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22:22
하나님의 은혜와 자기를 다하는 것
1982. 4. 2. 금야
본문 : 벧후 1:14-21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다 예언인데 이 예언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지 말아라 말씀했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다 예언 말씀입니다. 예언의 말씀이라는 이 뜻은 신구약 성경 말씀은 아직 닥치지 아니한 미래의 것을 미리 말한 말씀이라 이렇게 생각하면 잘못 안 것입니다.
예언의 뜻은 한문 글자로 쓴 그 뜻을 생각하면 미리 예(豫)자 말씀 언(言)자, 미리 말한 것이라 이 뜻으로 한 말이 되지마는 실은 예언이라는 것은 영원 자존자이신 창조주, 주재, 무한하신 이분의 뜻이요 이분의 지식을 피조물인 사람들은 모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분은 지극히 크시고 영원하시고 완전하셔서 인간이 그가 어떻게 계시며 얼마나 크시며 얼마나 권위 있으신 분이신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비밀의 뜻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옳고 바르게 알려 주신 말씀이 다 예언입니다.
지나간 것을, 지나간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도 예언이요, 현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도 예언이요, 장차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는 것도 예언입니다. 이 하나님의 비밀의 높은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그 사람의 직책의 이름을 가리켜서 선지자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예언의 말씀은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사람을 감동시켜 정확무오하게 인간들에게 알려 주신 것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또 사람을 통해서 기록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그분에게 감화 감동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예언이요 진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로이 풀지 말아라 말씀을 했습니다.
사사로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지 말아라. 또 해석하려고 하지를 말아라 사사로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해 봤자 도리어 죄나 짓지 안 되는 것이니까 사사로이 하나님 말씀을 상대하지도 말고 또 알려고 애를 쓰지도 말고 해석하려고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고도 하지 말아라 하는 말입니다.
사사로이 풀지 말라는 말은 이런 것을 다 내포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사사로이 푼다 말은 인생 혼자 이 말씀을 상대하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인생 혼자 상대하지 말아라. 뭐 천인이 뭉쳐 가지고 연구해도 안 된다. 전 인류가 다 달려들어도 안 된다. 인류만 가지고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해도 안 되고 알려고 연구해도 안 되고 해석해도 안 되고 전해도 안 된다. 사사로이 인간만으로 하지 말아라.
왜. 이 말씀은 근본 완전하신 무한하신 그분의 뜻이요, 지식이요, 또 그분이 사람을 붙들고 감화 감동을 시켜 이 말씀을 기록해서 인간들에게 준 말씀인데, 비록 사람이 기록했지마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감화 감동시켜 기록하실 때에 이 기록한 말씀은 획 하나가 우주보다 중량이 무거운 큰 이 말씀, 정확무오하게 이 말씀을 기록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셨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인간만으로서는 이 말씀은 대할 자격도 없고, 연구할 자격도 없고, 해석할 자격도 없고, 전할 자격도 없다. 다만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아 가지고 기록했을 때에 정확무오하고, 연구할 때에 정확한 깨달음, 또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할 때에 이 말씀은 정확한 권위의 말씀으로 전하여진다.
그러기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올 때에도 인간 단독으로서의 이 말씀이 통해서 온 것 아니고 사람을 성령님이 감화 감동 시켜 가지고 이 말씀이 왔고, 온 말씀을 다시 상대하고 이 말씀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전하는 데도 성령의 감화 없이는 하지 말아라. 사사로이 하지 말아라. 성신의 감화를 받아 하면 정확무오하게 양도 그러하고 질도 그러하고 권위도 그러하다 하는 것을 여기에 먼저 밝혀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이라는 것과 또 예언은 어떤 것을 예언이라고 하는가 하는 것을 이 시간 증거 했고, 또 이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올 때에 인간만으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한 것이 아니고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전했다.
이 전한 말씀은 인간이 전했지마는 성령의 감화 감동을 입어 전해서 정확무오한 기록이 됐다. 이 기록한 말씀을 같은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연구를 할 때에, 깨달을 때에, 해석을 할 때에, 가르칠 때에 또 정확무오한 권위로나 결과적으로나 정확무오의 결과를 맺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인간 단독으로서는 안 된다. 아예 사사로이는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먼저 이 시간에 증거 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입각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으로 인해서 자타의 큰 손해를 봅니다.
따라합시다.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녜, 이 말씀은 인간만으로 이 말씀을 상대하지 말아라 하는 이 말씀입니다. 푼다 하니까 해석을 하는 것만 말하니 해석하는 그 외에 딴것이야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리석게 여기에 대한 말씀을 제 마음대로 축소시키기 쉽습니다. 다 기록하려면 천하에도 둘 곳이 없을 만침 많은 말씀을 간단 명료하게 축소해서 기록해 주신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만으로는 안 되고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아 가지고라야 이 말씀을 상대할 수도 있고 연구할 수도 있고 깨달을 수도 있고 해석할 수도 있고 전할 수도 있지 인간만으로는 상대해도 안 된다 금했습니다.
