다 의인은  믿음으로 자라간다. 의인은, 사랑의 사람은 믿음으로 자라간다 지공 지성법으로  살아간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뭣 때문에,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뭣 때문에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시게 됐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공법과  지성법을 범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공법으로만 움직이고 지성법으로만  움직이고 지성법을 어기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사랑을 만들어  내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첫째인가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이 첫째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요 지성 지공법은 하나님의 속성의 법칙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공 지성법이 하나님의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은 지공 지성법으로만 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독생자가 도성인신 해  가지고 와야만 했고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제물이 되어져야만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하나님의 사랑의  사람, 하나님의 사랑의 씨를 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의 씨를 받은 사람,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씨 곧 항상 계시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거기 "너희들이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들이 살아난 것은, 너희들이 살아난 것은 뭘로 살아났느냐. 살아난  것은 곧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났는데,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너희들은  피차 열심히 사랑하라. 사랑으로 살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건너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와  영감의 돌다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건너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감과 진리의  배로 우리에게 건너왔습니다. 그러면 영감과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이요  작용이요 발동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가진 생애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왜 의인이 믿음으로 살아야 하느냐.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인 이 본성을 우리가 받아 사랑의 씨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이 사랑의 씨가 우리에게 움이 튼 것이 그것이 뭐이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그것이 사랑의 씨가 우리에게 심어진 것이요, 이 사랑의 씨가 움튼 것이 믿음의  생애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중생과 부름을 받은  것이 다르니 중생 된 자를 하나님이 불러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씨가  우리에게 심어진 것이오. 사랑의 씨는 뭘로 심었는가.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사랑의 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씨가 심어졌는데, 이 사랑의 씨가 뭐  어떻게 자라는가. 믿음으로 자랍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이 이 사랑의 사람을 만든다 하는 것은 그 결과를 두고 말하는  것이고, 사랑의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하는 그것은 동기를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으로 살아난, 사랑으로 살아난 사랑의 씨가 그 속에 심어져  있는 심어진 자는 믿음으로 자라간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점점 커지는 것은  믿음으로 그 사람이 커진다. 그러면 믿음이, 믿음이 사랑을 만드느냐 사랑이  믿음을 만드느냐 하는 요것이 그 절정의 구별인데, 믿음이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 믿음으로 살아 자라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모든 것이 불타고 다 이렇게 소멸되지만 우리는 약속한 바의  의의 거하는" 의의 거하는, 하나님의 의가 거하는,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의가 된  이것들이 살기로 약속된 그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본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 사랑으로 된 것만 그 나라에서 산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성부가 성자를 보내는 게 사랑이요 성자가  대속한 것이 사랑이요 대속한 이 사랑을 성령과 진리가 맡아 자기고 뒷처리하는  이것이 다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이, 하나님의  사랑의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지공과 지성법으로 산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신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신데,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너희들은 사랑을 모른다.

사랑을 모르는데 사랑은 여기에 있다. 사랑을 봐라. 사랑이 무엇이냐. 아버지가  독생자를 보내셨고 아버지 보내심을 받은 독생자는 그 소원하는 것이 십자가의  대속이요 부활까지 하시고 또 성령까지 보내시는 것이니 그분의 소원이다.