그러면 인간만으로는 안 되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려고 오신 분의 이름을 가리켜서 성령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령님이라고 이름하는 이 하나님의 돕는 은혜를 입어 가지고라야 이 말씀을 바로 볼 수도 있고 바로 깨달을 수도 있고 또 바로 증거 할 수도 있고 이 말씀의 혜택을 바로 입을 수도 있지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입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먼저 영원 전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창조함을 받아 난 자라야 합니다. 이거 하나 제일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선택자로 지음을 받아 난 자라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구속을 입어 중생 된 자라야 합니다. 하나 더 있는 것은 중생 된 자를 하나님께서 이제는 예수님을 믿어 건설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이 구원역사에 시작하심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우리는 이 세 가지 은혜를 다 입은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만 더 있으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라고 그렇게 해석한 것은 익숙하지는 못하지마는 자기대로는 자기의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 가지고 이 말씀을 상대할 때에 성신의 감화 감동은 그에게 역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하여 하나님 말씀을 상대하는 것이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버리지 않고 이미 받은 은혜를 자기가 간직하고 이 은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별스럽게 새로 바치는 것 아니고 받은 바의 은혜 생활을 자기가 하려고 하면 이것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받은 바의 은혜 생활을 하는 것이 안 됩니다.
자기가 이것을 다한다고 해서 성령을 영접할 만한 무슨 재료나 대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 받은 바의 은혜를 자기가 저버리지 않고 이 은혜를 간직하려고 하면 자기 있는 그 자기 인격 전부가 이 은혜 아래에, 이 은혜의 것이, 이 은혜를 모셔야 이 은혜가 모셔지고 저와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다하는 것이 새로운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받은 바의 은혜를 간직하는 것이며 이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이 은혜를 받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아서 은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영접하는 방편입니다.
우리에게 역사적인 성령은 우리가, 전 인류가 다 죽었다가 일어나고 전심전력을 다 똘똘 뭉쳐 기울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은 그런 것들에게 영접함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에게 피동 되어서 그 힘에 끌리거나 그 힘의 가치를 보고 성령님이 그 환영을 간구를 받아서 임하는 것 아닙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전 인류가 다 죽어도 성령님은 눈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까짓 것 엿새 동안에 다 지은 것입니다. 가치 적은 것입니다.
다만 이 성령님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택하심 안에서 지음을 받은 것과 예수님의 대속과 진리와 성령의 중생시키신 것과 또 불러 성화구원을 이루게 하시려고 보증자되신 이 성령님의 착수 이것이 큽니다. 이로 인해서 성령님이 우리와 동행할 수 있지 다른 것 가지 고는 안됩니다.
이 은혜, 택함, 창조, 구속, 중생, 성화의 보증 이 다섯 가지. 이 다섯 가지로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 가지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은혜가 자기에게 실상으로 역사 하게 하는 데는 자기의 있는 것을 다 하지 아니하면 이 은혜를 영접함이 되지 않고 이 은혜를 모셔 힘입을 수 있는 일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는 것 이것만 다하는 것이 이 다섯 가지 은혜를 배반치 아니하고 이 은혜를 모시고 이 은혜를 힘입어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그에게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본 은혜와 건설 은혜를 혼돈 시켜서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기본 은혜는 하나님이 단독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건설 은혜는 어디까지나 기본 은혜를, 우리가 받은 이 은혜를 소중히 여겨 이 은혜를 배반치 않고 이 은혜를 힘입어 움직일 때에, 기본 은혜를 힘입어 움직일 때에 건설 은혜는 피동 되는 것입니다. 기본 은혜를 우리가 받아 이 은혜로 움직일 때에 하나님께서 피동적으로 따라서 움직여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행한 대로 갚으리라" "구하라 주마" 성화적인 이 은혜는 전부가 기본 은혜를 받은 우리가 능동이고 하나님은 피동입니다. 이것을 혼돈하고 착각하는 데에서 사람들은 실패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깨달음이 이러하거든 성경을 깨달아 실용하는 것도 꼭 같이 이러합니다. 또 실행하여 열매맺는 것도 꼭 같이 이러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닫는 것도 순전히 하나님이신 성령의 깨닫게 해 주심을 인해서, 깨닫게 해 주심으로 인하여 깨달아지고, 또 깨닫게 하신 성령님이 행하게 해 주시는 그 주심을 인하여 행하게 됐고 깨닫고 행하게 하신 그분이 성화의 열매를 맺게 하신 그대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깨달은 것도 순전히 객관 역사요, 행하는 것도 객관 역사요, 열매 맺는 것도 객관 역사요, 우리의 주관은 하나님이 기본 은혜로 주신 이 은혜를 버리지 않고 이 은혜를 간직하고 이 은혜 생활을 하는 그것 뿐입니다.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놨습니다. 하면 됩니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이것이,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놨는데,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이 은혜 생활을 하는 데는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자기 다하는 것, 이것 다해야 받은 바의 이 은혜를 모시는 데에 합당하고, 또 이 은혜를 배반치 아니함에 합당하고, 은혜 생활하라고 은혜 줬기 때문에 이 은혜 생활하는 것도 다해야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모시는 데도 다해야 되고 이 은혜를 배반치 아니하는 데도 다해야 되지 조금만치라도 덜하면 배반하게 돼 버리고 이 은혜 생활을 하는 데도 다해야 돼. 다가 아니면 안 돼.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기본 능력인 택함과 택함 안에서 창조와 구속과 중생 성화의 성령 보증 이 다섯 가지의 은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깨닫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이니 이미 다섯 가지 은혜 받은 것이 순전히 인간은 손대지 않고 하나님 혼자 해서 전적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인간이 한 것 하나도 아닙니다.