 그러기에 이 사랑의 본능이 무엇인가. 사랑의 본능은 곧, 사랑의 본성이 목적을  정했고 또 이 사랑의 본성이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했고 창조했고 또  도성인신 해서 대속 했고 또 성령과 진리로 역사해서 이루는 이 전체가 다  사랑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과 꼭 같은 자를 만들려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위하여  만가지의 타락을 예정하셨고 또 거기서 대속을 예정하셨고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지옥을 예정한 그것이 인간들이 좁아서 자기 생각대로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공의에 거리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 거리낀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이 완성하시기 위해서 이러면 죽고 이러면  산다 하는 그 법칙을 가르쳐 준 것이 실물을 당신이 만들어서 가르쳐 사랑의  대상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신 그것이 죄가 아닙니다. 불의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 인간같이 생각하여 인간의 수준에, 인간의 동등 계급에 두고  생각하는 여기에서 그런 어두운 말은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이 말은 그것은 후자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말은 근원을 들어서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란 사람은  사느니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우리는 약속한 바 의의 거하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하는 이 의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라는 말입니다. 왜. 나가면 수십명의 주석책이 많이 있는데  거기 가면 다 이 깨달음과 서로 삐뚤어진 그런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쓸데없는 책을 자꾸 읽게 되면 자꾸 속화가 되고 이 교리와 신조를  삐뚤어지게 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는 뭐이냐. 예수 그리스도라 그것을 단정을  지우십시오. 또 예수 그리스도는 뭐이냐.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요, 모든 속성은 사랑의 본성이 나타날 때에 이런 면에는 이런 속성으로  나타나 활동하고 저런 면에는 저런 속성으로 나타나니 이 모든 속성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라 하는 것을 말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거기에 의가 하나님의 사랑이라, 여기도 말한 의가 하나님의 사랑이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그 의인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자는  믿음으로 산다. 믿음이 뭐인고. 믿음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인데 그 복종의  법칙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이 완성한 것은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함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불심판을 우리가 두고 준비를 하는데 이 불심판에 다 승리를  할 수 있는, 불심판을 이길 수 있는, 불심판을 닥치든지 안 닥치든지, 불심판을  통과했든지 안 했든지 불심판은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계급이 낮은 것입니다.

불심판에 통과한 것이라야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보다 더  온전하고 높은 것은 무궁세계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심판보다  권위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통과가 되고 합격이 되어야 무궁세계에 살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은 불심판 통과한 것을 재심판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다시 심판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불심판은 이게, 불심판은, 다른 것으로 나타난 것은 죽음의  심판인데, 개인 죽음의 심판이 불심판이나 성질이 같은 것입니다. 죽음의 심판은  개인에게 닥친 불심판과 같은 최종 최대 심판이요 그 심판은 육으로 살아 있을  때에 받는 심판이라 그말이오.

 심판인데, 이 심판은 곧 죽음으로 받는 심판입니다. 죽을 때에 쏵 떨어지요. 죽을  때에 쏵 벗어집니다. 죽을 때에 불탈 것은 다 타 버리고 남을 것만 남아 있소.

그것은, 죽을 때에 남아 있는 그 남아 있는 것은 불심판에 문제없이 다 기쁘고  즐거움으로 통과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불심판이나 죽음의 심판이나 같은  심판인데 이 심판은 부활해 가지고 심판 받는 그 심판보다 계급이 낮은  심판입니다.

 그러면 불심판과 죽음의 심판이라는 이 심사가 육체로 있는 동안에는 최종  심사요 최종 심판인데, 이 심판은 공산주의자들이 와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고문과 고형을 하는, 이렇게 저렇게 고문과 고형을 하는 이 고문 고형의 그때에  통과한 것, 통과한 것 중에도 죽음의 심판과 불심판에 통과 못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고문과 고형하는 그 고문 고형에, 이것도 심판인데  고문 고형의 심판은 죽음의 심판보다 아주 미약한 유약한 심판입니다. 불심판보다  유약한 심판이오. 고문과 고형을 당하지 아니하고 통과하면 그것이 통과될 줄로  아는데 고문과 고형을 당했든지 말았든지 고문과 고형을 넉넉히 통과한 것만이  이 불심판 개인의 죽음의 심판 이 심판을 가서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고문과 고형에 통과된 이것도 1차 합격, 고문과 고형에 합격된 이것도  2차 시험인 죽음의 합격이 될까 말까, 불심판의 합격이 될까 말까, 불심판 죽음의  심판에 통과한 이것이 제3차 심판인 부활 후 하나님의 공심판에 통과가 되나 안  되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심판, 그리스도의 사심판에 통과되느냐 안  되느냐, 그리스도의 사심판에 통과가 됐으면 그 다음은 무궁세계에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땅위에서 시험 없기를 원하는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 땅위에 시험이 없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것을 자기가  모르기를 원하는 사람이요, 또 자기에게 있는 실력과 좋은 것을 모르기를 원하는  사람이요, 자기에게 잘못된 것을 아는 것은 그것을 땅위에서 고칠 수 있는 기회에  고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알게 하는 시험에 좋은 것이고, 또 자기에게는  실상 통과할 만한 그만한 실력이 자기 속에 있는데 공연히 실력 없는 줄 알고  벌벌 떨고 낙망을 하는 이 자에게는 그 시험으로 말미암아 보라, 네 속에는 이런  능력이 들어 있다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소망에 용감하게 해 주기 때문에 시험은  은혜인 것입니다. 시험은 보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시험을 싫어하는 것은 옛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옛사람 그놈이 시험을 싫어합니다. 시험을 싫어하는 그놈은 옛사람  그놈입니다. 우리는 옛사람 그놈과 새사람을 언제든지 구별해서 옛사람 그놈은  원수로 알고 요놈을 죽이려고 애를 쓰고, 요놈의 간판을 딱 붙여 놓고 요놈을  죽이려고 애를 써도 이놈이 어떻게 민첩한지 그놈을 죽여야 할 때는 꼭 숨어  가지고 안 보입니다. 안 보이고 숨어 가지고 있다가, 새사람으로 살도록 이래  가지고 있다가 새사람으로 살 때에 심신이 피곤타 할 때에 옛사람 요놈이 나오는  줄 모르게 살짝 나와 가지고 요놈이 자기가 되기 때문에, 옛사람 자기와 새사람  자기가 서로 바꾸는 교체 시간이라는 것이 1분 걸리는 것도 아니요 순간 걸리는  것도, 찰나도 안 걸립니다. 찰나보다 더 빠릅니다. 더 빠르요. 그놈이 그놈인 줄  알고 언제 바꾸어졌다는 것을 인식을 못하게 된다 그거요. 또 얼마나 바꾸기는  민첩하게 바꾸어지는지.

 그런고로 우리는 새사람과 옛사람을 요것을 잘 구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은 옛사람은 괴롭게 하고 마르게 하고 옛사람은 죽이게 하고  새사람은 살찌게 합니다.

 이북에 공산주의가 되어 가지고 모두 이북에서 월남한 성도들, 월남한 성도,  월남한 그것이 그때에 말 들어 보니까 인민군들이, 공산군들이 첩첩이 초막을  지어 놓고 지금 월남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데 가서 들키면 뭐 사형도 받고  있는 것 다 빼앗기고 저 소개하는 귀양살이 보내는 그런 데로 보내야 되고  이러니까 죽을 지경이라. 넘어오면서 죽을 지경이라. 주여, 저 초막만 통과하게 해  주옵소서,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렇게 자복을 하고 올 때 그때는  무슨 때인고 하니 옛사람 그놈이 지금 죽는 때입니다. 그놈이 죽이는 때이고,  새사람은 웃고 옛사람은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은 요 시험 당하는 것이 요것이 곰국 하는, 곰국을 하는  이거 시험은 곰국이라, 무슨 곰국이라. 옛사람 그놈을 부굴 부굴 고아 가지고,  옛사람을 고아서 새사람이 먹으면 살이 찌고 튼튼해진다. 옛사람 그놈 잡아서 곰  하는 그 시간이 시험이기 때문에 시험은 기쁘다. 그 어른은 바로 잘  깨달았습니다. 참 좋은 점을 많이 깨달았소.

 나는 그분에게 배운 것 꼭 하나 있는데, 좋은 것 배운 것 하나 있는데 뭘  배웠느냐 하면 사람을 만든다. 자기를 사람을 만드는 이것이, 그것이 자기 믿음  지키는 것이요 자기를 참사람 만드는 것 이거 외에 딴것은 할 게 없다. 이것만이  할 일이다 그 말이 내나, 우리는 둘러 가면서 말을 많이 했지만 그 어른이 깨달은  그 핵심을 우리가 잡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빙빙 돌다가 많이 말했는데  그 어른으로 말미암아 큰 것을 얻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 의, 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여기 대해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 말세에 불심판 때에 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의만이 하지  않는다. 의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생하게 된다. 요 의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굳게 잡고 요동치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키려고 마귀가 수많은 신학자, 수많은 목사들을 제 부하로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미혹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면 시험에 들 것이기  때문에 굳게 잡아야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 말은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완성이  나타났다 말인데, 지공 지성의 완성이 나타났다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는 이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중보자의 구속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구속을 받는 자는 믿음으로 살리라, 순종으로 살리라,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법으로 살리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어떤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1차 시험, 자기 개인으로서 이 세상에 신앙생활 하기에  어려운, (첫 시간부터 와서 누워자지. 여기 오면 아무 이 말씀은 들려지지 않아.