또 그 다음에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그 다음에, 이제 이 다섯 가지 기본 은혜를 받아 가지고 건설 은혜 이 은혜를 받아야 되겠는데 그 은혜가 몇 가지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안 가리키면 나 오늘 저녁 설교 이만하고 말겠어 전부 귀신이 모두 들어 가지고, 모두 다.
그 몇 가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뻐뜩 들어 가리켜 봐. 이런가. 둘, 이래요. 이래. 저기는, 왜 저기는 손 안 들어. 몇 가지요. 다섯 가지, 다섯 가지.
이 ○집사님 부인은 다섯 가지라네, 몇 가지. 자, 저기에는 몇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손가락으로. 가만히 와서 앉았기만 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세 가지.
깨닫는 것, 행하는 것, 성화의 열매 맺는 것. 몇 가지 은혜라요. 이제 똑똑히 말해.
몇 가지의 은혜라요. 고함을 질러. 몇 가지 은혜라요. 몇 가지 은혜요. 세 가지. 세 가지 이 은혜도 순전히 하나님이 혼자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 아닙니다.
여기에서 혼란은 가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다섯 가지 기본 은혜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은혜 생활하면 세 가지. 이 은혜를 배반치 아니 하려면 다해야 되요. 이 은혜를 빼앗기지 않고 간직하려면 다해야 돼요. 목숨 하나라도 다하지 않고 목숨만 빼 놔도 이 은혜 다 빼앗깁니다. 다해야 빼앗기지 않아요. 또 이 은혜 생활을 하려고 하면 또 다해야 합니다.
이러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는 것이 이미 받은 기본 은혜를 배반치 아니하는 행동이요, 이 은혜를 간직하는 행동이요, 이 은혜 생활하는 행동이요, 그것이 새로운 건설구원의 것을 제 힘으로 깨닫고 제 힘으로 행하고 제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것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 다섯 가지 은혜 생활, 이미 받은 은혜 생활, 이 다섯 가지 은혜가 와 가지고 이 다섯 가지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소. 우리만 다하면 할 수 있소.
왜. 다해서 은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빼면, 이 은혜를 입힐 때는 다해 가지고 입힌 것인데 다 안 하고 조금만 떼 놔도 은혜는 자기에게 역사적으로는 입혀지지도 않고 강직해지지도 않고 은혜 생활을 할 수도 없어요.
백의 하나만 빼도 백 수가 아니라. 만에 하나만 빼도 만이 아니라. 이 다섯 가지 은혜는 우리의 전체에게 했기 때문에 하나라도 빼면 이 은혜와는 상관이 없어져.
법적으로는 입지마는 역사적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할 때에 이 은혜를 버리지 아니한 것이요, 간직하는 것이요, 은혜 생활을 하는 것이라.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이 다섯 가지 은혜 생활을 함을 인하여, 이 다섯 가지 은혜를 배반치 아니함을 인하여, 이 다섯 가지 은혜를 인하여 세 가지 은혜를 덧붙여 줍니다. 깨닫는 것 행하는 것 열매맺는 것, 이러니까 이제는 은혜를 몇 가지 받아 놨습니까. 몇 가지요. 몇 가지. 여덟 가지.