이름을 부를까. 엊저녁에도 보니까 시작 때부터 끝까지 자더구먼.)  첫째 시험은 뭐이냐. 자기 개인으로서 신앙생활 하려 할 때에 유혹으로, 또 이런  어려움으로, 복잡으로 이래 가지고 신앙생활 하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제일  유약한, 아주 빈약한 1차 시험이요 심판입니다.

 그 다음에는 좀 어려운 심판, 그것을 가리켜서 불심판이라 그래 말했습니다.

너희들에게 불과 같은 불시험과 같은 어려움 시험이 오는 것은, 불시험이라,  그러면 불시험이라 했는데 그게 불심판이라 그말이오. 불시험이라 말은  개인적으로 오는 그 시험보다 좀 높은 고급 심판, 고급 시험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은 공산주의가 와서 고문 고형을 한다든지 하는 그런 어려움, 자기  개인으로도 살림살이가 당장에 절단이 난다든지 자기가 무슨 병이 들었다든지  자기에게 참 자살할 만침 난제가 닥쳤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높은 시험을, 높은  심판을 말해서 불시험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고문과  고형을 한다면 그 고문 고형은 그것은 불시험이요 불심판이 되겠습니다.

 그것보다도 더 큰 심판은 무엇인가 더 큰 심판은 무엇입니까. 더 큰 심판 둘이  있다고 말했는데, 더 큰 심판이 이 세상에서 둘이 있다고 말했는데, 세상에서는  최종 최대의 시험이요 심판인데 그 시험 심판은 뭐이라고 했지요. 남반에서  하나만 말해 보십시오. 죽음, 여반에서 하나 말해 봐. 남반에서 하나 말했는데 또  여반에서 하나 말해 봐. 예, 불심판.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불심판. 네. 그 두  가지입니다. 그 둘은 내나 하나인 것입니다.

 이러고 나면, 이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부활해 가지고 마지막 최종 심판이  뭐인고 하니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 가면 거기에서 이제  제거될 것 다 제거되고 그 심판에 통과한 것이 무궁세계 가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같이 왕 노릇 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같이 기뻐합니다.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이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하려 함이라" 주님의 기쁘심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기뻐 즐거워 견디지를  못해서, 어떻게 아버지여 나를 이렇게 피조물로서 최고의 사랑으로 최고의 대우를  해 줍니까. 십자가의 죽으심이 최고의 대우랍니다.

 아버지가 기뻐한 거는 무엇 때문에, 뭘 기뻐했습니까. 예수님이 인성으로  도성인신 해 가지고 오실 때에 아버지가 만족했습니다. 오셔 가지고 우리를 대속  하는 대속의 세례를 받을 때에 어떻게 아버지가 좋아했던지 하늘에서, 하늘에서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또 변화산상에서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서로 의논하고  이것을 발표할 때에, 한번 다지고 발표했을 때에 또 아버지가 기뻐해서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타났습니다.

 또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가려고 요한복음 17장에 아버지에게  간구 할 때에 아버지가 이미 영광을 받았고 또 영광을 받을 것이고 또  기뻐한다고, 그래서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아들을 영화롭게 해 주옵소서" 그 영화롭게 하는 것이 뭐이냐. 죽는 것이오.

아버지는 아들이 대속의 죽음을 죽음으로써 영광을 받으시고, 아들은 아버지가 이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는 것으로써 영광을 받는 것이고, 죽음의 영광, 죽는 것이  영광이요 기쁨이요 소원이오. 그 무엇이기 때문에 그것은, 죽는 것을 기뻐하고  영광이 되고, 또 그는 대속, 죄는 다른 사람이 지었는데 대형하고, 다른 사람이  행할 것을 대신 행하고, 다른 사람이 원수 됐는데 원수의 벌은 자기가 받는  그것으로써 만족하고 기뻐했으니 그 어떤 성격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럴까.

그게 뭐일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성장된 것만 무궁세계에 가서 영생하게 됩니다. 사랑은  여기 있는데 사랑은 어떻게 사느냐,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으로 산다 하는 것이  사랑이 사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땅위에 있는 인간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알아 보면  본질과 본성이 완전히 딴 거 아닙니까. 정반대 아닙니까. 이런데 요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사랑으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 신학자들이오. 뒤집어 놓은 것이  목사들이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위험 인물, 우리의 제일 원수가 신학자요 우리가  요구하는, 제일 요구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신학자요. 목회자요.

 이러기 때문에 요번에도 마흔 둘 되는 목사가 연맹해 가지고 이는 공산주의가  방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 안에 있는 우리 편의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반발심, 정부에 대한 반발심으로서 이와 같이 했다 그자가, 그자가 공산주의의  앞잡이 된 요지 자인데 그자가 뭐이냐. 그 사람도 다 공산주의 아니오. 그 42명이  공산주의 아니오. 공산주의 아닌데 공산주의 앞잡이 노릇 하는 것, 공산주의에게  설복을 당해 가지고 한 것인데 그게 내나 옛사람 그거 가지고 목사 노릇 하는  자들입니다. 옛사람 그거 가지고 목사 노릇 하는 인간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미혹  받으면 안돼요. 그것은 우리가 바로 알아야지.

 그러기에 미국이 그렇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후하게 하는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 가지고, 여기에는 나쁘니까 몽둥이를 때리면서 일을 시켜야  되는 것인데 아주 수양 받아 가지고 신사 된 사람에게 대우하는 것처럼  대우하니까 악을 조장시키는 결과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미개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편이기 때문에 그 방편이 나빴다 그말이오. 또 그들은  안일주의로 어쨌든지 평안하기를 원하는, 평안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지금 자꾸,  앞으로 저쪽에서, 자, 저쪽에서 지금 우리 땅을 이만큼 달라고 이렇게 달려드는데  이것을 우리가 탁 물리치면 물리칠 수 있느냐. 아이구 물리치면 다문 한  사람이라도 죽으니까 어라 양보하고 말자. 양보하고, 양보해서 다 똘똘 뭉쳤기  때문에 바짝 불에 타 버릴 것이고 몽둥이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어리석어.

 이러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이제까지 나온 그 대통령과 정반대 사상을  가지고 대통령이 됐는데 암만 하려 해야 뒤에 의회니 뭐이니 상중하의 무슨 그  위원들이 회에서 그 레이건 대통령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해야지. 이러니까  했다가는, 말을 선포했다가는 또 취소해야 되고 선포했다가는 취소해야 되고  이러니까 얼마나 말랐든지, 그 사람이 참 아주 세골 미남인데, 아주 한량꾼같이  그렇게 그런 사람인데 요새는 대통령 몇해 안됐는데 어떻게 바짝 말랐는지, 바짝  말라서 막 쪼글 쪼글 주름살이 들고 그만 궁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 사람 말한 대로 미국의 의회가 따라가야 저거가 살지 안 따라 가면 죽습니다.

하려 해야 해야지. 저쪽에 칼을 들고 왔는데 이 칼을 막아야 되겠다. 못 막는다.

의회 해야 된다. 저쪽에는 찌르러 오는데 여기는 돌아다니면서 의회 다 하려  하니까 벌써 다 찔려 뒈졌는데 어쩔거요, 뒈졌는데.

 이러니까 이거 하나, 사람 하나 죽이면 만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하나  죽이는 그거 죽이면 안돼, 살인자라. 살려라, 사랑으로 사랑으로. 하나를 아껴  가지고 10만명이나 만명이나 죽이는 그 죄값이 미국에 있다 그말이오. 월남에  많은 사람의 살인이 미국에 있다 그말이오. 살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 그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나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이 좁으면 안돼 넓게 봐야 돼.

 이렇게 사랑과 사랑을 혼돈 시키는 이 말세를 당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없어. 기본구원은 있어도 건설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교회도 제직회를 모이든지 당회를 모이든지 권찰회든지 하면, 이  사람은 첫째 아담의 사랑을 가지고 나를 지도하나 둘째 아담의 사랑을 가지고  나를 지도하나 그걸 구별하지 못한다면 저는 죽습니다. 첫째 아담의 사랑은  말하면 사람들이 꿀같이 달게 여기고, 둘째 아담의 사랑을 말하면 이것은 자기를  죽이는 독약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이오.