여덟 가지. 여덟 가지 이 은혜는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완전자, 완전자 영원 불변자 자존자 주권자 아무 것에게도 피동 되지 않고 아무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당신 혼자 만들어서 나에게 주신 것이 여덟 가지 은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다 영원성이요, 완전성이요, 불변성이요, 영생성의 것입니다. 유한한 것이 어떻게 무한을 만들 수가 있는 줄을 압니까. 이것을 다 착각하고 혼돈 혼합해서 기독교가 이렇지 세상에 짓밟힘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제가 좀 잘난 자는 제 힘 가지고 되는 줄로, 못난 자는 이렇게 못났기 때문에 세상 일 안 되니 예수 믿는 일도 안 되는 줄로, 그러나 바로 깨달으면 높은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낮은 자는 높아진 것으로 자랑합니다.
이것 가지고 될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아니라 팍 낮아졌고, 나는 이렇츰 낮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로 알았는데 예수 믿는 도를 딱 깨닫고 보니까 못할 것 없어. 왜. 많으나 적으나 다만 하면 된다 그말이오. 다만 하면 돼.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의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혼자 만든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된 것이지 우리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받은 은혜를 강직하면 그것이 그 다음 은혜를 끌어 올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하나님에게 드려 갚음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주시니까 주신 것 그것 잘 사용하니 또 주시고 또 주시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과 성도와의 여수관계지, 인간이 하나님에게 뭐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보상으로 보복으로 뭐 주는 것인 줄 압니까.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문벌 좋은 자, 학벌 좋은 자, 세상에 높은 자, 큰 자가 많지를 못하다 이랬습니다. 문벌 좋다 말은 종자가 좋다 그말이오. 학벌 좋다 말은 지식이 많다 그말이오. 능한 세상에 잘난 사람 훌륭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그것 믿고의 지혜 가지고 이것으로 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헛일이라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복음 역사, 이 구원 역사, 생명 역사는 순전히 하나님 혼자 하시는 것인데 혼자 하시는 이 은혜의 대가는 자기의 전부를 기울이는 것 뿐이라.
이것을 착각하고 인간의 힘으로 만분의 일이라도 하는 줄로 아는 거기에서 저 사람은 인간의 힘이 한 점이라면 나는 인간의 힘이 만 점이니까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니 저보다 내가 잘 이루지, 이러는 통에 다 속고 넘어집니다.
순전히 하나님이 혼자 하시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실 수 있는 대가는 이미 받은 바의 은혜의 것이 다 되는 것입니다. 이미 받은 바의 은혜의 것이 내가 다 되는 것이라. 이것이 대가라. 이것이 그 다음 은혜를 받는 대가라. 인간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를 다하는 것이 두 가지는 오른발 왼발을 떼 놓는 것과 같이 은혜 생활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밤에 더 많이 가르치려고 했는데 더 가르치면 여러분들이 감당하지 못하겠어. 이것만 꼭 잡아요. 이것을 바로 깨닫고 굳게 잡으면 지극히 큰 보배가 됩니다. 알고 모두 다 속고 있습니다.
나까지 합해서 목사들 합시다. 나까지 합해서 다 목사들, 나도 거기 들어갔소.
목사들이 이것을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앞으로 받을 은혜에 대해서 이렇게 바로 구별해 가지고 받을 은혜의 대가인 다 하는 것.
다하되 앞으로 이루어진 은혜는 다한 그것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한 그것은 지나간 은혜를 보존하고 생활하는 것이고 미래에 건설된 것은 이미 받은 은혜를 배은 하지 않고 은혜 생활을 하니 하나님이 기뻐서 다시 주신 이 사실을 똑똑히 구별해서 믿는 목사가 심히 귀하고, 잘 믿는 목사라도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설교를 하고 언행심사를 하루하루에 하는 이 생활을 계속하는 목사는 참 천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합니다.
왜. 이 생활 하기는 하지마는 하다 보면 가짜 되어 버렸고 하다 보면 가짜 되어 버렸고 하다 보면 삐끌어져 버렸고 여기에서 인생이 무한한 소망을 가졌지마는 지체가 되고 이렇게 구원이 가속도로 이루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똑똑히 잡읍시다. 여기에 참석한 교역자들이 똑똑히 잡으십시오. 이러는 통에, 인간 지식 가지고 뭘 하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망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는 자본은 다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하면 다해 가지고 건설하는 그것이 자본 되는 것 아니오. 다하는 그것이 이미 받은 바의 은혜를 강직하는 것뿐이오. 은혜를 배반치 않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는 다시 새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대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떠나지 말고 구별해요. 교역자들도 구별해 가지고 완전히 교만을 다 내어 버려 버려요. 다해도 그 힘 가지고 하는 것 아닙니다. 순전히 기독자의 구원은 가 보면 하나님 무한하신 그분 혼자 한 것만 무궁 세계에 있지 인간의 한 것은 하나도 없어.
인간은 다만 그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 배반치 않고 그 은혜 받은 자로, 그 은혜 입은 자로 그 은혜 생활하는 것 외에 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