 인본, 여기서도 인본, 나를 접촉해 보면 인본이 깨진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  것입니다. 장로로 지금 장립 받은 사람들도 처음에 접촉하기 전에는 그랬지만  자꾸 접촉하고 접촉하고 나면 절대로 나를 업수이 보지 못할 것입니다. 나한테  꺾어지지 않고는, 순종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왜. 내가 하나님과  진리와 같이 하는 걸 저거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복음이 나가면 멸시를  받습니다. 멸시를 받아. 그들은 할 말이 이단이라고 할 말밖에는 할 말이 없소.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그들이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집니까.

 서부교회 백조사는 강단을 저 혼자만 차지하고, 다른 사람을 강단에 세우면 안될  터이니까 강단을 저 혼자 차지해 가지고 그런다. 이 등신아, 거기 가서 다른  사람을 청해 가지고 좀 사경회를 하도록 좀 그렇게 해라. 이러니까 그 말에  유혹을 받아서, ○○○이라고 그전에 여기 남전도회 회장을 내가 시켰습니다.

하도 그래서 회장을 떡 시키니까 말하기를, 지금 외계에서는 말하기를 서부교회  백 조사는 강단에 다른 사람을 세우지 아니하고 교훈 교류를 하지 않는다고, 이래  가지고 제가 왕 노릇 할려고 그런다고, 이러니까 우리도 다른 사람도 청해서,  남전도회 주체로서 청해 가지고 수요일날이나 금요일날 그때에 예배 보도록  합시다.

 그럼 그래 하자. 그래 하자. 그래 하는 데는 조건이 있다. 그분들이 우리 강단에  한번 와서 서면 또 나도 그 강단에 가서 한번 서도록 그렇게 품앗이를 하도록  요것을 조건으로 해서 강사를 청해라 이랬더니만 이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좀 와  달라. 예. 가지요 그런 데는 또 이 강단에서도 백조사님을 한 시간 청하도록  그렇게 청해 주십시오. 안 한다고. 돌아다니며 보니까 한 사람도 오려 하는  사람이 없더래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교파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 말이 그 말  한 마디에서 완전히 다 막아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소. 지금도 어느 교회든지 가 가지고 와서 여기 서부교회 사경회  하기로 하고, 딱 약속하고, 먼저 와서 하고 나는 그 다음에 하고 이러기로 하면  나는 어느 강단이든지 가고 싶습니다. 어느 강사든지 와서 청하고 싶소. 여러분들,  알고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갈래길이 수많은 갈래길이 있소. 이러기 때문에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하기를 열린 문을 네게 준다 그 말은, 문을, 문을, 첩첩이 문이 있는데, 한 문  통과하니까 그 다음에 또 문 있고 또 문 있고 또 문 있고 또 문 있고, 그 말은  갈래길이 있다 그말이오. 외통목으로 가다 보니까 또 갈래길이 생겨, 그 갈래길은  하나는 사망으로 가고 하나는 생명으로 갑니다. 그 갈래길에서 사망으로 갔으면  그 다음에는 갈래길이 없습니다. 사망으로 간 데는 갈래길이 없어. 한 길뿐이오.

생명으로 가는 길은 사망으로 가는 길 하나를 피하고 생명으로 가고 보니까 그  다음에 또 사망길이 또 나옵니다.

 그 사망길을 피하고, 있는 사망길을 피하고 피하고 다 피하고 마지막에 사망길  없는 데 가는 것이 그것이 이제 마지막에 자기가 최종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신 차려서, 새벽으로 나와 가지고 배워야 될 터인데 안 배우고,  자기가 뭐 아무 것도 모르는데. 안다고 하는 사람 그 사람, 자기는 모르고 안다고  하고, 나는 그 모르는 것을 알고 내가 모른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와서 말하면  몰라. 물으면 몰라. 알거든 내가 시험을 칠 터이니까 그걸 답을 써 봐. 백 문제를  내 가지고 한 문제도 답 못 하도록 쓸 수 있어. 예수 믿는 이치인데 그러면  얼마나 구원에서 멉니까.

 내가 오늘 아침에 기도하다 그게 생각이 났는데, 우리 이덕성 장로님을 남권찰을  만들 게 아니고 주일학교 반사를 가서 하라고 해야 되겠다, 죽기 전에 반사를  해도 해야 그분의 구원이 바로 되지 그거 안 되면 자기 딴에는 의인인데, 스스로  의인인데 하나님 앞에는 합격이 없습니다. 합격점이 없어 좋은 요소가 많고  그분이 양반이오. 그분이 양반입니다. 쌍놈 아니고 양반이오. 양반인데 양반이기  때문에 구원 이루기가 힘듭니다. 주일학교 반사를 한번 해야 돼요.

 자, 60세 이상으로 반사 하는 사람 여기 손 들어 봅시다. 하나 둘 셋, 그뿐이가.

더 있을 건데, 여반에. 자, 50세 이상으로 반사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50세 이상으로 반사 하는 사람. 더러 많네. 네.

 그런데 저 박윤철목사님, 박윤철목사님 주일날 오후예배, 주일학교 오후예배를  인도하셨고 수요일예배, 지금 수요일예배 인도하시고 주일 오후예배는 인도를 안  하시는데 박윤철목사님 반사 할 생각 없는가 한번 반사했으면 참 좋을 건데. 왜  목사 노릇은 하지만 반사 노릇은 못했습니다. 반사 노릇은 못해 봤어. 옛날에 해  봤는가. 옛날에 해 봤습니까. 옛날에 해 봤는데 옛날 하는 그 반사는 요새 반사가  아니오. 그 반사는 교만한 반사요. 그때 반사는 아마 1학년은 전부 1학년으로 다  모여드는 그 반사, 놀고 있어도 반사는 된다 말이오. 요새 학생들 하나 둘 이끄는,  박윤철 목사님이 반사 노릇 했으면 상급을 많이 장만하고 가겠는데. 그러면 많이  장만하고 가겠는데.

 여기 시찰하러 오면 여게는 목사 반사도 있습니다, 그 목사가 타락한 목사가  아니고, 제거된 목사가 아니고 이 양성원, 목회자 양성원 거기에 교학실장인데  지금 주일 학교 반사합니다. 이러면 온 전국에 장로가 반사를 하다니, 장로  반사가 지금까지 떨어졌는데 목사가 자기가 이제 은퇴한 목사가 반사 노릇을  하다니 이것은 큰 빛이 되겠는데, 사람들은 복된 일을 시키면 안 합니다. 손해 갈  것 위험한 것 높은 자리 올려 세우면 좋다고 이래 가지만 참 수입 볼 자리는  말하면 안 해.

 지금 박윤철목사님 반사 노릇 하라 하면 저 사모님도 이래 가지고 마음에 감사  기쁨이 안 나오고 멍하이 이래 가지고 목사를 반사 시켜. 참 가치 없이 여기네.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라. 박윤철목사님도 반사 하라 하니까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 아멘, 주여, 나에게 주님 명령대로 내가 반사  노릇하겠습니다. 학생을 내가, 반사를 1등 하겠습니다. 암만 해 봤자 1등 어림도  없소. 1등 못 합니다. 1등은 못해. 못하지만 몇 등이나, 3등이나 하면 대성공이요  실력 있는 목사요.

 우리 배목사님 지금 은퇴하고 연만해 계시는데 권찰 일 하는 그거 이제 반사  노릇 해서 배목사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다문 한 너덧 학생들 앞에 놓고  이래 가르치면서 목사가 이래 앉았으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야, 배목사야, 등어리  톡톡 두드려 주면서 참 좋아하실 건데 주님의 그 사랑의 손길을 몰라 그런 거라.

 불심판 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인데 하나님의 의는 사랑입니다.

 불심판을 면하는 표준 계명을 뭐이라고 했지요. 사랑. 온 성경은 이리 가고 저리  가고 마지막에는 한군데 모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워 가지고 단단히 굳게 서서 견고히 잡아야 나가면  흔들리지 않지, 나가면 지금 여러분들 삼키려고 마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리고 있어. 교리를 삼키고 신조를 삼키면 그 다음에 다른 것은 저절로 삼켜지고  마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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